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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큰 고통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의 행복은 내가 만든다는 단순 명료한 진리를 다 아는 데 왜 많은 이들이 행복이 아닌 불행한 삶을 산다고 느끼는 걸까. 내가 아닌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자라온 사회적 환경과 이미 타인이 설정한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작 그 울타리를 벗어나려 시도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러하다. 때로 세상을 탓하며 속상한 마음을 친구들과 토로할 뿐이다.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 오연호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통해 그 마음은 조금 달라졌다.
“돈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도 없어요. 당신이 당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죠. 이건 기본적으로 철학의 문제입니다.” (38쪽)
분명 우리도 행복할 수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저자가 인터뷰한 덴마크 사람들이 들려주는 행복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공존하는 삶이었고 나눔의 삶이었다. 나만 잘 살겠다는 게 아니라 함께 잘 살면 더 좋다는 생각, 부모의 의지대로 아이들을 이끄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가는 방향을 지지해주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 부모라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공기업, 의사, 변호사란 직업이 마치 행복과 같다고 믿는 우리의 의식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덴마크 사람들은 사시사철 자전거와 한 몸이다. 자전거는 자유도가 높다.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빨리 갈까 천천히 갈까, 곧장 갈까 쉬었다 갈까, 운전자의 선택의 자유가 자동차보다 더 높다. 무엇보다 자신의 힘으로 페달을 밟아 전진하고 있다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내 발로 결정하고 있다는 쾌감이 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주체성의 쾌감, 그것이 덴마크인들의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요소 중 하나라면, 자전거 문화는 그와 참 많이 닮아 있다.’ (142쪽)
자신의 직업에 확신이 찬 사람들, 일반 사원이 이사로 활동할 수 있는 회사, 아무 때나 교장실에 들어가 낙서를 할 수 있는 학교, 대학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며 인생을 배울 수 있는 인생 설계 학교가 있는 나라.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행복하고 당당한 삶으로 이끌었을까? 1882년부터 협동조합운동과 농민학교 운동을 이끈 그룬트비와 척박한 땅을 개간한 달가스가 있었다. 그렇다. 리더가 이끄는 대로 믿고 나간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완전체는 없다.
저자가 직접 보고 인터뷰 한 행복사회를 만드는 6가지 가치 자유·안정·평등·신뢰·이웃·환경. 여섯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충만하게 느끼는 게 있는가 나의 삶을 돌아본다. 덴마크가 정답일 수는 없지만 정답에 가장 근접한 나라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이 시작되는지 이제 고민은 그만 끝내고 나부터 조금씩 변화해야 한다. 새로운 인식의 전환과 함께 참여가 필요하다. 그 첫 발이 이 책라서 고맙고 감사하다. 많은 이들이 읽고 자신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행복은 ‘have to(~해야 한다)’에서 나오지 않아요. ‘like to(~를 좋아하다)’에서 나오죠. 의무적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어요.” (22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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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학교는 꿈같은 이야기일까. 우리 아이들은 학교를 행복한 학교라고 생각할까. 지구촌에 수 많은 나라들이 있기에 좀더 행복한 나라를 취재했나보다.
▶ 학교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학생 스스로 찾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 ▶ 개인의 성적이나 발전보다 협동을 중시하는 곳. ▶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와 교장 중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학교 운영의 주인이 되는 곳. ▶ 학생들이 여유 있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인생을 자유롭고 즐겁게 사는 법을 배우는 곳. ▶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사회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걱정이나 불안감이 없이 안정되 있는 '행복학교'가 지구촌에 있다네요. 우리에게는 진짜 꿈같은 이야기인가봐요.
세상에!
" 공부를 못하는 학생도 칭찬을 받고, 산만한 학생도 칭찬을 받고, 문제아도 칭찬을 받는 학교" 가 있다하니 써프라이즈네요.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잣대로 봤을 때 3대 골통으로 추앙 받는 아이들인데 말이에요.게다가 공부 잘하는 학생을 공개적으로 치켜세우거나 특별히 대하는 경우도 없기 때문에 성적 우수상이 아예 없다네요.공부를 잘하것은 여러가지 능력 중 하나이기 때문에 특별히 상을 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학교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에 교사들의 애정이 학생들에게 골고루 나뉘어 모든 아이가 저마다의 장점을 칭찬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참으로 탐나는 나라 덴마크네요. 우리 네가족 모두 이 나라로 이민가서 살고싶네요. 교사의 자율성 " 교육부와 교장의 지시가 아닌 교사 스스로 자율성을 가지고 학급과 수업을 이끌어가네요. 학교 이사회에 교사의 참여가 보장도 되어 있구요."
아빠는 자판에 문자를 그리고 있는데, 거실 저 넘어 아이 공부방에서 신나게 공부하는 소리가 들려오네요. 그냥 가서 아빠랑 덴마크로 이사갈까요 물어보고 싶네요. 그런데 저는 아이의 마음을 알기에 숨소리 죽이고 추석지나고 곧 시험기간,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높은학교인 고등학교에 다니니까요. 송편을 만들시간에 저 창가 넘어 보름달이 뜰건지 말건지는 별 관심도 없나봐요. 참으로 한국과 덴마크는 대조적인 나라이네요. 우리 어른들이야 그렇다 치고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요.
또 한가지 마음을 끌어내는 대목이 있다. 애프터스쿨(after school): 우리는 방과후 학습,애프터스콜레 Efterskole: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 가기전 1년을 다니는 인생설계학교 이른바 갭 이어 Gap Yer라고도 한다네요. 어떤 인생을 살것인가? 를 어릴적 부터 사회적 합의하에 가르치고 있으니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대학진학율도 고작 20%밖에 안된다니 놀랄 따름입니다. 돈과 밥벌이보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더 생각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된 나라 덴마크, 우리는 월급 많은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삼팔광땡인 문화가 아주 지극히 정상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우수한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즉 돈으로 행복을 살수 있는 문화가 한국의 자랑거리인셈이다.
