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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의 공기는 비슷하다. 아니 나에게 익숙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과거의 어떤 사소한 사건으로 인한 관계의 파국,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그럭저럭 현재를 살고 있다는 내용들 하지만 여기에 실린 서이제의 미신(迷信)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소설이다. 신선해서 좋다. 계속 말을 찾아 헤매이는 꼭 맞는 말을 찾고야 말리라는 의지,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 읽어봐도 말의 무한한 변이. 그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박민정의 사촌 리사 : 내가 기억했던 리사와 리사의 삶은 같지 않다. 나의 인생과 그 밖에 다른 인생들이 평행을 이루면서 옆을 달리는 우리는 만나지 못할 수 밖에 없다.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 : 사소한 말 한마디, 인간의 이기심(나는 아직 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주인공은 나의 참지 못함 버젼인 것 같다) 때문에 일어난 관계의 파국을 그린다. 아주 조그마한 말로 튀어나오려고 하는 이기심은 절대 발설하지 말것, 영혼의 친구는 그리 자주 나타나지 않는 법이다.
서이제의 미신 : 말을 찾아 떠나는 네버엔딩 스토리.. 죽은 상태인지, 살아 있는 상태인지, 친구와 선생님, 내가 술래잡기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다.
정용준의 사라지는 것들 : 정용준은 여전히 이야기에 강하다. 그의 이야기는 극진한 슬픔을 말한다. 마음을 지극하게 아프게 하면서도 살아날 힘을 주는 정용준이 좋다. 그의 장편은 프롬토니오만 읽었는데 투명한 문체에 비해 이야기의 힘은 조금 부족했다. 짧은 단편은 이리 좋은데
벌써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데 올해 시리즈는 시작되지 않았다.
소설보다 : 봄, 여름이 어서 나오면 좋겠다. 문학 계간지를 읽지 않은 나이기에 새로운 소설을 기다리는 마음은 언제나 기대 가득이다.
개인적 감정에 대한 소설이나 쓴다는, 재미없는 이야기를 쓴다는 비난을 최일선에서 맞으면서 쓰고 또 썼을 우리의 소설가들에게 경의를, 과녁을 빗나간 화살을 쏘았을지라도 아낌없는 박수를, 어쩔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기에, 대답없는 메아리지만 쓰고 또 쓰는 그들에게 격려를..
말로 한없이 하지 말고 소설책을 사자. 책을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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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은 지가 오래 되었다.
내가 구입하는 책은 압도적으로 소설이 많은데, 서평단에 부지런히 응모하고 그 책을 우선하다 보니 정작 사놓은 책은 관심밖으로 밀려나 못 읽고 있는 책이 많다. '2018 봄- 여름' 은 작년 9월경에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마무리를 못하고 있었다.
김봉곤 한편은 진즉 읽었고, 조남주 한편 겨우 읽다가, 오늘에야 김혜진과 정지돈을 한번에 마무리했다. 짧은데도, 재밌는데도 불구하고 서평단 의무 이행이 먼저다 보니 내 책은 읽지 못하는 아이러니, '서평단의 역습'이다.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 은 역시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게이임을 자각하기 전 대학시절 좋아했던 여학생을 만나러 갔다 여전하게 뛰는 심장과 저릿한 감각에 슬퍼지지만 다시금 애인이 있는 현재로 돌아오기 위해 그 마음의 흔들림이 멈출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이야기다.
조남주의 '가출'은 갑자기 가출해버린 아버지를 찾기 위해 삼남매가 엄마집에 모이다 서로 요리하고 대화하면서 가족의 친밀감을 회복하는 이야기다. 결국 아버지를 찾지는 못하지만(딸이 아버지에게 준 카드사용 내역 문자 통보로 아버지의 안녕은 확인이 된다) 주말 가족모임은 정기적이 되고 그 만남을 통해 서로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다.
