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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공부하느라 바쁜 두 아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잠시 쉬고 있을 때 이런 질문을 툭 던져봤다. '너희들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냐?' 갑자기 이 질문을 했던 이유는 아침에 읽던 책에서 이 문장을 만났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 인생이라는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다.' 듣고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실제 그런지 따져묻고 보면 대답은 '글쎄요'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인가? 주인공처럼 일상을 대하는가? 내 인생의 이야기는 누가 만들고 있는가? 살짝 질문으로 돌려 보면 생각할 게 생긴다. 일상을 대하는 태도를 바꿀 필요도 느끼게 된다.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이유, 정신줄을 놓고 살기 때문이다. 약간만 생각을 틀어주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데도 관성에 따라 사는 게 훨씬 편하기 때문에 똑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심지어 이런 사실을 알아도 두뇌 회로를 바꾸지 않는 한 일상의 틀을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몸의 상태를 바꾸려면 편안함을 포기해야 하듯이 생각을 바꿀 때도 노력이 필요하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아령을 들고 내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뇌회로가 반짝반짝 새로운 자극에 노출 되어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질문'이다.
그래서 질문에 대해 말하는 책을 좋아한다. 그때마다 질문하는 사람이 된다. 이 책 <천년의 수업>도 그래서 좋아한다.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이라는 부제를 표지에 안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서문 제목도 '질문하는 삶을 살고 계신가요?'다. 대답이 '아니요'기 때문에 생각날 때마다 들춰보는 책이다. 쭉 이어서 보지 않는 책 중 한 권. 자극이 필요할 때마다 보는 책은 한번에 읽고 책장으로 보내지 않는다. 그러면 질문에 대한 생각도 같이 가버리기 때문이다. 책을 덮는 순간 잠시 들떴던 생각도 가라앉아 버리기 때문이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사회 생활을 할수록 더 이상 궁금한 것도, 질문할 것도 사라져갔지요. 자기가 얻은 답이 정답이라고 믿으며 다시 묻지 않은 채 평생을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6쪽)
질문이 좋은 점은 당연하다 여기던 것을 새롭게 해준다는 것. 자주 질문을 하다보면 세상에는 당연한 건 없으며 단지 내가 그렇게 여길 뿐이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하는 게 귀찮아지고 조금 아는 것, 대충 아는 것을 전부라고 여기게 된다. 놀랄 일도 별로 없고, 호기심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면 속 좁은 사람, 내 안에 갇힌 사람, 꼰대질 하는 사람, 갑질하는 사람,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 된다. 3차원의 세상을 2차원으로만 보는 사람이 된다. 질문할 줄도 모르고, 누가 질문하면 역정만 낸다.
이미 질문하는 법을 잊어버린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까지 질문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게 되는 악순환인 거죠. 그동안 권위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질문을 차단하거나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 질문에 대해서만큼 관대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312쪽)
세상은 바뀌는데 나만 바뀌지 않고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가만보니 내 주위도 변하고 있는데 나만 그대로란 생각이 들면 불안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어디 쉽게 바뀌는 존재든가. 그냥 앉아서 고민한다. 하긴 이럴 때 하는 질문이 있었구나. 걱정만 하는 질문. 답을 내지 않는 습관적인 질문. '어떡하지?' 장난끼 넘치는 두 아들은 '너희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냐?'란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아부지요!' 생각지 못한 답변에 음, 이 상황을 어떡하지? 잠시 고민하다 접었다.
