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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동안을 참고 참아왔지만, 未亡人은 시끄럽고 ‘있으면 있을수록 없는 男便의 생각이 더욱 懇切한’이 都會를 내버리고 어떤 고요한 시골에 가서 조용히 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 都會를 떠날 準備의 하나로서 한 二三十 點이 되는 제 그 지아비의 遺作을 죄 팔아버리려 하였습니다. 며칠 뒤에 이 T市의 모든 美術批評家며 畵商들은 벤트론 未亡人에게서, 없는 男便의 ?藏하던 그림이며 遺作들을 팔겠으니, ○○日에 와서 看色을 보라는 通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집의 各 房을 裝飾하였던 故 벤트론의 各 作品은 完成品이며 未完成品을 勿論하고 모조리 없는 이의 畵室로 모아들였습니다. 看色을 보인다는 ○○日은 아침부터 各 貴族이며 ‘藝術을 理解하는’ 富豪들이며 畵商들이 마치 著者와 같이 未亡人의 집에 들락날락하였습니다. 위層 自己 房에 들어앉아 있는 夫人은, 손님이 왔다고 下人이 여쭐 때마다 적적한 한숨을 내쉬고, “案內해 드려라.” 한마디뿐으로 自己는 내려가보지도 않았습니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