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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 】 | 교양 고전 Pick 1 _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 지식여행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과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제1권은 17세기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던 해(1605년)에 동시에 출간되었다. 이 둘의 세계적인 걸작을 놓고 비교해 보면,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상반되고, 그들이 삶을 바라보고 해결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난다. 극과 극을 달리는 듯하다. 공통점은 그들 나름대로 설득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문학을 대표하는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는 이 책을 통해 햄릿과 돈키호테를 심층 분석한다. 이미 세계의 평론가들이나 작가들은 햄릿과 돈키호테에 대해 많은 글들을 써왔다. 그 양을 비교해보면 햄릿에 대한 글들이 돈키호테에 비해서 많은 편이다. 투르게네프는 모든 사람들이 햄릿과 돈키호테의 두 유형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해있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이 두 유형의 혼합형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으로 많이 치우치는가, 즉 어느 쪽 함량이 높은가가 관건일 것이다.
“우리들 중에는 자신의 자아를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아보다 더 높은 차원의 무언가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있다.” 돈키호테는 어떤 인물로 전형화 되는가? 투르게네프는 돈키호테가 무엇보다 신뢰,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 무언가에 대한 믿음의 전형이라고 한다. 이는 인간 개인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어떤 진실에 대한 믿음으로, 자기희생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숭배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목숨도 이 세상에 정의와 진리를 가져다 줄 이상에 봉사할 수 있는 한에서만 가치 있는 것이라 여긴다.” 돈키호테의 생각과 행동이 무모하다 못해 황당하다 보니 여전히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사람들을 향해 “돈키호테 같다”는 표현을 하지만, 지은이는 그에게서 이기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자기만의 기쁨을 누리는 데는 관심이 없다. 자기희생의 완벽한 화신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햄릿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먼저 분석과 진단과 자기중심과 그에 따른 불신이다.” 이 점 돈키호테와 대척점을 갖는다. 햄릿은 전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햄릿은 회의론자이지만 항상 그 자신에 관해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어떤 심적 상황에 있든 상관없이 영원히 흔들린다.” 이 책의 해제를 쓴 디타 뮐레로바(체코 흐라데츠 크랄로베 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투르게네프의 이 글은 러시아 사회 개혁(알레산드르 2세에 의한 ‘농노해방령’)이 준비되고 있던 시기에 집필 되어 혁명 기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당시 러시아인민은 물론 지식층들의 화두는 국가의 필요한 변화를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영웅’의 출현이었다. 투르게네프 역시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염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상반된 두 인물을 등장시켜서 누구에게 초점을 맞출 것인가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투르게네프에게 햄릿은 이성과 의지가 서로 분리되어있는 이기적인 인물로 비쳐졌다. 반면 돈키호테는 햄릿과는 다른 사회적, 윤리적 범주와 도덕적 자질을 구현하는 존재감이다. “돈키호테에게 삶이란 이상에 도달하고 온 세상에 정의를 세우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경우에만 소중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조차 기꺼이 희생한다. 이 비판적인 소책자의 저자는 돈키호테의 행동의 자유, 그의 정신이 가진 도덕적 힘, 그의 성격과 본성이 지닌 성실함, 명확한 목표, 인내, 끈기와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투르게네프의햄릿과돈키호테 #이반세르게예비치투르게네프 #지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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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작고한 20세기 최고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블룸은 미겔 데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르반테스는 글 쓰는 방법을 알았고, 돈키호테는 행동하는 방법을 알았다. 이 두 사람은 오로지 서로를 위해 태어난 하나다.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 20쪽.
투르게네프는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나는 예전에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을 읽고 바로 그의 팬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가디언에서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라는 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 반가웠다. 투르게네프는 그저 문학만을 창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작가에 대한 짧은 글도 남겼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읽어보니, 초반에는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같은 듯 다른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엔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를 비교해서 읽을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투르게네프는 이들의 시대와 대표작 <햄릿>, <돈키호테>가 각각 어떠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가를 하나 하나 철저하게 보면서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또 재미있는 건, <햄릿>도 <돈키호테>도 유명한 고전 명작이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가하는 점이다.
