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와 담배>, <담배와 영화>, <영화와 시> 세 권의 책을 보면서 계속 제목이 헷갈렸다. 내가 ‘Coffee&TV’, ‘Cigarettes&Alcohol’, ‘Cigarettes In the Theatre’ 노래 제목을 계속 헷갈리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 같다. 세 단어 다 나한테 비슷한 개념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와 가장 관련없는 단어는 ‘담배’다. 나는 비흡연자이고 담배를 피우면 어떤 기분인지 잘 모른다. 예전에 알바 끝나고 아주 늦은 시간에 같이 일했던 분이 권한 적이 있었는데 시도해보고 어라? 싶었던 기억이 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걸?… 술을 잘 마시지 않아도 취하면 어떤 기분인지 대충은 알지만 담배는 그때 한번뿐이니 알 길이 없다. 다만 내가 그때 했던 생각은 담배가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커피와 담배>는 어떤 커피와 담배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단지 여러 잔의 커피와 여러 모금의 담배가 인생에서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저자는 수많은 아르바이트 경험과 함께 풀어낸다. 그냥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개비일 뿐이지만 그 사소한 것이 하루를 나누는 기준점이 될 수도 있고, 스스로가 의미를 발견하기만 한다면 끝도 없이 빠져들 수 있다. 결국 이것들이 한 사람을 구성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너무너무 힘들때 아마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워보지 않을까. 그리고 절대 포기못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한 잔의 커피일 수 있다는 사실도. 사람은 저마다 너무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속에 담긴 사연은 모르니까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는 것도. |
|
회사를 다니면서 생전 안먹던 커피를 무슨 약처럼 입에 털어넣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며 어린시절, 어른들이 왜 그렇게 쓰고 맛없고 건강에도 해로운 술과 담배와 커피를 달고 사는지 그제서야 어렴풋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다. 커피와 담배라는 일상적이고 자극적인소재를 쓴점이 매력적이라 바로 구입한 책. 솔직하게 가감없이 담담하게 읊듯이 말하는 문체가 좋았다. 해외 여행을 가서 모르는 카페 한 곳에 앉아 커피를 주문할때 비로소 느끼는 내가 여행을 왔구나, 하는 그때의 기분을 이렇게 글로표현된 것으로 읽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 누구에게도 청춘은 어두운 시절을 지날때가 있다. 짧지만 그때의 겪는 불안함과 설렘과 기쁨이 모두 녹아있는 책. 정은 작가님의 다른 책도 몹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
|
심하지 않지만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욕구가 몇 차례 욱 하고 올라왔다.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볼 때,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일이 잠을 방해할 때, 길을 지나다가 갑작스레 내 앞으로부터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를 맡아야 했을 때 등등이다. 사실 이런 욕구는 계속해서 생기는 일이기는 한데 문제는 그것을 참아야 한다, 라는 방어의 심정이 갑작스레 약해지는 경우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 욕구를 왜 이렇게 열심히 참고 있는 거지, 하는 의구심이 커질 때가 문제인 거다. “담배를 어떻게 끊었냐고 물어보면 금연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끊었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다. 담배를 피우는 걸 멈출 수는 있어도 끊을 수는 없다. 그 관계에 정전은 없다. 오직 휴전뿐. 담배를 끊으면 얻는 게 많을까. 잃는 게 많을까. 잘 모르겠다. 담배를 끊으면 담배를 피우는 내 모습도 잃는다. 담배를 피울 때는 하루가 피우는 담배 개수만큼 분할된다. 하루에 3개 혹은 12개 혹은 20개로. 하나의 담배와 또 다른 담배 사이의 간격만큼 분할되던 하루가 분할이 안 된 채 붕 떠버린다. 시간관념 체계가 엉망이 되어버린다. 아침 담배와 함께 시작하던 오늘 하루가 시작되지 않는다. 계속 어제를 살고 있는 기분이다. 금연하면 담배 피우는 만큼 시간을 벌 수 있다니, 그런 건 없다. 담배를 못 피우는 시간을 더 얻었을 뿐. 그럼에도 담배 피우기를 중단한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렇다.” (p.83) 아내와의 약속 탓에, 정확하게는 난 약속을 어기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아내는 그 약속을 허투루 넘기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레 마지막 담배를 피운 것이 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구 개월째 금연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흡연 방어의 심정이 조금 약해진 것 같아서 일부러 담배가 제목에 들어가는 책을 읽기로 하였다. 일종의 이열치열 같은 것이다. “... 곁에서 지켜보니 스님이란 존재는 엄격한 계율에 따라 사는 사람이라기보단 마음에 걸림이 없이 그저 자유롭게 사는 사람인 것 같았다. 금연에 성공한 사람인데 원할 때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까나. 동안거/하안거 기간 동안 수행처에 들어가 수행을 하고 나오면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담배를 한 번 만지기만 해도 10미터 밖에서도 손가락에 밴 담배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수행 기간에는 담배를 안 피운다고. 하지만 절에ㅤㅓㅅ는 얽매임 없이 담배를 피우셨다. ‘담배를 피우면 안 돼’라는 생각 자체에 얽매이는 것을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들이 어떤 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그렇게 자유로웠는지, 아니면 그저 실패한 수행자였는지.” (p.45) 아무튼 시리즈의 성공과 함께 비슷한 유형의 시리즈들이 여러 출판사에서 등장하였다. ‘말들의 흐름’이라는 이 출판사의 시리즈가 조금 다른 것은 일종의 끝말잇기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내게 커피는 담배, 영화, 시, 산책, 연애, 술, 농담, 그림자, 새벽, 음악이다.’