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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은 연구원이나 학자들에게만 허용된 장소였으며, 여성인 메리에게 허락된 길은 자갈길이었다." 이 대목으로 버지니아 울프가 묘사한 상황이 어떤지를 가늠 할 수 있다. 옥스브리지 가상의 대학교가 보이고 한 여성이 등장한다. "메리 비턴"은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에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지 고민하며 강둑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생각이 쏜살같이 움직이고 회오리 치는 통에 걸음을 내딛게 되고, 옥스브리지대학의 안뜰인 잔디밭에 있다가. 경악과 분개심으로 가득 찬 한 남자를 보게 된다.. 메리는 자갈길로 걸음을 옮긴다. 남자는 팔짱을 풀며 원래의 평온한 얼굴을 되찾는다.
잔디는 남자가, 여성은 자갈길만 허락된다는 것... 지금의 꽃길을 막론하고, 딱딱하고 발 딛기가 불편한 자갈길만이 허용된다니. 이 부분은 전형적인 불평등을 말하고 있다. (남성은 고고하고 여성은 천대받는다는 시대상황이 잔디와 자갈에 비유되는 듯 하다.) 15페이지에서 확인되는, "여자들은 대학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소지해야만 도서관에 출입할 수 있다고 나직이 말했습니다." 라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도서관을 방문 할 수 없었던 메리는 성당 예배와 기념 행사 주변을 거닌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1880년대 (울프가 어릴적부터 체감해오며 커가는 환경의 이유로, 그 이전의 시대 분위기를 연상해야 한다) 여자들이 소유할 건물도 돈도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던 그때는, 여성이 글을 쓸 수도 (남성들은 * 블루스타킹이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한다.)없었고, 울프가 태어나기 몇 십년 전에는 아버지가 정해 놓은 정혼자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로 지시를 어길라치면, 방에 며칠이라도 감금해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들이 많았으며, 그 상황이 당연했다고 한다. *블루스타킹: 전통적으로 여자가 하는 일보다 사상과 학문에 더 관심이 많은 여자를 경멸하여 이르는 말이다.
왜 그렇게 남성이라는 존재보다 여성은 하대 받아야 했을까. 결국 여성의 몸에서 남성도 나오는 게 아닌가. 겨우 3페이지를 넘길 즈음. (정말 작가의 말처럼 이면에 숨은 생각과 편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떤 내용은 여성과, 어떤 내용은 소설과 관련 있음을 알게 된다고 했는데, 벌써 성과 관련된 불평등이 느껴진다. 역시 성에 관한 이야기는 불편하다.) 느끼게 된 불평등.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 시대보다 15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남성에 비해 여성의 대우나 평등이 크게 달라졌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라 참 씁쓸해졌다. 예를 들면, 서울역묻지마폭력, N번방, 강남역살인사건 등등..
왜 남성은 부유한데 여성은 가난할까. 가난은 소설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 버지니아 울프는 도서관에서, 여성에 대해 글을 쓴 남자들의 책을 몇 권 읽고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폴레옹이나 무솔리니와 같은 우월감에 꽉 찬 남성들이 여성을 하대하고, 여성은 열등함이 있다고 말했던 글도 확인하게 된다.
