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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 과연 이들에게 존엄성은 존재하는가.『키친 하우스』
"'노예' : 과연 이들에게 존엄성은 존재하는가.『키친 하우스』" 내용보기
처음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관심이 갔다. 어느덧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팔려나간 권수, 베스트셀러라는 통계적 수치에 자리를 내어준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와중에 나의 눈을 끌었던 건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이전에, '북 클럽', '독자들의 입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라는 문구였다. 취향 차이야 분명 존재하겠지만 책을 팔고
"'노예' : 과연 이들에게 존엄성은 존재하는가.『키친 하우스』" 내용보기

 

처음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관심이 갔다. 어느덧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팔려나간 권수, 베스트셀러라는 통계적 수치에 자리를 내어준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와중에 나의 눈을 끌었던 건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이전에, '북 클럽', '독자들의 입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라는 문구였다. 취향 차이야 분명 존재하겠지만 책을 팔고자 하는 이들의 목적이 아닌 읽는 이들의 판단과 기준은 아직까지는 신뢰할 만하다. 또 한가지, 제목이 주는 친근함도 이 책을 눈에 넣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영어로 키친은 부엌을 뜻하지 않는가. 다른 이들에게는 부엌이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안락한 공간, 항상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곳,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대변된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만들고 머무르는 것을 즐긴다. 이 작품에서 주요 배경이 되는 키친 하우스도 그런 의미를 지니고는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만큼은 우리가 의례 생각하는 것처럼 무조건적으로 안락하고 평화로운 공간이 될 수는 없는 곳이며 때로는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일이 발생하는 공간이기도 하며 사람들의 아픔이 켜켜이 쌓여가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미국 남북전쟁 이전 1700년대의 '노예 제도'라는 중심 줄기를 두고 흑인, 백인, 유색인 노예들의 존엄성과 인간애, 사랑, 희망 등을 매개로 전개된다. 백인들의 주거지인 빅하우스와 노예들의 주거지인 키친 하우스에 주거하는 사람들의 신분에 따른 갈등과 반목을 다루면서 피부색이 다르지만 끈끈한 유대감으로 이어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사랑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작가 캐슬린 그리섬은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이 데뷔작이며 버지니아의 옛날식 농장으로 이주하면서 그곳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집 주변에서 '흑인 언덕'이라고 표기된 오래된 지도를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터전인 그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와 같은 궁금증과 의문에 사로잡힌다. 상상이 과했던 걸까. 아니면 신의 계시였을까. 그녀는 영화처럼 생생한 환영을 목격하게 되고 『키친 하우스』라는 소설이 탄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리고 주인공 라비니아와 벨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토대로 이 소설을 써내려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사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조금 답답했다. 백인 노예 라비니아와 빅하우스의 농장주의 숨겨진 혼혈아이면서 마찬가지로 노예로 살아가는 벨의 이야기는 다분히 들려주는 이야기에 머무를 뿐이기 때문이다. 부조리에 맞서고 인권 유린에 맞서가며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모습보다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는 신분의 굴레에 억압당한 이들의 모습만이 시종일관 전개되고 있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아마 그 시대의 현실도 책에서 묘사하는 사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걸 안다. 인간이 신분의 차이 앞에서 얼마나 나약해지고 맥을 못 추는지도 역사는 충분히 증언했고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조금 더 능동적이 될 수 없었을까. 어쨌거나 피부색이 다르지만 '가족(가족애)', '운명공동체' 라는 이름으로 희망을 내세우면서 마무리는 되지만 상처받은 이들은 그저 스스로 갈무리할 뿐 다른 방도가 없다는 현실을 목도하게 되어서 착잡함이 더한 것일수도 있다. 이 소설에서 피부색의 차이, 노예라는 신분은 고용주와 피고용인이라는 이름으로 눈가리개를 하고 주종 관계를 답습한다. 강자와 약자의 현실적 간극도 충분히 묘사가 되고 있다. 한 예로 농장주의 아들인 마셜이 자신의 위치에서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모든 여인을 유린하고 겁탈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비윤리적인 행태를 묵과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백인 노예의 신분에서 농장주의 안주인, 마셜의 아내가 된 라비니아가 예전과 다른 신분 상승 앞에서도 제대로 된 권리 행사를 하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환경이 사람의 뿌리를 어떻게 바꿔버리는지 이 소설은 비교적 적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랜 시간 몸에 밴 습성은 사람의 근본, 본성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워버릴 수도 있구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내가 더 화가 났던 것은, 라비니아 스스로 어떤 대책도 강구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철저히 망가뜨리려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었다는 거였다. 어쩌면 이런 비극은 라비니아가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고 백인 노예라는 운명을 짊어지면서부터 시작된 것이겠지만 말이다.

 

몇 해 전 『헬프』를 통해 인종 차별, 노예 제도와 같은 데 관심을 가졌다. 그 시대에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고 무자비해질 수 있는지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생각해보면 『헬프』 같은 경우는 20세기의 인종 차별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주인공들이 보다 능동적인 대처를 해 나갈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보다 더 열악한, 남북 전쟁 시대 이전 노예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될 것 같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비인간적이고 더 무자비하고 더 잔인한 동물이라는걸 우리는 역사 속에서 보고 느끼고, 현실 속에서도 보게 된다. 씁쓸하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공동체라는 걸 인식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면에 온갖 해악을 일으키는 주체가 인간이라고 증명하는 역사의 잔해를 볼 때마다 쓴 커피를 목구멍으로 벌컥벌컥 들이붓는 것처럼 씁쓸하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지만 읽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이 작품은 현실(역사)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이기 이전에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타국의 역사이지만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지 않는가-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는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스토리적인 면에서는 분통 터지는 걸 참을 수가 없다. 역자도 그걸 알았던 걸까. 주인공들의 수동적인 행태를 보면서 그래도 '사랑'을 말하고 '정의'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기를 당부하는 걸 보면 말이다. 부디 저자가 다음 작품에서는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환영,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떠나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머무르지 말고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해주길 바라면서...

 

가만가만 되뇌어본다.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인종 차별에서 자유로워졌다 할 수 있는가. 계급과 신분과 같은 지위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이 수직상승하기도 하고 하강하기도 한다는 걸 매일 같이 피부로 체감하지 않던가. 여전히 피부색이 다른 이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들고 반감으로 이어지기도 해서 무차별적인 테러가 감행되는 것을 세계 곳곳에서 목격하지 않던가. 피부색,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은 그 자체로 신성한 하나의 생명체임에도 불구하고 왜 흑과 백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를 인간의 피부색에 들이대야 하는 걸까. 물론 나도 이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피부색이 짙을수록 조금 더 위화감이 드는 걸 부인하지는 못한다. 부끄럽게도 그렇다. 노예 제도라는 게 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겨냥한 비인륜적인 행태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다고 밖에 할 수 없지 않을까. 그로 인해 인디언이라는 종족이 졸지에 노예로 탈바꿈하고 피부색이 다른 아프리카 대륙의 노동자들이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 어떤 인간도 인간 위에 군림할 수 없는 법이다. 세상에서 가장 선하면서도 악한 이들이 될 수 있는 게 인간이라면 과연, 인간에게 존엄성이라는 것은 있는 것인가. 나는 『키친 하우스』 속의 등장인물들을 뒤로하고 인간 자체에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w*****8 2013.07.10. 신고 공감 17 댓글 32
리뷰 총점 종이책
흑인노예가 거처하는 키친하우스엔 끈끈한 가족애가 있었다.
"흑인노예가 거처하는 키친하우스엔 끈끈한 가족애가 있었다." 내용보기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낭만적, 비상, 자유로움 그런게 연상되는 표지는 글의 내용을 조금 알고 있어서였을게다. <이책은> 서평모집 이벤트 당첨 도서. <저자는> 저 : 캐슬린 그리섬 ---발췌하다 책을 너무나 사랑해서 먹을 수만 있다면 먹어버리고 싶다는 캐슬린 그리섬은 캐나다 서스캐처원 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캐나다의 아름다운 평원 마을, 작고 긴밀
"흑인노예가 거처하는 키친하우스엔 끈끈한 가족애가 있었다." 내용보기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낭만적, 비상, 자유로움 그런게 연상되는 표지는 글의 내용을 조금 알고 있어서였을게다.