김혜진의 '다른 기억'은 대학 신문사 주간을 하던 여교수가 비리혐의로 물러나게 되자 그를 좋게만 기억하는 너와 그런 너를 이해할 수 없는 나에 대한 이야기다. 너는 그녀를 바라보고 나는 너를 바라보는 관계, 너와 나의 성별은 나오지 않지만 좋은 것을 좋은 대로 두는 사람을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지 않는 너를 결국은 단념해야 했던 나의 사랑이야기로 읽었다.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1969년 일본에서 열렸던 만국박람회에 참가한 한국인 태순과 일본인 양코의 이야기로 주인공이 누구인지, 3인칭인지, 1인칭 소설인 지 종잡을 수 없다. 사랑이야기를 굳이 쓸 필요가 있냐는, 소설은 현실을 그리는 게 아니라 곧 현실이라는, 너무 무섭기 때문에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의 소설이 오히려 미래에서 온 것만 같다. 이 <소설 보다> 시리즈는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을 묶은 단행본으로 각 계절의 리듬에 따라 젊은 작가들의 수작을 좀 더 빠르게 독자에게 선보이려는 단편소설집이다. 작품뒤에 작가와의 인터뷰를 실어 더 가깝게 작품에, 작가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이미 계절은 놓쳐버렸지만, 가을과 겨울을 잽싸게 읽고, 바야흐로 흐드러진 '봄'을 맞이해야겠다. 지나버린 시절이지만 소설은 완벽하게 그 때를 소환하여 펼쳐놓는다. 3,500원이라는 굉장히 괜찮은 가격으로 이 시절의 우리를 가장 빨리 반영한, 현재와 호흡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문학과 지성사에 감사하는 마음, 열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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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소설은 보통의 노력을 기울여서는 첫 문장조차 완성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말은 나를 기준으로 했을 때다. 직전에 읽었던 '오늘부터, 詩作'에서 자기만의 솔직한 글을 쓰면 된다고 했는데 '직접 보고 만져보고 느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나는 관찰하고 만져보는 일에 영 차분해지지가 않는다. 가만히 오래 무엇을 못하겠다. 그리고 무엇에 대해 쓰고 싶은가? 라는 물음에 골똘하게 생각해보지 않아 답할 만한 것이 없다. 뭐든 구체적으로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동물에 대해? 가족에 대해? 기타 등등
일단 내가 쓴 글 중 남에게 공개하는 것은 블로그 글이 전부다. 간헐적으로 쓰는 일기는 반성과 후회뿐이라 공개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목표이긴 한데 별도의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닌 애매한 상태다. 하지만 블로그 활동이 일단 쓰는 거라 생각하면 맘이 편해진다. 요즘 나의 최고의 행운은 예스24 파워블로그 활동이다.
갑자기 봄부터 단정해진 디자인이 아직도 적응은 안되지만 이번 여름편은 내 맘을 설레이게 하거나 흥분시키는 지점이 약간은 부족하다. 안개가 낀 것처럼 모호한 감정이 나에게 다다르지 못한 것 같다. 소설을 많이 읽었더라면 도달했을 지도 모르는데 뭐든 새롭고 신선한 것이 좋다지만 낯설어져버리면 익숙해지는데 또 시간이 걸린다.
이번 여름편은 3편인데, 정영수는 저번부터 계속 읽어왔고 우다영과 이민진의 소설은 처음 접한다. 이 중 가장 좋았던 것은 이민진의 RE: 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과거의 감정을 다시 소환하는데 리듬감이랄까 그런 것이 느껴졌다.
우다영의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은 나이든 여인이 유람선 위에서 눈을 뜨면서 시작하는데 그녀의 옆에서 과거 연인이 될뻔한 요리사가 알은체 한다. 다시 만나기로 한 기차역에서 샌드위치를 선택한 요리사와 도넛을 선택한 그녀의 운명은 엇갈리고 요리사는 배를 타고 육지에 발을 붙이지 않는다. 그녀를 따라 유람선에서 육지로 발을 딛지만 멀미로 비틀거린다. 여러개의 분절된 이야기들을 거쳐 돌아가는 곳은 어린 시절의 소녀이다. 이미 그것들은 거쳐왔지만 소녀는 아직 모르는 채로 살아갈 준비를 하며 오래된 마법처럼 잠에서 깨어난다. 이 소설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문장은 "어떤 이야기에도 끝은 없어요. 분명히 다른 곳으로 이어진 길이 있죠" 다.
