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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있던 곳에 내가 있어야 한다(Wo es war, soll Ich werden) 주이상스(jouissance, 즐거움, 쾌락)를 논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라캉용어들에 대한 개관은 완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라캉의 쓰이는 단어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개념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의 대한 해석의 시작은 언제나 혼란을 준다. 추구되는 대상으로서의 ‘대상a’, 바라보는 타자(Autre), 청각적 이미지/언어의 질료적 차원으로서의 기표(signifiant), 개념으로서의 의미(Signification), 인간의 의식(意識) 세계 세 가지 구조 상징계(symbolique),· 상상계(imaginary), 현실계(real)와 현실에서 조우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의 결여(manque), “삶의 순수한 본능(pur instinct de vie)의 리비도(libido)”, 어떤 대상에 의해서든 메워질 수 있는 빈 구멍, 공백의 현존의 충동(pulsion), 시각적인 영역에서도 욕망은 결여된 것을 메우려고 하는 것의 응시(Stare), 청각적 충동의 목소리(voix), 그는 이러한 모호하면서도 현란한 말로 우리의 눈과 뇌를 현혹시킨다. 주이상스는 원래 프로이트의 전리품이었다. 그의 3항 도식에서 순환구조를 알 수 있는 의식-전의식-무의식, 초자아-자아-이드, 쾌락원칙-현실원칙-열반원칙에 그 쾌락으로서 말이다. 라캉은 이 용어가 욕망의 다른 대체재이며 실제적인 목적이라고 봤다. 쾌락원칙을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 주이상스인데 쾌락원칙은 라캉에 의하면 상징계였다. 상징계 자체가 주체를 현실적인 쾌락의 충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머물게 한다. 그렇지만 주체는 상징계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 너머로 가보려 하는데 그 너머는 금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것들이다. 바로 이 불가능한 것들에 도전하는 것이 욕망이기 때문에 욕망의 운명이라는 것은 대단히 역설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라캉이전의 주이상스는 근원적으로 정신분석의 술어집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특이하게도 헤겔주의 전통으로부터 정신분석학으로 빌려온다, 이 단어가 1953년 라캉의 저서에 처음 등장한다. 사실상 (주인과 노예의) 신화적 상황이 성립함과 동시에 하나의 행위가 수행되어 쾌락jouissance 과 노동의 관계가 성립된다. 그리하여 노예에게는 타자의 욕망과 쾌락jouissance을 만족해야 하는 법이 부과된다. 이리하여 상상적 타자에게로 향락을 전이한다. 이 말의 의미는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정신분석을 총체적인 합 구조주의 안에서 해석하려는 시도하려는 점이었다. 다른 예를 들면 라캉의 연산식(S: 시니피앙, s: 시니피에)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초석이었다. 이 연삭의 수식이 다소 까답롭기 때문에 상형문자를 시니피앙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상형문자가 새겨진 돌판이 발견이 될 때 그것은 분명히 의미를 가진 것이긴 하지만 우리에겐 그 의미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시니피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니피앙은 의미들을 이차적으로 발생시키기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의미가 유보되어 있다. 사실 이 언어는 타자를 위해 형성된 의미이다. 다시 라캉의 세계로 복귀할 것 같다는 심정이 든 것은 온라인에서 언어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여 더 이상의 언어의 잉여축적의 발전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라캉의 정신분석의 핵심개념들을 배울 필요가 있는 점이 메를로-퐁티, 레비-스트로스, 루이 알튀세르, 더나아가 랑시에르, 발리에르 또는 알랭 바디우, 조르주 아감벤의 철학이 그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 근원이 되는 탐구의 여정은 육체는 괴롭지만 정신은 풍부해지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