|
최근 ‘90년대생’이라는 키워드로 새로운 세대의 출현과 특징에 관한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제 20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들에 관한 세대론은 일단 자유분방하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것을 특징으로 들고 있다. 그러나 면면을 따져보면, 20대들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은 단일한 모습으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비단 90년대 생들만의 문제가 아닌, 이른바 특정 세대의 특징을 단순화하려는 모든 논법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90년대 생인 저자 역시 ‘우리들은 같은 세대로 태어났으나 다른 세계에 살아가고 있다’고 단언한다.
실상 ‘세대론’이 지닌 획일적 범주화의 문제는 지금껏 비판적으로 논의되었지만, 특히 언론 등에서 너무나 편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저자가 말하듯이 ‘90년생들이 가진 단면은 너무 다양하’기에, 각자의 상황에 걸맞은 논거를 통해 세밀하게 관찰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차라리 저자처럼 ‘모두가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면, 다르다는 것 자체가 그 세대를 정의하는 특징’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더 솔직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각기 격리된 것처럼 생활하는 20대를 저자는 ‘갈라파고스 세대’라고 규정하고, 그 특징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다면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 곧 공식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 억지로 무언가를 범주화하지 않고, 다양한 상황을 펼쳐놓으면서 20대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저자가 주장하는 ‘갈라파고스 세대’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선 갈라파고스의 의미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이 갈라파고스는 오랫동안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독자적인 환경을 이루고 있다는 이유로 다윈에 의해 진화론의 배경으로 선택되었던 곳이다. 저자는 20대인 1990년대 생들이 거대한 사회의 흐름 속에서 고립적으로 보이는 모습들을 일컬어 ‘갈라파고스 세대’로 규정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관찰한 20대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은 20대의 특징을 규정지을 수 있는 보편적인 모습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특별한 사례일수도 있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20대들이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전형’으로 인정될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 책은 모두 4개의 항목을 통해서, 1990년대 생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각 항목들의 맨 앞에는 1990년대생부터 1998년생까지 4명의 가상 이력서가 제시되어 있다. 아마도 저자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이력서를 통해서 90년대 생들의 다양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 이해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각자의 스마트폰 대화창의 이미지에 담긴 내용들을 통해, 20대들의 다양한 상황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직접 마주치며 대화하는 것보다는 일명 ‘카톡’이라고 하는 문자로 소통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한 세대, 그래서 저자는 20대가 처한 다양한 상황들을 ‘카톡’의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물론 장황한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한 글보다 이미지로 제시된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웠다. 그리고 저자가 속한 90년대 생들의 다양한 상황들을 제시하고, 그에 관한 나름의 생각들을 분방한 필치로 서술하고 있다.
실상 각 항목들의 제목은 지금 20대들이 느끼는 솔직한 감정일 것이라 이해된다. ‘이유도 없이 우린 섬으로 가네’, ‘어른들은 우릴 보고 웃지’. ‘내 좁은 화면 속의 바다’, 그리고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등의 제목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인식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자신들이 젊었을 때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20대의 ‘나약함’을 지적하는 기성세대들. 최근 ‘라떼는~’이라는 풍자어로 활용되는 기성세대의 ‘꼰대스러움’에 대해서, 저자는 비판하기보다 그저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기성세대들이 왜 젊은 세대와 소통하지 못하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나 역시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잠시 반성을 해보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하며 때로는 가족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이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임용시험에 떨어진 자신에게 여전히 희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부모를 부담스러워 하는 자식의 모습이 제시되어 있기도 하다. 지금의 20대들은 서로의 개별적 상황들을 ‘쿨하게’ 인정하고, 아니 자신과 관련이 없다면 특별한 관심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 옳을지 모르겠다. 그저 이렇게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20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을 통해 얻은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학교에서 마주치는 20대 초반의 학생들의 입장과 생각들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앞으로 만나는 젊은이들을 ‘우열(優劣)’이라는 척도가 아닌,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기로 하자고 내 스스로 다짐해 본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20대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
갈라파고스는 중남미 에콰도르 영해에 위치한 군도로 각각의 섬들에 고유한 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다윈은 독자적인 환경을 이루고 사는 생물의 모습에 착안해 갈라파고스를 진화론의 배경으로 선택하였다. 이에서 파생된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특정 집단이나 국가가 세계 시장이나 환경, 흐름과 단절되고 고립된 채 뒤떨어지는 정치 사회적 현상을 가리킨다. 1994년에 태어난 저자는 1990년대 생들이 갖는 각기 다른 성질을 지닌 것 자체가 한 세대의 특징을 함의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는 조직의 구성원으로 자기 몫을 다하며 살기를 바라지만 사회의 큰 흐름에 함께하지 못한 채 고립된 모습으로 지내는 이들을 갈라파고스 세대로 규정하고, 자신과 타인의 삶을 드러내고 있다.
