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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p.36
제법 오래전 이 책을 읽었더랬다. 그리고 그 오랜 시간, 좀머씨의 한마디는 종종 내 귓가를 울리곤 했다.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남아있는 모든 애원과 절망을 담은 듯한 절절한 외침이 왜 그리도 기억에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나를 몰아치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허덕일 때면 여지없이 내 마음속에서도 그의 절규가 들리는 듯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어졌다.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오랜 시간이 지나 책을 펼쳐니 기억속에 묻혀있던 장면들이 하나, 하나 떠올랐다. 입술을 앙다물며 다시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겠다고, 내 스스로 세상과 작별을 고하겠다고 다짐하던 아이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에게 상처받았을 때의 내 모습을 마주했던 기억도,
내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그런 모든 것들에게 의리를 지킬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세상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토록 비열한 세상에서 노력하며 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p.86
나는 앞으로는 결코 그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리라!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말겠다! 그것도 지금 당장! p.87
그렇게 내가 없는 세상에서 나의 존재를 아쉬워하며 미안함을 느낄 사람들(나의 상상일테지만)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어느 날의 시간도 떠올랐다.
부모님이 우실 테고, 누나와 형들도 울 테고, 우리 반 아이들도 울 테고, 멀리서 찾아온 친척과 친구들도 엉엉 울면서 그들 모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소리 지르겠지. <엉엉! 그토록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우리 잘못이야! 만약에 우리가 좀 더 잘해 줬더라면, 너무 못되게 굴지도 않고, 잘못을 저지르지만 않았더라면, 그 착하고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상냥했던 아이가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 있으련만!> 그리고 무덤가에는 카롤리나 퀴켈만이 서 있다가 내게 꽃 한 송이를 던지고는 마지막 시선을 꽂으며 너무나 고통스러워 허스키해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겠지. <오, 내 사랑했던 사람아! 나의 유일했던 사랑아! 그 월요일에 같이 갈 것을!> p.91
하지만 좀머씨의 마지막 모습은 내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덕분에 두 번째 읽는 책이었지만 마치 처음 만나는 장면처럼 나는 숨을 죽이고 좀머씨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한걸음까지 그저 숨쉬기를 잊은 듯 아무런 움직임도 하지 못한채로 말이다. 그리고 그저 조용히 자리를 떠나 침묵을 지킨 주인공처럼 나 역시 책장을 덮고 침묵을 지켰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는 침묵을 지켰다.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아주 늦게 집에 도착하여 텔레비전의 나쁜 효과에 대한 일장 훈계를 들어야만 했을 때에도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도 역시 하지 않았다..(중략)..내가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또 그렇게 철저하게 침묵을 지킬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p.118
어쩌면 오래전 책을 읽었을때도 그렇게 침묵을 지켰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침묵의 시간을 지나다가 기억속에서 좀머씨를 지웠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시간이 지나 다시 이 책을 읽을 때 어쩌면 나는 다시 한번 그의 마지막 모습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의 바램처럼 그저 망각 속에서 희미해지기를 바라며 다시는 이 책을 펼치지 않을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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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IV / 열린책들 19번째 리뷰]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가 2004년이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옛날이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이 무려 1985년에 선보였다는 것이다. 