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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국 사회는 정말 평등한가? 나는 아직까지 한국 사회가 그 이상향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차별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더 발견해야 할 때다.(p.38)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차별 덕분에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나서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난 누구에게도 차별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어느 쪽일까? 고백하건대, 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이다! 차별주의자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무의식중에 자리 잡은 차별을 발견했고 나 또한 놀랐다. 차별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 “희망을 가지세요.”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싶을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희망을 가지세요’ 이 말을 장애인한테 한다면 다른 의미로 남길 수 있다. 장애인의 삶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삶에 가치를 매기는 것이기에 모욕적이라고 한다.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럴 마음이 아니었을지라도, 받아들이는 이에겐 희망이 없음을 전제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한창 떠들썩했던 흑인 분장을 둘러싼 논쟁을 살펴봤다. 그때는 그냥 웃고 넘기면 안 되나?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양인들의 눈을 작다고 표현할 때 열이 받는다는 걸 잊고 있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약함과, 불행, 부족함, 서툶을 볼 때 즐거워한다고 했다. 우월성 이론은 이렇게 탄생한다. 토머스 홉스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할 때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나온다고 설명한다.(p.86-87) 유머, 장난,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누군가를 비하함으로써 웃음을 유도하려고 할 때, 그 ‘누군가’는 조롱과 멸시를 당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놀려도 되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반복된다.(p.91) 그 누구도 놀려도 되는 사람들은 없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마, 화를 내며 따질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차별은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차별이 공정하다는 생각일까? 장애인과 비장애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준별 학급 편성. 노키즈존, 노스쿨존, 노장애인존. 다문화 아동, 다문화 -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 거부당하는 느낌, 차별받는 느낌을 받는다면 .. 어떻게 해야 할까? > 어쩔 수 없지~ 하고 돌아서야 할까? > 목소리를 내며 싸워야 할까? 나 또한 차별 당하는 쪽과 차별하는 쪽 두 군데 다 발을 담그고 서있다. 그들의 입장만 들어줘야 해? 다수인 우리의 말은 왜 안 들어줘?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은데 우리의 목소리가 어디까지 갈까? ‘우리’에서 ‘그들’로 넘어설 때마다 배타적인 의미를 가진다에 동의한다. 어느 위치냐에 따라 나의 입장은 달라진다.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의 차별들이 나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평등을 외치지만 한편으로는 평등을 외치기에 껄끄러운 부분이 존재한다. 나쁘다 옳다의 개념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 대한 저항심일까? p.205 평등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평등은 인간 조직이 정의의 원칙에 의해 지배를 받는 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상호 간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 평등은 살아움직이는 것 같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태어나기도, 당연하게 자리 잡기도 한다. 더 많은, 더 다양한 평등을 원한다. 어디까지 만들어가야 할까? 그저 모두가 평화롭길 바라지만 그 속에는 불평등에 목놓아 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평등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에게 이 책은 발견이었다. 내가 무의식중에 차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해줬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세상을 처음 구경한 듯한 눈이 확 트이는 느낌이다. 앞으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 본다. 나의 고민이 우리의 고민이 되길 바라면서! ![]() #선량한차별주의자 #김지혜 #창비 #선량한차별주의자리뷰대회 |
![]() 우리 헌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성별이나 종교, 사회적 신분에 어떤 영역에 있어서도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라고 의문을 던지면 '그렇지 않다'라는 대답이 분명히 나올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는 인간존엄성 보장을 위한 두 축과 같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온전히 실현하는 민주주의 국가라 볼 수 없게 된다.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는 평등의 원칙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보이지 않는 투명한 선 하나를 긋고 선의 안 쪽과 바깥 쪽을 구분한 뒤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는 해당 선을 넘어오지 않도록 꽤 오랜 시간 강요하며 특정 사람들(집단)을 외롭게 만들어 왔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여성, 장애인, 나이, 난민, 성소수자, 비정규직 등을 이유로 여전히 불합리한 차별을 하며, 어쩌면 그들조차 이를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로 오래도록 인권의 사각지대 안에 그들을 밀어놓고 존엄성을 위협하는 만행을 저질러 왔다. 모두 때때로 선량한 얼굴을 하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차별이라는 문제를 매우 섬세하고 예리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공동체 속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차별적인 언행을 구체적으로 다뤄줌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차별이 얼마나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더불어 이러한 차별이 얼마나 은밀하게 사회 구조 내에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다양한 예를 통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차별이 다층적인 양상과 작동원리를 알기 쉽게 알려줌으로써 차별을 지양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전달해준다. 