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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관계가 잘 조명되고 있다. 세상의 엄마와 딸의 관계라고 해도 될 듯하다. 어떤 때는 친구가 되고, 어떤 때는 원수가 되고, 어떤 때는 엄마와 딸이 되고, 어떤 때는 힘 드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엄마와 딸의 관계가 딸의 눈을 통해서 온전히 전달된다. 딸의 눈에 비친 엄마의 얘기다. 생활공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환경의 변화는 많지 않다. 하지만 다양한 일상들이 전개되고 그것이 심리적인 이완작용을 하기에 심리의 변화가 많이 그려진다. 세세히 그려지는 엄마와 딸의 마음들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엄마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가 되기에 화자가 어릴 적부터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화자가 지극히 어릴 때 엄마는 이혼을 한다. 그리고 엄마의 엄마에게 딸과 아들을 맡기고 자신은 일을 한다. 딸인 화자가 고등학생일 때 엄마는 다시 시집을 간다. 그리고 시골로 새 아빠와 함께 들어간다. 엄마의 생활은 그렇게 이루어지고, 화자와 남동생은 외할머니와 함께 서울서 생활한다. 공부도 하고 성장을 한다. 그리고 화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 남동생은 장가를 가서 서울에서 살고 있다. 엄마와 아빠는 시골에서 힘 드는 농사일을 계속하고 있고, 가끔씩 서울에 다니러 온다. 이런 환경에서 많은 삶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 이야기들을 모아 이렇게 우리들에게 엄마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오랜만에 외할머니 집에 올라온 엄마가 하는 일이 나에게 영 마땅찮다. 할머니가 엄마가 입고 있는 티셔츠가 좋다니까 바로 벗어 준다. 엄마도 그것을 마음을 쓰면서 샀을 것인데 말이다. 할머니 집에 와서도 청소란 청소는 혼자 다 한다. 내가 뭐라고 땍땍거리면 이제 할머니가 얼마나 더 살 것인데 하는 말을 한다. 그리고 부엌에 들어가 식사를 미련하고 식구들이 밥을 먹게 한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해도 듣지 않는다. 그러면서 옛날에 내가 너처럼 그랬고, 할머니가 나처럼 그렇게 살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시대가 바뀌었는데 엄마가 그렇게 살 이유가 없다고 내가 말한다. 엄마도 좀 엄마를 위해서 살라고. 내가 설거지를 하려고 부엌에 들어간다. 엄마는 지기가 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나는 자라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인데 하니 엄마는 내 배에서 어찌 저런 아이가 나왔을까? 농으로 받아 버린다. 내가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엄마는 소녀 때 펜팔을 하면서 외국인과 결혼하는 꿈을 꾸었다. 꾹꾹 눌러쓴 정겨운 언어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닐 때 자신도 꿈의 동산에서 살았다. 그러다 꽃다운 나이 보통의 한국 사람과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로부터 9년 덩그러니 홀로 남게 되었다.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가 되려고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를 가지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가족의 행복이 꿈이 되었다고 한다.
씩씩하고 화통하며 솔직한 엄마가 젊을 때는 울보였다고 엄마의 친구는 얘기한다. 그 때문에 자신이 마음이 많이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누가 엄마의 성격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면 믿지 않는다. 억척같이 살아오면서 성격이 거칠게 된 모양이다. 사실 엄마는 겉으로는 세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 무척 감성적이다. 한 번은 내가 시골에서 원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처량하게 울었다. 그것을 보던 엄마는 마침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먹이를 갖다 주고, 다음 날은 친구까지 데리고 온 고양이를 챙겼다. 그리고 그들의 집까지 지어준다. 이렇게 동물까지 감동하게 만드는 성격의 엄마가 외형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이혼을 한 후, 믿었던 친구가 배신을 하고부터다. 키워야 할 남매가 있었고, 그들을 돌보는 노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맥주를 한 잔이라도 더 팔아야 했고, 여자가 주인이라고 떼어 먹는 자들과 몸싸움까지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 거칠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고양이까지 마음을 주는 섬세한 여인이 그렇게 거칠어지기까지는 우리 남매가 큰 부담으로 작용했으리라. 엄마의 손은 참 거칠었다. 사포 같은 엄마의 손, 핸드크림을 바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 밭일에 집안일에 잠시도 손을 안 쓰고 살 수 없는 사람이다. 미용실에서 엄마의 손을 본 실장이 손이 너무 거칠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씩씩하던 엄마가 당황한 모습을 보인 건 그때 처음이었다. 미용실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엄마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나에게는 그 손이 약손이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손이었다.