당시에는 어떤 여성도 비범한 문학 작품 한 토막 남기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뭘까. 울프는 셰익스피어를 떠올린다. 셰익스피어는 부유한 환경에 자신이 공부 할 수 있는 것들이라면 뭐든 배울 수 있었다. 더구나 남성이라는 성에 대한 특권 아닌 특권으로 연극부터 대본까지(여성은 글을 쓸 수 없었다.) 쓸 수 있도록 아주 좋은 환경이 그를 뒷바침했다. 물론, 당시 여성이 셰익스피어처럼 언어의 유희와 화려한 언변으로 글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당시 여성은 어떤 것이든 경험해보지 못했고 배울 수 없었으니, 상상으로도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상상을 한다.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 그 누이도 모험심이 강하고 음악적 재능이 있다. 그러다 부모가 정해놓은 정혼자와의 약혼이 싫다 울부짖자,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아야 했다.그녀는 다음날 작은 짐을 꾸리고 집을 나온다.길을 걷다 발견한 극장, 연극을 하고 싶다고 극장 앞에서 말하지만, 극단의 남자들은 면전에서 웃음을 터트린다. 푸들이 춤을 추는 것과 여성이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해 무슨 말을 하며, 여성은 연기를 할 수 없다는 남자들.. 극단의 책임자인 한 남성이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낀다. 이후....그녀는 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어느 겨울 밤 여성은 목숨을 끊는다. (이 줄거리가 꾸며진 글이긴 해도, 당시 여성은 아이 방을 벗어 나기도 전부터 집안일을 시작하고, 부모가 그것을 강요하며 법과 관습이 온 힘을 다해 누르는 시대였다. 초경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아예 없는 상상은 아닐 수 있다.) 관습에 따라 여성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상이 팽배해 있었다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이 책은 집중을 흐리지 않고 읽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글의 생각을 놓치면, 다시 앞장으로 돌아와 읽기를 반복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은 난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집중을 잃지 않고 읽다 보면, 울프의 생각은 읽힌다.) 옮긴이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사실주의 기법에서 벗어나 외적인 세계의 재현을 거의 무시하고,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시도하기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라고 평했다. 사실 작가의 문체는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으면 더 확실해진다. 아직 버지니아 울프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라 그녀의 남은 책도 궁금해졌다.
여성이 결혼과 남성을 뒷받침 하던 당연한 시대. 그렇게 버지니아 울프는 부당함을 꾸준하게 글로 써왔던 것 같다. 당시에는 어떻게 여성이 감히 글을 쓰고, 책을 읽느냐라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다. 최근(2000년대)에서야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페미니즘 비평의 문을 연 수작이라 평가 되고 있다. 이 책은 여성들에게 평등이란 주제로 공감을 ,, 남성들에게는 평등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할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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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이 지나도 유효한 가장 탁월한 페미니즘의 고전. 자기만의 방을 꿈꾸는 모든 여성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 전 세계 여성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전하는 걸작,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수많은 찬사가 따라붙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왜 남자들은 와인을 마시고 여자들은 물을 마시는가? 왜 한쪽 성은 그토록 번창하는데 다른 쪽 성은 그리 가난한가? 가난은 픽션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예술 작품 창조에 필수적인 조건들은 어떤 것인가?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정신으로 시대를 앞서 살았던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나 당대 명사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스스로 사회적 특권의식 같은 것을 가질 법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허위의식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의 교육과 사회 진출을 억제해 온 남성 중심의 문명사회에서 자신이 일반 중산층 여성들과 근본적으로 같은 처지란 것을 철저히 인지하면서 사회구조와 맞물린 성의 불평등성 문제를 전반적으로 제기한다. 앞으로 백 년 후에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마치 현대 사회를 미리 살아본 것처럼 말이다.
유명해서 많이들 알고 있지만, 끝까지 읽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책이 바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현실, 가난이 창작에 미치는 영향, 성별에 따른 직업의 차이, 창작을 위한 마음 상태, 역사에서 배제된 여성, 픽션 속 여성상, 여성의 글쓰기가 갖는 의미, 여성 작가들에 대한 비평, 작가의 임무 등 책에서 다뤄지는 주제는 수백 년이 지난 현재와 견주어봐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그 당시 시대를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어찌 보면 소설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고 그 경계가 애매모호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또한 동시에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거나, 혹은 겁이나 숨거나 도망가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의 삶을 살아가도록 지지하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앞서 얘기했듯 솔직히 쉽지는 않다. 두서없이 이야기가 이어지는 탓에 쫓아가기가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단번에 읽기보다는 시간을 좀 더 여유롭게 가지고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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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글쓰기에 관한 책에서 언급되었던 『자기만의 방』 책을 읽었던 5월이다. 처음에는 작가의 문체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지만 어느새 문장의 흐름을 감지하면서부터는 무난하게 읽을 수가 있었다. 여성으로써 시대적인 상황과 계급적인 정황들을 유추해보면서 읽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관습이 가지고 있는 두터운 장벽에 그녀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의 요점은 분명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성이 재산권을 가진다는 것, 여성이 선거권을 가진다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된다. 뒤집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이 책의 내용에서도 충분히 열거되고 있는 시간이 된다.
