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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교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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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교자가 되고 싶다 - 조영민 목사 <룻기>(2015, 죠이선교회) 를 읽고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은혜와 도전을 받았다. 무엇보다 은혜를 받은 것은 룻기설교를 이렇게 완성도 있게 풀어낸 말씀 때문이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지평의 확장 때문이다. 룻기를 풀어감에 있어 '빵집(베들레헴의 의미)에 빵이 없다'는 논리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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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교자가 되고 싶다 - 조영민 목사 <룻기>(2015, 죠이선교회) 를 읽고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은혜와 도전을 받았다. 무엇보다 은혜를 받은 것은 룻기설교를 이렇게 완성도 있게 풀어낸 말씀 때문이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지평의 확장 때문이다. 룻기를 풀어감에 있어 '빵집(베들레헴의 의미)에 빵이 없다'는 논리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것을 현재의 한국교회의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시켜서 현재의 옷을 입고 다시 복음 앞에,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세우시는 귀한 설교자를 만나는 호광(!)을 누렸다. 그 호광은 빵집에 빵을 다시 들여놓는다는 빵집 문앞의 메모지 같은 이 작은 룻기를 통해서 실제로 빵이 들어오고 새로운 소망을 꿈꾸도록 하는 복음의 힘 앞에 서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짧은 본문에 흐르는 복음의 중심 메시지이자 룻기의 핵심인 '헤세드'의 하나님 사랑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즐거웠다. 그래서 너무 빨리 읽어버리는게 아닌가 하는 기분 좋은 아쉬움의  마음이 자꾸 들었다. 더 아껴두고 찬찬히 곱씹어 읽고 싶었고, 은혜에 잠기고 싶었다. 룻기를 해석함에 있어 우리가 아는 익숙한 지점을 이야기하며 그 부분이 아니라고 정리해주며 다른 지평을 열어젖히는 저자의 탁견은 거기서부터 우리로 하여금 다시 복음 앞에, 그리스도 예수 앞에 서게 했다. 설교자가 전할 것은 복음이며, 예수 그리스도임을 다시 한번 인식케 해주었다. 그 복음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흥분케 하며, 생기를 돌게 하고, '텅빈 쓰라림'(마라)이 '꽉찬 기쁨'(나오미)이 되도록 해준다.

 

  주일학교 시절 고등부 총무로 섬긴 적이 있었다. 회장으로 섬긴 친구가 워낙 출중해서 나는 그를 보며 나도 모르게 2인자 의식을 지닌 적이 있었다. 그는 그렇게 서울의 공대로 나는 부산의 인문대로 진학을 했다. 그런데 이후 둘 다 목회자가 되었다. 나는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선교단쳬 간사를 거쳐 목사가 되었고, 그 친구 역시 자원공학 전공으로 석사를 끝내고는 신학으로 전향을 해서 목사가 되었다. 어느 순간 그 친구를 바라보는 내 속의 2인자 의식은 사라지고 그를 좋은 동기이자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좋은 도전을 받은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그 친구 생각이 났다. 이 저자가 나와 비슷한 나이에 그가 내게 주는 도전 때문이다. 사역자로서 설교를 완성도 있게 잘 준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샘플이 될 정도로 좋은 도전을 준다. 샘이 날 정도다. 그런데 그것이 나도 이런 책을 내어야지 하는 시기의 마음보다는 언젠가 나 역시 내가 섬길 부분으로 한국 교회에 글로서 섬길 수 있기를 하는 마음의 도전을 준다. 이 책은  은혜와 도전이 함께 있는 참 좋은 강해집이다. 어렵지 않고 깊이가 있으며 차근차근 풀어내는 힘 역시 가열차다. 동시대적 관점으로 한국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로서 룻기를 읽기 원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평신도든 사역자든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읽고 나와 같은 은혜와 도전을 받길 바란다.

