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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회사에서 야유회를 갔을때 우연히 광대놀음을 보게 되었다. 항상 그렇지만 예술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서인지 나는 광대놀음을 보고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세계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의 세계이자, 낯섦의 세계이다. 신명나는 기분도 잘 모르겠고, 그저 보여지는 그대로의 '광대'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느낌은 광대와 무당, 소리꾼,춤꾼들 모두에게 그렇다. 그런 그들을 통틀어 예인이라 한다면 이 책 '노름마치'는 그런 예인들의 무대나 진배없는 듯하다. ‘노름마치’는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마치)이 결합된 말로 최고의 잽이(연주자)를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다. 곧 그가 나와 한판 놀면 뒤에 누가 나서는 것이 무의미해 결국 판을 맺어야 하는데, 이때 놀음을 마치게 하는 고수 중의 고수를 ‘노름마치’라고 한다.(p15) 삶과 예술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던 예인들이 초야에 묻히자, 예인들을 찾아 다시 삶의 중앙에 서게 했다. 이른바 그들의 모노로그(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가무악일체였다. 소리와 춤과 악기, 세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것인데, 한 분야에 매진하더라도 다른 두 분야가 거의 완벽하게 몸속에 차 있어야 예술이 나온다는 관념이다.
이들이 걸어간 길에서는 삶의 고단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거센 바람앞의 등불처럼 위태하게 이루어졌다. 거센 바람앞에서 민초들의 삶은 여지없이 초토화되었고 잇달은 해방과 전쟁에서 가장 커다란 상처는 여성들의 삶을 파란에 물들게 하였다.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택한 생의 처절함은 예기들의 몸에 가무악으로 새겨졌고 권번이라는 곳을 만들어내었다. 권번은 시대상 어쩔 수 없이 예술인들의 집적지가 되었고 그것으로 전통예술이 보존되었다. 1장 예기(藝妓),에서는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 하여 해어화라 하는 기생의 삶이 격동하는 시대의 변화가 기생이자, 예인인 이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장금도와 유금선, 심화영의 삶을 통해 여실하게 전해진다. 장금도의 <민살풀이춤>은 우리나라의 전통춤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유금선의 <학춤>이 파란만장한 여성의 일생을 담아내고 있다. 이들의 춤은 곧 여성의 파란의 역사이다.
2장 남무(男舞)에서는 남자의 춤의 역사를 담고 있다. 고대 처용가에서 이어져 내려온 남무의 전통은 '마지막 동래 한량'이란 명무를 부여받은 문장원, 하용부의 북춤, 김덕명의 학춤으로 이루어져 있고 3장 득음(得音)에는 타계 후 닷새 후 세계무형유산에 지정된 정광수,'적벽화전'의 한승호, 소리를 가장 잘하는 한애순씨가 초야에 묻힌 이야기까지가 실려 있다. 유랑(流浪), 강신(降神), 풍류(風流), 각 장에는 사물놀이패의 광대, 무당, 춤의 삼각지대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통이란 이름 속에서 순간순간 새 것이 돋아난다. 이런 순간은 맛보는 순간 중독된다. 결국 또 들여다보고픈 과욕이 극성스런 길을 가게 한다. 정녕 보고픔도 그심한 허기의 일종인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썼을 때만 해도 살아계셨던 분들이 이제 삶을 넘어선 먼 여행길을 떠났다고 한다. 우리나라 진짜배기 전통의 맥을 유일하게 이어오시던 분들이었다. 그러나, 삶은 짧지만 예술에 담긴 정신은 길이길이 남겨진다는 것으로 위로삼는다. . 《노름마치》를 읽으면서 오랫동안 미망에 잠들어 있는 우리나라의 전통혼을 일깨워주는 고마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노름마치'들을 그저 광대나 기생, 춤꾼으로만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하나의 ‘예(藝)’로서 인식의 기둥을 세우는 초석을 다져주는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저자가 책 중간에 여담으로 실은 판소리로 유명한 곳 세곳 모두가 식당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의 보존가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삶과 예술이라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며 파란의 역사를 써온 예인들의 삶과 더불어 전통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기둥을 세워주는 노름마치는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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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마지막으로 봤던 굿을 떠올리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명에 본연의 색깔은 퇴색되고 전통 문화의 씨앗이 발아하여 열매를 맺어갈 기회를 점점 잃어가는 현대에 <<노름마치>>를 통해 만난 예인들의 삶은 우리 문화에 대한 향수를 달래며 그 가치를 복원하는 일에 함께 해야 함을 일깨운다. 죽어간 자의 재주가 살아남은 자들에게 전수되고 다듬어져 명맥을 잇는 일이 전통 문화를 살리는 방편일진대 그 가치를 알고 놀음판에서 신명을 바쳤던 이들이 피안의 세상으로 향하고 말아 그 맥이 끊어질 수도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전통은 그 빛을 발현할 것이다. 놀음을 마치게 하는 고수 중의 고수인 노름마치의 주인공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켜켜이 묵혀 숙성된 맛을 내는 발효 음식을 맛보는 감동을 전해 준다.
황진이, 홍랑, 계랑 등의 시조를 공부할 때 소리와 춤, 악기 세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 예술인들로 가무악일체(歌舞樂一體)를 이루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기생의 길이 수련 과정의 연속이었음을 짐작했는데 생각보다 그 길이 더 힘들었음을 새기며 그들의 궤적을 따라 간다. 이 중 한 분야에 매진하더라도 다른 두 분야가 완벽해졌을 때 한없이 깊어가는 예술로 자리한다니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예인들의 뜨거운 육성을 들으며 마자앉아 그분들의 일화를 접하며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한길로 매진하여 쌓은 공이 옥당(玉堂)이라 무릎 치며 전율하는 예술의 경지를 열었던 대가들의 향연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사무침으로 귀결되었다. 일생을 공들여 다듬은 춤으로 재단하기 힘든 시간을 쏟아버린 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곳에서 다급한 휘모리장단에 병신춤으로 폭소를 자아내던 춤꾼은 무대 위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치러야 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무대만의 무언가를 조성하여 한없이 흐르며 구사하는 ‘즉흥’으로 새로운 민살풀이 춤을 구현한 장금도는 고엽제 피해자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의 혼을 달래는 살풀이춤으로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슬픔을 달랬다.
기녀에게 사랑은 유죄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는 불온한 감정으로 멀리해야 하지만 사랑은 숙명처럼 다가올 때가 많다. 사랑했던 이의 첩으로 꿈같은 세월을 보내고 상대가 세상을 버리기까지 모든 것을 밀어 넣었고 남는 것은 빚과 옷가지 몇 벌뿐이었지만 장구와 구음, 소리에 기예가 뛰어난 유금선은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 살림을 늘려갔고, 춤을 부르는 소리꾼으로 동래학춤의 구음을 하며 학을 비상케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였다. 누대를 걸쳐 담금질된 목으로 심금의 얼개를 아는 성음으로 아흔이 넘어서도 쑥대머리를 구성지게 불렀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오롯이 한길을 걸으며 죽음이 머지않은 나이에도 공을 들여 수련하는 모습이 연상되어 숙연해지고 만다. 예로부터 춤은 남자들의 예기로 손발이 척척 맞아야 좋은 춤판이라는 말에서처럼 춤과 음악에 걸림이 없어야 한다니 각 분야에 능통해지기 위한 공력을 계량하기 힘들어진다. 춤 기운에 취한 한량 문장원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18호로 지정된 ‘동래야유’에 온힘을 기울여 그 위상을 공고히 하였고,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현역 춤꾼으로 살다 간 마지막 동래 한량이라는 말에 지난한 시간이 투영되어 도드라진다.
