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한대전에서 유방의 휘하 장군들 중 가장 공이 높은 사람은 누구일까? 단연 한신이다. 황제에 오른 유방은 지략은 장량, 행정은 소하, 군사는 한신을 으뜸으로 꼽으며 칭찬했다. 유방의 휘하에는 뛰어나고 용맹한 장군들이 많았지만 그들 모두 한신에 미치지 못했는데, 다른 장군들은 그저 싸움에 특출난 반면, 한신은 전쟁의 판도와 대국적인 흐름을 읽는 전략가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신은 병법에는 밝았지만 정치는 밝지 못했다. 고대에는 정치와 병법이 차이가 없었다. 손자병법이 군대와 군대의 싸움을 이익에 근거하여 분석한 책이라면, 한비자는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이익에 입각하여 풀어낸 책이다. 즉 궁정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 역시 물리적인 전쟁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군대의 싸움은 칼과 활을 통해 가시적으로 다투는 것이라면 권력싸움은 보이지 않는 창칼로 싸울 뿐이다. 아무튼 한신은 세련된 궁정 싸움에 능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큰 공을 이루고도 비명횡사했다. 한신을 보며 생각한다. 특출난 능력은 어쩌면 양날의 검일지도 모른다고.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시기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최고지도자가 있다면 비극이 시작된다. 한신도 그랬다. 천하를 통일하기 전까지 유방은 한신의 군사적 재능이 필요했지만 천하를 통일한 이후에는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신은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순진하게 유방을 믿었으며 자신의 부귀가 영원할 줄로 착각했다. 그럼 한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가장 최선은 유방과 항우가 서로 싸울 때 제3의 세력으로 독립하여 스스로 천하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자면 한신은 정치적 처세나 식견은 부족하기에 독립을 하고도 끝이 안 좋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한신의 선택을 쫓아 유방을 밀어주는 쪽으로 생각해보자. 유방을 밀어준 뒤, 천하를 통일하고 어떻게 처세해야 옳았을까. 가장 최선은 봉지를 반납하고 수도에 머물며 조용히 부귀를 누리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유방으로부터 시기와 의심을 줄일 수 있으며, 특별한 모반을 하지 않는 이상 유방도 뛰어난 군공 때문에 한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신은 최악의 선택을 고수했다. 바로 제후왕이 되는 것. 봉지를 받고 스스로 왕으로 군림했다. 그 결과 한신은 토사구팽으로 생을 마감했다. 한신은 죽기 전 회음후로 강등되어 장안에 머물게 된다. 이때라도 정신을 차리고 정치적 처세에 신경을 썼다면 목숨만이라도 보존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는 높아졌던 왕의 지위에 걸맞은 자만을 부리며 공신 번쾌를 욕보였고, 고조와의 술자리에서 '황제께서는 10만 명의 군사를 이끄는 것이 고작이지만 자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라는 망언을 퍼부었다. 물론 뒤늦게 '폐하는 장군들의 리더가 될 능력이 있기에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라며 아부했지만, 한신의 군사적 재능을 무척 경계하는 고조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매우 나빴을 것이다. 만약 한신이 자신의 특출난 재능만큼 정치적 처세에도 밝았다면 멸족을 피하고 부귀영화를 대대손손 전했을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