무려 40년 전에 나왔던 작품이다. 그런데도 지금 당장 읽어도 굉장히 놀라운 경험을 한다. 소설이 이렇게나 재밌다는 것이 첫 경험이고, 한 번 손에 들면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다는 것이 그 다음이다. 이토록 '흡인력'이 높은 책은 정말 많이 없다. 더구나 등장인물이자 주인공인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살인자'다. 그에겐 아주 독특한 재능이 하나 있는데 '세상 모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는 이 특출난 능력을 이용해서 '향수 제조'에 능숙해지고, '최상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는, 아니 그 정도라면 '사람축'에 낄 수라도 있겠으나 살인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악마, 그 자체'다. 무려 스물다섯 명의 어린 소녀만 골라서 죽였다. 이런 희대의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이 소설은 재밌다. 놀랍도록 매력적이다. 그래서 의아한 것이다. 이게 왜 재밌냐면서 말이다. 사실, 이 책의 역사적 배경은 18세기 프랑스다. 파리를 시작으로 '향수의 도시'라 불리는 그라스까지 곳곳을 누빈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아름다운 냄새만 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파리만 해도 아주 지독하고 구역질 나는 역겨운 냄새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하수도 시설도 없었고, 화장실도 변변치 않아서 집집마다 항아리에 똥오줌을 누고 나면 창밖으로 내던지기 일쑤였다. 이런 지경이니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거리는 똥오줌이 넘쳐나는 강으로 변신하고, 쥐와 벌레가 들끓는 도시로 유명했다. 이런 도시에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기본적으로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손발을 씻거나 목욕 문화가 발달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세 유럽은 '그리스도교'의 영향 아래 있었고, 목욕은 '이교도의 문화'였다. 그래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목욕이란 걸 해보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정도로 '더러운 도시'가 바로 프랑스 파리다. 이렇게 파리는 도시도, 사람도 온통 더러운 악취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런데도 '인구밀도'는 유럽에서 으뜸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더러움을 감추기 위해서 발달한 것이 '향수'이고 말이다. 더러운 냄새가 나면 그 냄새를 향수로 덮어버리고, 그 향기가 날라갈 때마다 향수를 뿌리고 또 뿌리고 우웩~ 이런 프랑스 파리에서도 가장 더러운 세느강 항구에 위치한 어물전에서 어느 생선가게의 아낙에게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다. 그루누이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채 살인죄를 저지른 여인에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고아'가 된다. 엄마는 살인죄로 복역하다 사형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아기로 태어나지만, 그나마 주변 사람들이 궁휼히 여기는 바람에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으며, 자비심 많은 판사의 배려로 버려진 아기를 적은 돈을 받고 길러주는 '보모'의 손에서 자라나게 된다. 하지만 사랑받으며 자라지는 못한다. 갓난아기인데도 보모에게조차 도저히 키울 수 없는 '존재'라고 거부 당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바로 '냄새'가 나지 않는 아기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 이게 아주 중요하다. 사람이라면 저마다 독특한 '채취'를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이 아기는 갓 태어났는데도 그런 냄새를 가지지 못했다. 보통의 아기라면 당연히 나야만 할 그 냄새가 없는 아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눈도 채 뜨지 못한 그루누이는 코만 벌름거리며 주위의 모든 냄새를 빨아들이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그 모습이 마치 '눈도 뜨지 못한 괴물'처럼 느껴져서 그루누이는 보모에게서조차 버림을 받고 만다. 그렇게 태어나면서부터 이사람 저사람에게 '떠넘겨지듯' 돌림을 당하는 바람에 그루누이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하고 만다. 