하긴, 나도 이 작품들을 끝까지 다 읽기보다 줄거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끝까지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투르게네프가 25쪽에서 "<돈키호테>는 양이 상당하다. 그래서인지 본고장 스페인에서도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은 사람이 10명 중 2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라고 쓴 부분을 보며 괜히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나도 투르게네프와 같이 꼭 이 두 명작을 완독해보겠다고 생각했다.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인 줄 알았던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그런데 68쪽을 보면 "이 동 시대의 두 시인이 정확히 같은 날인 1616년 4월 23일 세상을 떴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한 차원 더 나아간 상징성을 본다."라는 점에서 깜짝 놀랐다. 서로 주고받은 영향 관계는 없지만, 마치 운명처럼 같은 날 떠난 작가들이라니. 아무튼, 이 책은 투르게네프, 햄릿, 돈키호테, 인간의 속성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무조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확실히 소설가가 쓴 글이라 술술 읽힌다. 어려운 연구서가 아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도 괜찮다. 그래도 남는 건 많은 책이다. 뒤에 덧붙여진 디타 뮐레노바의 <이반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에 대하여>라는 글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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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는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상을 그려낸 비극적인 영웅이 주인공인 소설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비교하며 현시대에 필요한 인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돈키호테는 소탈하면서도 앞뒤 재지 않고 좌충우돌하는 저돌적인 인간형으로 묘사되는데, 저자는 '돈키호테'라는 인물의 면면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오해를 풀어준다. 돈키호테는 "나는 라만차의 기사이니라. 내 이름은 돈키호테요, 내게 주어진 소명은 세상을 떠돌며 불의와 맞서 싸우고 불의를 벌하는 일이니라."라고 천명하며 온 힘을 다해 부정과 불행을 벌한다. 또한 돈키호테는 자유를 인간에게 가장 가치 있는 자산으로 여기며, 인간의 존귀함은 덕성에 있다고 말하는 휴머니스트이기도 하다. 앞뒤 분간 없이 말하는 이들에게 돈키호테적 발상이라며 산초 판사를 데리고 다니며 기사 수업을 하는 그를 비웃었던 우리는 지금껏 그에 대해 깊은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 아마도 1000 페이지 분량의 책인 <돈키호테>를 정독한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인가 보다. 반면에 한 나라의 왕자인 햄릿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이른 재혼을 석연치 않게 여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암살 당한 것임을 암시하는 꿈을 꾸면서 사건을 파헤쳐 나가게 된다. 그는 사색적이지만 천성이 우유부단한 탓에 악을 처벌할 책임이 본인에게 있으나 응징할 시간이 자신에게 없음을 한탄하고 만다. 햄릿과 돈키호테는 출생 신분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자신의 분노에 의한 복수가 아닌, 사회 전체를 위한 처벌을 한다는 공통점, 그리고 자신을 지지하는 벗이 있었다는 공통 분모를 지니고 있다. 나아가 위대한 걸작을 남긴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같은 날 생을 마감하는 우연까지 말이다. '인간은 모든 것의 중심에 서 있고 모든 것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햄릿과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것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돈키호테의 성격은 대조적이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햄릿을 더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독창성을 요구하는 현시대에 어울리는 시대상에는 사려 깊고 다재다능하지만 소극적인 햄릿형 인간이 필요할까? 아니면 오직 하나의 목표에 거침없이 돌진하는 돈키호테형 인간상이 어울리는 것일까. 저자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는 햄릿과 돈키호테 한쪽에 편중되기보다는 두 인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선을 추구하는 인간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페인에는 아직도 돈키호테의 흔적이 곳곳에 남겨져 있다. 스페인 광장에는 돈키호테의 장면들이 곳곳에 벽화로 그려져 있고, 라만차의 풍차를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방문한다. 라만차는 돈키호테가 풍차에 저돌적으로 돌진하며 웃음거리가 된 장소로 평온하기 그지없는 조용한 마을이다. 내가 라만차를 방문했을 때 역시 바람이 많이 불었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 프리스톤이 둔갑한 것으로 여기고 싸움을 벌이다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는 장면'을 묘사할 만큼 말이다. 저자가 풀어낸 돈키호테라는 인물에 호기심이 생겨 스페인 여행 전 잠시 읽었던 <돈키호테>를 언젠가는 정독하고 싶어졌다.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는 지식여행의 교양 고전 pick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동시대의 소설을 주인공의 가치관, 주변, 사랑에 대한 가치관들을 비교한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의 관점이 무척이나 흥미로운 잘 만들어진 강의를 본 듯한 시간을 선사했다. 시리즈로 나온다고 하니 차기작 <로마인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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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시인이 살아온 환경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괴테-
처음 이 책의 표지를 보았을 때 의문점이 생겼다. 왜 하필 둘이? 비교 아닌 비교 대상으로 엮인 이유가 궁금했다. 저자 투르게네프는 <햄릿>과 <돈키호테> 두 인물을 비교함으로써 무엇을 알리고자 한 것일까? 이 두 인간형은 우리가 살던 이전 시대에도 존재했었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책 속에 담겨 있는 이 두 인간상에 대해 찬찬히 알아보기로 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과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제 1권은 17세기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던 해에 동시에 출간되었다. 이 두 작품이 동시에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은 심상찮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두 작품을 몇 가지 관점에서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1장-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같은 듯 다른 인생, 2장-햄릿과 돈키호테, 3장 햄릿과 돈키호테 안의 광기 등의 주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2장은 햄릿과 돈키호테의 인간상을 구체적으로 재조명하고 있으며, 책을 읽는 동안 두 인물에 대한 나의 의견을 반문하며 읽어내려갔다.