j*****l 2015.12.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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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샘이 변하여 영원한 기쁨의 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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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룻기’의 설교 말씀이다. 룻기의 말씀은 언제 들어도 복음이다. 저자의 글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공을 ‘룻’으로 생각할 수 있다. 조영민 목사님은 ‘나오미’와 ‘보아스’가 주인공이라고 이 책에 썼다. 모든 것을 잃고 스스로 자신을 ‘마라(고통)’라 부르던 소망 없는 과부 나오미와, 텅 빈 것을 채우시는 보아스라는 이름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로 말씀 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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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성경 룻기의 설교 말씀이다. 룻기의 말씀은 언제 들어도 복음이다. 저자의 글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공을 으로 생각할 수 있다. 조영민 목사님은 나오미보아스가 주인공이라고 이 책에 썼다. 모든 것을 잃고 스스로 자신을 마라(고통)’라 부르던 소망 없는 과부 나오미와, 텅 빈 것을 채우시는 보아스라는 이름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로 말씀 하신다. 나오미가 진정한 기쁨을 회복한 나오미로 변화된 것은 마라(고통)라는 가장 낮고 아픈 바닥까지 내려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나오미의 독백은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베들레헴의 심한 기근으로 요단 동편 모압으로 떠나게 된 원인과 그곳에서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찾지 못한다. 누구 하나 돌아봐 주지도 환영해 주지도 않겠지만, 풍년이 들었다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서 죽기로 하고 돌아가고자 한다. 나오미의 독백은 상담자 앞에서 하는 이야기의 느낌으로 썼다. 나오미(기쁨)라는 이름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건이다. 우리 집 이야기로, 나의 이야기로 이 사건을 읽어 보자.

    나오미 가족이 베들레헴을 떠난 이유는 빵집에 빵이 없었다는 것과 하나님이 계셔야 할 거룩한 땅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교회가 베들레헴이라고 한다면? “빵집은 간판은 달고 있지만 막상 빵을 먹으러 온 사람들에게 진짜 빵을 내주지 못하고 냄새만 풍겼던 빵 없는 빵집은 아닌가!” 이 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남편과 두 아들이 죽고, 이미 늙었고, 이방인이며 가난하기까지 한 나오미에게 어떤 희망이 있을까? 가능성이 전혀 없는 나오미에게 너는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어. 힘을 내!”라고 하는 이야기는 희망 고문이다. 제발 쉽게 나오미를 위로하거나 격려하지 말라.

    하나님의 자비와 인애가 가장 필요한 나오미는 혹 자신에게 부어 주실 헤세드가 있다면, 그 헤세드를 자신의 며느리들에게 부어 달라 구한다. 테레사 수녀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당신은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 사랑해야 한다. 자신에게 무언가 희생이 될 만한 것을 주어야 한다. 없어도 지장이 없는 것을 주는 게 아니라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나 그것 없이는 살고 싶지 않은,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렇다면 헤세드는 무엇인가? 강한 자가 약한 자와 하나 되어 약한 자를 약한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바로 그리스도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헤세드, 그 헤세드의 결정판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섬기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야기가 바로 이 룻기안에 있는 룻의 고백 속에 은연중 들어 있는 그림자다. 소망 없는 나오미에게 소망을 주고, 소망 없는 나오미와 하나가 된 젊은 룻. 그 룻에게서 우리는 우리를 약함에서 건져 내시려 이 땅에 내려와 약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분의 품에 안겨 있는 약한 우리를 만나는 것이다.(본문 54p)

    룻기는 텅 빈 나오미와 텅 빈 삶을 자처한 룻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베들레헴에서 어떻게 채움 받는지에 대한 성경 말씀이다. 예수님을 만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성도가 이 땅에서 행해야 하는 사랑의 방식이 담겨있는 귀한 설교 말씀이다. 나눔 교회를 위해 준비하신 말씀을 풍성히 나누어 주신 조영민 목사님과 죠이선교회에 감사드린다. 이 말씀이 꼭 필요한 곳에 뿌려져 믿음의 공동체로 돌아오는 역사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기를, 아픔의 땅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슬픔을 통과하여 영원한 기쁨의 샘에 다다를 수 있기를 진정 바란다.

