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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편리해져 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꾸 힘들다고 합니다. 내가 너무 시시한 존재 같아서 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숨 쉬기가 두렵다고들 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붓다의 메세지를 한 번 만나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글을 열며' 중에서
스물 아홉 편의 붓다 이야기
이 책의 저자 이미령은 번역가, 책 칼럼니스트로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전공했으며, 사람들이 어렵다고 말하는 불교 경전을 읽고 또 읽으며 경전 속 이야기를 칼럼으로 쓰거나 강의에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면서 경전번역가에서 경전이야기꾼으로 타이틀을 바꿔 쓰려고 고민 중이다. 동국역경원에서 역경위원으로 일한 경험과 수많은 사찰에서 불교강의를 하면서 대중과 만나 불교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공부 밑천으로 삼고 있다.
2,600년 전 붓다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은 경전에는 삶의 진리, 인생의 깨달음이 담겨 있지만 온통 어려운 말로 쓰여 있기 때문에 읽고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저자는 <상윳따 니까야>, <경율이상>, <법구경>, <앙굿따라 니까야>, <숫따니빠따>등의 경전 속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우리들에게 인생의 가치, 노력, 진리, 믿음, 깨달음 등 총 5장에 걸쳐 이를 소개하고 있다.
가치
부처님은 재가불자在家佛者에게 가난을 칭송하거나 무소유를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지런히 땀 흘려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서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라고 권한다. 이렇게 살면 자신이 떳떳하게 살아오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이로 인해 커다란 행복을 느끼게 된다. 나아가 가정을 여유있게 꾸려 나가면 이로 인해 또 행복을 느낄 것이며, 재물의 여유로움으로 다음 생까지 챙긴다면 행복은 세 곱절이 될 것이다.
어차피 덧없는 인생, 덧없는 재물입니다. 하지만 재물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가치는 달라진다는 것이 부처님 입장입니다. (26쪽)
발심發心이란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내는 것이다. 이때의 깨달음은 단순히 '지혜'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웬만한 성자의 지혜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부처님의 경지인 가장 완전한 깨달음을 말한다. 부처님 지혜를 아뇩다라삼약삼보리(위없이 바르고 완벽한 깨달음)라고 부르는데, 발심은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얻겠다고 마음을 내는 것이자, '부처가 되겠다는 마음'을 각오한다는 뜻이다.
노력
불교는 심오한 진리를 말하며 해탈의 경지를 일러준다. 물론 이 경지는 웬만한 수양으로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같은 해탈의 경지에 아예 관심을 갖지 않고 그동안 세속에서 살아온 방식을 최선이라고 여긴다. 초기경전 <앙굿따라 니까야>에선 이런 사람들을 위해 무엇이 선하고 악한 것인지를 분간하라고 촉구한다.
문제는 사람이 선업만 짓고 살 수 없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보통사람들이 악업을 지은 뒤의 행동에 대해 지적을 하고 있다. 즉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이들을 질책한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뉘우치며 새롭게 선업을 지으면 된다.
진리
부처님은 지혜와 방편이 원만구족하신 분이다. 원만이란 '완벽하다'라는 뜻이며, 구족具足이란 말은 '갖추었다'라는 뜻이므로 원만구족이란 '완벽하게 갖추었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부처님은 지혜와 방편을 완벽하게 다 갖추신 분이다. 방편이란 사람들이 깨달음의 경지로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을 가르킨다. 좋은 예를 살펴보도록 하자.
<출요경出曜經>은 법구경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경전에서 게송과 비유를 가려 뽑아 주제별로 정리한 경전인데, 제12권의 이야기를 여기서 소개해 본다. 옛날 사위성에 최승崔勝이라는 장자가 살았는데, 그는 엄청난 부자로 코끼리와 말 등 많은 동물과 창고엔 금은보화가 넘쳤다. 그런데, 너무나 인색해서 절대로 자신의 재물을 남에게 베푸는 법이 없었다.