그렇게 일을 할만한 나이가 되자 돈벌이에 나서게 되는데, 하필 일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인 '무두장이의 도제'가 된다. 무두장이란 동물의 가죽을 가공해서 만드는 일을 하는데, '양잿물'을 이용하는 등 아주 위험한 일이기에 종종 죽어나가는 도제가 있을 정도로 험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루누이는 군말없이 해낸다. 성실해서가 아니다. 그는 태생부터 '악마'이기에 그 험한 일도 이겨낸 것이다. 스스로 그 악마적인 재능을 능히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그저 묵묵히 참고 이겨낼 뿐이다. 실제로 그루누이는 '무두장이'만이 걸리는 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기도 여러 차례 했다. 그런데도 기적같이 살아났다. 아주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천대를 받으면서 그루누이는 자신의 재능을 키우는 것에만 집중하며 버티고 또 버틴다. 온세상의 냄새를 구분할 줄 아는 능력 말이다. 그러다 때가 왔다. 그루누이의 코는 이제 냄새를 잘 맡는 것을 뛰어넘어 '냄새의 성분'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으로까지 발현된 것이다. 그러면서 '욕망'이 생겼다. '냄새를 붙잡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바로 '향수 제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두장이의 도제'에서 '향수제조자의 도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회를 포착한다. 세느강 다리 위에서 향수제조를 오랫동안 해오던 '지제프 발디니'라는 향수제조사를 만난 것이다. 그루누이는 그의 도제가 되기로 결심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루누이는 발디니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향기를 가두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작 어려운 일은 더 많은 냄새를 가둘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발디니의 '침수법'만으로는 냄새를 가둘 수 있는 재료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냄새를 거두어들일 '또 다른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그라스'라는 향수 도시를 알아낸다. 그루누이는 미련없이 발디니 곁을 떠난다. 발디니를 파멸로 이끌면서 말이다. 사실 그루누이를 악마로 지칭한 까닭은 그의 주변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사고사를 하기 때문이다. 엄마도 죽고, 보모도 죽고, 판사도 죽고, 그루누이를 어릴 적에 심하게 매질하던 이도 죽고, 무두장이도 죽고, 그리고 발디디도 죽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도 다 죽고 만다. 물론 그루누이가 '살인'을 저질러서 죽은 것은 아니다. 모두 '사고사'다. 그루누이가 직접 살해한 이들은 모두 '한창 꽃처럼 예쁜 소녀들'뿐이었다. 그렇게나 예쁜 소녀들을 죽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그루누이가 유일하게 '사랑'을 느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스런 소녀에게서만 나는 향기'를 사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를 모아서 최상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 살인을 한 것이다. 그저 '향기'만 뽑아내기(?) 위해서라면 굳이 죽일 필요까지 있었을까? 맞다. 그래서 그루누이도 처음엔 죽이지 않고 '살아있는 소녀'에게서 그 아름다운 향기를 추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봤다. 그러나 실패였다. 왜냐면 '향기'를 아주 뜨거운 돼지기름에서 얻은 '유지'를 골고루 바른 아마포를 맨살 위에 붙여두고 반나절 이상 가만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더구나 뜨거운 천을 온몸에 감싸고서 반나절을 꼼짝하지 않고 버틸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그나마 많은 돈을 주고서 '모델'처럼 꼼짝말고 있으라고도 해봤지만 뜨거운 천을 두루고 가만히 참기는 했지만, 끔찍한 고통을 견디면서 오만상을 찡그리고 몸부림을 치게 되면 '아름다웠던 향기'조차 고통에 의해 역한 냄새로 변하고 말아버려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루누이는 '가장 아름다운 그 찰나의 순간'에 몽둥이로 뒤통수를 쳐서 단숨에 생명을 앗아버리는 방법을 고안한다. 그때 소녀들의 표정은 한없이 청순하고 꽃같이 아름다웠다. 그렇게 아름다운 시체를 아마포로 둘둘 감아서 '향기'를 뽑아낸다. 그렇게 만든 향수는 진정 '최상의 향수'인 것이다. 그렇게 무려 스물다섯 병이나 만든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마지막에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포집하는 과정에서 '살인 증거'를 남기고 그루누이는 살인혐의로 붙잡히고 만다. 