20대 자녀들을 둔 부모들 대부분은 근대화 시대의 산업 역군으로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온 386세대들이 많다. 학업을 잇지 못한 한이 서려 있는 부모는 자식들이 그 한을 풀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마음속에 자리해 공부만 잘하라며 자식들을 학력 경쟁으로 내몰았다. 대학진학률이 높아진 만큼 대량 고학력 실업이 속출하고 있는 때에 맹목적인 대학 진학은 제고되어야 한다. 대학 진학이 아니어도 관심 분야의 지식을 쌓는 일은 랜선을 통해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활고로 학비조달이 어려웠던 저자는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관심 있는 분야의 스타트업 대표로 일했으나 실패로 갚기 버거운 빚을 떠안고 불안과 우울감에 시달렸다. 철없이 선택한 대가의 가혹함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고 극심한 우울은 극단적인 시도로 자신을 욱여넣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며 버티게 되었다.
직장에서의 경력이 없으면 고용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시대에 경제적 자립을 원하는 이들의 각축전에서 생존하려는 90년생들의 위기의식은 커졌다. 비정규직으로 출발해 조직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정규직 전환을 꿈꾸는 다수에 속해 있는 2 30대를 생각하면 기성세대로 무력감마저 들 때가 있다. 20대 후반인 딸은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새로운 꿈을 실현하기도 전, 코로나19 여파로 비자발적 실업에 놓인 상태다. 예측하기도 힘든 상황에 종잡을 수 없는 휴업으로 무급 휴직에 돌입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SNS 소통이 많은 세대의 특성을 담아 책에 소개된 사례들은 20대의 개별성을 띠면서도 보편화할 수 있는 일들로 추려진다. 내용의 갱신 속도나 시각적인 편의성을 담고 있는 인스타그램을 주로 이용하는 세대들은 자신의 삶을 타인과 공유하며 자신을 드러낸다. 인스타그램에 보이고 싶은 페르소나와 실제로 영위하는 삶이 다를지라도……. 대면하면서 소통하는 시간보다는 카카오 톡이나 페이스 북 메시지로 인간관계를 대수롭지 않게 정리하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대화 부재의 고립된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전화번호도 모른 채 10년 넘게 지내온 고교시절 친구에게 결혼 소식을 페이스 북 메시지로 받고 분노하던 딸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마저 지키지 않는 이들의 방자함에 씁쓸해진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독한 청춘들을 떠올리며 무거운 마음을 나눈다. 언제 끝이 날지도 모르는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참혹한 현장에 던져진 20대들의 암울함을 덜어 줄 소식을 기다리며 외따로 떨어져 소통하며 지내는 이들과의 연대를 바란다. 부모세대보다는 편리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그 삶이 행복한 생활인지는 가늠키 어려운 점을 기억하며 갈라파고스 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이상적인 어른과는 거리가 있지만 제 나름대로 이 사회에 정착하려는 꿈을 품고 지낸다. 이들이 매서운 칼바람에 나뭇가지의 중동이 부러지더라도 뿌리를 뽑히지 않는 나무처럼 흉흉한 시국에도 휘둘리지 않을 용기로 생존하길 바란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90년대 초반도 후반도 아닌 중간 쯤(1994년) 태생이 쓴 책! 나와 띠동갑이라 생각하니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결코 어리다고 귀엽게만 다가가섰다가는 큰 코 다칠 것 같아...... (태도를 제대로 하고 다시 책을 읽었다.) 그렇다면 굳이 나는 왜 서평 첫 문장무터 90년생들을 초, 중, 후로 나누었을까? (90년생은 다 90년생이지!! 라고 생각하셨다면 이 책 필히 읽어보셔야 할~듯!)