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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의 늪에서 뛰쳐나오며 유레카, 유레카 소리지르며 신나게 읽고 나서도,,,,, 리뷰를 미룰 때가 있다. 내용에 걸맞는 멋진 리뷰를 쓰지 못하리라는 예감때문이기도 하고, 그 책 관련 서적을 몇 권 더 읽어본 후에 상대적으로 균형잡힌 리뷰를 쓰려는 욕심때문일 때도 있다. 다 필요없다. 내가 1년이나 지나 이 책 리뷰를 쓰는 것은 너무도 사랑스런 연인을 꽁꽁 숨겨두고 나만 몰래 만나고 싶은 심리였을 뿐! 그렇다, 난 이 책을 다른 분들이 읽는 것이 샘이 났던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분야 저 분야 기웃거리며 고민하다 겨우 이 책을 만나 시야가 좀 트였는데 말야, 다른 분들은 이렇게 이 책을 통해 쉽게 얻어 갈 거 아냐! 참을 수 없어! 리뷰 안 쓸 거야! 나만 두고두고 혼자 읽을 거야!
그 정도로 좋은 책이다. 여성사 분야에 관심있으시다면 믿고, 읽으시라.
뭐, 이렇게만 써도 리뷰 다 쓴 셈이다. 하지만, 수고해주신 저자, 역자, 출판 관계자들께 죄송하다. 덕분에 내가 이 좋은 책을 만나 오랜 방황을 접게 되었지 않나. 그러니 더 쓰자.
이 책은 각각 다른 세 분야의 전문가에게 한 대담자가 질문하는 방식으로 서구 여성사를 조망한다.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대담자 니콜 바샤랑은 인류학자 프랑수아즈 에리티에에게 여성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통해 얻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대한 그녀의 견해를 듣는다. 다음으로 바샤랑은 철학자 실비안 아가생스키와 대담한다. 철학이란 것이 객관적이지 않고 남성적 관점의 산물이라는 것을, 그 철학이 여성에 대한 어떤 개념을 형성해 왔는지를 듣는다. 세번째,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미셸 페로와의 대담이 이어진다. 서양 중세사, 여성사의 권위자인 페로는 여성의 일생과 세게사를 함께 논한다. 특히 내게는 여성의 노동 분야를 많이 언급한 것이 좋았다. 아이쿠, 알고보니 이 분은 여성사 쪽으로 뛰어들기 전에 원래 노동사 전공이셨구나.
이렇게 인류학, 철학, 여성사 세 분야를 다룬다는 점은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겠다. 각 분야별 전문적 정보를 원했다면 이 책은 별로다. 하지만 세 분야를 한꺼번에 훑어봄으로서 전반적인 여성 차별의 역사, 시스템, 현실까지 이어지는 억압의 근원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장점이 더 많다. 게다가 각주가 정말 잘 달렸다. 뒤쪽을 넘겨서 찾아볼 필요 없이 관련 페이지에 바로 달려 있으며 해설이 친절하다. 인물이나 지도 관련해서는 각주에 작지만 도판까지 바로 실려 있다. 편집팀이 굉장히 수고해서 만들었다는 티가 팍팍 나는 책이다. 좋은 책을 편하게 읽게 잘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다.
두껍고 너무 전문적인 여성사, 좀 공격적이고 날선 어투가 읽기 불편했던 페미니즘 서적이 부담스러운 분, 모르는 서양 인물들 주루룩 나와서 책 진도가 안 나가 기존 서구 여성사 읽기 힘들었던 분들께 입문서로 강추한다. 대담 식이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고, 핵심을 대담자 바샤랑이 계속 찍어주고 정리해주기에 그리 이론 공부하는 자세로 긴장하고 읽지 않아도 되어 좋다. 서양 여성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 책 이후 <처음 읽는 여성의 역사/동녘><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동녘><여성의 역사/새물결> 순서로 스텝 밟아 읽어나가는 방식을 추천한다.
