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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부터였더라. 아마도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로 기억한다. 우리가 우리나라를 부를 때 '한국'이라고 하던 것을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세가 된 것이. 월드컵때 전 나라가 '대~한민국' 응원소리로 뒤덮이고 월드컵 4강이라는 예상밖의 선전을 거두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한국'이라고 하는 것과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내 경우에는 그렇다. 후자 쪽이 우리나라를 더 자랑스러워하는 느낌이 난다고 할까. 위대한 나라라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
처음에는 이 책 제목이 '스무 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인 줄도 몰랐다. 조건반사적으로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했다가 다시 보니 '내한민국'이었다.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던 20대 시절에는 미처 몰랐던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최근에 발견했다는 의미를 담았다는 것인데, 제목에서 벌써 이 책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내포돼 있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도 이색적이었다. 필자가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 공부할 때, 그곳에서 1904년 한국에 대해 쓴 책 "한국에서:'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대한 기억와 연구"를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지낼 때, 즉 자신이 이방인이었던 때라 역시나 이방인의 눈에 어떻게 비춰진 조국의 모습에 관심이 끌린 것일까.
필자는 구한말과 일제치하 조선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굳어진 것과 그 이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이나 제국주의, 백인 우월주의적인 시각때문에 조선의 참모습이 가려지게 된 거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텍스트의 영향을 받은 다른 텍스트들이 등장하며 조선에 나태하고 게으른 민족이라는 덧칠이 가해졌다는 것이다. 의외였던 것은 더 파고들어 보니, 조선의 이미지가 이렇게 부정 일변도가 아니었다는 것, 조선을 지성적이며, 자연스럽고 당당하다고 언급한, 즉 긍정적으로 평가한 외국인과 책도 많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조선, 나아가 대한민국의 긍정적인 면을 증명하고 명예회복하겠다고 벼른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문제의식이나 내용은 내게 별다르게 다가오지 않았다. 몇달 전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조선이란 주제로 몇 권의 책을 읽은 뒤라 그런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 책에서도 일부 서구인들의 조선에 대한 인상기에 스며들어있는 오리엔탈리즘이나, 백인 우월주의, 제국주의적 시각을 비판하고 있었다.
필자처럼 대놓고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겠다고 선언했을 때에는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게, 과도한 민족주의적 시각이나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편협한 시각에서 아니라는 것, 보편적인 시각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확보하는 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긍정성을 드러내기 위해 인용된 일부 주장의 경우 조선인들 인물이 좋고, 또 물건도 안 없어진다는 등등 조선을 과하게 상찬하고 있어서 반신반의하게 했다. 정말 그런가, 입증된 건가. 한국인이 잘생긴 종자라는 주장 등 몇몇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하는 논리가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언급했던 서구인들의 왜곡된 시선을 비판한 내용이나 일본이 저지른 제국주의의 만행, 그래서 조선이 역사에서도 약자가 됐다는 주장에는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선이 지적이고 자유롭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인지. 조선말기, 구한말 조선은 이미 뿌리채 썩어 들어가고 있는 상태였음을 상기해볼 때, 필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지 않았다. 한국인의 기질에 대해서도 선하고 강하다는 의견도 그렇다. 민족성이라거나 민족적인 기질에 대해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도 있는지에 대해서도 그렇게 몇 단어로 압축하거나 포괄할 수 있는 것인지. 단편적인 접근이 아닐까.
그리고 거슬리는 게 있었다. 뒤 쪽에 보면 부록처럼' 나는 이 책에 반했다'라는 제목으로 독자서평이 짧게 여러 개가 실려 있는데, 칭찬 일변도의 주례사같은 서평 그것도 조국, 전인권, 김장훈, 방민호 등 대부분 명사인 이들의 서평을 서른 개가 넘게 게재한 것이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서평이 아니라 광고같아서 오히려 책의 진실성을 떨어뜨렸다. 지면이 아까웠다. 사족인 수준을 넘어 없는 편이 나아보였다.
필자의 이력을 보면, 학부 시절엔 철학을 전공했고, 스웨덴과 포르투갈에서 공부하며 역사학 석사학위를 땄다. 그리고 등단한 소설가이고. 그 이력을 십분 활용해서 자료를 인용하는 주장하는 논리와 묘사하는 글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묘사를 통해서는 언급되는 상황과 인물을 떠올리게 했고, 논리와 감성을 모두 작동하게 해주었다.
