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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자기 본분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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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는 해석하기 어려운 그림으로 유명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동시대 사람이었지만, 우아함으로 상징되는 르네상스 화풍과는 다르게 기괴하고 화려하고 몽환적인 그림들을 그렸다. 그는 대체로 인간의 죄와 부도덕함을 상징하는 그림들을 대형 패널에 그리는 걸 즐겼다.  그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쾌락의 정원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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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는 해석하기 어려운 그림으로 유명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동시대 사람이었지만, 우아함으로 상징되는 르네상스 화풍과는 다르게 기괴하고 화려하고 몽환적인 그림들을 그렸다. 그는 대체로 인간의 죄와 부도덕함을 상징하는 그림들을 대형 패널에 그리는 걸 즐겼다.

 

그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것은쾌락의 정원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인데, 세폭 제단화 (Triptych) 형식으로 그려진 이 작품에는 천국(에덴 동산)과 지옥을 모두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가운데 패널인데, 이 그림은 천국과 지옥 사이, 그러니까 현재의 세상을 의미한다는 게 보편적인 해석이다. 그런데 보쉬가 해석한 현세란 인간의 악행으로 타락한 지상의 낙원이다. 인간 세계는 점차 타락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유토피아였던 세계가 점점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인 해석 외에도 이 세 점의 그림을 모두 지옥 시리즈로 보거나 그와는 상반되게 그림 전체를 잃어버린 에덴이나 천국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이 매한가지라는 것인데, 무엇이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것일까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은 보쉬가 그린 세계는 자신이 살고 있던 세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그가 생각한 천국이나 지옥은 가공의 장소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 세계를 묘사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보자면쾌락의 정원의 가운데 패널에 있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내면세계가 바로 이 그림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까뮈는 『페스트』에서 죽음을 당면한 인간 군상들의 천태만상을 보여준다. 5부로 나눠진 이 작품은, 194X 4 16일 시작된 페스트가 다음해 1월에 끝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페스트 발생으로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오랑의 시민들이 경험한 10개월을 각 부마다 한 계절씩 기술하고 있다. 1부에서는 봄을 2부에서는 여름을 3부에서는 가을을 4부에서는 겨울을, 그리고 마지막 5부에서는 해가 바뀌고 페스트가 종식된 상황을 시간순으로로 서술한다. 따라서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페스트를 직면한 사람들이 어떻게 동요하고 어떤 심리 상태를 겪으며 어떤 식으로 행동을 하게 되는지 등의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하의 내용을 통해 드러나게 되겠지만, 그것은 보쉬가 그린 쾌락의 정원속 사람들과 매우 유사하다.

 

리외가 죽은 쥐를 처음 발견한 4 16일 이래로 불과 나흘만에 쥐들은 떼지어 나와서 죽기 시작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저 약간 혐오스러운 사건이라고 불평할 정도였지만, 곧 시민들의 불안은 공포에 가까워진다. 이로 인한 죽음이 하급 일용직이나 빈민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다.

도시 전체가 열병으로 푹푹 찐다. 그러나 쥐 문제를 유난스럽게 보도하던 신문들은 일제히 침묵한다. 쥐는 거리에서 죽었지만, 사람들은 방 안에서 죽어 갔기 때문이다. 신문은 눈에 보이는 일에만 신경을 쓴다.

그 사이 사망자 수가 몇 배로 껑충 뛰고, 사람들은 페스트 앞에서 속수무책이 된다. 오랑 시민들은 무작정 이 재앙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 믿고 싶어한다.

겉으로는 여느 봄날과 다르지 않았지만 나날이 사망자가 늘어가자, 도지사가 페스트 사태를 공표하고 도시를 폐쇄하기에 이른다.

 

여름

페스트를 공표한 순간부터 페스트는 모두의 문제가 된다. 사람들의 허약함이 즉시 드러난다. 시민들은 비이성적이 되어간다. 가령, 술이 감염성 질병을 예방해준다는 검증되지 않은 속설 때문에 음주량이 폭증한다. 격리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생기겨서 경찰과 무장 군인까지 개입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편지가 감염 매체가 되는 것을 막고자 모든 우편물의 왕래가 전면 금지되자 가족이나 연인과 떨어진 사람들의 고통이 더욱 커진다.

감염자들이 점점 늘어나 학교 건물을 빌려 임시로 꾸민 500개 병상이 거의 다 찬다.

사람들은 페스트가 불시에 왔듯이 불현듯 떠나길, 그렇게 국면이 전환되길 간절히 바란다.

더위와 페스트 때문에 일부 시민들이 자제력을 잃고 폭력을 쓰기 시작하고, 봉쇄된 관문의 감시망을 뚫고 야간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주당 거의 700명을 헤아리는 희생자 수의 급상승에 더위까지 맞물려서, 오랑 시 전체가 엄청난 실의에 빠진다. 페스트와 더위라는 이중 압박이 지속되자, 관광업도 파산한다.

종이 부족으로 일간지들이 부득이 지면을 줄이는 와중에도전염병일보가 창간하는데, 신문의 지면은 곧 페스트 예방에 효력이 확실하다는 신상품들의 광고에 할애된다.

전염병이 확산되면서 윤리 의식도 느슨해진다. 페스트 초기에는 사람들이 종교적이 되었으나 이 병의 심각성을 알게 될수록 향락적이 되어간다.

그러나 몇몇 뜻있는 자원자들을 주축으로 보건위생대가 조직된다.



가을

사실상 8월 중순에는 페스트가 모두를,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더 이상 개인의 운명은 없었다. 오직 집단의 운명만 있었다. 페스트가 빚어낸 운명과 감정을 모두가 공유했다. (p.182)


생존자들의 폭거, 사망자들의 매장, 생이별한 연인들의 고통이 이어졌다. 페스트가 외곽에서 번화가까지 공략했고 사람들은 바람을 감염의 주범으로 비난했다. 격리에서 풀려난 사람들의 방화도 잇따랐다. 등화관제가 실시됐다. 식량 부족 문제가 불거지면서, 직접적 관심이 민생으로 쏠렸다.

사람들은 음식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고 수속을 밟고 서류를 갖추는데만도 진이 빠져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 나가는지, 또 자신은 어떻게 죽게 될지 생각할 겨를 조차 없다. 페스트로 경제활동이 붕괴되자 상당한 수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8월부터 사망자 수가 계속 정점을 찍어 시의 공동묘지가 포화에 이르자, 영구임대묘지의 유해들이 화장터로 보내졌고 곧이어 페스트 사망자들도 화장터로 보내졌다.

