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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소도시에서 살다 대학에 입학한 후, 처으으로 전국 각지에서 온 동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간혹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되면 서로 다른 사투리들이 섞여, 그 목소리만으로도 출신 지역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고향이 어디냐고 묻곤 했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고향은’으로 시작하지만, 서울 출신들의 대답은 ‘서울에서 태어났어.’ 였던 걸로 기억된다. 다른 지역 출신들은 ‘고향’이라는 표현을 익숙하게 사용하는데 반해, 서울 출신들은 ‘고향’이 아닌 ‘태어난 곳’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다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자신들을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자조하는 이도 있었던 것 같다. 까마득한 옛날 일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려 본다.
이 책을 접하고 인상적으로 느꼈던 부분이 바로 <내 고향 서울엔>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가 서울을 고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 서울을 고향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보기가 쉽지 않았기에, 서울을 고향이라고 인식하는 저자의 관점이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 역시 대학에 진학하면서 이후 20년 가까이 서울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저자가 그리고 있는 서울의 모습들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직장을 잡기 위해 분투했던 시기와 겹친다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특히 저자의 행동 반경이 나의 그것과 겹치는 부분도 적지 않다는 점도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을 떠나 지방의 중소도시에 정착한 지 오래되어, 이제는 다시 서울로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그렇게 나에게도 서울은 이제 ‘추억의 도시’가 되어 버렸다.
이 책은 지리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겪었던 서울의 풍경을 그려낸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적지 않은 부분 서울의 공간들이 지닌 사회학적인 의미를 짚어내고 있기는 하지만,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들을 통해 해당 공간을 소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북의 ‘월계동’ 출신의 저자는 서울의 모습을 강북 지역 곳곳의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의 경험에 입각하여 그려낸 이 책의 내용을 일컬어 ‘나의 감각들로 채워진 뻔뻔한 오답투성이의 서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 어떤 식으로 묘사하든, 특정 공간의 이야기는 정답이 없는 각 개인들이 소환하는 다양한 ‘모범답안’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 책 역시 저자의 기억에 공감할 수 있는 독자들이 있다면, ‘오답’이 아닌 또 다른 ‘모범답안’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체 5장으로 구성된 목차에서, 강남을 소개한 5장을 제외하면 전부가 강북 지역들이 대상이라 하겠다. 저자가 태어난 월계동을 중심으로 한 ‘우리 동네’(1장)는 물론이고,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의 중심지로 여겨졌던 ‘종로 일대’(2장), 한때 젊은이들의 거리로 불렸던 ‘신촌과 홍대’(3장), 그리고 과거 소규모 공장이 밀집되어 산업의 기지로 평가되었던 ‘영등포와 구로’(4장) 등이 주요 서술 대상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지리학과 사회학적인 설명이 곁들여지기는 하지만, 철저히 저자의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여 서술되고 있다. 나로서는 저자가 성장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지역들이 낯익고 반갑게 느껴졌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책의 내용보다 저자가 소개하는 지역과 관련된 내 추억들을 꺼내보기도 했다.
앞에서 간략하게 정리했지만, 이 책은 서울을 고향으로 둔 저자의 경험을 기초로 서술하는 서울 탐색기라고 할 수 있다. 1부는 월계동을 중심으로 저자의 겪었던 동네의 모습과 크게 변해버린 현재의 그것을, 자신의 성장담 형식으로 녹여내어 서술하였다. 어느 정도의 나이차가 있어서인지 저자의 경험에 크게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그 시절의 유행과 취향을 어느 정도는 읽어낼 수는 있었다. 2부는 종로 일대의 다양한 모습과 변화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느낀 생각들이 정리되어 있다. 이 역시 대학과 그 이후 나 역시 자주 다니던 곳이라, 저자가 소개하는 공간들에 대해서 기억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여기에 3부는 신촌과 홍대 일대에 대한 경험과 생각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소개되고 있다.