반면 부처님은 형편이 부족한 이웃들에게 보시를 하면서 공덕을 쌓기를 권한다. 이에 그에게 다섯 가지 보시를 가르쳐준다. 첫 번째 보시는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는 일, 두 번째 보시는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않는 일, 세 번째 보시는 그릇된 이성 관계를 멈추는 일, 네 번째 보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일, 다섯 번째 보시는 사람을 취하게 하는 술과 같은 것에 빠지지 않는 일임을 교화하자 최승장자는 부처님께 고마움의 표시로 난생 처음 고품질의 천을 공양하겠다는 발심을 했다.
이처럼 많이 가진 자일수록 더욱 더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본능이 발동하기 마련인데, 부처님은 탐욕스런 부자를 교화하기 위해 없는 말을 지어내진 않았다. 사실 그대로 일개워줌으로써 최승장자는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 그동안 꽁꽁 닫았던 탐욕의 문을 열고 스스로 보시에 나설 수 있는 마음을 갖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믿음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모든 선은 힘써 행하며, 그 마음 스스로 맑게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대승경정인 <대반열반경>에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남자를 '가난한 집'이라고 설정하고 있다. 여기서의 가난은 재물이 아닌, 지혜가 없는 것을 말한다. 지혜가 없으므로 아무 것이나 덥석 잡고, 자기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집착한다. 좋은 점만 보고, 좋게만 생각하는 것도 살아가는 나름의 지혜일 수 있지만 불교에서는 이런 사람을 '가난하다'고 말한다. 좋은 면만 보고 가겠다며 굳이 그 이면의 실상에는 눈을 감는 어리석은 중생이다. 지혜가 없어 가난한 사람은 결국 행운의 이면에 숨어 있는 불행에 덜컥 발목이 잡혀 울부짖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깨달음
"그대의 도움으로 나 석거모니는 세상의 교화를 마치고 반열반에 드니, 이제 그대의 시간이다. 쉬지 말고 정진하라. 곧 아라한을 이룰 것이다"
부처님은 자신을 한마음으로 모셔온 제자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아라한이란 경지는 당시 제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였다. 모든 번뇌를 완전히 벗어 버린, 훌륭한 성자의 경지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제자들은 모두 누구나 아라한이 되기 위해 정진한다. 그런데, 부처님을 모시는 일 때문에 이에 뒤쳐진 제자를 대할 때마다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아난다 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아라한이라는 해탈열반의 경지를 조용히 미뤄왔다. 수많은 도반들이 자신보다 앞서 높은 경지에 속속 이르지만 그는 여전히 낮은 자리에서 공손히 두 손을 모으며 부처님을 모셨다. 부처님은 그런 제자에게 마지막 선물인 수기授記를 주셨다.
제자의 깨달음을 예고하는 것을 수기라고 한다. 여전히 공부해야 할 것이 남아 있어서 인간적 정리에 흐느껴 우는 제자의 눈물을 닦아주며 건네는 그 든든한 위로, 이런 제자의 눈물과 이런 스승의 선물이 있는 곳이 바로 불교인 것이다.
