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는 분께 추천받아 구매한 도서에요. 당시에 마음이 너무 혼란스럽고 이리저리 흩날려서 힘들었거든요. 사이즈가 작고 두껍지 않은 책이라 가볍게 들고 다니기 좋아 출근길에 종종 데려가고 있네요. 도서는 제목 그대로입니다.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술술 읽을 만한 도서에요. 저 같은 경우 반야심경은 모두가 다 아는 그 한 문장만 아는 사람이라 처음 제목을 봤을 땐 겁 먹었지만 어떤 도서보다 쉽게 인문학과 반야심경을 자연스레 섞어 보여줘서 좋았어요. 어떤 페이지의 내용과 문장은 제 삶에 적용하고 실패하고 다시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제 것이 되었구요. 이 도서의 최대 장점은 내용이 너무 어렵거나 무겁지 않아 불교적인 다스림과 차분함이 필요할 때 아주 아주 쉽게 손이 간다는 거에요. 글자만 봐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인문학과 불교에 관심이 있는 분껜 한 번쯤 읽어보시면 분명 한 가지는 답을 얻어 가실 거라 확신할 수 있어요. 힘들었던 시간 이 도서로 많이 달랬고, 앞으로도 잘 다스리며 살아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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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이 거의 모든 시간을 로봇처럼, 혹은 몽유병자처럼 자기가 아닌 것에서 오는 동력에 지배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불교의 목표는 자신이 그렇게 잠들어 있는 상태에 있음을 알아채고 자각하는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명상이 필요합니다. 나날살이에서 순간마다 알아채는 것이, 자각이 필요합니다.
모든 괴로움을 여의는 길은 어디에 있나? 만사가 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반야바라밀다를 수련해야 한다. 거기에는 8정도, 곧 여덟 가지 길이 있다. 그 가운데 두 가지를 테츠시는 권한다. 정념과 정정이다. 나날살이의 말로 하면 '지켜보기'와 '명상'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 하나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법, 그리하여 행복을 얻는 길, 그것 하나다. 사람들은 너나 할 거 없이 크고 작은 괴로움 속에서 살아간다. 그 길에서 벗어나는 길이 반야심경 수련이다.
이 세상에 경쟁과 다툼이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이 '나는 가치 없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필사적으로 애를 쓰고 있는 증거가 아닐까요? 남을 이기는 것, 일등이 되는 것, 남의 사랑을 받는 것, 남의 마음에 드는 것, 수많은 물건이나 돈을 소유하는 것 등으로 '가치 없는 인간'에서 '가치 있는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 왜 그렇게 세상에는 경쟁이나 다툼이 많고, 모두가 거기에 참가하여 애면글면 겨루고 다투며 일생을 보내는 것일까요? 좌우간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목표에 도달만 하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대 아래 무엇엔가 쫓기듯이, 몰리듯이 우리는 지금까지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늘 우리의 기대를 저버립니다. 붓사는 이런 상태를 '무명無明,무의식의 덩어리=무지=무자각'이라 부릅니다. 붓다는 이런 삶의 방식, 곧 무명 상태에서는 행복해질 수 없고, 또 잠시 행복해진다고 해도 그 행복이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라기만을 할 수 있을 때, 곧 바라는 것을 멈출 수 없을 때는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 '욕망에 사로 잡혀 있는' 상태라는 겁니다. 이런 생태를 '탐욕', 곧 탐내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을 때 우리는 내가 무엇인가에 속박돼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낍니다. 내 의지로는 욕망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반야의 지혜란 무엇일까요? 반야의 지혜란 간단히 말하면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자신을 알라차린다는 것은 화가 날 때 '나는 지금 화가 나 있다'라고 알아차리고, 슬플 때 '나는 지금 슬퍼하고 있다'라고 알아채는 것입니다. 매 순간 무엇을 느끼는지, 어떻게 느끼는지를 아는, 자각하는 지혜가 '반야의 지혜'입니다. 반야의 지혜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하면, 이 지혜만이 '나는 어떤 사람인가?'하는 물음에 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그 감정과 하나가 돼 있습니다. 화가 날 때도 화와 하나가 돼 있기 때문에 '나는 호가 나 있다'라는 걸 알아챌 수 없는 것입니다. 알아차림, 혹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아는'것은, 곧 자각은 그 대상과 하나가 돼 있을 때는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화 자체가 돼 있을 때는 '화가 나 있다는 걸 아는'것이 불가능합니다.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로부터 몸을 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갑자기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동시에 스스로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깥에 있는 것이나 바깥에서 일어난 일과 같이 '내가 아닌 것'과의 관계로부터 일어납니다. '내 감정'은 '내가 아닌 것'에 촉발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어날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더 바꿔 말해 보겠습니다. '나'는 '내가 아닌 것'에 따라 철두철미하게 조건 지어져 있습니다. 절대 바뀌지 않는 고정된 무엇이 있는 게 아닙니다. 요컨대 우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닙니다. 바뀝니다. '공'입니다.
'나'에 변화가 일어나면 무엇에 화를 내고, 무엇에 슬퍼하고, 무엇을 기뻐할 것이냐 하는 바깥 세계에 대한 나의 반응이 바뀝니다. '바깥을 향한 나의 반응'이 바뀐다는것은, 결국 '바깥 세계' 자체가 바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와 '바깥'은 서로 의존해 있기 때문입니다. 나뉘어 있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 화가 일어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남의 행동이나 말이 '내게 상처를 주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천을 하다 보면 '화'란, 곧 반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쪽의 말이나 행동이 다가 아닙니다. 그것이 화가 일어나는 계기를 제공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반응하는 그 무엇이 내게 없다면 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나는 내 감정이 남에게 좌우되는 일이 없도록 늘 조심한다네.' '······.' '그리고 저 사장의 행동은 저 사장 책임 아닌가? 그걸 내가 받을 이유가 없지.' 화란 이쪽에 분노의 '인'이 있을 때 일어나게 된다는 걸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자동적인 반응이 일어나는 순간 알아채고, 반응을 거기서 멈춰 버린 것입니다. |
| 야마나 테츠시 작가님의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을 읽고 쓰는 리뷰입니다. 반야심경 입문서로 추천받아서 읽어봤는데 좋았습니다. 이해하기 쉽고 불교 교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읽기 쉬워서 추천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