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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은 프랑스 파리의 야수파계 미술연구소에서 새로운 예술성에 눈을 떴다. 사실을 주관적 시각으로 재구성하고 활달한 필치와 자유분방한 색채로 표현해냈다. 대상을 단순화시키고 색채를 강렬하게 구사하였다. 그의 풍경화에는 섬세한 필선, 밝고 고운 색조, 구도의 신선함을 활용하였다 1921년 그가 <개벽(開闢)> 제13호에 발표한 목판화 <개척자>는 한국 근대 판화의 효시의 하나로도 손꼽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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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晶月) 나혜석(羅蕙錫)은 1896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1918년 일본 ‘도쿄여자미술학교’ 유화과를 졸업하고, 1920년에 김우영과 결혼했다. 도쿄에서 유학 중이던 1915년에 잡지 『여자지계』의 발간에 앞장섰으며, 여기에 단편소설 <경희>, <정순>등을 발표하였다. 1920년 『폐허』의 창간호에 참여하였고, 『폐허』 2호에 시 <냇물>과 <사(砂)>를 발표했다. 이후 몇 편의 시와 <규원>(1921)등의 단편소설과 여러 편의 수필을 발표했는데, 주로 여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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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문학읽기 84 나혜석 규원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본 리뷰는 작품의 내용을 담고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읽으실때 주의하시길 부탁드려요 규원은 신가정에 1921년 실린 단편소설로 창간호에서 1회분을 발표하였고 이후 2회분의 예고를 하였으나 속간호가 출간되지 못해 미완으로남았습니다. |
| 규원은 나혜석 작가가 쓴 책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아주 드물게 해외 유학까지 했던 작가이자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혜석은 작품에서도 그런 작가의 경험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흥미롭습니다. 재미있게 읽었고, 결말까지 인상적인 소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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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혜석 작가님의 나혜석 규원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84)를 보고 쓴 글이므로 의도치않은 미리니름이 포함되어 있을수도 있으니 열람에 유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새 나혜석 작가님에게 푹 빠져서 도장깨기를 하고있는 사람입니다. 나혜석작가님은 일제시대에 태어나 활동했음에도 제법 자유로운 해외 체류를 하며 지내셨어요. 또한 당시의 생활상을 실감나게 표현해주셔서 제가 넘 좋아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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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작가님의 나혜석 규원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84)를 보고 작성하는 주관적인 글이므로 의도치않은 개인적인 감상과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주세요. 내용 자체가 엄청 짧고 페이지나 글자 수도 적어서 사실 감상이라고 쓸만한 것이 많이는 없지만 그래도 지호 짜본다면 뭔가 그 시대의 팽배했던 사상에서 작가님이 외치고 싶으신 것을 꼬집어 말한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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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로 그리고 신여성과 자유연애와 독립운동으로 유명했던 여성 사실 작품으로 만나기 보다 역사 속 인물 가쉽 위주의 이야기로 많이 만났던 분이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이 그것도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고하고 생각하라고 계몽하는 작품을 썼다는 것이 어쩌면 잘 알지도 못하고 그 분의 인생에 있어 다른 부분만 부각된 것이 아닌가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좋은 작품들 출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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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려나 빌어먹어도 자식들하고나 같이 빌어먹으려고 40리나 되는 철원으로 가서 길에서 놀고 있는 우리 순영이를 훔쳐 가지고 다시 주막 있던 집으로 왔지요. 우리 집에서 나올 때에 아버지 몰래 어머니가 쌀 판 돈 3원을 집어 주셔서 그것으로 밥값을 치르고 있었으나 그까짓 것 쓰려니까 얼마 되나요. 열흘도 못 가서 다 없어졌지요. 할 수 있나요. 그때부터 그 집 바느질도 하고 아이를 거두어도 주고 하며 세 식구 얻어먹고 지냈지요. 여보 말씀 마시오. 제법 어디 가 더운 밥 한술을 얻어먹어 보아요? 뭇상에서 남는 밥찌꺼기나 해가 한나절이나 되어서 겨우 좀 얻어먹어 보지요. 시골집이라니요. 여편네라도 허리를 못 펴고 다니지요. 단칸방에서 주인 식구 다섯하고 여덟이 자면 평생에 어디가 옷고름 한번을 풀어 보고 다리를 펴고 자 보리까. 알뜰히도 고생도 하였지요. 그나마도 가라면 어쩝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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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편 구석에 담배 물고 시름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앉은 부인은 어떻게 보면 거진 사십쯤 되어 보이고 어떻게 보면 겨우 삼십이 넘어 보인다. 어디인지 모르게 귀인성이 있어 보임직한 얼굴에는 얼마만한 고생의 흔적인지 주름살이 이리저리 잡혀진다. 거기다가 분을 좀 스친 모양이라 햇빛에 그을어 꺼무죽죽한 얼굴빛에 겉돌며 넉사 자 이맛전에 앞머리를 좌우 평행으로 밀기름에 재어 붙이고 느짓느짓 땋아 느짐하게 길쭉이 쪽을 지어 은비녀로 꾹 찔러 놓은 것이며 모시 적삼 화장은 길쭉하여 손등을 덮고 설핏한 모시 치마에 허리를 넓게 달아 느직하게 외로 여며 입은 것은 아무리 보아도 서울 부인네가 아닐 뿐 아니라, 어디인지 모르게 고상하게 보이는 것은 예절 있는 양반의 집에서 자라난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여러 부인네들은 아기들 앞으로 와서 어르고 만져 보나 다만 홀로 이 부인만은 아무 말 없이 멀리 건너다보다가 흥 하고 이상한 코웃음을 한번 웃고 눈을 내리깔며 반도 타지 않은 담배를 옆에 있는 재떨이에 놓고 허리를 굽혀 마루 아래 대뜰에다 탁탁 털며 이상하게 슬픈 기색을 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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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스물 다섯살인 ?갓흔 나이에 세상 쟈미(滋味)를 다 버리고 죽은이도 불상하거니와 녀편내가 三十[삼십]도 못 되여 혼자 되니 그 신셰야 말할 것 무엇잇게소. 오작 방졍마저 뵈엿스릿가. 왜 그런지 모든 사람이 이몸을 모다 박복한 년으로 보난 듯 십허셔 엇지 붓그러온지 혼자 된 후로 난사람을 치워다 보지를 못하고 지내왓지요. 친뎡(親庭) 오라버니가 보러 오섯난대 하야케 소복(素服)을 하고 보기가 엇지 붓그럽든지 모닥불을 퍼붓난것 갓하야 즉시 얼골을 들지 못하엿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