행복사회 기틀을 세운 그룬트비 교육 철학 ↓
' 인간은 육체 이상이다. 정신을 가지고 있다.'
덴마크 교장선생님 뤼킨에릭센의 행복?
" 행복은 'have to(~해야 한다)'에서 나오지 않아요. like to(~를 좋아하다)'에서 나오죠. 의무적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어요. 우리는 자유롭습니다,교육비 무료,의료비 무료 등 기본 사회복지가 되어 있으니까 남의 눈치,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죠. 우리는 부모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요. 내가 뭘할까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죠.우리는 안싸워요.덴마크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싸우지 않고 토론을 해서 해법을 찾아내죠."
마치 행복이 형이학적이면서 형이상학적으로 들려온다. 대한민국과는 완전 딴판이니 영원한 덴마크 정신의 리더 그룬트비의 정신이 오늘의 덴마크의 행복을 엿볼 수 있다.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신앙(종교)다. 덴마크 목사들은 새벽기도가 없단다. 주일마다 1부,2부,3부, 연속해서 설교할 일 없이 한 번이면 족하단다. 교인들에게 헌금 내라는 소리를 할 필요도 없고 헌금은 직장인들의 월급에서 자동적으로 걷히고 목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교인 루터교 목사의 경우에는 정부에서 월급이 나온단다.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문화로 정착되어 있으니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약하거나 기도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믿음이 문화가 되어있다하니 부럽고 부럽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신도들이 꽉꽉 차는데 그 사회 구성원들의 사랑과 신뢰는 높지 않다면 종교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반대로 신도들이 교회 좌석의 10분의1만 채워지만 그 사회에 전반적으로 사랑과 신뢰가 넘쳐난다면 믿음이 약하다고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전자는 대한민국이고 후자는 덴마크다.
덴마크 페데르 P.튀센 목사의 말 덴마크인들은 80%가 기독교인인데 매주 일요일 교회에 나가는 비율은 단 3%정도란다. 왜 그럴까? " 덴마크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적어도 생활고 때문에, 경제적 생존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지는 않죠. 그런 문제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은 하느님께 더 의지하게 됩니다.교회에 사람들이 몰린다는 것은 불행한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일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덴마크의 낮은 예배 출석률과 높은 행복지수는 일정하게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를 찾아 낼 수 있는 추출해본다. '꽉 찬 교회, 텅빈 사회" 는 대한민국이요. '텅 빈 교회, 꽉 찬 사회'는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덴마크.
사람 밑에 사람없고 사람위에 사람없는 나라, 직업의 높낮이가 없는 나라. 더불어 서로를 존중하는 나라. 책 속에서 배우는 신뢰가 아니 국민들 가슴에 삶속에 녹아 있는 나라, 덴마크의 행복에 비하면 우리는 사람 밑에 사람있고 사람위에 사람있는 나라, 조선선대 양반/평민/노비 계급이 있듯, 여전히 계급과 계층이 심화되어 있는 사회, 신뢰가 발바닥 밑에 누룽지가 누를정도로 없는 사회, 위로 올라갈수록 거짓과 위선, 부패의 사슬이 그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정의가 숨쉬지 못하는 나라,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우리에게 큰 질문을 던져 주듯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덴마크만의 얀테의 법칙(law of jante)
1.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 말라. 1.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착각하지 말라. 1.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라. 1. 누가 혹시라도 네게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 말라. 1.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 말라. → "모든 사람이 특별하고 소중하고 평등하다."
자본주의의 정점인 미국사회는 ' 더 많이' 를 강조하며 최고가 되기를 요구한다.(한국도 마찬가지) 덴마크 사회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여유롭게 삶을 즐기게 한다.
※ 덴마크에서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사회에서 통한다. 사회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받아들여질 정도로 개혁되어 있다는 의미겠죠.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사회에서 안 통한다. 사회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받아들여질 정도로 개혁이 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겠죠. 교육혁신/사회혁신 과 더불어 행복한 학교,행복한 사회를 외쳐본다.
절대적 행복의 키워드는 될 수 없겠지만, 작은 나라 가장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행복에 잠시나마 행복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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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과 저자 이름을 가장 먼저 접한 때는 임종화샘께서 페북에 소개하셨을 때다. 무려 '오마이뉴스'를 만든 분이 덴마크에 대해 쓰셨다니 꼭 읽고 싶어져서 리스트에 담아두었다. 어느 날 본오동 먹자골목을 걷는데 (애석하게도 평일 낮이라 출근 때문에 갈 수는 없겠지만) 안산에 오셔서 강연을 하신다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어서 다시 한 번 반가웠다. 월간 좋은교사 6월호 인터뷰에서 또 저자의 이름을 보고 도서관에서 당장 빌렸다. 2011년 겨울에 좋은교사에서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덴마크 모든 학교급 교육탐방을 다녀왔는데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이 책에 두 번 쯤 등장하시는 입담 좋으신 '오대환 목사'님이 우리 가이드도 해주셨는데. 그리워져서 예전에 기록해둔 여행기를 꺼내보기도 했다.