필자가 주장하는 근본적인 명제, 구한말,일제 시대에 서구에 소개됐던 대한민국의 부정적인 표상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동의한다. 서구인들의 왜곡된 시각이 개입된 것에 대한 비판과 대한민국의 긍정적인 표상을 확인해가는 작업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그런 표상들이 조국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그래서 요즘에는 '반크'같이 민간외교 사이트에서 외국에서 유포되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선입견이나 오류를 수정하는데 적극 나서고 있고 이런 활동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헬조선'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최근 젊은 층 사이에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형성되고 있고, 일본에서도 '혐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 두 예에서 보듯이 한나라에 대한 표상은 그 나라의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적 환경, 또 문화접촉, 국제적인 관계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만큼 '내한민국'이 되기 위해선 결국 조국에 대해서도 민족주의적인 시각이 아닌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적용하는 것과 정치,경제,문화등 모든 분야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을 통해 스스로 검증해가는 것이 정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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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배달된지도 1주가 되어가고 바쁜 업무 중에도 열심히 읽고 있지만 당초 서문에서 느꼈던 이 뭉클함을 늦었지만 독서中 단상에 꼭 남기고 싶었다. 이 뭉클함은 어디서 왔을까? 요즘 정두희 교수님의 조선시대사에 대한 강의 및 책들을 열띠게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조상' 혹은 당시 '한국인'에 대한 궁금함과 일제의 식민사관에의해 왜곡된 지금은 아무도 살아있지 않아 증인이 되줄 수 없는 당시 '한국인'의 있는 그대로를 되살리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게 아닐까 싶었다. 저자 이숲님은 스웨덴 웁살라 대학 유학 후 쓰신 <스톡홀름, 오후 두시의 기억>으로 이미 나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소설가로 시작했지만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이제는 역사학자로서의 새로운 면모와 기대감을 주는거 같다.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던 건 당시 '한국인'의 왜곡을 원상복구 시키고자 하는 의지에 공감을 했기 때문일꺼다. 공감이 되었던 부분들을 소개코자 한다. 이숲님도 조선말/일제시대 '한국인'들에 대해 궁금하셨던거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한국인', 한국인들의 '개성'과 '영혼'에 푹 빠져 지냈다. 나를 사로잡은 한국인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 린 '개별자'일 수도 있고 '추상'일 수도 있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 에게 '개성'과 '영혼'을 느끼듯, '한국인'에게도 똑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아있는 한국인을 사랑한 적은 있지만 거대한 추상 덩어리에 큰 열정을 품어본 적은 사실 없다. 웁살라대학교에서 한 세기도 넘은 1904년 국운이 기우는 한국에 대해 쓴 책을 바라보며 느꼈던 상념에 나도 공감되어 졌다. 『한국에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대하 기억과 연구』를 발견했다. 한 세기도 넘는 시간의 무게를 담고 있는 책은 신비롭고 묘했다. 나는 책을 들추지 못하고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한참동안 표지만을 바라보았다. 화관무를 입고 족두리를 쓴 여인이 그려진 하얀색 낡은 하드커버. 이 안에 담겨 있을 나와 같은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들. 너무 약해 뭐라고 말도 못했던 당시 '한국인'의 심정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아닌데 아니라고 말도 못하고 강대국에게 보여지는 대로 인식될 수 밖에 없었던 한국 한국은 '자신이 누구인지' 먼저 말한 적이 없었다. '한국인이 누구인지' 먼저 말한 쪽은 서구였다. 한국은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었다. 목소리가 너무 약해서, 혹은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강자들이 힘에 눌려 들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역사의 약자'였던 당시 '한국인'은 그렇다치고 해방된 후에도 일제 식민사관은 어디까지 범위가 미치는지 분별조차 하기 힘들었을꺼 같고 내 자신의 역사인식에도 영향을 미친게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서구가 혹은 일본이 한국에게 행사한 음모는, 노련한 고문 기술처럼 우리의 정신을 교묘히 비틀어 놓았다. 오랜 휴면에서 깨어난 한국은 그들이 조종하는 대로 자신을 비하했다. '힘'이라도 있었으면 '아니오!'라고 대들기라도 했을 텐데 힘이 약해서, 음모가들이 하는 말을 옳다고 여겨 그대로 믿었다. 이숲님은 생각 되어지는 대로 놔두길 원치 않으셨고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하신다. 이 후유증이 외부로부터 왔건, 외부와 내부의 합작품이건, 그 원인을 추적하고 역사의 약자에게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한국인'을 왜곡했던 시절을 외국인의 시각에 대한 자료를 통해 극복하고 정체성을 다시 되찾고자 하는 저자 이숲님의 노력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화이팅! 