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8)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2%
  • 리뷰 총점8 38%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8.0
  • 50대 10.0
리뷰 총점 eBook 구매
잡초
"잡초" 내용보기
김동인 잡초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도회에서는 상투가 차차 없어졌다. 서당 대신으로 학교가 섰다.개혁과 문명의 불길이 사면에서 일어났다.딱 이부분만봐도 일제강점기때의 상황이 눈에 보이는것같습니다.참 안타깝지요 정말 그때의 시기가
"잡초" 내용보기
김동인 잡초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도회에서는 상투가 차차 없어졌다. 서당 대신으로 학교가 섰다.
개혁과 문명의 불길이 사면에서 일어났다.
딱 이부분만봐도 일제강점기때의 상황이 눈에 보이는것같습니다.
참 안타깝지요 정말 그때의 시기가
t*********3 2024.08.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eBook 구매
잡초
"잡초" 내용보기
三百年 前에 李氏의 한 祖上이 가파로운 舞龍재를 넘어서?그리고 二百年 前에 吳氏의 한 祖上이 가파로운 馬嶺을 넘어서 들어온 以來, 몇 世紀를 갈구고 갈고 하여 沃土를 만든 이 ○○골을 내버리고 그들은 失望과 함께 李氏는 馬嶺을, 吳氏는 舞龍재를 넘어서 다시 漂浪의 길을 떠났다.○○골에 새로 들어온 小作人들이 農事를 지으려고, 그새 茂盛하였던 雜草의 뿌리들을 모두 들추어
"잡초" 내용보기

三百年 前에 李氏의 한 祖上이 가파로운 舞龍재를 넘어서?그리고 二百年 前에 吳氏의 한 祖上이 가파로운 馬嶺을 넘어서 들어온 以來, 몇 世紀를 갈구고 갈고 하여 沃土를 만든 이 ○○골을 내버리고 그들은 失望과 함께 李氏는 馬嶺을, 吳氏는 舞龍재를 넘어서 다시 漂浪의 길을 떠났다.


○○골에 새로 들어온 小作人들이 農事를 지으려고, 그새 茂盛하였던 雜草의 뿌리들을 모두 들추어내어 버릴 때에, 그 雜草와 같은 運命을 지고 ○○골에서는 쓸리어 나와, 兩班의 子孫 李氏와 종의 子孫 吳氏는, 서로 東西로 갈리어서 밥을 求하러 새 길을 떠났다.


그로부터 얼마 뒤, 李氏의 男女老少 數百 名의 集團이, 滿州 어떤 寞寞한 길에서 연해 길을 물어 가면서 奧地로 奧地로 갈 때에, 吳氏의 百餘 名의 一行은 北間島 어떤 山間에 자리를 잡고 낫을 들고 茂盛한 풀을 베고 있었다.


註=滿洲事變 直後에, 滿洲의 朝鮮人의 生活相을 主題로한 長篇小說을 하나 써 달라는 付託을 어떤 新聞社에게 받은 일이 있다. 이 ≪雜草≫는 그 長篇의 序編을 삼으려던 것인데, 이것 조차 總督府의 干涉으로 中斷되었으니, ≪本編≫은 말할 것도 없다. 只今 좋은 機會를 얻어 옛날 中斷되었던 ≪序編≫만 이라도 完成시켜 冊에 編入하는 바이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m******0 2024.07.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eBook 구매
김동인 잡초
"김동인 잡초" 내용보기
오학동과 정방이라는 두 곳의 관계성 그리고 과거의 역사를 비유하면서 잡초라는 제목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만 해도 김동인이라는 작가의 천재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오학동과 정벙이 왜 그런 사이가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사람들이 과거에 매여 사는지 여러가지를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더 지금의 시대에 어울리는 작
"김동인 잡초" 내용보기

오학동과 정방이라는 두 곳의 관계성

그리고 과거의 역사를 비유하면서 잡초라는 제목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만 해도

김동인이라는 작가의 천재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오학동과 정벙이 왜 그런 사이가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사람들이 과거에 매여 사는지

여러가지를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더 지금의 시대에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이달의 사락 s****o 2023.05.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eBook 구매
잡초 감상
"잡초 감상" 내용보기
소설 잡초는 한국 근현대 문학사의 대표적인 소설가 중 한 명인 김동인이 쓴 단편소설입니다. 잡초는 여러 가지 이미지를 지닌 풀인데, 희귀성이나 환금성 등에서 금전적인 가치가 없다고 여겨진다는 것, 널리 일반적으로 퍼져 있고 평범하다는 것 등의 이미지가 있으며, 종종 일반 서민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김동인은 잡초의 여러 의미를 절묘하게 소설로 녹여낸 듯한 단편작품
"잡초 감상" 내용보기
소설 잡초는 한국 근현대 문학사의 대표적인 소설가 중 한 명인 김동인이 쓴 단편소설입니다. 잡초는 여러 가지 이미지를 지닌 풀인데, 희귀성이나 환금성 등에서 금전적인 가치가 없다고 여겨진다는 것, 널리 일반적으로 퍼져 있고 평범하다는 것 등의 이미지가 있으며, 종종 일반 서민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김동인은 잡초의 여러 의미를 절묘하게 소설로 녹여낸 듯한 단편작품을 만들었습니다.
h*****a 2023.03.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eBook 구매
잡초
"잡초" 내용보기
친일 행위 문학가를 비판한 작품으로도 유명한 김동인 작가님의 소설입니다.우울했던 시대여서 그런지 작가분들이 젊다면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 같은프로필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일단 많이 드는 것 같아요.이번 소설 “ 잡초 “ 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 처럼 그 시대를 살아가던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삶을 평번한 듯 그려내고 있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과거를 살아가는 사람
"잡초" 내용보기

친일 행위 문학가를 비판한 작품으로도 유명한 김동인 작가님의 소설입니다.