엄마의 성정 때문에 일어난 베푸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은 사용하지 못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필요하면 다 줘 버린다. 그리고 더 줄 것이 없는가를 살핀다. 그것을 할머니와 연계해 얘기를 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고 했다.> 두 분의 좌우명처럼 사용되는 말이다. 미워 죽겠는데, 그 입속에 들어가는 것까지 빼앗고 싶은데, 엄마는 더 챙기라고 한다. 그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그런 심성을 외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모양이다. 엄마도 어릴 때 할머니의 그런 모습이 너무 싫었다고 한다. 그럴 때 할머니의 갑질하던 상사에게 베푼 일을 얘기해 준다. 그 상사가 잘려서 나갈 때 자신 같은 사람에게 그리 잘 해준 할머니를 붙잡고 울더라는 얘기. 베풀면 그만큼 돌아온다. 돌아오지 않아도 마음이 풍족해 진다. 이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넉넉한 세상이 될 게다.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 엄마의 이름을 불러 본다.
세상에 수많은 상처가 존재한다. 엄마라고 예외는 아니다. 엄마의 상처는 나로 인한 것이 많다. 엄마는 상처에 무척 약하다. 그것은 눈물로 나타난다. 나는 그런 엄마의 눈물이 너무 싫었다. 엄마의 상처 레퍼토리는 아이 둘을 떼어 놓았던 이야기다. 그 이야기만 하면 운다. 내가 그만 좀 울라고 소리하면 하는 말이 ‘저 냉정한 년’이다. 그런 내가 어느 날 마음의 아픔을 어쩔 수가 없어 한밤에 엄마에게 전화해 울음부터 내어 놓았던 일이 있다. 그러나 상처는 얘기할 수 없었다. 그 후 엄마는 밤새 딸이 무엇 때문에 그리 울었는지 안쓰러워 잠도 못 잤다고 했다. “어디 털어 놓을 때도 없는 아픔이기에 엄마에게까지 전화를 해.” 엄마의 마음을 가득히 느낀다. 엄마가 서울에 오면 꼭 미용실에 들른다. 긴 머리를 좀 잘랐으면 좋겠는데, 아빠가 좋아한다고 자르지 않는다. 나는 답답하게 여기면서 엄마에게 머리 한 번 바꿔보자고 넌지시 운을 땐다. 엄마가 마음이 조금 생긴다. “아빠가 싫어해서? 아니 바꿔도 괜찮을 거야. 아빠가 머리칼이 아니라 엄마를 좋아해.” 엄마를 유혹했다. 그래서 결단을 내리고 머리칼을 잘랐다. 그리고 집에 내려갔다. 뒷일이 궁금해 엄마에게 전화했다. “아빠 어떻게 말해? 예쁘다고 하지? 몰라 아빠는 그냥 긴 머리가 좋데. 내가 안 자른다고 하니까.”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젊어졌다 예쁘다 해도 소용이 없다. 나는 깨닫는다, 엄마에겐 모든 게 아빠의 기준이 가장 중요하구나 하는 점을.
엄마에게 딸은 어떤 존재일까? 아마 가장 만만한 존재가 아닐까 아니 자신의 대리인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몰라. 한 번은 방송 준비, 원고 준비를 하느라 너무 바쁜데, 전화가 왔다. 받으니 엄마였다. 할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기에, 보청기 빼놓고 자는가 보다. 라고 대답한다. 엄마는 나보고 한 번 가보면 어떠냐고 한다. 더 가까이 살고 있는 아들에게는 말도 못하면서. 내가 그리 편한 모양이다. 열이 올라 한 번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쳤다. 엄마가 전화를 끊고 난 후 내 마음이 영 그렇다. 엄마에게 나는 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엄마께 잘못 했다고 한다. 엄마는 마음이 놓이는지 또 막말을 한다. 둘이 똑 같다. 엄마는 내가 설거지를 하려고 해도 못하게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안 시킨다. ‘엄마가 할께’ 이 다섯 글자면 모든 것이 끝이다. 그러면서도 딸에겐 그리 야박하게 말을 한다. 아마도 만만한 모양이다. 오직 자기편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떤 부탁을 해도 다 들어줄 것 같은 자기편, 나도 그만큼 엄마가 편하다. 이런 엄마가 앞으로의 삶에서는 눈부시게 활짝 피어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병원에 있다고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한 2개월 연락을 못했던 나의 입장에서 엄마가 다시 수술을 했다는 말은 아픔이었다. 지난 해 수술을 했는데, 농촌에 살다보니 허리를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고 다시 도진 모양이다. 수술을 하고 나왔다고 전화를 받았다. 김장이 문제였던 모양이라고 했다. 그렇게 김장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코 김장을 하고 또 탈이 난 모양이었다. 이제 무엇을 좀 하지 말라고 해도 그게 그렇게 안 된다. 시골에 있으면 움직이지 않을 수가 모양이다. 엄마의 그 수술이 나 때문이라도 되는 양 마음이 쓰리다. 엄마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해 주길 좋아한다. 내가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자긍심 때문인 듯하다. 남자가 같이 있을 때는 지극히 위해 준다. 그러다 남자가 없을 때가 되면 나는 엄마에겐 ‘남자에 미친 년’이 된다. 내 감정도 그 소리를 들으면 격해 진다. 엄마와 딸은 그렇게 죽일 듯 부딪힌다. 서로를 상대에게 전하기 위해 버둥거린다. 아마 그것이 속상함과 사랑의 다른 형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나는 엄마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한다. 나 위주로 생각하고, 나 위주로 살았다는 깨달음을 가진다.