‘몸에 뼈다구 없이,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듯’ 할아버지의 한마디 한마디를 먹줄 삼아 몸을 다듬어 간 하용부의 북춤은 가문의 전통이 숨 쉬고 있는 춤으로 경계를 넘어 세계 속으로 흘러들어간 몸짓의 향연이었다. 문을 나서면 날개를 탁탁 치면서 날아갈 듯 학을 모의하여 추는 춤인 학춤을 재현하기 위해 연습에 충실하던 김덕명은 신장투석 중이면서도 춤을 선보이고 싶은 바람을 간직하고 있어 질병의 고통도 그의 흥을 앗아가지는 못한 모양이다. 경상도식 자진모리장단-덧배기-에 맞춰 커다란 몸집을 충분히 활용하여 춤사위를 즉흥적으로 엮어 추는 덧배기 춤을 춘 이윤택은 굵은 춤을 재현하였다. ‘교방굿거리춤’의 김수악은 걷는 게 거동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춤을 추는 것은 힘들지 않다며 만월의 무게에 휘영청 늘어지는 버들의 탄력을 선보였다니 허공에 새겨둔 춤사위가 관객들의 숨을 죽이게 만들었을 듯하다.
노래하는 소리꾼과 북을 치는 고수로 구성되는 판소리 공연은 재담을 서사적으로 엮어가는 창, 몸짓 연기인 발림으로 긴 시간 연희된다. 득음을 위해 장중한 폭포수 아래에서 폭포수를 압도하는 소리를 얻기 위해 소금을 날로 삼키고 오래된 해우소의 인분 물을 걸러 마시는 일도 소리꾼들은 마다하지 않았다. 부족을 채워 얻은 만족은 부족을 알게 하여 쉼 없는 소리를 채워 넣는 예인의 일생으로 자신을 향한 혹독한 다스림이 함께 했다.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부챗살을 펴며 소리하고 춤을 추는 연기로 예법을 따르며 자기만의 멋스러움으로 판소리를 이끌었던 정창업은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 선정을 고대하며 눈을 감았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조조가 벌인 회식에서 군졸들이 거나하게 취해 우는 대목인 ‘군사설움’을 애절하게 담아낸 한승호의 창법은 특별한 목 쓰기로 맛의 진수를 보였다. 전쟁에 패한 조조의 군사들의 영혼이 원조가 되어 우는 ‘새타령’은 그만의 독특한 소리 기법으로 절창을 낳았다.
몸속에 고인 음악이 빠져나오는 과정인 춤은 속도를 제어하며 군더더기를 소멸해 가는 과정에 탄력이 붙는다. 주린 배를 쥐고 혹독하게 훈련받아 담금질된 김운태의 채상소고춤은 머리끝에서 채상이 놀고, 손끝에는 소고가 놀고, 발끝에서는 몸이 제각각 놀면서 공중에서 45도로 기울여 도는 자반뒤집기로 관중들의 시선을 모으는 과정이 숱한 연마 속에 이뤄진 열매였다. 광대 딸이라는 지긋지긋한 놀림을 벗어나려 했지만 피할 수 없었기에 광대로라도 생존하기 위해 신산한 삶의 한을 등신불처럼 몸을 살라 흥을 발현하며 고통을 상쇄시켜 나간 공옥진은 영광의 장날 한바탕 신명나게 놀고 어른들에게 막걸리를 대접한 풍경 사진은 베풂의 공연이 무엇인지 절로 숙연하게 만든다.
집안에 우환이 잇따를 때면 답답한 심정으로 무당을 찾아 점을 치러 나설 때면 신 내림을 받은 즈음의 무당을 찾는 이들이 있다. 접신한 지 얼마 안 된 때가 가장 영험하다는 말을 믿으며 무꾸리를 수소문하는데 아홉 살에 내림굿을 한 뒤 굿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 세계적인 샤머니즘 학술 발표회에서 굿을 하며 명성을 이은 청승만신인 김유감은 최영 장군과 맹인 여신장이 몸주신으로 들어와 휠체어에 앉아서도 꽃을 매만지며 굿일을 하였다니 놀라웠다. ‘내림굿’으로 부스럼과 눈병이 사라지자 꽃처럼 피어난 이상순은 바리공주의 일대기를 읊은 ‘말미’와 바리공주가 극락세계로 천도하는 과정을 담은 ‘도령’이 합쳐진 <새남굿>의 핵심은 망자를 천도하고 만신을 먹여 살리는 바리공주의 베풂을 구전되는 소리에 울림을 넣어 되새겼다.
다시는 여염집으로 들어가기 힘든 신 내림의 길을 걸은 무당은 신의 사람으로 거듭나 속인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역할을 자처하였다. 김금화는 딸로 태어난 죄로 사내를 낳으란 부적을 짊어지고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고달픈 생활에 병까지 얻어 시집에서 박해를 받은 데다 신병까지 얻어 무당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녀는 작두 위에서 사방으로 돌며 절하고 춤추다가 신의 말인 ‘공수’를 전하며 횡액을 멀리하는 작두춤으로 신과 인간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였고, 굿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일에도 앞장서서 전통적인 유산을 보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기예를 익혀가는 길이 쉽지 않는 고독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예인들의 삶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평범한 이들과는 사뭇 다른 그들의 삶을 폄하하여 냉대해 온 것은 아닌지 반문하며 파란 많은 삶을 이어왔던 노름마치들의 놀음판 속 풍경은 가무악일체(歌舞樂一體)를 지향하는 노력의 결정체로 비춰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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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소리가 들린다. 도도도도(圖到道導) 진옥섭의 글을 눈으로 좇으니 진양조에서 시작한 것이 중모리를 거쳐 점점 빨라지는 심박수와 함께 자진모리, 휘모리로 몰아친다. 소리가 귀로도 들리는 듯 하여 책을 읽던 내내 눈을 들어 가끔 허공을 바라보곤 했다. 내 귀에 그네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도도도도(圖到道導). 종종걸음 치며 밀려온다. 점점 거세진다. 파도가 된다. 나는 거기에 휩쓸려 내 몸을 잊었다. 실현과 미실현.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는 노름마치의 세계, 우리 전통문화의 세계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뭐랄까, 실현된 것과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이 극명하게 대립되는 상태랄까. 卽과 旣라는 한자의 모양을 보라. 두 글자 모두 앞부분은 식기(食)를 나타내고 뒷부분은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다.卽 은 밥상 앞에 사람이 앉아서 식사를 “막”하려고 하는 모습이다. 나는 <노름마치>를 앞에 두고서 이제 막 먹으려고 하는 참이다. 旣자는 머리를 뒤로 홱 돌리고 있는 모습을 강조하여 그려 놓고서는 식사가 이미 다 끝났다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노름마치>를 다 읽고 나면 배부르다는 표시로 이 책을 밀어놓고 머리를 뒤로 홱 돌리고 말 것인가. 아니면 시시때때로 꺼내어 다시 손에 꺼내들고 卽의 자세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들여다 볼 것인가. 그것은 읽어봐야지 안다. 도도도도(圖到道導)의 흐름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圖 따라가세~ 따라가세~ 흥이 절로 나는구나. 이래서 허튼 춤이 절로 나오겠구나. 그의 글에는 여름 더위에 주저앉은 나를 벌떡 일으켜 세우는 흥이 있었다. 맑은 날 아침 산 위에 걸린 하얀 구름을 보고, 김창완이 “산 할아버지 구름모자 썼네, 나비같이 훨훨 날아서, 살금살금 다가가서 구름모자 벗겨오지~”했던 노래가 절로 떠오르듯이 슬금슬금 새어나오는 흥이다. 노름마치. 소리꾼으로 이미 유명해진 장사익이 직접 쓴 <노름마치>라는 표지 글씨조차도 고운 손을 들어 흥을 돋우는 듯, 우쭐 우쭐 춤을 추고 있다.
그래, 제목에 이끌리어 이 두툼한 책을 슬쩍 넘겨보았다. 거기, 살아 숨 쉬는 듯 생동감이 넘쳐나는 “노름마치”들의 사진이 있었다. 무엇을 봤기에 진옥섭은 그 수선을 떨었나? 그에 답하는 듯이 사진들은 예인 열여덟 명의 삶의 질곡을 가감 없이 그려내고 있었다.