영등포와 구로를 대상으로 한 4장의 내용도 역시 저자의 경험에 의존하고 있으며, 5장에서 소개되고 있는 강남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에는 간혹 서울에서의 일정이 있어 갈 기회가 있으면 종종 강남에 들르곤 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강남은 익숙한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에게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지리학자인 저자의 시선으로 겪고 마주쳤던 서울의 모습이, 서울에 살던 시절 내 행선들과 비슷한 경로이기에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서울을 떠나 산 지 20년도 더 지났기에 크게 변화된 서울은 낯설음의 대상이 되었지만, 저자의 글을 통해 잠시 나만의 추억에 젖어들 수 있었다. 이제는 뉴스를 통해서 접하는 모습이 대부분인 서울의 모습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 동안이라도 서울의 옛 모습을 반추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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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고향' 하면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피는 곳,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등을 떠올린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고향'이라는 키워드로 이미지를 검색하면 위와 비슷한 농/어/산촌 풍경이 나온다. 누군가가 "고향에 간다"고 하면, 도시가 아닌, 상대적으로 덜 발전된 비도시지역으로 갈 것만 같은 선입견이 있다. 도시화율이 8-90%에 달한지도 꽤 되었고, 나를 포함한 내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에서 태어났음에도, 여전히 고향에 대한 이미지는 비도시지역에 대한 낭만적 시선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이는 삭막하고, 현실적인 공간으로서 도시의 이미지와의 대조를 통해 드러난다. 이로 인해 도시를 고향으로 삼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향이 없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 *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고향'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서울과 같은 도시의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고향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에 대한 반발로서, 비록 삭막하고 현실적이지만, 이러한 도시 공간에서 나고 자랐던 사람들의 장소에 주목한다. 즉, 고향이 도시인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낭만적인 감정을 표할 수 있도록 사고의 전환을 제안하는 것이다. 도시도 고향이 될 수 있고, 그러한 고향을 낭만적으로 회상하면서 고향의 여러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자는 것이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라서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는 저자는, 자신이 경험했던 여러 서울의 장소들에 대한 느낌, 생각 등을 풀어낸다. 저자는 지리학을 전공한 학자이고, 지리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장소감, 장소 애착 등을 자신의 개인 서사에 적용하여 에세이를 저술하였다. ![]() 책에서 인상깊게 본 점을 꼽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저자가 자신의 일상적인 장소 서사를 디테일하면서도 생생하게 풀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비단 지리학자여서 장소에 관심이 많다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경험한 장소에 대해 세밀하게 관찰하고 느끼고 기록을 꼼꼼히 하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동네에서 경험한 저층 주택과 골목길, 마트의 다양한 물건 전시 풍경, 아파트의 수직감과 엘레베이터에 대한 감정 등 '고향'으로서 월계동에 대한 여러 추억을 들려주면서 독자에게 간접 경험을 제공한다. 