9월과 10월 두 달 동안, 오랑 시는 페스트의 발 아래 굴복했다. 페스트가 수주일간 정체 상태로 지루하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겨울

의료진들도 점점 지쳐갔다. 보건위생대 사람들도 누적된 피로를 감당해내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조금씩 피로에 무너져 탈진했고, 이로 인해 나태해져 스스로의 생활을 망가뜨렸다. 점점 더 자주, 자신들이 세운 위생 규칙에 소홀해지고, 스스로 시행했어야 할 소독 조치들을 까먹고, 심지어 페스트 환자의 집에 감염 예방 조치도 전혀 하지 않고 방문하기도 했다. 바로 이 점이 진짜 위험했다.

사람들은 꾸준히 성당에 나가는 대신 허황된 미신들에 빠져들었다. 미사에 참석하기보다는 수호용 목걸이나 성 로크의 부적을 지니는 데 더 적극적이 되었다.

11월이 되자 페스트가 다소 진정되는 듯 보였고 이 즈음 새 혈청을 이용한 치료가 몇 건 성공한다. 의사들과 의료진은 탈진할 정도의 노력을 쏟았다. 초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이와중에도 부유층들은 부족한 것이 거의 없이 누리는 반면, 빈곤한 가정들은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신문들은 무조건적 낙관론이라는 하달된 지침을 철저히 따랐다.

12월 내내, 페스트는 정체없이 전진했고, 오랑 전체가 내일은 없는 것처럼 살아갔다.

그해 성탄절은 복음의 축제라기보다는 차라리 지옥의 축제가 된다.

그러다 쥐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고, 통계에서도 병의 감소세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듬해

페스트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슬그머니 떠나고 있었다. 시민들은 극도의 낙관과 지독한 비관을 번갈아 가며 겪었다. 그러나 물가가 현저하게 떨어지고, 시의 두 수도원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하고, 군인들도 빈 병영에 재집결하는 것이 큰 징조가 되었다.

1 25일 도청이 공식적으로 종식 선언을 발표한다. 그리고 2월의 어느 날 봉쇄되었던 도시의 관문들이 열린다.

 

이상이 리외가 관찰자이자 기록자로서 서술한 페스트의 연대기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 팬더믹의 상황과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페스트와는 달리 이 팬더믹은 언제 종결될지 기약이 없다는 점만 빼놓고 말이다.

 

까뮈는 리외의 입을 통해 이 연대기는 그저, 성자가 될 수 없지만 재앙에 굴복하기도 거부하기에, 각기 다른 아픔들 속에서도 의사로서 최선을 다했던 모든 이들이 공포에 맞섰던 기록이자, 앞으로도 결코 끝나지 않을 공포의 가차없는 맹습에 맞서서 확실히 수행해야 할 것들에 대한 기록일 뿐이다.” (pp.327-328)라고 말한다.

즉 『페스트』는 페스트라는 질병이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소멸했는지의 과정을 기술한 연대기이기도 하지만, ‘페스트라는 공포에 직면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페스트』는 페스트라는 재앙 앞에서 절망하거나 침묵하거나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의 천태만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페스트를 이해하고 그에 대응하는 쪽을 선택한 사람들도 보여준다. 그 중에서 까뮈가 주목한 것은 페스트의 재앙과 공포에 맞선 사람들, 까뮈 식으로 표현하자면 부조리에 투쟁하는인물들이다. 『페스트』는 이들에 대한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중 우선적으로 주목하게 되는 사람들은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리외와 파늘루 신부이다.

 

베르나르 리외는 의사로서 페스트 초창기부터 페스트를 인지하고 환자들을 치료한다. 감염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자신이 하는 일이 페스트 치료가 아니라 페스트 선고가 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정머리 없다는 비난과 오해를 받으면서도 리외는 하루에 스무 시간 이상씩 묵묵히 소임을 감당한다.

그에 비해 파늘루 신부는 신앙에 의존하는 종교적 인물이다.

이 둘의 차이는 타루와 리외의 대화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타루가 신을 믿느냐고 묻자 리외는 아뇨.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나는 어둠 속을 헤매고 있지만, 또렷이 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p.135)라고 대답한다. 타루는 그게 리외와 파늘루 신부를 가르는 점이라 지적한다. 타루가 다시 왜 헌신하냐고 묻자 리외는 신의 전능함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신 역시 하늘만 바라보기보단 자기를 믿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죽음과 싸우는 걸 더 좋아할’(p.138)거라고 말한다.

리외는 신을 믿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온 힘을 다 해 죽음과 싸우는 쪽을 택한다.

 

그에 비해 파늘루 신부는 모든 것을 신의 뜻이라 생각한다. 페스트 역시 신이 내린 심판의 결과물이므로 인간으로서 응당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리외에게서 파늘루 신부의 강론 내용을 들은 타루는

파늘루가 옳아요. 죄 없는 사람이 두눈을 파인 경우 기독교인이라면 신앙을 잃거나 눈이 파인 것을 받아들이거나 해야죠. 파늘루는 신앙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끝까지 갈 겁니다. 그는 그걸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p.243)라고 파늘루의 입장을 이해한다.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파늘루가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그가 현실의 상황을 외면하는 건 아니다.

 

판사 오통 씨의 아들 필리프가 혈청을 투여한 뒤에도 결국 죽게 되자 리외는 파늘루에게 화를 낸다. 그때 파늘루는 우리 모두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구원이라니 너무 거창한 말입니다. 그렇게까지 고상한 목표는 없어요. 내 관심은 인간의 건강이에요. 건강이 최우선입니다.” (p.232)라고 리외가 반박하는 지점에서 이 둘의 의견은 정확하게 갈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리외도 자신이 미워하는 건 죽음과 악이는 걸 인정하며 원하시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동맹입니다. 함께 그것들을 겪고 함께 싸우고 있죠.”(p.233)라고 말한다. 파늘루 역시 이에 동의해 보건위생대에 들어가고 항상 선두에 서서 페스트에 맞선다.

 

페스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입장은 그들이 추구하는 신념이나 목표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리외와 파늘루는 의사와 신부로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함께 한 것이다. 큰 재앙 앞에서 인본주의자냐 신본주의자냐는 중요하지 않다. 각자의 최선을 다해 재앙에 맞서는 게 중요할 따름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온 신문기자 레몽 랑베르는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인물을 상징한다. 그는 오랑이 연고지도 아니고 파리에 두고 온 연인도 있었기 때문에 모든 수단을 강구해 오랑을 빠져나가려는 한다. 급기야 그는 밀항까지 시도한다. 스페인 내전에 종군했던 랑베르는 사람들이 관념이나 영웅주의 때문에 죽는 게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리외가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이건 도의의 문제예요. 웃기게 보일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도의뿐입니다.”(p.179)라고 말하는 걸 듣고 자신이 오랑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방인이 아니라는 걸 자각한 후 보건위생대 일에 참여해 페스트에 맞서 열심히 싸운다.

