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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워릭셔의 유서깊은 가문 에어즈. 수백년 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에어즈 가문은 한때는 가문의 영광을 모두 보여주었던 대 저택 헌드레즈 홀과 함께 바스라 지고 있다. 마지막 상류층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에어즈 부인, 미모에서는 조금 밀리지만 헌드레즈를 지키기위해 궂은 일도 마다않는 그녀의 딸 캐롤라인, 참전했다 심각한 부상을 입고 돌아와 쓰러져 가는 에어즈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 과중한 중압감을 견디고 있는 로더릭, 이들은 잔 심부름을 해줄 소녀 베티와 헌드레즈에서 하루 하루를 겨우 살아가고 있다. 마을의 의사 중 한명인 패러데이는 과거 에어즈 가문의 유모로 일했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헌드레즈 홀에 대한 화려한 기억을 간직한 채 베티의 복통을 치료하러 헌드레즈에 들르게 되고 과거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는 저택을 보고 허탈감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우연히 시작된 에어즈 가와 패러데이의 인연은 패러데이가 로더릭의 다리를 치료해 주겠다며 나서면서 에어즈 가의 주치의가 된다. 외롭게 고립되어 있던 헌드레즈 홀은 랜들 가문의 스탠디시에 건축가 부부가 이사오면서 다시금 활기를 띄게 되지만, 이들 가족을 초대한 에어즈 가의 작은 파티에서 끔찍한 사고가 벌어지면서 헌드레즈 홀은 악화일로를 걷게된다. 이때부터 시작된 믿기 어려운 크고 작은 사건들이 헌드레즈 홀에는 계속해서 생기게 되고 에어즈 가의 사람들은 실체를 알 수 없는 이 사건과 끊임없이 사투를 벌인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전쟁 이후는 영국의 계급사회가 급격히 붕괴되는 시기이다. 귀족들의 집사나 하녀로 일했던 노동자들은 계급으로 구분되는 삶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과거의 영광을 유지할 수 없게된 귀족들은 재산을 처분하거나 저택을 떠나는 일이 생기곤 한다. 실제 상류계급이었던 귀족들은 재정적인 위협과 계급의 붕괴가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작가는 이러한 공격이라는 표현을 초자연적인 귀신과 연관지어 나타내면 또다른 공포와 함께 시대상도 함께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 리틀 스트레인저를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의 탄생 배경을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 헌드레즈 홀에 집착했던 에어즈 가가 결국 그 집에 의해 집과 함께 가라앉은 느낌... 잠들기 전에 읽지 말라는 추천평을 무시하고 침대에 누워서 읽었다가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열어둔 창문으로 뭔가 기어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에 한참동안 잠들지 못했던 한여름 밤에 어울리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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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몰락하는 젠트리 계급인 에어즈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헌드레즈홀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젠트리는 ‘14~15세기경에 생겨나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두터운 층을 형성한 영국의 계급으로, 귀족은 아니지만 가문 휘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자유민’을 의미하는데 세계대전이 끝난 20세기 무렵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젠트리 계급은 젠틀맨,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어휘에 그 흔적을 남겨두고 있다.) “... 어깨까지 내려오는 연한 갈색 머리칼은 잘만 관리하면 꽤 예쁠 것도 같은데 한번도 단정히 꾸민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날도 흡사 세탁비누로 감은 다음 빗질을 잊은 것처럼 부스스했다. 게다가 그렇게 패션 감각이 없는 여자는 난생처음 봤다. 남성용 같은 플랫샌들에 옷맵시가 영 나지 않는 옅은 색 원피스는 튼실한 엉덩이와 커다란 가슴을 전혀 살려주지 못했다. 담갈색 눈은 너무 이마 쪽으로 올라붙었다. 얼굴이 길고 턱이 각져서 옆모습이 나부죽했다. 내 생각에 그나마 괜찮은 건 그녀의 입이었다. 