이민진의 RE: 는 유완과, 해니와, 영우의 이야기다. 성별을 특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모두 여성으로 보인다. 글쓰기 교실에서 만난 유완과 해니는 낯설은 곳에서 자연스레 어울리고 해니와 함께 살고 있는 선배인 영우와도 자주 만나게 된다. 자기를 기준으로 말을 하고 자기 입장만 반복하는 해니에게 질려버린 유완은 그런 해니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경청하는 영우를 보면서 해니와 영우의 관계를 오해한다. 유완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해니에게 영우와 관계를 단정하듯이 묻고 그들의 관계는 깨진다. 암시적인 풍경에 대한 직접적인 추궁,, 해니와 영우의 진짜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4년이 지난 후 해니의 메일로 영우가 유완에게 편지를 보내온다. "풍경에는 실제 장소에 대한 바꿀 수 없는 묘사가 있다. 그러한 모습들이 명시적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또한 암시적으로 보이는 풍경이 있다. 그 암시적인 풍경에 대한 감각이 본질적인 것이다."
정영수의 '내일의 연인들' 은 지원이라는 연인이 생긴 주인공이 이혼을 준비하는 선애 선배의 부탁으로 빈 집에 들어가 살면서 정성을 들여 고른 듯한 소파, 장식물 등 살림살이를 연인과 함께 누리면서 왜 선애 선배가 이혼했을까를 궁금해한다. 지원과 함께 온전한 첫 밤을 그 집에서 보내게 된 그는 지원이 혼잣말처럼 하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어쩌다 헤어졌을까? 를 듣고 갑자기 낯선 감정에 휩싸인다. 그들의 사랑도 언젠가는 각자에게서 멀리 떠나버릴 것이고 헤어짐은 어쩔 수 없을 것이는 예감 "새삼스레 낯선 곳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창가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점점 아득해졌고, 나는 문득 끝나지 않을 시간에 갇혀서 텅 빈 공간을 떠다니고 있는 사람이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 무수히 많은 행복의 시간과 외로운 시간의 징후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그들의 유령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짧은 책이라서 노트를 준비하지 않고 인상적인 문장을 기억하려 애썼다. 하지만 나의 기억력은 처참했다. 첫편의 한 줄밖에 없었다. 음 정말로 밑줄을 긋거나 적자....긋자생존, 적자생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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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소설보다 계절 소설집'이 나오면 사보는 데, 이번에는 페미니즘(인간성)이 강조된 소설과, 이야기만 소설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서사가 명확하지 않은 소설 두편이다.
강화길은 익히 알다시피 페미니즘을 강력히 지지하는 소설, 여성이 피해자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발하는 소설을 쓰는데 , 이번 '음복'이라는 소설 또한 가족안에서 피해를 보는 여성에 대한 소설이다. 사랑으로 포장된 가족속에서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증오하지만 관계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 여자는 증오를 꾹 누르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귀한 사람으로 자라온 아들은 그런 관계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말간 얼굴로 살아간다.
가족간의 사랑이라는 게 한꺼풀 벗기면 한 없이 차별적인 사랑일 수 밖에 없다.
얼굴도 모르는 시조부의 제사에 참석한 세나는 세나와 남편 정우에 유달리 적대전인 시 고모를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아들이라는 특권적 지위에 익숙해져버렸기에 눈치가 하나도 없는 정우는 그 적대감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시고모는 정우 또래의 정원이라는 딸이 있는데 있는데 재수해서 약대를 갔고 지금은 좋은 직장에 잘 다니면서 살고 있다.