<이책은>

서평모집 이벤트 당첨 도서.

<저자는>

저 : 캐슬린 그리섬 ---발췌하다

책을 너무나 사랑해서 먹을 수만 있다면 먹어버리고 싶다는 캐슬린 그리섬은 캐나다 서스캐처원 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캐나다의 아름다운 평원 마을, 작고 긴밀한 로마 가톨릭 사회, 다른 종교와 문화에 열려 있던 부모, 텔레비전을 대신한 수많은 책 덕분에 캐슬린은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결혼, 비서, 교사, 간호사라는 네 가지 길에서 간호사를 선택한 캐슬린은 간호학교에서 공부한 후 병원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한 저자는 맨해튼의 그래픽 회사에서 광고 일을 하다가 재혼한 남편 찰스와 함께 뉴저지의 작은 농장으로 가서 생활하게 된다. 농장 생활에 흥미를 느낀 부부는 커다란 집과 넓은 땅이 있는 버지니아의 옛날식 농장으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남편과 함께 몇 년 동안 농장을 복원해나가면서 저자는 집과 그 주변을 둘러싼 땅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흑인 언덕’이라고 표기된 오래된 지도를 발견하는데, 그것은 그녀의 첫 소설 《키친 하우스》의 시발점이 된다. 

<책내용 맛보기>

출판사 리뷰中에서 ---발췌하다

2010년 무명작가의 첫 소설이 조용히 출간되었다. 여기저기 출판사에 투고하고 거절당하기를 수십 차례 반복한 뒤 간신히 출간된 책이었다. 출판사에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당연히 특별한 마케팅도 없었다. 그런 책이 2012년 화제의 책으로 떠오르고 당당히 뉴욕타임즈와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인터넷 아마존 서점에 독자 리뷰가 1,500여 개를 넘어섰고 할리우드에서는 영화화하기 위해 판권까지 사갔다. 아무리 유명 작가라도 신간이지 않고서는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를 수 없는 시대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 배경은 바로 독서클럽에 있었다. 미국 전 지역에는 다양한 형태의 독서클럽이 있는데 그곳 회원들 사이에서 이 책 《키친하우스》는 이미 “결말이 궁금해 책읽기를 멈출 수 없는 책”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었던 것이다. 서점 주인들은 매대에서 내려놓았던 이 책을 다시 진열하기에 바빴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도서 시장에서 이렇게 서서히 타올라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는 처음”이라는 어느 서점 주인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공격적이고 교묘한 마케팅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이 책 《키친하우스》는 순수한 책읽기 모임을 통해 독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어떤 면에선 순박한 베스트셀러라고도 말할 수 있다. 

<책읽은 소감>

나의 취침시간은 12시를 넘기지 않는다. 늦어도 10분여를 넘길까 대개는 12시를 기점으로 잔다. 그런 내가 이 책을 40여페이지를 남기고 자려다 궁금해 읽고 나니 1시였다. 담날이 휴일도 아닌 출근을 해야는데. 그만큼 궁금하고 궁금해할수록 오른쪽 페이지가 왼쪽으로 넘어가는 속도가 빨라진다. 내용도 읽기에 술술술 연결되는게 장점이다. 특별한 미사여구를 쓰지 않고도 글이 전달되는 진심이 있다. 또 라비니아와 벨 두 소녀 즉, 백인 노예와 흑인 노예의 소제목아래 번갈아 가면서 둘의 글이 주를 이룬다.

 

이런 방식은 몇몇 책에서 만나봤는데 같은 싯점을 보는 다른관점을 알 수 있기도 하고, 같은 상황을 저마다의 입장과 속내로 알 수 있기에 더 포괄적인 심리묘사를 아는 장점도 있다. 여기선 그리 복잡하게 쓰여지지 않았으며 라비니아 한 편 읽고, 그담이 벨 혹은 벨 읽고 라비니아다. 과거 회상씬이 있어서 문맥이해에 난조를 보이는 방식으로 혼선을 주거나 복선을 까는 방식도 없어서 금방금방 이해전달이 빨라진다. 다만, 라비니아는 나이어린 6살 백인 소녀로 벨은 어느 정도 10대 중반을 넘어서는 나이다 보니 시선이 조금 차이가 난다. 그러나 서로가 성장하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공감대 형성도 되고 여전히 의아한 오해로 말미암아 인생의 갈림길에서 최악의 선택을 하는 지경에도 이른다.

 

키친하우스는 흑인노예가 거처하며 빅하우스의 백인주인 가족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 노예다보니 주인님은 하늘이요 자신들은 아무리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아도 그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하는 기막힌 삶. 노예해방문서를 받으면 자유의 삶이 된다지만 그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움을 잘들 안다. 심지어 같이 자식을 낳아도 백인주인 마님의 아이를 위해 젖을 먼저 먹여야 하고, 백인주인 마님이 임신중이면 겁탈을 당할지라도 그 대용이 되어 삶을 살아내야는 숙명. 이유불문하고 주인 눈밖에 나면 부부 생이별말고도 자식까지 떼어놓는 백인의 횡포. 주인님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는 그것마저 세습이 되도록 양육되어지는데...

 

백인 주인님은 '벨'을 끔찍히 위하나, 속사정을 알 길 없는 마님은 벨을 남편의 흑인정부로 오인하고 평생을 미워한다. 백인마님이 할 수 있는건 흑인노예들을 부리는 것 말고는 별반없다. 그러자니 지독한 외로움에 향수병에 지친 마님은 아편을 조금씩 하다가 중독 상태에 이른다. 작은 주인님인 아들은 아편 중독원인이 벨이라 여겨 지독한 혐오감과 증오심을 갖는다. 그런 그가 노예숙소의 감독관과 친해지고 못된 짓들을 답습하는데 그걸 보는 키친하우스의 노예들은 불안 아슬하다. 주인님이 들인 백인영어교사가 작은 주인님을 겁탈하면서 더욱 보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자 모두 작당하여 그를 살해하기에 이르지만 아들은 고마움을 모르고 포악성은 날로 커져만간다.

 

백인 노예로 오게 된 라비니아를 키친하우스의 흑인노예들은 아비니아라 부른다. 어린 라비니아는 부모를 배에서 잃고 오빠마저 다른 곳으로 팔려 헤어지자 그 충격이 커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데, 벨에게 줘 기르게 한다. 자신의 상처도 큰 벨이 아이를 맡아야 하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지만 그네들은 가족애 안에서 서로 보듬는다. 벨 역시 농장주의 숨겨진 딸이었던 것. 주인님이 흑인노예를 구해줬다가 벨을 낳았고 주인님도 그 여인이 난산끝에 사망하지 않았다면 같이 살았을만큼 위했다. 결혼에 별반 관심없던 농장주가 마음을 주었던 터라 농장주의 어머니는 벨을 위해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고 지식도 주입했으나 백인마님과의 결혼으로 자연히 빅하우스에서 키친하우스로 이동. 벨에게는 할머니가 계시던 때가 봄날이었다.

 

중략

 

이 책을 읽으며 마치 영화 한 편을 본 듯하다. 대개 영화는 백인문화를 강조하면서 수난을 당하는 흑인문화는 비중을 작게 한다면 이 책에선 반대다. 흑인노예들의 끈끈한 정이 얼마나 정감있고 순리를 따르는지 따스하기만 하다. 백인과의 혼혈이자 농장주의 딸인 벨을 감싸안은 그네들의 포용력. 그 안에서 벨이 자생하기까지의 눈물겨운 시간들. 농장주의 딸이면서 숨겨진 여인으로 작은주인의 겁탈 아래 아이를 출산하고 그것마저 숨겨야 하는 상황...백인노예인 아비니아를 보듬고 그녀가 적응해서 키친하우스를 집으로 여기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김은 훈훈함 그 자체다. 그런 아비니아가 주인 마님이 되어 아편을 하게 되는 아이러니함에다 흑인노예들과의 격차를 둬야하는 빅하우스의 생활 등등.