s********9 2015.12.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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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설교자를 통해 듣는 희망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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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는 설교자다. 목회자에게 부여된 여러 역할이 있지만 으뜸은 설교다. 하여 목회자인 나 또한 설교에 관심이 많다. 설교를 준비할 때면 시중에 나와 있는 설교집을 샅샅이 뒤져서 살펴보는 편이다. 그럴 때면 아쉬움이 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 설교자들의 설교 일색이다. 물론 검증되었으니 믿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출판사들이 앞 다투어 출판을 한다. 허나 살짝 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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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자는 설교자다. 목회자에게 부여된 여러 역할이 있지만 으뜸은 설교다. 하여 목회자인 나 또한 설교에 관심이 많다. 설교를 준비할 때면 시중에 나와 있는 설교집을 샅샅이 뒤져서 살펴보는 편이다. 그럴 때면 아쉬움이 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 설교자들의 설교 일색이다. 물론 검증되었으니 믿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출판사들이 앞 다투어 출판을 한다. 허나 살짝 진부하다. 어딘가 숨겨진 보석 같은 설교자들이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설교자의 책을 출판한 들 얼마나 찾을까? 출판사의 고민도 내 모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읽는 설교 룻기”>는 고마운 책이다.

    조영민 목사의 룻기는 성경적 설교이다. 설교는 성경 본문을 기초로 하니 당연히 성경적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성도들이 알아듣기 쉽게, 실제적이어야 한다는 덫에 걸려 지자체 강좌와 분간하기 어려운 설교들이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허나 저자는 철저하게 성경에 천착한다. 단어의 의미를 따져 묻고, 배경적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부지런히 라는 질문을 던지며 본문의 원의미를 찾는다. 이것이 얼마나 고된 작업인지 설교자들은 잘 안다. 그래서 피상적으로 지나고픈 유혹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을 성공적으로 해 냈다.

    또한 본 서는 구속사적 설교이다. 필자는 구속사에 대한 일종의 알레르기가 있다. 성경은 구속사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설교가 구속사적일 수는 없다. 오히려 구속사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잘못된 알레고리가 나오고, 지나친 비약으로 인해 합리적이지 못한 설교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저자는 나오미와 룻의 텅 빈 허기를 충만하게 채워주는 보아스를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독자의 시선을 예수님에게로 훌륭하게 연결했다.

    마지막으로 본 서는 현실적 설교이다. 현실적이라는 말은 실제적이란 말이며, 적용에 성공했다는 말이다. 저자는 룻기의 적용을 교회 공동체로 풀었다. 개인적 결단이 아닌 교회 공동체성을 구비하는 적용이어서 오히려 더 새로웠다. 덮어 놓고 교회를 비판하는 무책임한 설교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연히 비판하는 본인은 비판의 대상에서 자유롭고, 완벽한 듯 행세하는 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저자는 당시 베들레헴을 오늘의 교회와 일치하면서 그래도 교회이어야 하는 이유를 가슴 따뜻한 목회자의 심장으로 잘 연결했다.

    읽는 설교를 읽는 내내 저자의 설교를 듣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어느새 즐겨찾기 목록에 추가시켰다. 틈틈이 찾아 듣는 설교자의 목록이 하나 더 늘었다. 글과 말이 모두 좋은 설교자를 만나는 기쁨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저자의 연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필자와 비슷한 것 같아 부러움과 고마움을 동시에 가졌다. 여인들의 텅 빈 인생을 하나님이 생명의 떡으로 충만하게 채우셨듯이 저자의 강단 사역이 조국교회의 허기진 강단을 새롭게 하는 도구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YES마니아 : 로얄 s******w 2015.12.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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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 그리고 들리는 설교 “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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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 그리고 들리는 “룻기”   죠이 출판사에서 나온 ‘읽는 설교’ 시리즈의 두 번 째 책이다. 지난 번 화종부 목사의 “갈라디아서”를 통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감격적으로 경험했다면 이번 나눔 교회 조영민 목사의 읽는 설교 “룻기”를 통해서는 룻기 말씀이 읽힐 뿐 아니라, 들리고, 가슴에 남는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읽는 내내 룻기 말씀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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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 그리고 들리는 룻기

 

죠이 출판사에서 나온 읽는 설교시리즈의 두 번 째 책이다. 지난 번 화종부 목사의 갈라디아서를 통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감격적으로 경험했다면 이번 나눔 교회 조영민 목사의 읽는 설교 룻기를 통해서는 룻기 말씀이 읽힐 뿐 아니라, 들리고, 가슴에 남는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읽는 내내 룻기 말씀에 대해 공감과 함께 고개를 자주 끄덕이게 만드는 이 책의 장점은 13년 이상 청년사역에 전념하면서 말씀으로 승부한 저자에게서 온다. 9편의 매설교마다 성경적 주해에 기초하면서도 뻔함과 구태의연함을 넘어서는 본문에 대한 신선하고도 창조적인 해석과 접근이 있었다.