저녁 식사를 잘 하지 않으면, 잘 생각할 수도, 잘 사랑할 수도, 잘 잘 수도 없습니다. 31쪽 우리의 어머니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기 문제를 아주 중대하게 잘못 처리해 온 것은 분명합니다. 38쪽 가난이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부는 어떻게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39쪽 한쪽 성의 안전과 번영과 또 다른 성의 가난과 불안정함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39쪽 하지만 이 모든 걸 끝내려면 필히, 가장 오래 살고 무수히 많은 눈을 가졌다는 평편을 듣는 코끼리떼나 거미떼가 되어야겠다는 절망적인 생각... 강철 발톱들과 청동 부리도 반드시 필요... 43쪽
지루하고 기나긴 싸움이 될 거라는 예감들을 미루어 짐작해보게 한다. 하나의 성만이 가지고 누렸던 선택들을 함께, 공동으로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았던 행보였다는 것도 짐작해보게 한다. 여성의 선거권도 쉽게 누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함께 떠올려보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미투 운동으로 여성이 학교에서, 직장에서 움츠렸던 목소리들이 세상 속으로 하나둘씩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놀라워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이 역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참고 견디어내야 할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조명해볼 수 있었던 시간들이기도 하다.
성의 분리가 아닌 진정한 공통의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미임을 이 책을 통해서도 정리해보게 된다.
저는 개개인으로서 우리의 짧고 분리된 삶이 아닌, 진정한 공통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179쪽
페미니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시절 책을 통해서였다. 페미니즘은 나의 결혼의 시작부터 많은 움직임이 되었고 관습을 답습하지 않고 함께라는 의미에서 출발하는 시발점이 되어주었고 지금까지도 평등한 결혼이 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성 혐오, 남성 혐오로 잘못 인지되면서 페미니즘이 부유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서로를 존중하고 진정한 공통의 삶을 향하기를 더 기도해보게 되는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었던 책이다.
여성의 글쓰기가 얼마나 척박한 환경에서도 문학이 되었는지도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대학이라는 교육을 여성이 받고, 자기 재산을 가지는 여성이 된다는 것과 투표권이 생긴 여성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되는지 다시금 떠올려보게 해주는 시간이 된 책이다. 익숙하고 늘 여성들에게 있었던 권리였다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이 많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면서 이루어낸 결과였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기억하게 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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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이 책은
이 책 『자기만의 방』은 저자인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영국의 뉴넘 대학과 거턴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에세이 형식으로 보완하여 펴낸 것이다.
이 책은 그 후 페미니스트 운동에 영감을 주는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세계 문학사에서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우선, 역사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이건 영국의 경우를 주로 살펴보고 있긴 하나 일본의 작가도 언급되고 있으니 참고할 일이다.
패니 버니, 제인 오스틴으로부터 조지 엘리엇, 레베카 웨스트(57쪽), ....
그 다음 여성 작가가 각 시대에 어떤 취급(?)을 받았는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여자가 픽션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서 이 책의 제목이 『자기만의 방』이다.
저자는 계속해서 돈과 자기만의 방이 없어,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한 사례를 제시한다. 예컨대, <세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75쪽 이하)
주디스 셰익스피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누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고향에서 기초 문법학교를 다닌다.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등을 읽으며 공부를 한 다음에 런던으로 가 극작가로 성공을 하는 반면, 누이 주디스는 어떻게 될까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똑같은 재능을 가진 주디스,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런던으로 가긴 갔으나, 제대로 기회를 잡지 못한다. 대신 배우 겸 감독인 닉 그린의 아이를 가지게 되고, 어느 겨울 밤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똑같은 재능을 가졌지만 결과는 천양지차라는 것, 그게 버지니아 울프의 주장이다.