또 서울의 종로 일대의 여러 장소 경험과 느낀점, 남산 서울타워를 바라보기 좋은 자신만의 시선, 홍대, 영등포, 강남 등 서울 내 여러 장소에 대한 경험, 생각 등을 생생하게 제공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장소 이야기들은 주관적이다.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 있었더라도, 다른 경험과 감정을 느낀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생생한 장소 이야기들은 그곳을 경험하지 않은 독자일지라도 마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저자는 당시의 신문기사,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을 인용하거나 학문적 개념틀을 가져오면서 장소를 더욱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 그땐 군것질이 주요 일상활동이다보니 자연스레 마트에 관심이 쏠렸다. 지하로 내려가면서 곰팡내와 시원함이 짙어지는 조명 없는 통로의 바닥에 당도해 두꺼운 유리문을 열면 통로의 어둠과 대비되는 밝은 공간에 자리한 마트를 마주하게 된다. 비좁은 구멍가게와 달리 산뜻한 마트 진열대에는 과자들이 소담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 이 밖에도 구멍가게에서 보기 힘든 신선한 채소들이 웅크린 파란 조명의 진열용 냉장고와 신선도가 최상임을 알리는 붉은 조명의 정육 코너 그리고 깔끔한 계산대까지 유치원생의 작은 동공을 가득 채운 마트의 풍경은 마치 20세기 초 문화비평가 발터 벤야민이 소비사회의 환등상으로 기능한다고 본 백화점, 카페, 아케이드와 그 속에 배치된 상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p.43-44) 이후 북촌의 심장부로 들어가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대인 1997년 겨울,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친구를 따라가면서였다. (...) 가파른 길을 올라가느라 헉헉거리던 우리는 중학생답게 욕을 내뱉으면서도 후에 널리 알려지게 된 북촌의 독특한 풍경에 눈길이 갔다. 긴 역사의 시간에 눌려서인지 건물이 낮고, 그래서 따스해 보이는 한옥과 양옥들이 줄지어 늘어선 형태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나는 서울이 고향이라 명절 때 부모님을 따라 시골에 내려갈 때를 빼고는 '근대도시 서울'에서 빌라나 아파트만 보다가 시골에 있어야 할 한옥들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에 인지부조화를 느꼈고, 북촌의 풍경은 그만큼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p.139-140) 삼각지역 근처 명화원에서 탕수육에 고량주를 곁들이거나, 원대구탕집에서 대구탕과 청하를 먹고 약간 알딸딸한 상태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타워가 예뻐 보이고, 예쁜 타워가 당신에게 다가올 듯 감질나게 한다. 아직 음주량이 애매하면 이태원로를 따라 올라가다 경리단길의 아무 펍에나 들어가 몇 잔 더해 술렁술렁한 상태가 되고서 늦은 밤까지 열려 있는 경리단길 터줏대감 스탠딩커피에서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마시면서 타워를 응시하는 두 번째 옵션이 있다.(p.153) 처음 홍대에 갔을 때는 미로 같은 골목들이 익숙하지 않아 2호선 홍대입구역에 내려서는 홍대 정문 방향의 대로인 홍익로를 따라 곧바로 올라가 홍대 정문에서 한숨 돌리고서는 빨간색의 낮은 건물 두 채와 마당 같은 주차장에 오래된 나무들이 있던 극동방송국쪽으로 내려가는 직선형의 걷기를 했다. 가는 길에는 지금은 거의 사라진 수입 앨범을 파는 레코드 가게가 군데군데 있었다.(...) 처음에는 큰길을 따라서만 걸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골목길들을 지나게 되었다. 그제야 골목마다 자리 잡은 옷가게며 미술학원이며 카페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눈에 듼 것은 '홍대 거리'였다. (p.214) 둘째, 저자는 비판적 사회이론으로 서울의 여러 장소와 공간을 바라본 이야기들을 정리한다. 저자는 도시와 사회를 연구하는 지리학자로서, 자신의 사회과학자로서의 비판적 시선을 책 곳곳에서 드러낸다. 그렇다고 이 책이 학술 저서나 논문까지는 아니기에, 엄밀한 학문적 틀로만 책을 쓰려고 하지는 않는다. 대신 젊은 시절 치기로 했던 생각과, 그 생각이 최근에 변화하는 과정을 진솔하게 털어놓기도 하면서, 한 장소를 다양한 생각으로 바라볼수도 있음을 제안한다. 한 장소에 대해서 자신의 시선을 가감없이 드러내면서도, 다양한 생각들이 활발하게 논의되길 바라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고교, 대학 등의 시기에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글을 쓰고 생각을 타인과 소통해 온 것으로 보인다.