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책의 제목을 잘 생각해보시기를......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필요에 의해 지어졌다고는 하나...... 내 입장에서는 참 잘 지어진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대를 나눈다는 그 자체를 과연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찌 되었든 나누기로 했다면 그 결과물이 대표성은 얼마나 띄는지 등 아주 밑바닥부터 의문을 던지는 저자의 물음, 생각들에 감탄을 하며 읽었다. 언제부턴가 나보다 어린 작가들의 에세이를 많이 읽게 되는데 그때마다 반성 많이 하게된다. 책 중간쯤에 젊은세대와 기성세대의 불통에 대한 부분이 가슴을 쳤다. 한쪽은 안정적인 직장의 여부를, 다른 한쪽은 비정규직이면 왜 안되는가를 따진다. 나는 후자 쪽에 더 마음이 끌리긴 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이력서, 카톡, 인스타그램들이 그냥 지나치기엔 아련했다. 선넘지 말라는 멘트들도 그랬고, 사람이 먼저 되라는 조언도 그랬고 모두 다르지만 어찌보면 비슷한 우리들이라서 그랬을까? 특히나 인스타그램과 가면의 삶에 대한 저자의 한숨! 그렇다! 나는 인스타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저자의 생각들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감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친한 친구 여럿은 실제로도 열심히 하지만, 결코 행복해보이진 않았다. (역시나 발을 안 들이는 것이 좋겠다!!!) 이 책의 또다른 강점은 각주가 매우 실용적이라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야 대부분 다 아는 줄임말들이 풀어져있어 좋았다^^ 언제부턴가 반 이상 못 알아 듣는 글귀들이 수두룩 했는데 이번기회에 조금 만회한 기분이다~ 전반적으로 어린 띠동갑 작가의 책을 눈치보 듯 읽은 기분이다. 아직은 나보다 어른들의 글들이 더 익숙하다는 증거일까? 그럼에도 앞으로는 더 자주 어린 글들을 읽어야 할 것임을 확실히 꺠닫는다. 그리고 익숙해 지는만큼 기분만은 더 좋아질 것을 안다. |
|
이 책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 읽을 만한 책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장에는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하듯이 책을 읽었다 물론 작가님의 생각이 나와 100% 맞지는 않지만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았고 , 작가님과 마찬가지로 90년대생으로 태어나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무엇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지, 세대차이에 대해 어떻게 알아야할지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90년대 생들이라고 모두 다 같은 삶을 사는 건 아니구나 깨닫기도 했다 내 주위 친구들과 나를 비교해봐도 그렇다 삶들이 다 같지 만은 않다 작가도 말했듯이 다 묶어서 '우리'라고 칭하는 건 조금 힘들 것 같다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듯, 우리는 그걸 살아가면 되는 거고 세대를 좀 더 이해하면 될 뿐이다 |
|
젠더 갈등과 더 심하게는 젠더 혐오 현상이다. 취업을 할 때 여성들이 받는 여성 쿼터나 여성 가산점도 이런 갈등의 원인이 되었는데 군대를 다녀온 남자는 가산점을 안주면서 왜 여자들은 가산점을 주냐는 역차별 논란도 발생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은 젠더 혐오의 끝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렇게 과거보다 젠더간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같은 시대에 살지만 각자 다르게 힘들고 외롭다는 얘기를 중언부언 써대다가 보니 책 한 권이 돼 있었다. 누구 한쪽이 더 슬픈 세대인지 보다 오늘의 세계가 어떻게 슬픈 시대인지를 이야기하면 좋겠다. 섬이라고 항상 외로우라는 법은 없다. 당신과 나 사이에도 섬이 있다. 나는 당신의 섬에 가고 싶다."
