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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참 좋아한다. 집에서 키우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생명체를 키운다는 것은 아무래도 쉽게 결정할 수 없다. 어린 시절 우리 집도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다. 한 마리는 비오는 날 학교 가는 나를 따라왔다가 집을 찾지 못해 잃어버렸고, 두 번째 키운 녀석은 쥐약을 먹고 죽었다. 두 녀석 모두 사랑을 많이 줘서 잃어버리고, 죽었을 때 많이 울었다. 이후 우리 집에서 강아지를 키운 적은 없다. 그때 기억이 강해서 일까? 나는 쉽게 강아지를 키울 수 없게 되었다. 애완견은 사람과 달라서 주는 만큼, 시간을 들인 만큼 나를 행복하게 하지만, 그래서 인지 애완견과의 이별은 쉽지 않다.
이 책은 ‘몽’이라는 고양이의 탄생과 죽음을 각자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해 이야기 한다. 몽이는 고양이치고는 예쁘지는 않지만 나름 매력이 있는 거대한 고양이다. 사실 몽이는 어릴 적 버려진 고양이다. 처음 몽이를 발견한 노부에는 새로운 생명을 키울 마음의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노부에는 얼마 전 유산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는 고양이를 몇 번이고 버렸지만 다시 돌아오는 몽이. 노부에는 비가 오는 날 집에서 떨어진 숲속에 몽이를 버리고 돌아오는데....
2부에선 청년이 된 몽이가 아주 잠깐 조연으로만 등장한다. 어릴 적 몽이를 노부에의 집에 버린 소녀와 소녀의 반 친구 유키오가 등장한다. 형 같은 젊은 아버지와 둘이서 사는 유키오는 늘 혼자다. 아무도 유키오에게 관심이 없고, 세상의 무관심에 화가 난다. 유키오는 사랑스러운 모든 것에 분노를 느끼고, 사랑스러운 것을 없애고 싶어 한다. 절망이라는 블랙홀 앞에서 발을 빼는 과정을 아야메라는 소녀, 청년이 된 몽과의 교류를 통해 말하고 있다.
3부에서는 노인이 된 노부에의 남편 도지와, 죽음을 앞둔 몽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부에가 죽고 혼자가 된 도지는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몽이를 키운다. 혼자가 된 도지와 몽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간다. 몽보다는 좀 더 오래 살고 싶었던 도지는 몽의 몸에 변화가 옴을 느낀다. 몽의 몸 상태가 도지의 마음인양, 불안하고 아프고 안타깝다. 몽을 보면서 도지는 점점 혼자가 되는 연습, 몽 없이 살아갈 준비, 헤어질 준비를 시작하는데...
생명이란 뭘까? 처음 몽이를 만난 노부에는 몽이를 거둘 수 없었다. 유산으로 아이를 잃은 노부에의 마음속에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또 다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죽어버린 자의 모습이 얼굴부터 어느 것 하나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태어나기 전에 죽는다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죽는다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33) 유산의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나는 그 마음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몸 안에 품었던 아이를 잃은 어미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 두 달도 아닌 6달이라는 시간을 몸 안에 담았던 얼굴도 모르는 아이.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죽었다는 것이 노부에의 마음을 더 힘들게 했을 것이다. 그런 노부에에게 새끼 고양이는 거둘 수 없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버리면 돌아오고, 버리면 돌아오는 끈질긴 생명력. 만약 뱃속의 아이가 그런 생명력을 지녔다면 좀 더 편안하게 고양이 몽을 바라보았을까? 하지만 결국 노부에는 몽을 받아들인다. 소중하게 키울게. 그렇게 소중하게 몽을 받아들이면서 유산의 아픔을 이겨나간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유키오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랑받지 못한 유키오는 세상의 사랑스러운 생명들에 분노를 느낀다. 엄마의 사랑을 받는 아이, 엄마의 든든한 배경을 갖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죽이고 싶어 한다.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자신과 사랑받는 아이들에게 느끼는 질투를 감당하기 힘들다. 하지만 유키오는 우연히 키우게 되었지만 죽어버린 새끼 고양이를 통해, 죽어버린 새끼 고양이를 물고 사라져버린 몽을 통해 희망을 생각한다. 보통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때, 사람과 사람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이렇게 사람과 동물을 통해서도 그 교감이 이뤄진다는 것에 살짝 흐뭇해진다. 