 

랑베르처럼 오랑 시민이 아니라 외부인이었던 장 타루의 경우엔 심지어 자원자들을 모집해서 보건위생대를 조직하기까지 한다타루는 자신이 본 걸 수첩에 기록하는 사람인데, 페스트 초창기의 일종의 연대기는 그의 기록에 의거한 것이다. 일반적인 역사가라면 건너뛰었을 것들을 두서 없이 일기 형식으로 적었지만, 그의 기록엔 그 시기의 매우 중요한 세부 사항들을 많이 담고 있다.

타루는 국면국면에서 상황을 분별력 있게 해석하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을 한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 전염병이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가 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설득한 인물이 바로 타루였다. 코타르가 페스트가 너무 강해 헛수고라고 할 때도 두고 보면 알겠죠. 우리가 모든 노력을 다 해 본 후에요.” (p.172)라고 말하며 섣불리 낙담하지 않은 것도 타루였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페스트와 싸운다.

 

『페스트』에서 까뮈는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기 위해 종종 타루와 리외의 대화를 사용한다.

신없이 성자일 수 있느냐, 이것이 오늘날 내가 겪고 있는 단 하나의 구체적인 문제입니다.”(p.272)라고 타루가 말하자 리외는 나는 성자들보다는 패배자들과 더 연대감을 느껴요. 나는 영웅주의나 신성함에는 취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내 관심사는 인간이에요.”(p.273)라고 대답한다.

신을 믿지는 않으나 성자가 되고자 한 타루와, 영웅이 되고자 하는 마음 없이 패배자들과의 연대감을 느끼며, 신이 아니라 오직 인간에게만 관심이 있었던 리외는 함께 페스트에 맞선다. 인간들 사이의 공감우정을 바탕으로 한 유대감과 결속력에 의거해서 말이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명 주목할 사람이 있다. 바로 시청 서기 조제프 그랑이다.

그랑은 시청의 별볼일 없는 하급 서기이다. 22년 전 이 일을 시작한 이래로 계속 임시직일 뿐만 아니라 쥐꼬리만한 급여를 받고 있다. 키가 크고 마른데다 몸에 맞지 않는 큰 옷만 입고 윗니까지 다 빠진 별볼일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정직하게 노동해서 생계를 해결하는 사람이고, 자신의 선한 감정에서 나오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리외는 매우 이성적고 냉철한 사람이지만, 그랑과 같이 소박한 공무원이 있는 오랑이라면 페스트가 기승을 부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 정도로 그랑은 묘하게 무해한 사람이다. 그랑 역시 자신의 시간을 쪼개 리외를 돕고 보건위생대에서 봉사한다.

 

결국 이렇게 선량한 사람들이 선의로 모여함께페스트에 맞서 오랑을 지켜낸다.

 

사람들은 페스트라는 거대한 재앙, 극한의 절망과 대면하여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

도지사를 비롯한 행정공무원들은 지금 유행하고 있는 것이 페스트라는 전염병임을 공인해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시간을 지체하며 고민한다. 이 때, 중요한 건 어휘가 아니라 시간이라며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공표를 서두르라고 한 건 리외였다. 언론들이 민심의 안정을 빌미로 위에서 하달된 내용만을 그대로 발표하는 쪽을 택했을 때,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며 보건위생대를 조직한 것은 타루였고, 그에 동의해 함께 뜻을 모은 사람들이 보건위생대 일에 자원한다.

 

까뮈는 이러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면면을 보여줌으로써, 천국을 만드는 것도 지옥을 만드는 것도 결국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코로나 팬더믹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거대한 재앙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지옥이 되지 않는 것은『페스트』에서 까뮈가 설파한대로 인간에게는 성실과 연대가 있기 때문이다. 

리외를 인용해서 말하자면, “이 세상에는 매번 재앙과 희생자가 있고, 무엇이 되느냐는 우리가 얼마나 재앙의 편이 되기를 거부하느냐에 달려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본분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것이었다. (p.50)


YES마니아 : 로얄 c*****g 2020.10.31. 신고 공감 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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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을 발견하는 경험과 기억의 전염병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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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La Peste》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지음 |  변광배 옮김 | [미르북컴퍼니] “그 순간부터 페스트는 우리 모두의 문제였다고 말할 수 있다.”(91면) 전염병의 정체가 확인된 후 도시가 봉쇄되면서 도시에 갇힌 사람들은 모두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가 된다. 막연한 공포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거주자들의 삶이 추상에서 구상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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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La Peste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지음 |  변광배 옮김 | [미르북컴퍼니]




순간부터 페스트는 우리 모두의 문제였다고 말할 있다.”(91)


전염병의 정체가 확인된 도시가 봉쇄되면서 도시에 갇힌 사람들은 모두 배를 공동운명체가 된다. 막연한 공포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거주자들의 삶이 추상에서 구상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전염병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았는지 지난 9개월 넘게 구체적으로 목격한 있다.  70여년 전에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발표한 페스트 우리가 겪은 상황, 구체성과 함께 비교하여 읽으니 우리의 경험과 깜짝 놀랄정도로 닮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1947년에 발표된 소설은 34세의 카뮈가 연대기적 방식으로 실감나게 써내려간 전염병에 관한 작품이다. 프랑스령 알제리 해변에 위치한 오랑이라는 중소도시를 9개월 남짓 휩쓸어버린 페스트에 관한 이야기이다. 코로나19 감염병뿐만 아니라 페스트 역시 오랜 생명체의 역사를 거쳐 신중하게 진화해온 작동하는 하나의 체계였다. 소설이 단순히 허구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은 이유는 전염병이 군림하는 봉쇄된 지역의 공동체가 겪는 구체적인 양상이 아주 탁월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얻은 인간의 경험들이 모두의 기억으로 전달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염병은 지구가 존재하는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전염병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단지 사람들만 사라져갈 뿐이다. 이런 까닭으로 소설의 화자는 봉쇄된 도시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을 이야기하기 위해 연대기를 남기게 것이리라. 사람이 사라지면 이러한 기억 또한 단절되기 때문이다.