덴마크 교육탐방 리뷰 모음: 2011.01.16. http://blog.yes24.com/document/3132212 2011.01.17. http://blog.yes24.com/document/3132432 2011.01.18. http://blog.yes24.com/document/3132706 2011.01.19. http://blog.yes24.com/document/3132969 2011.01.20. http://blog.yes24.com/document/3133380 2011.01.21. http://blog.yes24.com/document/3147940
저자가 주장하는 바처럼 교육과 사회는 함께 갈 수밖에 없어서 동시에 혁신해나가야 한다. 북유럽 교육탐방을 하고 나서 그 사회가 지향하는 철학이 거기 속한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덴마크인, 특히 학생들이 행복하고 그들이 평생동안 즐겁게 배울 수 있는 이유는 자유학교처럼 개인의 다양성을 주체적으로 키워갈 수 있도록 돕는 사회 구조와, 경쟁이 아니라 협동과 연대를 지향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피사 1위라는 핀란드보다 그러한 서열화 시험마저 '개무시'할 수 있는 덴마크 사람들이 훨씬 멋있고 행복해보여 부러웠다. 저자가 한 마디로 요약한 "스스로 더불어 좋은 삶을 설계하는 삶"이라는 말은 얼마나 멋진가.
"시험도 등수도 왕따도 없는 학교 덴마크를 처음 취재할 때부터 분명하게 잡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행복 인생의 출발은 학교 교육에서부터 시작되고 행복한 학교에서 행복한 인생이 시작된다!... 첫째, 학교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학생 스스로 찾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둘째, 개인의 성적이나 발전보다 협동을 중시한다. 셋째,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와 교장 중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학교 운영의 주인이 된다. 넷째, 학생들이 여유 있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인생을 자유롭고 즐겁게 사는 법을 배운다. 다섯째,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사회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걱정이나 불안감 없이 안정되어 있다." 153쪽.
"바르슬레우는 학생들이 이곳에서 '사는 법'을 배운다고 말했다. "국어도 배우고 수학도 배우고 축구도 배우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나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다른 사람과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 이런 질문의 답을 찾는 거죠. 그러면서 민주적인 사회의 일원으로 좀 더 성숙해지는 곳이 바로 에프터스콜레입니다."" 195쪽.
책 자체에서도 행복한 사회를 위한 교육 혁신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교사라 책에서 교육에 관한 부분이 훨씬 눈에 잘 들어온다. 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10년을 근무하는 동안 관료주의와 수월성 교육에 찌든 학교에서부터 민선 진보교육감 당선 이후 교육 혁신을 해나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개인적으로는 옛날과 확연히 비교가 되어 만족도가 좋다. 교사로서도 보람이 생겼고 교실에 들어가기 즐거워졌으며, 아이들의 표정도 전보다 좋아진 느낌이다. 내가 학부모였더라도 타 지역에 비해 경기도 교육청이 지향하는 방향이 훨씬 마음에 들고 신뢰가 갔을 듯하다. 요즘 좋은교사운동 교육정책위원회에서 교육청혁신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좋은학교를 만들어보려고 단위학교 안에서 혁신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보았지만, 교육부, 도교육청, 지역교육지원청에서(즉 현재로서는 상급 기관에서) 예산, 인사와 승진, 평가권을 틀어쥐고 관료주의적으로 전시성 사업과 공문을 내려보내면 단위학교로서는 한계가 많아 답답했기 때문이다. 더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상급 기관을 혁신하거나 극단적으로는 그러한 기관을 없애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일 수 있는 독립 교육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교육전문가의 의견을 종종 듣는다.
이 와중에 현 승진 체제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개방형) 교장공모제와 같은 방식을 덴마크에서는 매우 공공연하게 활용하고 있고 실제로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책에 자주 나온다. 이런 교장선생님과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부럽고도 부럽다. 교사들끼리는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이 바뀌면 학교 전체가 바뀌기 때문에 인사철마다 불안, 초조하다. "교장선생님 말씀이니 따라가야해."라는 윗분의 압박 속에 학교가 교장선생님 소유인가 싶어 답답하다. 그래서 우리 교육공동체가 지향하는 방향성에 걸맞고 이를 공감하며 혁신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교장선생님을 교육주체들이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된다면 학교에서 교육주체 신변에 관한 무슨 일을 결정할 때 적어도 교장선생님이나 부장단 차원에서 결정하기보다는 담임과 학생들의 의사를 물어보고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카를센이 이 학교에 초대 교장으로 올 때도 학부모들이 심사를 했다. 교장 공모에 지원한 100여 명을 학부모와 교사들이 심사하고 면접 인터뷰를 진행했다. 관할 구청의 교육 담당 위원도 심사에 참여했지만 보조 역할만 했다. 공립학교지만 교장 선발권이 학부모와 교사에게 있으니 그들의 높은 자존감과 주인의식은 당연해 보였다... 덴마크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학교에 비해 교장과 교사의 자율성이 높은 편이다. 국가가 제시하는 기본 교육과정이 있지만 그 범위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덴마크의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뿐 아니라 교사와 교장도 자존감이 높은 행복한 작은 사회다." 177-178쪽.