이 책은 차별이라는 것이 비단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적인 문제임을 논의함으로써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차별의 문제가 사실은 내 삶에, 그리고 내가 몸을 담고 있는 공동체의 삶에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제 우리 사회가 더 희망적이고 인간적인 방향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차별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연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설득력있게 말해준다. 그렇다면 교사로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름'에 대한 존중과 포용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차별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고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교실에서 모든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며 그들의 배경과 정체성을 이해하며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 무의식 속에 자리한 차별적 요소나 가치들이 있는지를 수시로 점검하는 일을 습관화해야 한다. 교육이야말로 사회의 변화를 가장 근본적으로 이끌 수 있는 중요하고도 강력한 도구라 믿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이 놓치고 있는 '무의식'에 내제된 편견을 깨닫고 이를 성찰하며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일상에서 반복하는 언행들에 대한 성찰을 지속하고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공동체 속에서 이를 묵인하고 방관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용감하게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는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오만에서 벗어나 나 자신과 내가 속한 공동체가 차별적이지 않은지 끊임없이 점검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차별에 대한 인식의 무지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차별을 철폐하는 데 앞장서는 시민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선량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깨어있고 차별에 민감함을 가진 시민이 되어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국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는 사회 집단 내,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차별을 방지하고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회 면면을 촘촘하고 세밀하게 살펴 법과 정책을 통해 구조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학교 교육도 중요하지만 작가님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국가가 나서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무지함과 방관은 오히려 차별을 공고하게 자리한다는 점을 기억하여 지속적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 특별히 사회 다수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차별과 관련된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더불어 법과 제도가 잘 안착되고 시행되는지를 수시로 평가하여 보이지 않는 차별의 경계를 허무는 노력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결국 모두가 평등한 사회, 하나가 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별에 민감한 감수성을 가진 모두가 서로의 언행을 성찰하며 주변을 향한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을 가질 때, 예외ㅍ없이 모두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촘촘한 법과 제도를 만들 때 가능한 일임을 기억해야 우리는 이ㅍ책을 통해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개인과 사회 구성원, 국가가 함께 손을 맞잡고 진정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단단하게 연대해야 함을 모두가 기억하고 행하는 날이 속히 오길 바래본다. #창비#김지혜#선량한차별주의자#선량한차별주의자리뷰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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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선량함이 어떻게 차별주의자를 수식할 수 있지? 책 제목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다. 작가는 대체 왜 이런 제목을 지었을까? 또 책은 누굴 향해 말하고 있는 걸까? 확실한 건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단언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다지 선량하지도 않지만, 누군가를 차별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차별받은 삶을 살아온 적도 없다. 책 제목이야 어떻든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믿었다.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기 전까지는.
사실 책을 읽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의 존재는 익히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책을 두고 오가는 이야기들이 영 신경 쓰였다. 책이 주는 영향력과 파급력 때문에 나는 망설였다. 일종의 두려움이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낙인을 찍는 시선들이 무서웠다. 그러나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호소하는 두려움과 불편함이 어쩌면 나만 감수해야 할 ‘사소한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고 말이다. 물론 책을 읽은 후에도 현실은 쉽지 않은 삶의 연속이다. 세상은 여전히 불편함을 이상함으로 치부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차별과 불편함을 마주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애써 부정하고, 외면해왔던 ‘나’와 ‘차별’의 조우를 진솔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어린 시절, 나는 누구에게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아이였다. 내 유일한 양육자인 엄마는 나를 보면 늘 다그치기 일쑤였고, 주위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내 가슴을 후벼파는 말이 있는데, “아빠 없이 커서 그런가?”이다.