어떤 사람들은 의아해해요. 좋은 메시지가 있다면 그대로 알려주면 되는 건데 왜 그걸 굳이 길고 어려운 이야기에 숨겨놓느냐는 거예요. 그런데 그냥 하는 말은 피부에 잘 와 닿지 않아요.(30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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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질문을 하는 삶을 살고 계신가요? 그러면 당신은 어색한 웃음만 지으며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요? '질문한다는 건 내가 모른다는 거잖아. 그건 나의 무지를 드러내는 일이야.' '주어진 답을 따라 가는 게 안전해. 새롭게 도전하다 실패하면 어떻게 해?' ' 아마 내 질문이 엉뚱하면 어떡해, 그러면 웃음거리 밖에 안될 거야.' 보고 듣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궁금한 게 많은 우리 둘째 아이, 그 아이가 질문하는 것이 어떨 때는 상식에도 안 맞는 이상한 질문일 때도 많지만, 질문을 하는 데 적극적이다. 우리 아이에겐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 일 것이다. 주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고 배우고 싶은 것들로 꽉 차 있다. 우리 아이에게 세상을 배운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무지의 어둠 속에 세상의 빛을 밝히는 것이다. 우리 아이에게는 하루하루가 특별하고 신나고 재미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우리가 질문하는 것도 꺼리지만, 누군 가가 우리에게 질문을 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궁금한 것이 없을까? 아니다, 우리는 궁금한 것이 있고, 알고 싶은 것이 있어도 질문을 하지 않는다. 아니,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위대한 발명가 에디슨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에디슨은 어렸을 때부터 궁금한 것이 생기면 '집요한 질문'을 던지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엉뚱하고 창의적인 질문 때문에 다니던 학교를 중퇴해야 했지만, 궁금증과 호기심을 버리지 않고 자라서 위대한 발명가가 된 것이다. 천재는 이렇게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호기심과 창의력도 학교 교육에 의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우리는 질문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 방법조차 모른다. 그런 우리들에게 김헌 교수는 질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 나인가?" "인간답게 산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사는가?" "어떻게 해야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세상의 한 조각으로서 나는 무엇일 수 있을까?" "변화하는 세상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될 수 있을까?"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 "잘 적응하려면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 이 9가지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깊이 있고 밀도 있는 삶, 풍요롭고 단단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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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래스’를 통해서 만나본 저자의 해박함에 반해 무조건 선택해서 읽었다. 좋았다. 문명의 근원을 그리스 로마를 통해 꿰뚫는 놀라운 성찰에 반해 쓰고 있는 내용이었다. 물론 문명의 근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고, 각자가 좋아하는 설이 있을 것이다. 저자도 고등학교 시절 화학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듯이 말이다. “이걸 꼭 알아둬라. 내가 지금 너희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은 너희들이 내 나이쯤 됐을 때는 거의 다 거짓말이 되어 있을 것이다” 과학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에게 무척이나 충격적으로 들렸던 같다. 그러나 점점 더 공부해 가면서 과학의 정설이라는 것은 그 시대 과학자들의 파워게임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절망을 느끼고 인문고전으로 방향을 틀었으리라는 것은 내 생각이다. 그중에서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통해 문명의 근원을 파해치는 내용이 이 책에 흐르고 있다.
그리스 로마신화는 친부살해의 내용이 이어진다. 이러한 내용을 당시의 아이들은 읽고 자랐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책은 어린이들이 읽으면 안 된다고 했다. 본인은 읽고 자랐으면서…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친부살해는 세대교체와 같은 것이라고. 아버지는 기성세대를 대변하고 자식은 젊은 세대를 대변한다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세대교체가 끊임없이 이어져 와야만 역사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신화의 세계에서는 ‘우라노스-크라소스-제우스로 계보가 이어지고 우라노스는 그의 형제들을 어머니인 가이아의 뱃속에 가두어버리고 권력을 차지한다. 이에 가이아는 크라소스를 뱃속에서 해방시켜 우라노스를 제거하고 그의 형제들을 자신의 뱃속에 가두어 버린다. 한마디로 권력 독식의 모습이다. 반면 탈출한 제우스는 여러 형제의 힘을 규합하여 크로소스를 물리치고 형제들과 권력을 나누어 가진다. 권력 배분의 모습이다. 앞선 우라노스와 크로노스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세대교체의 유연함을 나타내고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우리에게 인생의 좋은 지침서가 되는 책들이 고전이라고 한다면 저자는 오늘날의 현상과 전혀 상관이 없을 듯한 신화를 가지고서 고전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물론 저자에게는 인생의 지침서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어떤 사람에게는 톨스토이의 ’부활‘이 고전이 될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등이 고전이 될 수도 있다. 박지연의 ’열하일기‘가 고전이라고 해서 열심히 읽었더니 어렵기만 했다. 