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고르는 기준이 제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제목에 이끌려 책을 잘 구입한다. 이 책도 그랬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로 유명한 이도우 작가의 책이었지만 결제하고 책을 받을 때까지도 몰랐다. 그냥 단순히 제목에 이끌려 나는 이 책을 구입했다. 또 한 가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소설이 아닌 산문집이라는 게 마음에 들어서다. 이상하게 소설은 잘 읽히지가 않는다.
밤이 주는 이미지는 차분하고 고요하고 약간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밤에 하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가 좋을까? 이 책은 어떤 이야기로 가득 차 있을까 궁금했다. 수많은 밤에 대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밤에 읽으면 좋은 이야기일까 수많은 궁금증을 안고 이 책을 읽어나갔다. 읽어가며 공감했던 몇 페이지를 소개해본다.
그날의 경험 탓인지 같은 풍경을 다른 버전으로 다시 바라보는 일을 좋아한다. p.27
같은 곳을 또 방문하는 것을 난 좋아한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장소를 다시 방문하는 건 참 설레는 일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냐가 아닐까 싶다. 물론 혼자 방문하는 그 공간도 좋지만 누군가 함께 공간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이번에 아이들과 함께 여수를 방문하게 되었다. 약 6년 만에 다시 방문했던 여수는 그대로였다. 내가 운전하며 다녔던 그 길까지 다 기억나는 게 정말 신기했다. 다시 방문한 여수에서 새로운 추억을 하나 만들었다. 바로 똑같은 장소에서 사진 찍기!
햇빛이 너무 눈이 부셔 사진을 찍을 때는 같은 장소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조금 더 아래에서 찍었어야 했다. 살짝 아쉬움을 남기는 위치 선정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즐거운 추억이었는지 사진을 보면서 한참 동안 사진 찍을 때 이야기를 목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6년 뒤에도 이곳에서 다시 한번 조금 더 자란 너희들의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
여행을 가도 관광지보다는 좁고 긴 뒷골목을 서성이고 싶은 까닭도 그 때문이다. p.31
딱 내가 좋아하는 그런 감성(?)이라서 참 마음에 들었다. 관광지보다는 뒷골목을 서성이고 싶은 그런 감성 나도 참 좋아한다. 그런 골목을 걷다가 만난 음식점과 카페는 그렇게 낭만적일 수 없다. 그 어떤 좋은 풍경을 바라보는 곳보다 더 좋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 있는 장소다. 대만에 갔을 때도 넓은 도로가 아닌 골목골목을 살펴보는 게 좋았다. 그곳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이방인이 아닌 그 골목을 걷다 보면 그곳에 푹 빠지는 기분이다. 걷고 싶다. 날이 좋아지면 어느 골목을 찾아가 볼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관계의 끝은 그런 걸까. 마음이 묶이지 않으면 우연을 빙자한 인연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 걸까. p.43
관계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그 사람도 소중하다고 생각해 줄 것 같았던 그 관계. 생각보다 그 관계는 별것이 아니었다. 함께했던 그 시간이 그 관계의 깊이를 말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과 관계의 깊이는 결코 비례하지 않았다. 내 노력이 그 관계 속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순간, 손을 놓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손을 놓았고 예상대로 그 손을 다시 잡아주지 않았다. 엄청나게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함께 해온 시간이 있으니까. 그 시간이 결코 짧은 게 아니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관계를 끝내기 몇 년 전부터 나는 예상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관계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들 속에서 나를 숨기고 어울리기 위해서 다른 나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모른척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예상하며 나도 모르게 그 관계의 끝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어느 정도 손을 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관계는 참 어렵다. 또 다른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렵고...