 

예를 들면 룻기1:1-6을 강해한 ‘1장 빵집에 빵이 없으므로에서는 사사시대의 한 복판에 위치한 룻기의 시간적, 장소적 배경을 짚어가며 나오미가 베들레헴을 떠나 비참하게 된 이유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빵이 없는 빵집, 베들레헴 신앙공동체의 문제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짚어낸다. 이 글을 읽을 때 ! 공동체가 회복되어야 하는구나!’ 하는 가슴 깊은 수긍과 동시에 회개하는 마음이 들었다.

 

, 저자는 남편과 아들을 다 잃고 유다로 돌아오는 나오미에게 죽는 일 외에는 당신을 버리지 않겠다고 하는 룻을 통해 헤세드란 약한 자가 곤궁에 처했을 때 강한 자가 그럴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보이는 충성임을 설명한다. 룻기의 헤세드하면 하나님께서 나오미에게 베푸신 인애나,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언약적 사랑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룻이 나오미에게 베푼 충성과 사랑 역시 헤세드라는 해석, 이 나오미를 향한 룻의 헤세드가 보아스의 헤세드로,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헤세드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참 새롭게 다가왔다. 덕분에 나 자신도 누군가의 헤세드를 기대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베풀어야 하고 그렇게 할 때, 더 큰 하나님의 헤세드를 경험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복음과 말씀에 대한 신선한 깨달음이 계속 이어져 감사했다.

 

잃어버리고, 잊어버렸던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에 대한 열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읽는 설교 룻기였다. 모든 것을 상실한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낯선 땅에서 허둥지둥하는 나오미같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해 드린다.

 

 

 

e******8 2015.12.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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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훌륭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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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훌륭한 이야기 / 읽는 설교_룻기 / 조영민 저/ 죠이선교회"한 번 읽어봐요. 참 좋아요." 남편에게 권했다. "룻기는 이미 훌륭하지." 그의 명쾌한 답변처럼 그렇다. 이미 구약성경의 룻기는 그대로 훌륭하다. 어쩌면 구약성경을 읽은 모두가 동감할지도 모른다. <나눔교회> 담임목사인 저자와 그의 룻기 설교를 들은 성도들도 고개를 끄덕이리라. 그래서 더 이 책이 반갑다. 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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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훌륭한 이야기 / 읽는 설교_룻기 / 조영민 저/ 죠이선교회


"한 번 읽어봐요. 참 좋아요." 남편에게 권했다. "룻기는 이미 훌륭하지." 그의 명쾌한 답변처럼 그렇다. 이미 구약성경의 룻기는 그대로 훌륭하다. 어쩌면 구약성경을 읽은 모두가 동감할지도 모른다. <나눔교회> 담임목사인 저자와 그의 룻기 설교를 들은 성도들도 고개를 끄덕이리라. 그래서 더 이 책이 반갑다. 


우리의 지금 모습이 투영되어 나오미의 삶에 겹쳐 보인다. 텅 빈 공허와 궁핍과 고통이 느껴진다. 그녀에게 없는 빵이 우리에게는 실제 빵 일수도, 직장일수도, 건강일수도 그리고 사랑일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나오미에게 내 모습을 입히고 룻기를 읽는다. 누군가는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보아스를 기다리는 이 일수도, 누군가는 아직도 모압 땅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겠다. 모두 공허와 만족 없는 차가운 시대 속에 하나이다 . 


조영민 목사도 그런 시대와 더 차가워진 교회들 속의 한 목자로 성도들 앞에 서있다. 새롭게 담임목사로 부름 받고 성도들 앞에 서 있는 이의 심정을 나는 헤아릴 수 없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로 생명의 부활을 바라는 기도를 알 뿐이다. 누구나 그 기도로 제자의 길을 가며, 누구나 그 소망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세상이 춥고 사사 시대처럼 혼란스런 공기를 마신다. 그들의 텅 빈 가슴에 참된 쉼으로 평안하기를 구하는 설교. 따뜻한 빵으로 힘을 얻고 살아가자는 설교. 그 사랑의 이야기를 설교라는 무거운 그릇에 담아 부드럽게 나눴다.


