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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담론과 작년 하반기를 들끓었던 조국 대란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중산층 세습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계층에 올라간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그 계층을 물려주기 위해서 자녀 교육에 투자한다. 비슷한 책인 [20vs80사회]에서는 '불평등을 사후적으로 고치려 하기보다는 생애 첫 25년 동안 인적 자본을 축적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격차를 좁히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말한다. 생애 첫 25년 동안의 인적 자본 축적은 교육을 말하는데.....낙관보다는 비관으로 되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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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숨이 턱턱 막히던 책. 60년대생 80번 학번이 대한민국 5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고도성장을 했을 때의 결실을 온전히 흡수함. 그리고 그걸 그들의 자녀에게 '세습'함. 통계적으로 인간의 운명이 정해져있다는 걸 보여줌. 나같이 20대인 사람은 중년, 노년층, 정치계층이 이권싸움이나 하고 앞으로 세금을 내며 당신들의 생계를 책임져야할 청년을 도외시하거나 '원한과 분노'로 정치적으로 이용만 하는 운동권 좌파세력에게 호감을 가질 수 없는 이유도 이 책의 후반부에 고스란히 설명됨. 더이상 60~90년대처럼 인건비가 저렴한 것이 강점이 아닌 우리나라는 앞으로 점점더 지식기반 산업으로 변모할거고 양극화는 심화될 예정임. 이 책을 읽고 르상티망(분노와 원한)에 휩쌓여 자신을 희생자라고 느끼는 피해의식에 사묻힐 것인지, 그래도 시장경제와 자유주의라는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적응할 것인지는 선택해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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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중산층> 90년대생들이 신입 사원이 되고 시장과 문화를 이끄는 주역이 되면서 몇 년 전부터 90년대생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90년대생들이 많이 었던 말 중 하나는 부모보다 못 사는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전쟁 이후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현실은 어렵지만 희망찬 내일을 바라볼 수 있었던 부모 세대와는 달리 90년대생들은 자신이 속한 계층에 따라 내일에 대한 기대치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그 원인을 '세습'에서 찾는다. 커뮤니티에서 핫한 논쟁거리 중 하나인 금수저, 흙수저 논란도 이러한 세습의 차이에서 느끼는 박탈감이 반영된 듯 하다.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불평등을 경험하는 90년대생들의 세계를 다양한 통계로 들여다보기 좋은 책이다. 노력은 실력이 아니라 계층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90년대생으로서 사회에서 느꼈던 박탈감의 원인을 통계로 잘 보여주는 책이었다. '세습'은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온 한국의 부모들이라면 자녀의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선택처럼 느껴지기에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 같다. 요즘 능력 위주 사회와 중산층 계급의 붕괴에 관한 책인 <엘리트 세습>을 읽고 있는데,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양극화가 발생하고 그 격차가 개인의 노력으로 채우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저자는 시작 단계부터의 공평함을 한 국가의 노력과 세습 중산층의 사회, 경제적 의무 부담을 결론으로 이야기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책의 내용이 씁쓸하지만 공감되고, 앞으로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흥미 있게 읽은 구절들> 90년대생의 생활세계는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세계다. 이들은 상급학교 진학, 각급 학교에서의 교육과 기회 획득, 교육의 최종 결과인 취업 과정에서 이전 세대와는 다른 불평등을 경험한다. 각각의 20대들이 불평등 구조의 위계 서열에서 어느 위치에 자리하는지는 그들의 부모가 어떤 계층 또는 계급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취업하기 전까지 각 단계는 ‘능력 본위’로 포장되어 있지만 기실 그 ‘능력’은 부모가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떤 직업을 가졌으며, 월 소득은 얼마고, 어떤 지역의 몇 평 아파트에 거주하는지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 또한 20대가 취업과 함께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어떤 일자리를 얻느냐는 그의 미래 소득, 자산, 결혼 여부, 사회적.문화적 경험 등 생애주기 전반을 결정한다.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은 1퍼센트와 99퍼센트의 격차가 아니라 10퍼센트와 90퍼센트의 격차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격차는 단순히 임금의 격차가 아니라 생애주기 전반의 격차다.