그렇게 건너가는 과정 없이 사랑하는 시간대에만 머무르는 건 생활이 아니라 판타지겠지요. p.60
사람들 마음속에는 다 고장 난 시계 하나쯤은 가지고 살지 않을까.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로 그때를 간직하며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고장 난 시계는 말 그대로 고장 난, 멈춰있는 시계일 뿐이다. 다시 그 시간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면 움직여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멈춰있을 뿐 돌아갈 수도 찾아갈 수도 없으니까. 가끔 하루에 두 번 겹치는 그 시간만 기다리며 살기에는 하루가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고장 난 김에 그렇게라도 쉬어가는 게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너무나 흔하지만 그렇기에 사연이 많은, 가깝고도 먼 사물. p.167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고 집과 학교가 멀었는데 차량 운행을 해주는 학원이 피아노 학원밖에 없어서 선택할 여지도 없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6년 동안 어쩔 수 없이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피아노 학원은 2층에 있었고 1층은 미술 학원이었다. 나는 피아노 학원보다는 1층에 있는 미술 학원에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미술 학원은 차량 운행을 해주지 않았고 둘 다 다니기에는 집안 사정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에 미술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부러워하기만 했었다. 좋아하지도 소질도 없는 피아노를 6년이나 쳤고 6학년 말쯤 보습학원에 다니게 되면서 피아노 학원을 끊었다. 그렇게 피아노와는 영영 안녕하는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갑자기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졌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중학교 때도 교회 반주를 하면서 피아노를 조금씩 쳤지만 찬송가 반주 법이나 코드 반주 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렇게 가기 싫어했던 피아노 학원을 고등학교 1학년 때 다시 등록해서 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참 웃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수학학원을 하나 더 다녀도 모자랄 고등학교 때 피아노 학원이라니... 초등학교 때 다녔을 때와 전혀 달랐다. 내가 하고 싶어서, 좋아서 배우는 피아노는 정말 재미있었다. 그렇게 피아노는 지금까지 내 삶 주변에 머물러있다. 결혼하면서 가져오고 싶었던 우리 집 피아노는 결국 가져오지 못했고 엄마는 피아노를 화분 받침대로 쓰고 있다며 지금도 빨리 가져가라고 잔소리를 할 때도 있지만 피아노 볼 때마다 내가 생각나서 좋다고 살짝 말하기도한다..ㅎㅎ
' 내게 책이란 OO이다' p.197
나에게 책이란 무엇일까? OO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짧은 것 같기도 한데. 누군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경험'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에게 책은 경험이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하는 기분이 든다. 때로는 여행을 할 때도 있고, 작가의 삶을 만나보기도 하고, 그 책 속에 들어가 일부가 되는 것 같은 그 경험! 그것이 좋아서 책을 계속 읽는 것 같다. 또 이 경험을 통해서 내 경험을 나누는 것. 내가 생각하는 책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인생을 하나의 긴 여정으로 보고 결말에 이르러 해피엔딩이 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건 아까운 일이다. 차라리 해피엔딩의 일상화를 만드는 게 낫겠다. p.213
내가 소설을 잘 읽지 않는 것도 바로 결말이 아쉬울 때가 많아서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결말로 끝이 날 때 그 허무함이 아직은 싫다. 물론 이런 인생도 저런 인생도 있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끝이 날 수는 없겠지만 책에서까지 그런 경험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 엄청 감성적인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냉철한 것 같은 내 기분을 이럴 때면 나도 잘 모르겠다.. ㅋㅋㅋ 너무 이기적인가? 모두가 해피엔딩이면 참 좋겠지만 해피엔딩을 기다리며 살지 말고 하루하루가 해피엔딩이 되도록 노력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자의 말처럼 인생의 마지막만 해피엔딩으로 끝내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새드엔딩으로 살고 있다면 그게 무슨 해피엔딩인 삶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매일매일 해피엔딩일 수는 없겠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행복한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딱 그만큼만 되어도 해피엔딩의 일상화가 아닐까 싶은데:)
늘 행복할 수는 없지만 자주 행복을 누르시기를 바라요. 아팠던 일도 기뻤던 일도, 지나온 많은 나날이 고마워지면 좋겠습니다. p.327
책을 읽으면서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좋아서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짧은 나뭇잎 소설은 또 다른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상에 풍경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 책에 들어있다. 지금까지 본 적은 없지만 한 번쯤은 보고 싶은 풍경들 속에 들어가 여행을 한 기분이다. 걸어본 적 없는 어딘가 걷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낮이 아닌 약간은 어둡고 날씨는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으며 살짝 바람에 여름향기가 묻어나는 것 같은 그런 길. 그 길 위에서 만난 작은 책방에 앉아서 창문 너머로 떠오르는 달과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 마시는 그런 기분. 참 좋았다:)
독서습관으로 만난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http://blog.yes24.com/document/13742493 http://blog.yes24.com/document/13751219 http://blog.yes24.com/document/13758376 http://blog.yes24.com/document/13763929 http://blog.yes24.com/document/1377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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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아, 그래요, 정말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예요. 괜히 낮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싶어지는 제목이다. 낮의 밝은 태양이 아닌 밤의 자락에 숨어, 달빛 아래에 서면 우리는 조금은 더 속내를 꺼내곤 하니까. 비록 다음날 해가 떠오르면 이불을 차며 후회할지라도.