시고모가 남편을 왜 증오하는 지가 치매에 걸린 시조모의 무심코 터진 말에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데 "야, 너 정원이 재수 시키지 마라. 주제를 알아야지. 지가 무슨 약대를 간다고"
천희란과 허희정의 소설 형식은 참 낯설다. 천희란의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는 현재의 내가 과거의 사랑을 말리고 허희정의 '실패한 여름휴가'는 여름휴가를 시작부터 끝까지 묘사하면서 그 안에서의 심리를 포착하도록 유도한다.
이야기가 아닌 소설들은 아직 나에게 많이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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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가을 2018'은 문학과 지성사에서 매 계절 젊은 소설가들의 현재를 모아놓은 책인데, 값이 싸고 작가와의 인터뷰를 후기로 수록해서 소설에 대한 이해도와 감응력을 높여준다. 지난 봄.여름편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기획 적극 환영한다.
이번편은 박상영과 정영수와 최은영의 소설을 선정했는데, 작중 화자인 '나 또는 당신(최은영의 몫에서 내가 말을 하지만 당신으로 표현한다)' 은 문단에 데뷔한 작가거나 기자로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들이다. 박상영과 정영수의 작품은 연인은 아니지만 신뢰하고 사랑했던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 자기의 사랑을 다시 발견하고 최은영의 몫은 선배와 친구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관계의 엇갈림을 추억한다.
'박상영 : 재희' 는 김봉곤을 떠올리게 한다. 동성애자인 내(영)가 소울메이트였던 재희의 결혼소식을 듣고 재희와 함께 했던 옛 추억을 되새기는 내용이다. 이태원 밤거리에서 남자와 키스를 하고 있던 나는 같은 과에 다니는 재희와 마주치게 되면서 비밀을 공유하는데 재희와 나는 시덥잖은 남자들과 관계하면서 날마다를 소비하고 결국은 한 집에서 살게 된다. 나는 한번 차버렸던 K와 연인이 되고 재희 또한 반듯한 남자와 연인이 된다.
함께 했던 방탕하고 찬란했던 날을 뒤로 하고 연인과의 결혼이라는 편안함과 안정감의 세계로 진입하는 재희를 보며, K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지만 이미 K는 이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김봉곤을 읽었기에 박상영의 글은 뭔가 새로움이 덜하다. 소설도 유행인 건가. 박상영이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던데 그 소설부터 읽어보고 겨울로 진입해야겠다. '정영수 : 우리들' 은 연인인 정은과 현수가 자기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하면서 작가인 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 후에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글을 읽으면서 문체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보니 대화체가 아닌 설명체여서 그렇다고 한다. 쌍따옴표가 드문 희귀한 소설, 결국 정은과 현수가 헤어지면서 그들이 함께 했던 공동체적 관계는 깨져버리고 나는 관계의 비영속성과 오래 사귀었던 연경에 대해 생각한다.
'최은영 : 몫' 은 대학교 신입생인 내가 교지 편집국 선배 정윤과 동기 희영(자기의 의견을 정리하여 말하는 것도 쓰는 것도 탁월한 친구)과의 관계를 세밀하게 추억한다. 공부를 더 했어야 했던 선배 정윤은 남편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가장 글을 잘 썼던 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야 했던 희영은 기지촌 활동가의 삶으로 투신하고 가장 글 쓰기에 소질이 없었던 내가 기자가 되어버린 아이러니..