세상의 모든 사랑받는 아이들에게 화가 났던 유키오가 고양이를 통해 세상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과정들이 기분 좋아졌다고나 할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강한 인상을 주고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몽의 죽음을 대하는 도지의 마음을 그린 3부다. 아파서 죽어가는 노인의 모습이 그럴까? 생명의 끈은 생각보다 질기고 질겨서, 한순간 정신을 놓아버리지는 않는 것 같다. 며칠 유난히 아프다가도, 또 며칠은 생생해지고 그것들을 반복하면서 남아있는 사람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신호를 보낸다. 도지와 몽도 그렇다. 노부에가 아이를 유산하고 난 후, 표현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던 도지는 몽을 통해서 삶의 다른 면을 알아가고 슬픔도 승화시키며 살아왔다. 몽보다는 오래 살아야지 생각했으면서도 막상 몽을 보내려 하니 아프고 힘들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도지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어쩌면 희망이라고 불리는 반짝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달해 당황했고,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멍해졌다. 그 반짝임이 있었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어떻게든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결국은 도깨비불의 신기루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86) 누구에게든 삶을 살아가는 희망 같은 존재가 있다. 사람일 수도, 물건일 수도, 동물일 수도 있는 희망 같은 존재. 죽음 앞에 그게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될지언정,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래서 몽이나 도지나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명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회는 소중한 생명에 등급을 매기고, 값을 정한다. 때론 값을 정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 알면 좋겠다. ‘유리고코로’를 시작으로 ‘9월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 그리고 ‘고양이 울음’까지.. 다시 한 번 이 작가의 책에 매력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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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마타 마호카루의 책은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 전개에, 너무나 놀랐던 작품이었다. '이야미스'의 선두주자라는 누마타 마호카루 이야미스는 '싫다'는 뜻의 일본어 '이야'와 미스터리를 합성한 신조어로 누마타 마호카루와 미나토 가나에를 그 대표 작가로 꼽고 있다. 다 읽고 난 뒤에 찜찜한 뒷맛이 남는다는 이상한 특징을 가진 장르로 가면을 쓰고 사는 현대인들 내면의 추악함을 그대로 드러내어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선한 시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242p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은, 이야미스 장르의 이름조차 몰랐지만 그런 장르가 있다면 정말 그야말로 딱 맞는 이야기겠다 싶었다. 바보 같은 사랑에 속이 터질뻔하였다. 그토록이나 이기적이고 못되먹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추악해보이고 지저분해 보인 그 자체가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의 역설이었던, 작가의 참신한 시도 자체로 정말 복잡 다단한 심경을 갖게 만들었던 묘한 필력이었다.
그런 작가의 두번째로 읽은 이 작품은 미스터리가 아닌 일반 장르, 거기에 주인공이 바로 고양이 몽이다. 몽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이야기는 총 세편으로 진행이 되었다. 몽이 아기이던 시절, 그리고 몽의 청년기쯤 되는 눈부신 시절,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 몽의 이야기, 이렇게 세편의 이야기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17년만에 어렵게 정말 어렵게 가졌던 아기를 잃게 된 노부에, 자신의 뱃속의 새생명을 잃고 그녀는 더이상 아기 아닌 다른 생명을 집안에 들일 생각을 못하게 되었다. 하필 이럴때 끈질기게 그녀의 집안에 들어오려 하는 새끼 고양이, 다치고 배고픈 그 작은 존재를 그녀는 정말 매정할정도로 끔찍하게 떼어내 다시 내다 버리고 또 내다 버리고를 반복한다. 읽는 독자들이 불편해질 정도로, 그녀는 이별을 맞이한다.