스물 아홉 편의 경전 이야기
책은 총 29가지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전한다. 어느 한 편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을 소중한 이야기이다. 책을 늘 곁에 두기를 권한다. 그리고 천천히 읽으며 그 뜻을 되새긴다면 나 자신을 위한 더 없이 좋은 성찰의 시간이 될 것이다. 모든 이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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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내 삶을 돌아보게 해주고 보듬어 주는책 시시한 이생은 없다 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칭찬이 밖에서 주어지는 찬사라면 격려는 내면에서 힘을 내게 해준다고 한다. 이런 글귀를 마주하게 되면 그동안 내면을 너무 소홀히 하며 밖에서의 평가에만 집착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특히 요즘엔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남들에 평가에만 내 인생이 결정 되어버리는 것 같다. 너무나 힘들고 진짜 행복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어보면 참 좋을 것 같다. 부처님의 말씀에는 무한한 지혜가 남겨져 있다. 나 또한 불교 경전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싶어 시도해 본적은 많으나 쉽게 읽히지 않아 어려움으로 금방 포기해버리곤 했었는데 시시한 인생은 없다 는 부처님의 말을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의 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어 삶의 고단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책이 틀림없다. 종교적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은 무엇이 선인지,?무엇이 악인 지도 모르는 사람, 잘못을 저지르고도 뉘우칠 줄 모르고,?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는 재물은 참 부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난은 재물이 아닌 지혜가 없는 것 이라고 일깨워 주기도 한다. 어찌 책 하나로 부처님의 큰 늬우침을 깨달을 수 있겠냐 만은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꽉 막혀 진정한 행복을 잃고 살고 있다면 마음의 조그마한 깨우침 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이 책을 읽으며 참 불교명상을 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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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만 보았다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시시한 인생은 없다'라니... 그 옆에 세로로 '이야기로 풀어쓴 경전 에세이' 가 나를 사로잡았다! 저자 이미령은 경전 속 이야기를 칼럼으로 쓰거나 강의하는데 스스로를 경전 이야기꾼이라고 부른다. 이 책 속 이야기는 밀교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원고를 새롭게 엮었다.
『시시한 인생은 없다』는 불교에 관심이 없는 자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전래동화 같은 책이다. 부처님 이야기를 우화처럼 풀어두었는데 가독성이 우수하다.
#story1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가르친 경>_부처님과 그의 외아들의 기싸움
7살 라훌라가 아버지 부처님께 말했다.
"아버지, 제게 재산을 물려주세요."
이 말을 들은 부처님의 반응은
1번. 재산을 물려준다.
2번.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린다.
3번. 꼬옥 안아주며 설교한다.
4번. 머리를 밀어버린다.
정답은? 4번이다. 부처님은 사리불 존자를 불러 아들 라훌라의 머리를 시원하게 깎아버리고 강제로 스님을 만들었다. 일곱 살에 출가를 '당한' 라훌라는 그 이후로도 일탈을 많이 해서 욕을 먹었다. 결국 부처님은 라훌라를 붙잡고
'자신에게도 이롭고 타인에게도 이로운 사람'이 되기를 당부하며 가르쳤다.
*참고: 라훌라는 '장애물'이란 뜻이다.
위대한 스승이자 깨달은 자가 나의 아버지라면, 나를 장애물이라 이름 짓는 자가 내 아버지라면,
참 좋으면서도 피곤하겠다.
#story2 <마하빠리닙바나 숫따>_ 부처님의 식중독
많은 이가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부처님은 식중독에 걸려 돌아가셨다. 말라 족의 도시인 빠바에 도착한 부처님은 쭌다의 집에서 쑤까라맛다바 라는 음식을 대접받았다. 근데 그 음식이 상한 거다. 부처님은 음식이 상했다고 말하지 않고 쭌다에게 이 음식을 소화할 자가 없으니 땅에 묻으라고만 했다. 그 후 부처님은 이질에 걸려 시름시름 앓았고 아난다 존자를 불러 부탁했다. 내가 죽더라도 절대 쭌다가 준 음식 때문에 죽었다고 알려져 그를 두려움에 빠뜨려서는 안된다고. 쭌다가 올린 마지막 공양을 받고 완전한 열반을 들었다고 그에게 일러라고 시켰다. 아 부처님 당신은 정말!
