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깍이 할머니들 처음으로 배움의 길로 들어섰다는 뭉클한 소식과 늦었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이 젊은이들 못지않게 넘쳐서 인생 제 2막을 열었다는 기분 좋은 소식도 듣게 된다. 무엇이 할머니들의 가슴을 뛰게 할까? 배움에 대한 갈증이 아닐까. 어렸을 땐 집안 형편이 힘들어서 배우지 못했고, 커서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배움의 시간을 훌쩍 건너뛰었다. 그리고 아이들 다 키우고 밖으로 보내고나니 어느새 할머니가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먹고 살기가 조금 괜찮아지니 다시 마음 한 켠 허전함이 덩그러니 있음을 알았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없지만 못 배웠던 한을 풀고 싶다. 어느새 나이가 7학년을 넘어서고 8,9학년의 시간 속에 있다. 그 시간 속에 응어리진 삶의 사연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다 풀어내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고 긁적일 공책 수십 권은 될 것이다. 우리 할머니들의 삶이다. 전라도 장흥 월림마을 여섯 할머니들이 의기투합해서 글을 배우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두근두근 생애 첫 시와 그림을 엮어 책을 냈다. <할매들은 시방>이다.
![]()
삐뚤빼뚤 글씨로 한 자 한 자 눌러쓴 할머니들의 글을 만났다. 할머니들의 글을 감히 평가를 할 수 없다. 날 것 그대로의 할머니들 삶이기에. 평생의 할머니들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기장과 같아서 조심스레 펼쳐보는 것 같다. 희노애락이 다 들어있는 삶 그 자체로 소중한 기록이다. 문법과 어법에 맞지 않고, 서툰 말, 틀린 글씨, 이해되지 않는 말들이 많았지만 뭐가 중헌디? 이해 불가능한 말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할머니들의 순수하고 솔직한 마음들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읽다보니 할머니의 삶들이 다 보이는 듯 했다. 마음 한 켠 짠한 글도 있었고. 어렵고 마음에 와닿지도 않은 시들은 읽기에도 부담스러운데, 할머니들 글은 이상하게 자꾸 더 읽고 싶었다. 그 녹록치않은 삶들을 잘 견뎌왔고 살아온 시간에 대해 고마움을 담아 인사를 건네고 싶다.
![]() ![]() ![]()
살아 생전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할아버지(영감)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이 할머니들의 시 속에 한 편씩 있는 듯 하다. 남편 얼굴을 5년동안 9일 밖에 보지 못했다던 할머니의 사연에 가슴이 먹먹했다. 사랑을 받지 못해서 느끼는 것도 없고,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는 할머니의 글에 시선이 멈춘다. 아.... 어떡해. 할머니의 삶이 얼마나 허했을까? 그 삶은 아무도 모른다. 또, 사랑이란게 옆에 빈 자리가 있음으로 비로소 생각나는걸까? 다른 세상에 살면서도 안부를 묻는 할머니들의 사랑법이 이런 것일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지금 옆에 있는 내 사람에게 말로 몸짓으로 많이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특별하게 다가오는 시를 고르라고 하면 나는 「나에게」,「욕심」이다. 물론 다른 시들도 마음이 뭉클해지고 따뜻하니 너무 좋다. 그동안 힘들었지만 수고한 당신 자신에게 건네는 따뜻한 고마움과 다시 살아갈 앞날에 대한 믿음과 위로가 굳건해보였다. 정말 자신을 많이 사랑하는구나! 느낌을 받았다. 반대로, 삶의 유한성 앞에 더이상 욕심 부리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할머니의 아주 간단명료한 시가 턱하니 마음에 부딪히는데 희안하게 위로를 받는다. 새끼들도 다 잘 사니깐 내 마음밭을 가꾸며 지금 이대로의평안함으로 살아가자는 메시지 같기도 하고. 다 다른 할머니들의 삶의 결이 느껴지는 시를 읽는다는 것, 행복한 시간인 듯^^ 정제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할머니들의 시와 그림을 계속 보고 싶다.
![]() 인생의 더할나위없이 꽃을 피우고 계신 할머니들의 삶이다. 희망을 가질 수 있겠다. 시간의 연륜은 아무때나 발휘되는게 아니었다. 씨앗을 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때가 있다. 그 모든 삶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제 때 물을 주고, 가꾸고, 보살피는거다. 할머니들의 시를 보니 삶의 매 순간마다 때 묻지 않은 마음을 얼마나 잘 가꿔왔는지를 알 수 있다. 부족함과 부재가 삶을 변화시키고, 소중한 것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삶의 활력을 준다는 것을 할머니들은 미리 아셨다.