페로 :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새로운 정치 체제를 구상했던 시에예스는 시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할 때 여성을 제외했죠. 그는 대부분 문맹자였던 빈민 역시 공적인 사실에 대한 이해가 없으리라고 판단하여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정신병자, 외국인 역시 제외했습니다. 그러니까 여성은 이들처럼 '피동적인 시민'에 속했고 공공 영역에 참여한 활동적인 시민보다 열등한 존재였던 거죠. 하지만 이 '피동적 시민'은 대부분 그 위상이 변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아이는 자라서 성인이 되고, 빈민은 재산을 축적하면 글을 배울 수 있죠. 중증 환자는 병이 치유될 수 있고, 외국인은 프랑스에 귀화하면 프랑스 시민이 될 수 있죠. 하지만 여성은? 한번 여성이면 영원히 여성으로 남죠. 그러니까 영원히 정치적 권리가 박탈되는 것입니다. 바샤랑 : 이런 부조리에 대해 아무도 반발하지 않았나요? 페로 : 1790년 <여성의 시민권 부여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쓴 콩도르세를 제외하고는 남자 중에서 항의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 본문 344쪽에서 인용
위의 인용부분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역사 사실과 논평이 잘 어울려 있다.
*** 311페이지를 보면 '1981년, 제 3공화국은'이라고 되어 있지만 프랑스 제 3공화국은 보불전쟁 이후 1871년부터이다. 이런 사소한 오타도 있다. 너무 칭찬만 쓴 것 같아, 난 이 출판사랑 아무 관계가 없고, 이 책은 내가 사서 읽은 책임을 밝히기 위해 옥의 티를 잡았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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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여성을 말하다
언제부터인가 식을줄 모르고 하나의 문화적 키워드로 잘 팔리는 '인문학’ 열풍 영향인가. 원제 "La Plus Belle Histoire des Femmes (여성의 아름다운 역사)>를 <인문학, 여성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였다. 무려 380여 페이지에 이르는 대담집 형식의 이 학술서의 공저자 4명 엄밀한 의미에서 인문학자로 뭉뚱그려 범주짓기는 어려울 듯 하다. 먼저, 니콜 바사랑은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 프랑수아즈 에리티에는 구조주의 인류학의 창시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수제자로서 물론 인류학자이다 (통섭의 시대에 이런 구획은 낡아보이겠지만, 굳이 이야기하자면 인류학은 인문학이라기보다 사회과학 분과에 속한다고 본다). 한 때 자크 데리다의 동반자였던 실비안 아가생스키(정작 그녀 자신은 이런 소개를 달가워하지 않을 듯 하지만)는 철학자이자 작가, 미셸 페로는 미셸 푸코와 함께 연구를 했던 역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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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여성을 말하다>를 독해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서 이 4명의 학자를 관통하는 공통분모를 찾아볼 필요가 있었다. 니콜 바사랑,프랑수아즈 에리티에(1933년생),실비안 아가생스키(1945년생),미셸 페로(1928년) 모두 프랑스의 대표적 지식인으로서, 투쟁으로서의 여성의 역사를 일깨우고 또 쓰고자 한다. 정치학, 인류학, 역사학, 등 세부 전공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 모두 철학에 탄탄한 지적 초석을 두고 있다. 게다가 이 4명 모두 여성, 그것도 대중적 시선으로 말하자면 중년 혹은 노년의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공통분모는 철학에 문외한이고, 더군다나 (억압받고 평가절하되어온) 여성의 역사에 미처 눈 뜨지 못한 독자에게 대단한 도전으로 다가온다. 공적 영역(public sphere) VS 사적 영역(domestic sphere), 여성의 재생산력( reproduction)과 자연에 묶인 여성의 종속적 지위의 보편성, 여성의 가사노동에 얽힌 논쟁 등은 이들이 1920~40년생이라는 사실도 다시금 환기시켜준다. <인문학, 여성을 말하다>에서는 "여성이 정말 제 2의 성으로 역사 속에서 주변화되어 왔는가?"란 질문의 예스, 노(yes/no)를 구하지 않는다. 여성의 종속적 지위는 보편적인 사실로 전제하고 있기에....이들의 관심은 그 종속적 지위가 어떤 문화적 기제로 생산, 강화, 그리고 당연시 유포되어 왔는가, 나아가 어떻게 여성의 지위를 복원하여 '혼성' 사회를 이룩할지에 있다. 이들의 주장은 '프랑스식 추상적 보편주의 환상(p111)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그들은 잘라 말한다. 남성 중심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양성의 중요성을 거부하고 남성의 문화적 우위성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추상적 보편주의를 파기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 4명의 학자들은 성불평들의 기원을 원시사회에서부터 더듬어보기도 하고(레비 스트로스의 수제자 답게, 프랑스와즈 에리티에는 신화에서 답을 찾아보려한다), 서양 고대철학 전통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유교 문화권에서의 남존여비 사상에 더 친숙한 한국 독자들에게는 익숙치않은 틀이기는 하지만, 새로쓰는 여성 역사라는 보편적 과제에 대해 사명감은 공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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