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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 때문에 얻은 이익은 지극히 컸다. 지금껏 온갖 약품이며 기계를 독일에서 수입하던 것이 독일과 국교 단절을 한 관계상 자작자급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서 과학계의 발달이 놀라웠다. 유럽에서는 전쟁으로 덤비느라고 일용품조차 제 나라에서 만들지 못하는 관계상 미국이며 일본등에 주문하여다가 쓰게 되니만치 무역상의 이익이 놀랍게 되었다. 해운으로 굴러 들어온 돈도 막대하였다. 위체 관계로 얻은 이익도 막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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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5월에는 ‘선구녀(先驅女)’, 1941년 2월에는 ‘진주름’이라는 제목으로 《문장》지에 발표되었다. 관리의 소실인 퇴기(退妓)의 몸에서 태어난 연실은 어릴 때부터 남녀관계가 문란한 환경에서 자란다. 소녀시절에 그녀는 일본어 개인교사에게 정조를 빼앗기지만, 남자와 여자는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이려니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동경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는 연실은 여성계의 선구자가 될 것을 결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봉건의 굴레에서 벗어나 몸소 자유연애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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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다름에서 출간된 김동인작가의 선구녀(근현대한국문학읽기98)를 읽고작성한 리뷰입니다. 본 리뷰는 작품의 내용을 담고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읽으실 때 주의하시길 부탁드려요 김동인작가의 선구녀는 무엇을 선구하는사람이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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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年 5月 <文章> 2集에 發表한 金東仁의 短篇小說. 西洋 文明의 겉물을 핥은 또 그 겉물을 연실 이는 핥았다. 아무 속살도 모르고 但只 겉만 흉내 내면서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이렇게 나날이 向上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속 알맹이는 그 몇 해 前 '베개를 내려오라'면 내려오던 그 時節에서 한 걸음도 進展된 바 없었다. 朝鮮 新文化는 大槪 東京 留學生의 힘으로 建設되었고 文化의 第一 過程은 自由 戀愛였다. 연실이가 將次 朝鮮에 돌아가면 建設하려던 朝鮮 新文學은 연실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아직 東京 留學할 동안에 싹이 트기 始作하였다. 李古周라는 靑年 文學徒가 彗星과 같이 나타났다. 이 靑年 文學徒가 文學이라는 武器를 利用하여 처음 부르짖은 것이 自由戀愛였다 이 現象은 연실이로 하여금 더욱더 戀愛와 文學은 不可分의 것이라는 信念을 굳게 하였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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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이 환경이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라 연애나 사랑에 대해 깊게 배운 것이 아니라 이른 바 안 좋은 환경을 곧이 곧대로 배우면서 연실이가 선구녀가 된다는 것이 자유연애등 사실 그 당시에 자유연애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겠다는 것이 지금보다 더 어려울 시기였기에 연실이 인생이 결코 평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누구도 다 알 수 있는 그래서 아프기도 하는 이야기다 김동인이 그린 그 시대의 이야기다 |
| 김동인 작가의 소설인 선구녀를 읽었습니다. 한국의 토속적인 풍토 등 한국적인 요소를 많이 사용하면서도, 그런 요소가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며 그런 요소에 대해 잘 모를 현대 한국인 독자도 재미있게 읽으며 공감하게 되는 작품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기승전결 내내 이야기가 전개되고 진행되는 동안 몰입도가 낮아지거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없다시피 한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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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쟁의 여파가 온 세계에 가지가지로 일어나는 가운데 자유주의의 나라인 미국이 던진 몇 개가 꽤 세계를 소란하게 하였다. 이 가운데 민족자결주의라 하는 여파는 조선반도도 한동안 흔들어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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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을 한 장의 편지도 않던 딸에게 갑자기 뒤따라 편지를 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곡절이 있었다. 연실이에게 시집을 가라는 것이었다. 신랑의 나이는 연실이와 동갑, 소실의 자식이나 사람 똑똑하고 한 300석내기 물려받을 것도 있고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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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명의 겉물핥기 ─ 이삼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도리우치를 쓰는 학생이 없었고 금단추 이외에는 쓰메에리가 쉽지 않았고 학생은 세비로를 안입던 동경이 갑자기 변하여 십팔구 세만 되면 세비로 한 벌은 장만하고 여학생들은 새빨간 하오리를 휘날리고 여자 양복도 드문드문 보이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