"어서 가!" 비틀비틀 일어선 고양이는 머리를 흔들고, 노부에에게 엉덩이를 보이고는 빼곡한 나무들 속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가라니까!" '나는 이렇게 배속에 있던 아이의 장례를 지내는 것이다.' 느닷없이 그런 생각이들었다. 하나의 생명을, 이번에야말로 스스로의 의지로 보낸다. 눈을 똑바로 뜬채 보내고, 떠나가는 모습을 분명히 기억에 담는다. 이것은 장례식. 비로 충만한 숲속의 수장이다. 형태를 갖지 못한 갓난아기, 빠져버린 기억, 그 전부를 저 새끼 고양이에게 의탁한다. 35.36p
노부에의 마음을 아는 남편 도지는 잃어버린 아기를 생각하며 고양이를 내다버리는 노부에를 말리지 못했다가, 어느 여자아이가 와서, 이집에서 고양이를 키워줄것같아 일부러 갖다놨다는 말에 노부에가 버리고 온 고양이를 찾아나서게 되었다. 그렇게 이 집안의 식구로 받아들여진 몽이, 몽이를 데리고 온 여자아이도 뻔뻔스러울 정도로 희한했지만 한번 마음을 연 노부에와 도지는 아이가 없는 집에서 고양이 몽에게 온 정성을 다해 사랑으로 키우게 되었다.
두번째 이야기는 몽이 성장하고 난 이후의 이야기였다. 사실 몽은 얼굴에 반점이 있어 그리 귀여운 얼굴은 아니었지만, 갈수록 덩치는 무척이나 커지고, 꽤나 용맹스럽게 커 갔다. 두번째 이야기에서 몽은 주로 등장하지는 않고, 유키오라는 남학생이 등장한다. 어머니는 안계시고 아버지와만 살고 있는 유키오. 아버지는 매일 돈 800엔만 준채, 제대로 된 유키오의 양육을 하지 않고, 유키오는 점점 절망이라는 블랙홀의 나락으로 빠져들어간다. 첫편의 이야기에서 노부에가 아기를 잃고 난 후에 세상의 모든 사랑스러운 존재들, 특히나 어린 아이와 같은 그런 존재를 거부할 정도가 되었다한다면, 유키오 역시 그런 모습을 보인다. 사랑스러운 존재, 어린 아이건 어린 펭귄이건, 사랑스러운 그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싶고 부숴뜨리고픈 비뚫어진 모습을 보인다. 스스로 살인자가 되고자 하는 유희와 쾌락을 느낀다.
아이 엄마로써 이런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놀랐다. 언젠가 인터넷 뉴스에도 나왔듯, 멀쩡한 대여섯살 남자아이를 심하게 넘어뜨리고서 깔깔대고 웃고 도망가는 여학생들의 cctv 장면을 보고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었다. 정신 나간 것들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심하게 비뚫어져가는 유키오를 보자 덜컥 겁이 났다. 멀쩡한 사람들만 있는게 아니구나, 정말 내 아이는 내가 조심시켜야겠다 하는 생각이 새록새록.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던 유키오는 아주 우연한 일을 계기로, 펭귄은 아니고 펭귄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아주 작은 새끼 고양이와 그리고 몽의 이야기를 계기로 나락에서 조금씩 구원이 된다.
그리고 세번째 이야기가 바로 몽과 도지의 이별 이야기였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니 이미 가족처럼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든 이별의 순간, 그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었다. 놓아줄수 없는 도지와 그런 도지를 준비시키는 듯한 몽의 이야기. 말을 할 순 없지만 꼬리로 탁탁 바닥을 살짝 치면서 알아들었다는 의사표현은 정확히 했던 바로 그 몽의 이야기를 말이다.
미스터리는 아니고 일반 소설이었는데, 한마리 고양이의 일생과 함께 그 고양이의 존재 자체로도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눈물이 철철 흐를 정도의 내용은 아니었고, 가운데 이야기만 제외하고서는 참을성 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스토리였다. 확실히 누마타 마호카루의 세상을 보는 시선은 독특한 것 같다. 그의 소설 중 거의 장르적 완성을 보였다 하는 유리 고코로도 얼른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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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작가로 먼저 알게 된 작가의 작품이다. 귀여운 고양이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생각할 때 제목과 상관없이 미스터리가 아닐까 하고 멋대로 상상해봤다. 그런데 아니다. 삶과 죽음을 다룬다는 점에서 미스터리와 닮은 부분이 있지만 상당히 묵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작소설이지만 고양이가 중심에 놓인 단편이 있는 반면에 시간이 상당히 떨어져 있어 어떤 공통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몽이란 고양이가 이 3부의 이야기를 이어주지만 말이다. 각 단편을 독립적으로 읽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전편에서 가진 의문들이 다음 이야기에서 풀린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하나로 이어져 있다.