정체성은 어딘가에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나는 누구 이고, 앞으로 누구일 것인가? 우리는 매력적인 인간이고 싶지 않은가? 우리의 정체성은 어느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에도 유동적으로 계속 진화 해 나가는 것이다. '조선'은 우리의 조상이기 이전에 '역사의 약자'였다. 한국인 의 긍정성을 조명해 보는 것은 우쭐대고 싶어서가 아니다. 역사에 묻힌 목소리 에 귀 기울여 보고 우리의 자화상에 드리워있던 그늘을 걷어, 우리의 정체성에 유쾌한 자신감을 갖고 싶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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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고 지식과 경륜이 쌓일수록... 사람은 스스로를 객관화 시키는 능력이 강화된다. 이 책에서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을 보며 무엇을 느꼈는지를 연구했다. 타인의 시선으로 우리 자신을 보았을 때 깨닫는 소중한 것들이 있다. 저자 이숲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 즉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무기력하고 무능했던 우리나라의 이미지... 그것이 사실은 왜곡된 것이라는 주장을 외국인들의 시선을 빌려 조목조목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 6장 한국인을 향한 제언이.... 옥의 티다... 하지만 좋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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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한국인으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숲이라는 작가님이 존경스러웠다. 정말 멋진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건국대학교 교수님으로 계신다고 하시는데, 자주가는 건대의 교수님이셨다니!! 이름도 독특했다. '이숲'... '숲'이라는 이름이 너무 이쁘고,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이숲 작가님이 유럽에서 발견한 우리나라의 잃어버린 100년을 찾아 나선 내용을 담은 책이다. 한국을 방문했거나 살았던 서구인들이 남긴 기록들을 분석하여 과거 한국인, 특히 서민들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재현했다. 역사책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유럽까지 가서 직접 보고 확인된 것을 글로 담았기 때문에 더욱 사실적이고 몰랐던 부분을 알 수 있어서 놀라웠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왕이나 고위관료들의 생활상을 많이 볼 수 있지 서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책은 흥미로웠다. 서민들의 외모, 특성 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화, 정치, 종교 등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여성들에 대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인'과 서양인이 생각하는 '한국인'은 어떻게 다른지... 내가 미처 몰랐던 진정한 '한국인'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책이다. 한국인은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1장에서 자세하게 말해주고 있다. 2장에서는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치, 종교, 고종에 대한 것들, 축제 등에 대한 내용을 통해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듯이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문화부장관, 교수, 변호사, 역사학자, PD, 가수 등 대한민국 오피니언 리더들의 강력 추천을 받은 책이라고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이 책은 꼭 한국인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한국인으로서 강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 또는 없더라도 이 책을 통해 내가 몰랐던 한국인에 대해 확실히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한국을 더 사랑하고, 또는 자신의 모국을 앞으로는 사랑했으면 좋겠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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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이다. 해외여행을 해본 사람은 점점 늘어나지만, 여건이 안 되어서 외국에 한번도 나가지 못한 사람도 있다. 또한 외국을 나갈 때에도 여행 목적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외국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한국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다. 또한 외국 사람들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낮은 경우에는 한국을 동북아에 있는 먹고 살 만한 나라, 그리고 분단된 나라, 무서운 나라 북한 아래에 있는 나라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참으로 독특한 책인데, 왜냐하면 어떻게보면 우리끼리만 잘 살면 된다라는 국수주의가 발달한 우리 나라에서 남의 나라 사람에 대한 시선을 정말 살뜰하게 챙겨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문헌을 찾고, 외국인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문호가 개방되고 난 후에 서양사람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우리의 외모와 성격을 어떻게 판단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다.