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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정당화 이데올로기가 된 능력주의 비판
"불평등의 정당화 이데올로기가 된 능력주의 비판" 내용보기
"한 사회가 얼마만큼 조화되는가 하는 정도는 어디서든 계층화가 사회의 도덕규범으로 승인받는 수준에 좌우된다."  - 241쪽에서불평등의 간극이 심화됨에따라 지금까지 관용되어 오던 권력과 위신과 부의 배분에 대한 가치, 그 도덕적 기준에 의심이 증폭되고 있다. 즉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계층화가 대중이 지닌 도덕규범과 상충하고 있다는 것, 사람들이 더 이상 승인할 수 없는 상태에
"불평등의 정당화 이데올로기가 된 능력주의 비판" 내용보기

"한 사회가 얼마만큼 조화되는가 하는 정도는 어디서든 계층화가 

사회의 도덕규범으로 승인받는 수준에 좌우된다."  - 241쪽에서


불평등의 간극이 심화됨에따라 지금까지 관용되어 오던 권력과 위신과 부의 배분에 대한 가치, 그 도덕적 기준에 의심이 증폭되고 있다. 즉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계층화가 대중이 지닌 도덕규범과 상충하고 있다는 것, 사람들이 더 이상 승인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해 있다는 의미라 해석할 수 있다. 이 의혹 가득한 가치기준이란  '누구든 동일한 출발점에서 오로지 한 개인 자신의  지력과 노력을 통해 사회적 성취를 달성하는 것'에 대한 지지와 찬사를 보내는 '능력주의'라는 것이다.  '마이클 영'이 1958년, 라틴어 meritum과 그리스어 어근 -kratia 를 결합해 선보인 신조어 'meritocracy(능력주의)'가 반세기를 갓 넘은 지금, 출현 할 때의 신선함과 정당성에 회의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그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21세기 오늘, 기득권을 독차지한 소수의 집단이 다수인 대중과의 소득과 권력의 배분에서 압도적인 몫을 차지하는 극단적인 불균형의 심화가 대중의 심리적 수인의 한계를 넘어섰는다는 인식의 공감이 그 어느 때보다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맥나미, 마르코비츠, 샌델 등 예일,하버드대의 정치철학과 법학의 저명한 학자들이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적 저술을 잇달아 발표하며,  문화적, 정치적, 도덕적 함정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 대강은 '유리한 기회의 세습화'로 인한 계층의 고착, 즉 '사회적 계층 이동성 차단'으로 인한 불평등 정도의 간극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기득권 세습을 위한 상부 계층 또한 이를 유지키 위한 '사회 낭비적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 나아가 사회체제의 자기 파멸을 초래 할 수 있다는 경고이다. 이러한 우리의 사회적 배경 하에서 능력주의의 고전이 된, '마이클 영'이  불가피하게 소설의 형식으로 펴낸 『능력주의(The rise of the Meritocracy)』는 풍자와 역설적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는 길의 모색에 긴요한 안내가 되어준다.



이 작품은 인권, 자유 등 민주주의 가치의 훼손이 전체주의 권력이  아닌 인간 개인들의 무한한 욕망 추구로 인한 자기 파멸일 것이라고 예견했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영국적 전통을 잇는다.  능력주의라는 기만적 가치 기준 또한 가족주의에 토대를 둔 개인의 이기적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를 독점적으로 유지, 세습하려는 야망이 사회의 거대한 균열을, 파멸을 야기하게 될 것임을 역설적으로 주장하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점이다.  


소설의 시대와 사회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엘리트주의가 완전히 정착하여 세습되는 2034년이다. 그럼에도 이 체제에 저항하는 '포퓰리스트 그룹'이라 지칭되는 집단이 있으며,   이들이 5월 총파업을 예고하자, 저자와 동명을 지닌 소설 속 사회학자인 마이클 영은 이를 "국가를 향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으로 인식하며, 이 직면한 위험의 성격을 역사 사회학적으로 분석 규명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서술자인 화자는 엘리트로서 능력주의의 절대적 옹호자이기에 서술적 시선은 어떻게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사다리에 대한 욕망을 지우게하고, 기회 평등의 이데올로기를 삶의 중요 관점에서 몰아낼 수 있도록 사회체계를 구축했는가에 대한 사회심리적, 문화적, 정치적 기술(Technique)의 제도화에 대한 역사적 진술이자 회고라 할 수 있다.  (능력주의, 나아가 엘리트주의의 세습에 반대하는 독자는 철저하게 화자의 논술을 역행해야 한다. 사회운동가이자 정치가이며 사회학자였던 현실 속 저자가 기대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읽기이다.)


2034년의 사회학자인 마이클 영은  '지능+노력=능력'이라는 도식이 사회적 가치기준으로서 도덕성을 지니는 데 수많은 문제를 지녔음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는'운 좋은 정자클럽(lucky sperm club)' 의 회원이 된다고 해서 이득을 누릴 도덕적 권리가 생기지 않"음을, 사회적 지위와 권력, 재화가 둔한 자식일지라도 전달되어 온전한 능력주의의 유익성을 훼손하고 있음을, 즉 교육 사다리가 사회 사다리로 그대로 연결되기에 기회균등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위로 싸여있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더구나 세대를 이어가며 상부 계층을 유지 존속시키기 위해 하부 계층의 평범한 이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도 이해하고 있다. 2034년 엘리트 세습주의 사회가 정착된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적 이해의 수용에서 시작된 것이다. 