#세 가지 업
몸으로 짓는 업(행동)
입으로 짓는 업(말)
뜻으로 짓는 업(생각)
입으로 짓는 악업을 멈추고, 입으로 선업을 지어라. -> 예쁜 말 고운 말을 합시다. 예쁜 말을 못 하겠으면 그냥 말을 하지 말아라 못된 이들아
생겨나고 사라지는 이치를 보지 못하고 백 년을 사는 것보다 생겨나고 사라지는 이치를 보면서 하루를 사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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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한편 씩 읽기에 적합하다. 자극적이지 않고 적당히 교훈적이며 눈을 뜨고 있지만 명상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경전 에세이! 이런 장르는 또 처음이라.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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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인생은 없다 이야기로 풀어쓴 경전 에세이 이미령 지음
우리는 왜 화를 낼까요? 그건 화가 맛있기 때문입니다. 불같이 화를 내는 일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게 정말 싫다면 우리는 화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화를 낸다고 하지만, 마음속을 가만 들여다보면 벌컥 화를 내는것이 본인은 좋기 때문입니다. "마음에서 욕심과 성냄을 내려놓으시오." 내려놓겠다고 해서 쉽게 내려지냐고 따질지도 모르겠지만 달리 방법은 없는것 같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욕심을 부리고 화를 낼 시간은 내일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잠을 잘 시간에는 잠을 자는 것이 옳겠습니다. 그렇다면, 나이들어 추레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비관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원래 그러니까요. 그 대신 그저 쇠함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무르익는 길을 선택하는것이 어떨까 합니다. 바로 오늘이 앞으로 남아 있는 날들 중에서 가장 젊은 날입니다. 그러니 더 미룰수 없습니다. 성실하게 일하며 정당하게 돈을 벌어서 넉넉한 노후를 대비하는 일도 지금 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생계가 해결됐다면 뜻 있는 곳에 보시를 하는 일도 지금 해야합니다. 죽은 뒤 다음 세상에 재물을 가져갈수 없지만 재물로 지은 선업은 그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마음공부도 부지런히 해야겠습니다. 노쇠의 삶을 사시겠습니까, 성숙한 삶을 사시겠습니까. 나이 드는것이 몸이 쇠하는 길이더라도 마음이 무르익어간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겠습니까. 베풀게 없는 삶이 가난한 인생은 아닙니다. 베풀려는 마음만 있으면 그 사람은 이미 부자입니다. 자신이 지은 복이 없음을 알고 부끄러운 줄 알면 그는 이미 가사를 입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도 모르는 사람. 잘못을 저지르고도 뉘우칠줄 모르고, 부끄러운줄 모르는 사람. 종교적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오늘 내가 사랑온 자취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잘잘못을 가려보고 잘한 일에는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고, 잘못한 일에는 선업을 쌓지 못해 가난해졌음을 한탄하고, 선악을 분별하지 못한 지혜의 가난을 탄식하는 일. 종교인이라면, 불자라면 이런 가난을 두려워해야겠습니다.
연꽃이 피지 않는다고 꽃봉오리를 강제로 열수는 없습니다. 수면 위로 빨리 고개를 내밀라고 물속의 꽃봉오리를 억지로 끌어올려서도 안됩니다. 그저 꽃봉오리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활짝 꽃을 피우도록 유도하기만 하면 그뿐입니다. 꽃을 피우고 안피우고는 전적으로 그 자신의 몫입니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갔다고, 너는 왜 그길을 따라서 걸어오지 못하느냐고 안달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칭찬이 밖에서 주어지는 찬사라면, 격려는 내면에서 힘을 내게 하여 그가 하려는 일을 완성하게 해 줍니다. 행여 실수나 잘못을 했을 경우 그에게 움츠러들지 말고 다시 한번 일어서라고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자존감이 바닥까지 추락했다는 사람들이 많을때 이 격려의 한마디가 갖는 힘은 큽니다. 무엇인가를 소유한 자는 무슨일이 있어도 제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많이 가진 자일수록 더욱더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강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중생의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덧없기 짝이 없는 불안한 인생, 무엇이든 움켜쥐고 쌓아두어야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탐욕스럽다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것을 다른 이에게 나눠주라고 말하면 기쁘게 따를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하지만 부처님의 방식은 전혀 달랐습니다. 제 것을 움켜쥐고 있느라 딱딱하게 굳어 있던 그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무엇인가를 하염없이 베풀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만이 선업이 아니라 남을 바라볼때 눈을 흘기지 않고 째려보지 않고 훔쳐보지 않는 것도 선업에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상대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눈길은 훌륭한 보시가 되기도 합니다. 