쓸쓸함은 기록되어야 한다, 평행사변형 모양의 슬픔, 거미줄 서재 그리고 추억이 없는 따뜻한 곳, 4개의 장으로 구성된 글을 읽으며, 어느샌가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기억 속에 묻혀있던 이야기들을 꺼내어 화답하기도 했다. 글의 사이사이에 ‘나뭇잎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한 9편의 짧은 소설들을 읽으며, 긴 호흡으로 써내려간 작가의 글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여행을 가 뒷골목을 서성이는 까닭에서 미야자와 겐지와 그의 글들을 떠올리는 작가의 이야기에 나 역시 언젠가 읽었던 ‘은하철도의 밤’을 떠올리며, 그 책을 내게 알려준, 미야자와 겐지를 좋아했던 오랜 친구를 떠올리기도 했고,
그런 기분이 다시 찾아오는 밤이면 왠지 미야자와 겐지를 읽고 싶어진다. '주문이 많은 요리점'이나 '첼로 켜는 고슈'같은 짧은 이야기들. 뜬금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내게 말을 거는 이상한 존재들을. p.31
여행을 가도 관광지보다는 좁고 긴 뒷골목을 서성이고 싶은 까닭도 그 때문이다. 걷다 보면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이상한 요리 이름이 적힌 메뉴판과 간판이 걸린 심야 점포가 나타날 듯한 기분이 된다. 한적한 가게 구석에 앉아 어두운 창밖을 올려다보면, 저 멀리 마젤란은하행 열차가 둥실 정차하고 있을지도. 객실 차창마다 노란 불빛을 밝힌 채 돌아오지 않을 편도행 기차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멍하니 상상해보는 것이다. p.31
'나뭇잎 소설' 중 하나였던 ‘이상한 방문객’을 읽으면서는 만약 책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책으로, 또 어느 장면으로 들어가기를 바랄까? 마냥 상상을 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앤이 매슈와 함께 '초록지붕 집'으로 향하던 장면이었다. 그 페이지에 들어간다면 '환희의 하얀 길'도 '빛나는 호수'도 볼 수 있을테니. 아니면 루시가 옷장 속을 더듬어 들어가 하얗게 눈덮인 ‘나니아’에 발을 딛던 페이지도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역에서부터 이곳까지 걸어온 자. 그는 우의 아래 주머니에서 소중히 넣어온 쪽지 한 장을 꺼내 그늘진 눈빛으로 내민다. 거기엔 페이지 숫자가 적혀 있다. "들어가게 해주시오. 위대한 개츠비. 제5장, 음악실 장면으로." ..(중략)..영원히 책 속으로 들어갈 것을 각오한 자. 마지막으로 세상과 작별하고 다시 찾아온 사람. 우리는 그들을 ‘궁극의 독자’라 부른다. 현실과 픽션의 균형을 어지럽히는 위험한 존재. pp.192-193
그렇게 책장을 넘기던 나를 멈칫하게 만든 대목은 바로 4장의 제목이기도 한 '추억이 없는 따뜻한 곳' 이었다. 혹시, 저자가 말하는 제목이 내가 알고 있는 그 곳이 아닐까? 읽기 전부터 두근거리다가 내 예상이 맞았음을 알고 어찌나 반가웠던지.