2007년, 내 나이 8살. 나는 어렸지만 ‘차별’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느꼈다. 당시 내 담임선생님은 학급 작품을 게시할 예정이라며, 우리 반 아이들에게 미술 과제를 내주셨다. 나는 열심히 구상하고, 만들어서 제출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내 작품은 한 달 가까이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나를 제외한 아이들의 작품이 하나둘씩 게시될 때마다 나는 초조했고,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와 함께 만든 작품도 거절되자, 결국 엄마가 학교를 찾아갔다. 그 이후의 사정은 성인이 되어서야 들었는데, 선생님은 결코 나를 ‘차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한부모 가정의 아이가 전학 왔으니, 더욱 신경 쓴 것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배려는 나에겐 엄격한 잣대로 작용했고, 그것이 명백한 차별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른들은 내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나를 가장 씁쓸하게 만드는 것은 정작 ‘나’는 이 이야기에서 철저히 배제된 존재라는 점이다. “요즘 세상에 이혼?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이혼 후 홀로서기를 택한 사람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자녀가 있는 이혼이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더욱이 나는 그 ‘자녀’의 입장으로서 세상이 결코 나를 온전한 아이로 바라봐주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깨달았다. 이혼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니다. 어린 마음에 남의 집들을 항상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내 사촌 동생은 나에게 가장 큰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온전한 형태의 가족, 부족함 없어 보이는 삶이 우리 집과는 너무나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가족들의 식사 자리에서 이모부가 웃으며 말했다. “ㅇㅇ아, 젓가락질 그렇게 하면 가정교육 못 받았다는 소리 듣는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가볍게 웃어넘긴 다른 가족들과 달리 당사자인 나는 전혀 웃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수치심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날 이후, 나는 젓가락질을 완전히 ‘고쳤다’. 혹여나 내 젓가락질이 또다시 나와 내 가정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향한 그 시선들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 사촌 동생의 가족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때때로 어른들의 시선은 직접적인 호기심을 드러내는 아이들보다 더 잔인하다. 그저 배려라는 가면을 쓴 채 교묘한 형태의 차별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혼 가정과 그 자녀를 향해 차가운 말들을 서슴지 않고, 그들이 받을 상처 또한 개의치 않는다. 어린 마음에는 ‘내가 못났기 때문’이라는 왜곡된 자아상을 갖고, 스스로 괴로워했다. 그러나 어른이 된 내가 다시 묻는다. 정말 내가 못나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나를 다르게 보고 대우했기 때문은 아닐까. 어린 내가 듣지 못했던 대답을 해주기로 한다. 결코 내가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어린 시절 경험한 아픔은 겪을 필요 없던 ‘차별’이었음을. 그렇게 어쩌면 차별은 선량한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잡대’, 지방의 잡스러운 대학의 줄임말이다. 한때 지방의 사립 대학교를 일컬었으나, 현재는 지방에 위치한 대부분의 대학을 가리키기도 한다. 나는 흔히 말하는 ‘지잡대’ 출신의 영어 강사이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가르치며 느낀 점은 아이들도 어른들만큼이나 대학 서열에 민감한 기준을 가진다는 것이다. 어느 날, 쉬는 시간 도중 아이들끼리 ‘대학’에 대한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강사의 ‘출신 대학’에 관심을 옮겼다. 순간 당황했지만, 숨기고 싶지 않아서 나는 솔직하게 모교를 밝혔다. 일순간 돌아오는 대답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날카로웠다. “선생님 지잡대네. 지잡대.”라는 혼잣말부터 시작해서 “부산대 정도는 갔어야죠.”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의 발언이었다. 기분이 나쁘기보다도 이처럼 노골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잘 없어서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심 그러한 반응을 스스로도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점에서는 씁쓸하게 느껴졌다.
책 내용 중 “‘간판’이 개인의 능력과 기회를 만든다는 것”에 크게 공감했다. 내가 쌓아온 능력들은 ‘지잡대’라는 낙인에 가려진 채 부정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학원에서 나는 시간 강사이지만 나름 인정받는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교를 밝혔을 때 싸해지는 분위기를 경험한 이후에는 출신 대학을 숨긴 적도 더러 있다. 이러한 경험은 직장 내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앞으로 내가 도전하고자 하는 모든 일에서 나는 끊임없이 지잡대 간판을 ‘해명’하고, 나의 가치를 더욱 증명해야만 할 것이다. 기회는 모두에게 공정히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책의 구절 중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은 구성원들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내면의 시선이 되기도 한다.”라는 말에도 크게 공감했다. 나는 이것을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 느꼈는데, ‘지잡대생은 권한이 없다’라는 글이 큰 공감을 받은 걸 본 적 있다. 이 권한은 곧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목소리를 낼 권리를 뜻한다. 지잡대를 다닌다는 이유로 그 소속원들은 차별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주장이 해당 소속원의 학생들로부터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스스로 부족하고 열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저항을 하지도 않는다.”라는 책의 구절과도 일맥상통하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출신 대학만으로 개인의 역량을 평가하고, 기회를 차단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러나 차별에 침묵하지 않고 강력하게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다닌 대학 학과 교수님이 그러하셨는데, 항상 강조하시던 수업 덕목이 기억난다. 바로 ‘남들의 평가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 것’이었다. 타인이 개인의 가능성과 역량을 대학 간판으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것에 적극적인 저항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무엇보다 우리 학과 학생들은 그 어떤 명문대 학생들보다도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힘이 있다고 강조하셨다. 사실 처음 이 말을 들을 땐 아리송했다. 그러나 교수님이 이끄신 학회에서 우리 학과 학생들이 서울대생을 대상으로 우승한 사례를 소개하며, 나는 그 말을 점차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한 사실 하나가 있다. 바로 내가 해당 교수님의 출신 대학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교수님은 일명 ‘명문대’ 출신이었다. 만약 교수님이 명문대 출신이 아니었다면 그 말에 설득력이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또한 책의 내용 중 ‘소위 명문대학의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긍정적인 고정관념을 얻는다.’라는 말과 이어진다.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나 또한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으로 누군가를 평가해왔다는 사실에 반성하게 된다.