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서양인들의 느낌까지 포괄적으로 써주고 있어서 마치 혈액형별 성격? 진단을 받듯이 우리와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특징을 대조해 볼 수 있다. 우리끼리만 살아서 우리 문화권에선 너무나 당연한 것이 외국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일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일본과 우리 나라 사람들과의 차이점이 눈길을 끈다. 이 책엔 1900년대 초반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왔던 외국인 선교사들, 지식인들, 신문기자들,여행가들이 한국에 대해 쓴 감상이 어떠했는지로 책의 초반을 열어나간다. 그들이 동북 아시아이라는 곳에 처음 당도했을 때 마주쳤던 나라는 아마도 일본과 한국, 중국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세상과 가장 먼 세상이기 때문에 인도와 중국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으리라.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쪽에 위치했다는 것도 그들에겐 동경과 신비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는 일본인들보다 머리가 하나 더 크고, 잘 생겼고, 자연스럽고 여유있는 태도가 멋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한국인의 지나친 호기심으로 금발 머리를 뽑히고 살갗을 꼬집어서 같은 피가 흐르는지 궁금해했다는 기록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의 지나친 호기심이 특유의 오지랖으로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문제가 되는 웹 상의 악성댓글들도 알고 보면 호기심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우리네가 자랑하는 한국 특유의 정서인 이웃간의 정도 사실은 호기심이 발로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외국사람의 시선으로 우리 나라를 들여다보니,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알았던 것들의 원인이 무엇에 있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그것이 참 흥미롭다는 것을 알게된다. 한국인 특유의 기질이 한국을 형성하고, 발전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의 입을 통해 한국인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알아보는 것이 재미있었고, 일본이 우리 나라를 침략했을 때 느낀 외국인들의 반응도 재미있다. 외국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인 자체에 매료되었다. 원시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가장 사람답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듣는 것은 분명 우리 나라 내에서는 아무도 깨닫지 못할 일이다. 겉으로 보이는 한국인의 무표정한 얼굴 뒤에 단호한 정신력과 끈질긴 정신력, 그리고 호기심과 자연스러운 자유분방함이 넘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유전적으로 전해져 우리 나라를 이끌어 간다는 것... 아. 그런 것이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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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참 공들여 쓴 역사 교과서다. 아니. 교과서는 아니지만 국사 교과서 선택과목 시대에 이만한 역사공부 책 없다. 책 안에 유진룡 장관, 조국교수, 가수 김장훈, 전인권 같은 분들이 서평 쓴 게 있어 그냥 홍보성 멘트인가 했다. 그런데 저자와 출판사가 가제본 책까지 만들어서 1년 전부터 사회 여러 분들께 책 내용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 견해를 보완했다고 한다. 그때 유진룡장관은 장관이 아니었다고 한다. 감동적인 책이라고 평가해 주었다는 거다. 책이 나오고 나서 대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이 책 저자를 초청해서 강연을 듣기로 했다고 한다. 대원외고는 이 책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청소년들, 고등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역사인식을 보았던 게 아닐까. 내한민국. 내가 사랑할 수 있는 한국, 한국인. 이것을 발견한 이야기. 재밌다. 흥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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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책을 읽기 전 이 책을 위해 추천의 글을 써준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들의 이름을 보고
어떤 책이기에 이렇게 다양한 분들이 추천의 글을 써주셨나 싶었어요.
알고보니 책이 나오기 전 1여년 간의 수정과 보완을 거쳐 탄생한 책이라네요.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수렴을 위해 100명의 독자에게 감상평을 받아 책 출간에 도움을 받았다니 대단한 노력이
들어간 책인 것 같아요.
책 제목이 대한민국이 아니라 내한민국이라 조금은 의외였던 책. 내한민국이라고 쓴 이유가 궁금했답니다.
이숲. 제목만큼이나 독특한 이름의 저자가 사회 민주화운동에 집중하여 스무 살에 놓쳤던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나라로서 대한민국을 이제서야 발견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지었다네요.