안채봉의 소고춤-다급한 휘모리장단이 들리는 모양이다. 수건을 가슴 위로 올려 <병신춤>을 추려 한다. 저러다 털썩 주저앉으면 억!하고 놀랐으니, 춤으로 폭소를 만들던 유일한 꾼이었다. -48
김운태의 자반뒤집기-돌고 도는 순회 속에서 돌고 도는 회전이 생활이었다. 하루 세 끼를 위해 하루 천 바퀴를 돌았다 착지보다 체공이 더 안전한 순간이 될 때, 진정한 춤이 이뤄졌다. 보라 저 허공중천! 그만이 운행하는 항로다.-242
명무 김금화-싸늘한 철길, 위태로운 너비 위에서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의 노래를 부르며 살았다. 세상 사람을 위해서 작두 위에 서야 하는 만신이, 신과 인간을 잇는 예리한 길도 예술의 길임을 인지시켰다. -328
사진을 보지 않아도 그림이 절로 떠오르지 않는가?
到
진작 좀 오지-다 늦은 이제 와서 소리하고 춤추라 한다. 머리 손질하는 것도 버겁다. 비녀를 찔러 주는 외손녀 뒤에서 젊은 그가 묻는다. 여태 무얼 하고 이제야 찾느냐고.-86
일제 강점기부터 6·25동란이며, 우리 현대사의 갖은 고락을 겪으며 곱고 힘차던 시절 보낸 뒤 다 늙어 꼬부라진 이제야 찾아온다고 나무라는 말이다. 이미 저승길로 들어선 이들이 수두룩하고 마지막 힘을 내어서야 재주를 선보일 수 있는 그네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그렇게도 소중한 날들이리라. 그러나 이제 여생을 얼마 남기지 않은 혹은 이미 유명을 달리한 그분들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모두 다다른 분들이 아닌가. 비록 세상의 눈을 피해 필부필부로 살아갔던 세월이 가로막혀 있었어도 그들이 토해내는 예기로서, 남무로서, 소리꾼으로서, 유랑광대로서, 만신으로서, 풍류꾼으로서의 삶은 지워지지 않았고 지울 수도 없었다. 그들의 육성은 더 이상 디딜 곳 없는 생의 끄트머리에서 마지막을 고하며 짚어내는 길고 긴 울음일 것이다. 각기 다른 개성의 18 예인이 이른 도는 어떠한 경지인가.
道
평생을 닦아 반들반들 윤을 내어 가며 걸어온 길이 그대로 道가 되었다. 앞선 이들의 뒤를 좇아 기초부터 배우고 익히든, 혹은 ‘개비’라는 말의 뜻처럼 집안에서 대대로 이어져온 것을 핏줄로 물려받았든, 자기 한 몸에 그것을 축적하여 제대로의 흥을 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각고의 노력이 있었을까. 삼십대도, 사십대도 아닌, 팔십, 구십 줄의 어르신이 되어 힘은 모자랄지언정, 그 몸속에 새겨진 道는 꼬장꼬장하게 살아 있었다. 진옥섭이 힘겹게 무대를 마련하여 모신 예인들은 버선 끝 하나도 벼리고 벼려서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 무대 위에서 혼을 불살랐다. 그리하여 무대에서는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박수가 일었을 터. 각각의 명인들이 남긴 짤막한 말들은 모여 이내 곧 法이 되었다. 투박하면서도 까칠하기까지 한 그 말들에는 명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루어진 道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장단이 몰리고 관객이 고조되자 여든 일곱 노구로 펄쩍펄쩍 뛰었다. “늙은 나이에 미안합니다. 그러나 정광수가 임의로 꾸민 게 아니라, 예부터 있어왔던 법도에 따라 소리한 것입니다. 에, 더불어, 저 또한 멋이 있는지라, 좀 보탬을 넣었기에 좌중의 신사숙녀 여러분 널리 양지 있으시길 바라마지 않습니다.”-190
導
송두리째 넋을 싣고 제대로 된 ‘한 판’을 위해 전통예술에 온 생애를 다 바쳐 실현해 온 명인들. 진옥섭이 그분들의 삶을 찾고 찾다 먼길 끝의 노인정과 다방, 시장의 국밥집에서 마주앉아 물은 이력서(-27)는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아직도 건재한 판의 사람들에 대하여 ‘초야에 묻힌’이란 수사로 묻어두고 있는 세태를 어디로 이끌어야 할 것이냐? <노름마치>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글이다. 전통이란, 과거에서 이어온 것 중에서 현재에 되살리고 본받아야 할 것들을 이르는 말이다.현재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우리나라 무형유산에 판소리, 강릉단오제, 남사당놀이,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등이 있다. 이제 우리는 이들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보존해나가야 할 의무가 생긴 셈이며, 빙산의 일각이나마 우리의 소중한 것을 지켜나가는 데 명분이 생긴 셈이 될 것이다. 우리가 <노름마치>에서 만나 본 예인들은 무형문화재의 이름이 아니어도 아무런 대가 없이 전통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쳐 온 분들이다. 어떤 이는 유명인으로 어떤 이는 무림 고수처럼 숨어서 이름을 떨치기도 했지만 이런 저런 구분을 할 필요는 없다. 이 책에서 만나본 이들의 숨결을 느껴 본 이라면 오랫동안 묵혀둔 묵은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곰삭은 맛, 자꾸 입맛 다시며 찾게 되는 맛이 대대로 이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이니 무형문화재니 하는 타이틀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세인들의 관심이 일단 있어야 숨어 있는 명인들도 자존심을 되찾게 되지 않을까. 전통예술을 기획, 연출하는 진옥섭 같은 이가 사무치게 온 국토를 찾아 헤매며 차려놓은 맛있는 밥상에 숟가락이라도 올려 놓는 성의를 보여보자. 도도도도.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진동하는 뜨거운 열기의 세찬 파도를 온몸으로 느껴보자. 노니소, 노닐어요, 놀아유가 전하는 소요유逍遙遊의 경지를 눈앞에서 체험하고서 玉堂이로구나! 소리 절로 내지르고, “앵두를 똑똑 따는구나!” 같은 구음을 툭툭 내던지는 수준 높은 관객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몸서리 쳐지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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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손과 발이 공간을 사로 잡는다. 온 몸을 놀려 공간을 온통 채워나간다. 공(空)의 속을 채우는 거대한 움직임, 그 괘적을 쫓아 눈이 움직이고 입은 벌어지며, 박수를 치고, 온 몸이 부르르 떨린다. 전율이다. 이것이 춤이고 노래이며 공연이다. 우리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것 같다. 현대인의 무관심 속에 사라져 가는 예술을 영혼을 불러내듯 다시 불러낸 노옹들의 공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의 눈과 뇌는 그것이 우리의 것임을 느끼게 된다. 한여름 거칠게 퍼 붓는 소나기처럼 내 마음에 강렬히 들어왔다. 물론 그 세찬 비도 언젠가 그치겠지만, 그들의 몸짓은 내 마음에 영원히 각인될 것 같다. 아름다움 속에 숨어 있는 아픔, 한 많은 춤이기에 남편에게, 아들에게, 손자에게 숨겨야 하는 가련한 삶이었지만, 멈출 수도 없었고, 그만둘 수 없었다. 춤이 이미 자신이 되어 버렸기에 존재하는 한 함께 하였다. 그러기에 세월이 흘러, 숨겨진 춤이 문화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이것으로 나마 그간의 박대를 조금이나마 보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삶을 살아 간다. 그 속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처럼 한 많고, 가련한 삶들이 그들에게 있었기에 우리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픔과 고통이 기쁨으로 화한다는 말이 새삼 와 닿는다. 아 찬연한 슬픔이여 우리의 가슴을 울려서 기쁨의 눈물을 쏟아 내다오. 시대라는 얄궂은 바람에 문화라는 바람개비가 빙빙 돌아갔건만 지금은 그 바람이 일지 않는다. 사라져 가는 우리의 문화유산들, 이어지지 못하고 하나 둘씩 사라져 가기에 그들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바란다. 문화나 예술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은, 백성을 지배하기 위해 어떤 때는 혹세무민하는 미신이요 어떤 때는 민족 전통예술이라니. 예술이 너무 권력에 흔들리는 것이 우리의 비극이 아닐까 진정한 예술은 우리와 함께 하는 것. 예술은 높은 곳에 외로이 있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흘러 어우러지는 낮은 예술이리. 본디 예술이란 천하지만, 그 천함 속에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어, 그 천함이 고귀함이 되는 것이요 예술이 인간의 마음을 훔쳐가는 것이기에 그 속에 푹 빠져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천시 속에서도 이 땅의 예술을 지켜온 사람들. 인간의 몸으로 인간이 아닌 혼이 되어 세상에 펼쳐진다. 화려한 열두자폭 병풍은 아니지만, 들판에서나 천막에서나 어디든 판이 벌어지고 신명이 난다. 농업의 현장에서던 부자의 술자리에서던 어떠랴 우리의 멋과 맛이 사람들과 함께 숨쉬며 얼 수 하고 외칠 수 있다면, 춤을 추며 노래를 할 것이다. 그것이 무속이면 어떻고 마당에서, 들에서 추는 춤, 노래면 어떠하리. 일가를 이룬다는 것, 그것이 자기가 되니 자기는 사라져 버린다. 세상에 어디 권력이나 부에 욕심 없는 인간이 있겠는가 만은 그 길을 자신의 길이라 여기고, 묵묵히 세월과 힘듦과 싸워서 전문가를 넘어선 달인으로, 채득한 것들을 몸과 혼으로 보여준다. 버선이 닳도록, 맨발이 무너지도록, 목이 터지도록 아무나 이룰 수 없는 꿈이기에 더 위대해 보이지만, 대부분 세상의 편견과 싸워온 사람이 이들이다. 청운의 꿈은 사라지고, 삶의 나이테만 남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와 그 기억이, 그 기록이 작은 몸 안에 숨어 버렸다. 그 숨겨진 한의 힘이 우리 앞에서 펼쳐지고, 폭발한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내 삶이라고. 우리의 선입관. 우리의 예술이요 춤이며 노래이고 공연이지만, 정작 우리는 잘 모른다. 서양예술에 비해 그 학습과 접하는 빈도가 확연히 떨어지기에 서양 클래식이 그냥 클래식이 되었고, 우리의 클래식은 국악이 되어버렸다. 춤 또한 마찬가지로 정형된 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국악 장단이나 춤에 대해서 너무나 모른다. 