고작해야 네 명이 들어갈 수 있고 춤도 추기 힘든 코인노래방이라는 '찻잔 같은 공간'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더 다양한 사회적 공간에서의 마주침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세대 간 대화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언젠가 그들이 자신의 공간 서울에 대한 기억을 나열하는 순간이 왔을 때, 회상할 공간이 고작 학교, 학원, PC방 그리고 코인노래방 정도라면, 우리 세대가 청소년 세대에 공감하고 그들과 연대하는 데 실패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부분은 학교 밖에서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 기존 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 다시 말하자면 아랫세대 스스로 '삶의 주어'가 되는 데 필요한 새로운 의미와 방향성을 학교와 학원 공간에 불어넣는 것도 유연하게 고려해야 한다. (p.38) 개발 규제를 강화하거나 임대료 상승 속도를 조절하는 등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제도적 고민들은 정부와 학계에서 이미 활발히 논의되어왔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지점은 자본이 차린 근사한 공간에 손님으로 방문하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충분히 성찰했는지 여부다. 현재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된 지역들은 초기에 갖고 있던 지역적 차별성이 묽어지고 있다. 상징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먼저 발생한 망원동 지역의 티라미수 전문점이 익선동이나 샤로수길에서도 동일한 망원동 이름을 달고 개업한 사실을 보면 이들 지역 간의 차이는 없어 보인다. 골목길, 담장, 저층주택과 같은 지역을 낭만화하는 요소들도 더 이상 차이를 만들기보다는 이미 완료된 젠트리피케이션 지역 간의 공통적인 물질성으로 인해 진부함을 주고 있다. 역설적으로 서울의 다른 지역들과 구별되던 차이가 사라지면서 익선동, 연남동, 망원동처럼 고유의 이름을 가진 동들은 '기타 동동'으로 동질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p.127-128) 한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인데도 불구하고 바드고데스베르크가 테러분자들의 소굴로 낙인찍힌 것처럼 서울 시민들은 대림동을 범죄도시로 낙인찍고 있다. 아랍어 간판들이 즐비한 풍경을 보며 불안감을 느끼는 독일인들처럼 대림동에 걸려 있는 중국어 간판을 읽지 못하는 우리는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 오해들이 쌓여 타자화의 씨앗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바이로이트에서 겪었던 인종차별 세트는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기분 더러운 순간이었다. 그 더러운 기분을 느긴 내가 그동안 개념 없이 내뱉었던 '짱깨'라는 소리를 혹시 지나가던 중국인이나 중국 동포가 듣고서 내가 타국인 독일에서 참았듯이 그들도 타국인 한국에서 참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낯이 뜨거워졌다. 민족, 국적, 인종과 상관없이 모두를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하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실현하기 위해 칸트의 책을 읽거나 머나먼 아디스아바바까지 직접 갈 필요는 없다. 2호선을 타고 대림역에 내리면 된다.(p.258) 2000년대 구룡마을과 타워팰리스를 나란히 비춘 사진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 사진을 처음 보았던 20대 초반의 나도 이제는 고어가 되어버린 '천민자본주의'를 들먹이며 체제를 비판하고, 분노했다. 2010년대가 지나서도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천민자본주의는 아직은 현대어로 남아 있어야 할 것 같다. 한편 사진 속 장소를 실제로 가보니 체제 비판적인 시선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지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2000년대의 사진 속 구룡마을을 타워팰리스와 비교하면서 이곳은 불평등의 산 증거이자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이 아니라고 인식했다. 그런데 사람이 살지 못할 것 같은 이 마을에서는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 더불어 지금 당장 구룡마을이 사라지기보다는 냉커피를 내주신 아주머니처럼 마을에 머무르길 원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해 마을이 마을답게 유지되도록 지원(화재 예방, 시설 개선 등)하는 것도 '진보'라고 생각한다.(p.318-319) 개인적으로 서울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저자의 장소감을 직접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어서 아쉬웠다. 