그리고 사형대에 올라서게 된다. 그리고 벌어지는 '광란의 도가니'는 이 소설의 백미이자 압권이다. 그루누이가 만든 '최상의 향수'를 맡은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취해서 그루누이 발 아래 엎드리고 말기 때문이다. 이성을 잃고 본능에만 충실한 몸짓으로 가장 환희에 빠질 수 있는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만다. 이게 그루누이가 만든 '최상의 향수'가 지닌 힘이다. 만약 이 향수를 뿌리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들어가면 프랑스 황제도 그루누이의 발등에 키스를 하며 충성을 받칠 것이며, 교황성하에게 보내는 편지에 향수를 한 방울 떨어뜨려서 보내면, 바로 황홀한 기분에 빠져서 '편지의 내용'대로 모든 일을 다 수락하게 될 수도 있다. 더구나 그 향수를 그루누이의 몸에 뿌리고서 다니면 모든 사람들은 그 향기에 취해서 그루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받치려 들 것이다. 그야말로 그루누이는 '냄새의 신'이 되어 온세상 위에 군림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최고의 순간에 그루누이는 두려움을 느낀다. 자기가 만든 '최상의 향수'가 지닌 그 놀라운 위력을 가질 수 있음에도 '그 향기'를 맡은 그루누이 자신은 그 향기에 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의 몸에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것처럼 그루누이는 '최상의 향수'에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고귀한 신분에서부터 미천한 신분에 이르는 모든 사람들이 '그 향기'에 취해서 황홀해하는 표정을 짓기 바쁜데, 왜 '냄새의 신'인 자신은 그 향기를 맡을 수조차 없다는 말인가? 왜 자신도 그 향기에 취해서 황홀한 느낌을 즐길 수 없단 말인가? 그루누이는 최고의 정점에서 '고독'을 느낀다. 단순한 외로움이 아닌 지독한 고독감을 맛보며 씁쓸해 한다. 그렇게 그루누이는 '사형수'에서 무죄를 이끌어내고, 심지어 마지막으로 죽인 소녀의 아버지에게 '양아들'이 되어 달라는 간청을 받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힘'을 누리고서는 홀연히 떠나버리고 만다. 그렇게 홀로 떠나고서 다시 되돌아온 파리 인근에서 한 무리의 거렁뱅이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루누이는 그들 앞에서 '최상의 향수'를 자신의 몸에 뿌린다. 향기에 취해버린 그들은 미치광이처럼 그루누이에게 달려들었고, 그루누이의 몸을 물어뜯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그루누이는 그들의 뱃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만다. 과연 그루누이는 만족했을까? 태어날 때부터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마지막 죽는 순간에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일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루누이는 그들이 느끼는 '포만감'을 함께 느끼며 행복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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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허무’인 것 같다. 특히 첫번째 단편 ‘깊이에의 강요’는 3페이지라는 짧음에 놀라고 결론에 당황스러웠음.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책을 읽고나서 시간이 흐른뒤 책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말에 대해 책에 나온 다음 구절을 얘기해 주고 싶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이다. 의식 깊이 빨려 들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기 때문에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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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이가 없다. 새로운 이야기인 줄 알고 샀는데 깊이에의 강요에 실어놓은 걸 또 실ㅇ니놓았다 같은 이야기를 세트 중 두 권에다 실어 놓다니. 포장을 뜯어서 환불할 수도 없고 날강도가 따로 없다. 내 돈 내놔라. 정말 어이가 없다. 새로운 이야기인 줄 알고 샀는데 깊이에의 강요에 실어놓은 걸 또 실ㅇ니놓았다 같은 이야기를 세트 중 두 권에다 실어 놓다니. 포장을 뜯어서 환불할 수도 없고 날강도가 따로 없다. 내 돈 내놔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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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손을 베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찰나에 스치며 쓰-윽! 어? 베인건가? 