뭔가 더 새로운 소설을 바랬었는데 이번 가을편은 너무나 익숙하다. 하지만 익숙하기에 편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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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을 이끌어갈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찾아 읽으려 한다. 그 일환으로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꾸준히 읽어왔고, 작년부터 출간된 문학과지성사의 계절별 '소설 보다' 시리즈를 읽게 되었다. 이왕이면 장편이 좋지만 새로운 작가들이 꾸준히 발표하는 단편 읽는 재미가 크다. 그리고 최근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소설을 쓴 장류진 작가의 이름이 보여 더 반가웠다. 장류진 작가가 쓴 작품을 몇 편 읽지 않았지만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일의 열정과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수록된 작품 「펀펀 페스티벌」도 다르지 않았다. 직장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주 자세하게 표현해 읽는 재미가 컸다. 「펀펀 페스티벌」은 연말 송년회를 앞두고 5년 전 세명그룹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는 소설이다. 기업은 다재다능한 인재를 뽑기 위해 심층 면접을 하기도 한다. 1차 서류전형과 2차 인적성 검사를 마치고 3차는 2박3일간의 합숙 면접을 마지막 면접이었다. 노래를 좀 했던 유지원은 밴드팀에 들어 보컬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거기엔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이찬휘이라는 가수가 있었다. 외모가 출중하여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도 눈여겨 보았던 이찬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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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는 여러모로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TV 속에 나오는 배우나 아이돌 가수들도 일단 잘생기면 한몫을 하고 들어가는 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게 마련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회사에서 합숙 면접을 하는 이유는 여러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이라든가 제한된 환경에서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밴드팀에서 노래를 꼭 잘하는게 중요한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공연 직전, 마치 딴지를 거는 것처럼 노래를 지적한 이찬휘 때문에 지원은 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송년회 날 영어 가사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면서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이찬휘를 바라보는 유지원의 냉소가 인상적이었다.
5.18을 다루는 내용은 언제나 아프다. 실제로 겪지 않았지만 수많은 매체에서 나오는 내용으로 인해 아직도 고통속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름도 생소한 한정현 작가의 「오늘의 일기예보」라는 소설이다. 내용은 로맨스 소설의 제목처럼 달달하면서 내용은 그러지 아니하였다. 고모와 오스칼이라 불렀던 제인과 그리고 복수와 나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던 고모는 소위 학생운동을 하다가 경찰관들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른다. 보나를 데리고 한강변으로 가 강 속으로 걸어들어갔던 고모를 아빠는 그런 일을 당하고 어떻게 한국에서 사느냐며 말한다. 아빠는 고모를 여동생이라 보지 않고 그런 일을 당한 여자 쯤으로 치부했다. 보나는 옆집에 사는 오스칼을 닮은 제인을 좋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제인이 트렌스 젠더였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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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처음 알았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언제나 천진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말하지 못할 사연들이 있어도 나는 그 시절 어떤 시간들에 대해선 여전히 귀여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저런 말 못 할 기억이 이젠느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살겠다는 다짐을 만들기도 했다. (123페이지, 「오늘의 일기예보」 중에서)
동물을 예뻐하는 사람은 어쩐지 모든 사람에게도 다정할 것 같다. 동물에게도 잘하는데 하물며 사람에게는 얼마나 잘할까, 라는 기대감이 생기는 걸까. '나'는 골목길의 교회 앞에서 고양이 태비에게 먹이를 주다가 '너'를 만났다.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고 그들을 구해주려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 '나'가 사는 동네는 재개발이 한창이었고, 재개발이 열리는 공청회에서 '너'를 만났다. 길고양이들에게 안식처를 주는 행동과 달리 재개발 지역에서 이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냉정한 말을 하는 걸 보고 다름에 대하여 생각한다.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길고양이들에게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대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너'를 따뜻한 사람이라 여겼던 거다. 그러니까 그 밤에 내가 실감한 건 너와의 간극이고 격차였다. 그것에 비하면 내가 너라는 사람에 대해 염려하고 걱정했던 다른 모든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얼마간 체념하는 심장이 되었고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34페이지, 「3구역, 1구역」 중에서) 투자를 목적으로 한 사람들은 재개발이 확정되어 시세 차익을 얻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나 또한 그런 마음이 없잖아 있다. 지금의 트렌드 때문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옛것이 자꾸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 오래된 주택 특히 한옥을 개조하여 카페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왕이면 그런 곳으로 가 우리의 옛 것을 즐기는데 이러한 것들이 자꾸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차가 지나갈 수 없는 오래된 골목길의 높다란 계단도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면 아름다운 골목길이 된다.