엄마들이 딸보다 아들을 더 챙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 같다. 자신도 딸이면서 가계를 잇는다는 의미를 남자에게서 찾고자 하는 의식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그런 것이 딸인 나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된다. 나도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데, 아들에게로 향하는 엄마의 마음을 더 빼앗고 싶은데, 그것이 안 되니 엄마를 만날 때마다 마음 문을 하나씩 닫는다. 그래도 딸인데, 엄마를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는데, 지난 세월의 그 여정이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이다. 엄마에게 2달 정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하려고 해도 번호가 눌러지지 않는다. 엄마도 딸의 차가움을 느끼는 모양이다. 서로 어색하다. 풀어야 하는데 마음만 있다. 내가 결혼 준비 과정에서 파혼한 것을 알리지도 못하고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엄마가 그것을 왜 몰랐겠느냐만 나는 엄마에게 속사정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연결되어 있는 출판사 대표에게서 엄마에게 좀 잘하라는 얘길 들었다. 엄마가 전화를 해 당부를 했다는 것이다. 내가 혼자 속을 난도질하고 있는 것이 눈에 선히 보이는데 다가갈 수는 없고, 그 안타까움이 그렇게 나타난 모양이다. 내가 먼저 말해올 때까지. 나는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쓰린 마음을 토해 내면서 울었다. 엄마도 같이 울었다. 모녀가 울면서 서로를 다독였다. 내가 아파할 때 뒤에서 비수로 베이는 듯한 아픔을 느끼고 있는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감지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엄마는 음식을 만들기를 좋아하고 대접하기를 즐긴다. 이게 아빠에게는 그리 좋을 수가 없다. 아예 외식은 생각도 하지 않을 정도다. 엄마가 하는 음식이 더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가 밥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할 때가 있다. 과일 철이 되어 과일들을 따면서 너무 바쁠 때다. 한 번은 너무 바빠 아빠에게 무엇 좀 시켜먹자고 하다가 핀잔을 들었던 모양이다. 라면을 먹더라도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낫다는 게 아빠의 지론이다. 그것을 엄마가 나에게 하소연한다. 밥하기가 죽기보다 싫다고. 그래서 내가 치킨 두 마리를 배달해 보냈다. 그 뒤 엄마가 전화가 와서 아빠와 잘 나눠 먹고 있다고 하면서 마음이 금방 풀어져 있다. 비몽사몽간에 전화가 와 받으니 엄마가 울먹인다. 왜냐고 물으니 복숭아 값이 똥값이란다. 그렇게 농사를 고생해 지었으면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이렇게 되면 낙심이 된다. 그 낙심이 딸 앞에 울음으로 나온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서울 한 번 오라고 하는 수밖에. “맛있는 것 사줄 테니까 서울 와.” 나는 내 말에 엄마가 ‘고마워 내 딸’ 라고 한다.