     소설의 중심 화자는 30 중반의 의사 베르나르 리외다. 아마도 소설을 당시 작가의 나이와 비슷한 젋은 의사를 상상했을 법하다. 이야기 속에 묘사되는 의사와 의료 시스템에 대한 정보는 아마 카뮈가 10 후반부터 오랫동안 작가를 괴롭히던 폐결핵의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을 같다. 병원이나 요양소, 병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소설에 상당히 반영되었을 것이다. 한편 2 세계대전 당시 기자 활동과 레지스탕스 조직 신문 편집자를 지낸 경험은 소설 속에서 기자로 등장하는 레몽 랑베르에게 적용되었을 것이다. 소설을 읽은 느낌을 간결하게 표현해보면 인간의 존엄에 대한 호소 아닐까. 다만 이와 관련한 정서가 오늘날 독자들의 정서에 거부반응이 없는지 확신하진 못하겠다. 카뮈의 시대와 비교해서 우리는 이미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극도로 파편화된 현대인들에게 인간에 대한 카뮈의 관심과 애정이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삶을 다시 추적해보면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카뮈는 1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1 (1913) 출생했다. 그러니까 그는 20세기에 가장 참혹했던 전쟁을 모두 겪은 셈이고, 특히 2 대전 당시에는 30 전후의 청년으로 현실에 적극 참여하는 지식인으로의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다. 게다가 신문 편집자로서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이를 전달한 경험을 통해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숱하게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인간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면 인류에게 무엇이 남을지 명명백백하게 자각한 사람이 바로 카뮈가 아닐까.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점을 놓치지 말고 따라가볼 있을 같다.      



구체성으로 경험되는 페스트(우리 밖의 페스트)


     소설에서 전염병은 구체적으로 감지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도시 전역에서 쥐들은 이미 죽어있거나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 뒤이어 사람들은 하얗게 변해버린 , 거친 숨소리와 헛소리, 몸에 드러난 종기, 구토 병의 징후는 진화된 병원균의 치밀한 계획을 보여주었다. 번식하고 주변으로 퍼져나가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숙주인 인간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페스트가 경험되는 감각은 달라진 도시의 소음과도 관련이 있었다. 가게들은 문을 닫고, 차량은 제한되어 거리는 침묵 속에 놓여 있다. ‘침묵의 소리역시 사람들이 경험하는 전염병의 구체적인 사회적 징후였다. 병을 진단받은 환자는 경적소리를 내는 앰뷰런스에 실려 격리되고, 페스트에 걸린 환자는 적막 속에 고통스런 신음을 내며 죽어간다. 거리는 다시 적막 속에 이따금씩의 차량 소음과 기계 소음이 간간이 들릴 뿐이다. 그나마 전염병이 나타나기 전에는 항상 들리던 소음이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전염병은 다양한 모습으로 지각되며 실체를 드러낸다.



     도시가 봉쇄되자 도시에 남은 시민들의 또한 급변한다. 점은 이미 현재 진행중인 전염병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70여년 전에 작가가 묘사한 삶의 변화 또한 지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같다.  치료약이 부족해지고, 병실에는 환자가 넘쳐난다. 가게들이 문을 닫고 경제활동이 중단되어 실업자와 다름없는 휴직자들이 넘쳐나게 된다. 이들은 영화나 오페라를 보며 시간을 보내려 하지만 필름 유통이 중단되고, 레퍼토리에는 변화가 없다. 물자가 공급이 차단되니 차량 운행이 금지되고, 행정 당국에서 배급해주는 음식에 적응해야 했다. 우편물 반출이 안되니 통신수단마저 전보로 제한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물질적인 제약뿐만 아니라 가차없고 기약없는 이별을 겪은 모든 이들에게 심리적 고통으로 다가온다. 감옥 밖의 수감자와 다름 없는 생활을 감내하며 고독과 회한, 체념의 정서를 경험한다. 코로나 전염병을 겪으며 몸과 마음에 가해진 구속을 통해 경험한 것을 통해 소설의 상황이 실감나게 이해되었다. 사람과의 거리두리를 통해 환자와 보호자와의 강제 격리와 극단적인 고립과정을 통해 동정심에 피곤을 느끼고, 윤리 의식마져 변화가 찾아오는 이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온전한 인간으로서 각자 자신의 삶에 집중하여 스스로를 돌보고 타인에게 공감하는 삶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전염병이 오래 정체되면 결국 사람들은 인간되기의 과정에 스스로 탈진해버리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봉쇄된 지역의 사람들에게 삶은 이제 단단한 지면에 발을 딛지 못하고 부유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할 있는 인간은 스스로를 방치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이 경험하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조건에서도 자신과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화자인 의사 베르나르 리외 뿐만 아니라 조제프 그랑, 타루와 같은 인물들은 전염병이 한창 진행될 때에도 의료봉사대에 자원하여 활동했다. 뒤에서 타루에 대해 좀더 언급할 것이지만, 조제프 그랑 같은 인물은 작품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아보이지만 실은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랑은 50대의 시청서기로, 노란 콧수염의 키가 크고 구부정한, 다소 소심한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출세를 하기 위한 커다란 포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전염병이 돌자 자신의 외에 의료보건대의 서기를 맡겠다고 인물이었다. 이런 그랑이 소설 속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한다고 이유는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작은 역할이나마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었다. 혈청을 개발하느라 힘을 쏟는 늙은 의사 카스텔처럼 그랑은 자신이 있는 일에 조용히 일상의 노력을 기울이는 존재다. 그랑(Grand) 이름과 대조적으로 보이는 사람의 작은 참여, 움직임을 통해 하나의 일상이 지닌 가치와 무게를 가만히 느낄 있었다.



     이런 국면에서 우리는 무엇을 달리 있을까. 아마도 절망적이고 단조로워 보이는 이런 노력들이 우리의 필연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병에 걸리지 않게 기도하거나 살아 남아 여생을 살던가, 그렇지 않으면 병에 굴복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가 있을까?  그랑이 자신의 역할을 흔들림없이 꾸준하게 완수해나가는 것처럼 주요 화자인 리외 역시 이런  행동에 대해 확고하고 구체적인 윤리 의식을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 리외는 무신론자로서 파늘루 신부와 달리 신의 섭리를 믿지 않는다. 대신 패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뿐이라고 믿는다. 도시가 봉쇄되기 직전 아픈 아내를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요양소로 보낸 리외는 의도치 않은 이별을 겪었다. 연락도 제대로 취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이 있는 일을 흔들림없이 해내고자 하는 인물이다. 물론 리외는 타루에게 자신이 가난한 노동자 가족 출신으로서 처음에 의사가 것은 사회적 지위가 보장된 직업이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치명적인 전염병의 가운데에서 리외는 도의로 페스트와 싸우며 헌신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랑과 리외는 페스트의 도래 이후 구체적인 가치관 행동 기준에 따르는 인물이다.  