그런 주장을 연이어 펼치는데, 『제인 에어』 12장을 예로 든다.
<저는 12장을 펼쳤고 제 눈은 이 문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고 싶으면 누구든 나를 비난해도 좋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샬럿 브런테를 비난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궁금했습니다.> (109쪽)
그 다음에 『제인 에어』의 본문을 인용한다. 거의 한 쪽 정도. 그리고 인용된 문장을 건너고, 이윽고 다시 버지니아 울프의 발언은 이렇게 이어진다.
<자신의 등장인물들에 관해 써야 할 곳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쓸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과 전쟁 중입니다.>(112쪽)
남성은 그렇지 않은데, 여성은 ‘자신의 운명과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메리 카마이클의 소설 『삶의 모험』에서
여성은 픽션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가 오로지 남성과 연관이 되어야만, 연인이 된다거나 어머니가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등장한다. 남성이 없으면, 여성은 스스로 등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상황을 거꾸로 생각해 보자 한다. 예를 들어 작품 속 남자들이 오직 여성의 연인으로만 표현되고, 다른 남자들의 친구나 사상가나 몽상가인 적은 결코 없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그들에게 할당될 수 있는 역할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132쪽)
그래서 메리 카마이클의 소설 『삶의 모험』에서 나오는 이 구절, 인구에 회자되는 말이 된다. <클로에는 올리비아를 좋아했다.>(129쪽)
맨스플레인
<당시 소설을 썼던 그 천명의 모든 여성 가운데서 그들만이 끝없이 가르치려드는 사람들의 그치지 않는 훈수를 - 이걸 써라, 저걸 생각해봐라 - 깡그리 무시했습니다.>(119쪽)
“끝없이 가르치려드는 사람들의 그치지 않는 훈수”라는 말에서 맨스플레인의 그림자가 그때부터 드리워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그럴진대 그때는 오죽했을까
맨스플레인(mansplain)은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를 결합한 단어로, 대체로 남자가 여자에게 의기양양하게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애틀랜틱》의 릴리 로스먼은 맨스플레인을 "흔히 남자가 여자에게, 설명을 듣는 사람이 설명을 하는 사람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설명하는 것"으로 정의하였고, 리베카 솔닛은 남성의 "과잉 확신과 무지함"의 결합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속한다고 보았다. (위키 백과)
위키백과에서 <이 신조어는 여러 곳에서 동시에 사용했기 때문에 그 발단을 정확히 규명하기 어렵다>라고 했는데, 비록 맨스플레인(mansplain)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 의미는 버지니아 울프의 이 책, 이 문장이 시초가 아닐까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여자들한텐 결코 30분의 시간도 없어요……. 자기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 말예요.” (107쪽)
자, 지금 저의 믿음은, 단 한 줄도 쓰지 않고 교차로에 매장된 이 시인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여러분과 제 속에, 또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재우느라 오늘 밤 이 자리에 있지 않은 수많은 다른 여성들 속에 살고 있습니다. (179쪽)
이 말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간혹 여성이 저자인 책들 <머리말>에 보면, 아이들 다 재운 다음에 거실에 홀로 나와 글을 쓴다는 말, 한 두번 듣는 게 아니다.
마음이란 건 확실히 몹시 신비로운 기관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전적으로 거기에 의존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관해 일려진 건 거의 없습니다. (154쪽)
이 구절을 다른 번역으로 읽어보자. <마음이란 확실히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전적으로 의존하는, 참으로 신비로운 기관입니다.> (민음사, 147쪽)
새롭게 알게 된 작가들
조지 엘리엇
남성인줄 알았는데, 여성 작가다. 여성이나 남자 이름으로 필명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녀의 작품을 찾아보다가 《사일러스 마너 Silas Marner》를 발견했는데, 전에 ‘영어로읽는세계명작’으로 읽은 적이 있었다는 것, 알게 된다.