그러기에 설령 기회가 있더라고 피하게 되고, 우리 예술공연은 너무 길다 라든지, 공연의 규모나 횟수가 적다든지, 더 접하기 어렵다든지, 수도권 아니면 보기가 어렵다 등등 많은 막연한 선입관과 변명이 떠오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끄럽게 하는 것은 우리의 것들을 모른다는 점이 아닐까? 문화는 그냥 즐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함께하고 보존하고, 이어 나가는 살아있는 예술이어야 할 것 같다. 삶의 진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글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 문화의 질곡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이 책은 역사다. 이 한 권으로 우리의 문화, 예술의 단편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한 권의 잘 서술된 근, 현대의 역사책을 본 느낌이다. 민중의 상처를 보듬어 준 것은 조선양반 예술이나 지배계급의 멋지고 화려한 문화가 아닌 민중예술이 아닐까? 그것도 천시받는 낮은 예술가들이 그 주인공이 아닐까? 우리의 문화를 양반문화로 착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양반이나 문인들의 글로서 역사를 말하지만, 진정한 역사는 민중과 함께 숨쉬며, 행하는 그 민중의 삶이 아닐까? 민중의 춤과 노래 혹은 삶 자체를, 이들은 몸으로써 역사라는 거대한 강에 시대를 띄워 보냈다. 저자의 글이 너무 징 하기에 쉽게 읽어 내려가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한 사람의 인생이 펼쳐지면 나도 모르게 찡한 것이 속에서 울려왔다. 난 참 쉽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들처럼 살 수 있을까? 신명 나는 놀음이지만, 그 속의 사연으로 눈물 적신다. 정말 우리를 울리는 사무치는 노름이다. 옥의 티. p. 323, 10줄 1986-> 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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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 웨딩마치는 들어봤어도 이런 말은 금시 초문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놀면서 행진이라도 한다는 뜻인가? 책을 읽기 전부터 호기심이 일었다. 책의 첫머리에서 그 해답을 보았다. ‘노름마치’는 ‘놀다’의 놀음과 ‘마치다’의 마침이 결합된 말로 최고의 잽이(연주자)를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라 한다. 아, 그렇구나! ‘마치’를 ‘행진(march)’이라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름 우리의 것을 사랑한다고 자부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안무가 피나 바우슈는 들어봤어도 피나가 으뜸이라 칭찬했던 우리의 춤꾼 하용부는 모르고, 바흐의 선율은 알아도 우리의 판소리는 제목 정도 밖에 모르고 살았다니… 어디 가서 한국인이라는 명함도 못 내밀 것 같다. 정작 우리의 것을 잘 모르고 살았구나. 우리 것에 대한 나의 무지를 새삼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여기에는 예술 각 분야의 노름마치들의 삶과 그 시대의 역사가, 때로는 흥이 나게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웃음 나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씨줄과 날줄이 엮여 아름다운 무늬의 옷감을 완성해 나가듯 촘촘하게 엮여있다. 평소에 우리의 것에 관심이 있고 즐겨왔던 사람이 아니라면 미처 몰랐을, 새로운 세상으로 향한 문을 여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진득한 끼와 흥, 예술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거나 혹은 밥벌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했을 지라도 그 분야에 최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그 분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분들의 이야기들은 내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았다. 책에는 노름마치 열여덟 분의 삶과 예술이 담겨있다. 이 중에서 내가 평소에 알던 이름은 공옥진 한 분 뿐이다. 그것도 ‘병신춤’으로 유명한 분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건 극히 일부일 뿐이라니 그 동안 몰라도 너무 모르고 살아왔고 우리 것을 그만큼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이는 비단 우리의 문화를 대할 때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너무 표면적이고 단편적인 모습에만 의존하여 남들을 평가하면서 살아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 상대의 진심을 이해하는 것이 참 어려운 건 알지만, 진심은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는 법이다. 편견은 무지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해하고 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무지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읽다 보니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시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그들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그 공연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불끈불끈 솟아난다. 기회가 된다면 남아 계신 노름마치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가슴 저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오는, 세상을 아우르고 물 흐르듯 하는 그들의 춤과 소리, 혹은 풍물이나 풍류를 직접 맛보고 싶다. 밀란 쿤데라는 <불멸>이라는 책의 서두에서 ‘불멸이야말로 가장 큰 형벌’이라 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사라져간다는 것, 그것도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서운하게도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인간의 유한함이 참으로 아프게 다가왔다. 제목의 일부에서 말하듯 ‘사무치게’ 아파왔다. 한 시대를 풍미했고 그토록 자신의 많은 것들을 희생해가며 힘들게 얻은 아름다움의 경지가, 그 뒤를 이을 제자가 없어서 참으로 허무하게도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것을 진작에 챙기지 못한 바로 우리들의 책임이 가장 큰 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러한 글이나 기록물을 통해 어느 시대에 어느 노름마치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라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들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묵묵히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어왔고, 지금도 곳곳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에 마음 든든하다. 그리고 고맙게도 이런 소중한 우리의 얼이 사라지기 전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중에게 이를 알리고 경종을 울려주는 이러한 글이 있어 참 다행이다. 여러 분야의 최고봉인 노름마치들에 대해 재미뿐만 아니라 진심이 가득한, 진득진득하고 걸쭉한 글이 이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을 쓴 진옥섭에게 ‘글마치’란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전무후무(前無後無)한 노름마치들이지만, 내 생각엔 이들의 뒤를 잇는 이들이 많아져 전승에 더해 이를 토대로 발전이 더해져 전무후유(前無後有)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더늠’이 붙여지고 또 붙여져 더욱 더 위대한 예술혼이 바로 우리 곁에서 손 닿을 수 있는 곳에서 마음껏 살아 숨쉬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적 후원이나 국가적 차원에서의 무형문화재 지정과 같은 장치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대중인 우리 스스로가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꾸준한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노름이 마침에 머무르지 않도록,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충분한 자양분이 되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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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프롤로그 : <노름마치>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포스팅 주소:http://blog.yes24.com/document/7327909
1. 몸에서 몸으로 흐른다.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은어, ‘채 맞은 생짜(회초리를 맞아가며 배운 기녀라는 뜻으로 제대로 교육받았다는 것을 의미), ’개비(甲, 누대를 거쳐 예기를 전수받은 자)’라는 말에는 당신들이 몸으로 가슴으로 익히고 연행한 것에 대한 자존심 섞인 자부심이 가득 서려 있다.
