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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과 혁명' 사이에서 길 찾기
"'음란과 혁명' 사이에서 길 찾기" 내용보기
하의실종 패션에 총천연색으로 염색한 연예인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아들과 또래들을 보며 웃음 반 걱정 반으로 우려하다가 나도 모르게 움찔하는(?!) 순간이 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일테고 내 안에 자리잡은 자기 검열의 잣대가 어느새 아들을 향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을 기르고 싶어하는 아들에게 , 시간이 늦는 것도 모르고 밤늦게 들어오는 아들에게 자유를
"'음란과 혁명' 사이에서 길 찾기" 내용보기
하의실종 패션에 총천연색으로 염색한 연예인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아들과 또래들을 보며 웃음 반 걱정 반으로 우려하다가 나도 모르게 움찔하는(?!) 순간이 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일테고 내 안에 자리잡은 자기 검열의 잣대가 어느새 아들을 향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을 기르고 싶어하는 아들에게 , 시간이 늦는 것도 모르고 밤늦게 들어오는 아들에게 자유를 허한다는(?!) 이유로 잔소리를 참는 부모들이 몇이나 될까? 매일같이 뉴스에서 떠드는 끔찍한 사건 사고는 미리미리 알아서 통제하고 단속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불안감을 부추긴다.

통행 금지와 장발 단속을 피해 도망다니던 때가 있었다. 국가는 통행 금지를 통해 국민의 시간을 관리했을 뿐 아니라 개인의 행동반경을 통제하고 사랑의 방식과 장소까지 개입하려 들었다. 치안 유지와 풍기 문란을 단속한다는 구실로 사상 검열은 물론이고 말 한 마디에 범죄자로 낙인 찍혀 목숨을 잃었던 끔찍한 시대가 불과 얼마 전이었다. 그 때에 비해 자유로워졌다고 해도 정부가 비밀리에 개인을 사찰하고 인터넷에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수사를 감행하는 지금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

 


제목이 주는 솔깃함에 이끌려, '음란' 쪽에 비중을 둔 가십거리를 기대한다면(?!) 적잖이 실망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강철 심장을 지닌 혁명 전사들의 피튀기는 투쟁사가 시선을 잡아 매는 것도 아니다.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총 4부로 이루어진 구성은 풍기문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풍기문란 통제가 시작된 일제강점기와 이후 전쟁으로 빚어진 냉전 시대를 거쳐 오늘날 새롭게 부활하고 있는 풍속 통제와 검열 문제에 주목한다.
 
논제 제기에 따른 방법론과 철학적인 담론, 전문적인 용어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기영의 <서화>와 이광수의 <무정>, 최인훈의 <구운몽>,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같은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난 시대상과 사회적 논란거리를 통해 주제에 접근해 가는 방식은 분명 색다른 재미를 가져다 준다. 일제 강점기에 잡지와 신문에 몇 차례 연재되었던 에밀 졸라의 <나나>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단순히 음란물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나나>를 향유하던 대상들이 달라짐에 따라 여성 대중들에게 사랑받던 책이 풍기문란 도서로 전락하는 상황은 풍기문란에 대한 검열 기준을 규명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풍기문란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책을 쓴 목적이라고 말하지만 아울러 풍기문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질문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풍기문란이란 '무규정적 규정'에 따른 사안으로 오히려 그 역할을 담당하는 주체에 초점을 맞춰 풍기문란자들을 자처했던 존재들이 가지는 시대적 의미를 되짚어본다. <나나>는 풍기문란이라는 무규정적 규정이 작동하는 순간 주체의 자리에서 쫓겨나 공백의 자리, 즉 몫도 없고 자리도 없는 곳으로 할당되어 주체마저도 말살되어야 했던 사람들과 작품들을 대표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끔찍한 사진 한 장이 할 말조차 잊게 만든다. 부패한 이승만 정권은 열 일곱살 김주열의 얼굴에 최루탄을 박아 바다로 던졌다. 물 위로 떠오른 그의 시신은 대중의 분노를 혁명으로 이끄는 촉매가 되었지만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운 쿠테타 정권에 의해 들춰내서는 안될 비밀이 되고 말았다. 4.19 혁명 후, 사회질서 문란에 대한 경계와 질서 회복은 생존자들의 삶을 수습하려는 욕망과 맞물리면서 쿠테타 세력의 명분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학생들의 풍기문란을 질타하는 도덕적 훈계는 일제 강점기부터 꾸준히 있어 왔지만 5.16 쿠테타 이후에는 혁명의 주체였던 학생들을 향한 탄압과 통제가 끊이지 않았다. 보호와 교육을 명분 삼아 1961년 1월 한 달간 풍기문란으로 적발한 학생 수가 4456명이나 되는 걸 보면 또다시 혁명을 일으킬 학생들이 어지간히 두려웠나보다. 저자는 풍기문란의 역사와 정치학을 통해(?!) 풍기문란을 주도했던 존재들을 찾아내는 데 주력한다. '잡범'이나 '풍속 사범' 같은 오명을 쓰고 있는 그들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법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 자들, 다스릴 수 없는 자들이 세상과 몸으로 부딪히며 만들어낸 혁명의 세상에 동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 내내 자유의 허용 범위에 대해서 고민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그 어떤 권위도 부정하는 아나키즘을 떠올리며 공익을 빌미로 통제와 감시를 정당화하는 국가 권력에 치를 떨었다. 그들이야말로 그 어떤 포르노보다 음란하며 썪은 냄새를 지독하게 풍기는 풍기문란의 대명사가 아니랴.

지금껏 풍기문란, 부적절한 정념들은 통제를 받아 마땅한 것이며 열정이나 정념은 오랫동안 인간을 병들게 하는 나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일제 강점기의 '풍속경찰'들은 선량한 풍속을 유지시킨다는 구실을 들어 조선인들을 좋은 일본인으로(?!) 개조시키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했다. 해방 후의 정치 권력은 반공이라는 칼날로 수많은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며 풍속 단속을 감행했다. 부적절한 정념들은 때로는 법이라는 제도 하에 처벌되고 갇히며 핍박받기도 했지만 절대 길들여지지 않는 힘이 되어 정치적 열정으로 이행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권력은 말 잘 듣는 국민을 요구한다. 시키면 시키는 데로 하는 우민들은 절대 풍기문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불온한 서적을 읽지 않으며 건전하게 여가를 즐기고 음지의 문화에 한눈 팔지 않는다. 누구를 위하여, 누가 정한 기준에 맞춰 바른 생활 사나이가 된 걸까? 과연 바르게 살고 있는 걸까?

 


정념의 정치적 이행 과정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혁명과 음란을(?!) 꿈꾸는 사람들의 체제 거부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한국 근대사를 색다르게 만나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개인의 동의 없이 그 어떤 것도 자유를 침해할 수 없으며 자유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삶을 망가뜨려서도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하며 통제와 감시에 저항하기를 두려워하는 순간 그 속에 갇혀 버린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느낀 시간이었다.
 
혁명을 꿈꾸지 않아도 좋을 세상은 언제쯤 오는걸까....




1*******n 2013.07.1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