"언제가 당신이 가석방으로 나온다면 전에 얘기했던 남쪽 바닷가로 나를 찾아와요. 추억이 없는 따뜻한 곳에서 다시 만납시다." 그 대사가 잊히지 않았다. 추억이 없는 따뜻한 곳이라니. 살아온 날만큼 누적된 수많은 기억을 뒤로하고, 아무 추억도 없는 낯선 곳이란 얼마나 새롭고 무해한 장소일까. 나에 관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어딘가에 대해서. p.260
영화 '쇼생크 탈출'을 좋아한다. 팀 로빈슨과 모건 프리먼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그 중에서도 앤디가 교도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음반을 틀었던, 교도소내에 음악(피가로의 결혼식 중 '저녁바람이 부드럽게')이 울려퍼지던 장면과, 그와 동료들이 작업을 마친 뒤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던 장면, 몸은 물리적인 감옥에 매여 있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자유로웠던 순간들은 반복해서 볼만큼 좋아한다. 그리고 한 장면 더, 영화의 앤딩이 오르기 전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앤디(팀 로빈슨)와 레드(모건 프리먼)가 만나던 추억이 없는 따뜻한 곳, 지후아타네요(Zihuatanejo, 멕시코).
한동안 그곳은, 어쩌면 여전히, 내가 가보고 싶은 곳 중 한 곳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아마도 앤디가 들려준 '추억이 없는 따뜻한 곳(warm place without memory)'이라는 설명에 기인할 것이다(정작 영화는 다른 장소에서 찍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접하고 살짝 실망하기도 했지만). 그런데 그 곳의 이야기를 책에서 만나다니, 거기에 나와 같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결국 영화 속의 인물들이 소망했던 ‘따뜻한 곳’은 물리적인 장소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팠던 기억을 잊어버리거나, 적어도 그 기억과 화해할 때만이 진정 따뜻한 장소와 만날 수 있다는 것. 애증은 고되니 너무 오래 묵히지 않고 자주 바람에 놓아버리며 살고 싶다. 마침내 모든 추억이 아무렇지 않아 따뜻해지도록... p. 262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 켠이 설레었다. 팍팍한 일상에 지쳐 다소 삐딱해져 있던 내 속에서 설렘을 마주하니 괜히 멋쩍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이 시간 역시 내가 모르는 새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저자가 말하듯 내 곁을 스쳐 지나는 일상들에 ‘굿 타임즈 네버 심드 소 굿’을 흥얼거리듯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위로를 받는다.
좋은 시절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정말 지겨운 나날이고 사는 게 엉망진창이라고 투덜대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때가 지나면 비로소 알게 된다. 돌아보니 참 좋은 날들이었구나, 그땐 왜 몰랐을까 라고. 좋았던 시절은 그 무렵엔 느낄 수가 없지만, 한 시절에 이별을 고하려는 순간 새삼 좋은 날이었음을 알려주어 고맙고 서글프게 한다. p.288
굿 타임즈 네버 심드 소 굿 - 좋은 시절일 땐 그걸 몰라. 그러니 참 좋은 날들이었고 지금도 좋은 나날이며, 앞으로도 그러리란 걸 알아주리라고. 우리 곁을 스쳐가는 아무렇지 않은 나날들이 좋은 날임을 잊지 않고 알아봐주면 되는 것이라고. p.290
*나에게 적용하기 하나. 저자의 다른 책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읽기(적용기한 : 7월 중) *마음을 끄는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행복한 일이다 두울.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다시 읽기(적용기한 : 가을이 오기 전에)
*기억에 남는 문장 행복한 사람은 글 같은 건 쓰지 않는다던 낡은 명언이 있지만, 우리는 이미 안다. 늘 행복한 사람은 세상에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을.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없을 거란 걸. p.22
어떤 장소에 밤에 도착하는 것과 낮에 도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여행의 시작이라는 사실도. p.27
우리는 살아가면서 열심히 해보겠다고 자주 결심한다. 잘해보겠다고, 애써보겠다고, 그건 그대로 좋은 태도겠지만, 그렇다고 울지 않겠다거나 강인하겠다, 슬픔을 이기겠다고까지 굳게 마음먹을 필요는 없다. p.52
무거운 짐을 반만이라도 대신 져주겠다 해도, 우리는 짐을 꽉 쥐고 놓지 않는다.안 놓는 게 아니라 못 놓는 거다. 자신의 짐은 죽을 때까지 혼자 지고 가는 것이고, 아무리 사랑해도 남이 타고난 짐을 대신 질 수는 없다. p.52
죽은 모래 같은 마음으로 강하게 서 있기보다는 방황하는 우는 모르개 차라리 자연스럽다. 굳이 힘내라고 말하지 않아도 묵묵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게 응원이라는 걸 안다. p.53
이다지도 사소한 일에 목숨 거는 듯 보여도 그게 그 인물을 둘러싼 세계의 전부라면 비장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p.56