아홉 편의 설교는 온기를 주며 다가와 열기를 남기고 마무리 되었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인애하신 구세주를 나누고 나오미에서 보아스로 살아가려는 뜨거움을 심었다. 나오미로 머물러 있지 않고 룻이 되고 보아스가 되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모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는, 아주 잘 아는 이야기로 뜨거운 예수 그리스도를 살고 싶게 만들었다. 너무나 작은 것으로 울고 웃는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분,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빵집에 빵을 채워주시는 분과 함께 사는 평안이다.


룻기를 알고 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오래 전에 믿었다, 이미. 그러나 살아내고 있는가, 지금. 나에게 준 그 사랑에 반응하고 있는가, 오늘. 지적과 비난에 빠른 그 입을 다물고 다시 읽으라. 이미 훌륭한 이 책이 입의 말보다 눈에 눈물을 흐르게 하리라.

a******1 2015.12.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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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마음은 어떻게 채워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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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 방은 부엌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살림이 많은 집이었다면 창고로 썼을 법한 작은 방에는 책상과 서랍장이 들어가고, 한 사람이 누우면 딱 좋은 공간이 남았다.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어릴 적 그 방이 가끔 생각나는 것은, 아침마다 들려오던 어머니의 밥 짓는 소리 때문이다. ‘칙칙폭폭’ 요란한 압력밥솥 소리와 ‘또각또각’ 야채 다듬는 도마 소리에 눈을 떴고, 방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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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 방은 부엌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살림이 많은 집이었다면 창고로 썼을 법한 작은 방에는 책상과 서랍장이 들어가고, 한 사람이 누우면 딱 좋은 공간이 남았다.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어릴 적 그 방이 가끔 생각나는 것은, 아침마다 들려오던 어머니의 밥 짓는 소리 때문이다. ‘칙칙폭폭요란한 압력밥솥 소리와 또각또각야채 다듬는 도마 소리에 눈을 떴고, 방문을 열면 요리에 열중하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어김없이 내 눈에 들어왔다. 막 지은 밥 냄새와 구수한 국 냄새가 내 속이 비어 있음을 일깨웠고, 그렇게 어릴 적 아침은 풍요로웠다. 어떻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똑 같은 소리와 똑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내 어릴 적 아침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머니의 곡진한 사랑이 나는 아직도 그립다.

읽는 설교 룻기를 대하며 어머니의 밥 짓던 모습이 연상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마라’(쓴 물)라 부르며 애통해하는 나오미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채워가시는가? 나오미의 아픔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수 천 년을 뛰어넘어 이 시대의 아픔도 치유하기에 충분하다. 헤세드, 무한한 긍휼로 베풀어지는 사랑. 이방 며느리 룻의 헤세드가 보아스의 헤세드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헤세드로 변주되는 이야기에서 교회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 저자의 헤세드도 읽힌다. 생명의 양식을 전하기 위해 말씀과 씨름했을 저자의 모습이 어머니의 그것과 닮아있다.

저자의 설교는 화려하지 않으며 눈을 번쩍 뜨이게 할만한 성공의 약속도 없다. 그러나 진실하다. 희망 고문과 긍정적 사고로 허물어진 공허한 가슴을 정직한 복음으로 채워간다. 세상이 부러워할만한 약속대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저자의 설교는 집 밥과 같다. 물리는 법은 없으되 건강은 확실히 챙길 수 있겠다. 화려하고 자극적이지 않으면 시선을 끌 수 없는 세상에서, 정도(正道)를 따라가고자 하는 목회자의 우직함이 읽혀서 좋다. <읽는 설교 룻기가 인상 깊은 이유이다. 지역 교회를 말씀으로 성실히 섬겨가는 목회자의 발견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s****4 2015.12.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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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에서 채움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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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에서 채움받기   우리는 상실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사랑을 잃었고 관계도 잃었다. 채움 받으려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지만 빼앗을망정 채워주지는 않는다. 더 이상 채워지지 않기에 기대도 소망도 없다. 이런 현대인의 자화상은 수천 년 전의 나오미에게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읽는 설교 룻기에서는 관점을 약간 달리하여 나오미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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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에서 채움받기