만인이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가치기준으로 지능점수(IQ; Intelligence Quotient)를 공식화하고, 뛰어난 능력의 인간을 조기에 발굴 육성하기 위해 검사 측정 연령을 3세까지로 낮추기도 한다. 지능의 지체된 성장을 지닌 이들의 반발을 차단하기 위해 성년자에게도 매 5년마다 '성인교육지역센타'에서 재검사를 통해 '국가지능검사' 카드를 재발급하고 이전의 지능은 삭제하여 신분을 보장한다. 지능이 곧 사회적 신분이자 권력이며 재산인 사회다.  지능에 의한 엘리트 계층의 정착은 "쥐뿔만큼도 없으면서 능력이 있다고 상상하는" 숱한 가정에서 확인되는 증상, 정신병을 시정한다. 


또한 "거의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식을 위해 불공정한 이득을 얻으려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능력에 따른 선발의 원리를 철저하게 수호한다. 엘리트 계층의 부모를 둔 멍청한 아이가 효율성, 신뢰성을 저하시켜 국가 경쟁력을 훼손시키는 해악의 사태를 막는다. 이는 역사적 분석에서 "가족의 필연성이 진보, 그리고 능력주의의 필요성에 저항한다는 사실"의 규명에서 나온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정부의 목적은 사회 질서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더 뛰어난 이들의 자리를 강탈하지 못하게 막는데" 있으며, 이런 목적을 실현한 한 가지 방법으로 "가족의 힘을 약하게" 만든다. 


"자기 자식에게 권력과 위신을 물려주려는 자연스러운 충동을 인위적으로 견제하지 않는 한, 

엘리트는 하나의 계급으로 자리 잡을 수 없다."  - 279쪽에서


문제는 계층을 구별, 분리하는 완벽한 가치기준이 확립되어 있으며, 상층 계급의 멍청한 아이가 힘들이지 않고 부모의 힘에 의해 전문직의 안락한 귀퉁이로 천천히 밀어 넣어지지 못하게 하는 국가 시스템으로 능력주의에 의한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엘리트 사회가 정착되었음에도 경비원, 가정부, 청소부, 택시나 버스 운전을 하는 하층 계급의 사람들 중에 엘리트를 능가하는 지능과 재치, 지혜를 갖춘 이들이 '이름 없는 주드(Jude the obscure)'처럼 도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에더해 이를테면 "국립 천문대 소장이 천문대를 지은 벽돌공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처럼  능력주의의 가치로 답할 수 없는 성격의 물음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소설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계층과 무관하게 '균등급'을 지급했으며, 다만, 직업 수행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을 별도로 직업을 관장하는 기관,기업에서 필요에 따라 '차등화된 비용으로 지불'하는 방식을 취해 해결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 말장난에 현혹될 이는 없겠지만, 이미 지능에 의해 철저하게 멍청한 사람들을 분리한 사회이므로 비교 대상이 비슷한 계층에서 주변인들과 비교해봐야 차이가 없으므로 저항이 발생치 않는다는 것이다. 엘리트주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능력주의 가치체제의 우월성을 설득하는 소설의 문장들은 이 정도의 소개에서 그쳐야할 것 같다. 화자 마이클 영은 비록 자신의 의사에 반하지만 능력주의를 무화시키는 물음들과 논리들을 조롱과 함께 부정적으로 병행 묘사하여, 엘리트중심 사회에 도사린 무능성과 불안을 드러낼 뿐아니라 대안 모색의 길을 넌지시 제시하며 학자다운 논의의 균형을 이루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이 가능 할 것이다.  "왜 한 인간이 다른 인간보다 우월하다고 여겨지는가?" 물론 소설  속 엘리트 세습사회인 2034년에 그 답변은 간단하다. 지능의 높낮음이라는 가치기준에 따른 똑똑함과 아둔함이 가져오는 물적 효율성의 차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가치기준이란 것이 인간 역사에서 동일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오랜 역사기간  훌륭한 전사가 통치하는,  "사람을 죽이는 능력을 바탕으로 권력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가치판단의 잣대인 시대의 최고가치가 무엇이느냐의 문제가 아니냐는 질문이다. 만일 "친절함과 용기, 상상력과 감수성, 공감과 아량에 따라서도 평가한다면", 이 때에도 계급이 존재할까? 를 생각게 한다. 계급이란 어떤 가치가 재분배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기회균등이란 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올라 갈 기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각자 타고난 덕과 재능, 

인간 경험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모든 능력, 삶의 잠재력을 지능에 상관없이 