 

치장이나 하고 파티나 하는 모습이 영화에서 그려지곤 하던데 어쩜 빅하우스를 보니 그런 것들 말고는 백인마님은 할 일이 없더라. 자신의 취미나 특기가 특별히 있어야는데 갇혀살다시피하는 생활은 그녀들로 하여금 남편만을 의지하게 하고. 남편이 그 자리를 채워주지 못하니 자식이라도 대리만족으로 충만해야는데, 자식마저 엇나가는 장남에다 딸은 사고로 잃고 그 여인이 미치지 않으려고 현실을 외면하는 게 약을 한다는 것. 달리 어찌할 수 없는 백인마님의 슬픔도 딱하다. 라비니아 역시 백인마님이 되나 농장주 따라가려면 어림 반 푼어치도 안되는 남편인지라 그녀의 깊은 시름은 마를 날이 없다. 키친하우스의 흑인노예들이 가족이건만 그네들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비통함에 빠지고...

 

책은 비교적 순한 편에 속하고  잘 읽힌다. 475페이지가 술술술 넘어간다. 그네들의 삶을 따라 행군하는 시간이 지리하지 않다. 라비니아와 벨을 통해 백인과 흑인의 생활이 연결되어 오가는데 그 안에서의 희노애락을 맛본다. 흑인들의 결속력과 가족애. 주인님을 향한 맹복종이 그나마 살 길이요 포악한 주인님에게 맞아죽어도, 자식을 뺏겨도, 자식이 유린당해도, 말없는 침묵이 흐르는 눈물이 그네들의 숙명이다. 하지만, 서로를 알기에 말없이 당해도 서로는 말없이 위로한다.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슬프다. 눈물난다. 그네들의 고통이 전달되는 고통이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떠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된 게 숙명이다. 그 좁힐 수 없는 간극은 세월따라 많이도 발전하여 오바마 라는 흑인대통령이 재선을 하는 단계까지 이르렀으나 뿌리깊은 차별은 아직도 존재한다고 본다.



k******5 2013.07.07. 신고 공감 8 댓글 18
리뷰 총점 종이책
키친 하우스 / 캐슬린 그리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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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남에게 자유를 빼앗겨 부림을 받는 개인이나 계층... 자유와 인간으로서 권리를 박탈당하고 한낱 물건과도 같은 취급을 받았던 그들..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백인들의 부림을 받아야만 했던 그들.. 인종차별, 노예제도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흑인 노예들의 처참했던 삶이었다. <뿌리><컬러피플> 최근의 <헬프>등을 보면 흑인노예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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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남에게 자유를 빼앗겨 부림을 받는 개인이나 계층...

자유와 인간으로서 권리를 박탈당하고 한낱 물건과도 같은 취급을 받았던 그들..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백인들의 부림을 받아야만 했던 그들..

인종차별, 노예제도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흑인 노예들의 처참했던 삶이었다.

<뿌리><컬러피플> 최근의 <헬프>등을 보면 흑인노예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비극적인 역사들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라비니아는 백인이면서 노예였다.

당시 아일랜드계 백인 계약 노예들이 실제로 많은 수가 존재했다고 한다.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하던 중 부모님은 사망하고 오빼와는 헤어지게 되는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채 라비니아는 고아가 되어 버지니아의 한 농장의 노예로 팔려오게 된다.

아무것도 먹을수 없었고 어느 곳에서도 발 붙일 수 없는 공포.. 그러한 라비니아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 곳이 바로 노예들이 모여 살던 키친 하우스였다.

그곳에서 만난 벨 그리고 마마 마에와 파파 조지 그리고 그들의 쌍둥이 아이들 파니와 비티...

그 모든 식구들이 라비니아를 다시 먹고 , 웃고, 일어서게 해 준 새로운 가족이되었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치킨하우스에서 노예생활을 시작하게 된 라비니아와

치킨하우스의 주인이자 주인과 흑인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반은 백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사생아 벨의

이야기가 교차식으로 전개된다.

빅하우스의 백인들의 삶 그리고 키친하우스와 노예숙소에서 지내는 노예들의 삶..

겉으로 보기에는 극과 극의 삶의 모습이지만 인간적인 교감과 애정이 흐르는 곳은 빅하우스가 아닌 키친하우스였다.

자주 집을 비우는 주인 제임스 그리고 그 공허를 아편으로 달래며 점점 병들어가는 안주인 마사 마님..

그런 부모 아래서 잔정 없이 가정교사에 의해 강압적인 교육을 받게 되는 아들 마셜과 귀여둠이 딸 샐리

그러한 그들의 삶보다 비록 누추하지만 따뜻한 통나무집에서 서로 사랑하며 보듬어주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었다.

 

 

 

 

 

 

 

 

 

   < 빅 하우스>의 이미지.. 

 

 

 

 

 

 

 

 

 

 

 

 

 

 

 

 

                     <키친 하우스>의 이미지

 

 

 

 

라비니아는 백인노예였기에 아무래도 흑인 노예와는 좀 다른 운명이었다.

종신 노예와도 같았던 흑인노예와는 달리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계약이 만료되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원했던 것은 물리적인 신분의 자유가 아닌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지 않고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하는 그 농장에서 평생 살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점점 병세가 심해지는 마님과 함께 마님의 언니가 살고 있는 도시로 나오게 되는 라비니아..

그곳에서 그녀는 성장을 해 어느 덧 계약이 끝나는 17살을 맞이하고 17살이 되던 그 해 농장의 아들인 마셜에게 청혼을 받는다.

그녀는 자신이 안주인의 입장이 되면 자신이 사랑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청혼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안주인이 되지만 그것은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일이 되어버린다.

 

시골의 농장

그곳에서 살아가는 백인들과 흑인노예들..

그 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폭력으로 흑인노예들이 상처를 입고 죽기도 하고

강간으로 피가 섞이는 아이들이 태어난다. 그렇기에 복잡한 가족사를 만들어내면서도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지않아 자신의 자식을 학대하고 거래까지하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아버지인 제임스가 죽고 새롭게 주인이 된 마셜은 어린시절부터 그들을 미워했고 못살게 굴었었다.

라비니아와의 결혼으로 무엇인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의 폭력성은 점점 극에 달했고

결국 도박과 술로 농장의 대부분을 잃고 결국은 노예들을 팔기에 이르는데 그렇게 됨으로 인해 생이별을 해야하는 마마와 파파의 가족들 그리고 그것에 반항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는 그들의 처절함이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야기의 첫장면은 한 여인이 정신 없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허둥대며 이성을 잃고 무엇인가를 향해 달려가는 한 여인. 그녀의 뒤를 따르는 어린 딸.. 그 딸과 함께 도학한 언덕위의 한 나무위에 매달려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게 되는...

그리고 그 장면은 마지막에 다시 재현되며 비극의 종말을 알리게 되는 형식으로 다시 한번 각인이 된다.

결국 모든 것은 잿더미가 되어버리고 그들의 비극도 그 잿더미와 함께 묻혀버리게 된다.

그 비극의 잿더미 위에 다시 서게 된 라비니아와 벨..

그 둘은 그곳에 남아있던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붙잡고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는

따뜻하고 행복한 벨 오스크를 만들기 위해 다시 손을 꼭 잡아본다.

 

라비니아와 벨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잠시의 틈도 없이 20여년의 세월을 이야기 해 준다.

읽는 내내 흑인 노예에 관한 다른 책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백인들에게 착취당하고 폭력을 당하는 그들의 삶에는 크게 다른 것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 폭력을 행하는 백인들의 모습과 대비되는 그들의 삶이

오히려 더 와 닿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상황속에서도 가족이라는 핏줄이라는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지켜나갈 수 있는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내가 어떤 희생을 치뤄야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희생이 죽음이 되더라도 그들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이야기를 읽기 전 과연 그들의 삶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어떤 희망이 숨겨져 있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얼마전에 읽었던 <하얀 라일락>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채 빼앗겨버린 그들의 또 다른 희망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 이야기는 희망이라는 단어보다는 사랑이.. 더 어울리는 이야기라는 생각이다.