나라차원에서 저출산, 저출산거리는데 우리 모두 주지하고 있듯 아이를 낳고 싶게 만들어주는 일이 먼저 필요하다. 최근 노인공경 단원을 가르치면서 저출산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아이를 낳기 싫어하는지에 대해 기를 때 돈이 많이 든다(특히 사교육비), 여성의 사회 생활이 단절될 수 있다와 같은 교과서 같은 대답들이 나왔는데 나는 "세상이 너무 무서워서 아이가 불행해질까봐 미안해서 낳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키우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일을 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미안한 마음은 해결이 안 될 듯하다. 그래도 언젠가 낳을 여지가 있다면 덴마크인들처럼 우리 사회가 좋은 방향성을 가지고 혁신할 수 있도록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이라도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인 나는 (공무원이어서가 아니라) 교육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엄청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새삼 생각했다. "40대 중반인 그는 자녀가 무려 7명으로, 첫째가 23살이고 막내가 네 살이다. 전에 만난 외레스타드 초등학교 교장도 아이가 5명이라고 했다. 교육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교장들이 이렇게 자녀를 많이 둔 이유는 어떤 확신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덴마크 사회가 우리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주리라는 믿음, 우리 아이도 나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는 확신 말이다." 22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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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덴마크는 사회복지에서 거의 교과서 수준의 나라이다. 덴마크 사람들 스스로 행복하다는것에 자신하고 그것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한것 같다. 덴마크가 복지의 모티브가 된것은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니다. 일제강점기때부터 시작되었다는것을 알기 전까지 행복 그까짓꺼 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역사적 아픔을 생각하면 이들은 꾀 오래전부터 행복했구나 하는 생각에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새마을 운동의 모티브도 덴마크에서 온것이라고 하니 우리나라가 오래전부터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해온것이 느껴져서 가슴이 메였다. 덴마크는 어렸을때부터 자신이 적성이 어떤것인지 생각할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한국사회도 그렇게 변하고 있긴 하지만 기득권층 중심이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9년 담임제는 솔직히 1명의 담임에게 자식의 인생을 맡겨도 되는 신뢰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써는 많은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부분도 있지만 이 책을 통해 그래도 기득권층, 상류사회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의식 개혁을 우리 스스로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물론 사회제도가 먼저 기반이 된다면 분위기를 따라가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가 신념이 갖추어져 있고 조금은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면 우리도 행복할수 있는 시간을 앞당길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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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운 것이 그대로 사회에서 통하는 그런 사회를 꿈꿔본다. 자존감을 키워주고 연대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사회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런 미래를... 교실이 변하면 사회가 바뀐다.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교실이 바뀐다는 말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회가 먼저 바뀌기를 기대하지만 교직자로서 교실이 변하도록 조금씩 노력해야겠다. 자녀를 둔 부모들이라면 교사들이라면 꼭 읽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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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모든 시민이 기자다'라는 구호를 가지고 오마이뉴스라는 생소한 매체를 만들어 아직까지도 이어오고 있는 오연호 대표. 그가 이번엔(약 2년 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직접 여행하고 와서 쓴 책을 들고 한국사회가 갈망하지만 경험하지 못하는 '행복'이라는 주제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꽤 오랜 시일이 지난 후 이제서야 이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나 같은 존재가 있다는 건 나름 오연호님이 제안한 행복이라는 의제가 우리 사회에 조금씩 먹혀 들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책을 읽어 가면서 정말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가득 차 올랐다. 책을 읽으면서 내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어느 구석 하나 행복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한 삶은 내가 살아가는 현실과 너무나 거리가 멀어보였다. 덴마크의 행복한 일터 덴마크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노년의 초입에 있지만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웨이터, 체화된 행복이야기를 하는 철학자스러운 택시기사,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 세계적 기업이 된 레고에서 일하는 직원, 덴마크 유명 일간지의 편집장 등 저자가 만난 덴마크 사람들은 일터에서 행복하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즐기고, 일과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소중하다는 의식이 문화적으로 자리잡혀 있기 때문에 직업에 대한 선입견도 없고, 직장 내 직위 상의 계층의식도 크지 않다. 사회 전반에 형성된 신뢰는 일터에서도 역시 발휘된다. 신뢰에 기반한 사회적 타협을 통해 경영자와 노동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책임을 다한다. 노동자와 경영자의 격렬한 대충돌 이후 대타협을 통해 경영자에게는 해고의 자유(경영상의 이유)를 허하고 노동자에게는 기본소득을 보장하여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질 수 있게 했다. 게다가 안정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복지 시스템은 덴마크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도록 전방위적으로 지원해 준다 대한민국에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덴마크의 노동시장 모델은 노동자-경영자-정부 사이에 형성된 신뢰의 고리에 기초하고 있다. 스스로 깨우쳐 주인의식을 갖고 조직화된 노동자들의 힘이 신뢰 형성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 힘에 기반해 주장한 것들을 실행했던 노동자들의 책임감이 신뢰의 고리를 더욱 공고히 했다. 사회복지에 관한 문제는 정책이 아니라 문화로 자리 잡아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연속성을 가지게 되었다. 노동자-경영자-정부 모두가 대외의존도가 높은 자국의 특수한 경제환경을 인정하고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 데에서 신뢰의 고리는 더욱 견고해졌다. 