침묵이 금이라고 하지만, 침묵이 능사는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 사는 세상에 침묵도 중요히지만, 말을 해야할때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게 선업입니다. 옳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옳지 않은 일을 막아야 합니다. 무엇인가 한가지를 골똘하게 생각한다면 졸음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한 가지를 생각하는 순간 그 생각이 가지를 쳐서 옆으로 새고 맙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느 사이에 그만 잠에 빠져들게 됩니다. 네 종류 사람은 친구가 아니면서도 친구인 척 하는 사람이니, 첫째는 무엇이든 가져가기만 하는 사람이요, 둘째는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요, 셋째는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요, 넷째는 나쁜 짓을 할때 동료가 되어 주는 사람이다. - 본문 中
불교 경전이라 하면 딱딱하고 무거운 이야기로만 생각됐는데 이미령님의 시시한 인생은 없다는 무겁지 않아 좋네요 알아듣기 쉽게 풀어쓴것도 맘에 들구요^^ 역시나 주옥같은 말씀들이 많아요~ 부끄러운줄알기, 사람이라 실수하고, 잘못할수있지만, 부끄러운줄모른다면, 발전도 없을뿐더러, 나도 모르게 악행을 저지를수도 있다는거,, 열심히 번만큼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뜻있게 써야한다는 말씀또한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차한잔 놓고 천천히 읽기 좋은책 이미령님의 이야기로 풀어 쓴 경전 에세이 시시한 인생은 없다 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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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인생은 없다>는 일반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불교경전을 체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 낸 경전 에세이다. 저자는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전공하였다.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경전이 자신에게는 재밌게 느껴진다는 특이체질의 소유자로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경전 속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경전 이야기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이력 중에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고익진 교수님에게 사사'라는 것이다. 과거 도올 선생이 고익진 교수를 최고의 불교학자로 소개 했는데 그때 고익진 교수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당시 고익진 교수가 쓴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도 소개되었는데 그 책을 읽어보고 싶어 찾았으나 오래전에 절판되어 읽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실력있는 스승에게 배운 작가라니 뭔가 더 기대 되었다. 성경이든 불경이든 소위 바이블이라는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글고 딱딱하고 말도 어렵고 어떨 때는 허풍도 이런 허풍이 있나 싶기도 하고 이해도 잘 안된다. 이는 성경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불경이든, 성경이든 '강해', '이해' 라는 꼬리가 달린 주석집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 그런 책 조차도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 이 책은 여러 경전에서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들을 모아 피부에 와닿는 교훈들을 '채집'해 놓았다. 그래서 저자는 일반인들이 '만만하게' 읽을 수 있도록 책을 만들었다. 하지만 책이 주는 교훈만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또 이미 불교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할 지라도 새삼 반짝이는 일깨움을 느껴 볼 수 있는 책이다. 좋은 책, 좋은 글은 볼 때마다 느껴지는 바가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며 인용된 경전을 세어 보았다. 상윳따 니까야, 디가 니까야, 숫따니빠따, 맛지마 니까야, 살레야카 숫따, 앙굿따라 니까야, 법구경, 대반열반경, 불설마하가섭도빈모경, 대방등대집경, 증일아함경, 승가나찰소집경, 본생경(자타카), 불본행집경, 출요경, 잡보장경, 부사의광보살소설경, 불설이수경, 수행본기경... 여기에 적지 않은 경들도 더 있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 출저가 되는 경전을 직접 찾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참고로 저 중 <대반열반경>은 제목 그대로 열반, 부처님의 마지막 이야기가 담긴 경전인데, 죽음 앞에선 한 성인과 그 옆을 지키는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대반열반경>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다른 소리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이젠 내용을 좀 살펴보자. 무소유에 대한 이야기에서 '탐욕이란 것은 거창하고 값비싼 것을 바라는 욕심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버리지 못하는 마음, 무엇이든 채워 넣으려는 마음이다'라는 말에 공감한다. 우리는 '욕심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마음'만 생각하기 쉽지만 '버리지 못하는 마음 또한 욕심'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하다못해 이미 문닫아버린 동네 치킨집의 쿠폰도 시원하게 버리지 못하더라는 이야기는 나를 뜨끔하게 했다. 