하지만 나 역시 부산이라는 도시에 살았기 때문에, 저자와 비슷한 시선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나만의 장소를 연상하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저자가 '남산 서울타워에 올라가보지 못한 가짜 서울 사람'을 이야기할 때, 나는 '해운대에서 수영도 안 해본 가짜 부산 사람'이라는 말을 주변에 종종 했던 것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태어나고 자란 월계동, 광운대 일대를 강남의 다른 동네 친구들이 낯설어하는 모습은, 내 고향 부산 수정동에 대해 다른 부산 친구들이 낯설어했던 기억과 동일해서 반가웠다. 저자가 남산 서울타워를 멀리서 바라보기 좋은 장소를 추천할 때, 나는 부산타워나 민주공원의 충혼탑이 바라보이는 장소들을 떠올려 보았다. 해당 도시 하면 떠오르는 랜드마크나 대표 장소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롭게 기억하는 장소라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가 종로의 아상블라주를 논할 때 나는 남포동과 국제시장의 아상블라주가 연상되었고, 또 저자가 여러 서울 장소에 대한 '공간정의' 시선을 보이는 것은 내가 수정동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보이는 부산항의 추억의 경관이 고층 건물과 주상복합으로 덮여가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과 유사했다. 저자만큼 다양한 장소 경험과 감각이 없었던 것 같아서 책으로 쓸 정도는 아니지만, 나 역시도 과거 장소 경험에 대해 회상해보고, 또 생각이 날 때 정리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와 유사한 시기에 서울의 장소를 공유하는 이들이 보면 공감할 얘기가 많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장소를 기억하는 방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요즘 더 반가운 이름 서울. 작가처럼 나의 고향도 서울이고, 학교친구와 동료등 다양한 친구들과 줄기차게 많이도 돌아다닌 서울의 곳곳을 떠올리며 이 책을 열었다.
저자의 고향 월계동에서 시작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작가는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책에 담았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이 상세히 기억되지 않고, 가장 중요했던 사건들 위주로 떠오르기 때문에 또렷하지 않은 기억들은 더 흐리다. 그래서 작가의 세밀화를 그리듯 표현된 상황, 공간의 추억들이 참 신기했다.
백화점과 의류 브랜드의 추억 학생 시절 학교 주변에 로데오타운이 크게 있어서 항상 구경 다니기에 바빴다. 그 당시 인기 있고, 가수나 연예인 협찬이 많았던 브랜드 STORM, BOY LONDON, NIX, YAH, TEX REVERSE, 安全地帶, GUESS등의 브랜드 제품 하나 사려고 용돈을 모으던 추억이 떠올랐다.
장소 애착과 장소 상실 사이에서 특히 대중 산업이 발달하면서 장소가 획일화되어 장소의 고유성이 사라지는 장소 상실의 과정(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주목한다. 애착을 느끼던 장소가 성격이 바뀌고 끝내 사라지는 과정을 목격하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사진 찍는 걸로 충분할까 싶다가도 결국 사진으로라도 남겨야지 마음먹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77 내가 살던 곳도 재개발되었다. 그래서 장소 상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살던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내가 기억하는 추억의 흔적들이 사라지는 순간이 왔었다. 오래되고 노후된 아파트였지만, 나의 어린 시절의 풍경인 그곳이 헐리고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섰다. 나의 추억 속 그 장소는 이제 흐릿한 사진만큼이나 기억에서 퇴색되었다.
아상블라주 종로 아상블라주는 공간적으로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형성된다. 즉 아상블라주 종로는 종로의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것과 더불어 다양한 세대가 갖고 있는 기억의 시간층들이 뒤섞이고, 새롭고 오래된 장소와 공간들이 교차하고 겹쳐지면서 다채로운 거미줄을 끊임없이 뿜어낸다. 101 작가의 종로 추억에 나의 추억도 꺼내고 싶었다. 종로에 대형 서점들 다니는 재미, 크기만큼 다양한 서적에 볼 것이 많아 시간가는줄 모르는 곳이었다. 그림에 관련된 수입 서적을 사러 가기도 했었는데, 어렴풋한 기억의 피카디리극장? 타워레코드 모두 만남의 장소였다.
근대도시 서울의 예스러운 한옥들 북촌, 빌딩 숲으로 빽빽한 서울에서 찾을 수 있는 고즈넉함에 북촌을 종종 갔었다. 바쁘게 움직이다 들어간 카페에서 찾은 여유가, 북촌에서는 공간의 여유까지 이여 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곳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어 예전만큼의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었던 기억이 있다.