1장은 셰익스피어의 일생과 작품 <햄릿>의 줄거리, 세르반테스의 일생과 <돈키호테>의 줄거리, 그리고 간략한 시대적 배경이 소개된다.
2장에서는 본격적으로 햄릿과 돈키호테가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두 인물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지, 햄릿과 돈키호테가 군중, 이른바 인간과 맺고 있는 관계의 가치는 무엇인지, 그들이 각기 사랑했던 오필리아와 둘시네아와의 관계, 사랑에 대한 햄릿과 돈키호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투르게네프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어느 면에서 다르고 또 어떤 점에서 같은지 강조해둘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전혀 다른 듯한 두 인물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두 시인이 정확히 같은 날인 1616년 4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3장에서는 햄릿과 돈키호테의 광기어린 정신에 대해 알아본다. 돈키호테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미친 사람이지만 햄릿은 확실히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이 둘은 미친 상태로 불의와의 전쟁에 나선다. 그러니 이 광기에는 심오한 지혜가 담겨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두 유형의 인간 중 어느 한쪽이 우월한지 열등한지를 가리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햄릿은 우유부단하고 내적 갈등이 강한,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끝내 비극을 맞는 인물, 돈키호테는 엉뚱하고 무모하고 때론 저돌적이어서 주변 사람이 피곤하겠구나 싶은 이미지였는데 다 읽고 나니 머릿속에 있던 편견들이 씻겨내려갔다. 특히나 돈키혼테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유형의 인물이었음을.. 물론 두 인물이 어떤지 판단하는 것은 작품을 읽은 독자의 몫이지만, 혹여 두 인물에 대한 집중탐구를 원한다거나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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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과 돈키호테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만차의 들판을 가로질러~" ...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전엔 단 한 번도 햄릿과 돈키호테를 연결 지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햄릿》을 쓴 셰익스피어와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몰랐다. 더 놀라운 우연은 이 동시대의 두 위인이 정확히 같은 날인 1616년 4월 23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 모두 이 책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이다.
백 여쪽밖에 되지 않는 작은 소책자 느낌의 책이지만 내용은 가볍지가 않다. 학부시절로 돌아가 과제를 위해 학술서적을 읽는 느낌이었다. ㅎㅎ 독서가 쉽지 않았지만 재밌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재미.
어디선가 읽었는데 나쁜 책은 읽으면서 끊임없이 왜 이러지? 라고 내용에 의문을 갖게 하고, 좋은 책은 읽으면서 자꾸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나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한다고 한다. 이 책은 후자였다.