추상성으로 기억되는 페스트(우리 안의 페스트)


     소설을 읽으면서 줄곧 문자 그대로의 질병인 페스트가 가져온 삶의 변화와 국면들을 실감나게 따라갈 있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페스트가 새로운 의미를 지니며 의미가 확장되는 순간이 나온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롭게 다다온 인물이 바로 타루이다. 타루는 결론적으로 말해 10 후반에 가출하여 오랑에 정착한 인물이다. 검사였던 아버지를 유복한 가정의 아들이었다. 타루는 어느 아버지가 사형선고를 내린 공판을 보기 까지는 부자간에 사이도 좋았을 것이다. 타루는 아버지가 사형선고를 내려 사람의 목숨을 결정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타루는 자신의 개인사를 리외에게 들려주는데, 자신은 오랑에 와서 전염병을 만나기 전에 이미 페스트 고통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곧바로 알듯말듯한 말을 리외에게 덧붙인다. “나는 그때 적어도 경우 세월 동안 끊임없이 페스트에 걸려 있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333) 실제로 페스트에 걸렸다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타루는 가지 실마리를 전해준다. 타루는 내가 간접적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 숙명적으로 이런 죽음을 유도한 행위나 원칙을 ()이라고 여김으로써 그것을 야기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333). 그러니까 타루가 자신의 개인사를 꺼내며 언급한 페스트 전염병으로서의 페스트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선적으로 파악되는 의미는 사형제도 인권과 관련 있다는 단서였다. 타루는 사형선고를 역겨운 도살 행위라고까지 표현하며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행위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타루가 우리 모두는 페스트 속에 있다’, ‘내가 명명백백히 알고 있는 것은, 각자가 그것을, 페스트를 자기 속에 지니고 있다는 이라고 말했을 (336), 그가 사용한 페스트 의미를 좀더 분명하게 이해할 있었다. ‘붉은 법복을 입은 그들 최상급의 페스트 환자들이라고 표현한 것에서도 연관성을 뚜렷하게 확인할 있다. 다시 말해 타루가 언급한 페스트 사형선고와 같이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인간 사회와 문명의 야만, 제도의 폭력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인간이 저지르는 이런 잔악한 행위와 제도에 무감각한 , 이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 말로 타루가 말한 페스트 걸린 징후라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경험으로 다가오는 실체적인 질병으로서의 페스트는 타루의 경험과 기억을 거쳐 추상적인 페스트 거듭나게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질병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타루가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특히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타루는 자신이 속한 사회가 만들어 놓은 관습과 억압의 폭력에 무의식적으로 동조함으로써 자신도 일종의 가해자임을 느끼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연대의식과 죄책감을 느끼는 예민한 양심의 소유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지성인이기도 했다. 인간이 인간임을 주정하는 행위,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행동과 관습을 돌아보게 하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타루의 페스트 비가시적인 대상으로 다가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잠식하는 야만의 상태로도, 혹은 우리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악마를 지칭하는 추상적 개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 읽다보면 이렇게 이질적인 개념의 페스트 등장한다. 하나는 구체적인 전염병으로서의 페스트라면, 다른 하나는 상징적인 하나의 추상적 개념으로서 페스트. 타루가 꺼내는 자신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추상은 분명히 사형제도로 대변되는 인권문제와 우선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있다. 앞서 언급하긴 했지만, 카뮈가 소설을 시기는 2 세계대전과 겹친다. 전쟁터에서 사망한 군인들을 제외하고도 나치 독일에 의해서만 600 이상의 유대인이 사망했으며, 연합군의 폭격에 의해 독일인이 60 명이 사망한 시기다. 전쟁의 본성 인권이 유린당하는 야만의 시기였음을 잊지 말아야 것이다.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마음대로 조종할 있다는 개념 자체에 대해 수많은 지식인들이 좌절과 회의감에 빠지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인간으로서 싸워야하는 대상은 병원균과 바이러스 뿐만 아니라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으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각은 무엇보다 시대를 견디어온 당대 지식인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결국 카뮈에게 페스트 인간성을 파괴하는 인간의 무지와 몽매를 상징하는 단어로 자리를 차지했을 같다. 그러므로  페스트에는 때로는 구체적이며 때로는 추상적인 층위를 갖는 페스트 의미로 텍스트를 읽어나갈 있겠다.    



     그밖에 기자인 랑베르와 예수회 신부인 파늘루 신부도 흥미로운 인물인데, 이들은 소설 속의 사건들을 겪으며 성격에 변화를 가져오는 인물이다. 사람은 각각 사랑 신앙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강력하게 따르다가 보건위생대의 활동에 참여 하면서 페스트가 가져온 인간 조건의 구체성에 주목하게 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파리에 두고 연인을 만나기 위해 도시 탈출 방도를 찾던 랑베르는 리외의 개인적인 상황을 알게되면서 탈출 계획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다음날 새벽에 리외에게 전화를 걸어 자원봉사단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전한다. 리외 역시 부인을 멀리 떨어진 요양소에 지내며 가차없는 이별을 겪는 가운데,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랑베르는 리외의 사정을 듣는 순간 비로소 문제(페스트) 자신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자신을 이방인으로 여기며 이곳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겼던 의식은 이제 자신이 이곳 사람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사건은 랑베르가 페스트를 우리 모두와 관계된 것으로 새롭게 인식하는 순간이다. 파늘루 신부 역시 예심 판사 오통의 아들이 페스트에 걸려 죽어가는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보는 경험을 통해 신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질병의 견해에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소설 속에서 랑베르와 파늘루 신부는 그랑이나 리외처럼 꾸준한 성격을 지니지 않았다. 대신 어느 사건을 통해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고 질병에 대한 추상적 견해에서 구체적인 견해를 지니도록 변화를 겪는 인물들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질병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묘사한 대목에 특히 주목했다. 무엇보다 올해 코로나19 겪으며 작가가 기술해 놓은 전염병에 대한 통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질병에 대응하는 여러 인간들의 모습이나 인간의 무지에서 비롯된 악덕에 저항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도 카뮈는 질문에 대한 답을 리외의 입으로 작품 속에 마련해둔 듯하다. “나는 성자들보다는 패배자들과 연대감을 느껴요. (…) 관심사는 명의 인간으로 있는 겁니다.”(339) 그러므로 페스트 걸리지 않으려고 깨어있는 말고도 사람의 인간으로 존재한다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돌아보게 된다. 사람의 자리를 지킨다는 , 사람의 몫을 해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21세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하다. 나는 글의 처음에 인용한 문장에 실마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페스트가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자각하는 것말이다. 질병이든 무지에 의한 악이든 모두 인간이 쉽게 고립되도록 만든다. 이러한 조건이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말이다. 이에 저항하는 길은 상대방의 문제가 나의 문제임을 깨달을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인 것이다. 타인에 대한 억압과 폭력에 동조하지 않는 것에서 나아가 무관심에 저항하는 일이 아닐까. 추상과 구상의 페스트로부터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서 나의 손을 타인에게 내미는 일은 인간이란 종의 존엄을 담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페스트가 리외에게는 끝없는 패배 의미하더라도 이에 대항하여 투쟁을 중단하지 말아야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작가는 나에게 이것이 필연임을 호소하고 있다.