그러나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찾을 수 있는 책이 바로 고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그리스로마신화 예찬도 이해가 된다. 그래서 제목도 ’천년의 수업‘이리라. 그러나 사실은 천년은 더 되었지만… 암튼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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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다산초당에서 출간 된 김헌 작가님의 <천년의 수업>에 대한 내용입니다. 김헌 작가님의 책 중에서 첫번째로 읽은 작품이다. 부 제목이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이다. 책을 펼치면 질문하는 삶을 살고 있냐고 묻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호기심도 많고 선생님에게 질문도 많이 했었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좋은 질문을 했다며 나를 다시 한 번 봐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습관을 잘 들였다고 생각한다. 질문이라는건 어떤 주제에 대해 이해를 못해서 하거나 이해는 했지만 궁금한 점이 생기면 하는거다. 삶이라는 답없는 문제에 나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삶을 살 예정이다. 이 책은 작가가 옆에서 말해주듯이 서술되어 있어서 마치 강연을 보는 듯 했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내가 누구인지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라는 소제목이 달린 부분이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겸손을 잊게 된다. 오이디푸스와 크로이소스의 얘기에서 확신의 위험성을 배운다. 섣불리 답을 내리며 단정하고 확신하기에 앞서 끊임없이 판단을 중지하는 '에포케'가 필요하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너 자신을 알고 너 자신을 안다고 착각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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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이라는 이름을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되어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작가는 서울대에서 인문학을 강의하는 고전문학자로, 그리스로마신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이해를 가진 분이다. 본인또한 그리스 로마신화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에, 이 책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듣고 싶어 구입하게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자신만의 시각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통해 자산의 철학을 가다듬는데 도움이 될 만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지는 않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어떻게 살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 봄직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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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아주 우연한 기회에 김헌 선생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교환학생 신청 요건을 충족하려 21학점을 반드시 채워야만 하는 처지였는데, 개강한 직후 3학점짜리 강의 하나가 폐강되어 버린 것이다. 부랴부랴 일정에 맞는 강의를 아무렇게나 집어 넣었고 그것이 김헌 선생님의 <희랍어1>이었다. 당시 나는 희랍어라는 이름만 보고 아랍어의 아류라고 생각할 정도로 고전어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상태였다. 그후로도 자랑질이나 일삼아 볼 생각으로 깔짝깔짝 익혔을 뿐, 고전어를 진지하게 배울 마음은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이야기겠다. 하루 벌이가 힘들었던 생활에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공부였다. 그럼에도 <희랍어2>에 이어 <라틴어1>, <라틴어2>, <법학라틴어>를 수강하고 방학 특강까지 들었으니, 동기가 그런 것 치고는 꽤나 열심이었던 셈이다. 김헌 선생님에 대한 팬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집필과 방송 활동에도 여념이 없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은 EBS <보니하니>에서 어린 아이들과 토론하는 "생각박사님"으로 출연하시는 모양이다. 그런 선생님의 신간이 나와 올려본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생각박사님의 이야기 꾸러미다. 워낙에 빼어나신 입담과 끊임없이 공부하시는 지성이 문장에서 철철 흘러 넘친다. 브런치 @eunkwangchoi 고학력룸펜 인스타 @eunkwang.critic.cho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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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mate3416/222079960204 < 책방 하고 싶은 면서기 >
공무원이 되었을 때, 내가 정말 공무원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했다. 늘 같은 대답만 해도 되는 사람, 고수하는 게 일인 사람. 그래서 새롭지 않은 사람. 늘 경계하자 마음먹었다. 일을 시작하고 알게 되었다. 마음 단디 먹어야 한다는 걸. 눈만 부라리고 있으면 되는 걸까? ‘그런’ 사람들로만 가려 뽑진 않았을 텐데. 공무원들이 ‘그렇게’ 된 이유가 있을 텐데. 그걸 알아야 전략을 세울 텐데. 경계는 무엇으로 시작하는 거지? 어떻게, 어디까지 하는 거지? 다음 단계는 뭐지? 각오는 다졌으나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저 공무원 싫은데 어떻게 해야 되요?’ 선배들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우왕좌왕으로 일 년, 이 년이 흐르더니 짜잔~ ‘그런’ 공무원이 되어 있었다. 싫은 마음이 변한 것도, 되고자 노력한 것도 아닌데 꽤 그럴듯한 ‘그런’이 되어 있었다. 신기하네, 하다 흠칫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너 혹시 진짜 ‘그런’으로 살려는 거야?