마지막으로 신뢰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현실적 이득이 신뢰의 고리를 체험하면서 생겨난다. 자신들이 낸 세금을 정부가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했기에 월급의 절반 가량이라도 기꺼이 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덴마크 사람들의 출근길 발걸음은 가볍다. 대한민국 상위 5%(?) 직장의 단면 꽤 높은 연봉, 상대적으로 긴 직원평균 근속년수, 협력업체에 갑질을 할 수 있는 위치, 훌륭한 직원 복지. 현재 대한민국의 구직자들에게는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곳 중의 한 연구소. 이곳에 있는 이들이 경험하는 매일의 삶은 어떨까? 6시~6시 반 정도인 이른 아침 곳곳에서 출발하는 통근버스에 올라 앉으면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다시 단잠에 빠져든다. 1시간~1시간 반 정도의 통근 시간을 지나고 직장에 도착해 입구를 통과하면 마치 영화 레지던트 이블의 한 장면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수 많은 좀비들이 각자의 사무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대체로 이들의 뒷모습에선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이 어깨에 지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얼굴엔 피곤이 역력하고 인상을 쓰고 있는 이들도 상당하다. 연구소라서 근무시간은 상당히 유연한 편이다. 일을 하다 수시로 커피를 한 잔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눈다. 근무년수가 길든 짧든 이야기의 주제는 주로 부동산, 자녀교육, 재테크, 퇴직걱정, 상사나 동료 험담, 취미생활 정도다. 꽤 안정된 직장이란 소문이 무색할 정도로 구성원들이 가진 불안감은 상당해 보인다. 개인별 상대평가를 통해 인사고과를 매기기 때문에 회사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에게 점수를 주는 상사들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다른이들보다 돋보여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경쟁한다. 노동조합에 속한 이들은 그들대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바쁘다. 마주치는 어떤 이들에게서도 자신의 일을 즐긴다거나 만족스러워하는 인상을 받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직장 내 어떤 관계에서도 신뢰를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대한민국 상위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항상 무겁다. 행복이 일상인 덴마크 사회 덴마크 행복의 이유 중 하나는 안정된 사회보장으로 인한 마음의 여유다. 직업에 대한 특별 대우가 없어 격차로 인한 스트레스가 매우 적다. 이 행복은 덴마크의 사회제도와 얀테의 법칙과 같은 덴마크인들의 전통적 가치관이 적절히 조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평등을 추구하되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문화를 이뤄낸 것이 덴마크 행복의 비결이다. 19세기 노동운동이 추구했던 가치가 자유, 이웃 사랑, 평등이었는데, 이것이 평등 사회를 이루는 데 기초가 되었다. 덴마크에는 이웃이 살아 있고 이웃 사이에 신뢰가 있어 다양한 시민 참여형 모임과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덴마크의 신뢰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부딪치고 깨지고 노력하면서 수 세기 동안 쌓아온 것이다. 협동조합 같은 조직은 운영하면서 투명성과 공정성, 노력한 만큼의 인정은 가장 핵심적인 신뢰형성의 기초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적 참여와 이익의 체험인 듯 하다. 덴마크는 스반홀름 공동체와 같은 실험이 가능한 사회이다. 병원비, 교육비가 무료인데다 2년 동안 실업보조금도 나오는 안정된 복지제도가 있어 실험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렇기에 욕망을 통제하고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게다가 이곳 공동체에서의 삶의 질도 높아 만족스럽다. 사회적 안정이 게으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의적인 도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덴마크 사회에서 증명되고 있다. 덴마크는 궁핍, 척박, 고난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만들어낸 것과는 삶의 질이 다른 대안적 공동체 실험이 자발적 참여로 가능한 사회다. 종교에 있어서도 자발성을 강조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 덴마크인들은 스스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실천한다. 이처럼 평등과 자유가 조화를 이루는 덴마크 사회에서 불행하게 사는 게 더 어려울 것 같다. 곡성이 일상인 대한민국 연일 곡성이 끊이질 않는다. 온전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이 대열에라도 끼어들어야 하는 청년 실업자들. 전혀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아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여성들. 빈곤층이 되어 죽지 못해 살아가는 노인들. 비정상적 교육 제도 아래에서 빈번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약자들이 벼랑끝에 내몰려 하나 둘 떨어져나간다.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울음이 일상화되어 간다. 그래서인지 사회 구성원들은 이젠 왠만한 아픔에는 공감을 하지 못한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만 힘든 거 아니다. 그쯤 했으면 됐다. 이제 그만 해라' 라고 말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약자들의 절규가 일상이고, 나도 언제 저렇게 될 지 모른다는 보통 사람들의 불안도 일상이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소위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이나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전통적인 농경사회가 해체된 이후 대한민국에선 이웃이 사라졌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보편적인 주거 형태가 아파트가 되었고, 산업화의 역군들은 앞으로 내 달리느라 옆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한국사회의 독특한 개념인 '정' 마저도 이젠 꺼내기 머쓱한 말이 되었다. 이웃 간의 정이 사라진 자리엔 '돈'이 들어섰다. 돈에 대한 추구는 그 어떤 가치도 앞질렀다. 돈이 곧 힘이 되었고, 정의가 되었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인기를 누리고 대접을 받는다. 정직한 노동이지만 박봉인 직업은 천시를 받는다. 궁극의 가치인 돈을 향한 효율과 경쟁만을 강요하며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생기는 격차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며 뒤처진 이들은 패배자로 낙인찍는다. 정부는 양극화와 빈부 격차를 줄여나가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추기는 정책들을 만들고 실행한다. 모든 계층에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 지 모를 불안이 만연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창의적 도전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삶의 주인으로 자라는 덴마크 학생들 덴마크의 학교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학생 스스로 찾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학생들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여유 있게 인생을 자유롭고 즐겁게 사는 법을 배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사회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걱정이나 불안감 없이 안정되어 있다. 