나도 뭔가를 잘 버리질 못한다. 최근들어 집 안의 불필요한 짐을 줄이고 단조롭게 만드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도 그런 가치에 동의하여 불필요한 것들은 나눠주고 쓰임새가 없는 것들을 버리려고도 하지만, 참 가지고 있는 것을 내놓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음을 느낀다. 이는 물질적인 것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영역에서도 적용된다. 마음 속에 꿈쳐둔 원망, 서운함, 분노, 미움 같은 것들도 '미니멀라이즈'되어야 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물질)부터 하나씩 비워내는 연습을 해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번뇌)도 하나씩 비워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부처님의 이복동생인 난다의 깨달음 이야기도 영원한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여기서 난다를 혹 아난다와 헷갈리면 안된다. 아난다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출가하여 십대 제자 중 한사람이 되었으며, 55세의 부처님이 80세 열반에 들기까지 곁에서 시자로 모신 분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반열반경>에서도 등장한다. 불교경전의 시작은 항상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여시아문)으로 시작한다. 거기서 '내(아)가 들었다고 말하는 그 사람이 바로 '아난다'다.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아난다가 아니라 '난다'라는 스님의 이야기인데, 난다는 부처님의 이복동생이다. 참고로 밝히면 부처님의 이복형제를 포함해서 사촌형제들까지 형제랑 형제는 시점만 다르지 다 출가한다. 그는 천상의 선녀가 내새에 그가 태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오로지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는 '속물 수행자'였다. 하지만 어느날 지옥에서도 그를 위해 불가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충격을 받는다. 현세에 지은 복으로 죽어 천상에 태어나지만 좋은 복이 다하고 나면 다시 지옥에서 태어나 지은 죄값을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천상에 태어날 것만 생각했지 그 복이 소진되면 지옥에 갈 것은 생각을 못한 것이다. 결국 행복이라는 것이 영원할 수 없고 유한하다는 이야기다. 이는 책에 실려있는 공덕천과 흑암천 이야기에서도 나온다. 쾌락과 즐거움을 상징하는 공덕천과 괴로움과 불행을 상징하는 흑암천은 늘 함께 다닌다는 것이다. 동전의 앞면만 취하고 뒷면은 버릴 수 없듯이 항상 행과 불행은 함께 하는 것이다. 따라서 즐거움에서 곧 괴로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즐거움이 다하면 곧 괴로움이 올 것임을 알면 좋은 일 앞에서도 오만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나쁜 일 앞에서도 슬픔에 빠져 허우덕 거리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음의 평안 만이 영원한 행복 가져다 주는 열쇠가 된다. 화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가 화가 맛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처님은 이와 관련하여 '분노의 뿌리에는 독이 있지만, 꼭지에는 꿀이 묻어 있습니다'라고 하셨단다. 화를 낼 때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화가 날 때 화를 내는 것이 쉽고 당장 시원하다. 이것이 붓다가 말하는 꿀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결과는 후회와 손해로 돌아온다. 이것이 독인 것이다. 꿀과 독은 우리를 중독시킨다. 화를 내는 것을 꿀이 묻어 있지만 뿌리엔 독이 있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 재치있으면서도 공감간다. 그리고 분노를 죽이면 슬프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분노든 슬픔이든 그 뿌리는 뜻대로 되지 않음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하나만 해결하면 나머지도 자연히 해결되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성자의 일곱가지 재물(칠성재)과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일곱가지(무재칠시)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경전에는 마음의 작용과 삶의 이치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현실적인 이야기도 담겨있다.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인 목련존자가 졸음에 빠지자 부처님이 졸음을 이기는 법에 대해 가르침을 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잡생각에 빠지면 졸음이 온다며 잡념을 버리라는 말씀이나 세수하고 귀를 지압하고 걸으라는 현실적인 팁도 나온다. 그 중에서 밖에 나가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라는 충고는 낭만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또한 말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바른 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때에 맞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실이고 진실하고 듣는 사람에게도 유익하고 듣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말이라고 하더라도 때가 아니면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바로 그 때라는 것이 언제이냐는 생각이 들텐데, 이 부분에서 '아' 하는 소리가 나와버렸다. 