|
|
갈라파고스는 중남미 에콰도르 영해에 위치한 군도라고 한다. 열 아홉개의 섬들이 진화론에 관한 기초조사를 한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각각 섬마다의 특성이 살아있고 독자적인 진화를 이룬 고유종이 많았던 그 섬을 비유하여 요즘 세대를 갈라파고스 세대라고 명칭한 이 책이 궁금했다. 90년대 생은 정말 혼란스러운 시대의 한가운데서 자라나 살아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환위기를 거치고 3G에서 5G까지 영화나 문서를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하는 시간을 초단위로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기성세대가 누려온것을 가장 많이 누리고 있다는 오해까지 가득 받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어느 세대보다 교육의 기회가 많아 학벌은 누구보다 높으나, 눈이 높아 실업률이 계속 높아져가는데 한몫하고 있고, 돈을 벌어도 모으지 않는 욜로 생활을 즐기며, 안정된 직장보다 모험을 좋아하는 세대라는 오해를 책을 통해 풀어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언제든 전화 한통이면, 문자한통이면, 혹은 SNS한줄이면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살명서도 가장 외로운 세대라고하면 믿어질까? 하트 한번으로 서로가 통했다고 여겨지기 힘든 세대라 더욱 발버둥 치는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했던 섬이란 주제가 깊은 공감이 되었고, 네모난 학사모를 쓰고라는 글에서는 모두가 같은 이력서 한줄을 위해 정형화된 교육을 거쳐 취업이라는 골을 향해가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너무 슬프게 담아내고 있어서 기억에 남았다. 꿈을 가지라고 수없이 들었지만 꿈을 담을 수 없게 자라난 세대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같게했던 주제여서 이또한 기억에 남았다. 책에서는 요즘 핫한 젠더 이슈로 다루고 있었는데, 모두가 같은 선에서 출발하지 않는것에 대해 서로 불만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공평하지 않은 일에 공평하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 유리천장이란 단어와 여성 할당제란 단어가 서로에게 어떠한 불쾌감을 주는 단어인지에 대해서 성적 갈등을 떠나서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갖게 했떤 주제여서 이또한 기억에 남았다. 80년대 생이지만 90년대생과 같이 살아가고 있어서 많은 공감을 갖게한 글들이 많았다. 주제도 다양했고, 우리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작가님의 생각을 객관적이지만 주관적이게 잘 담고 있었던것 같다. 우리 모두가 생각해봐야할 문제에 대해 잘 정리된 책이라고 생각하며 많은 20-30대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
|
목차
선비족 오랑캐의 이름에서 필명을 따온 저자는, 젊은 세대의 아픈 것 같지 않으나 그러나 아프다고 소리 낮춰 말할 수 밖에 없는 아픔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다. 핸드폰 같은 기기의 발달도 있지만 자신의 사회적 존재감에 대해 움츠러 들어서 말을 하는 것조차 피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이런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사람,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나 반가움은 없이, 오직 내가 받을 상처에 대비해 '이 선만큼은 넘지 말아주길'하고 지레 겁먹은 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고있다. 그러나 어디 젊은 세대만 그렇게 아픈 것이랴.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 아픔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책은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허우적거리면서 간신히 버티는 사람이라면 잠시 숨을 고르면서 공감을 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젊은 세대의 힘겨운 세상살이에 대한 토로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 대한 구조적 통찰도 보여준다. 53 페이지의 아래와 같은 구절이 그 예이다. 나는 그 구절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 P.53 탈권위주의 성향을 갖게끔 성장했지만 정작 권위에 굴종하지 않으면 제 밥벌도 해내기 어려운 사회가 우리를 맞이했다. 또 남의 글을 인용해서 각주를 다는 것과 자신만의 말로 생각을 풀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작업이다. 저자는 자신만의 언어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실재하는 웹 세계를 책에다 옮겨 놨다. 그의 언어는 간결하면서도 사람과 한국어를 통한 사회에 대하 통찰을 보여준다. p.186 돈보다는 계속 살아갈 의지를 주세요. 그게 아니면 살아갈 의미가 될만큼 많은 돈을 주시든가요. p.186 어디에도 진정 소중히 여기는 것 하나 없이 '물질' 또는는 '의미'의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젊은이들. p. 오래된 가족과의 대화는 처음 만난 사람과 말하는 것보다 수 백 배 어렵다. 말하지 않도 알 것이라는 짐작들은 시간이 지나 불신의 협곡이 된다. 이 책은 섬처럼 고립되어 가는 사람들에 대해 사회적인 존재감을 갖는 방식에 대해 논의까지는 가지 않고 있다. 이 것은 sns의 문제가 아니라서 더 열심히 소통하라는 방식으로만 풀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자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임을 더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사회적 존재로써 인간이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겠다는 격려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의 깨알 같은 재미를 찾으라고 한다면, 독자는 소셜미디어나 웹상에서 유행하는 용어 몇 개를 건질 수 있다. 밈Meme이나 이누공, 연서복, 파오후 같은 말들이다. 저자가 소셜미디어에 깊이 관여해왔기 때문에 자신의 글에 녹여낸 트렌디한 말들이다.
* 이 책은 인스타 그램이나 카톡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벌어지는 대화, 장면을 실감있게 보여준다. 끝으로 인스타그램 @ahnyoura 에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실었다.
|
![]()
표지에서처럼 늘 갈팡질팡, 위태위태해 보이는 세대들의 이야기. 진짜 90년대에 태어난 작가가 쓴 솔직한 이야기.