2008년에 웁살라 대학에 제출한 저자의 논문을 다듬고 다듬어 자료추가수집 작업을 거친 다음 탄생한 책이랍니다.
얼마 전 대학생을 상대로 우리 역사에 대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의 역사를 너무도 모르고 있어 충격을 받았어요.
고려, 조선 시대의 역사적 사건도 사건이지만 그나마 근래에 있었던 사건이나 그리 오래 되지 않았던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사건들마저 모르고 있다는 기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요.
우리나라와 일본의 그러한 역사적 사건들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무조건적으로 일본에 대한 적대심을 가지거나
일본 음악이나, 문화에 대한 동경심을 가져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된 시각으로,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언제나 일본의 망언과 역사 왜곡에 휘둘려 막연하게
반일감정을 앞세운다면 우리의 자리를 제대로 찾을 수나 있을까요?
일본의 식민지를 겪으면서 서구와 일본은 한국인에 대하여 각종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놓았지요. 한국인은 더럽고 미개하고, 게으른 민족이라고...
그러나 저자는 많은 자료를 찾아가며 100여 년 전 외국인에 의해 쓰인 Korea라는 나라에 대해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를 보는 2가지 시각을 찾아냅니다. 한국에 와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쓴 책들을 섞어서 쓴 책이나 잠시
한국에 다녀간 후 한 부분만을 보고 판단하여 쓴 책일 때 한국인이나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이 많았던 반면
오래도록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우리의 민족성이나 일상을 함께 생활하며 깊이 관찰한 외국인의 경우에는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우리의 민족성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요.
외국인이 본 한국인의 모습은 자연스럽고 당당하며, 호탕하며, 인정이 많고, 통이 커서 잠재력이 크다는 것이지요.
이 책에서는 이렇 듯 일본의 식민주의적, 제국주의적 시각에 의해 왜곡된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를 외국인의 시선에서 본 한국인의 모습을 담아내여 우리의 역사를 바로 볼 수 있게 하고, 한국인이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역사의 약자'였던 우리 조상들의 자화상에 드리워있던 그늘을 걷어내고, 현재를 살아갈 원동력을
찾아 한국인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어 새로운 한국 스타일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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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얘기하면 언제나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일본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억울하게 나라를 빼앗기고 수많은 목숨을 잃은 조상들에 대한 원통함이 섞여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언제나 일본의 망언과 역사 왜곡에 휘둘려 감정이 앞서게 된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계속 이런 식으로 감정 대응만 하다가는 언젠가 일본의 치밀한 계략으로 국제 사회에서 또 다른 상실감을 얻을 것 같아 우선 내 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한 마음에 아니라고만 하지 말고 우리의 한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객관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우리의 정당성을 가져야 비로소 문제를 해결하고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죄의식을 알릴 수 있는 기회로 닿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역사에 대한 화두가 마음에 자리 잡고 있을 때 내가 몰랐던 그때의 대한민국을 말해 줄 것 같은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역사에 대해선 같은 민족 안에서도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나는 일본의 식민지로 살았던 그 시기를 한 번도 부끄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침략의 역사를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들었고, 우리는 그저 내 나라 내 땅에서 성실히 살아오다 진짜 야만인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일본과 여러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은 선량한 사람이고 열등한 민족을 운운한 그들이 진짜 야만인 이자 인종차별주의에 휩싸인 열등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이어 오다 책 속에 담긴 우리의 문제점들, 근대화를 이루어 내기에 우리 조상들이 부족했던 점을 볼 수 있었고 사회에 만연한 비리로 인해 부패한 세력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짧은 생각으로 근대화의 중요한 시점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놓쳐버려 나라가 망하고 다른 이의 세력에 놀아나는 참담한 상황들을 되돌아 볼 수 있던 것과 동시에 내 안에도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은 열등한 우리의 모습이 일본의 음모로 인한 열등의식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들었다. 인류의 보편적인 시민상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반추가 이루어진 이후에 더 성숙해진다고 믿고 있다. 정체성은 어딘가에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나는 누구이고, 앞으로 누구일 것인가? (p.15) 이 책이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그 당시 변화의 물결이 가득했던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의 글을 인용한다는 점이다. 제3자라고 해서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다. 