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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꽤 애를 먹었다. 잘 이해되지 않는 윤리학 강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면서 듣기 위해 악전고투한 느낌이다. 그래도 해제까지 끝까지 읽어냈고, 이제 부족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들을 말해보려 한다.
먼저 이 책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생명 중심주의 환경 윤리에 관한 것이다. 자연을 존중한다는 것의 개념을 막연한 느낌이나 직관의 수준으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학문적으로 논리정연하게, 세련되게 다듬은 것이다. 자연환경과 야생 생명체를 대하는 기존의 인간 중심적 관점을 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인간의 가치실현이나 이상을 평가절하하는 환경 중심적인 윤리로 치우치는 것이 아닌, 이 둘을 통합하는 생명 중심의 보다 포괄적인 환경 윤리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인간 중심의 윤리 체계를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인간과 인간 이외의 존재(동물, 식물 등 야생 생명체와 생태계)를 윤리적 관점에서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작업을 선행한다. 그리고 도덕적 권리, 도덕 행위자, 도덕 주체 등의 개념을 활용하여 인간 이외의 존재들도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음을 논증한다. 예를 들어 식물의 경우 도덕 행위자는 될 수 없지만 도덕 주체로서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보호받고 증진될 권리가 있다고 본다. 이때 권리의 개념이 혼동과 오해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인간과 인간 이외의 존재가 공통적으로 고유의 선을 추구한다는 보편적 가치체계를 설정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인간과 자연이 공동체라는 인식과 실질적 조치를 통해 조화와 균형의 생존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책은 쉽게 말해 인간이 역사상 지금까지 해온 대로 자연 환경을 파괴하면서 무한정 이득만 취할 수 없고 나아가 생존에도 위협이 될 수 있기에, 판단이나 행위의 근거가 되는 가치관이나 기준의 관점을 인간 중심에서 더 큰 범위와 더 넓은 조건의 생명 중심 관점으로 바꿔 자연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태도를 가지고서 생존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자연을 존중한다는 것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 또 그 환경들의 총합인 지구까지 동등한 의미로, 즉 우열이 없는 동등한 본래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인정하고 상호 의존적인 시스템의 협력적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제한된 경험과 지식 내에서 인간은 지금까지 우열의 관점으로 같은 인간이나 동물과 식물, 산과 바다 등 자연 환경을 오로지 이익과 욕망의 충족 수단으로 삼아 파괴하고 착취해왔는데, 아마 이런 방식으로 인해 자원이 고갈되고 생존 기반 자체가 흔들릴 거라는 징조를 못 보았다면 계속 지속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변치 않는 진리라고 믿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학문과 기술의 발전은 무한한 탐욕을 허락하지 않았다. 환경 파괴와 오염으로 인한 기상 이변 등으로 인간의 삶이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눈 앞에서 하나하나 끔찍할 정도로 죽어 나자빠지지 않으니까 인간들은 계속 야구에서 투수가 심판과 스트라이크존을 두고 투구 과정에서 밀당을 하는 것처럼 야금야금 기존에 해왔던 방식을 고수하려고 하고 있다.
이번에 터진 코로나 사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계속 넘나들다가 일어난 일에 불과하다. 차이가 있다면 지속적 생존을 위해 모든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잠시 멈출 수도 있다는 걸 실천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인간 중심에서 생명 중심으로의 자연 환경 윤리관의 전환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몇 번 더 당해봐야 가능할 것 같다.