물론 이 소설이 그러한 바람을 다루는 건 아니다. 간극과 격차에 대한 것이다. '너'와 '나'와의 격차가 커도 나는 너의 청을 거부하지 못한다. 고양이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너를 알 것 같아도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은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을 자신이 쉼터라 불리는 장소에서 돌보아도 오래된 것을 부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너'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세 편인 소설속에서 새로운 작가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젠더와 과거의 역사의 재현, 오늘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그것에 대처하는 다양한 접근이었다. 무엇보다 소설이 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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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정리하다 누군가가 보낸 메시지를 발견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없었고 내용은 애틋했다.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이 났다. 그녀만의 언어였다.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녀와의 연락은 끊어졌다. 어떤 서운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만히 그 메모를 바라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알게 되었고 안부를 주고받으며 속상한 일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을까. 한때는 영원을 약속했던 사이였지만 서로의 현재를 모르는 사이로 전락하기도 하는 이상한 관계. 함께 한 시간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는 영화 속 울부짖음처럼 묻게 될지도 모른다. 소설 안에서도 소설 밖에서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 당당하고 모두의 부러움을 샀던 아이돌로 활동했던 사촌의 만나 그녀가 프리터로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박민정의 「나의 사촌 리사」, 낯선 프랑스에서 만난 인연에 대해 그들이 보낸 시간과 그 안의 내밀한 감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 처음에는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지만 그 문장에 빠져들고 있다는 걸 고백할 수밖에 없는 서이제의 「미신迷信」, 딸아이를 사고로 잃고 그 상실로 인해 점차 무너진 가족의 현재를 마주하는 정용준의 「사라지는 것들」.
이별과 상실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주어지는 것일까. 네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헤어진 누군가, 사라진 존재를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 자주 연락을 하고 만남을 이어갈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안부만 전하는 사이로 변하는 사람들. 가족이란 울타리에 속하지만 그런 사이가 아니라 자신할 수 없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줄어들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의 절망감을 백수린은 감각적인 표현으로 전달한다.
잿빛 어둠 속에서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짙푸른 물결이 이쪽으로 다가오다 부서지는 모습이 보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황금색으로 빛나던 장소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바람이 불면 파라솔의 몸체가 흔들렸고 이제 끝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고 옅은 슬픔 같은 것이 가슴 안에서 서서히 퍼졌다. (「시간의 궤적」중에서)
어찌할 수 없는 죽음 그 후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서이제의 「미신迷信」과 정용준의 「사라지는 것들」에서는 소중한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참혹한 일상을 느낀다. 왜 그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나. 정용준의 소설에서 어린 딸의 죽음에 대한 부분은 특히 그러하다. 아이를 돌봐주던 어머니가 왜 그때 그랬을까. 아주 작은 실수였고, 불운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가족은 조금씩 와해된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죽기로 결심했고 그 사실을 아들에게 전한다. 정용준의 소설을 읽으면서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할까 봐 내내 불안했다. 아들과의 불편한 여행, 그 짧은 시간 나누는 대화는 외롭고 쓸쓸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할까. 모르는 것투성이인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때로 멍하니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아는 게 없다. 아무도 누구도 모르겠다.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애써 상상하면 떠오르는 건 온통 절망스럽고 나쁜 일들뿐이다. (「사라지는 것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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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감정은 시간이 지나서야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오히려 그 감정을 제대로 몰라서 다행은 아니었을까. 서툰 사랑이나 분노였더라면 말이다. 한 작가의 소설을 모은 단편집을 읽을 때 일정한 주제가 보인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작가가 쓰고 싶은 소설의 방향이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여러 작가의 소설을 모아 엮은 소설집은 매 소설마다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테마 소설집을 제외하고 말이다.
