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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산의 일대기를 상세히 다룬 책은 아직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무장 독립 운동 역사에 깊은 관심을 쏟아 온 반면, 도산의 노선은 일각으로부터 "개량주의"라는 의혹의 시선을 받은 바도 적지 않아서가 아닐까, 이런 생각도 가끔은 듭니다. 확실히, 김원봉 등의 "화끈하고" 영웅적인 행적과 비교해 보면, 안창호 선생이 남긴 자취는 (무엄한 표현이겠지만) 다소 심심하다는 느낌도 적지 않게 옵니다.
그러나 인도에 마하트마 간디가 있었다면, 일제 강점기 조선에는 안 도산과 조만식 선생 등이 있어, 민족의 도덕혼과 실력 양성을 주창하며, 참된 주권의 회복은 개개인의 윤리적 각성, 직업인으로서의 기능 배양, 문명 시민으로서의 물적, 정신적 거듭남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게 이분들의 노선이었습니다. 간디의 비폭력 투쟁이 인도인들의 정치적 항쟁 의지에 큰 불꽃을 지폈듯, 이분들의 "정신적" 항일 운동 방침이 결코 총칼로 마상에서 추진했던 진영의 기여보다 더 못했다고 폄하할 수 없습니다.
만약 도산이, 일본의 대(對) 연합국 무조건 항복 선언 시점까지 건강히 생존해 계셨다면, 몽양(夢陽) 아니라 이분에게 일제가 "조선 현지에서의 임시 정부 구성"을 위임했을지도 모르며(실제로 몽양은 도산에게 제자 내지는 후배 뻘입니다), 김구 선생과 이승만 양인과 비교해도 우월한 권위를 지닌 이분(다만 두 분보다 연배는 아래입니다)이 해방정국 한복판에 버티고 있었다면, 우리 역사가 이후 어떻게 진행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리 역사에는 만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한편, 미 군정 하에서 우리 해방공간이 얼마나 난맥상을 보였는지를 돌아보면, 그 타락한 정치판의 진흙탕 싸움에 특히 능했던 이승만 같은 이의 술수를, 과연 도산 같은 청렴한 인격자가 제대로 상대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고요.
안도산은 젊은 시절 애국계몽운동 서북파의 중핵적 인사였고, 민족사의 격동적 전환점이라 할 큼직큼직한 사건마다 주도자적 위치에서 운동의 흐름을 이끈 분이었습니다. 이분은 다른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리, 국내, 미국, 중국 중 어느 한 곳에서만 활약하신 게 아니라, 한인 동포가 삶의 터전을 잡고 사는 그 어느 고장에도 일일이 몸소 방문하여, 물심 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도산이 방문한 후 공동체에는 반듯한 질서와 건강한 활기가 자리잡힌 모습이 완연했는데, 이를 두고 외국인들은 "당신네 민족 출신 위대한 지도자가 왔다간 게 확실하다"며 성원과 치사를 보내곤 했습니다.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이란 4대 정신은 지금까지도 흥사단의 이념으로 전수되고 있으며, 최근까지만 해도 정규 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필수로 가르쳐지곤 했던 격의 높은 이념입니다. 사실 지금도 해외에서 일부 한국인들이 보이는 "어글리 코리안"의 악폐를 일소하기 위해서, 그리고 위아래 할 것 없이 만연한 부정부패 풍조를 발본색원하기 위해서, 이 정신이 특정 단체의 범위를 떠나 전국민적 지향점으로 격상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드는 요즘입니다.
이 책은 이광수에 의해 쓰여진 내용이라 그 권위나 진정성 여부를 둘러싸고 말도 많습니다. 다만 도산을 그토록 가까이에서 오랜 동안 모신 이도 드물고, 도산이 타계할 시점 "목인*아 목인아 네가 큰 죄를 지었구나!"라고 크게 한탄하신 후 숨을 거두었다든가 하는 일화는 이광수 아니면 증언할 이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는 이 글을 참회의 심정으로 적어나갔다고 하는데, 여튼 이 책은 독립운동사의 성인(聖人) 그 일생을 소재로, 배덕자(背德者)의 상징과도 같은 이의 (아이러니하게도) 명필이 빚은 기록이라 여러 모로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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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인(睦仁)은 무쓰히토, 즉 메이지 덴노의 본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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