놀랄 만큼 크고 선이 예쁜 입은 표정이 풍부했다.” (p.22) 세계대전 중에 군대의 숙소로 사용되었을만큼 커다란 헌드레즈홀이지만 이제 저택에는 에어즈가의 가장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에어즈 부인과 그녀의 딸인 캐롤라인 아들인 로더릭 그리고 저택의 운영을 돕는 베이즐리 부인과 입주 하녀인 베티만이 머물고 있다. 소설의 일인칭 주인공이 나, 닥터 패러데이는 유모로 일한 엄마 덕에 여섯 살에 이 저택을 방문한 적이 있고, 그때 벽에서 도토리 문양을 떼어 내 집으로 가지고 간 기억이 있다. “... 오버코트를 입고 트위드캡을 쓰고 가죽 크로스백을 멘 그는 여전히 지방의 젊은 젠트리 청년다운 모습이었지만, 걸음걸이라든가 올려세운 목깃, 11월의 찬바람 탓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구부린 어깨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힘들어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거리 맞은편에 차를 세우고 내린 다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흠칫 놀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순간이었지만, 장담컨대 그는 분명 쫓기는 듯 겁먹은 표정이었다.” (p.222) 그런 의미에서 닥터 패러데이가 이 몰락해가는 가문의 마지막 주치의가 된 것은 우연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른 의사를 대신하여 저택에 들렀다 자신의 엄마가 찍힌 사진을 선물로 받게 되고, 어린 시절을 떠올린 이후 헌드레즈홀은 그에게 각별해진다. 하지만 내가 주치의 역할을 하게 된 이후 헌드레즈홀에서는 남은 에어즈 가문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기이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 집에 뭔가 있어요. 나는 알아요. 로드가 병든 이후로 줄곧 알았지만, 직시하기가 겁났어요······ 전에 마지막 낙서를 발견했을 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도 줄곧 머릿속에서 맴돌았어요. 어머니는 이 집이 우리의 약점을 다 꿰고서 하나씩 시험해보는 거라고 하셨죠. 로디의 약점은 알다시피 이 집 그 자체였어요. 내 약점은······ 그래요, 아마 내 약점은 지프였겠죠. 그런데 어머니의 약점은 수전이에요. 이건 마치―낙서도 발소리도 목소리도 그렇고―마치 어머니를 못살게 구는 것 같아요. 뭔가가 어머니를 놀리는 것처럼.” (p.504) 나는 그 사건들의 수습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고, 그런 과정 속에서 캐럴라인을 향한 연모의 감정 또한 커져간다. 캐럴라인 또한 헌드레즈홀에서 벌어지는 설명 불가능한 일들을 앞에 두고 점차 페러데이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커진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은 결혼을 하기로 약속 한다. 캐럴라인의 남동생은 정신병원에 갇히고, 에어즈 부인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그 결혼 약속을 결국 지켜질 수가 없게 된다. “... 내 정신은 온통 캐럴라인에게 쏠려 있었다. 나는 그녀가 또 한번 무언가의 뿌리를 쿡쿡 찌른 뒤 허리를 펴고 손을 닦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코트 허리띠를 고쳐 매는 모습을 보았고, 한 발을 다른 발에 가볍게 부딪쳐 신발 뒤축에 묻은 진흙 덩어리를 떨어내는 모습을 보았다.사실 한 번도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모든 움직임이 다 보였다. 흡사 그녀가 자신만 보게 하는 제3의 눈을 뜨게 한 것 같았다. 그래놓고 일부러 무심하게 굴다니, 그 눈이 속눈썹에 찔린 듯 아렸다.” (p.409) 소설은 칠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굉장한 속도로 읽어나갈 수 있다. 세라 워터스의 이전 소설들과 다르게 동성애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하고 등장 인물들의 행동이 속시원하지 않아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는 대단원을 기대하게 되지만 작가는 그러한 기대를 저버린다. 그렇다고 찜찜한 마무리였다고 나무라게 되지는 않는다. 소설을 모두 읽고 나면 꺼림칙하기보다는 골똘해진다. “... 실리의 견해에 따르면, 에어즈가 사람들은 시대에 맞춰 나아가지 못하고, 그저 은둔―자살과 정신이상―을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 영국을 한 번 둘러보라고 그는 말한다. 유서 깊은 상류층 집안이 십중팔구 똑같은 식으로 사라지고 있다... 나는 실리가 말했던 또하나의 가설, 좀더 기묘한 가설을 한 번도 그에게 상기시키지 않았다. 헌드레즈와 관련된 누군가의 불안정한 무의식이 낳은 사악한 씨앗, 탐욕스러운 그림자, 어떤 낯선 존재, ‘리틀 스트레인저’에게 이 집 자체가 잡아먹혔다는 가설 말이다...” (p.707) 역사적인 면에서 소설은 산업화 사회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한시적이었던 유한계급을 다룬다. 