제1부 <새끼 고양이>는 몽이란 이름을 가진 새끼 고양이가 어떻게 집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흔히 보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혹은 불쌍하게 생각한 주인이 주워 키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침을 당한 고양이가 다시 집을 찾아오고, 다시 내치는 과정을 통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노부에의 감정을 풀어낸다. 노부에가 가지고 있는 힘들고 어렵고 어두운 감정은 아기 유산에서 비롯한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지도 추스르지도 못하는 노부에가 몽이란 고양이를 통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힘겹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할 때 그냥 살아가고 잊고 있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제2부 <절망이라는 블랙홀>은 5년 전 엄마가 도망간 유키오 이야기다. 아버지와 살고 있지만 화목이나 단란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먼 집안 풍경이다. 아이에게 맛있는 밥을 제대로 지어준 적도 없고 매일 편의점 음식으로 저녁을 떼운다. 점심은 800엔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침울해하고 절망하게 된다. 뒤틀린 감정은 결국 엄마와 함께 있는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향한다.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에서 키우게 되는 고양이는 유키오의 감정을 순화시켜준다. 그리고 유키오가 큰 실수를 저지를 뻔 했던 사건 이후에 경찰서에서 아버지가 보여준 반응은 유키오의 시선을 통해 드러난 풍경과 다른 모습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간격이 단숨에 좁혀질 정도는 아니지만 공감대와 이해의 시간을 가진다.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어린 시절 절망의 깊이를 이 단편을 통해 들여다본다. 나에게도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제3부 <멋진 이별>은 노부에의 남편 도지가 20살이 된 몽과의 이별을 다룬다. 고양이 20살은 인간 100세와 비슷할 정도다. 도도하고 난폭하고 마초적인 고양이였던 몽이 점점 힘을 잃고 집에만 머물게 되고 결국 죽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을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체한다면 죽음을 준비하는 우리의 모습이 될 것이다. 점점 쇠약해지는 몽을 통해 간호하는 도지의 모습은 변한다. 최선이 무엇인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내가 죽은 후 몽과 함께 살면서 조그만 위안을 얻었던 그가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죽음이 아닌 삶이다. 죽음은 삶이 다하는 곳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몽이 자신을 지키면서 살다 죽을 수 있게 도와주는 도지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공원에서 만나게 되는 고양이들을 그냥 무심코 바라보지 않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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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 너를 어쩌지. 부탁이니까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려줘."
'괜찮아, 다 괜찮아'
20년 동안 사람을 사랑한 아주 특별한 고양이 '몽'의 삶과 죽음.
누가 뭐래도 2012년을 가장 빛낸 일본 미스터리 작가는 '누마타 마호카루'였다. 적어도 내게는 스스로 이의제기를 묵살하게 만들 정도의 그 파급력은 굉장했던, 결코 잊혀 지지 않는 작가가 되었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으로 시작하여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예사롭게 지나친 적이 없으니 통과의례치고는 떠들썩했던 셈이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한껏 불편하게 탑을 쌓다 마지막에 터뜨린 결정적 한 방에 나는 이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앓았었고 그 소설을 2012년 최고의 작품으로 자체 선정하는데 주저함은 없었다.
그랬던 '누마타 마호카루'가 이번에는 "고양이 울음"이라는 작품으로 내게 다시 귀환을 알려왔다. 20년 동안 사람 곁에서 사람을 지키며 사람을 사랑했던 아주 특별한 고양이 '몽'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로 이번에도 나를 제대로 흔들어버린다. 그녀는 강하고 그럴 때 마다 나는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로 한없이 흔들리고 또 흔들려서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것 같은 심정이 든다. 더군다나 미스터리가 아닌 일반소설로도 말이다.
사실 주인공 '몽'이는 비주얼적으로 그리 어여쁜 고양이라는 볼 수 없다. 얼굴에 기미처럼 검은 점이 덕지덕지 흩어져 있고 꼬리는 3분의 2 지점에서 뭉툭하게 잘려나간 것 같은 모양새하며, 오렌지 빛깔의 털을 가진 기묘한 고양이. 그래서 이 녀석을 보는 사람들마다 순간 멈칫하면서 주춤 주춤 뒤로 물러나 길을 돌아가게끔 만들지만 정작 외모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한 번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겐 더 없이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이다.