"죽은 사람이란 사람들이 그가 죽는 것을 목격하는 경우에만 무게를 갖는 법이다."


- 10면

"그 순간부터 페스트는 우리 모두의 문제였다고 말할 수 있다."


- 91면

"페스트는 마치 추상처럼 단조로웠다."


- 122면

‘당신에게 이 페스트가 어떤 존재인가?‘


‘그건 끝없는 패배예요.‘


: 타루가 리외에게 묻는 말에 리외가 한 대답

- 172면

"세계 속의 악은 거의 항상 무지에서 비롯되고, 또 무식한 선의는 악의만큼이나 많은 피해를 입힐 수가 있다."

"가장 절망적인 악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고서 누군가를 죽일 권리를 자신에게 인정하는 무지의 악덕이다."


- 177면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도의뿐입니다."


"전체적으로 그게 뭔지 나는 모릅니다. 하지만 내 경우, 그것은 내 본분을 다하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 리외의 말

- 219면

"간단히 말하자면, 리외, 나는 이 도시와 전염병을 만나기 훨씬 전에 이미 페스트로 고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타루의 말

- 325면

"나는 그때 적어도 내 경우 긴 세월 동안 끊임없이 페스트에 걸려 있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 내가 간접적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 숙명적으로 이런 죽음을 유도한 행위나 원칙을 선이라고 여김으로써 그것을 야기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타루의 말

- 333면

"내가 명명백백히 알고 있는 것은, 각자가 그것을, 페스트를 자기 속에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래요, 세상에 그 누구도 그 해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 타루의 말

- 336면

"나는 성자들보다는 패배자들과 더 연대감을 느껴요. (...) 내 관심사는 한 명의 인간으로 있는 겁니다."


: 리외의 말

- 339면

"페스트 간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수십 년간 가구나 옷 속에서 잠들어 있을 수 있어서, 방, 지하실, 짐가방, 손수건, 폐지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깨워 그것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에서 죽으라고 보낼 날이 분명 오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 마지막 문장

- 410면




YES마니아 : 로얄 n****o 2020.10.29.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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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너무 직역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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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외국 작가의 책을 살 때 유심히 보는 부분이 번역인데요... 이 책은 초판의 맛을 살리려고 한건지... 번역이 너무 직역이에요. 혹시 몰라서 항상 초판 발행일도 따지고 사는데 이번엔 그런 면에서 실패네요. 부정문에 또 부정문이면 그냥 긍정문으로 매끄럽게 번역되는걸 저는 선호해요. 그리고 어순도 너무 그대로라 한 문장이 제대로 눈에 들어 오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양장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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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외국 작가의 책을 살 때 유심히 보는 부분이 번역인데요... 이 책은 초판의 맛을 살리려고 한건지... 번역이 너무 직역이에요. 혹시 몰라서 항상 초판 발행일도 따지고 사는데 이번엔 그런 면에서 실패네요. 부정문에 또 부정문이면 그냥 긍정문으로 매끄럽게 번역되는걸 저는 선호해요. 그리고 어순도 너무 그대로라 한 문장이 제대로 눈에 들어 오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양장인데도 페이지 표시할 수 있는 책갈피 끈이 없어서 아쉬웠어요.

디자인은 최고에요 ^^ ????
요즘 초판 디자인된 책들 하나하나 수집하는 재미가 솔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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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페스트 : 이타심을 일깨워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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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를 겪지 않고 <페스트>를 읽었을 때는 온전히 소설 속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2020년 2월 한국에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 발생되고, 3월 세계보건기구인 WHO에서 팬데믹을 선언한 이후 우리는 소설 속의 삶을 고스란히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는 페스트만큼 치명적인 전염병은 아니지만 반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미래가 없는 인내와 좌절된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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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를 겪지 않고 <페스트>를 읽었을 때는 온전히 소설 속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2020년 2월 한국에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 발생되고, 3월 세계보건기구인 WHO에서 팬데믹을 선언한 이후 우리는 소설 속의 삶을 고스란히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는 페스트만큼 치명적인 전염병은 아니지만 반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미래가 없는 인내와 좌절된 기다림'의 고통을 받고 있다.


그저 소설 속 허구의 이야기,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현실로 실체화한 것을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은 소설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감정들을 더 잘 이해하고 이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2차 세계대전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직접 겪은 카뮈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표현력에 감탄하게 된다.


<페스트> 중 이런 내용이 나온다. '코타르'라는 인물이 페스트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이야기인데 '코타르'는 페스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겪는 불안과 혼란의 징조들을 너그럽고 포용적으로 만족스럽게 바라본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지속적인 공포 속에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포를 오롯이 홀로 짊어졌을 때보다 페스트가 창궐한 이 상황이 훨씬 견디기 수월하다고 생각했다.


코로나가 유행한 이후 재난 영화를 찾아보는 사람들이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와 증상이 비슷한 영화 <감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현실에서 이미 재난을 겪고 있으면서 재난 영화를 찾아보는 심리는 무엇인지 확실하게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영화 속에서 어떠한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것이다. 이미 재난을 겪어본 사람으로써 영화 속 재난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을 것이고, 그러한 재난들을 이해하기 위한 욕구 또한 존재할 것이다.



페스트





'20세기의 양심'이라 불리는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코로나19'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꼭 읽어야할 책이라고 생각된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도시가 폐쇄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심리 변화를 놀랍도록 잘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을 보며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에 맞서 싸우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카뮈가 '20세기의 양심'이라고 불리게 된 데에는 소설 속 인물 '랑베르'의 역할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페스트>는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수상 이유는 우리 시대 인간 양심의 문제를 명확하게 조명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랑베르'는 오랑에 페스트가 창궐할 당시 취재차 방문한 외지인이었다. '랑베르'는 도시가 폐쇄되어 사랑하는 연인과 만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도시를 탈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마침내 도시를 탈출할 수 있는 상황이 오지만 '랑베르'는 페스트가 창궐하는 오랑에 남기로 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인간의 양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랑베르'가 인간의 양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기 보다는 사랑을, 나아가 이타심을 실천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랑베르'는 영웅주의보다는 사랑을 택하는 사람이다.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아요. 그건 쉬운 일이면서, 아주 살인적인 일이라는 걸 배웠거든요. 저는 사랑을 위해 살고 죽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을 관념이라 정의한다.


