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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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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工夫)라고 하면 대개 책상에 앉아 문제 푸는 걸 연상하기 쉽지만, 중국무술하면 떠오르는 ‘쿵후’의 우리말 음도 공부(功夫)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심신을 단련하여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신체를 단련하고 함양하는 제반 활동 모두 공부인 것입니다. 출장입상(出將入相)의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과 큰 차이는 없겠지만, 반세기 전만 해도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
"공부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내용보기

   공부(工夫)라고 하면 대개 책상에 앉아 문제 푸는 걸 연상하기 쉽지만, 중국무술하면 떠오르는 쿵후의 우리말 음도 공부(功夫)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심신을 단련하여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신체를 단련하고 함양하는 제반 활동 모두 공부인 것입니다. 출장입상(出將入相)의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과 큰 차이는 없겠지만, 반세기 전만 해도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존중받았고 배려의 대상이기 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본인의 영달이야말로 1차적인 목적일 터이지만, 그런 걸 미처 헤아릴 지각이 없을 때부터 가족의 두터운 사랑과 기대를 받아가며 공부를 시작하기 일쑤였습니다. 우선은 매를 피하기 위해 혹은 칭찬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을 테고, 머리가 어느 정도 여물면서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 혹은 부모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학업에 전념했을 겁니다. 이상추구 경향이 강한 청년시절에는 공부하여 남 주자는 소위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의지를 다짐하는 이들도 많았겠죠. 이런 학생들을 사회에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오늘날의 공부는 일신의 출세와 안녕 이상을 생각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공부라고 하면 일단 대학입시를 떠올리고, 대학졸업 후 취업시험 그중에서도 고시를 비롯한 공무원 시험준비까지가 공부의 범주에 듭니다. 공부의 성취가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대한 객관적 지표로 여겨져, 어느 사이에 일종의 특권화가 이루어진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최근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도 이러한 능력주의의 폐해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습니다만, 미국 사회보다 우리 사회가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최근 우리나라의 판검사들이나 의사들의 행태를 보면 쉬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이들은 공부를 잘해 특정한 자격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일국의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곤 합니다. 집단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심지어 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조차도 동료라는 이유만으로 은폐하고 옹호하는 행태를 일상적으로 보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행태를 국민들 상당수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겁니다.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사회적으로 강하게 응징하면 될 터인데, 그런 사회적 통제력이 작동하지 않으니, 이들이 더욱 기고만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만들려고 하는데, 교육부에서 차별의 다양한 사례 중 학력에 의한 차별을 제외시키려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교육부가 이런 어이없는 일을 하는 것은, 학력에 의한 차별에 대해 교육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도 당연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저 역시 대학교에 다닐 때나 졸업 후 고졸자들에 대해 나름의 우월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반성합니다.) 고쳐야 합니다. 배운 놈들이 더 무섭습니다. 이 책에서도 말한 것처럼 공부가 부정의에 눈감고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쓰일 때 한 사회가 얼마나 큰 위험에 빠지게 되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294) 공동체에 보탬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되레 공동체에 해가 되는 공부에 대해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과 통제가 필요하다 여깁니다.

 

  공부도 문제이지만, 학교도 못지 않습니다. 학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죠.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유발 하라리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수해야 할 교육 내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바로 더 많은 정보. 정보는 이미 학생들에게 차고 넘친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이며,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 조각들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391, 김영사) 오늘날의 학교는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엉뚱한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겁니다. 더군다나, ‘오늘날 아이들이 배우는 것의 대부분은 2050년이면 별 소용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지금 너무나 많은 학교들이 학생들에게 정보를 밀어넣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같은 책, 390)라고 합니다.

  학교는 가장 방대하고 체계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근대 이후 전세계에서 학교교육에 공을 들인 것은 그럴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가적, 사회적으로 엄청난 낭비처럼 보입니다. 일찍이 이반 일리치가 학교는 죽었다고 했을 때, 그것은 주체적 사고능력을 외면하고 체제순응적 우중(愚衆)을 양산하는 학교교육에 대한 비판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 자체가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겁니다. 이러니 학교에 대한 사망선고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기야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이 언제 쓸모를 고민한 적이 있었던가요? 예컨대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입결과는 수학성적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저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 후 수학이 의미있던 적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혹 수험생들에게 과외 알바를 한다면 모를까, 그밖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죠. 수학이 도구교과이기에 수학적 사고력을 키우는데 효과가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왜 대학의 특정 학과에서만 배워도 충분할 내용까지 중고생에게 가르치는 걸까요? 지난 주말에 유학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둔 친구를 만났습니다. 미국의 수능이라 할 수 있는 SAT 시험이 수학과 영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선행학습으로 무장한 우리나라 중학생 수준이면 수학에서는 모두 만점이 나온답니다.

  요새 유투브 동영상을 자주 보는데, 수능의 영어과목이나, 아랍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등 제2외국어를 원어민에게 풀게 하고 의견을 물어보면, 한결같이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표현이 없고 일부러 틀리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엿보인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이런 문제가 학습의욕을 불러일으키기보다 스트레스 지수를 올리는 데 기여할 것이기에, 일종의 정신적 학대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런 시험의 진정한 쓸모가 평가보다 선발(서열 정하기)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굳이 펙트체크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교육이 지나치게 소모적이라는 데는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정신적, 물질적 투입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한데도 그에 대한 산출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한마디로 공부를 함으로써 행복해지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제 생각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너무 오랫동안 잡아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외국처럼 3시 이전에 모든 수업을 끝내야 합니다. 초중고 교육과정을 대폭 축소하여 현재의 교육과정에서 절반 이상을 덜어내고 학제개편을 통해 기간도 단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처럼 학교가 지식의 독점자 지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자신이 공부할 필요를 느낄 때 배울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교의 위상이 달라져야죠.

  상상하지도 못했던 코로나 시대를 맞아 대면수업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편 원격수업의 가능성을 확인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학생들 대부분이 2학기 전면등교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코로나만 아니라면 학생들은 학교를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위해 도서관과 체육관을, 미술관과 문화센터를, 산과 바다를, 도시 곳곳의 거리를 떠돌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게임에 빠져 있을 수도 있지만요. 아마 그렇게 자유로운 공부의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어쨌든 학생들은 금방 적응될 겁니다. 불과 몇 주만 지나면 다시 전면등교에 익숙해지겠죠. 하지만, 그게 꼭 바람직한 일이기만 한 걸까요 

 

  최근 공정이라는 말도 그렇고(흔히 시험 만능주의를 공정이라고 하죠) ‘정의도 그렇고(자신에게 유리한 차별을 정의라고 하더군요), 공부라는 말도 많이 오염된 것 같습니다. 과학고에 다니던 학생이 의대에 입학하여 일명공신(공부의 신)’이라 불리며 학습법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았는데, 이런 공부정의로 나아가는 문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쓸모생명을 구하는 일이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만드는 일이며, 정의로운 세상을 구축하는 일’(9)이라고 합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쓸모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학교에서 (최은수 학생이 말한) ‘사회적 상상력(인간애를 가지고 타인의 삶에 대해 상상하는 능력)’(142)을 키울 수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산에서 오랜 기간 청소년들과 함께 공부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한 성과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서 출판해준 인디고 서원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책에 소개된 많은 도서와 영화들을 틈나는 대로 접하면서, 몸과 마음을 단련해야겠습니다.

2021.6.28.(달날에)

 
g******j 2021.06.3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