 

우리는 상실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사랑을 잃었고 관계도 잃었다. 채움 받으려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지만 빼앗을망정 채워주지는 않는다. 더 이상 채워지지 않기에 기대도 소망도 없다. 이런 현대인의 자화상은 수천 년 전의 나오미에게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읽는 설교 룻기에서는 관점을 약간 달리하여 나오미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사실 룻과 보아스의 만남도 나오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나오미의 불행한 인생이 아니었으면 룻이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고, 보아스 또한 등장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남편을 잃었고 자식들도 잃었다. 며느리들이 남아있었지만 그녀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됐을까? 자신을 마라, 즉 쓴물이라고 할 정도로 자존감 또한 무너져 있었다. 그러나 이런 나오미의 인생에 룻과 보아스라는 인물이 회복의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룻의 이야기를 본서는 참으로 따뜻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한 여인의 고통과 통곡의 이야기를 현대를 사는 우리의 이야기로 투영해가며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이 발달되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만 같은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은 인생의 날 수가 더할수록 더욱 공허해지고 있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지만 남는 것은 공허함뿐이다. 본서는 인간은 누구든 나오미처럼 텅 비어 있는 마음으로 고통당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그 인생을 끌어안음으로 참된 것으로 채우시는 예수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한다. 끊임없고 절대적인 헤세드의 결정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일방적인 사랑이야기가 룻과 보아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는 것이다.

 

오늘날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헛헛할 때 룻기를 펴보라. 그리고 옆에 읽는 설교 룻기를 같이 펴보라. 내가 나오미가 되고 나오미가 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오미를 향하여 다가오는 룻과 나오미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보아스의 움직임을 주목해보라. 또한 그들의 언어와 작은 몸짓을 놓치지 말라. 그렇다면 나를 향해 다가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풍성한 헤세드 사랑의 향연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여 누릴 수 있을 것이다.

c******2 2015.12.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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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민의 룻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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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하나님을 보다조영민의 <룻기>를 읽고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도적을 피하면 강도를 만난다고 했던가? 목회에 회의를 느끼고 교회답지 못한 교회의 모습에 크게 실망해 도망치듯 시골로 내려왔다. 아내의 병을 핑계 삼아 왔지만 교회를 떠나고 싶은 이유가 더 컸다. 사역을 내려놓고 시골에 내려오면 아내의 병은 더 빠르게 회복하고, 삶도 더 풍성해 질 것 같았다.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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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하나님을 보다

조영민의 룻기를 읽고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간다도적을 피하면 강도를 만난다고 했던가목회에 회의를 느끼고 교회답지 못한 교회의 모습에 크게 실망해 도망치듯 시골로 내려왔다아내의 병을 핑계 삼아 왔지만 교회를 떠나고 싶은 이유가 더 컸다사역을 내려놓고 시골에 내려오면 아내의 병은 더 빠르게 회복하고삶도 더 풍성해 질 것 같았다착각이었다아내의 병은 호전현상이 없고 오히려 기침이 잦아지고 있다부산이나 시골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이럴 바엔 다시 부산에 올라가는 것이 더 좋아 보인다아내와 나는 집을 주변으로 가까운 교회들을 매 주일마다 찾아갔다크게 실망했다시골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기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만 남겼다한 마디로 심령을 후벼 파는 말씀도 없고십자가의 은혜를 외치는 교회도 없었다그저 주일이니 형식적으로 드려지는 종교적 행위 같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떡집에 떡이 없는 것이다두려웠다이대로 아내를 떠나보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말씀의 부재와 겹치면서 두려움은 배가 되었다살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했다.