그중에선 일본의 식민주의를 한국에 엄청난 친절을 베푸는 행위이며 결국엔 한국에 이로울 거라는 의견을 가진이도 있고, 일본의 식민주의는 유럽의 식민주의와는 다른 차원이며 그들의 잔혹함과 한국인의 독립성을 옹호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한국인의 잠재력을 알아준 글을 읽는 건 새로운 느낌을 안겨주었다. 역사를 대하며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한국인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으로 선량하고 순진하지만 호랑이도 때려잡을 기개를 가지고 있을 만큼 단호한 정신력을 가진 잠재력이 있다는 말은 내가 느끼는 한국인의 특징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어 뭉클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잠시 뿐이고 점점 한국을 잠식하려는 일본의 세력과 그것을 알고서도 어쩌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고뇌가 전해져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특히나 일본 근대성을 찬미하는 세로셰프스키에게 신문균이 말하는 일본이 한국에서 행하는 개혁을 말하는 부분에선 그가 느꼈을 ‘근대성’과 ‘식민성’의 딜레마가 느껴져 그의 원통함이 전해진다. “그들은 겉으로만 우리를 만족시키려고 하고 있어요. 우리의 모습을 바꾸고, 우리의 내면을 다 파내 버려 껍질만 남기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혼을 없애려고 합니다.” (p.204) 가끔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긍정하는 말속에서 그래도 일본이 한국에 유용한 개혁을 해주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그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이 한국에서 시행한 건설과 사업 등 모든 행위가 그들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거기엔 우리 한국인을 위한 행위는 일체 없었다. 자신들이 지난 세월 한국과 교류했던 역사와 우리가 예술을 전파했던 부분들은 묻어둔 채 한국을 미개한 인종이라고 전 세계에 광고를 하며 한국인을 그저 ‘나무꾼’이나 ‘물지게꾼’으로 밖에 쓸모가 없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세계를 상대로 한 이미지메이킹은 치밀하다 못해 영악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더 가슴 아프고 화나는 일은 그들은 현재까지도 그런 민족우월주의적인 생각에 빠져 자신들이 했던 행위를 미화하고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만행까지 저질렀으면서 그것을 부인하고 묵살하려는 것이다. 유럽에서 독일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고 책임을 지려는 모습과 반대로 시대를 역행하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고 시대적으로나 세계의 흐름에 있어서 그 시대는 우리에게 좋지 않은 상황이었음을 느끼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여전히 일본에 대한 분노는 뜨겁다. 하지만 에너지를 그들에 대한 분노로만 쓸 수는 없다. 좀 더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돌려야만 지금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비극을 끊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는 동안 이미 끝나버린 이야기지만 그 시대 그 상황에서 우리의 힘으로 근대를 이루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욕심이 없고 선량하지만 강인함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잠재력이 발현해 부패한 세력을 내몰고 진정 나라를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앞서 혁명을 이뤄내고 힘을 길렀다면 지금의 모습은 어땠을까 하는 꿈을 꾸게 된다. 하지만 현재로 생각을 돌려보면 아직 우리에겐 남은 숙제가 많다는 걸 느낀다.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일제 시대의 아픔과 그 세력들, 어쩌면 아직까지 우리 힘으로 이뤄낸 근대화라는 꿈이 유효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에겐 고난과 역경을 헤쳐 온 역사가 있다. 거친 역사는 우리의 심장을 더 강하게 키워냈다. 고난에 굴복했으면 비루해졌겠지만 고난을 극복한 자에게는 심오한 그 무엇이 있다. (p.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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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 라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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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아닌 내한민국이다. 처음 책을 봤을때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부끄러운 시절로만 여겨왔던 일제강정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는 말에 선택하게 된 것이다. 외국인의 시선에서 본 한국인은 어떤 모습일런지, 개방적인 그들에게 있어 우리네 모습은 답답하게 여겨졌을런지도. 저자 이숲이 유럽에서 찾아낸 우리의 잃어버린 100년 전의 모습을 나는 저자 덕분에 한권의 책으로 편안히 만나게 되었다. 외국에 나가면 무조건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나이가 들수록 나라를 비난하는 말보단 칭찬하는 말이 듣기 좋아졌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단점 아닌 장점을 더 많이 알려주고 싶어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그다지 한국에 대한 사랑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외국인의 눈으로 본 100여년 전 조선인에 대한 평가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한국인이 예법은 떨어지지만 다른 미덕으로 그것을 만회한다고 말하는 에른스트 오페르트,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조선에 있어 이것은 좋은 평가일까, 나쁜 평가일까? 한국인에 대한 그들의 인상은 대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하다는 인상이 지배적이었다. 일제 식민시대를 지나오면서 예전의 자유분방함과 쾌활함 그리고 호탕하던 기질을 잃어버렸음일까? 조선하면 내가 떠올리는 것은 조용함과 차분함이며 거기에 더불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그것이 외국인들의 눈에는 자유스러움으로 비췄던 것인지도.