질문이었다. 그게 없었다. 하라는 걸, 하라는 방법으로, 하라는 만큼만 했다. 다른 거(것도) 하면 안되요? 다른 방법으로 해보면 안되요? 덜(더) 하면 안되요? 이런 물음들이 없었다.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금기였다. 해왔던 대로만 할 것. 질문하지 말 것. 연차가 쌓이며 묻기 시작했다. 다른 것, 다른 방식, 다른 만큼을 우선 내게 물었다. 기존과 다른데 지적하기는 애매한 것들―글씨체, 현수막 색깔, 자연부락 대신 자연마을 같은―부터 바꾸어보았다. 그런 걸 고민해야 돼? 싶겠지만 그런 것조차 용납되지 않아 하던 대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거나 스스로 던진 질문에 ‘이건 진짜 아니야’ ‘이것만 정답은 아닐 거야’ 같은 답이 나오면 (소심하게) 바꿔보기 시작했고, 독특한 애로 여겨지더니 드디어 ‘넌 다른 일이 더 잘 맞을 것 같아’ 소리를 듣게 되었다. 어찌나 기쁘던지. 조금… 그랬지만.
혹시,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다면 김현 교수의 『천년의 수업』을 권한다. 또 혹시, 고민할 겨를 없이 살아왔다면 역시 같은 책을 권한다. 혼내지 않는 책이니 읽어보시면 좋겠다. 어느 어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 책이다. 믿을만한 어른이었고, 푸른 바다가 앞에 있었고, 그는 신중하고 다감했다. “있지, 나는 네가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덜 식상한 말을 찾고 싶지만 어쩔 수 없어. 너, 정말, 소중. 이것밖에 없어. 근데 나는 우리 사는 세상도 참 좋아하거든. 그래서 곰곰 생각해봤더니 너랑 세상이랑 꽤 잘 어울리는 거야! 해서 말인데, 괜찮다면 내가 너희 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들려줘도 될까? 혹시 궁금해?”
질문. 그가 오랜 시간 구해온 답이다. 그저 그런 삶 말고 자신에게도 세상에도 괜찮고 근사한 삶을 살기 위해 질문해보자고 한다. 무얼, 왜,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 일러준다. 병아리 공무원 시절, 선배들에게 묻지 못했던 것을.
가장 공들여 설명하는 대상은 ‘나’이다. 타인과 인간, 인류와 세상의 시작이 니 맞는 순서다. 헤르만 헤세 역시 『싯다르타』를 통해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인생의 궁극을 깨닫기 위해 평생을 구도했던 싯다르타는 결국 ‘내가 나를 안다는 착각’을 인지하는 것부터 새로이 해야 했다. 한 가지 충고도 덧붙인다. 제대로 된 질문을 통해 나를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버텨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게 좋겠다고 한다. 나를 마주하는 일을 견뎌내는 게 조금은 힘들 수도 있다는 팁을 잊지 않는다.