저마다 어린 시절의 향수가 있다. 특히 좋아했던 만화를 보면 추억이 다시금 떠오르기 마련인데 나에게는 애니메이션, ‘아따맘마’가 그렇다. 형제가 없어 외롭던 나의 공허함을 톡톡히 채워준 기특한 만화이다. 무엇보다 보고 있으면 ‘온전한 가족’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에 가장 좋아하기도 했다. 만화 주인공인 엄마는 가정주부로서 매일 장을 보고, 집안일을 한다. 알아주는 이도, 도와주는 이도 없지만 ‘엄마는 원래 그런 것’이라며 감내하는 모습이 자주 그려지곤 했다. ‘엄마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동시에 만화 속의 헌신적인 엄마와 우리 엄마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나는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숨겼다.
우리 엄마는 워킹맘이었다. 나를 홀로 키우시며, 생계를 위해 가정 대신 일에 전념했던 것은 선택 아닌 필수였을지 모른다. 그것을 이해하기엔 어렸던 내가 우리 엄마는 왜 ‘보통 엄마’와 다른지 늘 원망하기 바빴다. 이 대목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말하는 바를 다시금 되새겨보기로 한다.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고, 원래 그런 것이라는 믿음을 항상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원래 그런 것’이란 정해진 바가 없다. 이러한 관념은 정해진 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시, ‘다른 것’ 대신 ‘틀린 것’으로 간주하기 쉽다.
엄마는 나의 염원대로 내가 초등학생 시절, 재혼을 선택하셨다. 이후 지금의 남동생이 태어났다. 남동생은 어릴 때부터 특별한 존재였다. 보통의 남자아이들과는 달리 분홍색 옷과 공주 놀이하는 것을 좋아했다. 문제는 동생이 커가면서, 곱지만은 않은 시선들이 하나둘씩 쏟아지기 시작한 점이다. 무엇보다 남동생은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이상한 아이’로 치부되곤 했다. 할머니는 남동생을 보며, “그러다 고추 떨어진다.”를 말씀하셨고, 엄마는 “그럴 거면 남자 말고 여자나 해라.”라고 하셨다.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으로서 나는 그냥 내 동생이 편하게 살기를 바랬다. 평범한 또래 남자아이처럼 공놀이와 로봇을 좋아했으면 했다. 그것이 진정 동생을 위하는 마음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또한 동생에게 다르다며 손가락질하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은 동생이 아닌 내가 편해지고 싶은 마음이었을 뿐이다.
