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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하면 우선 생각나는 곳은 독도와 이어도이다. 두 섬과 관계있는 울릉도나 제주도가 아니라 독도와 이어도인 까닭은 마음속에 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고립과 소외라는 생각과 함께 영토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섬이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게다. 섬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많이 가보지도 못했지만 어째서 고립이나 소외와 같은 이미지가 연상되는지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조선시대 역시 섬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표류와 유배였다고 한다. 이 책은 조선시대 섬에 유배된 사람들의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유배인들의 섬 생활 모습과 그 안에 담긴 소통의 문화를 조명하고 있다.
조선시대 유배는 죄인을 먼 곳으로 보내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형벌제도였다. 섬은 고대부터 그런 유배지로 안성맞춤이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일수록 사람이 살 수 있는 거주 지역으로의 인식이 좋지 않았고 따라서 중죄인들의 유배지로 삼았다. 그러나 모든 섬이 유배지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유배된 사람을 관리할 수 있는 행정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는 섬이 대상이 되었다. 섬으로만 이루어진 전라남도 신안군의 경우 조선시대 유배인이 보내진 섬은 흑산도, 지도, 임자도 세 곳 이었다고 한다. 이들 섬은 조선후기 해상방어의 지리적 요충지로 주목되면서 수군진이 설치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배지였던 이들 세 섬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김약행, 정약전, 조희룡, 박우현, 김평묵, 김윤식 등 6명의 사례를 중심으로 유배인과 섬 주민들 사이에 이루어진 교류와 소통의 문화를 살펴보고 있다.
우이도는 대흑산도와 38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한다. 우이도에 수군진이 설치되면서 소흑산도로 불리기 시작했고 원래의 흑산도인 대흑산도와 같은 권역으로 인식되었다. 같은 권역에서는 유배인일지라도 이동이 자유로웠다고 한다. 영조 대에 우이도에서 유배생활을 한 김약행은 9일간 대흑산도를 구경하고 그 내용을 [유대흑기]라는 기행문에 남겼다. 주요여정을 날짜순으로 기록한 이 책에는 대흑산도의 고유지명과 만난 사람들의 이름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한다. 특히 유람하면서 목격한 섬사람들의 궁핍한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조선후기의 사회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정약전은 우이도에 유배된후 섬사람들과 친숙하게 지내며 바다에 대한 토착지식을 자신의 학문세계로 끌어오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지은 [자산어보]에는 단순히 물고기 생태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들도 수록되어 있으며, 그러한 소통은 정약전이 유배지의 거처를 대흑산도에서 우이도로 옮겨가려고 했을 때 주민들 모두가 반대했을 만큼 섬사람들의 신망을 얻었다고 한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문인화가였던 조희룡은 섬사람들도 그의 작품을 소지하고 있을 정도로 유배지인 임자도에서 예술혼을 꽃피워 많은 작품을 남겼고, 조선말기 문신 박우현은 우이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유배생활의 전말과 중요한 내용을 [자산록]이라는 비망록으로 남겼다. 정적인 최익현이 우이도로 유배되면서 정적과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던 박우현은 보수주인과 자신에게 글을 배우는 아동들, 자신의 병간호를 해준 섬사람들에 대한 내용을 비망록에 자세하게 기록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조선말기 유림의 대표적인물인 김평묵이 지도로 유배를 오자 섬지역의 지식인들이 결집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가 운영했던 두류대강단은 호남의 유림들과 교류하는 장소였으며 그의 학풍은 사후에도 섬에서 계승되었다. 구한말 정치사상가인 김윤식도 지도에서 7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근대의 섬의 일상을 글로 남겼다고 한다.
이처럼 저자는 여섯명의 유배객들이 남긴 기록물을 통해서 이들 유배객과 섬사람들 간의 교류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흔히 우리는 조선시대 선비가 섬으로 유배되면 섬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섬의 아이들을 모아 학문을 가르치면서 섬사람들을 깨우치게 만들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배인이 섬에 오면 관할청은 보수주인을 지정하여 유배인이 머무는 장소 및 감호를 맡기는 등 섬사람들로 하여금 유배인들을 보살피게 했기에 현실적으로 섬사람들에게 많은 부담을 주었다고 한다. 따라서 모든 유배인이 섬사람들의 존경을 받은 것도 아니고, 또 섬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혜택을 준 것도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관계는 언제나 상호작용을 통해 움직인다. 유배인과 섬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유배인들은 섬이라는 환경과 섬사람들의 삶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했고, 섬사람들은 유배인과의 교류를 통해 외부세계와의 연결고리로 삼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배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고 있다.