파파는 라비니아에게 얘기해 준다.

"저 닭들을 봐. 어떤 닭들은 갈색이고 어떤 닭들은 하얀색이고 또 검은색도 있어. 저 닭들이 병아리였을 때 어미 닭과 아빠 닭이 그런 걸 신경 썼을 것 같니?"(p38)

 

마마는 라비니아에게 얘기해 준다.

"라비니아. 분명히 말하마. 피부색이 어떻고, 아버지가 누구고, 엄마가 누구고는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는 가족이고, 그래서 서로를 걱정하는 거야. 가족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더 강해지는 법이지. 우리 모두 똘똘 뭉쳐 서로 도와야 한다. 그게 가족의 진짜 의미란다. 어른이 되면 너도 가족의 의미를 알게 될 거야. " (p206)

작가인 캐슬린 그리섬은 무명작가였다. 처음에 이 책은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 책이 화제가 되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독서클럽을 통해서라고 한다. 어떤 홍보나 마케팅 전략이 아닌 책읽기를 좋아하는 이들을 통해 알려진 책이어서인지 더 정감이 가는 듯 했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 나가는 두 여인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기에 충분했고 그녀들이 쏟아내는 이야기속의 많은 사건들은 책을 덮을 수 없는 극적인 것들이었다.

백인. 흑인.. 이기 이전에 같은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이기에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

그 사랑또한 그 무엇이 전제조건이 되면 안 된다는 것..

그런 것들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이야기였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개성이 강하고 극적인 이야기들도 많아 머리속에서는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혹시 영화로는 만들어지지 않나.. 기대가 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13.07.03. 신고 공감 8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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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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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황무지 개간과 사금채취,탄광작업,농사일을 하는데 유럽인들을 처음에는 고용했는데 날로 늘어만 가는 작업량을 감당하기에는 벅찼기에 싸고 평생 부릴 수 있는 흑인을 노예로 삼으려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17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흑인노예 무역은 일종의 사는 자와 파는 자와의 상품거래로서 흑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인종차별과 멸시,억압,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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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황무지 개간과 사금채취,탄광작업,농사일을 하는데 유럽인들을 처음에는 고용했는데 날로 늘어만 가는 작업량을 감당하기에는 벅찼기에 싸고 평생 부릴 수 있는 흑인을 노예로 삼으려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17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흑인노예 무역은 일종의 사는 자와 파는 자와의 상품거래로서 흑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인종차별과 멸시,억압,유린을 당해야만 했다.국민학교 시절 사회시간에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노예와 채찍을 들고 흑인들을 감시하는 백인들의 삼엄한 모습이 선연하다.흑인노예 제도가 1808년 공식적으로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실제 미국 남부의 사탕수수밭 등의 농작지에서는 절대적으로 싸고 부려먹기 쉬운 흑인노예들을 계속 착취하였던 것이다.

 

 노예 무역은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간 흑인들은 오로지 상품으로만 취급되었다. 그들은 두 사람씩 쇠사슬에 묶인 채 "책꽂이의 책들처럼" 몇 달 동안의 항해 끝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송되었는데, 초기에는 항해 도중의 사망률이 40%에 달하기도 하였다. - 네이버 -

 

 인종차별은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인종적으로 우월의식과 선민의식이 DNA안에 흐르고 있는 일부 계층들은 아직도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을 멸시하고 차별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이제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선조가 흑인의 혈통이기에 이러한 현상은 수그러들고 모든 인종,인류가 상생하는 시대를 맞이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18세기 후반 어느 대저택에 수많은 흑인노예 즉 하인들을 거느리고 있는 마셜집안과 그 휘하의 대표적 노예인 라비니아와 벨을 중심으로 다양한 에피소드,사건전개,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심리적 갈등 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캐슬린 그리섬작가 이 글이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노예제도,노예 역사와 관련한 도서,탐문 등을 중심으로 매우 정교하면서도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언어로 당시의 노예제도 및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당시에는 인종차별이 당연시 되었지만 노예,하인의 몸으로 주인에게 늘 복종해야만 하는 처지에서 그들의 고달픔과 고통,상처를 마음으로 느끼고 동류의식을 느낄 때에는 마음이 짠하게 다가오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아일랜드계이면서 백인인 라비니아는 부모형제를 잃고 혼자가 되어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 오고,농장주의 사생아로서 노예로 살아가는 혼혈아인 (그녀는 흑인 출신)이 교차식으로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다.1791년부터 1810년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은 서로의 입장에서 농장주 및 같은 처지인 하인들을 바라보며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 특히 노예이고 하인이어서 마음대로 부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백인 누군가에게 팔아 넘길 수 있다는 극도의 오만과 편견의식은 읽는 내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어린 라비니아와 벨은 열 살을 갓 넘은 때부터 이십대로 넘어가기까지의 과정을 작가는 담담하면서도 실감나게 잘 묘사하고 있다.아마 이 글은 백인이 노예를 착취하는 과정의 극히 일부라고 생각한다.

 

 라비니아는 주인이 거처하는 빅하우스에 주로 머물고 벨은 하인들의 숙소인 키친하우스에 주로 머문다.벨은 글을 배우며 바른 생활습관을 익혀야 한다는 파이크 할머니의 따뜻한 조언을 들으며 세상을 깨우치고 그녀에게 파이크 할머니는 세상의 전부였다.라비니아도 주인집에 머물면서 마님의 시중을 들기도 하고 틈이 생기면 벨이 있는 키친하우스로 가서 그녀와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기도 한다.주인은 배 사업과 농사일을 병행하는데 농사일이 안될 때에는 하인들을 윽박지르고 죽이려 들려고도 한다.그럴 때 하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마마는 보기 좋은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보여 준다.당시에는 황열병이 유행하여 도리가 죽게 되는데 벨은 크게 상심을 한다.대저택과 노예,하인을 거느리던 주인도 세상을 떠나면서 집안의 상속권을 아들 마셜이 쥐게 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점입가경이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마셜은 졸부와 같은 근성에 언어 폭력과 강간을 일삼는 파렴치한이다.술로 시간을 보내고 그의 편은 오로지 랭컨(농장 감독관) 뿐이다.노예,하인들이 그의 삐닥한 언행을 조언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려 하지만 듣지를 않는다.빅하우스의 마사 마님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향정신성 마약에 의존하고 벨의 자식을 애지중지한다.그러는 사이에 마셜은 라비니아를 아내로 삼게 되고 그들의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마셜은 또 다른 여인과 잠자리를 나누고 아이까지 갖게 되면서 라비니아는 극도의 배신감과 절망,회한을 갖게 된다.한편 윌은 자신의 농장으로 벨을 비롯한 동료 하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가고 마셜의 성격은 사이코에 가까울 정도로 극도의 포악성과 정신적 불안정성을 보이며 자기 멋대로 행동하기를 일삼는다.