일제 말기, 권번이 폐지되고 6.25 전쟁 통에 예기가 밀려나며 접대부와 여급이 흥행사에 끼어들기 시작하자 아예 삯바느질을 하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전수자들을 가르치는 일로 비껴나 버린 것도 ‘개비’, ‘채 맞은 생짜’로서 끝내 넘을 수 없었던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대한민국에 유일하게 남은 예능 보유자라 하더라도 ‘문화재’가 아니면 문하생이 찾아오지 않는 현실에, 그저 운명처럼, 팔자에 새겨진 듯 이끌려 부르고 추었던 노래, 춤, 굿, 침(치-)을 했던 노름마치들. 가르치는 춤, 심미적으로만 완벽하게 다듬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추기 위한 춤, 즉흥으로 그때 그때 ‘자기 것’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길 하나� 건너도 다른 소리가 나오던 것인데 모두 방치되고 중앙에서 꼭 다듬어진 하나를 꼽으려는 세태가 이들에게는 얼마나 답답할까.
‘일생 동안 발 족(足)’ 자 들어간 ‘만족’과 ‘부족’이란 단어가 가장 무서웠다는 말은 노름마치들이 판 하나를 완전히 마치기 위해 얼마나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긴장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2. 너는 내 운명
‘먹고 살라고 배웠소.’
세습무이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노름마치들이 이 길로 들어선 시작이 어쨌건 그것은 끝내 ‘팔자에 든 춤이고 노래’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춤추고 노래하고 굿하는 것이 죽을 고비 몇 번을 넘기게 하면 그때부터 그것은 ‘운명’이 되었다. 한 때는 몸 값을 최고로 높여가며, 하루에도 수번 춤추고 노래하고, 생계 걱정 없이 집도 사고, 식솔도 먹여 살릴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부끄러워하는 가족들 앞에서 시원하게 곡조 한 번 뽑기도 죄스럽게 된 것처럼. 노름(놀음)을 하는 것도 그치는 것도 온전히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아도 여든, 구순이 되도록 몸이 따르지 못하면 머리로라도 수차례 다듬고 그렸던 춤, 노래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이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작품을 알고 있었다. 춤 몇 가지를 제외하면 판소리와 민속극, 무가까지도. 그런데 그 알고 있는 것에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다. 바로, 사람. 문자 그 이전에 사람의 숨과 땀으로 살아 있었던 작품들과 구연자인 우리의 ‘노름마치’들. 춤추는 머슴아 ‘남무’, 예와 기를 두루 갖췄던 권번의 꽃들 ‘예기’, 그리고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 아팠던 생(生) ‘만신’. 특히 신의 선택으로 한 생을 얻은 대신 원래 갖고 있던 다른 생에서 버림받은 무녀들. 여염집으로 돌아갈 길은 없어지고 세상에서 가장 좁은 길인 작두 위에 꽃으로 피어난 이들이 신병을 얻고, 쇠걸립을 하러 다니고, 내림굿을 받는 과정은 다른 노름마치들이 이어가는 생과 또 다른 모습이라 괜히 먹먹해졌던 것 같다.
3. 그리고 진옥섭!
기억되지 않은 광대들, 설 무대가 사라진 노름마치들이라 하여 그들이 진옥섭이라는, 자신들의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갖고 끈질기게 매달리는 젊은이에게 기꺼이 시간을 내준 것은 아니었다. 예인으로 산 청춘이 자손들에게 지은 죄라도 되는 양 더 숨어들고자 하는 이도 있고, ‘갈 때’를 생각해야 하는 20세기 초의 이들은 ‘여태 뭣하다 이제 찾나?’ 서운한 소리를 뱉기도 한다.
그런 그들을 20세기 후반, 그리고 21세기에 무대에 다시 서게 한 것은 진옥섭의 ‘공’이자 ‘전략’ 없이 결코 이뤄질 수 없었던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 간 노름마치들을 일일이 수소문하고 만나고 이야기했던 기록들을 이렇게 책으로 엮어 나 같은 ‘무지렁이’도 알게 한 것은 더 중하고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가 어색하니 할 말이 없어 이런 말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어느 새 진짜 귀명창이요, 눈춤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멋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한 명창과 함께 먹은 돈까스에 ‘판소리의 추억으로 바삭하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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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 후의 이야기
책의 각 장 말미에는 녹색 글씨로 인쇄된 부분이 있다. 이 책이 문학동네에서 다시 출간되면서 이 전 출간본에 이은 ‘그 이후’ 이야기를 새로 실어 놓은 것이다. 책을 다시 훑으며 그 부분만 다시 읽어 봤다.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을 마중 가는 길이었다.’라는 서문의 말이 걸려 어쩐지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고 병을 얻거나 세상을 뜬 분들이 많은 한편으로 뒤늦게 문화재로 지정되었거나 여든이 넘은 나이에 세계로 무대를 넓힌 노름마치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예기 장금도 할머니의 ‘후일담’이었다. 남은 생을 기녀로 산 데 대한 ‘죗값’처럼 살며 마치 최일남의 소설 <흐르는 북>의 주인공 같았던 할머니가 50년 만에, 그것도 무대에서 아들과 화해를 했다고 했다. 얼마나 감격스러우셨을까 덩달아 벅차오르던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고엽제 후유증으로 앞서 가 버린 아들. 결국 다시 무대에 선 것은 참척지정을 녹인 살풀이였다. 다시 한 번 노름마치를 감싸고 있는 그 운명이라는 굴레를 실감했다. 참 얄궂기도 얄궂었다.
5. 에필로그
<광대> - 리쌍 http://youtu.be/eu7lsFJs0HM
내가 웃고 있나요? (Think It's smile) 모두 거짓이겠죠? (Think It's smile) 날 보는 이들의 눈빛 속에는 (Oh!) 슬픔이 젖어 있는데..(Don′t you worry)
내 이름은 광대 내 직업은 수많은 관객 그 앞에 웃음을 파는 일 슬퍼도 웃으며 내 모습을 감추는게 철칙 오~ 이런 내 처질 손가락질 하며 날 모욕해도 더 크게 웃고 난 땀으로 목욕하고 음악이 꺼지고 막이 내리고 밤이 오면 별빛에 몸을 씻고 눈부시게 광낸 구두를 신고 달에게 청혼하듯 손을 내밀어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앞으로 달려 (아무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흐르는 이 시간에 외롭게 홀로 핀 꽃 한송이에 난 반해 사랑을 나누려 나는 간다네
세상을 넘어 시간을 멈추고 세상을 넘어 신나게 춤을 춰 봐 세상을 넘어 모두가 같은 높이에서 그래 그래 그렇게
책을 읽는 내내 이 노래가 떠올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흥얼거렸던 노래의 가사를 굳이 찾아 내 곱씹어 보게 됐다. 세상을 넘어 시간이 멈춘 듯, ‘앵두 똑똑 따듯’, 모두가 어울려 판에서 만나고 헤어지며, 그렇게, 그렇게 신명나게 놀았던 노름마치들. 이제 그 분들에게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럴 염치도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관절염이 나라의 우환’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시간이 더 늦지 않도록, 그 때를 놓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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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따라 유랑극단,어머니따라 불공을 드리고 씻김궂을 보러 따라 다니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선연하다.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무대 위에 알록달록 분장한 희극인들이 연기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짙은 눈썹에 하얀 분가루를 진하게 바르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권위있는 자세로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케 하기도 했다.실감나게 연기하는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눈과 귀를 쫑긋히 하고 숨을 죽이면서 할머니와 구경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할머니 머리에는 따가운 햇빛을 가리기 위해 손수건이 가려져 있고 배가 고프다고 하니 팥들어 간 찐빵을 사서 허기를 달래기도 하면서 유랑극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그리고 불교를 믿는 집안이라 사월 초파일에는 으례 절에 등불을 켜고 공양을 드리기도 하고 집안에 액운이 찾아 오면 유명한 무당을 찾아가 씻김궂을 벌이기도 했다.식구들의 앞날,죽은 조상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내복을 사서 가지고 갔다.무당은 의식에 따라 접신의 예를 갖추고 식구들의 사주를 보면서 액운을 풀어 주고 조상의 한을 달래 주었다.
