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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구약을 읽어 나갈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렌즈를 통해서 읽어야 한다 구약은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어떻게 이루셨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인물, 어떤 사건이 등장해도 이 약속이 한 나라와 개인의 삶을 통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갈라디아서 3장 29절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자들은 아브라함과 함께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늘을 경험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약속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다 이 약속에 믿음으로 참여하기를 결단하면 비록 우리는 연약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이루실 부르심의 자리로 날마다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 머물리라 1 중 발췌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우는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께서 한 인생을 어떻게 세워가시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혹여 신약과 구약의 시대적 정황이 다르기에 신앙의 작동원리가 다를 것이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그러하지 않음을 제고하기 바란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언제 동일하시며 변함이 없으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동일성과 전능하심으로 한 사람을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가시는 섬세한 손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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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삶은 결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일이며, 내게 익숙한 습관과 사고방식, 익숙하게 살아왔던 모든 것으로부터의 분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와 같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그분을 인간이 측정할 수 있는 수준 정도로 내려다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믿음의 삶이 힘들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 생각으로 예측 할 수 없는 길을 따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의 삶은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 주시는지를 통해서만 살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땅에 수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옳고 그림의 기준을 세워 놓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놀랍다. 자신이 익숙한 것을 옳다고 믿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옳은 것은 진짜 옳은 것이 아니라 다만 익숙해진 것일 뿐이다. 그러나 믿음의 삶은 단지 익숙하기 때문에 옳다고 여겼던 것들로부터 떠나게 한다. 그래서 믿음의 삶이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끌어내려 나에게 익숙한 수준으로 만들고 싶어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끌어올려 익숙한 것과 결별하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삶으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우리의 첫걸음을 축복하신다. 하물며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첫걸음을 내디딜 때에도 부모들은 얼마나 기뻐하는가. 세상에 그런 기적이 없다. 그 기적을 목격한 부모는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 이 사실을 전한다. 한 걸음 두 걸음 걷다가 쓰러진 아이를 정죄하거나 판단하는 부모는 없다. 이제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으로 감사하며 앞으로 마음껏 달려 나갈 아이의 모습을 소망할 뿐이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아이가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마라톤을 할 수 있는 믿음까지 가기에는 아직 멀었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첫 믿음을 축복하셨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 머물리라 1 중 발췌
아브라함 다윗 같은 하나님께 합한 자라는 평가를 받는 성경의 인물들은 그들 자신만의 수고와 헌신으로 세워진게 아니다. 그들을 그와 같이 만들어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작정과 주권적인 역사하심을 통해 우리가 아는 성경의 위대한 인물로 서게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