 

 결국 마셜의 잔혹성과 횡포,포악성에 못이겨 빅하우스에 불을 지르고 라비니아,벨을 비롯한 노예가족들은 각자의 삶을 향해 뿔뿔이 흩어지는데 벨은 키친하우스를 떠나지 않고 몇 년 뒤에 세상을 떠나고 주인의 묘 옆에 안장된다.당시 흑인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그저 주인이 시키는대로 따르고 비위를 맞춰 주는 것이 최선이었다.언제 어디로 방출되어 팔려갈지 모르는 극도의 불안한 상황에서 그나마 노예들(마마를 비롯한 파파,제이콥 아저씨,윌 등)끼리의 우의와 애정이 묻어 났기에 훈훈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느낄 수가 있어 다행이다.계약노예인 백인 라비니아와 주인의 사생아인 벨이 보여준 우정은 결코 잊을 수가 없는 장면이다.





j******6 2013.07.15. 신고 공감 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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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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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통해서 입소문을 나기 시작했고 베스트셀러에까지 오른 작품이라는 글에 어떤 책인지 내심 많이 궁금했다. 흑인노예와 백인소녀의 비슷한 이야기는 다른 책을 통해서 읽어보았다. 읽을때마다 특히 흑인여성노예들의 삶에 많이 안타까워하기도 했고 화가 날 때도 있었다. '키친 하우스' 역시 안타깝고 애처로운 감정이 남았다.     키친하우스는 흑인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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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통해서 입소문을 나기 시작했고 베스트셀러에까지 오른 작품이라는 글에 어떤 책인지 내심 많이 궁금했다. 흑인노예와 백인소녀의 비슷한 이야기는 다른 책을 통해서 읽어보았다. 읽을때마다 특히 흑인여성노예들의 삶에 많이 안타까워하기도 했고 화가 날 때도 있었다. '키친 하우스' 역시 안타깝고 애처로운 감정이 남았다.  

 

키친하우스는 흑인노예들이 기거하는 장소를 의미하는 말이다. 키친하우스의 반대는 빅하우스... 얼핏 생각하면 누구나가 선호하는 삶은 빅하우스 안에 있지만 정작 사람들의 온기나 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키친하우스가 가지고 있다. 스토리는 두 명의 화자가 번갈아 가며 이끌어 간다. 한 명은 아일랜드계 소녀 라비니아로 부모님과 오빠와 함께 새로운 삶을 위해 떠난 길에서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만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오빠와도 생이별을 한 라비니아는 기억을 잃어버린채 버지니아 톨 오스크에서 대농장을 운영하는 주인남자와 함께 도착한다. 주인남자는 라비니아를 나머지 한 명의 화자인 벨이란 흑인노예에게 주방일을 가르쳐주라며 맡긴다. 벨은 주인남자의 딸이지만 빅하우스를 둘러싼 인물들에게는 주인남자의 여자란 소문이 있다. 피부색이 다른 라비니아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던 벨도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하고 라비니아 역시 키친하우스의 사람들이 가족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가진 것이 없고 삶이 힘들지라도 서로가 서로의 상처나 아픔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키친 하우스 사람들의 모습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먼 빅하우스의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비쳐진다.

 

그나마 흑인노예들의 삶을 이해하던 농장주의 죽음으로 인해 라비니아는 여주인의 언니가 살고 있는 윌리엄스버그로 가게 된다. 키친 하우스를 떠나고 싶지 않았기에 항상 라비니아의 마음속에는 다시 돌아갈 날을 기다리게 된다. 라비니아가 떠난 후 남겨진 벨과 서로의 사정을 편지를 통해 교환하다 윌리엄스버그를 찾은 주인 아들 미셜과 재회한다. 라비니아가 한번의 우여곡절 끝에 미셜과 결혼하면서 다시 버지니아 톨 오스크로 돌아오게 되는데......

 

스토리는 이미 우리가 그동안 읽었거나 영화를 통해서 보았던 것처럼 라니비아와 흑인노예들의 삶이 너무나 가혹하게 흘러간다. 스토리는 우리가 욕하며 본다는 막장드라마의 전형적인 모습들이 책 안에 담겨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없어서... 사고팔수 있는 물건과도 같은 대접을 받아야만 하는 흑인들의 모습이 마음에 아프게 남았다.

 

라비니아를 오래?도록 기다려 온 윌과 결혼해서 키친 하우스를 방문했다면 하는 생각도 들고 벨의 아버지가 좀 더 오래 살아서 그녀의 존재를 가족들에게 운을 띄었다면... 벨의 사랑을 이해해서 벤과 맺어주었다면... 증오에 가까운 마음으로 벨을 범하는 남자도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고 벨도 마음의 상처를 덜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기도 했다.

 

키친 하우스와는 느낌이 다르지만 흑인노예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중에 내게 재미와 감동을 주었던 '헬프'가 기억이 난다. 이기적이고 몰상식한 백인주인 여성들에게 반기를 든 흑인여성들의 모습이 통쾌하고 유쾌하게 담겨 있어 아주 좋았는데... 키친 하우스는 힘이 없기에 한번도 제대로 반기를 들지 못하는 모습과 겹쳐져 더 안타깝게 다가온 책이다. 



q******5 2013.07.08. 신고 공감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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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노예와 백인노예의 가족보다 진~한 사랑과 음식이야기 -키친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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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노예와 백인노예의 가족보다 진~한 사랑과 음식이야기 -키친 하우스     제목에서부터 가족 간의 따스함과 군침 도는 음식냄새가 솔~솔 풍긴다. 그러다 백인 주인님이 살던 빅하우스를 위해 음식과 노동을 지원하던 노예들의 숙소가 키친하우스라는 설명에 어두운 이야기겠구나 했다. 하지만 읽어 내려가면서 따뜻함과 끈끈함을 느끼게 되는 소설이다. 와~ 대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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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노예와 백인노예의 가족보다 진~한 사랑과 음식이야기 -키친 하우스

 

 

제목에서부터 가족 간의 따스함과 군침 도는 음식냄새가 솔~솔 풍긴다.

그러다 백인 주인님이 살던 빅하우스를 위해 음식과 노동을 지원하던 노예들의 숙소가 키친하우스라는 설명에 어두운 이야기겠구나 했다.

하지만 읽어 내려가면서 따뜻함과 끈끈함을 느끼게 되는 소설이다. 와~ 대반전이다.

 

키친하우스.jpg

 

 

노예들의 고단한 생활, 백인들의 잔인함과 비인간성을 다루고 있지만 이 소설 속에 흐르는 것은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이 테마다.

한 핏줄이 아니어도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다면 형제나 가족 이상의 정을 느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하나 보다.

어렸을 때의 사랑받고 인정받은 추억, 사랑 없이 학대 속에 자란 경험 등이 자라면서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세상 어디에나 똑 같나 보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삶에 생기를 주지만 희망을 잃는다는 것은 살아갈 의욕을 상실하게 하나 보다.

 

 

노예로 사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 법으로도 , 인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었기에 그저 당하는 게 전부였던 노예들의 세계.

운명이거니 숙명이거니 하며 받아들이던 시절의 인권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그렇게 복종만 강요되는 세상에서도 가족 간의 정이 누구보다 끈끈했던 흑인노예와 백인노예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사랑과 믿음의 힘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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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캐슬린 그리섬. <키친하우스>는 그녀의 첫 소설이다. 출간 직후 무명의 신인 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미국의 여러 독서클럽에서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출간 2년 만에 '2012년 화제작'으로 떠오른 소설이라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통해서 입소문이 나서 베스트셀러에까지 오른 작품이라는 설명에 공감이 간다. 기존에 읽은 노예들의 이야기와는 다른 관점이다.

이 책은 남북전쟁 이전 18세기, 버지니아 주 담배농장에서 살았던 노예들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소설이다.

 

 

백인 노예 소녀 라비니아.

라비니아는 아일랜드계 교사였던 부모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모든 기억을 잃은 채 키친하우스로 오게 된다. 백인이면서도 주인님의 노예가 된 것이다. 어리고 제대로 먹지 못하는 자신에게 따뜻한 온정을 베푸는 흑인 노예 부부를 마마와 파파라 부르며 따르게 된다. 그리고 몇 살 위인 혼혈 노예 벨이 라비니아를 거의 딸처럼 키우게 되면서 그녀에게서 친숙한 정을 느끼게 되고......

주인님이 돌아가시고 마님의 병세가 나빠지자 헌신적인 간호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받아 마셜의 이모님이 사는 윌리엄스버그로 동행하게 된다. 거기서 다른 삶을 모색해보지만 달리 방법은 없고, 계약노예 신분에서 벗어날 때 쯤 멋진 청년이 된 마셜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윌리엄스버그에서의 좋은 환경보다도 늘 키친하우스를 동경한 그녀. 소꿉놀이 흑인 친구들, 흑인 부모들이 늘 그리웠던 그녀는 드디어 마셜과 함께 돌아오는데...