바로 그 때란 '듣는 사람이 들으려고 할 때, 상대가 마음의 문을 열고 귀를 기울일 때'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할지라도 '제 때'를 위한 기다림이 없다면 무용을 넘어 손해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래, 잊지말자.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때에 맞는 말을 해야하는 것이다. 경전에 있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요정 사이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동시에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라 유혹에 대한 절제가 어렵더라는 말도 공감간다. 어떤 선택을 할 때 나름 잘 한다고 했는데 그 결과가 다른 이에게 손해를 끼치고 결국에는 나에게도 불이익이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습관이란 참으로 무섭다. 또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그렇게 후회해놓고 과거에 어리석은 선택을 똑같이 하곤 한다. 그렇기 늘 어리석은 선택의 반복을 막고 유혹에 절제하는 것을 연습하고 훈련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가 참선, 명상일 것이다. 여기서도 경전에 실린 참선에 대한 부처님 말씀이 나온다. "참선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참선으로 온갖 잡념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도 말했지만 흔히 사람들은 잡념을 없애기 위해서나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참선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선후가 바뀐 것이다. 참선을 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편안히 하는 것이 참선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런 식의 화법이 마음에 든다. 조금 확대해 볼까. 사람들은 흔히들 종교에 대해 그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믿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모든 어리석음에서 자신을 구원하고 나아가 타인을 구원하는 것이 믿음이다. 즉 그러해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그리되는 것이다. 불교경전을 다룬 것이라, 종교적인 이유로 불편해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알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무슨 종교가 있을까.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단순히 2500년 전 살았던 한 성인의 보편적이고 일반론적인 삶에 대한 지혜만 있을 뿐이다. 어떠한 종교적 강요도, 허황된 사후 세계의 약속도 없다. 대단한 종교적 비밀이나 기복적 횡재를 바라고 이 책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시시하고 당연한 것들을 우리는 얼마나 실천하며 살고 있던가 돌아보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나는 종교와 관련된 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는다. 고백하자면 한번 씩 그런 생각도 든다. 다 뻔한 좋은 말과 바이블에 나오는 명구절을 돌려막기 하듯 채운 내용에 식상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느껴질 때 나를 돌아보면 대게 내 마음이 뭔가 삐뚤어져 있다. 그런 시기에 나는 사람들에게도 예민하게 대하고 생각도 부정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 그랬다. 술은 기쁠 때 마시면 기쁜 맛이나고 슬플 때 마시면 슬픈 맛이 난다고. 이런 책도 그와 같아서 거울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을 읽으며 혹 기분이 좋지 않거든 책이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뭔가 그것을 야기하는 원인이 있지는 않나 살펴보면 미쳐 몰랐던 중요한 것을 발견할수도 있다. 나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사소한 갈등을 잘 넘길 수 있었다. 엄마 잔소리가 듣기 싫고 식상하더라도 엄마 잔소리 치고 틀린 말은 없다. 그리고 엄마의 잔소리는 자기가 잘못하고 있을 때 더 듣기 싫은 법이다. 여러 경전을 현대인의 이야기로 쉽게 풀어 쓴 이 책을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보는 거울로 삼아보면 어떨까. 우리 각자의 인생은 시시하지 않고 소중하니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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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명상 시시한 인생은 없다 / 이미령 / 담앤북스
불교명상 시시한 인생은 없다 책은 삶을 돌아보게 해 주고, 내 하루를 보듬어 주는 경전이야기꾼 이미령의 경전 에세이다. 저자 이미령은 번역가, 책 칼럼니스트.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전공했다. 사람들은 불교가 어렵다고 하는데 경전을 읽어보니 오히려 재밌기만 했다. 그래서 경전을 읽고 또 읽으며 경전 속 이야기를 칼럼으로 쓰거나 강의에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면서 경전번역가에서 경전이야기꾼으로 타이틀을 바꿔 쓰려고 고민 중이다. 동국역경원에서 역경위원으로 일한 경험도 큰 도움이 되었고, 고익진 교수님에게 사사한 것은 더 할 수 없는 값진 보약이었으며, 수많은 사찰에서 불교강의를 하면서 대중과 만나 불교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공부 밑천을 삼고 있다.