이 두 유형의 인물 속에는 기본적으로 대조적인 두 성향, 즉 인간이 하나의 회전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할 때 그 축의 양극단이 구현되어 있는 듯하다. -36쪽
인간의 삶은 영원히 밀고 당기는 두 힘, 끈질기게 적대하는 두 힘이 영원히 화해하는 현실 속에 존재한다. -61쪽
삶은 이 두 극단의 어느 한쪽을 향해 움직이지만 그들 중 누구도 한쪽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검토하고 탐색하는 분석의 원칙이 《햄릿》에서 비극의 극단으로까지 뻗어 나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돈키호테》에서는 열정이 정반대 편에 있는 희극의 상황으로 몰려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74쪽
햄릿과 돈키호테는 유럽이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근대로 들어서는 시점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의 양 극단을 표현하고 있었다. 결국 햄릿형 인간, 돈키호테형 인간으로 나눠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 정신에 두 기본 방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세르반테스는 아마도 "셰익스피어"란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비극작가는 자기 생의 마지막 3년 동안 당시에 이미 출간되어 있던 유명한 소설의 영어판을 스트랫퍼드에 있는 자기 집에 호젓이 틀어박혀 읽었던 게 틀림없다.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셰익스피어, 이는 한 예술가이자 철학자가 소재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는 광경이었을 터다. 68쪽
개인적으로 위 구절을 읽는데 영화가 그려졌다. 옛 문헌의 한 구절에서 시작해서 상상으로 재현한 드라마를 만드는 것처럼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셰익스피어' 이 한 구절로 상상하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돈키호테를 읽고 감명을 받아 세르반테스에게 편지를 보내고, 셰익스피어도 모르고 햄릿도 몰랐던 세르반테스가 그제야 햄릿을 읽고 두 작가가 서신으로 교류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ㅎㅎ
동시대의 위대한 두 작가가 같은 날에 세상을 떠난 것도, 인물의 양 극단을 묘사한 것도 참 신기하면서 운명적이다. 어릴 때 읽고 어른이 되어서는 읽어본 적 없는 《햄릿》과 《돈키호테》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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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릿과 돈키호테는 어떤 면에서 보면 확연히 다른 두 인물이다. 작가뿐 아니라 작가 그들의 생애와 두 저자의 책안에 인물들 역시 판이하게 다르다. 허나 글을 읽다보면 왜 한인물처럼 느껴지는가? 나도 모르게 인간의 자웅동체설 과 철학 시간 제일 처음 배웠던 에로스적 발상 (남녀가 원랜 한몸이었다는) 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건 비단 나만이 아닐것이다. ? 이 책의 저자는 그동안 우리가 책을 표면으로만 읽어 기억나지 않거나 간과했던 세심한 부분들을 날카롭게 제시하며 인간의 본질에 대해 설명한다. ? 삶을 살다보면 우린 매우 많은 햄릿과 돈키호테를 만나게 됨은 물론 아주 가까운 나의 영혼안에서 까지 그들을 접하게 된다는 사실역시 깨우쳐준다. ? 햄릿은 어떻게 보면 완벽주의자 이다. 그 자신도 감히 자신을 어쩌지 못할만큼의 철저한 계획과 사리분별에 치밀한 판단까지 하며 스스로를 몰아간다. ? 스스로를 엄격하게 대하다 보니 그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선 견딜수 없는 자괴감에 빠지는 햄릿... 비극의 운명. ? 반면 돈키호테는 그에 비해 거의 이상쪽에 속하는데 마치 한없는 박애주의자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누구에게도 허물없는 그의 모습은 흡사 선한 느낌이나 사실 그에게도 치명적인 부분들이 나타난다. .....미친게 분명한데 거기에 무언가 체계가 있다” 투르게네프는 이 둘을 절묘하게 묶어놓곤 샅샅이 파헤친다. ? 전혀다른 인물 둘이지만 문득문득 이 둘은 사실 한 인물이 아닐까 할 정도로 우리 인간내면의 복잡미묘함을 다룬 소설. ? 인간 삶은 고통이라 했다. 그걸 먼저 인정하고 나면 사실 모든게 받아들여지는데 조금은 수월하다. 다만 삶이 고통이라는 전제하에도 고통은 고통이고 괴롭기 그지없다. ? 그들이 처한 상황에 똑같이 맞닥들인다면 나라고 과연 다른 선택을 했을까 ? 햄릿이냐 돈키호테냐 ? 사실 이 둘의 광기는 차원이 다른거 같지만 우리안엔 무수히 많은 그 둘이 시시각각 가면을 쓰고 나타나 무대를 날뛴다는 것을 우리가 제일 잘 안다. ? 작가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 광기에도 어떤 그들만의 기준체계가 있음을 다방면으로 우리 인간의 다층적인 그리고 심층적인 모습을 이 책안에서 보다 새롭게 발견하게 될것이다. ? 맞아 그렇지 맞장구를 쳐가며 보게 될 책. ? 인간이라는 동물을 이분법적 사고만이 아닌 제 3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확장의 계기가 될 이 달의 흥미로운 책 으로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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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과 <돈키호테>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고전들이다. 문학사에서 두 작품이 갖는 의미 역시 엄청나지만, 햄릿과 돈키호테라는 두 인물이 각각 특정한 인간상을 대표한다는 점도 특별하다. 일반적으로 햄릿형 인간이라고 하면 교양있고 지적이지만 우유부단한 인간, 돈키호테형 인간이라고 하면 다소 아둔하고 답답하지만 저돌적인 인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의 저자인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가 바로 그 '햄릿형 인간'과 '돈키호테형 인간'의 유형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이다.
