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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서양문화 수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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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를 볼 때마다 궁금했던 부분이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시대 속에서‘아시아에서 어떻게 유일하게 서구 국가가 인정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는가? 였다.물론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국가 전체가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답이었다.미국의 함포외교에 개항을 한 후에 왜 다른 아시아국가처럼 식민지가 아닌 근대화에 성공했을까? 당시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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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를 볼 때마다 궁금했던 부분이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시대 속에서‘아시아에서 어떻게 유일하게 서구 국가가 인정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는가? 였다.


물론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국가 전체가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답이었다.

미국의 함포외교에 개항을 한 후에 왜 다른 아시아국가처럼 식민지가 아닌 근대화에 성공했을까? 


당시 지배세력들의 의식이 깨어 있었다고 해도 국민정서가 이를 따르지 못하면 결국은 이룰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늘 그 부분이 궁금했다.

비로서 이 책을 통해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은 듯 싶다.



세계사에서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포르투칼과 스페인의 ‘대항해’는 정말이지 대단한 모험이며 도전이었다. 포르투칼 항구에 있는 “발견의 탑”을 보면 몇백년전 떠나는 사람들의 심장소리가 연상된다.



스페인이 서쪽으로 아메리카를 찾으니 포루투칼이 동쪽으로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동남아시아로 뱃길을 열고 자연스럽게 동쪽의 끝에 있던 일본에 다다른 것 같다. 가까이 있던 조선도 좀 방문했으면…


포르투칼을 통해 서양 문물이 전달되니 이때부터 개화는 서서히 시작됐다고 여겨진다. 

이때 전해진 조총같은 기술들이 임진왜란에 사용되니 우리에게는 아쉬울 따름이다.

조선에 들렸다 해도 우리는 중국에 대한 사대모화가 너무 강해서 일본과는 다른 반응이었을지 모르겠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중국의 문화를 주로는 조선의 통신사를 통해 접했을 것이고, 우리 조상들처럼 중국을 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강도가 좀 약했던듯 싶다. 우리는 조선왕조의 사상적인 토대로 받아드린 유학 중에 성리학이 편향되게 발전하면서 중국이 어버이같은 존재였으니 다른 문물은 눈에 안들어왔을 것 같다.


남미로 향한 스페인과 함께 한 신부님들보다 좀 더 온순한 성향의 신부님들이 포르투칼과 같이 동쪽으로 온 것도 다행이지만 당시 일본의 군사력이 남미 국가들보다는 높았을 것 같다. 화력이 뛰어나다 해도 먼길을 온 몇 척의 배로 일본이란 국가를 상대하기는 벅찼을 것이다. 반면 남미는 그 수준으로도 정복을 했으니 크게 대비되는 셈이다.


기독교를 배척하면서 포르투칼을 추방하고 그 후에 네덜란드가 접근해 오는데, 그들의 접근이 순수한 상업적 목적이라고 해도 일본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고 본다.

우리에게는 네덜란드는‘하멜 표류기’밖에 없는데 ‘난학’으로 계몽이 본격적으로 싹을 트게되니 말이다. 이때 우리 선조들은 왜란 후 두번의 호란으로 정신 못차릴 정도의 비참한 지경이었으니 이 대목에서의 비교는 슬퍼진다. 


네덜란드인들을 통해 들여온 기술 중애 서양의학은 중국의학과 비교되었고 광학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측정하는 기술은 일본인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차츰 세계의 중심이 중국이 아니라는 것을 일본이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일반 서민들에까지 점진적으로 퍼지게 되니 국가전체가 계몽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미국이 함포외교로 강제 개항을 했다고 해도, 부국강병의 기치를 높이고 국가 전체가 달려갈 준비가 이미 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일본이 포르투칼과 네덜란드를 만나듯이 우리 선조들도 좀 일찍 만날 기회가 있었다면 조선의 근대화는 지금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당시 일본보다 학문에 발달된 조선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든다. 


왜란이야 방심하고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국제 정세를 읽을 줄 알았다면 광해군때부터 뭔가 달라을텐데 명나라만 바라보다가 호란을 당하고 성리학외에는 다른 학문은 생각도 하지않는 풍토에서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중국이 서양에 당하듯 우리조상들도 같이 호되게 당해야 알게될 운명이었듯 싶다.



역사 이야기를 음식과 같이 하면 한층 더 재미를 준다. 


불교 전래이후에 네덜란드와 적극적인 교류를 하기전까지 1,200년 동안 육식을 금지했다는 이야기는 낯설고 놀랍다. 그러니 소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이 개화의 의미로 받아들여질만 하다. 포르투칼을 통한 별사탕, 카스테라 이야기도 재미있고 카레와 돈카스 탄생 이야기도 재미있다.


2/17/2017


a***k 2017.02.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