진도 씻김궂
한국 전통예술문화이면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승무,살풀이춤,태평무,판소리,궂거리 등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오는 토속문화이다.백성들의 애환을 달래기도 하고 신명나는 춤과 노래로 좌중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손과 발동작,목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마다가 오랜 시간 갈고 닦은 절제된 미가 압권이다.노래,춤,장단이 일체가 되어 풀지 못한 한을 풀어 내던 한국 고유의 샤머니즘 문화이다.이러한 춤과 소리가 어우러진 전통예술문화가 요근래에는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서구의 문화와 사상이 온천지에 만연하다 보니 자칫 사라질 염려마저 없지 않아 있다.중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조지훈시인의 <승무>는 불교적 복식에 유교적 가치관을 띤 스님의 춤사위가 애절하게 다가온다.
얇은 사 하이얀 꼬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 꼬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뻗은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냥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꼬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승무(僧舞)
우리의 전통예술문화를 너무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진옥섭저자는 1993년부터 2003년까지의 춤꾼,소리꾼들을 찾아 다니며 춤 한 사위,소리 한 소절이라도 듣고 싶어 애간장이 탄 흔적과 발품이 가상스럽기만 하다.그 예인들의 증류수와 같은 목소리,한마리 학이 되어 사뿐사뿐 걷는 발걸음,소리의 달인이 된 득음의 경지는 두 눈을 집중시키고 마음의 깊은 골짜기까지 후려치고 만다.감탄과 감동이 절로 일어난다.저자가 만났던 예인들이 나이가 들고 질병이 찾아 오면서 하나 둘씩 우리 곁을 바람과 이슬과 같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서글픔과 그리움을 동시에 안겨 준다.그래서 저자는 한 명이라도 더 뵙고 소리,춤의 무늬와 질감을 더 깊게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지난 시절 예인들과의 추억과 그리움,사모하는 정이 못내 아쉬어 다시 올 수 없는 시간 속을 마중 나가는 참이었다.
공옥진여사의 광대연기
나에게는 소리와 춤으로 유명한 고(故)공옥진여사의 공연하던 기억이 선연하다.흔히 병신춤으로 널리 알려진 예인 공옥진은 신체가 부자연스러운 사람들의 사연을 진한 연기로 관중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대학시절 수업을 마치고 또 다른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을 이동하던 중 공옥진여사의 <병신춤>과 그녀의 찰지며 대담하기까지 한 표정과 대사에 강의받는 것은 잊은 채 표정과 말씨를 진지하게 구경했던 시간이 새롭기만 하다.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홀로 자립을 해야 했던 공옥진여사는 <심청가>를 비롯한 살풀이춤,씻김궂까지 다재다능한 분이었다.세련되지 않은 극히 자연스럽게 촌티나는 말씨에 솔직한 표현은 좌중을 울리기에 충분하다.말년 감나무를 벗하며 홀로 살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 공옥진여사의 춤과 소리,연기가 그립기만 하다.
소리꾼,광대,춤꾼 모두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회적 신분이 그리 높지는 않다.지금이야 직업의 귀천이 사라져서 이들에 대한 선입견과 시선은 바뀌었지만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해방직후에 활동했던 그들은 부부의 연을 끊고서라도,돈은 되지 않지만 하늘이 내려준 천부적인 '끼'를 놓치고 싶지 않아 집을 뛰쳐 나오고 세상을 방랑하면서 소리와 춤을 배우고 익히며 세상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이들은 스스로 팔자에 정해진 길이라 여겨 담대하게 이 길을 선택하고 결정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이러한 소리꾼들은 교방,예기조합,권번을 거치면서 해방후에는 국악원으로 바뀌어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다만 이들에 대한 처우가 아직은 흡족하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소리와 춤 정말 다양하기만 하다.소고춤,민살풀이춤,중고제의 쑥대머리,학춤,북춤이 있다.그리고 판소리 열 두마당을 여섯 마당을 신재효는 춘향가,심청가,적벽가,수궁가,흥부가,가루지기타령으로 정리하고 있다.판소리 명창들은 득음을 이루기 위해 깊은 산중 굴을 파고 독공을 해야만 하고 목청을 위해 생소금을 삼켜야 하는 시련의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매일 나오는 각혈과 더럽고 오래된 인분도 삼켜야 하는 과정은 보통 사람은 할 수가 없는 신의 경지라고 생각한다.그들의 목표는 폭포수를 뚫고 나갈 소리를 벼리기 위한 것이었기에 아무리 가시밭길과 같은 시련의 과정일지라도 참고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것이다.소리꾼과 북을 치는 고수가 콤비가 되어 진행하는 판소리는 언제 들어도 구성지면서 가슴 뭉클할 때가 많다.
판소리 장면
전라도에서 소리를 동편,서편으로 나눈 것처럼 춤도 나눠보는 것이다.남녘을 동서로 나눠 호남 전체를 서편으로 영남을 동편으로 양쪽의 춤을 살피면 가정은 퍽 유효해진다.호남의 춤이 살풀이장단에 계면조라면 영남의 춤은 굿거리 장단에 우조인 것이다.기교를 위주로 한 호남에 비해 영남은 정직한 몸놀림으로 춤을 춘다.계면조가 식민지 설움을 통과하며 주류를 이뤘다는 견해에 따르면,우조는 유구하고 고풍스런 몸짓인 것이다. -본문-
이렇게 춤과 소리,궂이 일제강점기,해방을 거쳐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 전통의 맥을 유지해 왔다.춤판은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과 소문이 잦아 몽골,중국,동남아,유럽 등의 원정공연을 하면서 한국의 전통예술의 미를 맘껏 발휘하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1992년 사물놀이 팀이 발족되면서 전통 무형문화재는 조금씩 자취를 감추어 가고 현대적인 느낌을 살린 공연들이 시대의 흐름과 감각에 맞춰 색다른 맛과 여운을 안겨 주고 있다.끼를 살리고 팔자로 쓰여진 대로 살아가려고 했던 소리꾼,춤꾼,광대들의 신명나는 한마당,구성지면서 가슴을 저미는 감동과 열광의 도가니를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저자의 말대로 그들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은 케케묵은 것이 아닌 켜켜이 묵힌 신토불이와 같은 존재요,보배로운 한국의 무형자산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이 도서와 함께 <춤과 그들/동아시아출판/유인화저>을 읽으면 더욱 우리의 전통예술의 혼과 미를 이해하면서 우리의 것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고취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http://blog.yes24.com/document/7204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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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여름, 부산에 갔었다. 대책 없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 마음은 불안했지만 시간은 남아돌던 때였다. 뜨거운 햇살은 바다로 가라고 속삭였고, 어느 바다가 좋을까, 생각하는 찰나 부산을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무작정 떠난 부산, 이곳저곳 발 도장을 찍고 돌아다니다 마지막으로 태종대 유원지에 들렸다. 지금 생각하니 어떤 끌림이 작용했던 것도 같다.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데 전망대 휴게소에 많은 사람이 둥글게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모여 있는 이유가 궁금해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한 마리의 학이 너울대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것은 학춤이었다. 학의 실체는 흰색 한복을 입고 상투를 튼 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었다. 상투를 틀었음에도 얼굴이 곱살해 당연히 소녀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미소년이었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춤을 모르니 소년의 춤이 잘 춘 춤이었는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하지만 내가 본 소년의 춤은 슬프면서 아름다웠다. 삶의 복잡성과 의외성에 소년의 춤은 잊혔다. 