<돈키호테>라는 작품이 당시의 시대상을 풍자하는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인지, 혹은 돈키호테의 모험이 그의 망상에 가까운 착각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돈키호테를 부정적으로 여기거나 미련하고 멍청하게 그리곤 한다. 그러나 저자 투르게네프는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둘러싼 수많은 편견들에 대해 항변하며 돈키호테형 인간을 변호한다. 돈키호테는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이상이라고 여기는 것에 몸을 던질 줄 아는 인물이다. 그는 다른 이들을 위해 희생하기를 꺼리지 않고, 상상 속의 대상을 향한 것일지언정 누군가를 향해 순수한 사랑을 한다. 저자는 이런 돈키호테가 그저 허무맹랑한 행동과 헛소리를 일삼는 인물로만 취급받는 것은 억울한 처사라고 말한다. 반면 대중적으로 고귀하고 우수에 찬 왕자 같은 이미지인 햄릿은 사실 이기적이고 공허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상상 속 여인에게 목숨도 바칠 수 있는 돈키호테와 달리 햄릿은 그 누구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오필리어라는 연인이 있지만, 어머니의 부정 때문에 여성을 믿지 않는 그는 연인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겹쳐 본다. 결국 햄릿과 오필리어의 관계는 햄릿이 오필리어를 정신적으로 몰아붙이고 끝내 그녀의 아버지를 살해하기까지 함으로써 파국을 맞는다. 햄릿이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 것은 연인뿐이 아니다. 그는 억울하게 살해당한 아버지가 간절하게 복수를 호소함에도 아무런 제대로 된 결단을 하지 못한다. 많은 연구자들은 햄릿이 자신을 둘러싼 그 모든 비극적인 상황에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거기에서 도망치고 싶어할 뿐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스스로가 부서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돈키호테와는 다르다.
그렇다고 투르게네프가 무작정 돈키호테형 인간만을 추켜세우고 햄릿형 인간을 폄하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물론 돈키호테를 둘러싼 좋지 않은 시선들 때문에 다소 돈키호테에 대해 호의적으로 분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햄릿과 돈키호테의 공통점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단 그 둘은 모두 이상을 간직한 인간들이다. 여기서의 이상이란 '르네상스의 지고한 이상'으로, 명예와 자유, 아름다움, 정의, 사랑과 같은 가치를 뜻한다. 햄릿 역시 비록 실패했을지언정 이상적인 가치들을 좇아 뒤틀려 버린 것들을 올바르게 맞추려 하는 인물이다. 햄릿과 돈키호테는 모두 슬픈 죽음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좇았던 가치들이 의미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의 의지를 잇고 후세에 전달해 줄 존재, 산초와 호레이쇼가 있다. <햄릿>과 <돈키호테>가 불멸의 고전으로 남은 이유 중 하나는 햄릿, 그리고 돈키호테라는 각각의 인물들이 인간 정신을 대표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세상을 떠난 날이 1616년 4월 23일로 정확히 같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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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한 ‘햄릿형 인간’과 저돌적인 ‘돈키호테형 인간’ 유형을 최초로 제시한 고전 뒷표지 中
햄릿형 인간과 돈키호테형 인간에 대해 어디선가 한 번 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한쪽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느라 내내 결정을 유보하는 인간형, 다른 쪽은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행동하고 보는 인간형. ‘햄릿’과 ‘돈키호테’가 유명한 만큼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의 인간형 구분에 대한 이런 저런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정작 그 말의 출처를 확인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햄릿과 돈키호테로 인간유형을 구분한 사람은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다. 그는 1860년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궁핍한 작가?학자 구제협회’의 대중 낭송회의 강연에서 이러한 인간형의 구분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대개 햄릿형 인간인가 또는 돈키호테형 인간인가에 대해 논하는 경우는 사람의 성향에 대해 이야기할 때일 것이다. 사고력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사람은 햄릿형으로 실천력이 돋보이는 경우는 돈키호테형으로 불린다. 누군가는 “사색적이고 우유부단한 인간”이고 다른 쪽은 “앞뒤 재지 않고 좌충우돌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투르게네프는 모든 사람이 “이 두 유형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해 있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느 한쪽에만 속하는 인물은 드물다고 말한다. 