덴마크 교육의 기본 전제는 학생들은 매우 다양하며 그들을 다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교사의 애정을 골고루 나눠 받고, 학생 개개인에게는 자부심을 심어주며, 학생이 여유를 가지고 진로를 선택하게 도와주고, 학생이 주인의식과 평등의식을 갖게 하는 학교가 바로 덴마크 행복을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자발성을 중시하는 문화는 교사 사회에서도 역시 작동하고 있다. 덴마크의 선생님들은 자신들도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 계속 배워야 학생들을 즐겁게 잘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다. 덴마크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덴마크의 교실에서도 안정감이 용기와 도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수한 사회복지가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이 안정감은 그들을 게으르게 만들기보다는 창의적인 도전을 하게 한다는 것은 교실과 사회가 닮은꼴이다."라고 저자는 쓰고 있다. 교육 부문에서도 혁신은 멈추지 않고 있다. 전통적 공립학교 이외에도 특성화 교육을 추구하는 다양한 학교들이 실험되고 있다. 학생들 각자의 자존감을 세워주고 주인의식을 갖되 연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학교에서부터 사회로까지 이어진다. 덴마크의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배움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자신이 주인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감옥 어느 누구도 한국의 교육 문제를 속시원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행복한 사회가 먼저인지 행복한 학교가 먼저인지 확실히 할 수는 없지만 우리들 학교가 행복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할 수 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가기 전부터 이미 경쟁구도에 놓여 있다. 불안에 가득찬 부모들의 가치관 아래에선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 아이의 보장된 미래를 위해선 다른 아이들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더 좋은 학교에 가야 하고, 더 좋은 직장 혹은 일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교육 경쟁에는 한계가 없다. 비교는 끊임 없이 더 높은 곳을 향하게 된다.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비정상적인 경로를 일반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이 구조 하에서 학생들에게 교실은 감옥과도 같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시험에서 남보다 좋은 성적을 얻을까이다. 이렇게 자라난 세대들이 자신들의 좋고 나쁨과는 상관없이 안정된 직업이기에 교사가 되어 다시 교실로 돌아간다. 자발성이 결여된 교사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극심한 경쟁을 통과하면서 가까스로 탈출했던 교실로 다시 돌아간다. 교사가 되었다고 해서 교실에서 자유를 허락받는 것은 아니다. 교육청 혹은 교육부와 같은 상위 기관들의 통제를 받는다. 특히나 최근 두 번의 정부 하에선 지휘 계통에 따른 상명하복과 명령을 거스르는 행동에 대해 매우 비상식적인 제재가 가해지고 있다. 학교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비전도 없고 그것을 공유하려는 의지도 없어보인다. 단지 작지만 매달 월급이 나오고 퇴직 후 안정적인 연금이 나오기에 직장의 하나로 학교에 남아 있는 교사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가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덴마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쪽 읽고 내가 속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뉴스들을 하나 접하고를 반복하다 보니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행복할 자격이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덴마크 사람들이 짧게는 100여년 전에 길게는 2세기에 걸쳐 뿌렸던 씨앗이 열매를 맺은 것이 현재의 행복한 덴마크이다. 그에 반해 우리가 지난 한 세기 동안에 뿌린 씨앗을 떠올려 보자니 한국이 현재 행복하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독립운동가들 대신 친일파를 선택했고, 자발적인 독립대신 미 제국주의의 힘에 기댔다. 한국전쟁 때엔 같은 국민들이라도 명령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학살했다.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의 독재 아래에서 역시 권력에 기생하는 법과 살아남기 위해 범죄도 불사하는 것을 선택했다. 뒤이어 나타난 전두환과 무리들에 치열하게 저항해 민주화를 이뤄난 경험은 있었지만 30년 가까이 흘러버린 세월은 그 체험을 희석시켜 버렸다.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는 원하지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과거 친일과 군사 독재의 잔재를 철저히 청산하기보다는 그 적폐들을 사회 곳곳에 남겨두었다. 그것은 한국 전쟁 후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기댄 영향이 컸지만 이 역시 우리 역사의 선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IMF 체재를 극복함에 있어서도 위기 극복이라는 지상 과제에 급급한 나머지 개인들을 더욱 파편화시켰고 사회 안전망을 확보하기보다는 개인들의 각자도생을 부추긴 측면이 컸다. 두 번의 민주 정부에서도 과거의 적통을 이어받은 국가기관의 관료들과 정치인들을 청산해 내지 못하였고, 그 실망의 결과로 이명박과 한나라당, 박근혜와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욕망과 탐욕의 씨앗을 뿌리는 선택을 했다. 저자가 언급한 여섯 가지의 행복 키워드인 자유,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 그 어느 것 하나 현재 우리 사회와는 멀고도 먼 의제들이다.
덴마크처럼 지금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앞으로 50년 혹은 100년 이후에 이 땅에 살아갈 사람들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 나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 실천들에 눈이 간다. 꿈틀리 인생학교, 오연호 작가의 전국 강연, 이와는 독립적이지만 덴마크의 애프터 스콜레 모델을 실험하는 한국형 인생학교 '꽃다운 친구들'(kochin.tistory.com), 곳곳에서 도입되는 혁신학교들 등 실제로 행복한 사회를 꿈꾸며 도전을 해 나가는 이웃들이 있다는 사실에 힘이 생긴다. 지금 나의 행복과 아주 먼 미래 나의 존재가 사그러든 때에 살아갈 이웃들의 행복을 위해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실천해 갈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이에 더해 올 여름엔 단 며칠 동안이기는 하지만 덴마크에 다녀오려고 한다. 오연호의 글과 입을 통한 덴마크의 모습이 아닌 내가 직접 부딪쳐 만나는 덴마크를 자발적으로 경험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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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죽고 싶어요. 학교에 나오기 싫어요.” 여학생은 이제 막 고등학교에 올라왔다. 새로운 환경, 낯선 친구들 속에서 열심히 지내왔지만 어느 순간 무리에서 떨어져나왔다. 아이는 매일 매일이 고통스러웠다. 점심을 굶는 건 다반사. 그렇게 버텨야 하는 하루가 너무 길었다. 저녁까지 먹고 야간자율학습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잠자는 시간 외 거의 온 하루 종일 학교에 있는 아이들. 아이들 간의 관계가 틀어지면 그것은 고스란히 지옥이 되었다. 아이는 흐느껴 울었고, 나는 마음이 아팠다. 교사로서 무엇을 해줘야 할지, 어느 정도로 개입해야 하고 무엇을 해결해주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는다는 감수성 풍부한 여고생은 어찌하여 지옥 같은 학교 생활을 하게 되었나.
