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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순간이 아니라 여정이다 (p.260 에필로그에서)
1, 우리는 가짜 뉴스조차 판독하지 못하고 우르르 몰려가기 일쑤입니다. 2017년 9월에 벌어졌던 '240번 버스 사건'이 기억납니다. 한 어린아이가 실수로 버스에서 혼자 내렸는데 버스가 바로 출발해 버렸고 버스에 남은 엄마는 뒷문을 열어 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버스 기사는 욕설을 하고 무시하다 결국 다음 정류장에서야 내려주었다는 사건입니다.
이 내용이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왔는데, 이것이 기사화 되면서 국민의 공분을 샀습니다. 버스 회사뿐만 아니라 해당 버스 기사에게도 마녀사냥식 공격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아이는 일곱 살이었고 본인 스스로 하차했으며 8차선 도로였기에 중간에 세울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음 정류장에 내려준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물론 욕설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만시지탄이지요. 그 버스 기사분은 정신적 충격으로 결국 휴직하고 정신과에 입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사건에 대해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일례이지만, 이 사건만 봐도 인간에게는 함부로 누군가를 밀과 가라지로 가를 자격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구원에 대해, 선과 악에 대해 쉽게 왈가왈부하며 갈라 죽이지 마십시오. 내가 겁나게 나쁜 놈이라고 찍은 그 사람도 결국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결코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쉽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사람이란 그렇게 쉽게 판단될 수 있는 존재도 아닙니다.
- pp.104~105
2.
사람에게 의존하던 때가 있었다. 사람을 통해 위안을 찾고, 사람에게서 즐거움을 찾으려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만을 의지하다 보니, 결국 그것은 나의 약점이 되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체험하고 난 뒤에야, 나는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우리 시대의 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정치가와 사업가는 물론이고 신부님, 수녀님, 심지어 목사님에게도 어떤 기대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안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을 절실하게 부르고 있었다. 하나님은 내게 부르짖으셨다. 내게서 위안을 찾으라고. 너의 예수님에게 기대라고.
자끄 엘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유로운 사람들의 첫번째 의미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물론 '순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 없는 엄청난 신앙의 미덕이자, 성령이 거하는 자들이 궁극적으로 맺는 열매입니다. 그러나 거절 없는 순종, 고뇌 없는 순종은 기계나 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경계성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주체성 없는 신앙적 행위는 궁극적으로 소멸하게 됩니다. 즉 "아니오"를 안 해본 순종은 언젠가는 배반할 순종일 뿐입니다.
- p.32
순종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어떤 교회에서는 이 순종을 목회자에 대한, 교회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을 의미하는 것처럼 설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맹목적인 순종이 이단을 양산한다. 사람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함을,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문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자의적"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 내부에서 생기는 "건전한 갈등"은 필요하다.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한, 갈등은 필요하고 교회를 발전시킨다. 문제는, 순종이란 이름하에,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하에, 개인의 욕심과 이익을 취하는 경우에 생긴다. 그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뜻일까.
3.
확신하건대, 앞으로도 우리는 많이 흔들릴 것입니다. 열라 많이 흔들리십시오! 주님은 눈 하나 깜작 안 하실 겁니다. 우리가 모멸감을 드린다고 흔들릴 만큼 가벼운 사랑과 자녀 삼음이 아니니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의심해도 주님은 결코 우리를 의심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만 아는 멍충이로 사는 것이 진정한 실속이자 지혜임을 알고 앞으로 나아가 봅시다! - p.58
나도 많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눈 하나 깜짝 안 하시고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있기에 나는 평화로울 수 있다. 교회를 간다고 해서, 그 흔들림이 튼튼해지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나의 마음이 그 흔들림을 튼튼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곳은 교회입니다"라는 말은 "교회이니 빨리 가면 쓰세요!"라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이니 이제 그만 가면은 벗으셔도 됩니다!"라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 pp. 113~114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억지로 웃을 필요도, 일부러 울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겠다. 하나님께 아무것도 드리지 않아도 하나님은 나를 채워주신다는 말씀.
"무엇을 드릴까 하고 무척 애쓰지만 우선 당신 자신부터 바치라. 당신 자신 외에 그분이 무엇을 더 요구하시겠는가?"
- p.159
십일조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간단하고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십일조를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 마음이 더 중요한 거다.
우리는 무의미하지도 않고 무목적성으로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보다 자신을 모른다는 게 문제이지요. 그래서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을 믿고 부르심에 응답하며 따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아가 그 하나님을 온 세상의 주인으로 진정 믿는다면, 이 '부르심'은 우리를 자유함으로 이끌 것입니다.