사실 '몽'이가 목수인 '도지'의 집에 눌러 앉게 살게 된 배경은 순탄하지 않았다. '도지'와 아내 '노부에'는 아이를 유산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를 잃은 슬픈 공허함에 힘들어하던 부부에게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키울만한 마음의 공간은 없다. 오히려 '노부에'는 집 앞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한 번 키워볼까.'가 아니라 끈질기게 내다버리면서 숫제 죽어버렸으면 한다. 슈퍼마켓에서 남자아이와 어머니의 다정한 한때를 지켜보면 숨이 막혀서 자리를 뜨고 싶고 혈육이라는 은밀한 의미들이 고스란히 숨겨지고 눈에 띄지 않았으면 할 정도이니. 그러니까 새끼 고양의 야옹야옹하고 끊임없이 울어대는 소리가 듣기 싫다.
'나는 이렇게 배 속에 있던 아이의 장례를 지내는 것이다. 하나의 생명을,
이번에야말로 스스로의 의지로 보낸다. 이것은 장례식,
비로 충만한 숲 속의 수장이다.
형태를 갖지 못한 갓난아기. 빠져버린 기억,
그 전부를 저 새끼 고양이에게 의탁한다.' (P.36)
숲 속에 버리면 까마귀밥이 될 터, 그렇지 않아도 죽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녀석은 버리고 돌아오면 나중에 온 몸에 생채기를 안은 채 끈질기게 '도지'의 집으로 돌아온다. 결국에는 새끼 고양이를 키우기로 하는 '도지' 부부의 결정까지가 소설의 1부격에 해당된다. 1부가 '몽'이의 유년기였다면 2부는 청년기. '유키오'라는 소년의 관점에서 진행되는데 이 아이는 엄마는 없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아버지는 부친이라기보다는 철없는 형 같은 존재로서 일과 양육 사이에서 지치고 힘들어 '유키오'를 사실상 방임한다. 아버지의 단절된 부자관계에서 비롯된 염증은 세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사랑받는 모든 존재들에 살의를 느끼며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는 소년.
자신보다 어린 남자아이들을 일부러 괴롭히는가 하면 심지어 흉기로 찌르고 달아나는 등 가학적 행위에 즐거움을 발견하는 위험천만한 녀석인데 어느 날 우연히 키우게 된 새끼 고양이가 갑자기 죽자 그제야 '절망'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된다. 평생 매듭짓지 못할 일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 고양이의 죽음이 아이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몽'이는 잠깐 등장하고 2부의 막이 내린다.
마지막 3부는 노년이 된 '도지'와 '몽'이의 이야기이다. '도지'는 예순 중반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아내와는 사별했고 일주일전에는 형의 장례식에 다녀오느라 한동안 집을 비운다. 일주일 만에 다시 '도지'를 만나게 된 '몽'이의 그때 그 반응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주인의 환영을 본 것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갸웃거리며 두 번 다시 주인을 만나지 못할 거라고 느꼈다며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몽'이. 녀석이 세상이 천지개벽할 것만 같은 망연자실함에 주인을 다시 만나 넋을 놓지만 곧 겸연쩍어하는 모습에서 '도지'는 '몽'이를 안고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느낀다. 서로에게 동화되고 경계없이 하나가 되어 한 흐름에 몸을 내맡기는 기분이란 죽은 아내에게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감각이다. 왠지 안심되고 의지가 되는 순간, 반려동물의 관계 그 이상이다.