해제를 쓴 디타 뮐레로바(체코 흐라데츠 크랄로베 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말처럼 투르게네프는 “인간 본성의 기본원리”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들은 두 대척적인 경향의 극단적 표현에 불과하다. 삶은 이 두 극단의 어느 한쪽을 향해 움직이지만 그들 중 누구도 한쪽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검토하고 탐색하는 분석의 원칙이 《햄릿》에서 비극의 극단으로까지 뻗어 나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돈키호테》에서는 열정이 정반대 편에 있는 희극의 상황으로 몰려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순수한 희극이나 온전한 비극을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p.74 여기서 반전이 있었다. 투르게네프가 단지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를 빗대 인간 유형을 구분하는 목적만으로 이 글을 쓴 것이 아니었다. 투르게네프는 글에서 돈키호테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햄릿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돈키호테는 “신뢰,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 무언가에 대한 믿음”으로 전형화되는 인물이라고 평하면서 “자기희생의 완벽한 화신”으로 추앙하고 있다. 반대로 햄릿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인물”로 진단하면서 “그 자신에 관해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이 두가지 유형 중에 한 쪽에 속한다고 말하려면 한 쪽을 일방적으로 저평가해서는 안 될텐데 말이다. 왜 이렇게 기울어진 평가를 한 것일까. 디타 뮐레로바 교수의 해제에 답이 있었다. 투프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가 편찬된 시기는 러시아 사회 개혁의 시기였다. 이때는 “국가의 필요한 변화를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영웅” 즉 “새로운 인물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 당시 문학비평 분야에서 더 선호되던 햄릿 캐릭터 보다는 돈키호테에게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된 이유다. 사회적 허영심, 회의론, 이기주의를 내보이는 햄릿형 인간보다 “이상에 헌신하고 그 이상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돈키호테형 인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투르게네프의 소책자는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세르반테스의 소설에 대한 역사문학적 분석이 전혀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p.101 투르게네프는 당시의 사회 상황이 자신의 견해에 끼친 영향 아래서 자신의 사상과 이념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의 견해는 시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p.109 지식여행 출판사의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읽으면서 든 의문점이 있다. 책은 3개의 장과 해제 그리고 옮긴이의 말로 구성되어 있다. ‘2장 햄릿과 돈키호테’는 투프게네프가 쓴 글이다. ‘1장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같은 듯 다른 인생’과 ‘3장 햄릿과 돈키호테 안의 광기’는 투르게네프가 아닌 다른 저자의 글로 보인다(1장은 확실히, 3장은 아마도). 해제를 쓴 디타 뮐레로바의 인용 중 3장의 내용은 없다. 3장의 글은 두 캐릭터가 공히 ‘광기’를 표출하는 인물들임을 주장하고 있다. 돈키호테와 햄릿은 사내다운 전사이다. 전자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미친 사람이지만 후자는 확실히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어쨌든 두 인물은 미친 상태로 불의와의 전쟁에 나선다. 둘 다 똑같이 “무모하다.” p.84 2장의 주장과 반대되는 내용도 종종 나타난다. 예를 들어 2장의 햄릿은 “일반 백성들을 혐오”(p.52)하지만 3장에서는 “하층민들에게 신경을 쓰고 온정적”(p.89)이다. 또 2장에서는 오필리아에 대한 햄릿의 감정이 “냉소적이거나 과장되어”(p.58) 있다고 평한 반면 3장에서는 같은 인용구에 대해 “오필리아를 향한 햄릿의 사랑”의 “진실이 드러난”(p.95) 장면이라고 말하고 있다. ‘3장 햄릿과 돈키오테 안의 광기’의 저자는 누구일까. 투르게네프가 햄릿과 돈키호테의 유사성을 ‘광기’에서 찾고 싶어 쓴 글일까. 그렇다면 2장과 3장의 글에서 보이는 괴리의 이유는 무엇일까. “한 시인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시인이 살아온 환경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 괴테 p.34 투르게네프가 인용한 괴테의 문장처럼 『햄릿』과 『돈키호테』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시대를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를 이해하기 위해선 작가가 살았던 19세기 러시아를 알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햄릿과 돈키호테를 문학의 테두리안에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학 작품으로서의 『햄릿』과 『돈키호테』를 알고자 하는 독자보다는 투르게네프가 문학을 통해 자신의 시대를 바라본 시각이 궁금한 독자에게 더 권하고 싶은 책이다. |