누군가를 아무리 아끼고 사랑해도 우린 그 대상을 영원히 지켜줄 수는 없다. 세상을 살아가며 많은 일을 겪고 나쁜 마법과도 같은 어려움도 만나겠지만, 그렇게 변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가장 두렵다. p.153
인생에서 너무 늦은 모험이란 과연 있을까. 기회는 어느 시절을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 걸까. p.170
길모퉁이에 아무렇지 않은 척 존재할 것만 같은 가게들. 문득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보고 싶은, 자전거를 타고 어플 지도를 보며 찾아가고 싶은 공간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의외로 함정이 많고 숨을 곳도 많아서 어느 순간 앨리스의 토끼굴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되고 만다. p.190
모든 이의 마음속에 수많은 평행세계가 있다. p.191
그러니 인생을 하나의 긴 여정으로 보고 결말에 이르러 해피엔딩이 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건 아까운 일이다. 차라리 해피엔딩의 일상화를 만드는 게 낫겠다. 아, 이번 한 주는 해피엔딩으로 마감했군. 오늘 하루는 그럭저럭 해피엔딩 이었어, 하고. 너무 긴 여정을 바라보면 피로한 강박이 되는 게 해피엔딩의 함정인 것 같다. p.213
누군가와 대화하다 보면 처음엔 무슨 뜻인지 헷갈려 갸웃하다가, 뒤돌아 스무 걸음 걷고 나서야 그의 말에 미묘한 의미가 있었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중략)..자국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바늘 끝 같은 공격이 있었다는 걸 한 박자 늦게 깨닫고 나면 서글프다. p.294
저마다 다가가는 걸음의 속도와 보폭이 다르다. 둘이 마주보고 열 발자국씩 가까워지자 약속해도, 막상 열 걸음 걸은 뒤 재보면 서로 똑같은 거리만큼 다가오진 않았을 것이다.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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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우 작가님이 에세이를 출간하셨다는 소식에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나는 에세이를 즐겨읽는 편이다. 저자들의 담백하고 가벼운 이야기를 머리 아프지 않게 읽을수 있어서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것이 소장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그냥 단순히 좋았다라는 감상으로 끝이 난다. 그래서 이도우 작가님의 에세이도 그렇지 않을까라는 내심 그런 불안함이 있었다. 하지만 이도우 작가님은 달랐다. 말로 잘 설명할수 없지만 에세이또한 소설처럼 무언가 뭉클한 감정들이 마음속에 앙금처럼 새겨진다. 술술 읽히다든가 재미있다는 감상에 앞서 표현하기가 힘든 알수없는 끌림이 있는 매력적인 에세이였다. 정말 구매하길 잘했다고 생각을 했다. |
하지만 고장 난 시계 하나쯤 누구나 서랍 속에 넣어두고 살 테니까, 엉뚱한 시간대를 방황하는 사람도 너무 걱정하지 말자 생각합니다. 돌아올 기회는 있으니 잠시 헤매다녀도 괜찮을 거라고. 고장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으니까요. / p.60
힘들거나 지치는 일이 있으면 늘 책으로 손을 뻗게 된다. 동굴에 갇혀서 바깥 세상도 모른채 주구장창 책만 읽으면서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유년기 때부터 이어져 온 나의 본능이라고 할까. 학교 다닐 때에는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이유로 좋아하시던 부모님께서도 걱정하시기도 한다. 방에 처박혀서 종일 책만 읽고 앉아있는 자식을 보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셨을 것 같다. 특히, 방학에는 책방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쌓아서 읽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독서로 읽은 책들이 쌓이면서 나의 주관과 취향이라는 게 생겼다. 음식뿐만 아니라 책도 편식하게 되었다. 나이가 먹을수록 선호하는 취향이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틀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었다. 호불호가 명확하다. 지금은 생각하는 것 자체도 귀찮아서 비문학 대신 소설과 에세이 위주의 책을 많이 읽게 되지만 현실 세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과 에세이를 많이 선호한다.
읽는 책의 종류만큼이나 선호하는 작가의 취향도 점차 확고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최근 들어 두 작가님의 소설을 읽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의 최애 작가님은 이도우 작가님이었다. 지금도 손가락만 늘어났을 뿐 여전히 이도우 작가님의 문체는 아직도 나를 겨울로 데려다 준다. 나를 겨울로 보내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아마 이도우 작가님의 책이지 않을까.