또 하나 다행스러운 점은,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의 시야가 넓어졌고, 인터넷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문가 등의 특정 계층뿐만 아니라, 보통의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의 환경 문제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접하기 쉬워졌다는 것이다. 전지구적인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아진 것이다. 이는 생명 중심주의 환경 윤리의 중요성을 다룬 저자의 책이 나온 1980년대 당시보다 환경 오염 문제와 생태적 조건이 더 나빠졌지만 동시에 문제 해결의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이상 기후로 인해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 일들이 2000년대 들어 더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제시하는 대안들이 더 힘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한편 이 책이 제시하는 해법들은 결국 자본주의의 속도 조절이나 대안, 혹은 인간 욕망의 절제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조화와 균형, 공유, 순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결국 필요 이상의 생산과 소비가 현재의 환경 문제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속도가 붙은 체제의 돌진을, 당위성이나 뛰어난 논증과 설득으로 돌이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아까 더 당해봐야 가능할 것 같다고 한 것이다.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가 멸망해가는 우주의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인류의 절반을 사라지게 하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게 하는 그 사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 캐릭터가 상당한 공감을 일으켰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환경 문제(이 생존의 문제가 우주 영역으로까지 확장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에 대한 보다 실질적이고 타당한 대안은 이 책에 담겨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윤리학에 대한 막연한 인식이 구체적인 관심으로 이어졌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신학이라는 학문이 생명 중심주의 환경 윤리, 혹은 생태학적 관점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고 이해하기 위해 고민한 것이 대단히 자랑스럽다. 물론 지적 능력의 한계로 이 책의 내용과 가치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지만, 앞으로 더 나아갈 디딤돌이 되어주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생명의 보존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인간의 가치 구현과 인간 이외의 존재의 선의 실현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탁월한 발상, 이를 설득하는 아름다운 논증의 과정에 진지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그리하여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다방면의 수많은 생존을 위한 노력들이 죽음의 경쟁과 투쟁이 아닌, ‘살아가고 살리는’ 협력과 상호공존의 관계로 바뀔 수 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참고로 최근 EBS에서 방영한 「녹색동물」이라는 다큐를 추천하고 싶다. 식물들의 놀라운 생존 전략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식물이라는 존재의 선의 실현 의지 혹은 성향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 또 자연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생명체들간의 상호 의존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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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참 오랫동안 읽었다.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을 벗삼아 함께 머무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매일 크게 한 봉지씩 버리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와 음식쓰레기들, 각종 유해화학성분들을 사용하며 늘 마음 저편에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간의 편이를 위해 얼마나 자연을 희생해야 하는 것인지 자연을 예쁘다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도 결국은 자연을 이용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 하곤 했다. 에버랜드 연간회원권을 매년 끊고 동물들이 보고싶을 때마다 아이들과 나들이를 간다. 얼마전 새끼 호랑이가 탄생하여 호랑이 구경을 가서 우리에서 아장아장 발걸음을 때며 엄마와 노니는 새끼 호랑이를 구경하기도 했다. 작년인지 재작년에는 에버랜드의 백곰이 남은 여생을 준비하기 위해 해외로 떠나기 직전 결국 에버랜다 사육장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많이도 속상해 했었는데 이 속상함이 누구를 위한 속상함일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폴 테일러의 생명 중심 윤리학은 모든 생명체가 본래적 가치를 가진다고 보는 생명관을 바탕으로 한다. 생명 중심 윤리학의 초기 형태는 슈바이처의 생명 외경 원리다. 슈바이처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무수한 생명들 또한 긍정적인 생명 의지로 파악하였고, 사고하는 인간은 다른 생명 의지를 대할 때에도 자신의 생명 의지를 대할 때와 똑같은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갖고 대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동시에 지금까지 윤리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태도만을 문제삼아온 것에 대해 큰 과오라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슈바이처의 생명 중심 윤리를 발전시켜 철학적으로 세련되게 다듬은 것이 테일러의 자연 존중 사상이다. 인간이 동물 혹은 식물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은 이론적으로는 하지는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닐까 한다. 심각한 환경, 생태계의 문제를 봐서도 더이상은 자연에 해를 끼치거나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실천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여전히 부족하다. 나조차도 이런 마음을 가지면서 결국 포장이 잔뜩 들어간 물건을 매일 사재끼고, 당장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희생시키는 일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범하고있으니 할말이 없다. 