올케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는 무언가 체념한 듯한 처연함이 깃들여 있다. “언니 엄마이기 때문에 모든 일을 내가 감당해야 해.” 여자가 가정을 이루어 가지는 아픔이 녹아 있는 말이다. 잉태, 출산, 육아 그러면서 자존감이 자꾸 떨어져 가고, 그런데 남편은 더 생생해 지는 것 같고, 아이 유치원에 대려다 주는 일을 남편에게 좀 시켰는데, 일어나지도 않고 열이 뻗친 게다. 나는 묵묵히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엄마의 생애를 생각해 보았다. 모든 삶이 자기보다는 가족이 우선인 삶이. 모든 사람에게는 특별한 순간이 있다. 엄마에게 특별한 순간은 그리움을 달래는 날이다. 무엇이 그리운 날이면 엄마는 음식을 잘 만든다. 자식에게서 힘 빠지는 전화 한 통화라도 받을 것 같으면 음식을 만든다. 그리고 음식을 만들었는데 맛있다는 전화를 한다. 전화기에 그 음식을 우적거리면서 전화를 한다.
엄마와 딸의 생활이 알알이 녹아 있다. 잔잔한 마음들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다. 그런 삶들이 언어가 되고 있다. 엄마의 모든 모습들이 딸에게 들어가 언어가 되고 있다. 화자가 딸이니까 아무래도 자신의 눈에 비친 엄마의 얘기가 될 게다. 딸의 마음에 비치는 엄마의 언행, 생활, 마음 들이 이 글의 이야깃거리다. 일상적인 삶이다. 격하지도 무미건조하지도 않는 달착지근한 이야기다. 읽으면서 동시대의 사람들이 겪는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마음에 잘 다가온 이야기들이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야기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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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지만 어머니가 동생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어머니에게 어떤 위로가 필요할까. 나는 어머니가 되어본적도 여성이 되어본적도 없어서 에세이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어머니를 사랑했으면 하는 나의 마음이 전달되길 바라면서 책을 선물해 드렸다. 어머니도 어머니를 사랑하기로 결심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어머니들이 당신도 사랑할 수 있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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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이기 이전에 나 자신이었던 당신에게“
내가 엄마인 나를 위해 읽고 싶어 첫 장을 펼쳤는데, 읽는 내내 내 엄마가 생각났다. 이 책은 지난 여름 여름밤띵책으로 추천했던 책인데, 두 번 세 번 곱씹어서 읽고 또 읽었더니 그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신기하게도 매번 다른 기분인데...결론은 하나라는 것. 엄마 보고 싶다.
곱디 고와서 여전히 미소가 소녀 같은 그녀. 주위를 환히 밝혀주는 것 같은 천성이 밝음인 그녀. 남들처럼 공부를 하고 사회활동을 했더라면 그 누구보다도 훨훨 날았을 그녀. “나”라는 말을 원래 몰랐던 것처럼 그녀 자신은 항상 뒷전인 그녀.
첫 아이를 품에 안고 정말 많이 울었다. 아픔 끝에 품에 안은 아이의 얼굴을 첫 대면하고 꺼억 꺼억 터져나오는 울음소리를 삼키며 한없이 울었다. 내 엄마가 생각나서...엄마도 나를 품에 안고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엄마에게 아픈 손가락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엄마에게 모진 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의도한 바와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한 없이 야속하고 힘든 과정에서 단 한번도 나를 토닥여 주지 않은 엄마가 새엄마 인줄 알았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나는 엄마의 얼굴이 좋다 지난 세월. 어떤 날은 가슴을 먹먹하게, 어떤 날은 뼛속까지 시리게 했던 지난한 눈치 싸움이 어쩌면 지금은 가족을 조금 더 사랑하기 위해, 보듬기 위해, 아껴주기 위해 쓰이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엄마는 두 번 결혼한 여자다. 그리고 나는 두 번 결혼한 그 여자의 특별한 딸이다. -P.23 본문 중
이 문구가 가슴을 울린다. 스치듯 페이지를 넘겨도 항상 이 페이지에서 손이 멈춘다. 나 역시 두 번 결혼한 그녀의 사고뭉치 특별한 딸이다. 끊임없이 일을 벌이고 다녀 노심초사 하게 하는 사고뭉치 특별한 딸. 준비되지 않은 예기치 않은 이별 후... 그녀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 행여나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들을까 딸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 유난히 표정이 어두웠던 그 여름. 밝아진 목소리 만큼 표정도 밝아져 눈치 제로인 나도 한번에 알아챌 만큼 변화가 있었다. 엄마가 아닌 여자로 남은 시간 행복했으면 하는 소망을 빌어본다. #엄마도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엄마이기에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고 양보하는 것이 아닌, 때론 자신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먹을 줄도 알고 자신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취할 줄도 아는. 엄마가 빛나야 엄마의 가족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는 것을. 과거 자신의 엄마가 그렇게 살았기에, 또는 모든 엄마가 그렇기에, 세대가 바뀌어 그렇지 그 시절 엄마들은 다 그랬었기에 나도 그런 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지 않길. 엄마도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P. 37 본문 중