이 책은 이도우 작가님의 첫 산문집이다. 작가님의 기억들과 생각들, 집필하셨던 소설들의 비하인드가 실려 있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책들의 리스트를 뽑으면 그 중에 1/3 정도는 산문집이 차지할 정도로 생각보다 많이 읽는 편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산문집들 중에서도 보는 것보다 듣는 것처럼 느껴진 책은 이 산문집이 처음이었다. 이도우 작가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느낌.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단순하게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 대학교 때 겪었던 일, 집필한 소설의 의도. 어떻게 보면 너무 평범하면서 별 내용이 아니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자체에서 주는 편안함과 위안이 좋다. 나도 모르게 공감의 고개를 끄덕일 때도, 현실의 내 상황을 위로해 주시는 말이 마음에 와닿을 때도, 나의 미래가 보일 때에는 희망을 느끼기도 했다. 가끔 이렇게 일상적인 말과 행동, 글들이 마음에 박힐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나뭇잎 소설을 참 흥미롭게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1월의 해시 태그"라는 소설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계속 독서 모임이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작성한 독서 모임 회원의 인터넷 게시물이다. 내가 구상했던 독서 모임의 방향성과 일치한 내용이었기에 관심이 갔다.
원래부터 사람들과 같은 책을 읽고 감상평을 나누거나 재미있는 책을 추천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평소 말이 없기로 유명한 내가 유일하게 수다맨이 되는 순간이 책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나눌 때이다. 오죽하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주변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로 주고 감상평을 알려 달라고 했겠는가. 그만큼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한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갇혔던 내 생각이 열리는 기분이 좋고,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통해 내 편견이 깨지는 짜릿함도 좋다.
독서 모임 개설에 대한 나의 꿈을 글로 표현한 것이 그 나뭇잎 소설이었던 것이다. 비록 한 회원의 인터넷 게시물이기에 두 장 반 정도의 짧은 이야기이지만, 글에서 나의 꿈이 계획으로 구체화가 된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아직 언제 실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사람을 만나는 이 두려움이 깨지면 도전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역시 이도우 작가님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서 따뜻함을 표현하시는 분. 안락하면서도 포근한 이불과 같은 책. 위로를 받고 싶을 때 나도 모르게 손에 다시 들게 될 산문집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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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모래 같은 마음으로 강하게 서 있기보다는 방황하는 우는 모래가 차라리 자연스럽니다. 굳이 힘내라고 말하지 않아도 묵묵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게 응원이라는 걸 안다. "
소설에서도 느꼈지만 글을 참 이쁘게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거칠지 않고 생각의 결이 섬세하고 여러번 다듬어서 나올 것 같은 소곤소곤 속삭이는 문체다. 그래서 그런지 필사하고 싶은 글도 많았다. 에세이기에 이야기의 흐름은 없는데도 한 사람의 속내를 스토리별로 들은 기분이다. 중간중간 나뭇잎 소설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4-5페이지의 짧은 소설인데 가랑비에 옷 젖듯이 가슴속에 스며드는 이야기들이다. 그중에서 [이상한 방문객]이라는 소설은 좀더 확장해 봐도 좋을 듯 싶었다. 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연다. 그들은 나를 '책집사'라고 부른다. "들어가게 해주시오 . 위대한 개츠비. 제 5장 . 음악실 장면으로" 영원히 책 속에 들어갈 것을 각오한 자. 이런 사람들이 등장인물이다. 책을 읽다보면 정말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그 거리를 걷고 있고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이 느껴지기도 한다. 뭐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게 더 심하다면? 진정 그 세계로 들어가서 살고 싶어진다면?
어느날은 별일도 아닌데 당사자도 아닌 사람에게 혹은 더 약해 보이는 사람만 골라서 화를 쏟아붓는 사람을 볼때가 있다. 작가는 그런 여러 케이스들을 보고나서 이런 글을 적는다.
" 내 속에도 그 순간 치밀어 오르는 적의가 있음을 느끼게 했던 순간들이기도 했다. 갈 곳을 모르는 적의는 언제나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치환된다는 부끄러움을 알게 한 그 여름날들의 현기증"
일반적으로 그냥 욕을 할텐데 말이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은섭처럼 조곤조곤 말하는 것 같다. 책방일지처럼...
