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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형님에게 칼을 던진 것이 정통을 때렸으면 그자리에 엎어질 것을 요행 뜻밖에 몸을 비켜서 땅에 떨어질 제 나는 다르르 떨었다. 이것이 십 오 성상을 지난 묵은 기억이다마는 그 인상은 언제나 나의 가슴에 새로왔다. 내가 슬플 때, 고적할 때, 제일 처음 나의 몸을 쏘아드는 화살이 이것이다. 이제로는 과거의 일이나 열 살이 채 못된 어린 몸으로 목도하였을 제, 나는 그 얼마나 간담을 졸였던가. 말뚝같이 그 옆에 서 있던 나는 이내 울음을 터치고 말았다. 극도의 놀람과 아울러 애원을 표현하기에 나의 재쭈는 거기에서 넘지 못하였던 까탁이다. 부자간의 고롭지 못한 이 분쟁이 발생하길 아버지의 허물인지 흑은 형님의 죄인지 나는 그것을 모른다. 그리고 알려 하지도 않았다. 한갓 짐작하는 건 형님이 난봉을 부렸고 아버지는 그 비용을 담당하고도 터 보이지 않을 만치 재산을 가졌건만 한 푼도 선심치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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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는 부계로의 가계존속을 이념형으로 하므로 형제관계를 중심으로 한 수평적 관계보다는 가계계승과 관련한 수직적 관계를 중시한다. 그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상속제도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적출(嫡出)의 장자(長子)가 집을 계승하며 차남·삼남은 혼인 후 얼마간 부모와 동거하다가 분가한다. 이 때 분가는 단순히 가족의 수적 분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손에게 물려줄 새로운 ‘집’의 창설을 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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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8월 말이다. 스물두 살의 청년은 늑막염이었다. 청년은 유산을 틀어쥐고 앉은 고향의 형에게 치료비와 생활비를 보내달라는 간곡한 편지를 썼다. 그때 청년은 둘째 누나 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형은 고향에서 술과 난봉질로 가산을 탕진하고 있으면서도 병석의 동생이 보낸 구조 요청을 외면했다. 겨우 몇 푼 보내주는 시늉을 하고서는 입을 씻은 것이다. 둘째 누나와 동거하고 있던 정 씨(鄭氏)가 청년에게 형님이 재산을 탕진해버리기 전에 재산분할을 정식으로 청구하라고 옆에서 부추겼다. 거기다 잘 안다는 법률사무소까지 소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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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다름에서 출간된 김유정 작가의 형(근현대한국문학읽기94)를 읽고작성한 리뷰입니다. 본 리뷰는 작품의 내용을 담고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읽으실 때 주의하시길 부탁드려요 그동안 읽었던 작품들은 그래도 이름이라도 한번은 들어봤었는데 이작품은 정말 처음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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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그래서 더 와닿는 천석지기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많은 형제들 중 거의 막내들에 끼어있고 그리고 양친을 10살이 되기전에 다 잃은 그래서 부유한 삶에서 사실 어린시절 삶이라 그렇게 부유한지 본인은 어렴풋이 기억에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그의 어린시절 눈으로 본 것을 성장해서 소설로 남긴 그래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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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떡 사먹을 돈이나 주려는가 하여 맥모르고 마주보고 웃어 주었으나, 좀 영리하였던들 이자식은 르면 나의 뒤를 받들어주려니 하는 그의 애소임을 선뜻 알았으리라. 효자와 불효를 동일시하는 나의 관념의 모순도 이때 생긴 것이었다. 형넘이 아마지의 속을 색였다고 그가 애초부터 망골은 아니다. 남 따르지 못할 만치 지팍히 효성스러웠다. 아버지에겐 토지가 많았다. 여기저기 사면에 흩어진 전답을 답품하랴 추수를 하랴 하려면 그 노력이 적잖이 드는 것이었다. 병에 자유를 잃은 아버지는 모든 수고를 형넘에게 맡기었다. 그리고 형님은 그의 뜻을 받들어 낙자 없이 일을 행하였다. 물론 이삼백 리치 걸어가 달포씩이나 고생을 하며 알뜰히 가을하여 온들 보수의 돈 한푼 여벌로 생기는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들과 마주앉아 추수기를 대조하여 제대로 셈을 따질 만치 엄격하였던 까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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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서술한 자전적 소설이라서 그 내용이 상당히 진지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유정은 천석지기 지주 집안의 2남7녀 6째로 태어나 7살에 어머니를 9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래서 평생을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처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9살의 어린 김유정이 형과 아버지에 얽힌 이야기를 어린 시선으로 서술한 이야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