최대한 발전시킬 기회를 균등하게 만드는 일이다."   -  270쪽에서


게다가 고정된 사회계층, 즉 이미 기득권자인 엘리트들이 자신들을 위해 확립한 계급적 사다리를 전제하는 기회균등이라는 개념을 걷아차고, 덕과 인간 경험의 깊이, 미적 감각 등등으로 가치를 넓혀 나가면 기회의 평등성은 새로운 차원에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제  포퓰리스트 그룹의 봉기를 우려하는 사회학자의 직면한 위험을 말하는 소설의 처음 문장으로 돌아가보면, 오늘의 능력주의가 외면하고 있는 새로운 문제가 부상한다.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의 대중을 지배하는, 사회의 모든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이들을 불안에 잠기게 하는 본질이다. 그것은 바로 "버려진 사람들의 정신 상태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고, 따라서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조정을 확보하지 못한 사실"이라고 자성하는 대목이다. 소설 속 포퓰리스트 그룹이란 능력주의 체제하에서 하층 계급에 위치하고 있으나 엘리트 만큼 혹은 이상으로 똑똑한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말은 이러한 사람들을 능력주의가 자신들이 유지 존속시키려는 가치등급 질서에 온전히 편입시킬 수 있는가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능력주의 제도는 기만이며 그 거짓으로 인한 불안으로 폭발의 위험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교육제도에 대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교육 사다리가 곧 사회 사다리와 연결되기에 그만큼 능력주의 체제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영역인 탓이다. 한국 사회의 교육 체제는 고등학교부터는 일부 특수목적 유형의 학교들이 있어 사회적 지위와 부의 사다리와의 연결고리를 용이하게 하지만 실질적인 경쟁은 서열화된 대학 입학시험에 집중되고 있다. 


부를 쏟아 부을 수 있는 계층은 이때 아둔한 아이던 똑똑한 아이던 그 황금액의 규모 또는 권력이 발생시키는 정실(情實)에 따라 책상을 살 수 있게 된다. 사실 효율성에 입각한 능력주의가 엄청난 사회적 낭비에 기초하고 있다는 모순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 똑똑한 아이는 똑똑한 아이로 성장하지 못하고, 급기야는 어처구니없는 입시(교육)제도로 인해 패배자의 무리가 되고 만다. 


멍청한 아이가 지배계급이 되어 엘리트를 자임하고 똑똑한 아이는 '실패는 네 잘못'이라는 황당한 오명과 경멸을 감수하게 된다. 오늘 우리사회의 기득권 계층이 말하는 능력주의란 이처럼 능력에 기초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승자와 패자를 다루는 이 능력주의의 신화는 불평등이 근간이기에 지금 우리들이 근심스럽게 바라보는 양극화의 문제는 경제적 문제이기 전에 교육제도와 가족주의와 같은 도덕가치의 관점에서 바라보기가 요구되는 것이라 하겠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능력주의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데 마이클 영의 이 작품은 빼 놓을 수 없는 책이라 하겠다.


☞참고:이름 없는 주드(Jude the obscure)』, '토마스 하디'의 소설,  주인공 주드는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임에도 인습과 제도의 장애로 대학입학을 거절당하고 좌절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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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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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단어에서 무엇인가 정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배경없는 사람도 본인의 능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느껴졌다. 나 자신도 특별한 배경없는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받고 중고등학교를 마쳤고 살던 지역에서 가장 좋은 대학, 가장 선호되던 학과로 진학하여 학업을 마쳤다. 현재의 삶 속에서도 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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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단어에서 무엇인가 정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배경없는 사람도 본인의 능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느껴졌다.

나 자신도 특별한 배경없는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받고 중고등학교를 마쳤고

살던 지역에서 가장 좋은 대학, 가장 선호되던 학과로 진학하여 학업을 마쳤다.

현재의 삶 속에서도 엘리트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 가고 있다.

어쩌면 능력주의의 큰 혜택을 본 사람 중 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능력주의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정의롭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저자는 2034년 능력주의가 사회의 주류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영국사회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능력주의가 어떻게 영국사회에 자리 잡았고 최근에 큰 이벤트들의 원인을 찾는다.

세계대전 속에서 영국은 자국민의 지적능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그 해결책으로 지능이 뛰어난 노동자 계급의 자녀들을 공적 교육을 통해 지도층 계급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하였다. 

그로 인해 생산성은 높아지고 기업과 자본은 더 강해졌다.

그렇게 몇 세대가 지나고 나니 지능을 기반으로 다시 계급이 나눠지고 많은 사회 문제들이 생긴 영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모든 것이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능력주의 사회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 란 슬로건 그 자체로 능력주의 사회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저자는 능력주의가 어떻게 흘러 갈 것인지 예측했다. 

60여년 전에 쓰여진 책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정확히 예측했다. 

 

기회의 평등,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란 무엇일까?

우리는 그 잣대를 무엇으로 하고 있는가?

단위 단위의 정의로운 결과가 과연 전체 사회에서는 정의로운 결과인가?

능력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불필요한 경쟁으로 소모되고 있진 않는가?

 

처음으로 돌아와서 능력주의란 단어

과연 공평하고 정의로운 단어인가? 

많은 질문을 던지는 참 의미있는 책이다.

YES마니아 : 골드 h****j 2021.05.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