하고 보면 3초뒤 피가 슬쩍 배어나오고 그 상처가 아프다. 오른손에 젓가락을 들고 라면 면발을 건져올리며 왼손에 책을 들고 볼 수 있을만큼 얇고 가볍고 심지어 예쁘기까지한 이 책이 나에겐 종이에 베이는 상황같은 책이었다. 빠져드는 줄도 모르고 읽고 나니, 순식간에 입장을 바꾸는 박쥐같은 사람 양쪽 어디에도 속하길 주저하며 방관자가 되는사람 감수성을 상실하고 비인간적으로 사는사람 모두 어느정도는 내 안에 있는 모습임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거침없이 읽고 났더니 쓰-윽 하고 날카롭게 베어있다. 특히, 마지막에 있는 에세이 ''문학의 건망증'' 에는 작가자신의 읽고 잊어버리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고백하는데 그것은 ''당장 기억하고 변화하시오!'' 같은 강요가 아니라, 나중에 은근히 배어 나오는 피 같은 느낌이랄까. 열심히 잊기 위해 또 열심히 읽을 다짐을 하며. 이 예쁜 연두색 리커버판을 몽땅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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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 동네 주민이자, 매일 배낭을 메고 밖에 나가 지팡이를 짚고 온종일 걸어 다니는 좀머 씨. 아무도 그의 대한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소문은 괴상하게 퍼져서 모두 수상쩍게 여기게 되죠. 그리고 주인공 소년의 성장은 조금 불만스럽다. 막내로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몸에 맞지 않은 크기의 자전거를 물려받고 엉성한 자세로 타고 다닌다. 피아노 선생님은 독재적이고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소년에겐 혼자만의 놀이터가 있었으니, 숲속의 나무들입니다. 나무를 기어 올라가 하늘을 더 가까이 보는 것, 세상을 밑으로 내려다보는 것. 사소하고 괴로운 일이 생겨, 죽음이라는 걸 생각하고 실행하기 마음먹는데... 과연, 어떻게 될 것이며, 소년과 좀머 씨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책을 덮는 순간, 경이로움과 통찰, 성찰을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좀머 씨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니, 그동안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게 티가 많이 났어요. 전에는 느끼지 못하던걸, 크게 느끼게 되어, 매우 신기했습니다. 저는 이 책의 내용을 두 가지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부디 책을 읽으셨거나, 읽으실 계획인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해설 1 - 소년의 성장기로 보이지만, 실은 2차 세계 대전 전쟁 시, 독일 소년병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소년군들은 먼저 전쟁을 나가 죽은 선배들의 옷을 물려받아, 몸보다 큰 옷과 군화를 지급받고 전쟁을 참여했습니다. 세계 대전 당시, 죽은 군인들의 군복과 군화를 싹 벗겨서 세탁해서 재활용을 했어요. 소설 속 주인공이 몸보다 크고 불편한 자전거를 누구에게 배우지 않고 넘어지면서 스스로 체득하는데, 이는 소년군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주인공 소년이 피아노를 배우는 데, 연주하기 까다롭고 어려운 악보가 헤슬러 작곡가의 음악이었는데, 이름 헤슬러를 찾아보니, 2차 세계 대전 당시, 부하들을 통제하거나 이기지 못하는 전쟁이라도 계속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등 냉혹 무자비한 장군이었습니다. 또, 피아노 선생님은 끔찍할 만큼 까다롭고 독재적인데, 이 둘을 아둔하고 무서운 장군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매일 한나절 이상, 걸어 다니다가 집에 돌아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하는 의문의 인물 좀머 아저씨. 처음엔 왜 싸돌아 다니기만 하고 특정 없는 인물을 소설 제목으로 지었나 싶었는데, 마지막 좀머 아저씨가 물속으로 전진합니다. 남서쪽을 향해서 말이죠. 이것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남서 태평양전을 설명한 듯 보입니다. 그러니 한마디로 좀머 씨는 전쟁 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죽음은 전쟁의 종지부를 설명하는 것이죠. *해설 2 - 두 번째 해설은 소년의 성장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좀머 씨는 상상 속 인물인 거죠. 좀머 씨는 누군가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고 늘 앞을 향해 걷기만 합니다. 좀머 씨의 대사가 딱 한 줄인데..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입니다. 성장기 소년에게 이래라저래라 교육, 훈육을 하는데, 그것이 모두 바람직하지 않아 보일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어른은 때때로 보입니다. 