우리 가족은 이처럼 조금씩 모나고, 일그러져있다. 사회가 규정하는 가족의 형태와 성역할에 대한 기대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당연하지 않은 것’과 ‘원래 그런 것’ 사이에서 혼란스럽게 존재하고 있다.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믿음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정말 그것이 당연한 것이 맞냐고.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긴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로 원래 그런 것에 대한 인정도 필요하다. 다르다고 그것을 교정하고,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책을 읽고 새로운 마음과 마주하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는 대상자가 ‘특정 인물’만을 가리키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말 누구라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와 차별은 상관없다는 믿음이야말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믿어왔던 ‘차별’을 조우하고, 깊이 사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지나온 일련의 경험을 다시금 떠올리며, 내가 느낀 불편함의 출처를 다시 알아본 기회가 되었다. 그 과정을 통해 나의 아픔뿐만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도 공감하고, 인정하고자 하는 마음이 새롭게 열렸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리뷰를 작성하며, 내 이야기를 모두 공개하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가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지만 곧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용기를 얻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고, 우리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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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차별주의자 #김지혜 #창비 #선량한차별주의자리뷰대회 ‘차별’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한다는 뜻으로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이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손에 쥐었다. 왜냐하면 나는 차별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얼굴이 홧홧해졌다. 저자가 짚어주는 우리의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하는 차별이 가슴으로 쑥 들어왔다. 그러면서 그동안 무심하게 해왔던 차별적인 말과 행동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 이 책은 작가의 무심한 차별을 일상으로 겪어야 하는 이들이 진정으로 우리와 함께 하는 날을 위한 바람을 담고 있다. 자분자분한 작가의 필체는 차별이라는 묵직함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책 속에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 가,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 모두 3부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이야기들을 풀어냄으로써 우리가 알아야 할 부분을 꺼냄으로써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도 보여준다. ![]() 처음 저자는 차별에 담긴 묵직함을 보여주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특권은 주어진 사회의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해서 누리게 되는 온갖 혜택으로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보통의 우리도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 사람들은 평등이라는 대원칙에 동의하고 차별에 반대하면서도 부지불식간에 기울어진 공정성을 추구한다는 것을, 편견으로 시작된 경계는 집단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고정관념이 더해짐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차별하고 있다는 것도....... 여기저기 몸이 움찔거렸다. 모르고 있던 치부를 들킨 것 같아서, 겉모습이 나와 다르다고해소,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입으로는 배려한다면서도 사실은 자신의 편익을 우선으로 해왔다는 사실로,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보면, 한 번이라도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무심한 차별이 상대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를 준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얼굴이 홧홧해졌다. ![]() 다음으로 저자는 우리가 행하는 무심한 차별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은 차별에 대한 예를 들어 그 심각성을 짚어준다. 그리고 차별은 흔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은 소속감이 더해져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며 부정적인 고정관념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아 악순환으로 고정관념 압박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부정적 고정관념이 없을 때는 집단의 수행능력이 향상되는데 이른 고정과념을 주의 깊게 탐색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자신을 돌아본다. 그동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얄팍한 지식으로 아는 척하고 때로는 내 기준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저울질 하며 가끔씩은 남보다는 내가 먼저라는 생각으로 거침없었던 행동들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는 우리 일상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 잡은 차별이 언젠가부터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에 주목하며 가능성을 보여준다. 웃음거리고 주제가 되었던 우스꽝스러운 분장과 유머러스한 동작이었던 것이 무덤덤해지는 것은 반갑지만 그에 못지않게 혐오표현은 성을 중심으로 끔찍한 결과를 낳기도 하고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욕망으로 표출되고 중독되기도 하는 등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버렸다. ‘다문화’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이제는 익숙할 만도 한데 아직도 낯섬이 우선인 것을 보면 차별을 지우지 못한 것이리라. 주변에 공단인 자리 잡고 있어 쉽게 마주하는 국적이 다른 사람들에게 겉으로는 웃음을 보이지만 속으로는 나와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으로 무심함이 전부이다. 겉모습이 다르다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우리를 대신해 일을 하는 것은 괜찮지만 ‘우리’가 되는 것은 안 된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정작 나는 차별을 당연히 하면서 입으로는 성평등을 운운하고 있으니....... 국적이 다르다고 사람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울 수 없으니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윤리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 마지막으로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는 차별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리의 삶을 단도리 하는 법이 기준이 되는데 법이 부당할 수 있다는 의심을 시작으로 동성동본 금혼이 폐지됨으로써 평등해진 것처럼 우리의 삶에 맞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미국에서 뿌리 깊었던 인종분리 정책에 대한 저항이었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 법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정책이 사라지는 것처럼 소수자가 말을 걸어오면 바로 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바라는 평등을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불안정과 무시에 집단적으로 대항하는 평등주의 운동인 인권의 정치로 누구에게나 인간으로서 동등한 대우와 존중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차별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규칙을 만들고 따르기고 약속해야 한다. 허울좋은 ‘희망’ ‘용기’ ‘우리’라는 등 일상적인 답례용 말에서 벗어나 마음을 함께 할 수 있을 만큼의 진심을 담아야겠다는 치기어린 결심을 해본다. ![]() 차별금지법은 헌법과 국제 인권법의 원칙이 실현되도록 법률로써 구체화하는 작업으로 국가의 정책과 법률을 개선하고 차별하는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게 하는 적극적인 조치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수많은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젊었을 때는 스크럼을 짜고 학교 밖으로 나가 민주주의를 외쳤던 시간이 있어 그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이 성 평등이 많이 나아졌다고 안위하지만 여전한 차별을 실감하고 있다. 반면 내가 다른 누구를 차별한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기에 저자와의 대화에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를 대할 때는 겉으로만이 아닌. 진심으로 마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물질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세월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고 그 누구도 늙어가는 것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니 지금 현실에 만족하지 못해서 웅크리고 있는 것 보다는 새로운 마음으로 삶을 바꾸어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의 폐쇄된 집단이 아닌 수많은 ‘우리’들이 교차하고 만나는 연대의 관계인 ‘우리’를 가슴에 품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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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상평 작가는 소수집단에 속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대변하는 것을 보고 ‘사람에게 관심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은 후 그동안 내가 한쪽(장애인)으로만 생각이 치우쳐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차별을 받는 것이 장애인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닌데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하고 있었다.