![]()
해마다 똑같은 봄여름가을겨울이 오고, 시골살이 할 일도 넘쳐나지만 기쁘다. 여전히 풍성한 열매를 수확하고 그것을 먹는 기쁨도 좋지만 얻은 수확물을 자식에게 줄 수 있음에 더 좋고 늘 앉으나 서나 다 큰 자식들 걱정에 마음이 번거롭지만 타지에서 자식들이 돌아올 수 있는 집이 있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란 생각에 힘을 내는 할머니들이다. 옆에 있을 땐 모르지만 없을 땐 더 생각나는 영감, 시어머니, 자식들... 그 이름이 그리움으로 머물러있다.
![]()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낸 흔적이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부자이고, 아무리 바빠도 재미가 있음은 가을에만 누릴 수 있는 선물 같다. 시인과 화가가 모두 여기에 계시다. 『할매들은 시방』 바쁘다. 때마다 땀 흘려 일해야 하고, 한글도 배우고, 시를 짓고 그림도 그려야 하니깐.
서툰 글이지만 또박또박 재밌게 쓰고 그리는 일에 열심을 내는 할머니들이 사랑스럽다?^^ 그럭저럭 살아왔다는 할머니의 말에 위로를 받는다. 반면 열심히 하지도 않고, 쉽게 그만두는 나는 숨고 싶다. 나는 시방 할머니들의 소박한 글을 많이 읽고 싶다. 꾸미지 않은 예쁜 할머니들의 마음을 닮고 싶다. 그러면 좋은 글 쓸 수 있을텐데.... 글은 마음이 가는대로^^
![]()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할매들은 시방(時方)도 시방(詩房)에서 인생을 그리고 짓는다 <할매들은 시방>을 읽고 보고
![]() [집어들며] 배움에는 때가 없다. 나와 같은 직장생활자는 업무와 자기계발을 위해 오늘도 졸린 눈을 치켜뜨며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나아가 이른바 실버세대는 100세 시대를 맞아 제2 혹은 제3의 노후 인생을 위한 공부를 해야만하는 요즘이다. 여기 전라도 장흥 월림마을에도 늦깎이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바로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 한글과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여섯 할매들이다. 할매들이 태어나 처음으로 그리고 지은 그림과 시를 모아 엮은 <할매들은 시방>을 집어들면서 과연 글과 그림이 할매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비록 표현은 서툴거나 투박할지 모르나 그 어떤 작가의 글보다 진한 인생내음이 묻어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책장을 넘겨본다. 이 시화'집'에는 여섯 개의 시방(詩房)이 있다. 처음 시화집의 제목을 보고 할매들이 사는 곳으로 미루어 '시방'을 전라도 사투리로 여겼으나 국어사전에서 '지금'이라는 뜻의 '시방(時方)'을 발견하며 중의적인 제목임을 알게 되었다. 시(詩)방에 놓여있는 정감 어린 글자와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도 방 한 편에 앉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고 있을 할매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기서 맞춤법이나 철자의 오류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러한 부분이 마치 할매들의 시화집 속 그림의 일부분 같아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든, 혹은 아흔을 향해 가던 할매들이 느닷없이, 잘 덮어두었던 시간들을 헤적이는 찰나, 훈풍이 불기도, 때론 폭풍이 다시 일기도 했습니다. 그 바람들이 지난 자리에서 시와 그림들이 피어났습니다.(5쪽, 머리말 中)
[김기순은 詩방] 총 네 편의 시 중 세 편을 통해 김기순 할매의 마음에는 어매(어머니)와 아버지, 영감(남편)에 대해 원망과 그리움이 같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가운데 「속모를 영감」을 읽는 내내 자연스레 요즘 젊은 세대와 견주어 보게 된다. 아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큰 마음 먹고 먼저 내민 손을 뿌리치는 남편을 보면서 요즘 같으면 '간 큰 남자'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 친구, 고양이 깜동이에게」에서는 지금 할매 곁에는 세 사람의 빈자리를 채우고 또 달래주는 반려묘(猫) 깜동이가 나온다. 이러한 깜동이에게 할매는 "나 두고 죽지 마잉 / (중략) / 나 죽으면 / 어디 좋은 데 가서 밥을 먹든지 / 죽든지 해라"고 말한다. 마지막 반전을 읽으면 절로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너는 짐승인께 / 너는 너대로 자거라 / 나는 나대로 잘란다"
![]()
[김남주는 時방]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이 여섯 할매의 왕언니 김남주 할매는 시를 통해 어머니와 아버지,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고마움과 그리움을 전한다. 무엇보다도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준 선생님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할매를 보면서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또한 「아흔이 되도록 사라도」 에서 지금도 여전히 사는 게 기쁘다는 할매의 말에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삶의 태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박연심은 詩방] 여섯 할매 중 가장 많은 시와 그림을 토해낸 박연심 할매의 작품에는 눈가는 곳마다 펼쳐진 자연이 가득하다. 대나무, 율무나무, 가지나무, 소나무, 코스모스, 장미, 소, 닭 등 평생을 함께 지내고 돌봐온 동식물들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영감 가는 길」에서 "엽서 한 장 전화 한 통 없으니 / (중략) / 천국 간 소식 알 수 없으니 / 천국 문이 닫혀 인나 / 알 수가 없내"라며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또 한번쯤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는 물음을 놓고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살라고 먹었내」에서 할매는 "이서럼 저서럼 다 젖커도(이 설움 저 설움 다 겪어도) / 배곱푼 설럼이 제일 큰 것 간내 / 배고푼 세상은 안 사라바지만 / 생각해보니 살라고 먹은 것 간내"라고 말하면서 부모님과 남편을 이별하고도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다고 회고한다. 인생이란 이런게 아니겠냐고 나에게 되묻는 것처럼 들린다.