문학과지성사의 새로운 시도이자 기획이라 할 수 있는 『소설 보다: 봄-여름 2018』은 나쁘지 않았다. 네 편의 소설마다 각기 다른 평론가와 작가와의 인터뷰가 담겼다. 봄의 소설(김봉곤, 조남주)과 여름의 소설(김혜진, 정지돈)은 저마다의 개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김봉곤의 소설은 처음인 것 같다. 소설은 처음이지만 그가 쓰는 글에 대해 어느 정도 들었기에 큰 거부감은 없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정확히 알기 전에 만났던 여자친구와 다시 만나면서 게이 이전의 일상을 들려주는 「시절과 기분」은 잔잔하면서도 감성의 결이 느껴졌다. 소설에서 소설가로 등단한 ‘나’와 결혼해서 아이 엄마가 된 혜인과의 만남은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처럼 보였지만 자신에 대해 고백 아닌 고백을 해야 하는 ‘나’에게는 조금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듯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추억을 꺼내다 보면 그저 별일 아닌 것처럼 돼버리기도 한다. 소설에서 혜인에게 자신의 책을 건네주는 ‘나’는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다.
조남주의 「가출」은 어떤 면에서 가장 보편적인 소설이다. 메모를 남기고 가출한 아버지 덕분에 가족들은 자주 모였고 아버지를 걱정하다 점점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 때문에 먹지 못했던 청국장을 먹고 아버지를 이야기하면서 지난 시절을 돌아보고 꺼내볼 수 있으니까. 가출한 아버지에게 놀랄만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고 가족들은 그들의 일상을 이어간다. 가장의 자리에 대해 생각해보고 내 아버지에 대해서도 떠올리게 되었다. 김혜진의 「다른 기억」은 학교 신문사의 주간 교수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는 이야기다. 주간 교수가 파면당하면서 편집장이었던 이와 그의 친구인 화자인 ‘나’는 그 사태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갖는다. 주간 교수가 남달리 아꼈던 편집장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믿었고 다른 이들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편집장은 신문사를 떠났고 모두가 졸업한 후에 주간 교수를 만나 자리 역시 그러했다. 편집장이었던 ‘너’는 여전히 극진하게 선생님이라 대하지만 ‘나’는 그 자리를 빨리 떠나고만 싶다. 김혜진의 소설 속 ‘너’와 ‘나’는 가장 가깝고 내밀한 사이였지만 그래서 더 쉽게 멀어질 수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현실의 너와 내가 될 수 있기에 불현듯 어느 시절의 너와 내가 겹쳐졌다.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가장 난해하고 어려웠던 소설이다. 흔히 말하기를 지식 조합형 소설이라고 하는 종류의 소설이 아닌가 싶다. 1968년을 배경으로 한국에 온 앙코 씨와 이화여대 영문과에 다니는 정태순이 등장한다. 그 시대의 풍경과 오사카 만국 관람회를 통해 상상하던 미래를 현재의 정태순이 들려주는 형식의 소설이다. 어떤 부분은 기사처럼 읽히기도 했다. 소설과 다르게 김신식과 나눈 인터뷰에서 ‘일상에 관심이 없다’는 정지돈의 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일상과 관심을 다르게 해석해야 하나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네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어느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아버지와 내가 나눈 말들에 대해, 연락할 수 있지만 연락을 하지 않는 동기와 친구들에 대해, 아련하게 그리운 어떤 사람에 대해, 돌이킬 수 없는 관계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도. 김봉곤의 이런 문장은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게 아닐까 싶다.
슬픈 것과 사랑하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슬픈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생각했고, 아무래도 아무여도 좋은 일이라고도 잠시 생각했다. 상상만으로도 이미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지만, 가능 세계를 그려보는 일이 예전만큼 즐겁지 않았다. 내가 된 나를 통과한 사람들, 슬픔과 불안에서만 찾아왔던 재미와 미(美) 역시 내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절과 기분」, 4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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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보면 수업시간에 읽은 책들을 제외하고는 한국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그리 많지 않다. 몇몇 작가의 글에 빠져 그들의 신작이 나올 적마다 찾아 읽은 적은 있지만 그런 작가는 손에 꼽힐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종종 외국 작가의 글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작가의 글도 편식하지 말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시골아낙님의 리뷰로 이 책을 만났다.
