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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본관은 전주. 호는 금동(琴童) 또는 춘사(春士). 평양출신. 아버지는 평양교회 초대장로였던 대윤(大潤)이며, 어머니는 옥씨(玉氏)이다. 소년기는 유복하면서도 아버지의 엄한 훈도 아래 친구 없는 유아독존적 생활을 하면서 성장했다. 1912년 평양 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이어 기독교학교인 숭실중학교에 들어갔으나 이듬해 중퇴하였다. 1914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학원 중학부에 입학했으나 동경학원 폐쇄로 메이지학원(明治學院)에 편입하었다. 이때 주요한(朱耀翰)과의 경쟁의식 속에서 많은 독서를 통해 문학에 뜻을 두기 시작했다. 명치학원 재학중에 부친상을 당해 일시 귀국하여 1918년 김혜인과 결혼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명치학원을 졸업하지 않은채 가와바타화학교에 들어갔으나 이 학교 역시 중퇴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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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쇼오(기상)" 하는 외침에 수감자들은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누군가가 담배 한 대를 권하기에 막 받아서 피우려던 꿈을 꾸다가 눈을 뜨고 만다. 간수의 소리는 다섯 평이 못 되는 감방에 비하면 너무 우렁차다. 수감자가 자기 번호를 외치는데, 영감이 미처 외지 못해 간수부장의 채찍을 맞는다. 이 감방엔 처음엔 스무 명이 갇혀 있었지만 스물 여덟, 진남포 감옥에서 공소로 넘어온 사람이 합쳐져 서른네 명이 되었을 땐 우리는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해주 감옥에서 수감자가 이송되어 마흔한 사람 빼곡이 들어찰 때엔 한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
| 소설가 김동인의 작품인 태형을 읽었습니다.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가 김동인의 문장과 함께 쭉 이어지는 소설입니다. 전체적인 구성도 촘촘하고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여러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도 생생하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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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문학읽기 73 김동인 태형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본 리뷰는 작품의 내용을 담고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읽으실때 주의하시길 부탁드려요 김동인 태형은 1922년 12월부터 1923년 2월까지 **『동명』**에 연재된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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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는 여러 服役囚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갑갑함에 겨운) 우리들에게는 부러움의 標대였였다. 그들은 마음대로 바람을 쏘일 수가 있었다. 목마르면 看守의 許諾을 듣고 물을 먹을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갑갑함이 없었다. 즉, 어느덧 그치라는 看守의 號令이 울리었다 우리의 二十秒 동안의 沐浴은 이에 끝났다. 우리는 (매를 맞지 않으려고) 時間을 猶豫치 않고 빨리 옷을 입은 後에 看守를 따라서 監房으로 돌아 왔다. 꼭 가장 더울 時間이었었다. 문을 닫는 瞬間, 우리는 벌써 더위 속에 파묻혔다. 더위는 즐거움 뒤의 復讐라는 듯이 容恕없이 우리를 내리쪼인다. "벌써 덥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매를 맞구라도 좀더 있을 걸......" 누가 이렇게 말한다. 서너 사람의 웃음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뒤에는 먹먹하였다. 몇 時間 동안의 沈默이 連續되었다. 우리는 무서운 소리에 화다닥 놀랐다. 그것은 斷末摩의 부르짖음이었다. "히도오쓰(하나), 후다아쓰(둘)."