메리 카마이클
처음 듣는 인물이라 여러 방법으로 찾아보았으나, 어떤 인물인지 잡히지 않았다. 저자는 분명 <현존하는 작가들 책이 꽂힌 서가에 와 있습니다. (……) 무작위로 그 중 하나를 꺼냈습니다. 책꽂이 제일 끝에 꽂혀 있었고, 제목은 ’삶의 모험‘인가 뭐 그런 것으로, 메리 카마이클이 썼고 바로 이번 달 10월에 출간되었습니다.> (126쪽)라고 했으니, 실존인물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나타나질 않는 것이다.
찾고, 찾다가 이런 글 발견했다. <the other reason you can't find a copy of Life's Adventure is that Woolf made up both Mary Carmichael and her novel.>
이런 사실 알고 나니, 그녀를 언급한 126쪽 이하를 다시 읽어볼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이 책은
이 책, 읽기 어렵다. 1장부터 읽으면 그렇다. 이 책을 읽으려고 작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읽어내자고 덤벼든 것이 몇 번인지 모른다. 번역본도 다른 것(민음사 판)으로 몇 번 시도하다가 번번이 1장에서 걸려 넘어졌다. 해서 방법을 바꿔 시도했다. 1장을 건너뛰고 2장부터 읽기 시작한 것. 그러니 재미있게 술술 읽혀졌다. 그러니 혹시 1장을 읽으면서 어렵다고 생각한 독자들이 계시다면 2장부터 읽어보시라. 물론 2장부터 읽어서 6장을 마치면 저절로 1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때는 1장도 쉽다. 엄청나게!
이 책 역시 버지니아 울프가 즐겨 쓰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 수시로 등장하긴 하지만, 몇 개 문장만 잘 읽어낸다면, 그 뒤로는 그 ‘의식’을 따라가는 글 읽기, 오히려 재미있다는 것 말해두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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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을 처음 읽었던 건, 학교 필수교양수업. 처음 접하는 문체에 당황했던 것도 잠시, 곧바로 울프의 생각 위에 올라타 그의 말을 경청하듯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내가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면, 이번 모임에서 함께 책을 읽으며 건져낸 키워드는 ‘글쓰기’였다. 글쓰기라는 행위가 개인, 더 나아가 지금의 여성에게 시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일지 생각하고 싶다면 ‘자기만의 방’을 열어보시길! |
![]() 오랜만에 <자기만의 방>을 읽고 또 감탄했다. 여성들을 장식품 취급하던 시대에 여성도 남성과 같은 인간이며 자유의지가 있음을 전적으로 드러낸 글은 지금의 사회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봉투에 주소를 쓰고 노인들에게 책을 읽어 주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적은 돈을 벌던 여성들이 경제력을 가진 남성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었던 옛날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소득 수준은 차이가 나고 육아와 살림은 거의 여성의 몫이다. 살림하는 엄마는 많지만 살림하는 아빠는 거의 없다. 수입 면에서 남성이 집에 있는 것보다 여성이 집에 있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홀로 서려면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한 버지니아 울프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성들이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생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넉넉한 돈이, 직업이 필요하다. 미혼뿐 아니라 기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필요한 것은 이뿐일까. 여성은 모성을 품은 존재로 다정하고 가정적이며 직장보다는 가정에서 더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이 책에 나오는 한 부분이 이를 잘 드러낸다. 인간적이고 겸손하다 여겼던 한 남성이 여성 운동가인 레베카 웨스트의 글을 읽고 '악명 높은 페미니스트'라고 했을 때 버지니아 울프는 놀람을 금치 못한다. 다른 남성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이조차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모든 남성이 비슷하리라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덩달아 놀랐는데 그가 '진실일 수도 있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자신한테 있다고 믿었던 권력을 침해당한 데 대한 저항'으로 그런 말을 하는 모습이 현재와 전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태어난 지 2백 년이 지났는데 고착화된 생각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손에 들어온 권력을 놓기가 그토록이나 겁이 나는 것일까. 요 몇 년간 여성들의 현실을 아주 사실감 넘치게 전달하는 책이 많이 나왔다. 대표적인 책으로 <82년생 김지영>을 들 수 있는데 이 소설은 나오고 얼마 안 되어 논란의 중심이 됐었다. 현실을 과장해서 그렸고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며 남녀 갈등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소설을 정말 공감하며 읽었기에 논란이 된 이유를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 있는 그대로를 썼을 뿐인데 어째서 비난을 받아야 하며 불편한 사람은 어떤 부분이 불편한지 궁금했다. 여성들이 힘든 것은 남성 때문이라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었는데 무엇이 남녀를 가른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가부장제에 눌린 여성들의 처지를 조금씩 개선해나가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성별 구분 없이 동등한 인격체로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일까. 