어쩌면 '몽'이는 아이가 없던 '도지' 부부에게 하늘이 허락한 입양일 것이다. 아이를 떠나보낸 부부와 엄마에게 버림받은 '몽'이 모두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만한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몽'이가 살기 위해 끊임없는 발버둥 쳤던 눈물겨운 시간들은 얼어붙은 '노부에'의 맘을 열고 제2의 인생설계를 시작하게 했다. 아이의 빈자리라는 상실감을 최선을 다해 메꿔준 '몽'이는 눈부신 존재였고 그래서 행복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모든 생물은 생로병사의 섭리를 피해가지는 못한다. 세월은 '노부에'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고 '도지'와 '몽'이도 많이 늙고 쇠약해진다. 단 둘이 보낸 시간보다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수명이 인간보다 짧은 고양이 '몽'은 먼저 떠날 준비를 한다. 하지만 늘그막에 '몽'이에게 많이 정주며 의지했던 '도지'에게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다. 정처 없이 춥고 슬프고 피곤하며 어두운 터널을 터벅터벅 걷는 이 심정, 너무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 예행연습들. 자신이 이 세상에 없어도 '도지'가 혼자가 될 준비를 차분히 기다렸던 의젓한 '몽'이에게서 타자의 죽음이 아닌 내 스스로의 죽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스리고 호들갑스럽지 않게 언젠가는 떠나가야 할 길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실 '노부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더 애절한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유산한 애끓는 모성애로 아들 같았던 '몽'이와의 일생은 어쩌면 한 편의 신파극이 될 위험도 분명 보인다. 하지만 '누마타 마호카루'는 그런 것들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화자를 '도지'로 선택했다. 그래서 반려동물과의 이별 이야기는 하마터면 익숙한 스토리가 떠오를 수도 있기에 최소한의 적중은 거부하진 않되, 차분하고 담담하게 시간의 흐름을 기록해 나간다. 결코 눈물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역자의 경고(?)대로 눈물은 흐른다.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걸 보면 '누마타 마호카루'에게 '또 다시 당했구나.'라는 자조 섞인 헛웃음마저 나오나 보다. 어떤 의미에선 '이번에도 통했구나.'
고양이의 짧은 일생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익숙한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을 들여다보노라면 마음의 감정선들이 유린당하면서 원상복구 되지도 않은 채, 모든 형태의 다양한 감정들이 빗장을 풀고 탈출을 시도한다. 이것은 감당할 수 없는 아름다운 감동이다. 2012년에 '누마타 마호카루'가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면 그 빛은 영롱함을 잃지 않고 또 다시 나를 격정의 한가운데로 몰아 넣는다. 반려동물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말미에 서평가 '도요자키 유미'도 말했듯이 '누마타 마호카루'는 강하다. 정말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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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제목 : ¨「고양이 울음」 작가 : 누마타 마호카루 고양이 울음은 신경을 긁어낸다. 날카로운 울음소리. 동네 어느 골목에서나 볼 수 있는 길고양이들은 사람들을 피해 다니면서 울어댄다. 사람들의 신경을 긁어내면서 말이다. 아마도 몽이라는 고양이도 그렇게 울지 않았을까? 살기 위해서 우는 고양이 몽. 그런 몽에게 노부에는 곁을 내주지 않는다. 노부에는 아기를 품고 있다가 유산을 하고 말았다. 그 유산으로 말미암아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허탈감과 상실감이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그런 사람에게 고양이 몽은 불편한 존재였을 것이다. 비록,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새끼 고양이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존재 아닐까. 누구라도 노부에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도 길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는 개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자신을 보살피는 사람들과 대등하게 생각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으로 고양이와 개는 구별이 된다. 이 이야기를 왜 했지???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한 번 고개를 갸우뚱 한 적이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로 넘어갈 때는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세 개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연결된 이야기였던 것이다. 고양이 몽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제 2부에서는 몽은 그저 조연 역할에 그쳤다. 그래서 아마 처음에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2부에서는 자신을 노부에의 집에 버렸던 소녀와 소녀의 반 친구인 유키오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몽은 그저 조연. 1부에서는 유산의 경험으로 상실감에 빠진 노부에와 어린 고양이 몽. 2부에서는 몽을 버린 소녀와 유키오. 3부에서는 늙어버린 도지와 고양이 몽. 이 때는 고양이 몽도 꽤 나이가 들었던 상태이다. “몽, 너를 어쩌지. 부탁이니까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려줘!” 20년 동안 사람을 사랑한 아주 특별한 고양이 ‘몽’의 삶과 죽음. - 책의 뒤표지에서. 동물이든 사람이든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그런 면에서는 ‘몽’은 행복한 고양이가 아닐까 누마타 마호카루는 194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48년이라…. 1985년부터 오사카 문학학교에 다니면서 글쓰기를 배웠다고 한다. 첫 장편소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으로 뒤늦게 꽃을 피운 슈퍼스타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제 5회 호러 서스펜스대상을 수상하며 늦깎이 작가로 56세에 화려하게 등단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유리고코로>> 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것이 또 재미있을 것 같다. 언젠가는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 옮긴이의 글에 이런 재미있는 글이 있다.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는 절대 읽지 마세요!” 그래서 전철 안에서는 읽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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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마타 마호가루... 전작인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을 읽었었다. '유리고코로'로 더 유명한 작가이긴 하지만 내게는 전작으로 먼저 다가왔었다. 그리고 그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은 그냥 한마디로 뭐지? 하는 생각이었다. 한 여자와 한남자가 있다. 둘은 같이 산다. 그렇지만 그 여자는 그 남자를 지극히 싫어한다. 그러면서 같이 산다. 그남자는 객관적으로 봤을때도 별로다. 그여자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같이 사는 그여자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그 여자는 다른 남자를 만난다. 내용과 제목이 매치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한번은 들어본 이름의 작가다 라고 미루어놓았었는데 이책을 읽으면서 약간은 마음이 바뀌었다. 이 작가. 차라리 이런 방면으로 책을 쓰는게 더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읽은 책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아니 2장에서는 약간은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작처럼 참을수 없을만큼 혐오스럽거나 짜증이 나지는 않는다.
