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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진화학자다. 그 분야를 넘어서도 많은 사람들도 알아보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 분야의 사람들은 그 이름을 알고 있으며, 그가 그 분야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도 대체로 알고 있기에, 그에게 저명한 진화학자란 타이틀을 붙여도 되리라 본다. 그는 저명한 진화학자다. 어떤 분야에서 이 정도의 위치에 이르면 자신의 분야를 포함해서, 혹은 넘어서서 좀 넓게 보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진화학자로서 ‘집단 선택’의 투사다. ‘투사’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진화학에서 ‘집단 선택’의 위치 때문이다. 진화학에서 집단 선택은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오던 개념이다. 선택의 단위에 관한 문제에서 대부분의 진화학자들은 개체를 지목해 왔으며, 집단을 선택의 단위로 삼은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종교로 치자면 거의 이단 취급을 받았다(진화학에서 이런 이견의 존재를 이 학문의 불완전성을 의미하는 양 선전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게 이 학문의 건전성이고, 과학으로서 의미가 있음을 나타낸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이론을 견지해 왔으며, 최근에는 어쩌면 가장 유명한 진화학자랄 수도 있는 에드워드 윌슨이 집단 선택을 옹호하는 발언과 책을 내서 파문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진화학의 이론에 대한 책이 아니다. 물론 그의 집단 선택은 책의 중간 중간에 드러나긴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여전히 이 책은 진화학에 관한 책이다. 진화학이 다른 학문과 어떻게 관련을 맺으며,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논의한 책이다. 당연히 진화학이 중심이다.
계기는 ‘빙엄턴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다. 빙엄턴은 뉴욕 주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데이비드 슬론 윌슨이 재직하고 있는 뉴욕주립대의 한 캠퍼스가 위치해 있다. 자연과 생물에 대한 관심으로 진화학을 연구하면서 수십 년간 그 도시에 살고 있던 저자는 자신의 도시를 관찰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냥 관찰이 아니라 도시와 사회를 분석하고 향상시키는 데 진화학이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내지는 확신으로 도시에 대한 진화학에 기초한 과학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게(여전히 진행 중에 있는 프로젝트이므로) 바로 빙엄턴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다. 말하자면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정량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게 계기이긴 하지만, 그것만 다루고 있지 않다. 이 프로젝트의 정신과 관련해서 진화학이 그저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자족적인 학문이 아니라 실제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이며 실용적인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고,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진행시킨다. 인문주의자, 예방 과학, 교육, 경제학 등이 그런 분야들이다. 그가 단순한 진화학자가 아니라 정력적인 조직가라는 게 드러난다. 그리고 진화학이 분명히 사회적으로도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실용적인 학문 분야라는 것을 서서히 증명해 나간다. 바로 ‘변이와 선택’이라고 하는 진화의 원리가 다른 분야에도 분명하게 적용되고, 그것을 이용했을 때 사회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 있는 것 중 하나는, 그런 탐구와 조직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들의 가계도를 최대한 소상히 조사하고 밝힌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가 진화학자이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그들의 조상과 부모, 그리고 자신의 이력을 통해서 현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어떻게 삶을 바꿔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 여기고 있는 듯도 하다. 진화학은 인간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빙엄턴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도 진행중이다. 그 결과들을 분명하게 제시하지도 않고 있다. 다른 프로젝트들도 몇 번의 워크샵을 진행한 정도다. 그러니까 모두 진행중이며, 모색 중인 단계인 셈이다. 결과는 아직 명시적이지 않으며 가능성만 확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두꺼운 책을 쓸 수 있다는 게 어떠면 용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능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다음 책, 즉 이 프로젝트들의 결과들이 기다려지는데 아마도 그 책들은 각각의 프로젝트에 대한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마치 제안서이고, 서문 같은 셈이다. 아쉬운 점이기도 하고, 기대되는 점이기도 하다.
진화학은 과학이다. 과학이므로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