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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미셸 포쉐는 행복의 변천 과정과 주요 쟁점들을 시대의 지적 패러다임의 변화에 맞춰 살피고 있다. 창세기에서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기까지, 행복이 역사에서 어떻게 인식돼왔으며, 궁극적으로 역사와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행복을 조장하거나 건설해왔고, 혹은 통제나 감시를 통해 억압해왔는지 문학, 예술, 신학, 사회, 정치, 역사 전반을 아우르면서 전개한다.
저자는 먼저 철학자들이 행복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고안된 행복이 신을 대신하고, 세계의 신비가 사물에 대한 명료한 이해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생겼다는 점을 밝힌다. 물론 그 절정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을 행복의 조건으로 간주했다. 고대 그리스인에게 행복은 ‘철학’이라고 부르는 지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지혜의 결과였다.
이처럼 행복은 축제에서 혁명에 이르기까지, 철학자의 장엄한 웅변에서 오늘날 비보이들의 현란한 율동에 이르기까지, 신학자들의 엄숙한 저서에서 인기 스타가 등장하는 광고나 패키지 관광 상품 전단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실현된다.
희망은 여행에 활력을 불어넣고 운명을 예측한다. 희망은 우리에게 비록 여행에 끝이 없더라도 한계까지 나아가라고 종용한다. 여행이 영원성에 가까이 갈수록 매 순간 활력을 맛보게 된다고, 그런 미래를 믿어야 한다고 부추긴다. 그리고 개종의 보상으로 안락의 미소를 짓게 되리라 약속한다. 희망은 믿음의 요청이며, 감각의 약속이자, 목표와 방향의 확신이다.
행복으로 향하는 여행의 정박지는 상상력에 따라 다양하다. 어떤 곳은 다른 곳보다 우리를 더 큰 희망에 부풀게 한다. 항구와 기차역은 행복이 탄생할 수 있는 약속의 장소이다. 공원이나 정원은 궁극적으로 안락을 부르는 장소이다. 카페, 레스토랑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시작할 수 있는 앞서 ‘형성된 세계’이다.
마찬가지로 도서관 역시 오래전부터 행복이 정착할 수 있는 장소로 여겨져 왔다. 책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과 책이 만들어낸 빽빽한 숲은 행복이 도피해 정착한 미지의 나라에 대한 윤곽을 그려 보인다.
꿈을 실현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세계와 우리 정신을 연결하는 다리는 많다. 각자는 행복의 집결지인 ‘앞서 형성된 세계’를 발견해야 한다. 천국으로 향하는 자기만의 길을 그려봐야 한다. 천상 여행을 구상하는 각자의 미로를 만들어야 한다. 미완성으로 남은 파리에 관한 발터 벤야민의 위대한 책처럼,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고유한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
폴 발레리는 자신의 시 ‘해변의 묘지’ 마지막 부분에서 ‘바람이 인다! ... 살아야겠다!’라고 외친다. 안락의 바람에 떠밀리고 천사의 약속에 가벼운 상처를 입은 우리는 행복에 이르는 길을 다시 배워야 한다.
지오노의 작품 ‘지붕 위의 기병’에 등장하는 주인공 안젤로는 1838년 콜레라로 황폐해진 프로방스 지방에서 펼쳐진 끝없는 경주에 참가하고, 행복에 정착하고자 계속해서 말을 몰아 달린다. 그의 행위는 위기 저편에 있는 기쁨에 찬 격정이며, 기쁨의 연속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순수하고 지속적인 출발이다. 행복은 한 마디로 이런 말발굽 리듬에 맞춰 차츰 깨어나기 시작하는 어떤 것이다.
우리는 시인들이 남긴 교훈을 배워야 하고, 랭보가 남긴 ‘모든 존재가 행복의 숙명’을 가졌다는 위대한 메시지에 귀기울여야 한다.
천국이 지옥으로 변하는 장면을 목격할지도 모르는 위험과 실패에도, 우리는 시가 된 삶의 위대한 모험으로 우리 자신을 던져야 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세계를 항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신비의 해양과 상징이 소용돌이치는 현실에 깊이 잠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행복은 우리의 필연적인 운명이자 역사의 궁극점이며 위대한 내면의 인간을 실현하는 조건이다.
나는 ‘행복의 역사’라는 제목을 보고 ‘행복론’을 집대성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행복의 ‘역사’였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이라도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은 고통으로 변했다. 저자가 인용한 수많은 문헌은 나에게 무척 생소한 것이었고, 프랑스의 작가를 위주로 전개되는 문학작품 속의 '행복'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옮긴이의 후기’ 처음에 나오는 최영미의 시 ‘행복론’을 읽고 나서였다. 나는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사소한 행복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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