앞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전문가 그룹이 어떻게 등용되는지를 보여준다. 소설은 도래할 미래를 향한 이성과 지나온 과거에 기대는 몽상 사이의 힘겨루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소설에 승자는 없고 모두가 패자일 뿐이다. 어쩌면 유일한 승자는 저택 헌드레즈홀일 수 있고, 범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세라 워터스 Sarah Waters / 리틀 스트레인저 (The Little Stranger) / 문학동네 / 715쪽 / 2015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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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엔 기묘하게 휜 저택의 그림이 있고 그리로 걸어들어가는 구두 발자국이 찍혀있다. 이건 뭐지 싶었다. 새라 워터스라는 젊은 -비교적- 작가가 이런 장편을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썼다는 게 놀랍다. 게다가 2차대전 직후의 영국, 그리고 워릭셔라는 지역에 있는 대저택을 배경으로 이런 소설을 진짜처럼 쓰고 그 사이사이에 그 당시 사회적 배경을 잘 녹여낸 게 참 놀랍다. 처음에 읽기 시작할 땐 다운튼 애비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그 드라마에는 2차대전 중 백작(?) 가문이 저택을 부상자들을 위한 병원으로 내놓기도 하고 거기서 일하는 다양한 집사니 하인이니 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섞여있는데, 이 책은 2차대전이 끝나고 저택으로 상이군인으로 돌아온 주인집 아들과 꽤 괄괄한 딸 그리고 옛 향수를 안고사는 주인마님으로 이뤄진 가족이 경제적 기반을 잃어가며 그 큰 저택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채 하녀 한 명과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아주머니 한 명과 살아가는 그 곳에 주치의로 오가는 패러데이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패러데이는 의사이긴 하지만 그럴듯한 가문 출신이 아니고 자신의 어머니가 하녀로 일하던 헌드레즈 저택을 동경하며 그의 일원이 되고싶은 마음을 속깊이 묻어둔 사람이라는 게, 무엇보다 이 책이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원작이라는 홍보문구를 보며 내내 끝에 뭔가 혹시 한방 혹은 계략 같은 게 드러나지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책과 그 영화는 무슨 관계일까? 끝까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느낌 혹은 영감을 주었나? 아마 그럴수도... 집에서 보이는 이상한 징후들과 그와 얽히는 저택 주인들의 다양한 사고를 보며 분명 그 뒤엔 닥터 패러데이의 야로가 있을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보기좋게 빗나갔다. 이른바 젠트리 계급이 본인들이 가진 것들을 하나씩 내놓으며 과거의 소유물을 지키기 위해 힘든 과정을 겪는 것과 건강보험이 도입되어 의사들의 삶이 변할지 모른다는 우려와 배급표로 물건을 사야하는 시대적 분위기 등 당시 삶을 미시사적으로 엮어가며 실감을 더하는 작가의 필력이 놀랍다. 그리고 심리적인 계급간 격차가 여전히 남아있는 가운데 경제라는 기준이 실질적인 삶을 휘두르는 아노미 상태인 당시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티븐 킹 소설같은 너무 큰 무서움 같은 게 없어 오히려 다행이었다. 스티븐 킹 책은 너무 무서워서 끝까지 다 못 읽고 중간에 접고 말았었기에 그렇게 많이 무섭지 않기를 하는 마음으로 조금 마음을 졸이며 읽어갔다. 어쩌면 집을 지켜야 한다는 그 부담감이야말로 이 가족의 불행을 불러일으킨 가장 큰 공포의 실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좋은 건 이 책을 통틀어 오탈자가 하나도 없다는 거다. 하하. 기분 좋게 읽었다. 역시 큰 출판사라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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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셔가의 몰락과 같은 공포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진행이 루즈하고, 오히려 집과 신분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여자와 집과 신분을 가지고 싶었던 남자의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결혼 이야기에 가깝게 읽혔다. 그러니까 서로의 가치를 이용하기 위해 결혼 하려 하지 말라는 교훈적인 내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