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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문학읽기 56 김동인 어머니 곰네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본 리뷰는 작품의 내용을 담고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읽으실때 주의하시길 부탁드려요 김동인 어머니 곰네는 현대 한국 문학의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개인의 삶과 시간의 흐름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2017년에도 여전히 주목받고 있으며, 여러 가지 출판 형태로 읽을 수 있습니다. |
| 책다름 출판사에서 출간된 '김동인 어머니 곰네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56)' 리뷰입니다. 김동인 작가님의 글들은 뭔가 느낌이 다 비슷한 것 같아요. 부정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건 작가님만이 가진 분위기라는 거겠죠?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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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稱 곰네였다. 어버이가 지어준 것으로는 길녀라 하는 이름이 있었다. 박家라 하는 姓도 있었다. 正當히 부르자면 박길녀였다. 그러나 길녀라는 이름을 지어준 父母부터가 벌써 正當한 이름을 불러주지를 않았다. 대여섯 살 나는 때부터 벌써 父母에게 ‘곰네’라 불렀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어린애를 붙안고 늘 곰네곰네 하였는지라 그 집에 다니는 어른들도 저절로 곰네라 부르게 되었고, 이 곰네 自身도 自己가 늘 곰네라는 이름으로 불렸는지라 제 이름이 곰네인 줄만 알았지 길녀인 줄은 몰랐다. 좌우간 그가 여덟 살인가 났을 때에 먼 一家 老婆가 찾아와서 그를 부름에 길녀야 하였기 때문에 곰네는 누구를 부르는 소린지 몰라서 제 장난만 그냥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자기 쪽으로 손을 벌리며 그냥 길녀야 길녀야 이리 오너라 하고 連方 부르는 바람에 비로소 自己를 부르는 소린 줄을 알았다. 그리고는 그 사람에게로 가지 않고 제 어미에게로 갔다. “엄마, 엄마, 데 사람이 나보구 길네라구 그래. 길네가 무어요? 남의 이름두 모르고 우섭구나야…….” 어머니가 곰네를 爲하여 辨明하였다. “이 엠나이! 어른보구 그게 뭐야. 엠나이두 하두 곰통같이 굴러서 곰네라구 곤쳤다우. 이 엠나이, 좀 나가 놀알!” “히! 곱다구 곱네디 곰통 같다구 곰넬까. 곰통 같으믄 곰퉁네디.” “나가 놀알!” “잉우 찍!” 사실 계집애가 하두 곰같이 頑하고 억세기 때문에 ‘곰’네였다. 얼굴의 가죽이 두껍고 거칠고 손과 팔의 마디가 頑丈하고 클 뿐 아니라, 가슴이 턱 벙글어지고 왁살스럽고, 그 목소리까지도 거칠고 툭하였다. 머리카락까지도 굵고 뻣뻣하였다. 그에게서 억지로라도 女子다운 點을 찾아내자 하면 그것은 그의 잠꼬대뿐이었다. 잠꼬대에서는 그래도 間間 갸날픈 소리며 애기를 업고 싶어하는 本能이 보였다. 그 밖에는 女子다운 點을 털끝만치도 없었다. 이름이 길녀라 하지만 吉하다든가 實하다든가 한 點은 얻어낼 수가 없었다. 곱다는 곱네가 아니요 곰 같다는 곰네야말로 名實이 같은 그의 이름이었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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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자체가 엄청난 부잣집 아들로 자신이 가산을 전부 방탕하게 탕진했던 인물인데 그의 작품들은 오히려 가장 서민적이고 토속적이라는 생각이 대단한 작가는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곰네 길려라는 본인의 이름대신 곰네라고 부르던 본인의 부모가 잘못 한것인지 그 뒤로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 그런 모습이 결국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는 남편을 만나고 잃고 하는 과정까지 곰네라는 이름처럼 살아야 하는 어머니 곰네 역시 김동인은 천재라는 생각이 드는 작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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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작가의 단편소설인 어머니 곰네를 읽었습니다. 책다름 출판사의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시리즈에서 56번째로 출판된 작품으로, 김동인 작가가 감동적인 이야기를 찬찬히 차분하게 펼치면서도, 감정적인 면을 끌어올리는 듯한 문장을 선보이면서 이야기를 더욱 인상적이고 감동적으로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결말은 감동적이었고, 기억에 여러 모로 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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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자격에 대하여도 아무 희망도 요구도 없었다. 농촌이니 사내로 생겨서 농사지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식이라든가 인격이라든가 하는 것은 곰네는 그 가치는커녕 존재도 모르는 바다. 곱게 생기고 밉게 생긴 것도 전혀 모르는 바다. 사내로 서방이라는 명칭이 붙는 자면 그것만으로 넉넉하다. 그 이상, 그 이외의 것은 존재도 모르는 바이어니와 부럽지도 않고 욕심나지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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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네가 열세 살 난 해에 그의 게으름뱅이 아버지가 죽었다. 이 가장의 죽음도 그 집의 경제상에는 아무 영향도 없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 식구 줄었으니 그만치 심이 폈달 수도 있었다. 살아 있대야 곡식만 소비할 뿐이지 아무 도움도 없던 인물이라 없느니만 못하였다. 그래도 10여 년 살던정이 그렇지 못하여 곰네의 어머니는 흰 댕기도 드리우고 좀 한심스러운 듯이 망연히 하늘을 우러러 볼 때도 있기는 하였으나, 생활 자체에는 아무 영향도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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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길녀라는 이름을 지어준 부모부터가 벌써 정당한 이름을 불러주지를 않았다. 대여섯 살 나는 때부터 벌써 부모에게 ‘곰네’라 불렀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어린애를 붙안고 늘 곰네 곰네 하였는지라 그 집에 다니는 어른들도 저절로 곰네라 부르게 되었고, 이 곰네 자신도 자기가 늘 곰네라는 이름으로 불렸는지라 제 이름이 곰네인 줄만 알았지 길녀인 줄은 몰랐다. 좌우간 그가 여덟 살인가 났을 때에 먼 일가 노파가 찾아와서 그를 부름에 길녀야 하였기 때문에 곰네는 누구를 부르는 소린지 몰라서 제 장난만 그냥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자기 쪽으로 손을 벌리며 그냥 길녀야 길녀야 이리 오너라 하고 연방 부르는 바람에 비로소 자기를 부르는 소린 줄을 알았다. 그리고는 그 사람에게로 가지 않고 제 어미에게로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