책을 읽는 내내 반성하게 되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하게 되었고, 조금은 어려운 윤리적인 이론부분이 엤어서 공부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르고 범하는 많은 행동들에서 우리는 자연을 존중하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생명 중심 윤리학이라는 것, 인간뿐만 아니라 식물, 동물 생명을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에 경외심을 갖고 대하지 않으며 결국 그 폐해는 자연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가장 크게 돌아올 것이다. 함께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더이상 자연을 희생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책을 읽었다. 두고 두고 자주 들여다보며 "자연에 대한 존중"을 마음 깊이 새겨야겠다고 다짐했다. 너무도 아름다운 자연 Respect for Natu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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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이후 인간의 손길이 덜해진 자연이 회생하듯 살아나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자연에 무심했었음에 반성이 되었고, 자연과 공존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환경 윤리학 분야 연구로 잘 알려진 폴 W.테일러는 일찍부터 생명중심 평등주의에 힘껏 목소리를 낸 사람이었다. ![]() 이 책은 1986년에 처음 출간된 책으로 표지에도 나와 있듯 생명 중심주의 환경 윤리론 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담고 있다. ![]() 보통 감사의 말을 쓸 때, 가족, 연인 등과 같이 사람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데 저자는 지구의 야생 생명체에게 이 책을 바쳤다. 환경 윤리학자다운 행보이다. ^^ ![]()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가볍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나에겐 낯선 용어들도 있었고, 아주 잘 쓰여진 연구논문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며 읽진 못했지만, 그만큼 자연의 소중함,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어 생각해볼 거리도 많았고 깊이 사색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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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존중' 이라는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듯 했다. 어떤 사람을 존중한다는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자연을 존중한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80년도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자기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을지 놀라웠다. ![]() 이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장은 3장의 자연을 바라보는 생명 중심 관점이었다. 저자는 우리가 생명체에 관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관점은 그들에 대해 또 그들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제시했다. 생명체를 존중받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들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위의 언급된 내용은 특히나 흥미로운 내용 중 하나였다. 인간으로서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다른 생명체를 동등하게 여기며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자.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다 맞는 말이었다. 인간이 이 지구에 살고 있지만 지구의 주인은 아닌 터, 함께 살아가는 다른 생명체도 생각해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믿음 네 가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계와 그 안에 있는 인간의 위치에 대해 일관성 있는 관점을 가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가축의 우리를 좀 더 넓게 만들어 가축이 살기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동물 복지 방안과 몇년 전 신문 기사에서 본 산 채로 랍스터를 삶는 이를 처벌하는 스위스의 동물 보호법이 떠올랐다. 직접 소통하며 그들에 대해 잘 알 순 없지만 우리의 생명과 같이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해야 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자연 존중에 대해 이렇게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책을 읽다 멈춰서 생각해보기를 여러번 했었다. 나는 그동안 그저 얕게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자연이 훼손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권리, 입장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었으니 이제부터라도 이 문제에 대해 더 생각해보고 행동으로 실천해봐야 겠다. 생명 중심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보면, 인간의 생명은 지구 생물권의 자연 질서를 구성하는 부분으로 본다는 저자의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 리수 출판사의 서평단 이벤트를 통해 작성한 리뷰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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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치며 역설적이게도 요즘 5월의 맑은 하늘을 매일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때아닌 강풍이 불고, 봄이 없어진듯이, 겨울처럼 춥다가 여름 날씨가 훅 하고 찾아오는 등 이상기후는 계속 되고 있다. 자연이 살아있어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 자연이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어야 우리도 생존할 수 있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고 상당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마시는 물, 내가 들이마시는 공기, 내가 먹는 음식이 나는 땅, 드넓은 바다. 그 어디 하나 농약이나 미세 플라스틱으로 오염되지 않은 것이 없다. 리수출판사에서 나온 생명 중심주의 환경 윤리론을 담은 폴 W.테일러의 <<자연에 대한 존중>>을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장씩 읽어보았다.