또한 저자는 해양문화를 상징하는 섬이라는 공간이 지닌 환경에 주목한다. 섬의 유배문화가 소외와 고립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우리의 고유한 문화자산으로써 이야기 자원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유배객들이 남긴 이야기가 섬의 독특한 인문환경과 결합할 때 섬은 스토리텔링의 보고로 재탄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조선시대 정치사의 한 단면으로만 이해했던 유배객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섬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 또한 섬과 유배객이 서로 얽힌 그 현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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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문화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해온 저자가 전남 신안군의 섬들에 유배를 왔던 인물들의 섬 생활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주지하듯이 유배란 조선시대까지 행해졌던 형벌의 하나로, 조정과 멀리 떨어진 특정 지역으로 죄인을 보내 생활하게 하는 제도이다. 주로 정치적인 이유로 내려졌던 형벌로,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정치인들이 권력에서 밀려났다고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권력의 중심이었던 조정에서 밀려나, 죄를 지어 먼곳으로 유배형에 처해지는 것이 당사자들에게는 상당한 결격 사유로 받아들여졌다. 더욱이 배를 타고 섬으로 보내지는 유배형은 중죄에 해당하는 벌로 인식되었다.
지금도 섬은 왠지 고립이라는 이미지가 연상되는데, 당시에는 섬으로 유배를 떠나는 것에 대해 더 좌절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대체로 섬으로 유배를 당한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절해고도(絶海孤島)에 놓인 것처럼 표현을 하고 있다. 육지로부터 떨어진 곳인 섬, 배를 통해서만 육지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감시가 수월하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대체로 유배지로 선정된 섬들은 죄수들을 감시할 수군의 진(부대)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유배객들이 혼자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돌봐주는 사람(보수주인)을 정해야 했다. '보수주인(保囚主人)'이란 죄인을 책임지고 돌봐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섬으로만 이뤄진 신안군의 경우, 수군의 진이 설치되어 있던 흑산도와 지도 그리고 임자도가 주로 유배지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이곳에 유배를 와서 생활했던 6명의 인물들이 남긴 기록들을 통해, <유배인의 섬 생활>을 살피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중죄를 지은 사람들의 경우 살고 있는 집에 가시나무를 두르고 하루 세끼 밥만 들이던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제도가 있었지만, 저자에 의하면 그것이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한다. 실상 정치인들에게 있어 유배란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 하나는 정치 권력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학문과 정신적 성장을 꾀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조선 후기의 학자였던 정약용의 예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임금이었던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은, 정조가 죽자 반대 당파의 견제로 인해 18년 동안이나 유배지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정약용은 수많은 제자들을 기르고 <목민심서>를 비롯한 역작을 남길 정도로 학문을 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이 책에 수록된 그의 형 정약전도 흑산도에서의 생활을 토대로, 물고기와 바다 생물들의 특징을 기록한 <자산어보>를 남기기도 했다. 아마도 유배라는 형벌에 좌절하고만 있었다면, 이룰 수 없었던 학문적 성취라 할 것이다.
이 책에는 전라도 신안군에 위치한 섬에 유배되었던 6명에 대한 유배 생활의 면모가 소개되어 있다. 그들이 관직에 있을 때에는 실력자로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섬으로 유배를 간 경우 섬 주민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을 터이다. 그래서 그들은 섬 주민들을 위해 서당을 열어 교육 사업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주변을 여행하여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대상 인물들 가운데 조선 후기 예술인들에 관한 기록을 남긴 조희룡과 한문학의 대가로 인정을 받았던 김윤식은 국문학에서도 언급이 되고 있다. 여기에 <자산어보>를 남긴 정약전은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흑산도로 유배형에 처해진 인물로, 그의 아우인 정약용의 유배지는 인근의 강진이었다.
나머지 세 인물들은 김약행과 박우현 그리고 김평묵 등으로,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이 남긴 섬 생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잇었다. 섬으로 유배를 간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된 경우가 많아, 주로 섬 주민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 생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단순히 유배객들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특히 섬사람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유배 생활을 조명하고 있다. 아마도 자신들은 곧 떠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섬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들에게도 절실한 문제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유배 생활을 새로운 각도에서 짚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하겠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