"그러니 참좋은 날들이었고 지금도 좋은 나날이며, 앞으로도 그러리란 걸 알아주리라고. 우리 곁을 스쳐가는 아무렇지 않은 나날들이 좋은 날임을 잊지 않고 알아봐주면 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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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우 작가님 책은 안 살 수가 없어요. 아마 이 작가님 책을 한번 읽고 그 이후로 작가님의 다른 책 사신 분들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저는 완전히 반했어요. 제목도 글도 어쩜 이렇게 잘 쓰실까요. 따뜻하게... 그리고 그냥 읽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려요. 요즘 정말 자극적인 소설들 너무 많잖아요. 그런 것들 몇편 보다가 이런 보석같은 책을 발견하니 제 영혼이 맑아지는 것만 같아요. 캐릭터 한명한명 너무 좋고 읽는 내내 정드는 것 같아요. 사랑합니다,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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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우 작가님의 책은 잠옷을 입으렴으로 처음 읽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대출 후 소장을 하고 싶어져 구매했습니다. 겨울에 읽으면 책 속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따듯하고 쓸쓸한 이야기. 잠 들기 전 한 줄씩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 둘녕이와 수안이를 안아주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나를 안아준 이야기.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책입니다. 작가님의 글이 좋아져 다른 책도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이야기들도 무척 기대되고 궁금합니다. |
우연히 스치듯 본 드라마 제목이 작가 이름을 검색하게 했고 나이가 비슷한 작가라는 걸 알게 됐다. 비슷한 시대를 살면 생각도 비슷해 진다. 다른 이ㅇㅇ 작가의 수필 때문에 읽게 된 산문은 삶에 지친 나날에 자주 다시 읽게 되는 바이블이 됐지만 이도우 작가의 글도 읽다가 곱씹게 된다. 그리고 잠시 내 일상에 대입해 보는 여유도 분홍색 간지 역할인 줄 알았던 짧지만 웃픈 나뭇잎소설은 또다른 재미였다. 이 작가의 3편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
일본 만화 제목들을 보면 이게 제목인가 싶게 긴 작품이 꽤 많이 보인다. 그 영향인가, 짧으면 안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들이 책을 많이 써서일까 드라마 제목도 점점 길어지고 또 그 제목을 짧게 만들어 부르는게 유행이 되기도 한다. 최근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라는 드라마가 방송되는 것을 보고 뭔 이야기이길래 저렇게 또 제목이 긴가 생각만 했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선택한 책,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의 작가가 바로 그 드라마의 원작이 된 소설을 쓴 사람이라는 것도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저자에 대한 정보도 없이 덜컥 책을 사는 경우는 그렇게 많이 없는데 어쩐지 이 책은 그냥 좀 읽고 싶었다. 힐링을 표방한 그렇고 그런 책이 아니길 바랬는데, 읽으면서 계속 "이 사람은 어떻게 그 순간의 일들을 이렇게 다 기억할까"하며 신기해했다.
뭔가 딱 글을 써야겠다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특별한 순간을 맞이하면 이렇게 이렇게 글을 쓰면 괜찮겠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그 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게 되는데 작가들은 그 순간을 다 기억하고 글로 펼쳐놓는다. 이 작가는 특히 그 능력이 뛰어난듯 하다. 시시콜콜한 기억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사소한 것들이 읽는 이들로 하여금 공감을 유발하고 좋은 글이 되었다. 뭐지, 특별한 내용도 없는데 왜 읽으면서 나는 재미있다고 느끼는걸까.
다만 내 마음을 멈칫하게 만든 건, 밤에 쓴 글에서는 촛불 냄새가 난다는 말이었다. 어둠과 불빛은 예상보다 더 감정을 건드려서 햇살 환한 낮에 다시 읽으면 부끄러워 외면하고 싶어지니까. 지난밤의 글을 번번이 지우다가, 문득 어느 날 그게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밤에 쓴 글은 다음 날 밤에 읽으면 되는 것을. 언제나 밤에 읽으면, 새삼 촛불 냄새를 부끄러워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밤에 쓴 편지를 아침에 읽어보면 너무 유치해서 보낼 수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밤에 쓴 편지는 밤에 봉해놓았다 아침에 바로 보내야 한다. 글도 그런 것 같다. 쓰고 싶은 마음에 썼다가 이성적인 눈으로 읽어보면 어쩐지 앞뒤도 안맞 고 내 마음을 너무 내놓아 부끄럽다고 할까. 그렇게 하기 시작하면 글을 쓸 수 없기에, 작가는 그냥 그 글들을 밤에 읽기로 했단다. 덕분에 우리가 이 책을 만날 수 있었을테지.