이 책으로 모든 90년대생을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90년대생들이 많이 예민한 상태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고슴도치처럼 뾰족뾰족, 곁을 잘 안 내주는 이유가 이 퍽퍽한 세상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p.10 하여간 정말이지 우리는 다각적인 관점과 이해가 필요한 세대고, 그렇게 생겨먹은 시대에 태어나버렸다. 9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특별해서, 기존에 있던 그 어떤 세대들보다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나서 그런 건 아니다. 도리어 반대다. 내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게 있다면, 우리 세대 역시 다른 세대들과 정확히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다. 각자의 방식으로 슬프고, 외롭고, 아프고, 상처받는 사람 말이다. 단지 처해 있던 상황이며 환경이 조금씩 달랐을 따름이다.
가끔은 숫자로 세대를 나눠서 무리짓지 말고, 그냥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이라는 큰 틀 안에서 '세대' 빼고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90년대생은 아니지만 나도, 내가 살아가기에도 사회는 늘 구불구불 고갯길의 연속이니까. 지금 이 사회는 불공정한 상황이 늘 발생하고, 부는 대물림되며, 그래서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이제 일 반화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니까...
그래서 내가 그랬듯이, 그리고 지금의 90년대생들이 그렇듯이 우리는 사회를 겪으면서 많이 예민해진다.
-p.189 아끼는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실망만 안겨주고픈 사람은 없다. 그 누군가가 날 낳아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준 부모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삶이고 틈만 나면 내팽개치고 싶은 게 인생이라지만, 처음이었던 모든 것들이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라는 걸 그 땐 몰랐다. 슬플 때 슬프다 말하지 않는 것, 죽도록 힘들어도 버틸 만하다고 말하는 것, 아무리 겁이 나도 나도 언젠가 해야 하는 것, 괜찮지 않아도 늘 괜찮다고 대답하는 것까지. 좋든 싫든 간에 부모님 세대와 우리는 정말 많이 닮았다. 어쩌면 그래서 서로를 더 미워하게 됐을 지도 모르겠다.
기성세대의 잘못도 아니고, 90년대생의 잘못도 아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냥 지금 이 살기 힘든 퍽퍽한 사회가 만들어 낸 현상일 뿐이다.
달걀만 먹어서 목이 콱 메인, 그런 퍽퍽한 상황. 속 시원한 사이다가 빨리 나타나서 막혀있는 우리들 사이를 뻥 뚫어주길!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도서리뷰] 2020-28 갈라파고스 세대 제목 : 그러니까, 우리 갈라파고스 세대 / 저자 이묵돌 출판사 생각정거장 / 일자 : 초판 1쇄 2020년 4월 15일 읽은기간 2020년 4월 16일~19일 정리한날 2020년 4월 22일
[소감]
스물 아홉 살 작가로 데뷔한 하루키가 현시대에 살면서 쓴 데뷔 이전의 글이 있다면 이 책의 글맛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하루키 매니아였던 저로서는 최상의 극찬입니다.) 자조적인 문장을 써내려 가지만, 자신과 갈라파고스 세대라 지칭한 90년대 생들을 성찰합니다. 남탓, 기성세대 탓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표현하지 않는(혹은 못 하는) 갈라파고스 세대에 대한 책임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90년대에 태어나 사회에 진입하기 시작한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 부모님 세대와 다르게 이들의 불행은 불편과 결핍이 아닌 지나친 편의와 과잉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저자 이묵돌, 리뷰왕 김리뷰로 먼저 알게 된 저자입니다. 먼저 책 앞날개에 기술된 저자에 대해 짚고 넘어갑니다. 94년생, 가난한 어린시절 중학생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고,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취미 삼아 인터넷에 쓰던 글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수십만의 팔로워를 가진 페이스북에서 김리뷰라는 필명으로 알려져 있고, 몇 권의 책을 냈습니다. 만 스무 살에 컨텐츠 기획자로 스카웃되어 회사생활을 하다 IT 회사를 창업하고 2년만에 폐쇄. 이후 여러 온라인 매체에 칼럼 및 수필을 기고하면서 프리랜서 작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스물일곱, 그의 글맛은 소문대로 좋았습니다. 20대가 되기 전부터 온라인에 쓰던 글쟁이라면, 한동안 유명했던 웹작가 귀여니 같은 부류로 예상하게 됩니다. 가볍고, 무책임하고, 나아갈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글들이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입니다.