유럽에서 한국을 이야기하는 최초의 단행본이 핸드릭 하멜의《하멜 표류기》다. 13년간 조선에 억류되어 있다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핸드릭 하멜이 쓴 '하멜 표류기'는 예전에 읽은 것이 분명한데도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번 기회를 빌어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어렸을때 읽었을때와는 다른 관점으로 책을 살펴보는 기회가 될테지. 재미난 사실은 하멜이 이 책을 쓴 목적이 조선에 억류되어 있던 13년 간의 일지를 적어 회사에 봉급을 청구하기 위함이었단다. 목적이야 어쨌든 그 덕분에 지금 우리와 세계사람들은 200년전에 그가 겪었던 일들을 재미나게 볼수있는 행운을 얻을수 있었다. 나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나른 사람의 고생은 나의 재미가 되주기도 하니까.
'종로 거리의 화가'로 불리는 랜도어가 그려낸 아름답게 생긴 처녀의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슬픈 듯한 모습의 작은 달걀형 얼굴, 아치형의 눈썹과 긴 속눈썹과 더불어 타원형의 새까만 눈' 그가 그려낸 이미지를 머리속으로 상상해 보니 어떤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바로 그런 이미지였다. 딸 바보라고 말할수도 있지만 딸이 바로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어. 그에게 비친 일본 여자와 한국 여자의 차이점은? 일본 여자들은 요기와 호림, 헤픔, 생기, 유혹, 쾌활함 등으로 보여지는 반면 한국 여자들은 심각, 진지함, 우울, 힘쎔, 강인함 등으로 표현되었다. 거기에 더해 랜도어는 청수함, 자연스러움, 수수함, 세련됨을 더해 주었다. (일본 여자들의 묘사한 장면은 좋은 이미지로 보여지지는 않아~)
그윽하면서도 우아한 멋, 그것이야 말로 조선의 여성을 표현하는데 있어 가장 잘 맞아들어간다. (아~ 물론 상류층 여성들에 한해서) 반면 강인함과 억척스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한국 여성의 특징이다. '한국 여성에겐 집안에만 가둬두기엔 너무 아까운 독립적이고 강인한 기질이 있다.' (p.114) 안채에 들어 앉아 바느질과 잡담등으로 소일을 하던 여자들이 밖으로 나서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물론 이 여성들은 양반가나 상류층의 여자를 말합이다. 우리에게도 신라시대에 선덕여왕(제27대왕)과 진덕여왕(제28대왕) 그리고 진성여왕(제51대왕)이라는 3명의 여왕을 배출해낸 과거가 있다. 이제 네번째 여왕이자 대한민국 사상 첫번째 여자 대통령이 탄생했다. 뭐든 처음 가는 길이 힘들지 두번째는 쉽다.
이 책에 독자서평을 올리고 추천해준 유명인사들, 유진룡(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국(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인권(가수)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올라있다. 그들은 이숲의《스물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을 통해 학생들이나 책을 읽는 독자들이 내 나라에 대해 제대로 된 인식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100년전 조선을 바라본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의 시선이 현재의 그들의 시선이 아닐까 싶다. 익명의 독자는 이 책이 일본의 우익단체가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한다. 한국인은 매우 유쾌하고 매력적이며 심지어는 잘 생기기까지 하다는 그들의 기록은 지금까지 알아왔던 구한말 한국의 모습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그런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자랑스럽기도 하다. 아자 아자~ 내한민국 화이팅! 아자 아자~ 대한민국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