오연호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 나라 학생들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목표 아래 한 반 4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함께’ 공부를 한다. 똑같은 목표에 똑같은 방식으로 하루 14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함께’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같은’ 목표, ‘같은’ 방식으로 하루 14시간이라니!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사육이다. 작자가 롤모델로 제시한 덴마크에서는 ‘각자’ 원하는 삶과 목표를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그 길을 찾아 간다. 그 길에서는 학생 스스로 공부를 할 수도 있고, 직접 기술을 배울 수도 있으며, 배움의 공동체를 들어가 얻기 어려운 답을 ‘함께’ 찾기도 한다. 즉 선택의 순간들이 매번 주어진다. 그리고 그 선택의 순간에 부모도 교사도 어느 누구도 학생에게 특정한 길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로 덴마크에서는 택시 기사인 아버지가 열쇠 수리공을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며 소개하는 것을 왕왕 볼 수 있다. 작자가 지적한 것처럼, 의사인 아버지가 중소기업을 다니는 아들을 부끄러워 하는 우리 나라의 문화와는 대조적이다. 14시간을 ‘함께’ 공부하며 누가 더 잘났나 줄을 세우고 비교한다. 가정에서부터 교육현장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커온 학생들은 가정과 학교의 품을 떠난 뒤에도 ‘적성과는 다르지만 성적에는 맞는’ 직장을 찾아 하루를 버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장차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외면한 채 하루종일 공부만 하다보니 그 속에서 생긴 인간 관계가 인생의 전부가 되어버린 아이들.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학교는 ‘죽고 싶을 만큼 가기 싫은 곳’이 되어 버린다. 덴마크에서처럼 오후 3~4시면 퇴근을 해 온 가족이 함께 저녁 준비를 하고, 식탁에 둘러 앉아 그 날 있었던 일을 애기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 아이들은 차마 부모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고민을 끌어안고 있진 않을 것이다. 덴마크에서처럼 6~7년 가까이 한 교사가 담임을 맡는다면 대한민국 아이들은 새로운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그에게 다가가기를 주저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소통과 관심이 끊어진 채로 학교 혁신을 바라며 교육 시스템만을 바꾸고자 하니, 매년 바뀌는 것은 교과서 껍데기 밖에 없다. 그마저도 교과서 선정이라는 중요한 일을 두어 달에 걸쳐 형식적인 협의록 몇 장을 작성하여 젊은 교사 몇몇이 나서서 처리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교육의 실재는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덴마크처럼’ 대한민국이 바뀌려면,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그렇게 덴마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문제는 단순한 덴마크 따라잡기가 아니다. 덴마크가 그러한 제도를 갖출 수 있게 된 원동력, 그 주된 힘을 이해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가 변하려면 교육이 변해야 하고, 교육이 변화할 수 있으려면 가정에서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새마을 운동이나 경제 개혁이니 4대강 사업이니 하는 거창한 사업들 속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이 행복할 수 없었던 것은 몇몇의 경제 개발 아이템만으로는 행복이라는 안정된 정신적인 경지에 이르기 힘듦을 알아야 한다. 사회와 교육, 가정이 함께 움직여야 하며 이는 이 세 카테고리의 서로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가정을 이루는 개개인들은 교육을 통한 사회 안정을 지지하기 위해, 반대로 그 개인이 독립적인 힘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가정에서 존중받는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교사와 교육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능력과 잠재성을 찾게 된다면 우리 반에서 더 이상 ‘죽고 싶을 정도로 가기 싫은 학교’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팍팍한 가정에서도, 외로움에 지친 학생에게도, 밤늦게 학교를 지켜야 하는 교사에게도 꿈같은 소리다. 그 소박한 꿈만 실현되더라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나는 고민한다. 오연호 작가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대명제 아래 그 학생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그 아이가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안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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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학교, 자유로운 일터 신뢰의 공동체가 숨 쉬는 행복사회의 비밀"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 일찍이 엄마가 되었던 친구들이 하나같이 엄마가 되면 아이들 이야기만 하게 되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공부와 학원이야기밖에 안 한다고 이야기할 때도 설마 했다. 설마 우리 인생이 아이가 전부고 아이의 성공이 전부일까, 했었다. 설마가 아니었다. 전업주부, 직장맘을 떠나 아이가 생기면 그 이후의 인생은 아이에게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아이의 인생만 중요할까. 아이가 공부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여성들의 인생은 어디에 있는 걸까. 아이를 뚝 떼어 놓았을 때 우리 삶은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할까. 상상하기도 싫지만 우리의 지금 어른들의 모습이 아이들의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을 챙기지 않던 부모의 모습과 너무나도 꼭 닮은 모습을 우리가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가끔은 자장면도 먹고 싶고 스테이크도 먹고 싶은데, 아이가 좋아하는 거니까 내가 좋다고 먹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세월이 변해도 자식 인생만 돌보는 것은 여전한 우리, 무엇이 문제일까.