"인간은 관념입니다. 사랑에 등을 돌리는 순간, 아주 어설프고 초라한 관념이 되어 버리죠."


다시 말해, '랑베르'는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인 것이다. 사랑은 공자가 중요하게 여겼던 '인仁'의 사상과 맞닿아 있는 개념이다. 공자는 특히 타인에 대한 사랑 정신을 강조했는데 이것이 바로 '이타심'이다. '랑베르'가 오랑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이타심에서 비롯된다.


랑베르는 아무리 진지하게 생각해봐도 떠나는 게 맞지만, 이런 식으로 떠난다면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서도 거북할 것 같다고 했다. 리외가 정색하며 몸을 곧추세우고 앉더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행복을 우선시하는 것은 절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고 말했다. 랑베르가 대답했다.


"압니다. 하지만 혼자만 행복하다는 게 부끄러울 겁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운명의 굴레에 삶의 주도권을 넘기지 않고 그들 스스로가 삶의 주체가 되어 운명과 맞서 싸운다. 나 하나쯤이야,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개인주의·이기주의적인 생각이 아닌 페스트는 나와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닥칠 수 있는 것이므로 함께 맞서 싸워야한다는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다. 운명에 잠식되지 않고 재앙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단순하다. 그저 자신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 그것만이 이 기나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생활을 방치하거나 방역수칙을 준수하지 않는 나태함과 안일함을 조심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남을 위하는 마음을 우선해야 하는 것이다. '랑베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시작하고 시작하는 게 정확히 페스트의 속성' 이라고 말한 것처럼 코로나 또한 잠잠해지는 듯 하다가도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감염 의심 속에서 불안을 겪던 사람들도 길어지는 코로나 사태 속에 점차적으로 모든 것에 무관심해지고 무감정해지며 둔감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요, 리외 씨, 페스트 환자로 있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만, 페스트 환자로 있지 않으려는 것은 더 피곤한 일입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날 모든 사람이 심하든 약하든 조금씩은 페스트에 걸려 있으니까요."


'타루'의 말처럼 우리도 모두 조금씩은 코로나에 걸려 있다. '진짜' 코로나에 걸리지 않더라도 감염 의심이라는 불안에 의해 코로나가 우리의 정신을 좀먹고 있다. 하지만 반드시 어떤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에 휩쓸리지 않고 지금 여기, 현재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야 한다. 운명의 주체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v****3 2020.10.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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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초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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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X년 프랑스 오랑. 신과 인간을 시험하는 비일상적인 일련의 사건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바닷가 마을에서 시작된다. 4월 16일 아침, 마을 의사 베르나르 리외가 병원 건물 계단 복도에서 발견한 죽은 쥐 한 마리는 마을을 죽음의 공포와 불신, 도피적인 향락으로 몰아넣는다.   어느 봄, 이유도 없이 (또는 신만이 아실 이유로) 페스트가 오랑 시를 덮친다. 페스트는 처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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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X년 프랑스 오랑. 신과 인간을 시험하는 비일상적인 일련의 사건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바닷가 마을에서 시작된다. 4월 16일 아침, 마을 의사 베르나르 리외가 병원 건물 계단 복도에서 발견한 죽은 쥐 한 마리는 마을을 죽음의 공포와 불신, 도피적인 향락으로 몰아넣는다.

  어느 봄, 이유도 없이 (또는 신만이 아실 이유로) 페스트가 오랑 시를 덮친다. 페스트는 처음에는 쥐떼를 죽이고,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가 사람들을 무차별로 학살한다.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절망하는 다수의 시민들을 배경으로, 의사 리외와 떠돌이 타루, 공무원 그랑, 기자 랑베르, 신부 파늘루 등 제각각 다른 목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페스트와 싸운다.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죽음과 패배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긴 밤이 지나고 새벽이 찾아올까? 새벽이 찾아왔을 때, 그들의 소망은 이루어져 있을까?

e*****a 2021.06.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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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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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는 학창시절 필독서에 늘 기재되어있었지만 제목도 어려워보이고 평소 즐겨보던 책들에 비해 두꺼운 책이어서 다른 책들 뒤로 늘 밀려 읽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던 중 페스트도 재미있는 책이란걸 tvn에서 2019.09.24. ~ 2020.04.27까지 방영한 <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를 통해 알게 되었고, 최근에서야 완독을 하게 되었습니다.페스트의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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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는 학창시절 필독서에 늘 기재되어있었지만 제목도 어려워보이고 평소 즐겨보던 책들에 비해 두꺼운 책이어서 다른 책들 뒤로 늘 밀려 읽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던 중 페스트도 재미있는 책이란걸 tvn에서 2019.09.24. ~ 2020.04.27까지 방영한 <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를 통해 알게 되었고, 최근에서야 완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페스트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모두가 익히 잘 알고 있겠지만 간단하게 요약을 하자면 평화로운 오랑시에서 쥐들이 피를 토하고 죽어가는 사건을 시작으로 원인모를 질병으로 사람들까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 질병이 전염성이 있는 것인지 어떤 질병인지 명확하지 않아 정부와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 질병이 곧 사그라들 것이라는 낙관적인 예측 속에서 소극적으로 대처를 합니다.그러나 새로운 질병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사태는 점점 심각해져 도시를 폐쇄하기에 이릅니다. 


이 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장 타루'는 '리외'와 함께 보건위생대를 조직하였고, '랑베르'라는 기자는 외지인이기에 오랑시를 위해 내 행복이 희생되는 것이 못마땅하다고 생각하였으나 오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생각이 바뀌게 되고, "압니다. 하지만 혼자만 행복하다는 게 부끄러울 겁니다."라고 말하며 오랑에 남게 됩니다. 


'파늘루 신부'는 "오늘 페스트가 여러분에게 닥친 것은, 성찰할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정의로운 이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나 악인들은 마땅히 두려움에 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페스트는 신의 도리깨고 세계는 그의 타작마당이니, 신께서 그의 수확인 인간을 타작해 알곡과 쭉정이를 엄정하게 구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략..." 와 같은 설교를 합니다. 그러나 오통 판사의 어린 아들이 페스트에 걸려 단말마의 고통 속에서 죽어 가는 장면을 목격한 후, 파늘루 신부의 태도가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심을 완전히 잃지 않았고 후일 자신이 페스트에 걸렸을 때, 그는 의사의 치료를 거부하고 오로지 십자가를 손에 꼭 쥔 채 죽어갑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인물은 아니지만 보건위생대에 속하여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시청 서기 '그랑'이라는 사람과 그랑의 이웃 사촌인 '코타르' 그랑덕분에 자살은 미수에 그치게 되었으나 경찰을 두려워하며 주위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을 하는 모습이 수상하게 여겨졌었는데 역시나 페스트가 아니었으면 체포되었을 사람이었다. 코타르는 페스트 덕분에 편안함을 얻었고 밀수로 큰 이익을 보게 됩니다. 


