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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너머와의 소통은 사랑의 재발명으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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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분화되고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뚜렷하게 내세운다. 예전에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기보다는 알게 모르게 대세에 동조했지 싶다. 물론 어느 경우에나 일장일단이 있고 지금도 온전하게 마음을 내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사람들의 색깔이 분명해졌다. 그러다보니 온갖 진영논리가 판을 치고 자신과 다른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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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분화되고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뚜렷하게 내세운다. 예전에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기보다는 알게 모르게 대세에 동조했지 싶다. 물론 어느 경우에나 일장일단이 있고 지금도 온전하게 마음을 내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사람들의 색깔이 분명해졌다. 그러다보니 온갖 진영논리가 판을 치고 자신과 다른 진영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고 이해하기보다는 배척하기 일쑤다. 그들에겐 오로지 내편과 네편이라는 이분법만이 존재할 뿐, 경계란 회의주의자 혹은 기회주의자의 다른 이름인 것 같다.

 

인문학자인 오민석 교수가 쓴 이 책 [경계에서의 글쓰기]는 최근 5년간 모 일간지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 엮은 책이다. 그는 분단이후 한국사회는 진영논리가 심해져 매체마다 자기들의 언어로 자기들끼리만 소통하는 문화가 지배적이 되었다고 말한다. 즉 이쪽의 내가 저쪽의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서로에게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 가장 긴요한 것은 각 경계에서 다른 경계에 말을 거는 행위라며,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려 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선명하되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며, 옳은 것은 옳다고 인정하게 만드는 글이 훌륭한 글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여러 경계에서 이쪽과 저쪽의 소통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사회가 짧은 기간 동안 급격한 변화를 겪었기에 품고 있는 경계도 그만큼 많다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전근대적인 신화와 다중의 시대라는 경계, 한국 정치에서 갈수록 심해지는 진영과 진영의 경계, 그리고 해서 되는 일과 안되는 일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의 시대는 영웅의 시대가 아니라 다중의 시대라고 그는 전제한다. 빅 브라더에 대한 향수는 정체성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러나 위기의 극복은 시효를 상실한 이념의 빅브라더를 호출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지하에 잠든 아버지들의 유령을 자꾸 불러내지 마라. 그래도 그들을 사랑한다면 속으로 혼자서 하라’(70쪽)고 일갈한다. 봉건적 잔재나 역사의 유년기로 회귀하는 것은 분명 역사적 퇴행이다. 사적인 문제와 공적인 문제에 대한 혼란과 동일시, 그리고 책임전가와 떼쓰기는 유아적 행위의 전형적 특징이다. 이와 함께 기준도, 의미도 없이 자신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서툴고 악의적인 서사는 공동체의 귀중한 에너지를 쓸데없는 곳에 낭비시키며 성숙한 공화국을 어린애로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가하면 막말이 공중(公衆)언어로 통용되는 사회는 사람을 사물과 다름없는 ‘그것’으로 대하는 사회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것’은 환대의 대상이 아니라 일방적인 전유 혹은 의미론적 착취의 대상일 뿐이라며, 정치는 일치가 아니라 불일치를 생산하는 것이지만 불일치는 동물이 아니라 자기검열과 초자아의 필터링을 거친 성숙한 인간의 언어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바로 정치의 책임이고 의무라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사회를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성공이라는 가치이다. 그러기에 성공학이라는 제목이 붙은 강연과 강의 그리고 온갖 자기계발서가 범람한다. 그러나 문제는 성공이 넓은 의미의 훌륭한 삶이 아니라 대부분 출세를 이야기하고 있고, 그렇게 볼 때 성공하는 사람은 항상 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성공이란 이름으로 대중을 유혹한다면 그것은 속임수라며, 이런 성공이데올로기가 우리사회 압도적 다수의 삶을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하고,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이처럼 우리사회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경계에 대해 말을 하면서도 우리시대의 발목을 잡는 신화나 진영의 말투를 쓰지 않고 이를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로써 공동선을 제안한다. 공동선은 바로 사랑이라고 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인간들이 끊임없이 사랑을 재발명하는 과정이라고 그는 말한다. 사랑이 재발명 되지 않을 때 소통이 중단되고, 소통이 중단될 때 관계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은 본질적으로 타자를 지향하는 것이므로 나를 버리지 않을 때 사랑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가 된다. 따라서 사랑의 재발명은 논리가 아니라 타자의 상한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진영논리로 갈라진 사회에서 공감과 동의는 실종되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바깥에 대해서는 사유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이쪽에서 저쪽에 말을 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경계 너머와의 소통이며, 그런 소통은 논리가 아닌 사랑의 재발명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와 생각이 섞이고 사상과 실천이 맞부딪치는 곳이 경계라면, 우리는 그런 경계에 서서 타인의 상한 감정을 들여다 볼 때 비로소 너와 내가 만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많은 것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나 취향, 정서, 이데올로기, 신념 등의 매개물을 통해 읽어낸 해석의 결과물일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읽어낸 해석의 결과물을 타자에게 사실이라고 믿기를 강요한다. 이처럼 타자의 생각을 부정하고 타자에게 자신과의 동질성을 강요하는 것이 권력이고 이런 점에서 권력은 폭력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공동체가 탈권력화 되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살아날 때, 평등하고 효과적이며 평화로운 공동체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생각이 섞이고 사상이 맞부딪히는 경계에 서서 타인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사랑의 재발명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은, 지금 우리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나는 어느 경계에 서서, 어떤 언어들로, 어떤 사건을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k*****1 2020.06.19. 신고 공감 1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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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의 글쓰기/ 오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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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 저자는 자신을 '시인이고 평론가이고 인문학자'로 소개한다. 표현할 글의 종류가 세 가지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에 대해 애정이 깊어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저자가 쓴 이 책은 중앙일보 칼럼란에 5년 동안 기고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일간지의 독자들도 지적 자극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소신에 맞게 지면을 ‘아름답고 매혹적인 글’로 채우려 애쓴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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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 저자는 자신을 '시인이고 평론가이고 인문학자'로 소개한다. 표현할 글의 종류가 세 가지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에 대해 애정이 깊어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저자가 쓴 이 책은 중앙일보 칼럼란에 5년 동안 기고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일간지의 독자들도 지적 자극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소신에 맞게 지면을 아름답고 매혹적인 글로 채우려 애쓴 노고가 느껴졌다.