난 이 책이 1986년도에 나온 책이란 사실에 놀랐다. 미국에서는 벌써 그 시기에 자연 존중 시각에 눈뜨기 시작했구나. 내가 좋아하는 유발 하라리 님이 그러셨다. 인공지능 시대에 위협을 느낀 인간이 이제야 동물이나 식물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살 권리를 지켜주려고 하는 움직임을 시작했다고. 일리있는 말이다. 인공지능 앞에선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똑같은 객체아닌가. 그런데 나는 다행스럽게도 자연의 소중함, 자연의 풍요로움에 감사하고 자연의 품 안에 안기는 것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그게 커서도 이어지고 있다.
자연 존중 태도의 표현 자연 존중 태도는 도덕 행위자의 일련의 성향이다. 그 성향은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으며, 각각은 그 태도의 한쪽 측면을 이룬다. 나는 이들을 평가, 능동, 실천, 감정 측면이라고 부르겠다. 평가 측면은 어떤 가치를 판단하는 성향이고, 능동 측면은 목적을 가지거나 특정 목표를 달성하려는 욕구의 성향이다. 실천 측면은 특정 이유 때문에 행동할 뿐 아니라 그 이유를 행동의 좋은 구실로 간주하는 성향이다. 감정 측면은 특정 감정을 느끼는 성향이다. 자연 존중 태도의 평가 측면은 지구 자연 생태계의 모든 야생 생물이 본래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는 성향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그에 따라 그들의 선은 모든 도덕 행위자의 관심과 배려를 받아야 마땅하며 야생의 존재는 그 자체로, 그리고 그들을 위해 보존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 존중 태도를 이루는 다른 모든 성향은 여기서 비롯된다. 88쪽
인간은 지구 생명 공동체의 일원이다 생명 중심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보면, 우리는 인간의 생명을 지구 생물권의 자연 질서를 구성하는 부분으로 본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종들의 지위를 생각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자연계 내 인간의 지위를 생각한다. 지구와의 관계는 공통이며 우리와 야생 동식물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통 관계를 온전히 인식하면 우리는 그들과 진정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된다. 110쪽 목적론적 삶의 중심으로서의 개별 유기체 개별 유기체를 목적론적 삶의 중심으로 이해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릇되게 의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인간의 특성으로 '읽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들에게 의식이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어떤 나무가 목적론적 삶의 중심이라고 해서 나무가 의도적으로 자기 존재를 지키려고 하거나, 죽음을 피하려고 노력하거나, 심지어 삶과 죽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무와 단세포 원생동물 같은 유기체에게는 의식적인 삶이 없다. 그들은 그들 주변의 세계를 의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생각이나 감정이 없으므로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고유의 선이 있고 그들의 행위는 그 선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의식이 있든 없든 모든 유기체는 자신의 존재를 지키고 유지하는 지속적인 경향이 있으며 목표 지향적으로 활동하는 통일되고 일관성 있고 질서 정연한 시스템이라는 의미에서 목적론적 삶의 중심이다. 129쪽 <<자연에 대한 존중>>은 내가 평소에 자연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일치했다. 인간은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들중 단지 일부일 뿐이다. 지금은 마치 지구의 주인인양 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은하계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지구에 사는 한 생물종일뿐이다. 콘크리트로 지은 집이 없이, 아무런 도구없이, 야생에 버려지면 우리들보다 몸집이 크고 사나운 멧돼지, 곰, 호랑이와 같은 야생 동물에게 저항 한 번 못해볼 사피엔스일 뿐이다. 나는 늘 생각했다.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은 생각하고 글쓰고 말하고 책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그 외엔 먹고 자고 배설하는 등 다 똑같다고. 이런 단순한 시각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찍 돌아온다면, 지구의 최대위기인 이 때, 사피엔스들이 똑똑하게 뭉칠 수 있을 거다. 사실 내 닉네임 긍정 Sapiens에 담긴 뜻이 이거다. 우린 사피엔스로서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해 뭉칠 수 있다는 것. 내가 사피엔스라는 걸 늘 자각하자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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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배우 윌스미스가 자신의 전성기때 촬영한 영화 '나는 전설이다' 라는 영화를 인상깊게 본 기억이 난다. 