‘소설보다 : 겨울 2018’이라는 제목을 접하며, 계절별로 나오는 책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겨울에 발표된 글인가, 아니면 ‘겨울’에 어울리는 책인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소설 보다’는 ‘이 계절의 소설’선정작을 묶은 단행본 시리즈로, 1년에 네 권씩 출간됩니다. 계절의 리듬에 따라, 젊고 개성 넘치는 한국 문학을 가장 빠르게 독자와 함께 하겠습니다.
책날개에 적힌 글을 보니, 계절도 고려를 한 듯 싶다. 그래서일까, 여름이 찾아든 날에 읽으면서도 이야기들이 어딘가 황량하고 버석인다. 마치 찬서리가 내린 조용한 겨울아침처럼 말이다.
나의 사촌 리사 - 박민정 시간의 궤적 - 백수린 미신 - 서이제 사라지는 것들 ? 정용준
책에는 4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의도한 것일지 몰라도 4편의 이야기 모두 사람 간의 관계가 주요 소재이다(아, 어쩌면 세상 모든 이야기가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글을 쓰는 나와 사촌 리사(나의 사촌 리사), 나와 언니(시간의 궤적), 나와 선생님, 또는 이군(미신) 그리고 나와 엄마(사라지는 것들)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네 편의 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이다.
주인공은 애인이 후배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자 마자, 학창시절 꿈꾸었던 미술사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떠나고 그 곳 어학원에서 주재원으로 와 있던 언니와 만난다. 그렇게 둘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이 짧은 글로 그려진다. 그 와중에 프랑스인 브리스를 만나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가 있지만, 내게는 그 과정 역시 그녀와 언니의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소재로 느껴졌다.
우리가 누군가와 가까워 진다는 것은 나의 좋은 면만이 아니라 좋지 않은(혹은 상대가 좋아하지 않을) 모습까지 함께 보여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나의 약한 부분, 숨기고 싶은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 그의 상처가 무엇인지 잘 알기에 그것을 교묘히 건드려 가며 말이다.
행복에는 정해진 양이 있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처럼, 다급히 내가 “그건 나쁜 거 아닐까. 언니는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고 싶어?”라고 언니에게 말했을 때의 그 눈빛. 억지로 웃으려고 하지만 끝내 물에 녹아내리는 물감처럼 한없이 희미해지던. pp.71-72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그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언니와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을. 혹여 이 관계를 이어간다해도 이미 그들은 ‘전’과는 다른 관계가 되었음을 말이다.
우리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고는 한국에서든 파리에서든 다시 금방 보자고 작별의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둘 중 누구도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p.72
사람과의 관계는 예상치 않게 맺어지기도 하고, 또 그만큼이나 허무하게 끝이 나버리기도 한다.
지금도 그날을 추억하면 빗속을 뛰어가는 언니와 나의 모습은 손 끝에 닿을 듯 생생하고, 그러면 나는 어김없이 울고 싶어진다. p.74
그렇게 지나가 버린 관계는 혼자 울음을 삼켜봤자 다시 되돌리기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이야기 속의 그녀처럼 언니를 다시 만나기 위해 노력하거나, 다시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지나간 시간만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네 편의 이야기 모두 산뜻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겨울의 이야기여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또 우리 소설의 특징인가 싶기도 하다. 솔직히 서이제의 ‘미신’은 읽으면서도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가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는데 내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이야기들은 묘하게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것이 정서가 닿아있다는 것일까 싶기도 하다.
*덧붙이는 말 책을 주문하며, 가격(3,500원)에 잠시 놀라기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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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약속을 잡고 장소에 나가 기다려야 하고 흥미 없는 이야깃거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읽는 게 좋다,라는 건 나만의 생각이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게 좋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을 수는 있다. 소설을 읽어가는 일은 근사하다. 처음에는 문장을 중간에는 이야기를 끝에서는 주제를 따라가는 일. 문지에서 계절별로 소설을 모아서 내는 '보다' 시리즈를 읽으면 한 계절이 끝나가는구나 실감한다. 『소설 보다 겨울 2018』을 읽었으니 겨울이 끝났다고 여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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