햄릿은 우유부단함을, 돈키호테는 생각없이 무모한 행동을 대표한다고 생각해요.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에서는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가 햄릿과 돈키호테을 비교하며 인간 본성과 인생의 매커니즘을 들여다본다니 기대되었습니다. 작가가 다른 작가에 대해 평전을 쓴다는 건 상당히 드문일입니다. 투르게네프처럼 뛰어난 작가가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작품을 비교했다는 자체로도 관심을 불러일으켜요. 셰익스피어는 16세기의 사람인데 그의 삶은 의문투성이라고 합니다. 그의 초상화, 무덤 속 주검도 그의 것이 아니라고 해요. 엘리자베스 여왕이 연극을 좋아하여 당시 사회상황을 선구자적으로 재현하여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벤자민 존슨은 셰익스피어는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찬양했어요. 토머스 칼라일은 언젠가 인도제국을 잃게 되겠지만 셰익스피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햄릿은 권력을 향한 인간의 탐욕, 위선, 사악함, 그로 인한 햄릿의 인간적 고통과 고뇌를 다룬 비극입니다. 괴테는 그를 훌륭하고 숭고한 가장 도덕적인 인간이지만 영웅적인 기력이 부족하여 스스로 짊어지지도 못하고 던져버리지도 못하는 무거운 짐을 진 채 거꾸러진 인간이다라고 평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잔인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죽은 듯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재앙에 맞서 싸워야 하는가 p.16
세르반테스는 군에 입대하여 전투에도 참전하였고 부상으로 왼손을 평생 쓸 수 없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와 궁핍하게 지냈고 세금 징수관으로 일하다 세금 배달 사고로 징역형을 받았어요. 돈케호테 1권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생활고로 출판업자에게 저작권을 넘겼습니다. 2권을 낸 후에는 수종증의 악화로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세르반테스는 스페인이 신대륙 진출로 열강대열에 합류한 시기에 성장했고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배한 뒤 몰락할 시기에 사망했습니다. 돈키호테와 그의 조수 산초 판사는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영웅적 가상 세계와 환멸의 현실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모든 소설가는 어떤 형식으로든 모두 세르반테스의 자손들이다 - 밀란 쿤데라 p.25
돈키호테의 분량이 상당하여 스페인에서도 끝까지 읽은 사람은 10명에 2명 정도라고 해요. 그 용기가 하늘을 찌른 강인한 이달고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노라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세상은 그가 무서워 떨었노라 그런 시절 그의 운명은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 돈키호테의 묘비명 p.32 햄릿과 돈키호테는 신기하게도 같은 1605년에 출간되었습니다. 햄릿은 부유한 왕자에 매력적인 외모이고 돈키호테는 초라한 차림에 뭔가 홀린 듯한 나이든 사람입니다. 햄릿은 분석과 진단과 자기중심과 그에 따른 불신을 갖고 있고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자신의 자아 역시 의심에 대상에 올려요. 돈키호테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 무언가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고 필요하다면 고통을 견디고 생명까지도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이타적인 사람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돈키호테는 미치광이라고 조롱당하니 전혀 닮고 싶은 인물이 아니에요. 산초 판사조차 그가 정상이 아님을 압니다. 그럼에도 산초는 돈키호테를 위해 가정을 버리고 모든 고난을 견디며 죽을 때까지 헌신해요. 돈키호테들은 무언가를 창안하고 햄릿들은 창조된 것들을 활용한다. 삶은 이 두 극단의 어느 한쪽을 향해 움직이지만 그들 중 누구도 한쪽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p.74
19세기의 투르게네프에겐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수백년 전의 사람이지만 그들의 작품이 여전히 사랑받는 사실이 부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작품도 세기를 넘어 사랑받길 바랐을테지요. 그가 애정과 존경을 담아 분석한 햄릿과 돈키호테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 자체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