자연에 대한 존중이라는 자연철학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류가 멸망하고 (살아 남은 사람은 좀비가 되었다), 원래 형태의 인간의 모습으로 마지막 살아남은 윌 스미스(또 한사람의 여상과 그의 아이도 정상이다-영화의 마지막에 나온다- 영화에서만, 원작소설에선 주인공 혼자만 생존했다) 의 외로운 삶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세상의 모습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영화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세상을 가득 뒤덮은 야생의 자연이 인류가 '찬란하다'고 스스로 자화자찬 했던 문명(도시) 를 가득히 뒤덮고 있다. 만물의 지배자 '인간' 중심으로 대단한 자부심으로 하늘도, 지하로, 바다로, 우주로 뻗어나가던 '문명' 은 이제 다른 동물들처럼 지구의 표면에 바짝 붙어서 살아가는 '동물과 똑 같은 처지가 된' 인간의 모습, 혹은 '동물보다도 못한 생존능력을 갖춘' 인간의 모습으로만 남았다. 불과 1만년전 '농업혁명'을 이루며 신석기 시대를 개척했던 위대한 인류는 혼자의 힘으로는 신석기 문화마저도 만들어 낼 수 없는, 과거 인류문명의 잔존물을 가지고 겨우 겨우 '생존'하는 존재가 되었다. 겨우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라던 인류가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정복하라'는 말을 생태계와 자연에 대한 독점적, 배타적 우월성으로 해석해 온 인간의 쓸쓸한 종말이 그런 모습인 것이다. 겨우 1만년을 살아온 인간의 문화라는게, 앞으로 1만년 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인류문명이 앞으로 1천년은 살아 남을수 있을까? 나는 결코 자신 할 수 없다. 자연에 대한 존중이 필요한 이유이다. 저자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며 결코 자연을 초월한 존재가 아니라고 설파한다. 인간은 생태계의 일부이며, 건강한 생태계 없이는 인간의 문명이 존재 할 수 없다, 생태계가 파괴되는 지금 인류의 존재기반은 그만큼 취약해졌다. 인간은 자신의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한낮 티끌에 불과한 존재이며, 인간의 문명 또한 그러하다. 자연이 한번 진노하면 인간은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 나오는 바로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영화와 달리 책 '나는 전설이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전설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좀비들만이 살아남은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좀비 이전' 의 존재인 '나'는 이제 새로운 좀비문화를 건설중인 '신인류'들에게 이젠 사라진, 지나간 '전설' 인 존재가 된 것이다. 전설적으로 우뚝 선 존재가 아니라. 바람처럼 지나가버린 이젠 존재하지 않는 '전설' 한때 지상을 휩쓸었던 문명이 있었다는 전설에 깃든 존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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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테일러는 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학자였기 떄문에 알게 되었다. 자연에 대한 존중 또한 중요한 책으로 소개되기떄문에 읽게 되었다 생명 중심 윤리학자로서 수천년 동안 인간 중심으로 인간에 대한 철학적 입장만 고수하던 사상의 관점을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본질적 가치에 두었다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본래적 가치를 중심으로 모든 생명체에 대한 도덕적 고려를 해야 한다는 그의 입장을 존중하게 된 책이다 또한 자신의 그 윤리적 입장을 고수하며 수의사로서 여러 생명을 살리며 살고 있는 삶의 자세 또한 본받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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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대한 존중>의 저자이자 생명 중심 윤리학의 대가인 폴 테일러는 인간 우월주의와 인간 중심 환경 윤리의 틀을 넘어 보다 포괄적이며 본질적인 지점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책의 저자는 생명의 범주는 과연 어디까지인지, 생명에 대한 태도는 어떠해야 하며, 또 무엇에 근거해야 하는지,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이익이 대립될 때에는 어떠한 원칙에 따라 해결되어야 합리적인지, 왜 우리는 인간 우월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는지 등을 통하여 보다 윤리적이면서 체계적인 논리로 우리를 설득한다. 이 책은 '1장 환경 윤리와 인간 윤리, 2장 자연 존중 태도, 3장 자연을 바라보는 생명 중심 관점, 4장 윤리 체계, 5장 동물과 식물에게 권리가 있는가, 6장 대립 주장과 우선순위 원칙'이라는 6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자연존중은 자연사랑과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전한다. 