20대 집단 내부의 격차는 ‘능력’의 격차로 포장된 ‘결과’의 격차이면서, 동시에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계층’의 격차다. 결국 20대의 격차는 부모 세대인 50대의 격차가 그대로 세습되는 것이다. 부모 세대인 50대 중산층이 학력(학벌)과 노동시장 지위를 바탕으로 그들의 자녀에게도 동일한 학력과 노동시장 지위를 물려주는 데 있다. 세습 중산층의 자녀가 번듯한 일자리를 독식하고 이렇게 심화된 격차의 고정은 결혼, 주택 등 생애주기에서의 기회에까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오른 이유는 상위 10%의 소득이 2000년대 중반에 가파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집안 좋은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다'는 속설은 정말로 참이다. 양육 환경이 좋은, 즉 부모가 경제력이 있고 학력이나 직업 등 사회적 지위도 뒷받침되는 계층의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는 인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비인지적 능력도 다른 계층의 자녀들보다 더 뛰어나다. 그리고 비인지적 능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대치동 학원가 등을 통한 교육투자는 결실을 맺는다. 노력은 실력이 아니다. 계층이다.
‘20대 남성 보수화’론의 보다 근본적인 결함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서술했던 것처럼, 20대는 하나의 ‘세대’로 뭉뚱그릴 수 없으며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큰 계층 간 격차 속에서 살아간다는 점에 있다. ‘세습 중산층’이라 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이 존재하며 두 집단 내부에서도 사회경제적 지위 등의 세부 격차가 크다. 따라서 그것을 마치 ‘공기처럼’ 마시고 살아 가는 20대의 정치의식은 균질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문제가 ‘세습 중산층의 독주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한다면, 세대 간 양보론과 교육의 공정성 확보론만큼 그들의 영향력과 독주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세대와 공정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여 ‘세습’이라는 진짜 문제를 숨기면서 적당히 양보하는 척하며 실질적인 손실을 보지 않는 노회한 86식 정치 투쟁의 구호가 한국 사회를 뒤덮는 양상이다. 문제는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그대로 관철되고, 유지되는 2019년 한국 사회의 시스템 그 자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양보와 공정이 아니라 의무와 공평이 아닐까. 시작 단계에서부터의 공평과 그것을 위한 세습 중산층의 경제적·사회적 의무 부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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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이 된다는 건, 서울 혹은 수도권에 아파트가 있고, 아파트 대출금을 갚고도 일 년에 1번 이상 해외여행을 가고, 자녀들이 학원과 과외를 받아 인서울 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하는 등. 다양한 기준을 다 맞춰야 한다. 미디어와 SNS에서 말하는 중산층이란 그렇다.
중산층 부모는 자녀에게 중산층의 부와 학력을 물려주기 쉽다. 이는 계급화되어 부모의 학력과 재력이 자식의 미래를 만든다. 이런 중산층의 계급화 현상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책이다.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난 이미 중산층에서 탈락이구나" 밖에 없었다. 부모가 대학교 학력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에서부터 정보와 재력에서 중산층 계급을 세습 받을 수 없다는 점은 공감한다. 재력은 정보를 만들고 정보는 자식의 쉬운 미래를 만들기 수월하다. 현재의 20대가 80년대 학번, 60년대 생에 대해 불신하는 건, 이미 그들이 그들만의 리그와 계급을 만들어 우월적인 지위를 세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마무리한다. 나날이 갱신하고 있는 최저 출생률은 이에 따른 결과 일지 모른다. 물려줄 계급이 빤한 상황에서, 현재의 계급마저 낮아질 수 있는 인생의 큰 선택을 하기엔 결과가 너무 빤히 보인다.
읽는 내내 씁쓸했던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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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이런 일면도 있구나 하고 공감하게 되는 책이다. 물론 단순히 중산층의 세습화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지만 중산층이 세습되고 있는 것은 거의 자명해 보인다. 아마 독자들도 그런 점을 많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읽으면서 괴롭고, 슬프고, 그러나 이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더 힘들었다. 지나친 경쟁중독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갖은 수를 다 써 보았으나 실패로 돌아왔기에 더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른다(본인이).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의대 교수 자식이 의대 들어가고 병원장 아들이 의대 들어가고, 부모가 의사인 아이들이 반항하다가 끝내 의대에 들어가는 그런 학교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정말 와닿는 글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