그 과정을 치러냈다면 곁의 누군가가 보일 것이다. 그와 나의 연결도 함께 보일 것이다. 그 다음은 세상, 또 그다음은 세상과 나의 연결이다. 자, 이제 전과 같을 수 없다. 방식과 정도는 상관없다. 질문을 던지고 그 물음에 답하면서 무엇을 보았다면 이제 전과 같지 않다. 우선 ‘제대로’에 대한 갈망이 들 것이다. 첫 질문과 그것에 응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제대로 묻는 법, 제대로 보는 법을 알고 싶어질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좀 오그라들지만 스스로가 전보다 더 사랑스러워졌을 테고, 그런 자신에게 좀 더 따뜻한 애정을 주고 싶고, 토닥여주고 싶고, 진심 깃든 응원을 주고 싶어질 것이다. 곁의 이들에게도, 세상에도 같은 마음일 테니 제대로 물어 괜찮게 살고 싶어질 것이다.
안다. 일각이 급하고 사람이 힘들고 하루가 고된데 이거 좀 웃기지 않느냐고 조소할 수 있음을 안다. 나 역시 그런 매일을 살았다. 온종일 떨어져있던 자식새끼가 불러도 침묵과 짜증으로 답했다. 너무 힘이 들어 그랬다. 빈틈없이 채찍을 맞는 기분으로 열네 시간을 일하고, 자는 것도 자지 않는 것도 아닌 대여섯 시간을 보내는 매일을 살았다. 그런 생 속에서 내가 무얼 할 수 있었겠는가. 이제 다른 것을 안다. 그런 삶의 작은 틈에서 무엇이라도 물었다면 조금이라도 더 인간다울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안다. 동물답게, 기계답게 살아가는 나를 의심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안다. 어설프고 어색하더라도 묻고 응했다면, 용기내어 그 과정을 직시했다면 지금 내가 잃은 그것들을 지켜낼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이제 안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게 맞다는 것도.
저자는 ‘어떻게 살아야 옳을까, 어떻게 살아야 만족스러울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답하는 것이 인문학이라 말한다. 그 치열함 없이 다른 무엇에만 열중하는 젊은 시절의 인문학 빈곤이 사회 전체의 정신적 빈곤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빈곤 말고 풍요라면 근사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이, 우리의 연결이 근사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세상에 좋은 것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묻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위기에 닥쳐도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맺음말을 나는 믿는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삶을 살고 싶다.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소양과 내공이 단단한 삶, 새겨온 무늬가 겸손하고 수준을 갖춘 삶을 살고 싶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에포케epoche, 잠시 멈춰 객관적으로 묻는 수밖에.
아, 어떤 공무원으로 살고 있느냐고? 뭐 그냥 공무원으로 살고 있다. ‘거봐, 너 다른 일 해야 된다니까.’ 와 ‘너 진짜 꼰대 공무원이야.’를 번갈아 들어가며 살고 있다. 경계를 다짐한 마음을 아직 갖고 있고, 쓸데없는 질문과 (아주 가끔)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가며, 여전히 소심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답하며 살고 있다. 이게 맞겠지, 하다가 아닐지도 몰라, 하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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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내 자신이 궁금하고 있던 질문과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샀던 책이지만 이상하게 책장에 있는 모습만 흐뭇하게 바라보기만 할뿐 읽히지는 않았다 큰 맘 먹고 요번에 읽게 되었다 질문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과거에 질문을 하기도 그랬던 학창시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질문을 하는 사람은 괜히 수업 시간을 질질 끌게 만든다며 싫어했었던. 솔직히 읽으면서 생각했던 내용과는 달라서 놀라기는 했지만 사실 '그리스 로마로' 라는 구절을 보지 않아서 이런 내용이었나 싶어서 읽으면서는 의아했다 나를 탓해야하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꽤 잘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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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예스24 홈페이지에서 책 천년의 수업을 발견하였다. 서울대 김헌 교수의 인문학 강의라니, 어렸을 때 꿈꾸웠던 나의 꿈과 생각이 떠오르면서 책을 구입하게 되었고 바로 읽게 되었다. 과연 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잘 생각하고 있는기, 어렴풋이 생각나는 내용들을 책을 읽어가면서 깨달았다. 책은 그리스 신화를 통해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방향과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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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수업은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에 대한 본원적인 의문에 깊이 있는 통찰을 배워갑니다. 이제껏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고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반성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에게 한 없이 솔직한 모습으로 자신을 생각하게끔 하는 힘을 갖고 있는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