저자는 자연 존중 태도를 가진다는 것은 일련의 도덕 규칙과 기준을 유효한 윤리 규범으로 채택하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존중의 바탕은 생명체가 우리에게 보낼 수도 있는 정서적 호소에 있지 않으므로, 동물이나 식물이 우리 눈에 매력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채택하고 그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그 태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계에 있는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우리에게 더 아름답거나, 더 흥미롭거나,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다. 어떤 것은 매력도 없고 흥미도 끌지 않고 심지어 혐오감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을 존중한다면 그들의 매력 유무는 우리가 그들의 안녕에 대해 공평무사한 관심을 가지는 데 결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저자는 생명 중심 관점의 핵심을 이루는 믿음 네 가지는 첫째, 다른 생명체가 지구 생명 공동체의 일원인 것과 동일한 의미 및 동일한 조건으로 인간도 그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 둘째 인간은 다른 종들과 함께 상호 의존하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이며, 각 생명체가 잘 살거나 잘못되는 기회뿐 아니라 그 생명체의 생존도 환경의 물리적 조건과 더불어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셋째 모든 유기체는 각각 자신의 방법으로 고유의 선을 추구하는 유일한 개체라는 의미에서 목적론적 삶의 중심이라는 것, 넷째 인간은 다른 생명체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믿음 네 가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계와 그 안에 있는 인간의 위치에 대해 일관성 있는 관점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시각의 전체성은 동물이나 식물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함으로써 더 이상 그들이 인간의 생활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나 기능 면에서만 그들을 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물이나 식물을 인간의 이익과 욕망 면에서만 바라보면 보는 사람의 의식에는 유기체의 일면만 들어간다. 개별 유기체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이 시각의 객관성과 전체성이라는 특성을 갖출 때, 인지로도 상상으로도 특정 개체가 어떤 존재인지를 가장 완전하게 알아차린다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일상 대부분 상황에서, 인간은 동물과 식물을 자신의 감정과 욕망이라는 뒤틀린 렌즈를 통해 바라본다. 다른 존재어 대한 우리의 의식은 그 존재를 친구와 적 중 어느 쪽으로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반응에서도 사실이지만, 인간 이외 유기체에 관해서는 훨씬 더 확연하다. 그리하여 양을 키우는 목장 주인은 코요테를 죽여야 할 사납고 잔인한 짐승으로 본다. 코요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관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양모 생산자는 흔치 않다. 양을 키우는 사람이 코요테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정원사는 잡초를, 농부는 메뚜기를, 아파트 거주자는 바퀴벌레를 바라본다. '친숙한' 동물과 식물에 대한 견해도 마찬가지로 객관성이 없다. 애완 동물, 가장 좋아하는 야생화, 봄에 아침마다 지저귀는 귀여운 새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성을 극복하려면 과학적 관찰 시 지적 분리와 정서적 중립이 필요하다." 저자는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부정하여 자연과 생명체를 본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른 모든 생명체와 연대감을 깊이 느끼고, 그들과 공통 특성을 여럿 공유하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행성에 있는 자연의 생명 질서를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전체에 통합되어 있는 부분으로 볼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들 개별 삶의 현실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그들 각각을 자기 고유의 방식으로 환경 상황에 반응하고 고유의 선의 실현을 추구하며 여러 면에서 우리 자신과 비슷한 존재로 본대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자연 존중은 자연계가 생명 영역 전체에 걸쳐 적절한 질서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자연을 우리가 적합하다고 보는 대로 사용할 수 있는 거대한 소유물로 보는 인간 중심 견해와 정반대다. <자연에 대한 존중>은 환경 윤리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인간 윤리에서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규범을 사용한다는 미국의 철학자 폴 테일러의 환경 윤리 이론의 핵심 감정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생명 중심 윤리를 철학적으로 정교한 형태로 정리한 책으로 흥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