우울했던 시대여서 그런지 작가분들이 젊다면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 같은

프로필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일단 많이 드는 것 같아요.

이번 소설 “ 잡초 “ 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 처럼 그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삶을 평번한 듯 그려내고 있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과거를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현대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삶은 같지 않을까 싶어요. 

l******l 2020.10.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eBook 구매
김동인 잡초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19)
"김동인 잡초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19)" 내용보기
오학동에서는 정방 사람과는 결코 통혼하지 않았다. 정방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정방이라는 동리는 본시 오학동을 개척한 조상이 들어앉은 지 한 백 년쯤 뒤에 생긴 마을이었었다. 정방은 오씨촌(吳氏村)이며 정방서 자손을 퍼치기 시작한 첫번 오씨는 속량된 종이었었다. 더구나 그 종은 오학동 이씨와 사돈한 집안에 있던 종이었었다. 오씨도 조상의 산소를 잘 썼던지 정방
"김동인 잡초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19)" 내용보기

오학동에서는 정방 사람과는 결코 통혼하지 않았다. 정방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정방이라는 동리는 본시 오학동을 개척한 조상이 들어앉은 지 한 백 년쯤 뒤에 생긴 마을이었었다. 정방은 오씨촌(吳氏村)이며 정방서 자손을 퍼치기 시작한 첫번 오씨는 속량된 종이었었다. 더구나 그 종은 오학동 이씨와 사돈한 집안에 있던 종이었었다.
오씨도 조상의 산소를 잘 썼던지 정방으로 온 뒤부터 차차 번식하여 이백 년 뒤 십여 대 뒤에는 백여 호의 커다란 마을을 이루었었다.

YES마니아 : 골드 l******g 2022.09.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eBook 구매
김동인 잡초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19)
"김동인 잡초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19)" 내용보기
오학동에서는 많은 선비가 났다. 첫번 오학동을 개척한 선조가 세상을 버리고 이곳으로 있던 선비이니만치 그의 후손에도 많은 선비가 났다. 과거에 장원을 하여 그 이름이 근방 일대를 떨친 선비까지 있었다. 연년이 무룡재와 말령의 가파로운 길을 넘겨서 많은 며느리를 맞아오고 많은 딸을 내보내는 동안 일가가 늘어 가면 늘어 가느니만치 선비의 수효도 늘었다. 낮에는 밭갈고 밤에
"김동인 잡초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19)" 내용보기

오학동에서는 많은 선비가 났다. 첫번 오학동을 개척한 선조가 세상을 버리고 이곳으로 있던 선비이니만치 그의 후손에도 많은 선비가 났다. 과거에 장원을 하여 그 이름이 근방 일대를 떨친 선비까지 있었다.
연년이 무룡재와 말령의 가파로운 길을 넘겨서 많은 며느리를 맞아오고 많은 딸을 내보내는 동안 일가가 늘어 가면 늘어 가느니만치 선비의 수효도 늘었다. 낮에는 밭갈고 밤에는 글읽고 이러는 동안에 연년이 늘어 가는 그 일가는 가까운 장래에 이 ○○골에 차고 넘을 듯이 보였다.

k*****9 2022.04.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eBook 구매
김동인 잡초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19)
"김동인 잡초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19)" 내용보기
오학동(五鶴洞)은 이씨촌(李氏村)이었었다. 한 삼백 년 전에 이씨의 한 집안이 무룡(舞龍)재를 넘어서 이곳으로 와서 살림을 시작한 것이 이 오학동의 시작이었다. 조상의 뼈를 좋은 곳에 묻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삼백 년 뒤 ― 그때의 그 조상부터 십 오륙대가 내려온 지금에는 거기는 커다란 동리를 이루고 호구 일백 사십여 호 사람의 수효 육칠백 명 항렬로 캐어서 어린아
"김동인 잡초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19)" 내용보기

오학동(五鶴洞)은 이씨촌(李氏村)이었었다.
한 삼백 년 전에 이씨의 한 집안이 무룡(舞龍)재를 넘어서 이곳으로 와서 살림을 시작한 것이 이 오학동의 시작이었다. 조상의 뼈를 좋은 곳에 묻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삼백 년 뒤 ― 그때의 그 조상부터 십 오륙대가 내려온 지금에는 거기는 커다란 동리를 이루고 호구 일백 사십여 호 사람의 수효 육칠백 명 항렬로 캐어서 어린아이의 고조부로 비롯하여 늙은 고손까지 촌수로는 이십 육칠 촌까지의 순전한 이씨와 그의 안해들로써 커다란 말을 이루었다.

w***1 2022.04.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