라는 설명이 잠시 등장하는데 이것은 이 시리즈에서 나온(그리고 나올) 책들의 제목에 들어간 단어이다. 그러니까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은 《커피와 담배》이고, 두 번째 권은 《담배와 영화》인 식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열 번째 책은 《새벽과 음악》이 된다. “미용실은 안 가도 되고, 화장도 안 해도 되고, 옷도 친구들이 주는 옷을 얻어 입으면 되지만, 커피는 포기할 수 없었다. 커피는 유일하게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영역이고 내가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영역이었다. 커피는 내가 나를 사랑하고 대접할 수 있는 쉬운 방법잉다. 커피는 민주적이다. 커피는 쉽게 손을 내밀어준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내가 발을 반쯤 걸치고 삶의 여유를 꿈꿔볼 수 있게 한다. 커피마저 없다면 내 삶은 무미건조하고 비참해질 것이다. 커피는 아무것도 아니므로 거기에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p.18) 내가 그저 담배의 욕구에 오래 사로잡혀 살았다면 지은이는 커피와 담배라는 두 가지의 대표적인 기호 식품에 충분히 몰입하고 있다. 사실 내게 커피는 단 맛의 버블로 감싸 안은 음료에 가깝고, 때때로 탄 맛이 나면서 고소하거나 신 맛이 나면서 서툴게 들이마시는 것 정도까지 나아가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커피에서 이런저런 과일 향을 추출하여 설명한다거나 혀와 입에서 느껴지는 감촉을 의미하는 마우스필을 논할 줄 아는 까페 여름의 콩 볶는 선배를 두어 달에 한 번 만나기는 한다. “어느 날 영화과 동기 J가 자신의 단편영화에 출연해달라고 연락해왔다. 영화 제목은 <타히티>였는데 대본을 읽어도 무슨 얘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이 사는 두 여자가 나오는 영화인데, 집에서 늘 비키니를 입고 있는 여자가 있고 옷 좀 제대로 입고 있으라고 늘 나무라는 여자가 있다. 둘은 언젠가 함께 타히티에 가는 꿈을 꾸는데 어느 날 정말로 타히티로 떠나기로 한다. 옷 좀 제대로 입고 있으라고 나무라던 여자는 공항에서 비키니를 입고 여행가방을 들고, 집에서 늘 비키니를 입는 여자를 기다린다. 집에서 늘 비키니만 입던 여자는 멋진 트렌치코트를 입고 아메리카노를 들고 여행 가방을 들고 오다가 공항 앞에 비키니를 입고 서 있는 여자를 보고는 모르는 사람인 척 되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친구가 왜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 알 수가 없다. 더 알 수가 없는 건 내가 출연하기로 한 것이다.” (p.55) 여하튼 그래서 책을 읽고 흡연의 욕구가 많이 상쇄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최소한 책을 읽는 동안은 그랬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컴퓨터공학과 영화를 배우고 지금은 서사창작을 공부한다는 작가는, 그 생의 이력이 다양하고 생의 활력이 좌충우돌 타입이라 커피와 담배와 은근히 연을 맺고 있는 이야기들이 충분히 재미있었다. 책을 읽고 이 글을 쓰는 동안 카누의 다크 로스트 아메리카노를 아이스로 한 잔 마셨다. 정은 / 커피와 담배 / 시간의흐름 / 131쪽 / 2020 (2020) |
|
내 인생에서 포기할 수 없는 최후의 것을 꼽자면 독서, 수영 그리고 커피이다. (적고 보니 꽤 고상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독서와 수영은 컨디션에 따라 하루쯤 가볍게 넘기는 날이 있는 반면, 커피가 없는 하루는 어쩐지 상상하는 일조차 짜증스럽다. 하루의 공식적인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한 잔, 오후의 느슨한 흐름을 전환하기 위해 한 잔. 이 두 잔의 커피가 없는 삶이라. 누군가 '탄수화물과 지방을 먹지 않는 삶은 건강할 수 있지만 그런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는 말을 했다고. 내게 커피가 그렇다. 이탈리아의 감방에는 모카포트가 제공된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도 커피는 인권의 최전선에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카페인은 골다공증을 유발하는 등 인체에 미치는 온갖 유해한 것들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면 나 또한 '이 거지 같은 인생, 커피까지 없다고? 비열한 인간 같으니라고'하며 눈을 부라리고 싶다. 책에선 또 하나의 기호식품인 '담배'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뒤돌아보면 나는 담배와 크게 인연이 없던 사람이었다. 가족, 연인(이었던 사람까지), 친구 중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꼽자면 채 한 손도 채우지 못한다(몇 안돼서 그런 것 같기도). 부러 피한 것도 아닌데 내게는 할머니가 긴 시간 담배를 피운 사람으로 유일했다. 지금도 종종 할머니의 '장미' 담뱃갑이 기억난다. 할머니를 인간으로서 이해해 보려 마음 쓸 수 있을 무렵에서야 할머니의 담뱃갑이 기억나는 것이 슬프다. 언젠가 담배를 피우는 친구에게 뭐가 좋아서 담배를 피우는 거냐 묻는 말에 "너도 한 번 피워봐" 하고 넘겨주던 담배 한 모금에 혼미해져서 길바닥에 드러누워버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는 무엇을 좋아한다는 취향에 대한 고백이 나를 어떠한 사람으로 봐도 좋다는 말로 변모해버리는 세상을 살게 되니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때다. 고백하자면 단편적인 취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내 안에서도 끊임없는 화학작용처럼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떳떳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테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흡연자'라는 어딘지 바람직하지 못 한 이들을 지칭하듯 부르지는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이렇게 날이 갈수록 할 수 있는 말이 적어진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에는 내 말속에 나도 모르는 무기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아서, 요즘은 내 태도에 확신이 없고, 내 말에 자신이 없어진다. 여태껏 너무 겁 없이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