『노름마치』를 읽는 내내 춤추는 소년이 떠올랐다. 춤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흰색 한복을 입은 노인이 꼿꼿한 표정으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복지회 재단이사장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소년을 입양한 아버지라고도 했다. 어쩌면 노인은 소년에게 춤을 가르쳐준 스승이었을지도 모른다. 노름마치는 남사당패의 은어로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마치)이 결합된 말로 최고의 잽이(연주자)(15쪽)’를 뜻한다. 밀양강변 춤의 종손 하용부는 춤은 ‘추는 게 아니라 추어지는 것이다.(139쪽)’라고 했고 진옥섭은 김수악의 춤을 보고 ‘사람이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춤이 사람을 빙의하고 있었던 것(408쪽)’이라고 했다. 내가 본 소년의 춤이 그랬다. 누군가 소년의 몸속으로 들어가 추는 것 같았다. 춤이든 소리든 세월의 더께가 쌓여야 비로소 완성된다. 그 춤의 깊이는 소년의 시간이 만든 춤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훌륭했다. 노인의 이지러진 표정으로 보아 소년의 춤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지만 내 눈에 소년은 분명 노름마치였다. 아기는 울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만, 살아가기 위해선 울음을 삼켜야 한다. 세상은 약자를 짓밟을 뿐 보호하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상대에게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혹독한 이야기지만 눈물은 상대를 속이려고 위장할 때만 흘려야 한다. 진옥섭의 할머니는 징용 간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울음 대신 골방에서 담배를 물었다. 『노름마치』의 인물 대부분은 기녀, 무당, 광대 등 순탄치 못한 삶을 산 분들이다. 그들에겐 춤과 소리가 담배였다. 눈물이자 희망이었다. 춤추는 슬픈 어미 장금도에게 춤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자 유일한 피난처였고, 춤을 부르는 여인 유금선에겐 팔자에 정해진 길이었다. 다른 길을 가도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길! 그것은 “적벽강에 불 지르러 가요”의 한승호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할아버지, 아버지, 형들로 이어지는 운명이 그에게도 전해졌다. 그 길은 광대의 딸로 태어나 광대가 된 공옥진에게도 해당했다. 살아가기 위해 울음을 삼켜야 했던 그들에게 춤과 소리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자 생계의 수단이었고,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행위였고, 끊임없이 살아야 할 이유를 부여하는 신이었다. 그들은 춤이 있고 소리가 있기에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계속 일어나 걸을 수 있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생명은 유한하지 않다는 것, 그리하여 그들의 삶이 담긴 춤과 소리를 기억하는 이들이 점점 줄어간다는 것이다. 소년은 춤을 추기까지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팔자를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소년으로 하여금 춤을 추게 했는지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소년에겐 춤을 출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절박함으로 시작한 춤이지만 추는 동안 신선한 바람이 몸에 스미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처음엔 누군가에게 보이는 춤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는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추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 춤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을 것이다. 그날의 여행자들은 가슴 속에 각자만의 학 한 마리를 품고 돌아갔을 것이다. 그날의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노름마치』는 춤과 소리를 듣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이 시대에 명인들의 한바탕 ‘놀음’이 영영 마치지 않기를 바라는 진옥섭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는 책이다. 나에게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책이었고, 외면했던 그래서 무지했던 춤과 소리에 관심을 두게 한 책이었다. 앞으론 춤과 소리를 무심히 지나치거나 허투루 보고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춤과 소리는 몸짓이나 목소리가 아닌 곰삭은 삶의 이야기이자 절망을 딛고 일어설 희망가였다. 나 역시 소망한다. 이 ‘놀음’이 끝나지 않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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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책상을 정리하다가 10원짜리만 모아둔 동전지갑을 발견했다. 할머니를 드리려고 했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는 매해 겨울을 우리집에서 나셨고, 긴 겨울 동안 할머니 친구분들과 10원짜리 화투를 치셨더랬다. 신권 10원짜리는 이불만 몇번 들썩하면 날아간다고 하셔서 구권따로 신권따로 모아뒀었는데……. 동전지갑으로 떠오른 할머니 생각이 [노름마치]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깊어졌다.
할머니는 [노름마치]에 등장하는 예인은 아니지만, 흥이 많이 분이었다. 사고로 등이 굽어 몸이 불편해지기 전까지 마당놀이나 비교적 가까운 양주별산대놀이 등 전통공연에 모시고 갔었다. 나는 곁다리로 항상 따라다녔었는데, 전통악기 소리, 끝나고 배우들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모습,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었던 탈이 드문 드문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전통이라는 것이 보통의 몸짓보다 과장되어 보이고, 익살맞다고 막연히 생각을 했다. 그 이상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관객이었고 무대위의 모습만 볼 뿐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예인의 모습을 무대에 오르기 이전부터 내려온 이후까지 눈에 보일 듯이 들려주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절절한 문장으로 그네들의 일생을 따라가 무대 위에 기어코 올리고야 만다.
[노름마치]의 첫 장 첫 번째로 등장하는 예인은 장금도선생이다. 선생과 저자의 첫번째 통화는 마치 우리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할머니는 살아계실적 아침마다 행길에 나가 지나가는 차를 세어보셨다. 그러다보면 노인분이 아침부터 길가에 나와있어서 걱정스런 마음에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할머니는 숫자를 놓칠세라 귀가 안들리는 척을 하셨다. 손으로 귀 두 번 가리키고, 손사래치고, 귀 두 번 가리키고, 손사래치고. 선생은 과거에 기생이었던 것이 알려질까봐 자신을 찾는 전화에 '폴새 돌아가신 언닌데, 멀리서 오셨으니까 대신 나가 인사나 드린다고' 남 이야기 처럼 말했다. 선생의 모습에 귀가 안들리는 척했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장금도선생은 먹고 살려고 기생이 되었다. 기생은 예인이었지만 천한 직업으로만 치부되었다. 아이가 크고 나서부터는 춤을 접었고 그 길은 잊고 살려했다. 선생은 춤을 먹고 살기 위해 배웠다지만, 당시의 먹고 산다는 의미와 오늘날의 먹고산다는 의미는 다르다. 내 부모형제가 그리고 내 아이가 '당장 오늘' 주려죽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춤은 명을 붙이기 위한 일이자 명이었다. 그런 선생에게 춤을 빼면 그 인생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선생이 춤에 발을 들인 이후부터는 춤에 빙의되었고, 춤에 선택당했다. 춤으로 인생의 수 많은 감정들을 그 때 그 때 표현하기에 즉흥적인 흐름은 당연했다. 형식지로는 판에 박은 듯한 동작만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선생의 암묵지는 인생을 담아냈기에 절실히 휘어잡는 흐름과 저절로 움직이는 순간을 조성했다. 내가 전통공연을 따라다니며 무대 위의 공연을 보고 박수칠 때, 할머니는 '얼마나 힘들었을거여'하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할머니는 춤에서 무대 아래의 인생까지 보고 오셨던 모양이다.