정치인의 야욕과 지역의 개발 욕망이 뒤얽히면서 사회적 약자들이 그 공간에서 배제되는 공간적 부정의가 발생한 데 대해서는 여전히 비관적인 입장이지만, 이왕에 만들어진 DDP가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바람이다. 177
한때 크게 이슈가 되었던 동대문의 개발과정. 동대문시장을 구경하고 나오면 동대문 운동장 주변의 노점들에서 허기를 채웠다. 음식의 종류도 당양하고, 생활용품부터 없는 게 없던 동대문운동장. 2007년 철거되면서 노점들이 없어지고 2014년 동대문디자인 플라자가 들어섰다. 처음엔 참 아쉽기도 하고, 젊은 시절의 추억을 도려낸 듯 안타까웠지만 DDP가 된 그곳에서 공간의 쉼과 변화를 경험하니 새로웠다.
신촌 홍대 이대 이대생들이 있는 이대보다 그 대학의 '앞'에 누빌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201
처음엔 신촌에서 이대, 홍대로 점점 만남의 장소가 바뀌었다. 볼거리 놀 거리가 많아서 추억도 많았던 곳, 신촌의 타워 레코드나 민들레영토가 만남의 장소였다. 그리고는 예쁜 숍과 카페를 찾아 이대로 넘어가 즐기기도 했다.
영등포구 구로구 한 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연인의 젊은 얼굴 237 구로공단에서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뀐 곳, 항상 지나치기만 했다가 잠깐 일을 하게 돼서 들렸었다. 정치적인 이야기는 잘 알지 못했지만, 짧았던 그곳에 회사 생활이 나름 즐거웠던 추억이 남았다.
오랜만에 서울의 곳곳을 여행했다. 정말 좋아했던 대학가 홍대, 신촌, 이대에서 친구들과의 추억. 피카디리에서만 개봉한다고 굳이 가서 봤던 영화들 퇴근 후 한잔 즐기던 연남동과 홍대, 쇼핑을 즐겼던 북촌, 영등포, 동대문, 대학로 등등 서울의 곳곳에서 핫한 시절을 보냈고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 책으로 한순간에 다녀온 듯 기분 좋은 피로감에 쌓였다. 사실 개발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이 곳곳에 있었고, 함께 분노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 양날의 칼의 존재하기에 개발된 이후라면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잘 어우러지는 곳이기를 바란다. 많은 시간이 흘러 삭막했던 기억들보다는 즐거웠던 추억이 떠올라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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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서울엔"은 82년생 서울내기가 낭만하는 기억과 장소들이라고 친절하게 씌여져 있지만... 다 읽은 나로서는 낭만보다 에스프레소 더블샷 버금가는 쓴 맛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서울이 이렇게 로맨틱했나?'로 시작했어도 현 상황이 너무 깝깝해서인지 종로고 신촌이고 강남이고 죄다 씁쓸하고 아쉽고 그랬다.
여기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저자의 시니컬한 문체가 큰 몫을 했다고 본다. 그 시니컬함이 꽤나 매력적이고, 도시지리학자로서의 관점도 흥미로운데다 사회과학적 분석도 수긍이 가서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는 게 또 굉장히 묘~했다.
나는 서울이 아닌 수도권이 고향이지만, 대부분의 생활을 서울에서 했기 때문에 나의 심적 고향은 서울에 가깝다. 신기하게도 저자와 비슷한 시대를 겪었고, 같은 학번을 달고 대학시절을 지나와서 저자의 어린시절부터 훑어온 그 시절 서울의 모습이 무척 반가웠다.
물론 저자의 기억 속 서울 모습 중 내가 기억하는 건 극히 일부분이라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에서는 아주 자주 '나는 대체 뭐하고 살았나' 라는 자책 아닌 자책을 하게 됐지만ㅋ 게다가 현재 서울의 핫플레이스를 말해줄 때 조차도 내가 안 가본 곳이 많아서 랜선여행 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읽다보면 나는 정말 빼박 집순이구나...인정하게 된다.