김장만 한 달 가까이 온갖 종류의 김치를 담아 전국 팔도로 보내주고, 지인 단 한명에도 그냥 대충 대하지 않는다. 엄마=희생이라는 공식이 뼈 속까지 물든 사람 같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육아라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를 몰라 육아 관련 책을 참 많이 봤다. 그런 나를 보고 애도 책보고 키운다고 지나가 듯 말씀하신 하신 적이 있었다. 머리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지 말고 가슴으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거라고. 그때는 그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10년을 키워 보니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옷장 옆에 켜켜이 쌓여있는 육아 관련 책 중 엄마의 행복 지수가 아이의 행복 지수에 반영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내 아이도 행복하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엄마가 희생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엄마도 때론 ‘역할’을 가질 권리가 있다.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고 엄마가 엄마로서 자식들에게 해주는 것도 고맙고 행복하고. 그런데 꼭 지금처럼 이렇게 하지 않아도 엄마는 내게 그저 엄마다. 무언가를 해주기 때문에 엄마가 아닌. 그리 해줘야만 꼭 엄마가 아닌. -P.117 본문 중 엄마라는 이유로 딸인 나에게 밥은 먹었는지, 서방이랑 다툼이 있지는 않은지, 손자 손녀 아프지는 않은지... 이렇게 까지 걱정 안 해줘도. 뉘 집처럼 유산 상속 같은 거 안 해줘도, 난 그냥 엄마가 있어서 좋다. 아주 오랜 시간 엄마 있는 여자이고 싶다. 그냥 엄마라는 자리에서 여자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한 엄마가 제일 예쁘니까.
가끔 아이들이 말을 잘 안 듣고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면, 내가 써먹는 카드. 외할머니 찬스! 너네 엄마말 안들으면 울 엄마한테 이른다! 나도 엄마 있거든. 외할머니 목소리 엄청 큰거 알지. 엄마가 이르면 너네 외할머니가 복수해줄걸. 외할머니 딸 힘들게 했다고~ 메롱~ #그 엄마의 속사정 엄마를 실망시켰을 거라는 착각. 엄마에게 지지리도 못난 딸일거라는 착각. 엄마가 날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착각. 딸은 모른다. 엄마의 사랑을, 엄마의 마음을. -P. 165 본문 중 이 순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뭐든지 느리던 나는 엄마 애를 태우는 선수였다. 뭐든 빠릇 빠릇한 엄마와는 정반대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 참 많은 부분이 부딪혔다. 그래서 이런 생각 참 많이 했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요즘 내 딸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온라인 학습으로 부족한 학습량을 도와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이런 마음을 갖게 할 줄이야. 나 역시도 엄마라는 입장이 되니...딸과 엄마라는 역할 사이에 슬픔이 밀려왔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엄마도 역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딸이 보고 싶을 때가 있겠지. 엄마도 역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딸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가 있겠지.
지나온 시간 참 모진 딸 이었구나 반성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 엄마를 더 많이 사랑하고 꼬옥 안아주고 싶다. 내 아이를 안아주듯 엄마도 꼬옥 따뜻하게 다독여 주고 싶다. 울 엄마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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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따뜻한 위로 세상 모든 딸과 엄마를 안아줄 37편의 이야기 엄마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은 12년차 방송작가가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는 가장 보통의 엄마와 딸을 담았다.
제목부터 끌려서 구입해 읽은 책. (그저 좋은 내용이라면 사고보는 팔랑귀)
딸의 입장이고 엄마가 있기에 너무나 공감이 되어서 그런지 푹 빠져서 읽어버린 책이였다.
이 책은 마치 내가 일기를 써놓은것 같았다.
요즘 부쩍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익숙하지 않다. 내 기억속에 엄마는 항상 젊고, 사람 좋아하고 늘 호탕한 엄마였는데.. 내 기억속의 엄마 나이 삼십대를 어느덧 내가 지나고 있었다. 그 사이 엄마는 어느새 할머니가 되었고 주름도 제법 많아 지셨다. 기력도 예전같지 않으셔서 부쩍 '귀찮다,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사신다.