[백남순은 詩방] 늘 들녘을 지나며 보았던 꽃을 만지고 또 머리에 담아서 집에 돌아온 후에도 계속 생각난다는 백남순 할매를 보면서 요즘 주목받고 있는 '방구석 식물러'의 원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꽃을 사랑하는 할매는 「사랑」에서 "남편 얼굴을 오 년 동안 / 구일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해 / 느낀 것이 없기에 / 아무런 생각도 없습니다 / 사랑이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 사랑이 무었인지 모느계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사랑을 받고 싶었던 할매는 그래서 꽃에게 사랑을 주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 「가방」에서는 할매가 직접 수를 놓아서 만들어준 책가방을 메고 학교가는 동생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집안의 맏이로서 동생들을 위해 배움을 포기하고 오롯이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할매가 어쩐지 가엾게 느껴진다.
[위금남은 詩방] 시로만 추측해보건대 여섯 할매 가운데 가장 시크할 것만 같지만 속은 누구보다 여릴 것 같은 위금남 할매는 「왜 그란가 몰라」에서 "밭에 있으면 / 아무 생각도 안 나는디 / 어둑해 들어와 / 대문 잠그고 / 방문 잠그고 / 들어누웠으면 / 이것이 사는 것인가 / 무담시 눈물이 나와 / 왜 그란가 몰라"라고 말한다. 외롭고 적적한 마음이 잘 드러난 시라고 생각하던 찰나 이어서 나오는 두 시를 보면 고독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할매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욕심 부릴 게 없다 /곰방 죽을거니까 / 새끼들 다 잘사니께 (「욕심」 전문) 세월 시어매 둘 다 돌아가시고 / 시아재도 돌아가시고 / 영감도 죽어불고 / 이제 내 차지다 (「세월」 전문)
[정점남은 詩방] 빛나는 한글교실 졸업장을 무려 6장이나 갖고 있는 정점남 할매에게서 생활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짧지만 농사일의 정수만 뽑아낸 것처럼 농사를 1도 모르는 도시생활자의 눈에도 농사일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시로 읽혀진다. 고추는 사월에 심고 / 깨는 칠월에 심고 / 땅콩은 사월 오월에 심고 / 잘 자라라고 밑 비로는 복합 / 윗 비로는 요소 잘 크라고 / 고추 주렁주렁 열이면 / 기분이 좋다 (「밭농사」 전문) 그리고 노인정 가는 길에 보리밭에서 마주친 참새가 날아가는 걸 보면서 당신때문에 제대로 배도 채우지 못하고 간 건 아닌지 미안해하는 「참새들」에는 할매의 예쁜 마음씀씀이가 담겨있다. 또 「나늘 용서해주세요 영감」을 읽으면 故김광석이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내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내려놓으며] 시화집을 읽고 보고 난 뒤 다시 할매들이 쓴 글자를 찬찬히 보게 된다. 시를 지으면서 할매들이 또박또박 쓴 글자 속에는 할매들의 한평생이 꾹꾹 눌러담겨져 있는 것만 같다. 지금의 나라면 감히 살아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텐데 그 시절을 살아내면서 견디고 지켜왔던 인생에 대한 할매들의 무수한 감성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더불어 누군가의 아내, 엄마, 그리고 며느리가 아니라 온전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할매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부디 여섯 할매 모두 오래오래 건강하시어 더 좋은 작품들 많이 보여주시길 바라며 <할매들은 시(詩)방>의 문을 닫는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이 책 200쪽('밭농사' 정점남 할머니)과 194쪽('수박' 정점남 할머니)에 나오는 시가 다른 출판사 시집 '시가 뭐고?'(삶창)의 24쪽('밭농사' 배효향 할머니)과 89쪽('둥글둥글 수박' 채병규 할머니)에 나오는 시와 완전히 똑같습니다. '시가 뭐고'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할머니들이 쓴 시를 모아 낸 시집이고 '할매들은 시방'은 전라도 장흥 할머니들의 시를 모아 낸 시집입니다. 분명히 각각 다른 할머니일텐데..... 시의 원작자 할머니는 이 사실을 알면 속상하시지 않을까요?.... 초판 1쇄를 '시가뭐고'는 2015년에, '할매들은 시방'은 2020년 했네요. 두 출판사에서는 해당 시의 원작자를 분명히 가려 어느 한 쪽 출판사에서는 정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
