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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 난리라는 무서운 국난을 겪기 때문에 국탕이 한때 죄 고갈되었던 그 상처도 한 삼십 년 지나서는 얼마만치회복되었다. 기생으로 가져야 할 지식은 다 그만하면 제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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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주요한(朱耀翰)?전영택(田榮澤)?최승만(崔承萬)?김환(金煥) 등과 함께 문학동인지인 『창조』를 발간하면서 첫 작품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였다. 1919년 3월에는 아우 김동평(金東平)의 3?1운동 격문을 써준 것이 발각되어 출판법 위반 혐의로 3개월간 투옥되었다. 이후 「마음이 옅은 자여」(1919), 「배따라기」(1921), 「목숨」(1921) 등과 같은 작품에서 이광수의 계몽주의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적 경향을 표방하였다. 1923년에 첫 창작집인 『목숨』을 창조사에서 출간하였고, 『창조』의 후신인 『영대』를 발간하였다. 『영대』 동인으로는 『창조』 동인 외에도 김여제(金與濟)?김소월(金素月) 등이 참가하였다. 1925년에는 「명문」, 「감자」, 「시골 황서방」과 같이 자연주의적 작품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
| 김동인 작가가 쓴 소설인 술값 외상을 읽었습니다. 여러 등장인물들이 각자 자신들의 사연을 가지고,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현실적으로 최선인 행동을 하는 이야기가 크게 서로 얽히고 설키는 듯한 구성으로 진행되는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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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문학읽기 77 김동인 술값 외상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본 리뷰는 작품의 내용을 담고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읽으실때 주의하시길 부탁드려요 김동인 술값 외상은 근대 한국 문학의 한 부분으로, 특정 주제나 줄거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합니다. 그러나 김동인의 다른 작품들처럼 인간 관계와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것이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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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들어본 김동인의 작품인데 역시 김동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처녀기생 동정월의 이야기 이게 단순한 기생의 인기 이런게 아니라 임진왜란이후에 시대상과 기생에서 결혼하고 고향을 떠나 새 삶을 시작하는 과정등 그러나 모든게 녹록하지 않은 그리고 술값 외상이라는 말처럼 술장사를 하면서 보여지는 여러 이야기들이 역시 김동인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방탕한 성정과 달리 그의 글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단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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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 이야기가 딴 길로 들어갔구나. 기축이는 능양군과 이귀 일당의 새의 연락군이 되었다. 생김생김이 하인 꼴로 되었는지라 기축이의 출입은 〈서인이며 능양군을 단단히 감시하고 있 는 〉 나졸들도 무심히 보았다. 이러한 가운데서 가장 마음을 죄이는 것은 동정월이었다. 자기의 취한 길이 과연 현명하였나? 밑져야 본전은 본전이다. 시골 아전의 첩으로 가기나 여기 지금 주모로 있기나 의식에 걱정 없기는 일반이다. 행세로 따진단들아전의 첩이면 얼마나 행세를 하랴. 요행 일이 바로 되어서 그 위에 부인(夫人) 직첩이라도 어떻게 얻게 된다면 얼마나 장하고 쾌한 일이냐. 어서 성사합소서. 어서 성사합소서, 이귀 일당은 이 귀 일당으로 마음을 죄이느니만치 동정월은 또한 동 정월로 마음을 죄이며 기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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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처녀 기생 동정월의 이름은 나날이 높아 갔다. 모두들 호기심과 호기안으로 동정월이를 보았다. 제가 장차 어떤 사람에게 시집을 가려나 기생의 신분으로 시집을 간다는 것도 우습거니와 게다가 사람을 골 라? 약간 질투심도 섞인 마음으로 동정월의 장래를 주시하였다. 이러한 때에 한 꼴꾼(柴商)이 이 권내에 등장하였다. 성은 아지 못하고 이름도 없는 인물이었다. 임진난리통에 부모를 잃었다. 그때에 나이가 네 살이었다. 그러니까 기축생이었다. 자기의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몰랐다. 하물며 신분이라든가 부모의 성명을 알 까닭이 없었다. 어느 농가에서 장래 머슴으로 부려먹으려고 집어다가 길렀다. 기축생이라 이름을 기축이라 하였다. 성은 애당초에 필요치 않으므로 탐색치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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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것을 마음여겨 배우기만 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명기가 되려면 꼭 필요하고도 또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자색(姿色)이라는 천품을 동 정월은 남보다 훨씬 많이 타고 났다. 이 자색이 붙은 덕에 그는 적잖은 평양 기생 중에 명기라는 이름을 획득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명기라는 칭호를 획득한 원인에는 또 한 가지가 있었다. 즉 아직 사내와 접하지 않았다 하는 점이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생리적으로 동정월은 지금껏 처녀라 하는 점이었다. 처녀 기생―얼른 듣자면 가소롭고 또 가소로운 이 칭호 때문에 동정월의 명기 칭호는 나날이 높아갔다. 위로는 감사 목사의 권력에도 굽지 않았다. 아래로는 돈 많은 관속, 얼굴 절묘한 도령, 글 많은 선비에게도 굽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