 

나오미와 엘리멜렉이 떡집을 떠난 것은 두려움이 아니었을까살기 위해서는 기근으로 생존이 힘든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살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했다살기 위해서 말이다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그것은 성경적 근거에 의하면 기근은 하나님의 징계’(26)하나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통해 이스라엘을 풍요롭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25기근과 흉년은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린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인 것이다나오미의 가족이 베들레헴을 떠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범죄였던 것이다교회에 실증을 느끼고 하나님의 공동체에 대한 깊은 회의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최근에 어느 단체에서 교회는 출석하지 않지만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히는 사람의 통계가 1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우리는 그들을 가나안 성도라고 부른다교회는 떠났지만 신앙까지는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다나도 어떤 의미에서 가나안 성도다교회가 싫고교인들이 싫다나는 조영민 목사의 진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문제는 빵집에 있습니다빵집의 간판은 달고 있지만 막상 빵을 먹으로 온 사람들에게 진짜 빵을 내주지 못하고 냄새만 풍겼던 빵 없는 빵집이 문제입니다.”(29)

 

빵이 없는 이유는 ’ 때문이다조영민 목사는 베들레헴의 흉년을 구약 성막 속 과 신약의 빵인 예수 그리스도까지 확장시킨다만약 이것을 교회로 환원하면 교회 안에 떡즉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것이 된다예수 없는 교회참담하지 않는가이것이 현대 한국교회의 실상이다말씀에 목말라 교회를 찾으나 갈증만 더해간다설교자도 아니고목사도 아닌 평범한 한 명의 성도로 찾아가 교회는 말씀의 중요성을 더 깊이 각인(刻印)시켜 주었다다시 설교를 하게 된다면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만을 설교하리라 다짐하게 된다십자가 없는 교회는 빵 없는 빵집과 다름없다그것은 죄다.

 

말씀은 순교도 결단하게 만드는 힘이 없다그러나 말씀의 부재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치를 떨게 만든다나는 목사로서 그동안 무엇을 전하며 살았던가무성의하고 불친절하게 말씀을 전하지 않았던가자문해볼 수록 부끄러움이 나를 휘감는다찬찬히 설교집을 읽어가며 나를 보고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을 본다.

h****i 2015.1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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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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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종합적’으로 이해해야한다. 예를 들어 십대 청소년이 빵집에서 빵을 훔쳤다고 해보자. 명백히 범죄다. 그런데 이 청소년은 잠잘 곳도, 먹을 것도 없는 고아였다면, 주변에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단순히 절도범이라고만 하고 끝날 수 있을까. 물론 어떤 이유로든 절도를 미화시킬 순 없다. 하지만 여기엔 절도라는 죄만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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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종합적으로 이해해야한다. 예를 들어 십대 청소년이 빵집에서 빵을 훔쳤다고 해보자. 명백히 범죄다. 그런데 이 청소년은 잠잘 곳도, 먹을 것도 없는 고아였다면, 주변에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단순히 절도범이라고만 하고 끝날 수 있을까. 물론 어떤 이유로든 절도를 미화시킬 순 없다. 하지만 여기엔 절도라는 죄만 있는 게 아니다. 절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 구조도 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죄는 개인적인 동시에 공동체(구조)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먼저 엘리멜렉 가족이 모압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주목해야한다. 그들의 고향은 베들레헴, 떡집이다. 떡을 만들만큼 소출이 풍성한 지역이다. 그런데 기근이 들었다. 룻기의 배경은 사시시대다. 사사시대의 기근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을 심판하실 때 주변 나라를 강하게 일으키셔서 이스라엘을 치셨다. 이 과정에서 많은 약탈이 있었고, 이스라엘은 고통당했다. 그래서 엘리멜렉 가족이 떠난다. 떠나는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떠난다고 손가락질만 할 수 있겠는가.

 

떠나서 잘 살면 좋았겠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나오미는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은 과부가 되었다. 이제 나오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오미는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이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여기에 며느리 룻이 함께 한다. 늙은 과부는 아무 소망이 없지만 룻은 아직 젊다. 고향(모압)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고향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헤세드(긍휼)를 본다. 헤세드? 헤세드는 강한 자가 약한 자와 하나 되어 약한 자를 세우는 것이다.

