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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기독교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신앙생활의 일부이며 전체이기도 하다. 다양한 예배의 설교에서 기도에 대한 권면이 빠지는 경우는 드물다. 모든 공예배는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난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예수님을 영접하면서) 당연한듯 자연스럽게 기도를 시작한다. 그럼에도 기도는 쉽지않다. 이 기도가 하나님의 뜻일까? 내가 기도하는 방식이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거룩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그분과 소통하는 기도란 과연 어떤 걸까? 기도하는 순간에도 기도에 대한 이런 생각이 때론 마음을 힘들게 하고 기도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부족하고 게으른 내 자신을 발견합니다. 기도에 대한 이런 상념에 한줄기 빛을 발견하려는, 아니 위대하면서도 자상한 신앙의 선진한테 친절한 권고를 얻고 싶어서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이 책은 성공회 신자였던 저자의 신앙생활에 기초해서 기도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장로교인인 나에겐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보편적인 기도에 대한 고찰로서 저자의 다른 책처럼 감동과 영감을 줍니다. 서평에도 나오지만 루이스의 논리와 상상력이 절묘하게 맞추어진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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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부드럽고 따듯한 글투는 언제나 저를 루이스의 광팬으로 만드는 그런 매력이 있습니다. 처음 접한 것은 역시나 순전한 기독교, 고통의 문제. 로 시작해서 어느덧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인간폐지, 루이스가 숙고한 블라블라, 천국과 지옥의 이별, 헤아려본 슬픔, 기타 및 등등 루이스 광팬이다 보니 엄청나게 사서 읽어댔군요. 아무튼, 그런 루이스가 기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는데.
재밌었어요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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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공간과 시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네. 또한 기도는 객체를 대하는 주체로서의 내 피조물적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아니야. 기도의 목표는 그보다 훨씬 소박하지 그 상황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일깨우는 데 있네. 그것이 가능하다면, 굳이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없네. 내 앞의 상황 자체에서 매 순간 하나님의 현현이 일어날 수 있거든. 지금 이곳이 떨기나무가 불타는 거룩한 땅이네. [개인 기도 p.123 / C.S루이스] ‘기도’가 어려울 때가 있다. ‘기도’라는 행위를 하는 나를 보게될 때, 즉 ‘기도’라는 행위에 대해서 너무나 많이 의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이다. 전심을 담은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라기 보다 마치 연기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말 그대로 ‘행위’의 모습이다. 마치 내가 하는 그 ‘기도’의 모습은 늘 항상 옆에 임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부정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늘 항상 내 안에 계신 하나님, 어디에나 존재하시는 하나님 이라고 고백하면서 ‘우리의 예배 가운데 임재해주세요’라고 고백할때는 “나는 늘 너 옆에 있어!”라고 말하며 얼마나 꿀밤을 때리고 싶으실까 싶다. 누군가는 단순하게 생각하라 말할 수 있겠지만 이미 이런 생각에 나와 함께하는 하나님을 마주하는것 조차 너무나 어렵다 느껴진다. 이러한 적립과 정리를 하지 않으면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너무나 많은것들이 가로막고 있다. 이러한 부분들을 마주하면 내 믿음이 부족함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내 생각으로는 적립되지 않은 ‘기도’에 대해서 그저 ‘구하라’이야기 하는 성경 구절의 말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럼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숙한 기도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겠다. 단지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자식이 달라는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말할 때 그분은 주시기도, 주지 않으시기도 하시는 분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로 부터 배운 ‘기도’라는것을 따라서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물론 그 고백을 한다고 온전히 그분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내지는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모든것이 되신 만유의 주재되신 분이시기에’ 나의 연약함을 내어드리며 필요를 구해보는 것이다. 그 이유에 그냥 혼자 하나님을 마주하고 있는게 좋은가보다. c.s루이스의 ‘개인 기도’라는 책을 보게 될 때 루이스 또한 기도에 대해서 나름의 고민들을 한 흔적들을 보인다. 