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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한 환상을 가지고 있어요. 초현실적인 어떤 존재가 마치 내가 이 세계에 끼워 넣어진 것처럼 내 마음에 이런 말들을 단도를 가지고 찔러 넣은 것 같아요. ‘그래 감수성을 가져라. 소수의 사람들이 보듯 세계를 보고, 위대하고 고상해져라. 내가 너에게서 끊임없이 사고하는 능력을 앗아 갈 수 없게. 다만 나는 한 가지를 덧붙이노니, 유대인이 되어라!’ 그리고 지금 내 인생은 천천히 피 흘리며 죽음으로 가고 있어요. 내가 움직이지 않아야만 출혈을 지연시킬 수 있어요. 출혈을 멈추게 하기 위한 움직임은 모두 새로운 죽음일 뿐이에요. 그리고 내게는 오직 죽음 그 자체로만 정지가 가능해요. (…) 말하자면 나는 그것에서 모든 사악함과 불운과 괴로움을 끌어낼 수 있어요.” 라헬 파른하겐이 젊은 시절의 친구 다비드 파이트에게 쓴 편지의 일부 한나 아렌트의 <라헬 바른하겐 : 유대인 여성의 삶, Rahel Varnhagen : The Life of a Jewish Woman, 1958)(2013)는 그녀가 미국으로 망명한지 17년이 되던 해, 그러니깐 미국시민권자가 된 지 7년 이 된 해에 쓰인 책이며, 그 후 1년이 지난 뒤 1959년에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완전한 교수직에 지명 받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이렇게 그녀의 이력을 소개 한 것은 그녀의 학문적 성과들이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독일계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그 역동적인 나치시대에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그녀의 학문은 실존주의자 마르틴 하이데거로부터 출발하여 현상학의 창시자인 에드문트 후설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실존철학자 칼 야스퍼스의 계보를 따르는 정치 이론가이다. 이 책은 제2의 고향 미국에서 살면서 19세기 독일에 살았던 그녀와 같은 유대인이었던 라헬 파른하겐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라헬 파른하겐은 한국의 지식인 사이에서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이었는데, 독일의 낭만주의의 시절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었다. 이 책은 한때 독일 낭만주의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던 한나가 우연한 기회에 라헬 파른하겐이라는 여성의 편지를 발견해 읽게 되면서부터 시작한다. 그 당시 이 여성의 일대기가 고스란히 담겨 잇는 편지를 읽은 한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한나의 업적은 권력(power)의 속성과, 정치, 권위(authority), 그리고 전체주의와 같은 주제들에 관한 것을 일상적인 생활의 변형적인 기제로 보아온 것이었는데, 그녀는 단지 라헬의 삶을 재구성하는 데 멈추지 않고 낭만주의 시대의 라헬 파른하겐이 창안한 ‘괴테 컬트’ 효과와 그 시대에 라헬의 살롱이 갖는 의미, 라헬의 인생관 갖은 것들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한다. 바로 라헬이 목소리로, 마치 그녀 자신이 말하듯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것이다. 라는 의미의 것으로 그녀의 편지를 통한 일생을 쓰게 된 것이었다. 한나는 비록 그녀처럼 독일에서 삶을 마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는지 이러한 말을 들려준다. “한동안 라헬의 삶은 역사가 결여된 채 파괴적인 요소들에게 완벽하게 좌우되었다. 그녀는 또 다른 삶의 본보기가 필요했고 그것을 이용했으며 가르침을 얻었다. 사랑, 공포, 희망, 행복과 불행은 단순히 맹목적인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특정한 과거에서 특정한 미래로 나아감으로써 특정한 곳에서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무엇을 의미했다. 그녀가 단순한 ‘회답’을 넘어 이야기할 만한 무언가를 가진 것은 괴테 덕분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말해야 했던 것은 가장 지루한 격언으로 조각났을 것이었다. 괴테가 없었다면 그녀는 자기 삶을 외부에서 그 유령 같은 윤곽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야기하려던 세계와 그 삶의 연관을 결코 수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한나 아렌트와 라헬 파른하겐이 다르면서도 같은 모습으로 살고 간 여인의 초상이라 할수도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