“ 자연에 혹하는 시간이 잦아들 무렵,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풍경은 날마다 연출이 되고 있었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날마다 버스를 타고 어딘가를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병원에 가시는 것이 일과시더군요. 다른 마을도 상황은 비슷해 번호표를 받고 반나절을 기다렸다 겨우 진료를 받는 일이 흔한 일이었지요. 어려서는 부모님이 이끄는 대로 살아오셨고, 독립해서는 가정을 이루어 자녀들을 키우느라 온 힘을 다하고 비로소 자유로워진 그들 앞에 놓인 것이 병든 몸이라니요. 그런데 그 현실은 나의 미래이자 나의 어머님의 현재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난 할머니를 좋아한다. 할머니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는 말이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도 사랑함) 귀여운 할머니, 유쾌한 할머니, 할머니라는 호칭은 어떤 형용사와 붙어도 안성맞춤이었고 귀여웠다. 생각이든 몸이든 유연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램도 있었다. 할머니들을 좋아하지만 잘 알진 못했다. 할머니는 영화나 책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아니었고 할머니의 일생은 딱히 이야기 되지 않았다. 내 주변에는 한량 할아버지와 노동자(?) 할머니의 조합이 많았다. 젊어서 지금까지 꾸준히 일하지 않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밤낮으로 일해 자식들을 배우게 했다는 그런 서사. 남은 건 지치고 굳은 몸이라는 현실. 그럼에도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발언권이 없던 할머니들. 세상이 할머니에게 마이크를 주지 않은 것처럼 나는 할머니 이미지만 사랑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닿지 않은 시절을 살고 있는 사람을 동경하며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
할머니들의 시가 손글씨로 담겨있어서 좋았다. 그저 정형화된 폰트로 써진 시였다면 아쉬울 뻔했다. 가독성은 떨어지더라도 더 할머니를 생각하며 읽을 수 있었다. 그림도 알록달록, 거친데 부드럽고 예뻤다. 주변에서 흔히 보던 식물, 가족의 얼굴을 담는 할머니의 그림이 따뜻했다. 책 곳곳에 쓰인 핑크색도 마음에 들었다. 할머니가 쓴 시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실었다는 것도 좋았다. 말투가 그대로 담겨 읽는 맛이 산다고 해야 할까 낭독하는 재미가 있었다. 전라도 사투리가 정겨웠다. 할머니는 남 말고 다 제 이야기를 시로 썼다. 할머니의 인생을 유추해볼 수 있었고 우리 할머니와 겹쳐 보여 슬펐다. 선생님께 계속 고맙다고 하는 할머니의 시에 나는 왠지 가슴이 쪼였다.
내 할머니는 이 책의 할머니가 사는 장흥 옆 강진에 살고 계신다. 책을 읽기 전, 읽으면서, 읽은 후에도 계속 우리 할머니가 떠올랐다. ‘우리 할머니는 글을 배우지 못하셨는데, 우리 할머니도 아프신데, 우리 할머니도 젊을 적에 시집오셨는데, 우리 할머니 연세 80살에 아직도 일하시네.’ 부끄러운 일은 우리 할머니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는 거다. 책을 통해 알게 된 장흥 할매들만큼 우리 할머니를 알고 있었다. 앞으로 안부전화를 자주, 진심으로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책을 읽으면서 할머니를 개인으로 보게 되었다. 할머니도 똑같이 힘들고 사랑하고 즐겁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더 많은 할머니가 쓰고 그릴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머리글에 적힌 것처럼 “노년의 시간을 통과하는 이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그 과정 속에서 시와 그림이 나올 수 있다면 마음은 풍요”로울 거라고 믿는다! ![]() ![]() 계속 생각나는 시 둘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