우리는 죽을 때 단 한 푼의 돈도 가져가지 못한다. 경전을 보면 죽은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그 사람이 지은 업이다. 선업이든, 악업이든 그가 생전에 한 일이 죽은 자를 따라간다는 것이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재가불자에게 가난을 칭송하거나 무소유를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지런히 땀을 흘려 제 힘으로 돈을 벌어서 넉넉하고 행복하게 살 것을 권한다. 자신이 떳떳하게 살아오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끼면 거기서 커다란 행복을 느낄 것이다. 나아가 여유롭게 가정을 이끌면 또 거기서 행복을 느낄 것이며, 나아가 그 재물로 다음 생의 여유로움까지 챙긴다면 행복은 세 곱절이나 된다. 어차피 덧없는 인생, 덧없는 재물이다. 하지만 재물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가치는 달라진다는 것이 부처님 입장이다.
살아가는 데에는 힘이 든다. 그 힘을 혼자만 내기에는 벅찰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누군가 옆에서 어깨를 툭툭 쳐주면, 그 힘에 기대어 다시 한 번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다. 격려가 바로 그런 일을 한다. "잘 할 수 있어. 다시 한 번 힘을 내봐. 너는 충분히 할 수 있잖아" 라고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격려이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에는 칭찬도 있다. 하지만 칭찬과 격려는 조금 다르다. 칭찬은 누군가가 멋진 일을 했을 때 주는 것인데, 격려는 거기에만 멈추지 않는다. 칭찬이 밖에서 주어지는 찬사라면, 격려는 내면에서 힘을 내게 하여 그가 하려는 일을 완성하게 해준다. 행여 실수나 잘못을 했을 경우 그에게 움츠러들지 말고 다시 한 번 일어서라고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요즘처럼 자존감이 바닥까지 추락했다는 사람들이 많을 때 이 격려의 한 마디가 갖는 힘은 크다.
사는 게 버거워 연애도 결혼도 포기한다고들 한다. 혼자 지내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여행을 다니고 영화관에도 혼자 간다. 너무 단체를 강조해 온 사회 분위기에 짓눌려 혼자만의 삶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하지만 혼자서만 살아가는 것이 세상은 아니다.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이지 않더라고 내 인생에서 도반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수행의 길에서조차 이성의 만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경에는 쓰여 있다. 함께 완성해 가는 인생, 내 짝은 인생길의 동무요, 도반이다. 고민고민하고 나름나름인 세상의 결혼 생활이라지만 그것이 도반과의 삶이라면 꽤 괜찮은 만남 아닐까요?
불교명상 시시한 인생은 없다 책은 이야기로 풀어 쓴 경전에세이로 “내가 너무 시시한 존재 같아서 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읽고 싶지만 쉽게 읽을 수 없던 경전을 누구보다 쉽고 이상적이게 또 친숙하게 풀어냈다. 일상생활과 나 자신을 집어삼키는 ‘분노’, ‘탐욕’, ‘부끄러움’ 등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경전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화를 내는 것은 꿀처럼 달콤하지만, 그 감정의 뿌리에는 결국 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분노는 죽이면 슬프지 않다”고 다독인다. 우리가 쉽게 가질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과 그로 인해 인생마저 시시해 지고 있는 현시대에 대해 고민한 것이다. 숨 쉬기가 두렵다고들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될 때 들여다보는 책이다. 세상에 깔린 시시한 감정, 진부한 하루, 짙은 혐오, 갈등하는 마음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서로를 돌본다. 부처님을 따르는 불자도, 아닌 사람도 인생의 지혜를 갈구하는 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