이 책을 읽고 해설을 쓴 사람은 솔직히 1장에서 화가 났다고 했다. 그냥 고양이를 키워 하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주인공인 그녀 노부에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6개월간이나 배속에 품어온 아이. 그런 아이를 잃고 나서 마음을 추스리기도 전에 발견한 갓 태어난 고양이. 그 아이가 고양이 같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키우면서 되지 않는냐고 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키울수 없고 자꾸만 버리고 싶었던 것일수도 있다. 어차피 없어진 아이. 고양이를 키운다고 그 아이가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 멀리하고 싶은 심정. 난 아이를 낳아보지도 키워보지도 그렇다고 고양이를 키워보지도 않았지만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늦은 나이에 얻었던 아이. 얼마나 소중했었을까. 노부에는 몇번이고 아기고양이를 버리지만 갑자기 찾아온 꼬마아이가 그 고양이를 찾는 바람에 다시 고양이를 찾으러 가게 된다. 결국 남편인 도지가 찾아와 고양이는 노부에와 도지의 집에서 살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되면서 갑작스럽게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변신한다. 노부에와 도지는 없어지고 새로운 십대의 남학생이 등장한다. 그의 아버지와 함께. 이 책이 단편이었나 하고 의심할무렵 1부에서 나왔던 그 고양이 몽이가 자라서 이제는 어엿한 한마리의 듬직한 고양이로 잠시 등장을 한다. 그리고 3부에서는 다시 도지와 몽이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자칫 지루할뻔 한 이야기를 다른 주인공을 등장시키고 다른 공간적 배경을 줌으로써 피해가고 그러면서 몽이를 등장시켜 통일감을 잃게 하지 않은 기법이 신선하다. 마지막 장에서는 할아버지가 된 도지 그리고 몽이. 둘의 우정이 그려진다. 가족이라고는 단 둘인 그들. 몸이가 나이가 들어 이제는 떠나려는 그 시점에 도지는 어떤 행동으로 몽이를 놓아줄수 있을까.
'살아남은자의 슬픔'이라는 책이 있다. 살아 남은 사람의 슬픔을 그린것이 대부분이라면 이 책은 떠나는 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얼마전 읽었던 [당신에게] 그 책에서도 떠나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연이었을까 최근 읽었던 책들이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떠나면서 남편을 그리워하고 걱정을 했다면 이 책에서는 떠나는 고양이 몽이가 남겨지는 도지를 걱정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남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두권 모두에서 그 이후의 이야기는 그리고 있지 않다. 그래서 '당신에게' 책에서의 남편이 과연 그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 책에서 도지가 얼마나 더 살면서 몽이를 그리워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그 사랑만큼은 충분히 이해할수 있을 듯 하다.