어른이 되었지만, 부모처럼 어른노릇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현재를 저자의 눈으로 둘러보면 20대의 청춘들에게 빚을 진 기분이 들어버립니다. 나의 20대는 인터넷이라고 해봐야 1메가의 그림파일을 몇 분에 걸쳐 내려받던 전화선에 연결된 PC 통신이었습니다. 내 눈으로 보는 물리적 환경이 내 시야의 폭이었고, 우물이었습니다. 지금보다 많은 것을 보지 못 했지만, 비교할 것도 보지 못 했습니다. IMF가 시작될 때 졸업을 했지만, 당시 사람을 줄이는 데에는 아직 가속도가 붙지 않은 시절이라 적당히 취업을 하면 적당한 월급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하찮은 신입직원에게 많은 것을 바랄 정도로 뻔뻔한 사회는 아니었습니다. 1학년부터 어학공부에 열중하지 않아도, 지금처럼 ‘20대 명퇴’ 같은 단어를 들을 일이 없었습니다.
돈과 명예, 재력과 학력, 얼굴과 몸매처럼 피상적인 요소만을 보고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하며 도매금으로 판단내리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다. 영원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보다야 같은 것들이 명백하게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편이 훨씬 단순명료하다.
상대방과 비교하고 움츠러들 필요가 없는 가장 활기찬 성인. 20대 갈라파고스 세대가 태어난 90년대의 20대는 두려움없이 찬란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상처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낫지 않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영 잊고 살던 것들이 떠올라 돌연 슬픔에 몸부림칠 때도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울거나 찌푸리거나 무표정한 젊음에 값을 치르지 않는다. 오직 밝고 명랑하고 친절한 청춘들에게만 돈을 지불한다. 이력서 증명사진 속의 청년들은 언제나 괜찮은 척 엷은 미소만 짓고 있다. 갈라파고스 세대는 어떻게 기성세대에 편입하고, 적당히 나이를 먹으면서 ‘철들고, 물들고, 찌들어갈지’ 궁금해 집니다.
|
|
90년 대생들이 궁금한가? 90년대 생들은 외계인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합리적인 인간이다. 부당한 일에 부당하다 이야기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갈라파고스 세대를 통해 90년 대생들의 생각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부모님 세대와 비교해 더 편하게 살고 있다는 건 백 번 말해 천 번도 맞는 말이지만, 그래서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라는 건 대부분의 경우 사실이 아니다. 90년대 생들은 태어나자마자, 편한 세상에 떨어졌다. 우리에게 불편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았던 옛 시대의 시각으로 90년대 생들을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90년대에 태어나 사회에 진입하기 시작한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 부모님 세대와 다르게 이들의 불행은 불편과 결핍이 아닌 지나친 편의와 과잉으로부터 온다. 80년대 후반이나 90년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게 '실제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에 서툴다' 거나 ' 온라인에서의 모습과 오프라인에서 보이는 모습에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 '라는 인상을 주고 있는 데는 이런 언어적 차원의 한계가 있다. 늘 해왔던 카톡이 편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직접 대화하는 게 불편하고 두려워져 일지도 모른다. 기성세대가 주축이 된 경제구조에선 '청년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 더 노력하지 않거나 완전히 포기해버리는 것'을 문제 삼지만, 청년들에겐 '더 나이가 들어 아르바이트마저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나 다음 해 최저임금 상승률과 퇴직금 수령 기준 변경 같은 게 훨씬 큰 걱정으로 다가온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왜 비정규직이면 안 되느냐는 식이다. 당연히 말이 안 통할 수밖에 없다. 부모들은 말한다. 대학은 왜 가서 등록금을 그렇게나 날린 건데? 그거야 부모님이 그러길 바랐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선택권도 결정권도 없었다. 의지를 갖고 뭘 해보려 한들 허용된 시공간이 한정적이고, 경제적으로 과감하게 독립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이름 있는 대학교 입학하는 것 이외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만큼 주체적인 성장 과정도 아니었다. 인스타그램은 자신의 건재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사람들의 반응으로 말미암아 지친 자신을 도로 일으켜 세우는 자존감 회복의 장이기도 하다. 가정이 바로 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4차 산업 혁명의 시대 암기 위주의 공부만을 강요하면 그들의 미래는 누구 책임질 것인가? 자식도 하나의 인격체이다. 나이가 어려도 자신의 삶은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인생의 큰 길을 부모의 관점으로 그릴 것이 아니라, 아이를 인정해 주고 넓은 세상을 보여주며 실패하더라도 자녀가 선택하고 달려가도록 지지하고 응원해야 하는 것이 부모이다. 그래야 그들이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