예부터 전해온 사상이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님을 아는 지성인들이 이런 문제로 편을 가르고 비난하는 모습은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 입으로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하면서 마음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이 책을 쥐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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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 중 제일 먼저 흥미를 가졌던 건 <올랜도>였다. 영화 포스터의 아주 강렬한 느낌 때문이다.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조금 찾아보니 원작이 있었고 작가가 버지니아 울프였던 것. 영화보단 책이 먼저라는 나름의 고집 때문에 <올랜도>를 읽었는데 영화 포스터를 보며 키운 상상했던 작품과는 많이 달라서 당황했던 기억과 그만큼의 놀라움을 느꼈던 책이었다. 당황은 SF나 신나는 판타지가 아니어서였지만 놀라움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무언가를 깨닫게 하는 작품이어서다. 그러고나서야...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가 보였다. 그녀의 인생에 대한 일러스트 책을 보고선 그녀의 마지막 길이 깊은 인상을 남겼고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번 <자기만의 방>을 읽으며 자신이 살았던 상황과 그 전 시대, 미래 시대까지 내다보며 여성들의 위치에 대해 맹렬하게 고민한 그녀의 인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작가의 소설을 통해서 작가를 이해하는 것보단 자신을 드러내는 에세이를 통해 이해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쉽다. 그래서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수많은 버지니아 울프의 책들 중 <자기만의 방>이라는 수필을 선택하고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표지를 선택한 건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솔직히 읽기가 아주 쉬웠다고는 못하겠다. 그렇다고 이해가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설명을 따라가는 건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져도 벗어나기 일쑤였다.(아마도 나의 배경지식 탓이 아닐까 싶다. 그 시대에 대한 이해도나 작가들에 대한 지식이 딸리다 보니 설명을 읽고 궁금해 하고 그러다 보면.. 중심에서 벗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힘은 그녀의 생각에 완전히 공감하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 시대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내 어린 시절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은 상황이다. 아직도 여성들은 자신의 온전한 독립을 위해 경제적으로, 공간적으로 독립이 필요하다. 그런 사실을 이렇게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전 시대의 몇 되지 않는 여류 작가들을 통해,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이런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 독립을 하면 얼마나 자유로워지고 얼마나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내가 기를 쓰고 아이를 일찍 재운 후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나만의 시간, 공간을 갖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자녀를 위해, 남편을 위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지만 내겐 그 무엇보다 나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버지니아 울프 시대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르고 분명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 같은 삶의 자유를 누리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신의 이런 생각을 밝히면 엄청 공격적인 "페미니스트"로 낙인 찍히는 세상이 아닌가. 내 딸들의 시대에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각자의 삶에 충실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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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2.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 새움 버지니아 울프에 따르면 당시 여성작가들이 집필에 앞서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자기만의 방’과 돈이 갖추어진다면 타인의 검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16세기를 돌이켜 셰익스피어를 보라. 그 같은 천재들은 교육받지 못하고 노동하며 살아가는 이들 가운데 탄생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국의 색슨족이나 브리튼족에서 태어난 적이 없으며 또한 오늘날의 노동 계층에서도 태어나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는 19세기 초의 여성들에게 여전히 변함없는 계층 간의 차별과 성차별의 예시로 셰익스피어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는 누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실상 귀족이 아니고서는 19세기 초까지도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캐임브리지대학교 여자 대학인 거턴과 뉴넘에서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강연한 두 개의 발표문을 다듬어 『자기만의 방』을 집필했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 해방의 본질은 ‘자기만의 방’으로 표현되는 정신적 자유와 경제적 독립에 필요한 연간 500파운드에 있다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이 책에서 언급한 작가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에밀리 브론테 등의 여성 작가들의 집필 환경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남긴 위대한 업적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울프가 주장한 ‘자기만의 방’은 단지 공간과 돈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내가 이해한 바로 이것은 ‘여성의 집필’을 넘어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책을 완독하고 현시점을 돌아보았다. 