몇 해 전 샘 오취리가 어느 고등학교 졸업식 사진으로 흑인 분장을 한 고등학생들에게 불쾌함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샘 오취리가 ‘예민하다’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민하다’라는 말이 당사자가 아닌 이상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 하다고 생각하였다. 개그맨들은 발달장애인은 단골 개그 소재로 사용한다. 또 어느 개그맨은 뇌병변장애인을 방송에서 흉내 내는 것을 보았다. 장애는 누군가의 고유한 정체성이다. 다른 사람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폄하하는 것에 화가 났다. 그것을 보는 장애 당사자나 가족이 그 장면을 보고 상처가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한 적도 있다. ‘재미’로 자신의 ‘밥벌이용’으로 ‘인기몰이용’으로 이용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비단 장애인만 해당될까? 우리나라에서 사는 외국인, 노인, 아동 등이 희화화 소재로 사용된다. 당사자들은 상처를 받았지만, 사과받지 못한다. 다수가 소수집단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음에서 이러한 상황은 반복된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가고 회사를 가고 아프면 병원 진료를 봤는다. 어느 누군가는 이러한 권리가 배제되어 사회활동을 누리지 못하고 아플까 봐 노심초사한다. 내가 누리는 것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특권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이 와닿았다. 특권을 누린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에는 차별하고 있을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감수성은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다른 집단들도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어 감사하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기를 꿈꾸기보다는 차이를 인정하는 세상이 오길 기대한다.
2. 문장수집 P. 9 차별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차별 덕분에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나서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차별은 분명 양쪽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두에게 부정의함에도, 희한하게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만의 일처럼 이야기된다.
P. 27 호의와 권리에 대한 이 이른바 ‘명언’은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무언가 베풀 수 있는 자원을 가진 사람은 호의로서 일을 하고 싶다.(중략)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주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는, 통제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는 일종의 권력 행위다. 만일 당신이 권리로서 무언가 요구한다면 선을 넘었다고 비난할 수 있는 권력까지 포함한다.
P. 37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질서 속에서 바라보면 버스의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것은 장애인의 결합이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다. 그러니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돈을 더 많이 내는 것이 공정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는 애초에 비장애인에게 유리한 속도와 효율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기울어진 공정성임을 인정하지 못했다.(중략) 교육청의 설명대로 여교사를 추켜세우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서 있는 기울어진 세상에서 익숙한 생각이 상대방에게 모욕이 될 수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P. 38 이 세계가 어떻게 기울어져 있는지 알기 위해 나와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사람과 대화해 보아야 한다.
P. 90~91 “농담은 농담일 뿐”이라고 가볍게 여기는 생각 자체가 사회적으로 약한 집단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중략) 그 ‘누군가’는 ‘놀려도 되는’특정한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반복된다. 우리가 누구를 밝고 웃고 있는지 진지하게 질문해야 하는 이유이다.
P. 109 장애인을 위해 다른 채용기준을 적용하는 것에 여전히 불편한 마음이 든다면,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 보자 애초에 이런 문제는 평가 기준을 만들 때 장애인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중략) 철저히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능력 기준과 평가 기준이다.