이야미스의 선두주자 누마타 마호가루. 이야미스라는 것이 싫다라는 일본어와 미스터리를 합성한 신조어라는데 누마타 마호가루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읽은 후에도 찜찜한 뒷만이 남는다는 이상한 특징을 가진 장르. 전작을 읽으면서 충분히 그 느낌이 무엇인지 이해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그런 장르를 뛰어넘어 잔잔한 감동을 그리고 있어서 이 작가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다음 책에서는 다시 이야미스로 돌아올까? 누마타 마호가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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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012년) 이맘때 ‘유리고코로’를 통해 누마타 마호카루와 처음 만났습니다. 읽는 내내 초점이 나간 사진을 보는 듯, 또는 포토샵으로 일부러 가장자리를 부옇게 뭉개버린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모호함보다는 묵직함이, 찜찜함보다는 깊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그녀의 작품 가운데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과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을 아직 읽진 못했지만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이나 서평들을 보면 일관된 톤을 유지해온 것 같은데, 그런 누마타 마호카루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하니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이야기는 연작 형식의 세 편으로 구성돼있습니다. ‘새끼고양이’에서는 주인공인 고양이 ‘몽’이 노부에와 도지 부부의 집에서 살게 된 계기를 보여줍니다. 늦은 나이에 임신을 했으나 결국 유산을 겪어야만 했던 노부에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새끼고양이를 몇 번이고 내다버리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식구로 받아들입니다. ‘절망이라는 블랙홀’에서 고양이 몽은 조연으로만 등장합니다. 대신 중학생 유키오와 새끼고양이의 짧은 만남이 펼쳐집니다. 자신보다 19살 밖에 많지 않은 ‘말없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면서 유키오는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듭니다. 힘없고 약한 존재에게 무한한 살의를 느끼게 되고 심지어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회의를 갖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기구한 인연으로 만난 새끼고양이 덕분에 겨우 그 수렁에서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어느새 5살이 된 고양이 몽을 목격합니다. ‘멋진 이별’에서 고양이 몽은 15살이 된 ‘할아버지 고양이’가 되어 있습니다. 몽을 집안에 들였던 노부에도 7년 전에 죽었고, 이제 몽은 칠순이 다 된 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습니다. 죽음이 멀지 않은 나이에 이른 도지는 점점 기력을 잃고 병치레까지 하게 된 몽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사실, 다른 어떤 것보다 ‘지하철에서 읽지 말라’는 홍보 문구가 끌렸습니다. 제대로 한번 울어볼까, 라는 욕심도 들었고, 그것이 누마타 마호카루의 작품이라고 하니 기대감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울 준비’를 한 탓인지, 정작 울컥 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좀 억울하긴 했지만, 누마타 마호카루의 독특한 문체를 생각해보면 그녀의 작품을 읽으며 울컥 하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듯 보이지만 실은 냉정하게 거리감을 두고 있고, 간혹 판타지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심리묘사 덕분에 깊은 감정이입이 쉽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소설 속으로 절대 푹 빠져들지 못하게 하는 누마타 마호카루만의 특이한 장치들이 곳곳에서 눈물샘을 막았다고나 할까요? 세 번째 이야기의 부제인 ‘멋진 이별’은 역설적인 제목입니다. 어쩌면 ‘고양이 울음’은 작품 전체가 역설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삶과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절망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번이고 버려져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새끼고양이의 생환과 성장기를 바탕으로 10대가 겪는 절망, 40대의 불임과 임신과 유산, 70대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회고하는 일상이 한데 버무려져 있습니다.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표지 자체도 역설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옮긴이의 말에 다르면, 신조어 만들기가 유행인 일본에서 누마타 마호카루는 イヤミス(이야미스)의 대표작가라고 합니다. ‘싫다’라는 뜻의 イヤ와 미스터리의 ミス를 합친 말로, 말하자면 다 읽고 났을 때 기분이 나쁘거나, 찜찜한 느낌을 주는 미스터리를 뜻합니다. ‘고양이 울음’은 미스터리가 아니다보니 ‘이야미스’의 범주에 들어가진 않겠지만, 어쨌든 편하고 밝은 기분으로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몽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도지 외에는 대부분 크고 작은 그늘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어쩌면 다 읽은 후 ‘싫다’라는 느낌이 드는 독자도 적잖을 것입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너무 거창하거나 철학적이지 않되 묵직하고 담담하게 포장된 이야기를 읽고 싶어진다면 누마타 마호카루의 ‘고양이 울음’이 제격이라는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