 

 

흑인 노예 벨.

벨은 흑인엄마와 빅하우스 주인님 사이에 태어난 혼혈 딸이다. 어렸을 적에는 빅하우스에서 사랑받고 살았지만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주인이 백인 아내를 맞이하면서 키친하우스로 쫓겨난다. 그래도 주인은 다른 사람들 몰래 자신의 딸을 아끼고 특별한 감정을 갖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마님은 남편의 정부로 오해한다. 그녀의 아들 마셜도 자신에게는 없는 아버지의 사랑이 벨에게 향하는 것을 보며 오해와 증오심을 키우게 된다. 마셜의 증오와 성폭행으로 인해 아들까지 낳으면서도 자신이 마셜의 누이라는 말도 못하고 그저 참기만 한다.

거대한 법과 제도 앞에서 아무 힘도 없는 그녀는 증오심을 키우기는 하지만 키친하우스를 너무도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곳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로, 자신의 사랑을 가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아무리 힘든 일에도 견디게 하나 보다.

 

 

이 소설은 노예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노예제도의 부조리에 맞서서 노예해방을 외치진 않는다.

해방문서를 받아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보다 어릴 적부터 자신을 받아주고 사랑해주던 가족들과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혈연이 아니어도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다져진 우애가 가족 이상의 뭉클한 감동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피부색이 다른 두 노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흑인과 백인, 노예와 주인, 속박과 자유보다

가족, 사랑, 선과 악 에 대한 기본 원칙들을 말하고 있다.

더 행복해야 할 빅하우스는 무너지고 불행해 보이는 키친하우스는 살아남는 것을 보면서 사랑과 희생을 생각해 본다. 어렸을 적에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와 애정 결핍 속에 자란 아이의 결말도 흥미롭다.

   

노예제도의 비인간성을 목도하고, 노예들의 고달픈 하루를 보기도 하지만 결국 사랑이 승리함을 보면서 가슴 한 쪽이 따스해지는 소설이다.

키친하우스를 통해 요리되는 각각의 음식들과 빵들에 대한 묘사는 너무도 생생해서 직접 맛보는 듯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노예들의 대합창이고 대서사시다. 가정의 따스함을 노예시절을 통해 풀어낸 매력적인 이야기다.

 

 * 이 책은 한우리 서평단의 지원을 받았답니다.^^

a******7 2013.07.13.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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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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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하우스>는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때는 요리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가볍게 맛있는 이야기.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책 속 맛난 요리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흑인과 백인의 슬프고도 가슴이 아리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한꺼번에 읽는 것이 어렵기까지 한 이야기였다. 엄마 같은 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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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하우스>는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때는 요리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가볍게 맛있는 이야기.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책 속 맛난 요리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흑인과 백인의 슬프고도 가슴이 아리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한꺼번에 읽는 것이 어렵기까지 한 이야기였다. 엄마 같은 흑인 소녀 벨과 가족에 대한 상처를 지니고 있는 백인 소녀 라비니아의 내레이션이 소녀에서 성인이 되는 오랜 기간 동안의 고통을 잠잠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이어진다. 18세기 말, 버지니아의 한 담배 농장에서 벌어지는 흑인과 백인들의 이야기가 한 순간도 편안하게 읽는 독자를 놓아두지 않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톰아저씨의 오두막>과는 또 다른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 <헬프>를 보았을 때 단순하게 가졌던 궁금증의 차원이 아니라, 내가 마치 그 장소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오슬오슬 전해진다.

농장주의 딸이면서도 노예로 살아야만 하고, 아버지의 정부라는 오해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떠날 수 없는 갑갑함을 나는 벨이 되어 느끼고, 백인 고아 소녀 라비니아의 아픔을 느끼면서  무언가 찌꺼기가 가슴을 꽉 메우는 기분을 느꼈다. 어떤 조건 때문에 인간이 인간처럼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안도한다.

벨과 라비니아, 그리고 마마, 파파, 그의 자식들은 나무랄 데 없는 가족이다. 피부색을 떠나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가족. 그들에겐 피부색이 중요하지 않다. 세상이 없다면.... 벨과 라비니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각종 일들을 접하면서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 자신들이 만들고 그어놓은 선이 얼마나 잔인한지 볼 수 있는 눈을 가져도 과연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불과 몇 백 년전 그들이 당연히 옳다고 행했던 많은 일들이 지금 현대인들에게도 옳은 일인지를 돌아본다. 지금 우리도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스스로가 그어놓은 어떤 선만 바라보고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생각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키친 하우스 >는 우리에게 세상이 그어놓은 잣대가 없다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알린다. 세상이 그어놓은 잣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니 세상이 그어 놓은 잣대가 옳지 않다는 것을 보는 눈만 있다면 말이다. 인종 차별도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한 부류의 무리가 그어 놓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비극들은 누가 나보다 못하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18세기 말 버지니아의 한 담배농장에서 벌어진 일과 같은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저는 위 도서를 추천하면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s******4 2013.07.05.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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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고아와 흑인 노예의 엇갈린 운명적인 삶,키친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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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흑백티비로 보았던 <뿌리>라는 흑인 노예들의 삶에 대한 영화는 정말 대단했다.오래도록 '흑인 노예'하면 <뿌리>를 떠오렸고 등장인물인 '쿤타킨테'를 떠올리게 했다. 노예해방,남북전쟁에 관한 영화나 소설을 많이 접했던 것도 그 시절이 아니었나 한다.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주방의 대장격이나 마찬가지였던 인물인 풍부한 '흑인 마마'가 생각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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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흑백티비로 보았던 <뿌리>라는 흑인 노예들의 삶에 대한 영화는 정말 대단했다.오래도록 '흑인 노예'하면 <뿌리>를 떠오렸고 등장인물인 '쿤타킨테'를 떠올리게 했다. 노예해방,남북전쟁에 관한 영화나 소설을 많이 접했던 것도 그 시절이 아니었나 한다.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주방의 대장격이나 마찬가지였던 인물인 풍부한 '흑인 마마'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들은 흑인 노예이면서 백인과 생을 함께 하듯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벨'이라는 '키친하우스'에 사는 흑인노예는 '빅 하우스' 에 사는 주인님의 숨겨둔 딸이다. 그런하면 그곳에 주인이 데리고 온 아일랜드계이면서 부모를 모두 잃고 오빠는 노예로 팔려가고 여덟 살 난 소녀인 '라비니아'는 흑인 노예 속에 노예로 들어오게 된다. 키친하우스와 빅하우스 사이에 백인노예인 '라비니아'가 있는 것이다. 그녀가 들어 오고부터 톨 오스트의 담배농장 역사는 파란만장하게 흘러간다.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흙탕물과 같은 역사였으나 더욱 휘오리바람에 휘말린듯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야기의 시작은 거대한 참나무에 걸린 '노예'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왜 거기에 걸려 죽게 되었을까? 그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 '라비니아와 엘리' 는 어떤 인물일까? 라비니아는 부모를 잃고 이 농장에 주인에게 팔려오게 된 것이다.그녀는 심한 고통으로 인해서인지 아무것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 오빠의 존재 또한 오랜시간이 흐른 후에 기억을 하게 되고 찾으려고 하지만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거기에서도 그녀의 비극은 예상 되고 그녀는 백인이지만 흑인 노예들이 살아가는 키친하우스에서 벨을 엄마로 여기며 파파와 마마 벤 그외 노예들과 가족처럼 어우러지면 살아가게 된다. 벨은 농장주의 숨겨진 딸이지만 그녀는 해방문서를 들고 이고승ㄹ 떠나고 싶지 않아한다. 가족같이 살아가고 있는 이곳에서 오래도록 함께 살아가길 원한다. 농장주는 집을 오랫동안 비우며 배를 가지고 먼 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농장은 '랭킨'이라는 감독자와 가정교사의 간사한 혀에 의해 좌지우지 되기도 하고 '마사 마님'은 늘 아편에 길들여져 있어 자신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그녀의 어린 아들은 가정교사와 감독관에 의해 나쁜 길로 인도되고 있다.그런 마셔가 동생을 그네에게 떨어지게 해서 숨지게 하고는 사고가 일어나고 마사마님은 더욱 아들을 버려두기도 하고 아편에 중독되어 간다. 주인이 돌아와 농장을 경영했더라면 좀더 노예들도 편안한 생을 살았을 것이고 농장도 모두의 삶이 순풍에 돛 단 듯 흘러갔을 터인데 그러지 못한 운명에 놓이게 된다.