울프가 경험하지 못한 21세기 현재, 미국이 선두 한 현대의 소비문화는 여성의 강제적 노동을 자발적 근로로 그 형태를 변화시켰다. 나는 그것이 여성 해방 이데올로기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주장처럼 계층 간의 차별이나 성차별의 폭을 줄이는데 가장 효과적이며 현실적인 방안은 경제적 독립으로부터 시작되며 이것이 성숙기를 거치면서 정신적 자유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현시대의 여성들은 울프가 살아온 시대의 여성들과 다르게 경제적 조건은 확보했다. 적어도 ‘자기만의 방’이 있고 원한다면 정당한 근로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급여를 보장받는 시대다. 그렇다면 현시대의 ‘자기만의 방’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통하여 계층과 성적 차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에게 ‘자기만의 방’은 ‘시간’이라는 답을 도출했다. 십대의 나는 공부를 했고, 이십대에는 경험을 했다. 삼십대에는 경제적 독립을 이루었고 사십대에 들어선 지금은 시간을 만드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나는 나름 배부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최소한 밥을 굶지 않고, 특별한 노력 없이도 기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 태어나 경제적 독립을 이룬 후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충분한 시간일 것이다. 나는 언제나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에 고뇌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은 충분한 조건에 도달했을 때에 그 이상의 것을 얻기 위한 노력에 대한 가성비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러나 시간의 가치는 다르다. 시간이야말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분명 페미니즘 비평의 다양한 관심사를 아우르는 20세기 여성 문학 비평의 중심에 있지만, 나에게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즘에 대한 비평서이며 동시에 휴머니즘에 대한 에세이다. 울프는 당시 여성들의 상황에 대하여 페미니즘적 성향을 의도적으로 보이고 있으면서도 작품 전체에 걸쳐 휴머니즘에 대해 어필한다. 작품은 화자인 ‘나’를 여러 인물로 바꾸며, 유연하면서도 다양한 문체를 구사한다. 부드러운 대화체와 배제된 감정, 여러 시공간을 넘나드는 ‘의식의 흐름’ 기법은 울프 문학세계의 두 핵심 키워드인 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기만의 방』이 완성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여성과 픽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아니다. 울프는 우리가 수많은 차별로부터 보호받고 더 나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담론을 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융합으로 예술적 매듭을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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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작가 버지니아 울프입니다. 이 사람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개척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느 날부터인지 그녀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따금씩은 늘 써 왔던 말들이기 때문에 그녀라는 말을 적기도 하지만 이내 지워버립니다. 굳이 그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설명이 다 되니 말입니다. 이 책은 읽을지 말지 참 고민을 해왔던 책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가 찬란하면서도 암울하게 느껴집니다. 이 똑똑한 사람이 여자이기 때문에 겪었을 수많은 일들과 그 감정을 책을 읽는 동안 느끼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많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1929년에 출간된,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피어나지 못한 재능들이 얼마나 많을지, 책을 읽으며 갑자기 허난설헌이 생각나기도 했지요. 재능이 있어 오히려 불행했을지도 모를 삶들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백여 년이 지나 2020년을 살고 있는 지금도 많은 부분에서 개선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 다른 많은 부분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지 못하다고 느껴집니다. 100년 전처럼 잠긴 문밖에 갇히는 일은 드물지만, 대신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이 책을 보는 여성들은 슬프지만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저는 훗날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이 "아주 미개한 시대였군." 하며 혀를 끌끌 차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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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섬세한 관찰과 날카로운 분석, 그리고 그의 진심과 통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