[노름마치]는 총 6장으로 각 장에 3분씩 장금도선생을 비롯한 18명의 예인의 이야기를 실었다. 18명의 예인들을 핀 조명으로 집중해서 조명했다면, 에필로그(부제-스크롤바를 올리며)에서는 예인들을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도와준 분들을 엔딩크레딧처럼 보여주고 있다. 보도자료라고 하나 무미건조하지도 덤덤하지도 않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까지 글로 전달하려고 노력하며, 책이 나오기까지 고마움도 전했다. 가장 큰 고마움은 저자의 할머니 '양춘댁'에 바친다고 한다. 책에 적은 글을 온통 바치고, 마지막 마침표 하나도 바둑알처럼 반질반질하게 닦아 바친다고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한달 전 쯤 10원짜리 동전으로 5000원쯤 모아 드렸었다. 그 이후에 더 모은 것이 내 방에 있는 동전지갑이다. 문득 얼마나 있나 세어봤더니 3000원쯤 됬다. 지폐로 바꾸려다가 책장 한쪽에 그냥 모셔두기로 했다. 반질반질하게 닦아 바칠 것은 없더라도 할머니를 추억할만한 것은 남기고 싶었다. 고작 2년이 지났을 뿐인데 자꾸만 기억이 흐려진다. 예인들의 춤사위를 본다면, 소리를 듣는다면 기억이 날 것도 같다. 그 때 할머니가 보았던 무대 아래를 흘긋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공연보고 나오는 길에 좋으면서도 좋은 내색 안하시는 그 표정도 기억이 날 것 같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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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아버지의 손찌검이 내 왼쪽 뺨에 뜨거운 불을 댕겼다.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나의 고집에 몇 번인가 아버지의 언성이 높아지는가 싶더니 밥상이 발에 차여 뒤엎어졌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뒤이어 날아온 손찌검이었다. 학창시절에 유도를 했다는 아버지는 특히 손이 매서웠다. 눈물이 핑 돌았다. 격한 통증이 생각마저 일시정지 시켜버렸는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통증만,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길을 간다는 건 이리도 아픈 것이구나 하는 통증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 때 꺾이고 말았던 내 꿈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진옥섭의 '노름마치'를 읽노라니 불현듯 다시금 그 때의 통증이 떠올랐기에 해 버린 것이다. 얼얼하고 화끈 거리는 것이 참으로 생생하게도. 하지만 지금 내게 그건 더 이상 아픔이 아니다. 정말은 부끄러움이다. 자신의 꿈을 믿고 그 꿈을 향해 줄기차게 펄떡거리던 '노름마치'에 나오는 예인들과 달리 이미 현실적인 삶 저 깊이 스스로 익사해 버린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하나의 인큐베이터가 되어 자신의 꿈을 소중히 품고 길러온 이는 한 번은 꼭 꿈이냐 현실적인 삶이냐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꿈은 이루기가 어렵고 현실적인 삶의 유혹은 달콤하기에 많은 이들이 결국은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현실적인 삶 아래로 익사한다. 날개를 접고 아래로 끌어당기는 현실의 중력에 스스로 몸을 맡기는 것이다. 현실적인 삶이란 그러한 익사자들로 넘쳐나는,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길에 만나게 된다는 망각의 강 '레테'와도 같다. 모두가 좀 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꿈이 있었던 지난날 자신의 모습을 망각하려고 기꺼이 레테의 강물을 들이키지만 그러는 가운데서도 익사당하지 않으려 끝까지 저항하면서 쉴 새 없이 두 팔과 두 다리를 휘저으며 헤엄치는 이들이 있으니 '노름마치'에 나오는 예인들이 바로 그러한 자들이다.
진옥섭의 '노름마치'는 익사당하지 않았던 자들의 기록이다.
예인의 길은 어려웠다.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길이 다 그렇듯이 남들보다 몇 배의 땀에 몇 십 배의 눈물을 더하여 여름날 장맛비처럼 오래도록 뿌려져야 가능했다. 힘들수록 사람은 누군가에게 기대고자 한다. 그렇게 누군가 그 길의 어려움과 수고로움을 인정해 주기라도 했다면 걷는 걸음이나마 조금은 수월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받게 되는 건 무시였고 참아야 하는 건 냉소일 뿐이었다. 길은 한 없이 고독했다. 자신의 그림자에게 말하고 묻고 논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대로(大路)로 가지 않고 작고 험난한 소로(小路)를 택한 자의 숙명이었다. 가난이 숙명이었듯이.
그저 사나운 물결 가득한 강물을 떠내려가는 널빤지와 같았다. 물굽이마다 바닥을 뚫으려는 송곳처럼 매서운 바윗돌들이 있었고 뒤집어엎으려는 굵은 가지들이 앞에서 떠다녔다. 아무리 노력한들 낭떠러지를 피할 순 없었고 천신만고 끝에 겨우 목적지에 도달했다 한 들 남는 건 텅 빈 배처럼 아무 것도 없기가 일 수였다. 그저 잠시의 허기만 달랬을 뿐.
사람들이 보는 춤에는 노름마치가 있었을지 몰라도 그들이 꿈꾸는 예(藝)에는 노름마치가 있을 수 없었기에 그들의 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래도 그들은 추었다. 불렀다. 뛰었다. 어느 때는 가슴에 움푹 배여든 설움을 추고 어느 때는 달랠 길 없는 허기를 몸으로 노래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한을 밤하늘을 덮듯 크게 너울거리는 하얀 무명 소매로 다독거렸고 자꾸만 속살거리며 포기하라고 부추기는 달콤한 유혹을 삼박자로 휘돌리는 발놀림으로 빠져 나갔다. 그들은 중단 없이 길을 받아들였고 또 새로이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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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분들의 예를 논할만한 깊이가 없다. 얼마만큼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가늠할 눈도 없다. 진옥섭의 경탄할만한 문장 속에서 내 눈이 향하는 곳은 무대 위 그들의 모습이 아니다. 마치 손으로 한 자 한 자 꼭 꼭 눌러가듯 내 눈이 머무는 곳은 무대 밖 그들의 삶이다. 공옥진은 신산했던 그네의 삶을 다 이야기하려면 "빼먹고 이야기해도 삼국지 일곱 권'이라 했다. 그 말 대로다. 그들의 삶에 비한다면야 무대란 그들의 진짜 모습은 하나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자 진옥섭은 그들의 예(藝)를 논할 때 자주 시간이라는 말을 쓴다. 그에게 '예(藝)'란 무엇보다 시간의 체험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란 지금 막 무대에서 펼쳐지는, 재현된 그 순간의 시간이 아니다. 정말은 집약된 시간이다. 그네들의 인생 여정을 속속들이 다 아는 진옥섭에게 무대 위 춤사위가 그 순간 막 태어난 것으로 결코 보일 리 없다. 진옥섭이 하나의 손동작을 보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거울 사이에 놓여있는 것과도 같이 무수한 손동작의 연쇄로 보이리라. 무수한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익사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지속된 그 장구한 손의 역사 자체로 말이다. 그건 저 깊은 뿌리로 부터 하나씩 차곡차곡 쌓여져 가지 가득 꽃으로 활짝 피어난 것과도 같으니 그만한 시간 체험 앞에서 누군들 압도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는 아예 절대의 시간이라고까지 말한다. 나도 그랬다. 비록 그들의 공연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하였지만 그 압도적인 집약된 시간만큼은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더 큰 건 부끄러움이었다. 별것도 아닌 난관 앞에서 날개를 쉬이 접어버린 나 자신이 정말 부끄러웠다. 병아리가 물을 마실 때 그러하듯이, 몇 번이나 책에서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그 먹빛 가득한 하늘이 그대로 내 마음 같았다. 재독했다. 할 수 밖에 없었다. 간절한 바람이 생겼으니까. 물들고 싶었다. 쪽빛이라면 쪽빛으로, 다홍빛이라면 다홍빛으로 그들이 보여준 헤엄에 오롯이 물들고 싶었다. 지쳐버린 내 손가락이 다시 꿈틀거릴 수 있었으면 했다. 발버둥을 멈춘 내 두 다리가 다시 힘차게 물살을 가르게 되기를 바랐다. 권태로 인해 정지된 내 폐가 다시 숨을 쉬며 무기력에 빠진 심장이 다시금 벅찬 의지로 요동치기를 빌었다. 커다란 징소리로 눈이 번쩍 뜨여지고 요란한 꽹가리 소리처럼 가라앉기만 하는 몸이 다시금 힘차게 헤엄치기를 바랐다.
재독을 끝낸 날, 꿈을 꿨다. 밤하늘 아래로 수많은 연어들이 뛰어오르며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꿈이었다. 힘차게 뛰어오르는 연어의 등이 달빛을 받아 쨍하니 눈부셨다. 강은 그러한 눈부심으로 가득했다. 연이어 들려오는 무수한 첨벙거리는 소리 때문에 강 자체가 고동치는 눈부신 은색 심장으로 보였다. 익사당하지 않는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어떠한 난관 앞에서도 헤엄을 멈추지 않는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사는 것이었다. 진정한 삶이란 바로 그러할 때라야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꿈에서 나는 너무도 그들 중 하나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고백이기도 한 이 글을 남겨둔다. 이제는 빈약한 이유로 다시는 쉽사리 날개를 접지 않겠다는 다짐의 증거로.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쓰는 지금 내 열 손가락엔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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