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시리즈는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라는 부제목을 두고 나온 시리즈인데 시리즈로 나온 책들은 모두 다 나름 주제가 확실하고 유익한 내용의 책들이라서 모두 구매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평소에 자주 접하지 않은 근현대 한국문학이라서 구매했습니다. |
| 책다름 출판사에서 출간된 ' 이광수 모르는 여인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8)' 리뷰입니다. 이광수 작가님의 모르는 여인은 근현대 문학을 좋아하는 저에게 낯선 작품이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필력이 좋으셔서 단번에 책속으로 흡입되는 느낌이었습니다. |
|
이 소설은 러일 전쟁후 의 이야기를 다루고있습니다. 러일전쟁이 터진 이후 팔십에 가까운 조부와 일곱살의 누이를 두고 서울로 상경을 합니다 주인공은 그 뒤 반년 이 지난 후 조부와 누이가 이사를 간 시골로 내려갑니다. 참 이러면서 낯선이름을 듣게됩니다. 바로 어머니지요 |
|
우리나라 근대사 문학에 있어 김소월과 이광수 두 축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그의 과거 행적때문에 사실 이름만 알고 있는 작가였습니다 그러나 읽어보니 그가 왜 이리 유명했는지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용서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타고난 재능 악마의 재능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부가 어린 손녀 한 명을 두고 늙어가는 모습과 떠났던 손자가 찾아와서 그 풍경을 느끼고 말하는 과정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다른 작품들도 읽어야겠습니다 |
|
이광수의 '모르는 여인' -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짦은 이야기다. 하지만 왠지 마음이 짠해진다. 노일전쟁 끝나고 팔순의 할아버지와 어린 누이가 거처하는 집으로 돌아온 젊은 남자 주인공이 그 동안 의지가지 없는 가족들을 돌보아준 이웃의 모르는 여인에게 한없이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이웃 여인을 찾아가 감사 인사를 전하지만 정작 그 여인은 해준 것도 없는데 뭐 감사할 게 있느냐며 수더분하게 반가워할 뿐이었다. 우리 민족의 끈끈한 정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
|
그것도 인제는 그 사십년 전, 조부님이 돌아가신 것도 삼십년이 넘었다. 그 여인이나 보부나 거북이나 성명도 모르고, 간 곳도 모르고, 그 후에는 한 번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 여인이 아직도 살아 있다면 벌써 칠십이 넘었겠고, 보부는 오십, 거북이도 사십은 되었을 이때다. 모두 백발이 보일만한 이때다. <거북이가 닮았나?> 그것은 아마 사실이 이닐 것이다. 무론 사실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내 조부님과 그 은혜 많은 여인의 명예를 위하여 사실이 아닐 것을 나는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거나 아니거나 내게 있어서 그 세 얼굴이 잊히지 아니하는 정다운 얼굴인 데는 틀림이 없다. |
|
인제 여덟 살 먹은 어린 누이. 제가 여섯 살이요, 내가 열 한 살 적에 팔월 추석을 앞두고 뒤두고 부모를 한꺼번에 여윈지 이태. 젖먹이 끝에 누이는 남의 집에 가서 살다가 이질에 죽고, 동기라고는 하나 밖에 아니 남은 어린 누이. 그것이 이 추운데 방구리에다가 물을 길어 이고 또아리 끈을 입에다 물고, 어른들이 하는 모양으로 한 손으로 물동이를 잡고, 한 손으로는 젖가슴을 누르고, 그리고 황혼에 선 꼴. 내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도 때는 묻었을망정 통통하게 솜 둔 옷을 입은 모양만이 대견하였다. |
|
나는 팔십이 가까우신 조부님과 일곱 살 밖에 안 되는 누이동생 하나를 떠난지 반년만에 찾아서 서울에서 내려갔다. 내가 지난해, 즉 노일 전쟁이 터져서, 내 고향인 ??에서 노일 양군의 첫 접전이 있은 것은 봄이어니와, 그 여름에 조부님 앞에서 배우던 맹자를 「과거도 없는 세상에 이것은 배워서 무엇하오?」하고 집어던지고 서울 길을 떠날 때에는 집에는 늙은 서조모 한 분이 계셨으나, 내가 서울 올라가 있는 동안에 그 허리 꼬부라진 서조모 마저 돌아가시고, 조부님은 어린 손녀인 내 누이동생 하나를 데리고 전 집을 지닐 수 없어서 팔아가지고 조부님의 외가 되는 동리에서 고개 하나 새에 둔 외따른 조그마한 집, 이 이상 더 작을 수는 없다 하리만큼 조그마한 집을 사서 옮아와 계셨다. 내가 조부님과 어린 동생을 찾아간 것은 이 ??골 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