- p.249
4. 사람은 사람을 판단할 수가 없다. 어설프게 사람을 판단하다간 누군가에게 심각한 상처를 안기는 결과를 초래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나의 주관적 기준일 뿐,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될 수 없다. 그저, 나의 바람을 얘기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에 대해 이렇다 저렇게 말할 수는 없다. 내가 누군가에 의해 평가받고 비판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쉽게 누군가를 비난하지는 못할 것이다. 믿음이란 여정 앞에서 나는 수없이 흔들리고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그런 나를 하나님은 끝까지 붙드신다. 하나님은 나를 잘 아신다. 겉으로는 표현 안 해도, 나 역시 약한 사람인지라, 속으로는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이 잦다는 것을. 누군가를 비난하지 않을 만큼 나는 강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예수님께 기대어 본다. 나를 계속해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다. 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 기댐이 없다면, 나는 벌써 우울증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목사님도, 전도사님도, 권사님도, 장로님도, 신부님도,수녀님도, 부모님도, 친구도, 누나도, 형도, 동생도 아닌,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이다. 나의 모든 걸 알고 계시는 예수님에 있기에 나는 오늘도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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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 믿다 하다. 손성찬 페친인 손성찬 목사님께서 쓰신 책이다. 페북으로 열심히 홍보하시기도 하시고 책의 이름에 끌리기도 하고 그래서 덜컥 구입했는데, 어쩌다보니 좀 늦게 읽게 된듯. 다양한 부분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감히 입 밖으로 이야기하지 못하던 문제들을 젊은 목사의 시각으로 과감히 이야기한다. 분야도 상당히 넓다. 구원, 고통같이 많이 이야기되는 분야는 물론이고, 십일조나 술, 담배등 정말 개인적이지만 현실적인 갈등 부분도, 그리고 기복신앙, 혼전순결, 목사나 기독교인의 자세, 진로 등 좀 진지한 고민까지.. 기독교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한두번쯤 고민해봤을 문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모여있다. 하지만 저런 무거울 수 있는 질문들에 대해 무겁지 않게 이야기한다. 자신의 경험이나 다른 책들, 성경 말씀을 통해 나름의 근거를 통해 설명한다. 재미있게 가볍게 그리고 쉽게 설명하는 글이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애매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저런 관점을 골고루 살펴보는 정도에서 그치고, 작가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이야기하는데 주저하는 느낌이 든다. 결국 미지근한 느낌? 결국 2%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화두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좀 가볍게 느껴지다보니, 가나안성도나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아.. 그리고, 잘 통제된 교회 울타리에서 벗어나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것 같다.
#독서 #독서감상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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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길을 멈추고, 그냥 무심코 지나갔던 것들, 애써 덮어 두었던 것들을 꺼내 보게하는 책이다. 그래서 좀 더 자신있게 믿음의 돌다리를 건너게한다.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신앙의 틀을 아무 생각없이 고수해 오면서, 그 틀로 나는 물론 타인도 상황도 쉽게 판단하고, 나아가 정죄까지 서슴치 않는 많은 크리스천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믿음의 길을 제대로 걷고 싶은 크리스천, 왠지 모를 답답함에 기운빠져 가는 크리스천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안경을 고쳐 쓰고 세상을, 교회를, 타인을 그리고 나 자신을 새롭게 보게 될것이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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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길을 멈추고, 그냥 무심코 지나갔던 것들, 애써 덮어 두었던 것들을 꺼내 보게하는 책이다. 그래서 좀 더 자신있게 믿음의 돌다리를 건너게한다.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신앙의 틀을 아무 생각없이 고수해 오면서, 그 틀로 나는 물론 타인도 상황도 쉽게 판단하고, 나아가 정죄까지 서슴치 않는 많은 크리스천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믿음의 길을 제대로 걷고 싶은 크리스천, 왠지 모를 답답함에 기운빠져 가는 크리스천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안경을 고쳐 쓰고 세상을, 교회를, 타인을 그리고 나 자신을 새롭게 보게 될것이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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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길을 멈추고, 그냥 무심코 지나갔던 것들, 애써 덮어 두었던 것들을 꺼내 보게하는 책이다. 그래서 좀 더 자신있게 믿음의 돌다리를 건너게한다.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신앙의 틀을 아무 생각없이 고수해 오면서, 그 틀로 나는 물론 타인도 상황도 쉽게 판단하고, 나아가 정죄까지 서슴치 않는 많은 크리스천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믿음의 길을 제대로 걷고 싶은 크리스천, 왠지 모를 답답함에 기운빠져 가는 크리스천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안경을 고쳐 쓰고 세상을, 교회를, 타인을 그리고 나 자신을 새롭게 보게 될것이라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