책의 내용이 꽤나 실해서 나는 좋았다. 두께는 여느 다른 책들과 비슷한데, 뭔가 꾹꾹 눌러담아서 쓴 책 마냥 읽는데 꽤나 오래 걸렸다.
내가 기억하는 서울의 옛 모습을 누군가도 추억하고 있다는 게 참 기분 좋았다. 책을 읽다가 혼자 피식거리며 웃고, 갑자기 친구한테 카톡 보내서 '너 이거 기억나?' 하면서 추억여행 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내가 기억하는 서울은 따뜻한 면도 참 많았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 '젠트리피케이션', '재개발' 같은 용어들이 난무하는 쌀쌀맞은 도시가 되어버렸다. 슬픈 현실이다.
-p.175 우리도 가끔은 구제옷이나 보세옷을 사 입듯이 서울의 어느 공간은 좀 헐겁고, 편하고, 무릎이 늘어난 채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걸까?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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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인 ‘저자’와 70년생인 ‘나’사이에는 12년이란 간극이 있다. 책을 읽기 전, 뛰어넘을 수 없는 ‘세대차’가 있어 많이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저자가 낭만하는 기억과 장소들을 나 또한 공유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반가왔다.
저자가 10대~20대에 향유했던 그 시공간을 나는 20대~30대를 통과하며 보냈다. 젊은 시절 주무대였던 종로, 대학로, 신촌에 관한 저자의 글을 통해, 나 또한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었고, 이제 사라져 버린 장소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드라마 질투에 나왔던 편의점 편을 읽다보니,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중학생 때 학교 근방에 처음으로 롯데리아가 생겼고, 친구를 따라 햄버거를 먹으러 갔었다. 햄버거도 생소하고 외식이라는 것을 모르던 때라, ‘롯데리아’ 매장에서 어쩔 줄 몰라 쭈뼛대고 있었다. 나의 구원자는 이런 곳을 많이 다녔던 세련된(?) 친구였고, 친구와 동일한 주문을 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했던 생각이 난다. 이 쭈뼜거림과 당황스러움은 오늘날 롯데리아 무인주문기(셀프오더)를 사용했을 때 다시 한번 경험해야 했다.
아상블라주 종로와 관련하여 말하자면, 가장 친숙했던 장소이다. 시사회를 포함하여 일주일에 한 두편의 영화를 보러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를 드나들었고, 종로서적, 영풍문고, 교보문고는 만남의 장소였다. 그리고 피맛골과 인사동거리는 친구들과 거나하게 술 한잔을 하던 곳들이다. 요즘은 어떻게 변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낙원상가 쪽은 ‘혼자’서는 가지 않았던 곳인데.... 돼지머리와 음식냄새로 기억되는 곳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30년 가까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서울 촌놈이란 말이 딱인데, 시골 사람 다 가본 OO타워 전망대는 한 곳도 가지 않았다. 그 비용을 지불하고 볼 만큼은 아니라는 게 지금까지의 이유지만, 막상 본다면 꼭 가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의 생활반경은 의외로 한정적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가보지 못한 장소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표적인게 책에도 소개된 ‘대림동’이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영화만 보고 대림동을 ‘범죄도시’로 낙인찍은 사람중 하나이다. 반성중 ^^;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생각은 각자 다르겠지만 ‘내고향 서울엔’이라는 책 덕분에 오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발전하고 변모하는 서울이 좋다. 단, ‘개성’을 잃지 않기를 소망하며, 공무원들이 난개발을 하지않도록, 보존해야 할 곳은 보존되기를 바란다.
퇴근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운동삼아 밤 산책을 나간다.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습관인데, 오늘은 이쪽 길로, 내일은 저쪽 길로 동네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재미가 생겼다. 책 때문인지 몰라도 마음에 드는 우리동네 사진이라도 찍어볼까 한다. 훗날 열어보면 동네의 발전상도 볼 수 있고, 재밌는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