결국 이런 무해한 상상들은 픽션과 조우하는 나의 마음인가 보다. 언젠가 서점 인터뷰에서 '내게 책이란 OO이다'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빈칸에 '결계'를 써 넣었다. 결계는 다른 존재가 침입하지 않도록 보호해놓은 공간이고, 스노우볼이나 커다란 돔 지붕 아래 깃든 세상처럼 책이라는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 작가와 함께 생각하고 즐기다가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이라고. 사랑하는 책과 영화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비록 헛되지만, 그 속에서 휴식처를 발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 같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낯선 단어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 그래서 다들 TV로, 책으로 그 대상을 옮겼다. 영화를 보러가지 못하는 대신 넷플릭스로 만나는 킹덤이 화제가 되고 은근 도서 판매가 늘었다는 오랜만의 희소식도 들려온다. 결계라는 근사한 말을 쓰지 않더라도, 어쨌든 책을 읽는 동안 작가와 나, 또는 등장인물과 나,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공간을 만날 수 있으니 요즘같은 때엔 딱이다 싶다.
신기루 같은 상상인 줄 알지만, 알면서도 혼란스럽지 않게 꿈꾸고, 회피하지 않으며 판타지를 사랑하고 싶어요.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스토리와 픽션이, 소설이 좋은가 봅니다. 책을 읽지 않고 살아도 아무런 무리가 없고 어떤 이들은 소설을 읽는 건 시간 낭비 같다고도 말하지만, 저는 소설을 읽지 않으면 한 겹의 인생을, 읽으면 여러 겹의 인생을 살게 될 것만 같습니다. 여러 겹의 생을 살아보는 일. 그건 세상에 나그네처럼 머물렀다 갈 사람들이 저마다 가질 수 있는 '나의 부피'일 겁니다.
조금 오래 살다보면 내 인생 자체가 소설같다는 생각에 "내 인생이 소설인데 남의 인생 읽을 시간이 없다"며 시건방을 떠는 시점이 온다. 나도 잠시 그랬던 때가 있었지만 요즘은 또 소설이 좋다. 여러 겹의 인생을 살게 되는 흥미로운 경험을 어떻게 놓칠 수가 있을까. 다만 예전처럼 정말 재미있는 소설 찾기가 쉽지 않다는 어려움이 있다.
이전에 서점 인터뷰에서 기자분이 '평생 쓰고자 하는 인생의 주제'가 있냐고 물으셔서, 솔직히 테마까지는 모르겠고 이번 생은 온통 트리뷰트 인생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중얼거리는 인생일 거라고... 애정을 고백하기에도 모자란 날들, 잡다한 것들을 껴안고 사는 기억의 호더증후군 같기도 하지만, 언젠가 그 많던 싱아의 방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많은 것을 기억했다가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저자는 그저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을 중얼거렸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중얼거림을 들으며 기분이 좋아진 한 명의 독자가 되었다. 그가 많은 것을 기억했다가 써준 덕분에 나도 많은 기억이 났고, 뭔가 이렇게 사소한 것을 써도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힘을 얻었다. 그가 쓴 소설은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했고. 앞으로도 많은 것을 기억했다가 써주길 바래본다.
다음 작품이 더 기대되는 작가 이도우의 산문집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이다. |
드라마방영중인 원작 이도우작가님 책 읽고나서 너무 좋아 이번산문집도 고민없이 구매하게 됐네요 책 표지도 넘 이뻐요 책을보며 봄기운 제대로 느낍니다 집콕인 요즘 이도우작가님 책으로 힐링 제대로하고있어요 읽고 한번 더 읽고 암튼 너무 좋습니다 사은품머그컵도 감성있고 넘이뻐요 머그컵보면서 두고두고 책생각도 함께 할듯해요 앞으로 작가님 책은 계속 기대하고 기다리게 될꺼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