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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잡초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도회에서는 상투가 차차 없어졌다. 서당 대신으로 학교가 섰다. 개혁과 문명의 불길이 사면에서 일어났다. 딱 이부분만봐도 일제강점기때의 상황이 눈에 보이는것같습니다. 참 안타깝지요 정말 그때의 시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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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百年 前에 李氏의 한 祖上이 가파로운 舞龍재를 넘어서?그리고 二百年 前에 吳氏의 한 祖上이 가파로운 馬嶺을 넘어서 들어온 以來, 몇 世紀를 갈구고 갈고 하여 沃土를 만든 이 ○○골을 내버리고 그들은 失望과 함께 李氏는 馬嶺을, 吳氏는 舞龍재를 넘어서 다시 漂浪의 길을 떠났다. ○○골에 새로 들어온 小作人들이 農事를 지으려고, 그새 茂盛하였던 雜草의 뿌리들을 모두 들추어내어 버릴 때에, 그 雜草와 같은 運命을 지고 ○○골에서는 쓸리어 나와, 兩班의 子孫 李氏와 종의 子孫 吳氏는, 서로 東西로 갈리어서 밥을 求하러 새 길을 떠났다. 그로부터 얼마 뒤, 李氏의 男女老少 數百 名의 集團이, 滿州 어떤 寞寞한 길에서 연해 길을 물어 가면서 奧地로 奧地로 갈 때에, 吳氏의 百餘 名의 一行은 北間島 어떤 山間에 자리를 잡고 낫을 들고 茂盛한 풀을 베고 있었다. 註=滿洲事變 直後에, 滿洲의 朝鮮人의 生活相을 主題로한 長篇小說을 하나 써 달라는 付託을 어떤 新聞社에게 받은 일이 있다. 이 ≪雜草≫는 그 長篇의 序編을 삼으려던 것인데, 이것 조차 總督府의 干涉으로 中斷되었으니, ≪本編≫은 말할 것도 없다. 只今 좋은 機會를 얻어 옛날 中斷되었던 ≪序編≫만 이라도 完成시켜 冊에 編入하는 바이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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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학동과 정방이라는 두 곳의 관계성 그리고 과거의 역사를 비유하면서 잡초라는 제목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만 해도 김동인이라는 작가의 천재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오학동과 정벙이 왜 그런 사이가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사람들이 과거에 매여 사는지 여러가지를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더 지금의 시대에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
| 소설 잡초는 한국 근현대 문학사의 대표적인 소설가 중 한 명인 김동인이 쓴 단편소설입니다. 잡초는 여러 가지 이미지를 지닌 풀인데, 희귀성이나 환금성 등에서 금전적인 가치가 없다고 여겨진다는 것, 널리 일반적으로 퍼져 있고 평범하다는 것 등의 이미지가 있으며, 종종 일반 서민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김동인은 잡초의 여러 의미를 절묘하게 소설로 녹여낸 듯한 단편작품을 만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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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행위 문학가를 비판한 작품으로도 유명한 김동인 작가님의 소설입니다. 우울했던 시대여서 그런지 작가분들이 젊다면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 같은 프로필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일단 많이 드는 것 같아요. 이번 소설 “ 잡초 “ 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 처럼 그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삶을 평번한 듯 그려내고 있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과거를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현대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삶은 같지 않을까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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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학동에서는 정방 사람과는 결코 통혼하지 않았다. 정방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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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학동에서는 많은 선비가 났다. 첫번 오학동을 개척한 선조가 세상을 버리고 이곳으로 있던 선비이니만치 그의 후손에도 많은 선비가 났다. 과거에 장원을 하여 그 이름이 근방 일대를 떨친 선비까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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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학동(五鶴洞)은 이씨촌(李氏村)이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