어쩌면 늦게 신앙을 갖게된 만큼, 그의 직업의 이유상으로 기도를 통해 부딫치게 되는 수많은 난점들에 대해서 고민한다. ‘기도’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풀어놓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독교 라는 종교 안에서 들려지는 ‘기도’에 대한 수많은 생각과 고민, 그리고 성경안에서 풀어내려하는 그의 상상력들은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과의 대화’다 라고 말하는 그 기도에 대해 조금 더 섬세하게 마주해보게 된다. 늦게 갖게된 그의 신앙의 결과는 그저 답습되어온 신앙으로 기도가 무엇인지 말하는 것이 아닌 이성적으로 기도가 무엇인지 마주하게 될 때의 고민들은 우리에게 또한 필요한 고민이라 생각하게 한다. 내가하고있는 이러한 프로세스와 고민의 답은 결국엔 그 어떤것보다 쉽고 단순하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믿으라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두가지 인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복잡한걸 어떡하냐, 그리고 그 답을 알아가는 과정중에 나는 서있다.’ 말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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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의지의 연합(하나님과 인간의) 기도가 있는 곳에서만 일어나지. 미약하나마 기도가 있는 곳에서만 이 연합을 위한 노력이 있다고 봐야 하네.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 행하시거나 말씀하시려고 애쓰시는 것이 부분적이고 왜곡된 모습으로 하나님께 되돌아가는 거야. ... 하나님은 왜 그분의 피조물을 통해 무엇인가 하셔야 하는 걸까? ... 창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위임인 것 같네. 하나님은 피조물이 할 수 있는 일을 그분 혼자서 처리해 버리지 않으시네. 그건 하나님이 주시는 분이기 때문 아닐까. 하나님은 오직 그분 자신을 주시네. 친히 창조하신 것들을 통해 그분의 일을 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그분 자신을 주시는 걸세. 어떤 의미에서는 다양한 수준에서 자신을 주신다고 말할 수 있네. -개인기도 중 발췌
앤드류 머레이와 EM 바운즈는 기도를 중노동에 비유했다.실상 기도는 정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모되는 것이 사실이다. CS 루이스는 기도에 그만큼의 노고가 수반되어져도 얼마나 유익한 소모인지를 성경과 그리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 책에 잘 기술해주고 있어 유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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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공간과 시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네 또한 기도는 객체를 대하는 주체로서의 내 피조물적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아니야 기도의 목표는 그보다 훨씬 소박하지, 그 상황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일깨우는 데 있네 그것이 가능하다면, 굳이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없네 내 앞의 상황 자체에서 매 순간 하나님의 현현이 일어날 수 있거든 지금 이곳이 떨기나무가 불타는 거룩한 땅이네 -개인 기도 중 발췌
루이스가 가상의 화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띤 기도에 대한 그의 신학적 사고와 실천적인 면모는 읽는 동안 많은 도전과 함께 기도 생활에서 부족함을 돌아보게 하는 유익이 있었다 대개 그리스도인들간에 기도를 정기적으로 한다는 자체만으로 그 의도와 내용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향성이 짙은게 현실이다 이 책은 의도와 담긴 내용을 반추함으로 바르게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도함이 어때야 하는가를 아주 심도있게 돌아보고 개선할 수 있는 유인을 적극적으로 제공함에 있어 유익성이 매우 크다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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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가? 혹시 기도라는 것이 내가 나의 내면을 향해 막연히 중얼거리는 헛된 몸짓은 아닐까? 성경은 정확히 구하는 바 그것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지만, 실상은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더 많지 않은가? 전지하신 하나님이라면 기도의 내용도 이미 아실텐데 굳이 내가 그 내용을 되새겨 드릴 필요가 있을까? 오랫동안 기도했건만 아무 응답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청원기도라는 것이 하나님의 원래 계획을 내 요구대로 바꿔 주실 것을 바라는 행위인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음에도 왜 여전히 기도는 귀찮고 부담되는가? 이렇듯 기도에 관한 원초적인 질문들이 떠오를 때마다, 믿음이 약해서 생기는 의심이라고 자책하며 애써 문제를 덮으려 하지는 않는가. 하지만 과연, 이런 물음이 신앙을 방해하는 걸림돌일 뿐일까. 이러한 말 못할 고민들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하게 된다. 그렇다고 속 시원히 드러내어 말하기 참 어려운 질문이자 답을 쉽게 얻기도 어려운 문제이다. 루이스는 성경의 가르침과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나름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