 

'네, 주인님,맞습니다. 주인님.' 이게 내가 하는 말 전부였어.너희들, 날 자세히 봐라. 어떻게 하면 빅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까 말고는 내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잖니. 그곳에서 살아내기 위해. 그리고 너희를 내 곁에 두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거야.

 

흑인과 백인 사에서 완충 역할을 하는 라비니아는 노예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들의 삶을 자신의 삶처럼 받아 들이고 적응하며 가족처럼 지내면서 자신이 백인이라는 잇점보다는 이곳에서 그들과 어울려 살 수 있다는 것에 더 행복해 한다. 하지만 점점 삐뚫어지는 마셔,그가 학교에 가게 되고 주인이 농장에 돌아오게 되지만 짧은 시간은 허망하게 흐르고 주인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들의 운명도 급무살을 타게 된다.마셔는 이모네에게 맡겨지듯 해서 순탄한 청년시절을 보내는가 하게 하기도 하고 라비니아도 이모네로 거취를 옮겨 그곳에서 백인으로의 예절과 교양 공부를 하여 톨 오스크의 키친하우스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이젠 백인으로의 삶을 누리는 예절 바른 숙녀가 되고 우여곡절 끝에 마셔와 결혼하여 그토록 그리던 '집'이라 할 수 있는 농장으로 돌아와 농장생활을 하게 되지만 행복은 순간이고 마셔의 이중적인 생활과 방탕하면서도 폐인과 같은 생활이 이어지며 농장은 겁잡을 수 없이 기울게 되고 모두의 삶은 심하게 흔들리게 된다.

 

어찌보면 이야기는 마셔가 벨을 아버지의 '창녀'로 생각하면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그의 '누이'라는 것,하지만 그것을 모두 끝이 난 상태에서 알게되고 운명의 시계바늘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고 그는 모두의 표적이 되고 만다. 그의 힘을 누군가 꺾을 수 있었다면 농장과 그에 딸린 식구들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부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선대에서 많은 재산을 불려 놓았다고 해도 밑에서 그 재산 간수를 하지 못하고 방탕하게 모두 털어 먹는 경우가 있다.어려움을 모르고 자랐거나 위에서 하던 '방탕'을 그대로 답습하듯 똑같이 재현하면서 재산을 들어먹는 경우가 있는데 마셔의 경우가 그렇다. 어찌보면 그런 아들을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한 '엄마'의 어긋난 사랑 때문에 빚어진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자신의 아들을 거부했던 마서 마님,죽은 자식에게만 애착을 가지고 놓으려 하지 않고 실제 살아 있는 아들은 한번도 보듬으려 하지 않았던 그녀의 삶 또한 비극으로 치닫는다. 그들의 삶에 휘말린 '라비니아'와 그외 노예들 또한 비극적인 삶을 살지만 그래도 그곳이 자신들의 집이고 가족이라 여기며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이 책은 다른 소설과 다르게 '노예 해방'이나 '노예제도' 에 대하여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흑인 노예 벨과 백인 노예 라비니아의 삶을 통해서 가족처럼 지냈던 그들의 삶을 재조명하듯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숨막힐 듯 이어지는 이야기 때문에 한시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 종일 '키친하우스'를 붙잡고 읽다가 마지막 손에서 덮는 순간 왜 그리 허망한지. 불타 없어진 빅하우스의 잔해처럼 내 가슴에 남겨진 것은 시커먼 재처럼 허망하기만 했다.마마의 삶이나 라바니아나 그외 노예들의 삶이 아우성처럼 들려 오면서도 언덕 위 커다란 참나무에 걸린 마마의 죽음처럼 '비극'은 더욱 극대화 되어 시야에서 아니 뇌리에서 사라질 줄을 몰랐다.언제쯤이면 여운에서 벗어날까.분명 라비니아와 그녀의 딸 엘리 그리고 살아 남은 노예들은 톨 오스크에서 더 나은 '농장' 을 만들며 행복하게 살아갔을 터인데 그들이 키친하우스와 빅하우스에서 복닥복닥하며 질곡의 삶을 살아가던 그 때가 더 깊게 남는 것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그럴까? 가까이 있는 비극을 뒤덮은 '희극',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희망이겠지만 결코 먼저 간 이들이 남기고 간 비극이 헛되지 않는 시간의 밑바탕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작가 '캐슬린 그리섬'은 <키친하우스>가 첫 소설이라는데 정말 굉장하다.어느 한 부분 막힌 부분이 없이 집중하게 하기도 하지만 첫 소설이라 믿기지 않을 모든 것들이 그녀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든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흑인 여성 메리'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니 이 작품 또한 나오면 꼭 읽어봐야겠다. <키친하우스>에서 벨과 라비니아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살아 남아 다시 톨 오스크의 농장을 일으키는 주역들이 된다. 그녀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것도 아니고 인종도 틀리다. 그녀들의 다음 이야기를 써도 재밌을 듯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키친하우스 후편이 나온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라비니아는 흑인노예들의 거처인 키친하우스에서 자랐고 흑인을 부모 혹은 가족으로 여기며 살았기 때문에 농장의 주인이 되어 그들을 부린 다는 것은 힘들다. 어린시절 그들을 대했던 모든 것들이 온 몸에 남아 있기 때문에 마셔처럼 그들을 갑과 을의 관계로 대한다는 것은 어려움을 주지만 그것이 훗날에는 그들에게 도움을 받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인간의 존엄성, 갑이라는 입장에서 흑인은 그저 '재산'이나 마찬가지다.그들의 신체 일부를 손해내거나 죽음에 이르게 해도 재산의 일부이기에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진 껍데기로 작용을 한다.하지만 그들 속에서 자란 라비니아에게는 그들은 재산이 아닌 '인간'이고 '가족'이고 그곳이 '집'이다.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되는 소중한 존재이다.인간의 존엄성을 아는 라비니아와 그렇지 못한 마셔의 충돌로도 보이는 소설은 흥미롭다.그런가하면 잡초는 강하지만 온실 속의 화초는 비바람에 잘 꺾인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무게감이 있는 책이었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책이다.

 



y******2 2013.07.05. 신고 공감 3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대 서사시를 만나다, 키친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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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의 공간 빅하우스, 흑인의 공간 키친하우스. 노예하면 보통 흑인이 생각나는데 백인도 계약직 노예가 있다는 사실, 그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멋진 소설 <키친 하우스>를 만들어 낸 작가 캐슬린 그리섬.   <키친하우스>의 화자는 두 명이다. 백인 노예 라비니아와 흑인 노예 벨. 라비니아는 부모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모든 기억을 잃은 채 키친하우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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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의 공간 빅하우스, 흑인의 공간 키친하우스.

노예하면 보통 흑인이 생각나는데 백인도 계약직 노예가 있다는 사실, 그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멋진 소설 <키친 하우스>를 만들어 낸 작가 캐슬린 그리섬.

 

<키친하우스>의 화자는 두 명이다.

백인 노예 라비니아와 흑인 노예 벨.

라비니아는 부모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모든 기억을 잃은 채 키친하우스로 오게 된다. 자신은 백인이지만 자신의 몸을 위탁할 곳을 잃은 채 빅하우스의 노예가 된 것이다. 깊은 마음의 상처로 기억도 잃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라비니아에게 마음씨 좋은 흑인 부부는 그녀의 마마와 파파가 되어준다.