처음에야 신경이 쓰이고 관심있게 보고했었는데..나만 보면 아프다고 하시는것같아서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대충 듣다가 어느 순간엔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있었다. 그러다 문득 보면 부쩍 늙으신것같아 안쓰러워 마음이 짠하기도했다.
주말에 친정에라도 가면 늘 엄마는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 설거지도 청소도 그냥 다 엄마가 할테니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한다. 그러고선 틈틈히 깍두기며, 내가 좋아하는 각종 반찬을 꺼내 바리바리 만들어 싸주신다. 가늘고 예뻤던 엄마 손가락은 어느새 관절염에 퉁퉁 부워 제대로 구부러지지도 않으면서 엄마 손은 늘 항상 쉴틈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
엄마의 인생에서 나보다 엄마가 먼저 였을때가 얼마나 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엄마가 생각이나서 마음이 너무 아팠고 엄마가 너무 보고싶었다. 책을 보고 엄마에게 선물해주고싶었지만.. 노안때문에 눈이 침침해 돋보기 쓰고 봐야하는데 그것도 귀찮다는 울엄마..
어쩜 좋을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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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보고 엄마께 선물해야겠단 생각이 들던 책이다. 표지도 꼭 카네이션 같지 않은가. 색깔뿐이지만. 엄마뿐 아니라 딸도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작가의 일상과 엄마의 이야기이지만 공감가는 내용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담담하게 읽기 시작하다가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엄마들이 딸을 생각하는 마음은 다 똑같으신가 보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은 부끄러워서 잘 못하겠고, 엄마도 엄마를 소중히 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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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이건 내가 나의 엄마에게 우리 엄마가 외팔머니에게
세대를 거슬러 늘 딸이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무심한 딸이여서, 바쁜 딸이여서,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감정들을 흘려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구매하게 된 책.
두딸 다 키워놓고 이제야 찾아온 엄마의 인생인데, 어떻게 살아야 즐겁고 재미난지를 모르는 엄마를 보면서 나도 참 무심했구나 하는 마음에 울컥.
엄마의 인생에 나보다 엄마가 먼저였을 때가 있을까. 나 또한 언젠가 엄마의 삶을 살아가겠지만 우링 엄마처럼 본인의 인생을 내려놓고 자식에게만 사랑을 쏟아줄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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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니 점점 엄마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지고,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들이 늘어간다. 여자로서의 삶은 버리고 오롯이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이시대의 모든 엄마들이 매순간순간 행복한 날들을 보낼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나의 엄마가 조금 더 오래,조금 더 건강하게 내곁에서 내사랑을 느낄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나의 엄마가 나에게 준 무한한 사랑을 나의 아이에게 줄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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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 은근히 뻔하면서도 감동적인 책이네요. 다 읽고나서 엄마께 선물하려고 구매했습니다. 아직 끝까지 완벽히 읽지 않아 정확한 리뷰는 작성할 수 없지만 .. 다들 믿고 구매하셔도 후회하지 않을 듯 크게 호불호 갈리지 않는 내용임 내용도 술술 금세 읽히는 듯 하네요 글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습니다 어버이날 선물용 등으로 적합해 보입니다. 엄마도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 진심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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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사드렸는데 너무 좋아하셨어요! 이런걸 준비 했냐고 좋아하시더라구요 책 속지?에 짦막한 말 써서 드리면 더 좋아하실 거예요 아님 편지를 같이 드리거나..! 추천드립니다. 제목 자체도 한 문장으로 되어 있어서 엄마한테 말하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 효도하기 완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민하고 계시다면 당장 사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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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는 이런 책을 참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감수성이 메마르는 것인지, 남의 이야기에 도통 관심이 없어지는 것인지, 뭔지 모를 나만의 개똥철학이나 고집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인지, 무튼 그냥 지나치는 섹션이 되었더랬다. 그러다 문득 이 책을 샀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좋았다. 엄마라고 하면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고마운 존재, 많이 보답하지 못했는데 이미 늙어버린 애틋한 존재, 대략 그런 이야기를 예상했는데, 예상이 살짝은 빗나가서 좋았다. 우리 엄마랑 비슷한 성격 같이 느껴져서 좋았다. 직설적이고, 불평도 많고, 그렇지만 사람들을 챙기고 정이 있는 사람. 이 책에 대한 감상을 한 마디로 딱 요약하기는 어렵고, 읽는 내내 엄마 생각이 나서, 옛날 생각이 나서 좋았다. 엄마한테 잘 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