그냥 놔둬도 알아서 잘 클 텐데, 감 놔라, 배 놔라,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는 의미로 소년이 만들어낸 공상인 거죠. 그래서 마지막 좀머 씨가 물속에 빠져 죽은 좀머 씨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필요가 없는 자신의 마음속 인물이었으니까요. 좀머 씨의 쉬지 않는 행군은 이미 많이 큰 소년에게 더는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독후감 참혹한 전쟁 이야기를 아름다운 동화로 덮어버리고, 제 마음속에 여러 갈림길을 만들었네요. 성장 문학으로 느껴지는 동시에, 참혹한 전쟁까지 느껴졌죠. 삶 자체가 전쟁이고 이걸 이겨내고 버텨내는 이야기를 예쁘게 그린 것 같습니다. 또, 저자인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창문을 다 막아버리고 은둔생활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라는 좀머 씨의 대사는 본인이 세상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이 대사가 정말 강렬하게 남습니다. 성장하는 소년을 그냥 놔두시오, 전쟁하지 말고 군인들을 놔주시오, 인생 살아가는데, 방해하지 말고 그냥 놔두시오! 라고 말이죠. 10년 만에 다시 읽어보니, 정말 다르게 해석이 되고 많은 걸 느끼게 된 소설입니다. 영화로도 제작된 ‘향수’를 지은 저명한 소설가이니, 이 책, 좀머 씨 이야기를 꼭 읽어보시길 소망합니다. 아주 많이 추천하는 바입니다. 인생 힘들고 고달픈데, 괴롭게 하는 이에게 좀머 씨처럼 말해봅시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좀머씨이야기 #파크리크쉬스킨트 #책추천 #소설추천 #문학추천 #좀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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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중 아마도 유태인인 부모님을 차례로 잃고 자신의 여동생과 멀고 먼 친척아저씨 집으로 가 농사일을 하다 군대를 다녀온 조나단. 군대를 다녀오자 여동생은 이민을 갔다며 사라지고 없고 친척 아저씨는 그를 이름도 모르던 여자와 서둘러 결혼을 시킨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4개월만에 아내는 아이를 출산하고 같은해 가을에 과일장수와 눈이 맞아 달아나 버린다. 조나단은 급기야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고 사람을 멀리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파리에서 은행 경비일과 다세대주택 건물 끝층에 자리잡을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그는 50 여세가 되자 그곳에서 터 잡고 눌러 살 작정을 하는데... 최소한의 접촉 외에는 사람들과의 어떠한 대면도 꺼리던 그에게 어느날 공포스럽기 그지없는 괴물 하나가 나타난다. 비둘기라는 괴물이 말이다. 비둘기에 놀란 그의 하루는 완전히 균형이 깨어지고 시계바늘처럼 정확하던 그의 일상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그 공포로 얼룩져 엉망이 된 하루의 끝에 짐작치 못했던 깨우침을 얻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데... 비둘기에 대한 공포와 그로 인해 엉망이 된 그의 하루, 그사이 그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얻게 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조나단의 삶에 나타난 그 비둘기가 꼭 한번은 다녀가야 할 것 같다는 감상이 일게 한다. |
| [향수], 이 소설을 18세기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극히 예민한 후각을 타고난 냄새의 천재의 짧은 일대기를 담고 있습니다. 너무 재미있게 보았고, 또한 파크리크 쥐스킨트의 또 다른 책,깊이에의 강요, 좀머씨 이야기가 읽고 싶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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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를 읽으며 나는 무거움을 강요받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진지해야만 성숙하고 복잡해야만 깊이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 속에서 나 또한 스스로를 검열하며 살아온 건 아닐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깊이를 향한 강박이 어떻게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지를 날카롭고도 유연한 언어로 드러낸다. 이 책은 나에게 철학적 사유 이상을 선물했다. 타인의 시선에 지친 현대인들이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
| 어릴 때 읽고나서의 감상과 지금의 감상이 다른 작품입니다. 어릴때 봤을땐 제목에 의문을 품었지만 지금은 왜 이런 제목이 붙여졌는지 어렴풋이 알거같습니다. 주인공인 한 소년의 성장 소설이지만 그의 곁에는 늘 좀머씨가 있었으며 알게모르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