看守의 헤어나가는 소리와 함께, "아이구 죽겠다. 아이구 아이구!" 부르짖는 소리가 우리의 더위에 痲?된 귀를 찔렀다. 그것은 笞 맞는 사람의 부르짖음이었다. 서른까지 헤인 뒤에 看守의 소리는 없어지고 笞 맞는 사람의 앓는 소리만 凄?히 우리의 귀에 들렸다. 둘째 사람이 笞刑臺에 올라간 모양이다. "히도오쓰." 하는 看守의 소리에 連한 것은, "아유!" 하는 기운 없는 외마디의 부르짖음이었다. "후다아쓰., "아유!" "미이쓰(셋)." "아유!" 우리는 그 소리의 主人公을 알았다. 그것은 어젯밤 우리가 내어쫓은 그 영원 令監이었었다. 쓰린 매를 맞으면서도 우렁찬 呻吟을 할 기운도 없이 '아유' 외마디의 소리로 부르짖은 것은 우리가 억지로 매를 맞게 한 그 令監이었다. "요오쓰(넷)." "아유!" "이쓰으쓰(다섯)." "후-." 나는 저절로 목이 늘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머리에는 어젯밤 그가 이 房에서 끌려나갈 때의 꼴이 떠올랐다. "七十 줄에 든 늙은이가 笞 맞고 실길 바라갔소? 난 아무케 되든 老兄들이나......" 그는 이 말을 채 맺지 못하고 ?然히 看守에게 끌려나갔다. 그리고 그를 내어쫓은 張本人은 나였었다. 나의 머리는 더욱 숙여졌다. 멀거니 뜬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려 하였다. 나는 그것을 막으려고 힘껏 감았다. 힘있게 닫힌 눈은 떨렸다.
笞刑은 五刑 가운데 罪人의 볼기를 작은 刑杖으로 치던 刑罰이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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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는 여러 服役囚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갑갑함에 겨운) 우리들에게는 부러움의 標대였였다. 그들은 마음대로 바람을 쏘일 수가 있었다. 목마르면 看守의 許諾을 듣고 물을 먹을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갑갑함이 없었다. 즉, 어느덧 그치라는 看守의 號令이 울리었다 우리의 二十秒 동안의 沐浴은 이에 끝났다. 우리는 (매를 맞지 않으려고) 時間을 猶豫치 않고 빨리 옷을 입은 後에 看守를 따라서 監房으로 돌아 왔다. 꼭 가장 더울 時間이었었다. 문을 닫는 瞬間, 우리는 벌써 더위 속에 파묻혔다. 더위는 즐거움 뒤의 復讐라는 듯이 容恕없이 우리를 내리쪼인다. "벌써 덥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매를 맞구라도 좀더 있을 걸......" 누가 이렇게 말한다. 서너 사람의 웃음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뒤에는 먹먹하였다. 몇 時間 동안의 沈默이 連續되었다. 우리는 무서운 소리에 화다닥 놀랐다. 그것은 斷末摩의 부르짖음이었다.
"히도오쓰(하나), 후다아쓰(둘)."
看守의 헤어나가는 소리와 함께, "아이구 죽겠다. 아이구 아이구!" 부르짖는 소리가 우리의 더위에 痲?된 귀를 찔렀다. 그것은 笞 맞는 사람의 부르짖음이었다. 서른까지 헤인 뒤에 看守의 소리는 없어지고 笞 맞는 사람의 앓는 소리만 凄?히 우리의 귀에 들렸다. 둘째 사람이 笞刑臺에 올라간 모양이다.
"히도오쓰."
하는 看守의 소리에 連한 것은, "아유!" 하는 기운 없는 외마디의 부르짖음이었다.
"후다아쓰." "아유!"
"미이쓰(셋)."
"아유!" 우리는 그 소리의 主人公을 알았다. 그것은 어젯밤 우리가 내어쫓은 그 영원 令監이었었다. 쓰린 매를 맞으면서도 우렁찬 呻吟을 할 기운도 없이 '아유' 외마디의 소리로 부르짖은 것은 우리가 억지로 매를 맞게 한 그 令監이었다. "요오쓰(넷)." "아유!" "이쓰으쓰(다섯)." "후-."
나는 저절로 목이 늘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머리에는 어젯밤 그가 이 房에서 끌려나갈 때의 꼴이 떠올랐다. "七十 줄에 든 늙은이가 笞 맞고 실길 바라갔소? 난 아무케 되든 老兄들이나......" 그는 이 말을 채 맺지 못하고 ?然히 看守에게 끌려나갔다. 그리고 그를 내어쫓은 張本人은 나였었다.