반면에 벨은 키친하우스의 터줏대감이다. 부엌일을 담당하는 그녀는 사실 이 집 주인남자의 딸이다. 흑인 엄마를 사랑한 것이었을까. 주인 남자(제임스)는 벨에게도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흑인 엄마가 죽고 백인 아내를 맞이한 제임스. 아내는 벨을 제임스의 흑인 정부라고 추측한다. 또한 그녀의 아들 마셜 역시 벨을 증오한다.

 

<키친하우스>의 가장 신선한 점은 바로 백인 노예 라비니아의 존재다. 또한 그녀와 함께 흑인 노예 벨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둘 다 노예의 신분이지만 인종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오해하면서 이야기는 다양하게 펼쳐진다.

 

어릴 적 보았던 남과 북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오랜만에 생각났다. 남북전쟁도, 노예제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간이 인간에서 저렇게 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우리 역사 속에서도 노비제도가 있었으니 결국 동서양의 과거 속에는 아픈 역사가 있는 셈이다.

 

라비니아의 눈을 통해 노예제도의 비인간성을 목도하고, 벨의 눈을 통해 그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배다른 동생이지만 주인과 노예로 마주 대해야하는 마셜과 벨의 관계 속에서 결코 인간의 파괴성에 고개를 돌리고픈 장면이 이어진다.

 

라비니아의 오해는 안타깝고 마셜의 어릴 적 고통은 가슴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와준 흑인 노예들을 멀리하며 노예감독관과 더불어 못된 길로 접어드는 마셜의 행보는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마셜의 폭주는 결국 라비니아와 키친 하우스 가족을 모두 불행하게 만들었고 결국 파행의 길로 접어든다.

 

한 편의 대 서사시로 <키친하우스>는 독자를 매료시킨다.

남북전쟁 바로 이전을 배경으로 보여주는 사회성과 좀 더 세밀하게 들어간 그들의 속 깊은 이야기는 결코 우리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신선함으로 다가오며 또한 깊은 사회적 통찰력으로 노예제도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마저 제공한다.

p******2 2013.07.10.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배울 수 있는 눈물겨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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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너무나 가슴 아리게 읽었다. 책 말미에 덧붙여진 '작가의 말'을 보면 캐슬린 그리섬이 어떤 심정으로 이 책을 써게 되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어느날) 버지니아에 있는 옛 농장의 선술집을 개조하면서 오래된 지도 하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 지도에는 집 근처에 흑인 언덕(Negro Hill)이라는 지명이 표시되어 있었다.나는  매일 아침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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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너무나 가슴 아리게 읽었다. 책 말미에 덧붙여진 '작가의 말'을 보면 캐슬린 그리섬이 어떤 심정으로 이 책을 써게 되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어느날) 버지니아에 있는 옛 농장의 선술집을 개조하면서 오래된 지도 하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 지도에는 집 근처에 흑인 언덕(Negro Hill)이라는 지명이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땅을 지나 개울까지 가서 생각에 잠기곤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흑인 언덕 쪽을 보면서 저기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혼잣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산책에서 돌아와 여느 때처럼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영화만큼이나 선명한 장면이 내 마음의 눈 앞에 펼쳐졌다. 나는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정신이 반쯤 나간 엄마를 따라 언덕을 뛰어 올라가는 겁먹은 백인 여자아이의 발자국을 쫓았'던 것처럼 백인 여자아이, 라비니아 이야기에 흠뻑 빠져 버렸다.


1791년 봄. 라비니아는 제임스의 손에 이끌려 언덕 높은 곳에 세워진 빅하우스에 도착한다. 제임스는 빅하우스의 주인으로 대농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바다를 동경해 자기 배로 사업을 하며 빅하우스에는 몇 달만에 들르곤 했다. 그는 나이 마흔에 스무 살 어린 사라와 결혼했었다. 제임스와 사라 부부에게는 아들 마셜(11살)과 딸 샐리(4살)가 있었다.

라비니아는 부모가 모두 죽고 난 뒤 노예로 보내질 운명에서 제임스의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라비니아에게는 마지막 기억으로 그녀가 떠나지 않으려고 소리 지를 때 그저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던 오빠 카디건이 있었다.

라비니아는
키친하우스에 있던 벨(18살)에게 맡겨진다. 벤은 제임스와 흑인 엄마 사이에 태어난 딸이다.

밝고 쾌활한 성격의 라비니아는 벨과 마마의 따뜻한 보살핌 아래 이내 키친하우스의 식구들과 잘 적응해 나간다. 파파와 마마, 이 부부의 맏딸 도리(지미와 커플), 아들 벤(벨과 동갑내기), 쌍둥이 딸 파니와 비티(6살)가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가 두 아이의 홈 스쿨링을 위해 영국인 가정교사 워터스를 빅하우스에 보내면서 비극이 시작되는데‥.

이야기는 라비니아와 벨의 관점이 교차하면서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여기서도 선한 사람과 악인 그리고 중립적인 인물이 적절히 묘사되어 있다. 특히 악인에 대한 묘사는 워터스와 농장 감독관 랭킨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에 반해 랭킨 후임 윌 스티븐스는 선한 인물로 그려진다.

 

 

 

한편 주인 부부 제임스와 사라는 중립적인 인물로 나온다. 그렇다면 마셜은 어떨까? 마셜은 라비니아와 함께  이야기 후반부를 끌어가는 중심 축이다. 독자들의 흥미를 살려두기 위해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 이야기의 주제라면 가족간의 사랑이 아닐까?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내고 헤쳐나갈 수 있는 믿음과 사랑‥.
마마가 라비니아에게 다음과 같이 들려주는 대목이 나온다.

"아비니아, 분명히 말하마. 피부색이 어떻고, 아버지가 누구고, 엄마가 누구고는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는 가족이고, 그래서 서로를 걱정하는 거야. 가족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더 강해지는 법이지. 우리 모두 똘똘 뭉쳐 서로 도와야 한다. 그게 가족의 진짜 의미란다. 어른이 되면 너도 가족의 의미를 알게 될 거야."

*책에는 '라비니아'와 '아비니아'가 다 사용되고 있다. 역자 이순영은 일러두기에서 흑인들은 '라비니아'를 '아비니아'로 부른다고 밝히고 있다.

〈키친 하우스〉의 묘미는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감수성에 의해 18세기말과 19세기초 백인주인과 흑인노예의 삶, 그리고 이들 사이 중간층(감독관, 가정교사 등)의 삶이 시대적 배경과 함께 생생하게 살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해리엇 비처 스토의〈톰아저씨의 오두막〉과 알렉스 헤일리의〈뿌리〉와 같은 맥락을 지닌다. 나는 노예제 시절, 가슴아프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던 인간이 인간을 마소처럼 부리던 그 시절에 대한 간접 경험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인지 인종 차별을 왜 반대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아울러 이 책에서 살려낸 18세기말 19세기초 미국 풍습과 역사에 관한 멋진 묘사는 덤이다.
가령 크리스마스 만찬을 준비하는 모습(51~52쪽)이나 노예숙소의 크리스마스 파티(59~60쪽)는 마치 내가 그 옆에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실감이 났다. 사라의 언니 세라가 차를 보관하던 모습(246~247쪽)은 안토니오 데 페레다의 '흑단 상자가 있는 정물'을 연상시킨다. 쟝 리오타르의 그림에서도 18세기 당시 차와 초콜릿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Still life with Ebony Chest (Antonio de Pereda, 1652)

 

Madame Liotard and her daughter (Jean-Etienne Liotard, 연대 미상)

 

게다가 필라델피아 전역에 퍼진 황열병 이야기(170쪽, 177쪽)는 오늘날 검역 감염병으로 지정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녹색'(138쪽)은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처음 전도한 세인트 패트릭스를 상징하는 색.

한편 마셜이 공부하러 간 월리엄스버그(이곳은 신대륙에 상륙한 이주민들에 의해 맨먼저 개척된 곳으로 초기 수도)소재 월리엄 메리 대학(213쪽)은 하버드 대학 다음으로 설립된 유서깊은 대학이다.

 



YES마니아 : 로얄 h*******c 2013.07.09. 신고 공감 2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