오연호 님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는 저마다 소중한 우리 각자에게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하고 묻는다. 그 해답을 찾고자 복지국가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멀리 덴마크로 가 일터, 사회, 학교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이 정의하는 행복을 전한다. 그네들의 행복한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 어쩌면 행복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들을 찾게 된다. 저자가 애초에 품었던 생각들, 이 책을 내게 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우리도 각자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각자는 너무 열심히 산다. 새벽 지하철 첫 차는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로 늘 만원일 정도로 부지런하다. 식사는 편의점에서 대충 떼우면서도 일은 또 밤늦도록 한다. 먹을 것 못 먹고 아끼고 아껴서 삶이 좀 나아졌을까. 여전히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아이 가진 부모들은 아이들 학원비 대느라 삶의 여유 없이 일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열심이다. 밤늦도록 공부하는 것은 예사고 여섯 살도 안된 아이들도 학원 갔다 오면 7시가 넘는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출산율 최하위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다. 행복지수 또한 높지 않다. 저자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집단 무기력증, 집단 불안감에 의문을 품고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에서 찾는다. 저자는 오랜 관찰을 통해 덴마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6개의 키워드를 추출했다. 자유,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 이 6개의 가치들이 덴마크 학교와 일터,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고 한다. 각계에서 듣는 목소리는 그야말로 부럽기 그지없다. 우리나라는 밤낮없이 일하고, 그렇게 일만 한 결과 말년엔 병을 얻어 병원비 대느라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생을 마감하곤 하는데, 덴마크에서는 병원비와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휴가가 10주가 넘고,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하루 근무 시간이 7시간 30분을 넘지 않는다. 대학까지 무료로 공부했으니 후배와 후손을 위해 수입의 50%를 세금으로 내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웃이 어려우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줄 줄 아는 나라가 덴마크이다. 남이 잘 되면 배 아픈 게 아니라 축하할 일이라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나라다. 물론 지리적, 물리적, 환경적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사회와 말도 배우지 않은 어린아이 때부터 경쟁을 시키는 우리나라가 같을 수 없다. 그러니 아이들이 자라 살아갈 미래도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세상은 자꾸만 변한다는데, 우리는 여전히 예전과 똑같은 가치들을 아이들에게 주입하고 있다. 공부 잘하기를 바라고, 좋은 대학 가기를 바라고, 남을 이기고 성공하라고 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인생 최고의 가치인 양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삶이 행복할까. 좋은 대학 좋은 직장만을 최대 가치로 여기며 자란 아이들은 좋은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여전히 부모 밑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고, 성공하라니까 성공은 했어도 부모도 몰라보고 친구도 몰라보고 오로지 자신이 잘나서 성공한 줄 안다. 그런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작은 지구 상에 우리 각자는 너무나 소중하고 평등한데 직업에 귀천이 있을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소중하고 나의 삶이 행복한데 다른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나의 삶이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나라가 응원을 해주는데 그런 믿음을 주는 사회에 기여하고 공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가족들과 이웃의 사랑을 받는데, 사랑을 나눠주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학교는 대학으로 가기 위한 중간 다리가 아니라 인생을 배우고 자신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배우는 교육의 장이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사회에서 그대로 통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것이 통하는 나라가 덴마크이다.
솔직히 읽다 보면 부러운 감정이 앞선다. 태어나는 순간 빈부가 확실하게 갈리는 사회에서 살다 보니 태어나는 순간이 축복이고 누구나 평등한 대접을 받는 사회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당장이라도 덴마크로 떠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은 그게 아닌 것 같다. 덴마크도 처음부터 복지국가였던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구룬트비라는 시민 각성에 열정을 바친 지도자가 있었고, 국민 각자가 각성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깨달았고 그런 합의가 있었기에 지금의 복지국가가 된 것이다. 국가의 이익에 따라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국민 각자의 힘으로 이룩한 것이기에 그네들의 행복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아니리라. 우리도 그런 세상을 얼마든지 꿈꿀 수 있지 않을까. 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되지 않을 수 없지만 개개인이 아주 기본적인 것만 실천해도 그런 사회를 조금은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 신뢰를 회복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는 작은 노력들을 지금 실천한다면. 무심코 화장실에 누군가 붙여 둔 문구가 떠오른다. "문화시민이 별거겠습니까?? 사소한 것부터 지켜야죠!!" 그 사소한 것 하나 실천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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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를 나누는 기준을 갖고 있다. 바로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 및 통제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서 갈린다고 본다. 사민주의는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가들의 배타적 소유를 용인하고, 대신 정부가 세금을 거둬 복지 등의 공공부문으로 일정 부분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반면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가의 배타적 소유에 대해 변화를 줄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접근한다. 단기적으로는 사민주의 방식의 전술을 취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생산관계에서의 변화를 꾀할 전략을 갖고 가는 것이 사회주의라 하겠다. 2.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덴마크는 분명 사민주의다. 소득세를 무려 50%나 걷어서 그것을 재원으로 다양한 공공부문과 복지를 운영한다. 히지만 그들의 목표지점은 거기까지로 보인다. 생산관계에 변화를 줄 유의미한 고민이나 시도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쓴 <우리도 행복할 수 있는가>는 그 사민주의의 최고수준이 도달할 수 있는 사회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3. 이 사민주의 복지조차도 좌파 정권의 장기 집권, 그리고 상당기간 가까운 곳에 존재했던 공산국가 소련의 직간접적 영향이 있어 가능했다. 탄탄한 노동조합 조직율과 20세기 초반에 노동자 절반이 한 달간 직장을 안 나와 버리는 빡센 파업 등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역시 투쟁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하겠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복지에 대한 얘기는 많이 하면서도 복지 국가들의 이런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새누리당이나 새민련 같은 보수양당제로는 제대로 된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는데... 4. 덴마크의 교육제도가 참 인상적이었다. 학생의 사고력과 자립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제도가 무척 맘에 들었다. 중학교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 진학하기 전에 1년 정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단기 과정을 밟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 기간 동안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무척 성숙하는 것 같았다. 교육과 관련해서 아래의 내용이 무척 인상에 남았다.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선배나 어른들의 조언을 듣고, 사회적 멘토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에선 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할 때 부모의 조언을 많이 따른다. 덴마크는 어떨까? 5. 가끔 오연호 저자의 '오버'가 살짝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덴마크의 모습을 생생하게 다뤄서 무척 도움이 많이 됐다. 개인적으로 사민주의는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권을 자본가에게 그대로 둠으로써 발생하는 근원적 제약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덴마크 같은 복지사회는 정말 바람직한 미래의 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행복지수 1위 국가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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