 

최선을 지향하되 최고가 되기보다는 그 반대편을 보듬어 주는 내용이 좋았다. 앞에 놓인 경쟁을 뛰어넘어 최고가 되었다고 생각한 나무가 번개를 맞고 죽으면서 어리고 푸른 이파리 몇 개야 말로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어느 나무의 이야기는 시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삶의 비밀 한 조각처럼 아름다운 글이었다.

 

일어난 사건을 보는 시선에는 평론가로서의 단호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비판하는 것은 행동이지 인간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글에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따듯함이었다.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의 진실한 반성으로 모든 것을 다시 회복하는 길이 있는 것이다.”와 같은 문장을 읽을 땐 막무가내로 비난을 일삼는 이가 감추지 못하는 미움 같은 것을 저자는 이미 달관했다는 느낌도 받았다.

 

힐링이나 인문학과 같은 유행어에 대해 소리를 높이는 모습에선 인문학자의 모습이 보였다. “ 인문학은 값싼 치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 부재의 안온한 삶을 뒤흔드는 것이다.”와 같은 말이나 소크라테스가 죽은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것. 만약 자신의 앞에 그런 질문이 온다면 어떤 질문으로 답할 수 있을 것인지 질문과 질문으로 이어지는 인문학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말하는 글에서 그랬다.

 

매일 뜻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 불길은 가까울 수도 있고, 먼 곳의 모습일 때도 있다. 거리에 상관없이 그 모든 일들을 나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살만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갈수 있다고 말하는 책 속 내용이 내게는 퍽 좋게 읽혔다. 아래의 이야기는 함께 읽고 싶다.

 

며칠 전 인천의 한 마트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34세 아버지와 12세 아들이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 적발되었다. 그들이 훔친 것은 우유 2팩과 사과 6, 그리고 몇 개의 마실 것. 현금으로 환산하면 1만원 내외의 먹을 것들이었다. 경찰이 충동했고 아버지는 벌벌 떨고 땀을 흘리며 배가 고파서이런 일을 저질렀다며 잘못을 빌었다. 경찰이 사정을 물으니 이들은 벌써 두 끼를 굶었고, 아빠는 기초생활수급자였으며 당뇨와 갑상선 질환이 심해져 6개월째 일을 그만둔 상태였다고 했다. 이들은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집에는 홀어머니와 7세의 어린 아들이 있었다.

진짜 사건은 이제부터 일어난다. 먼저, 마트 주인은 처벌을 원하기는커녕 앞으로 이들에게 쌀과 생필품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이들을 훈방 조치하기로 했고, 아버지에게는 행정복지센터에 연락해 일자리를 찾아주기로 하였으며, 아들에게는 무료급식카드를 발급하기로 했다. 경찰은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울먹이며 이들에게 따뜻한 국밥을 사주었다. 바로 이때 회색 옷차림의 어떤 사람이 들어와 아무 말 없이 부자에게 흰 봉투를 내놓고 나갔다. 아들이 황급히 쫓아나갔으나 이 사람은 손사래를 치며 사라졌다. 그 봉투에는 현금 20만 원이 들어있었다. 그 사람은 마트에서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하고 현금을 인출한 후 경찰과 이들이 있던 식당을 다시 찾아와 그것을 건네고 간 것이었다. 경찰은 이 사람에게 감사장을 수여하기 위해 수소문을 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163~164)

 

아마도 이런 이야기는 매우 많을 것이고, 실제와 다를 수도 있다. 어쨌든 저자의 글을 통해 나는 내가 서 있는 자리를 한 번 생각해본다. 저 중에 내 자리는 어디일까. 어떤 자리도 가능하겠지만 저 이야기에 나오는 마트 주인과 경찰관, 회색옷차림의 사람은 가난한 아버지와 아들 자리에 자신을 놓을 수 있었기에 재빨리 행동에 옮겼을 것이다.

 

저자는 삭막한 세상을 살만한 세상으로 바꿔주는 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우리 사회가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개인의 선의에 기대기보다는 사회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한 복지만이 사회적 약자들을 막다른 구석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런 주장에 대해 오른쪽 왼쪽을 말할 수도 있겠다. 나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 그들이 하지 못하는 말을 대변하는 저자의 글에서 시원함을 느꼈다. 글속에 존재하는 대상이 나 일수도 있기에 다독임을 받기도 했다. 저자처럼 수준 높은 글을 구사하고 싶기도 해서 재독, 삼독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으로도 이 책의 좋은 점을 충분히 다 말하지 못했다.

t******e 2020.07.10. 신고 공감 11 댓글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