 

헤세드는 단순히 성격이나 품성이 아니다. 헤세드는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신앙 반응이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다!”는 룻의 고백은 그 어떤 신앙 고백보다 위대하다. 풍족한 상황이 아닌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텅 빈 상태에서의 나온 고백이기 때문이다. 텅 빈 나오미와 룻, 앞으로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나오미의 가족의 텅 빈 부분들을 채워 가신다. 보아스를 통해 양식을 채우시고 엘리멜렉의 가문을 회복시키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체적으로 헤세드를 실천할 율법을 가르쳐 주셨다. ‘이삭줍기고엘’(기업을 무르는 제도)이다. 보아스는 율법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켰다. 율법은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라고 했지만 보아스는 종들에게 일부러 이삭을 더 흘리도록 했다. 엘리멜렉의 가문을 회복시키는 일은 손해다. 당장 땅을 사면 좋을지 모르지만 결국 엘레멜렉 가문에게 돌려줘야 한다. 남 좋은 일이다.

 

저자의 말대로 룻, 나오미, 보아스는 자기 이익을 챙길 줄 모르는 바보. 약자가 일어설 수 있도록 제한 없이 자신의 것을 나누는 바보다. 바보 원조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죄로 인해 죽었고,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던 우리가 예수님으로 꽉 채워진다. 사랑 받지 못하면 사랑 할 수도 없다. 룻기는 이 자리에 우리를 끊임없이 초청한다. 손해와 희생, 위기를 감수해야 하는 바보의 삶은 위험하다. 계산적인 세상은 바보를 어리석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귀하게 생각한다. 세상이 보기에 자신의 이익에 밝았던,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은 무명한 자가 되었고, 바보처럼 사는 자는 유명한 자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모든 이야기를 기억하시고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실 것이다.

 

그러니 바보가 되기를 부끄러워하지 말자. 하나님은 오늘도 이러한 바보들을 통해 자신의 헤세드를 보여 주신다. 바보들의 행진이여 영원하라!

y******7 2015.12.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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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빔'과 '꽉 참'의 사이에서 - '읽는 설교 룻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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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룻기’를 본문으로 하는 많은 설교를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설교 내용이 ‘룻의 효와 보아스의 사랑’이라는 테마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이면 단골 설교 본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설교를 들을 때마다 갈증이 있었습니다. ‘룻기에서 효 말고 다른 메시지는 찾을 수 없는 것인가? 효에 관한 메시지는 복음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물음표가
"'텅 빔'과 '꽉 참'의 사이에서 - '읽는 설교 룻기'를 읽고" 내용보기

지금까지 ‘룻기’를 본문으로 하는 많은 설교를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설교 내용이 ‘룻의 효와 보아스의 사랑’이라는 테마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이면 단골 설교 본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설교를 들을 때마다 갈증이 있었습니다. ‘룻기에서 효 말고 다른 메시지는 찾을 수 없는 것인가? 효에 관한 메시지는 복음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물음표가 그것이었습니다. 목사가 되어 ‘룻기’를 본문으로 설교를 하려고 해도 똑같은 물음표가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보편적 윤리인 효나 가족 간의 사랑 말고는 풀어낼 것이 없다는 말인가?’라고 말이지요.

 

그러다가 조영민 목사님의 책 ‘읽는 설교 룻기’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읽는 내내 지금까지의 갈증과 물음표가 많이 해소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텅 비어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의 모습에서 ‘죄의 무게를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회심’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저자의 통찰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총 9개의 설교들이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그 분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 맞추어져 있다는 것도 목사인 저로서는 커다란 도전이었고 저의 설교에 있어서도 본받을 만한 좋은 모범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움은 책 전체가 ‘설교’를 옮겨 놓은 것이긴 하지만 예화나 인용의 출처를 각주나 미주로 남겨 주셨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점입니다. 가령 “유대인들의 매장법”에 대한 내용(p53)이나 “짐 엘리엇과 그의 친구들의 남은 이야기”로 인용해 놓은 부분(p172)은 저자가 어떤 책에서 가져 왔는지를 명확하게 밝혀 주는 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추가적으로 더 자료를 찾아보도록 독려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그런 아쉬움이 몇 군데 있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읽는 설교 룻기’는 그냥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귓가에 ‘들려 지는’ 그리고 ‘들려 져야 할 설교’가 되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내 인생 가운데 여전히 ‘텅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헤세드’에 반응하며, 나도 누군가의 ‘텅 비어 있는 자리’를 그 분이 주신 ‘헤세드’로 채워 가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책을 통해 그것을 다짐해 봅니다.

o****8 2015.12.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