나의 머리는 더욱 숙여졌다. 멀거니 뜬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려 하였다. 나는 그것을 막으려고 힘껏 감았다. 힘있게 닫힌 눈은 떨렸다. 笞刑은 五刑 가운데 罪人의 볼기를 작은 刑杖으로 치던 刑罰이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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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이라는 작가는 개인적으로 가장 한국적인 작가 중 한명이라고 생각하고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방탕함 그리고 그의 친일행적은 진심으로 이해 할 수 없는 그래도 그이 작품이 뛰어나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라는 것 태형이라는 인물의 성장기 같은데 어린시절부터 성장기까지 가족과의 관계등 여러가지 관계에 대해 해결해가고 성장해가는 것이 오히려 작가와 반대로 느껴져서 작가가 자신에 대해 반대의 인물을 투영해서 만들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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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태형 90대의 판결을 받고 이를 항소하자, 나를 비롯하여 같이 있던 죄수들이 자리가 좀 넓어진다는 이유를 들면서 노인의 행동을 비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노인에게는 태형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아들도 죽었는데 노인 혼자 살면 무엇하냐고, 노망이 났다고 노인을 비난하였습니다. 이러한 비난탓인지 결국에 노인은 굴복하여 공소를 취하하였습니다. 그리고 태형에 처해졌습니다. 태형 당하는 노인의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조그만 편안함을 위해 노인을 내보낸 자신의 이기심과 비정함을 자책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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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해에 쪼인 시멘트 길은 석 달 동안을 쉰 우리의 발에는 무섭게 뜨거웠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즐거움의 하나였었다. 우리는 그 길을 건너서 목욕통 있는 데로 가서 옷을 벗어던지고. 반고형(半固型)이라 하여도 좋을 꺼룩한 목욕물에 뛰어들었다.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었다. 곧 곁에는 수도가 있다. 거기서는 언제든 맑은 물이 나온다. 그것은 우리들의 머리에서 한때도 떠나 보지 못한 '달콤한 냉수'이었었다. 잠깐 목욕통에서 덤빈 나는 수도로 나와서 코끼리와 같이 물을 먹었다. 바깥에는 여러 복역수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갑갑함에 겨운) 우리들에게는 부러움의 푯대였였다. 그들은 마음대로 바람을 쏘일 수가 있었다. 목마르면 간수의 허락을 듣고 물을 먹을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갑갑함이 없었다. 즉, 어느 덧 그치라는 간수의 호령이 울리었다. 우리의 이십 초 동안의 목욕은 이에 끝났다. 우리는 (매를 맞지 않으려고)시간을 유예치 않고 빨리 옷을 입은 후에 간수를 따라서 감방으로 돌아왔다. 꼭 가장 더울 시간이었었다. 문을 닫는 순간, 우리는 벌써 더위 속에 파묻혔다. 더위는 즐거움 뒤의 복수라는 듯이 용서없이 우리를 내리쪼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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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이 없으니까 밥그릇에 붙은 밥알을 긁어서 이기기 시작한다. 식사 때 마신 물은 이내 땀으로 빠져나와 심한 기갈에 허덕인다. 습진이며 빈대가 문 탓에 종기투성이가 아닌 사람이 없다. 그저 생각하는 것이라곤 냉수와 담배뿐이다. 진찰감에 보내주는 게 소원이다. 그런 한편으로, '나'는 아우가 어느 감방에 있으려나 뒷소식이 궁금키도 하다. '나'는 요행히도 진찰감에 보내졌다. 감방을 나서기만 하면 달고 맑은 새 공기를 들이마실 수가 있어 기절할 듯 기쁘다. 게다가 더 기쁜 것은 아우를 만난 것이다. '나'는 종기가 심해 나왔지만, 아우는 배가 아프다고 '거줏뿌리'(거짓말)를 했다니 재주가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