저마다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으나 뜻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만든 '보건위생대' 덕분에 페스트는 1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지난 후 물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페스트 균이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인간들에게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 쥐들을 흔들어 깨워 어느 행복한 도시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리외의 말과 함께 이야기는 끝이납니다.


사실 페스트는 2차세계대전 이후에 쓰여진 책으로 전쟁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전쟁으로 해석을 하지 않고 질병 그 자체로 볼 수도 있고, 나치즘, 전체주의와 같은 인간의 자유가 억압되고 미래가 어두운 상황, 부조리한 삶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현 상황에선 코로나19라는 질병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코로나19가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페스트가 주는 교훈을 벗삼아 우리 모두 코로나19를 현명하게 극복했으면 좋겠습니다.

s****4 2020.10.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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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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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부터구매욕구는 물론이거니와 섬짓한 느낌 마저 든다.특히나 요즘 코로나바이러스로 전세계가경험해보지 못한 대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보니 처음으로 책을 보는순간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하게 된 것 같다.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지금의 상황을미리 예상하고 적나라하게 적어내려 간 예언서 같기도 하다.이야기 내용과 주인공들을 지금의 관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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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부터

구매욕구는 물론이거니와 섬짓한 느낌 마저 든다.

특히나 요즘 코로나바이러스로 전세계가

경험해보지 못한 대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보니 

처음으로 책을 보는순간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하게 된 것 같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지금의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적나라하게 적어내려 간 예언서 같기도 하다.

이야기 내용과 주인공들을 지금의 관점으로 대입해보면

너무 많은 것이 일치하는 점 또한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다.


페스트가 처음 발생하는 시점부터

퍼져나가는 과정과 그로 인하여 야기된 끔찍스러운 결과..

하지만 그런 대혼란 속에서 그것을 이겨내려는 사람들의 연대와 투쟁

그러나 결론은 행복하지가 않다.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암시.. 그런데 그 암시가 소설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전세계로 다른 이름의 바이러스로

나타나는 끔찍한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더더욱 텍스트 글자에 자꾸만 눈이 가고 있다.

"사회적거리두기"라는 생전 처음들어보는 단어를 반복해서 듣고 있고

매일 같이 울리는 재난문자.. 이렇게 자주 울린적이 있었나 싶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걸 뉴스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보고 있는게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이 슬프고 무섭게 느껴진다. 

 

그동안 소중한지도 모르고 누려왔던 평범한 일상을 

어쩜 예전처럼 영원히 누리지 못할꺼라는 학자나 의사들의 말을 보면서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갈 수도 있겠단 생각이든다.


그래도 페스트에서 나온 내용처럼 

아무리 어려워도 서로서로 힙을 합쳐서 싸워나가다 보면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는 회복되리라고 믿고 싶다.


이 책은 평생 기억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꺼내보게 될 것은 물론이고

잊을래야 잊을수 없을 것이다.

정말로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으니 말이다.

h*******1 2020.04.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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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초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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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화두의 책이 되겠다. 이제 내 기억 속 세상은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의 세상으로 나뉠 것 같다. 작년에 가끔 찍은 모든 사진에는 마스크가 있고, 워낙 돌아다니기를 싫어했지만,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 있다 보니 이건 뭐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의 또 하나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다르게 다가온다. 며칠 전에 봤던 티비 프로그램과 연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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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화두의 책이 되겠다.

이제 내 기억 속 세상은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의 세상으로 나뉠 것 같다.

작년에 가끔 찍은 모든 사진에는 마스크가 있고,

워낙 돌아다니기를 싫어했지만,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 있다 보니 이건 뭐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의 또 하나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다르게 다가온다.

며칠 전에 봤던 티비 프로그램과 연결되어 생각하게도 된다.

페스트가 변화시킨 세상의 모습을 설명으로만 들어도 섬뜩하다.

의학이 지금보다 발전하지 못한 시절의 분위기를 상상하자니 더 끔찍하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고 감염병은 또 생길 수 있고,

그때마다 우리는 의학과 과학에 기대어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해안 도시 오랑. 숨어 있던 쥐들이 하나씩 죽어가고, 사람들은 처음에 이 상황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계속되는 쥐들의 떼죽음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되자 공포에 떤다. 이 현상은 페스트(흑사병)이 돈다는 의미였으니까 말이다.

자, 이제 사람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고 벗어날 것인가...

많은 사람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페스트를 대한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인간의 민낯을 보게 되기도 하고, 이 감염병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되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의 고군분투와 정부의 대처 방식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놀랍기도 하다. 도시의 폐쇄나 이 병의 많은 부분을 신의 섬김과 연결짓는 일이나...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n******i 2021.02.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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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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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이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구매했습니다.재미로 따지자면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방인]이나 [결혼 여름]보다는 솔직히 좀 지루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시대에 다시 읽는 페스트는 그 자체로 의미가 남달랐다고 할수 있습니다. 마음이 좀 더 무겁고 좀 더 진지한 자세로 독서에 임했다고나 할까요.코로나가 아직도 끝나지 않고 활개를 치고 있는 이 지루하고 당혹스러운 상황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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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이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구매했습니다.
재미로 따지자면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방인]이나 [결혼 여름]보다는 솔직히 좀 지루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시대에 다시 읽는 페스트는 그 자체로 의미가 남달랐다고 할수 있습니다. 마음이 좀 더 무겁고 좀 더 진지한 자세로 독서에 임했다고나 할까요.
코로나가 아직도 끝나지 않고 활개를 치고 있는 이 지루하고 당혹스러운 상황 속에서 단편적이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두고두고 자주 펼쳐보면서 그 의미를 곱씹어보고 싶은 그런 책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n 2021.01.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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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무거운 이야기일 것 같아서 조금 망설였는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단순히 전염병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버텨내는 과정이 참 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예전 작품인데도 지금 읽어도 낯설지 않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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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무거운 이야기일 것 같아서 조금 망설였는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단순히 전염병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버텨내는 과정이 참 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예전 작품인데도 지금 읽어도 낯설지 않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문장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천천히 읽다 보니 카뮈가 말하고 싶은 부분이 조금씩 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읽고 나서도 여러 생각이 오래 남는 책이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v*******n 2026.06.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