P. 124 상점 주인의 입장에서 손님을 거부하는 건 이 간단한 원리에 반할 때, 즉 수익을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올 때이다.
P. 184~185 휠체어를 탄 사람은 ‘언제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운동경기와 같은 특정 맥락에서 차이가 있더라도 다른 맥락에서는 차이가 없어진다.(중략) 우리는 사람으로서 보편성을 공유하지만, 세상에 차별이 있는 한 차이는 실재하고 우리는 그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P. 201 장애인의 평등한 선거권 보장을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지만 ‘해야 할 것’도 있다. 기표소를 계단을 올라야 하는 장소에 배치하지 않아야 하는 건 ‘하지 말아야 할 것’에 해당된다. ‘해야 힐 것’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 공보물을 만드는 것, 청각장애인을 위해 선거 관련 방송에 자막을 내보거나 수화 통역자를 두는 것, 지적장애인을 위해 이해하기 쉬운 선거 공보물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예산이 필요하지만 이는 우대가 아니라 평등을 위한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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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차별주의자 #김지혜 #창비 #사회정치 #사회비쳥 #인권문제 #사회적소수자문제 #한국사회비평 #차별에맞서는법 #우리의인식변화유도 #도서추천 #선량한차별주의자리뷰대회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의 세상에서 평등을 외치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 우리는 평등하기를 원한다. 누군가와 비교당하면서 차별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차별을 당하고 있기도 하고 우리가 차별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가 아무런 거부감없이 이야기 하는 단어들에서도 일어난다. 무언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울 겪을 때 '결정장애'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특별한 뜻 없이 이야기 하지만 장애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비하하는 뜻을 담고 이야기한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차이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차별이 보이지 않게 작용한다.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기묘한 현상 속에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차별을 하거나 받았는지 보여준다. 1부에서는 우리가 차별을 보지 못하고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는 이유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모든 사람은 가진 조건이 다르기에, 각자의 위치에서 아무리 공정하게 판단하려 한들 편향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차별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특권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의 날카롭고 다각적인 문제제기를 따라가다 보면, 아무리 선량한 시민이라도 차별을 전혀 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부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차별이 지워지거나 공정함으로 둔갑되는 메커니즘을 살핀다. 저자는 차별에 대한 논란들을 차근차근 해부하며 역으로 질문을 던지고, 인간 심리와 사회현상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이론을 소개하면서 독자가 자연스럽게 평등과 차별을 탐구해볼 수 있게 한다. 3부에서는 차별과 혐오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를 살핀다. 각종 논쟁과 실험을 풍부하게 제시하며,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한걸음의 대안부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폭넓게 살펴본다. 우리의 차별은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오는 경우다. 우리의 무의식중에 박혀있는 고정관념이 상대방을 판단함에 있어서 차별하게 되는 경우다. 예를 들자면, 연쇄살인범의 얼굴을 떠올릴때 어떤 모습을 떠올리는가? 우락부락한 풍체에 팔에 문신을 하고 얼굴에 흉터 하나정도는 기본적으로 있는 사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연쇄 살인범의 외모가 겉보기에는 순해보이는 경우도 많을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더라도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등장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외모에서 풍겨져오는 분위기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어느새 다문화가정들이 많이 자리잡았다. 우리는 인종의 다양성을 인정하는듯 하면서도 차별을 하곤 한다. 피부색으로 친구를 놀린다거나, 학교 방과후 교실에 다문화 아동이 많다는 이유로 우리의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 또한 차별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그런 말을 듣게 되어 느끼는 모멸감, 좌절감, 수치심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였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 또한 그런 차별을 그대로 받고 살아간다. 우리나라에서 첫 동성 커플의 출산소식을 들었을때 제일 처음 느낀 감정은 의아함이었다. 그런 나의 감정 또한 그들과 일반 커플이 다름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고 반성하게 되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다수결의 원칙을 따른다. 다수결은 많은 사람의 의견이 반영되었다는 면에서 차별이 없어보이지만, 올바르지 않은 의견이 다수의 선택에 의해서 선택되어진다면 올바른 결정이 될 수 없다. 본질 적으로 다수결 제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다수결 또한 논란없이 결정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에 관련된 사건과 논쟁을 담고 있는 동시에 미국의 역사와 연구에 관한 이야기도 다수 포함되어있었다. 평소에는 지나치고 넘어갈 일이 차별이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나가다보니 책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나의 차별이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는 반성을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