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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의 한국에 대한 상반된 행보가 엇갈리면서 남북화해론에 대한 무용론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은 남북 모두에게 공멸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기에 화해론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출간한 『남북화해론』은 남북화해에 대한 담론과 함께 남북화해의 기원을 다루고 있다. 남북화해의 역사는 크게 데탕트 시기의 화해, 탈냉전 공간에서의 화해, 햇볕 대 선군 시기의 화해, 문재인 정부 시기의 화해로 구분지을 수 있다. 이 저서는 데탕트 시기의 남북화해, 즉 1970년대를 전후로 한 남북화해를 역사적으로 이해하고,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1970년대 초기 남북화해의 기원, 전개, 쇠퇴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사실 1970년대 남북화해에 대한 모색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다소 의외로 느껴질 수도 있다. 19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로서는 그 시기에도 여전히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친 이승복에 대한 영화를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하였으며,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해돌이의 모험』, 『333 특공대』와 같은 반공만화를 읽고 숙제로 독후감을 써야 할 정도로 투철한 반공의식이 강조되었다. 또한 오늘날에도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감안한다면 1970년대에는 얼마나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었는지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기에 남북은 왜 화해의 방안을 모색하게 된 것일까?
우선 국제적 환경의 변화에 따른 외인론을 들 수 있다. 즉, 당시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간의 데탕트 구조에 적응하기 위한 것으로서 대(大)데탕트에 편승한 소(小)데탕트의 추구 차원에서 남북화해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또한 독재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남북대화 카드를 활용했다는 내인론 역시 힘을 얻고 있다. 박정희 정권이 1972년 10월 유신을 단행하면서 통일의 기반을 확실히 다지기 위한 주장을 성립시키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또한 진보적인 통일논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라는 의견과 북한이 1960년대 후반 높은 군사비 부담으로 인한 경제성장의 제동에 따라 긴장완화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심지어 외인론과 내인론을 절충하여 자극은 외부로부터왔지만 약소국이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나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남북화해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언급하면서 구체적 사안과 동기에 초점을 맞춰 이 시기의 남북화해를 설명한다.
우선 저자는 숙적과 화해라는 개념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데탕트 시기의 남북화해를 폭넓은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우선 숙적관계를 "두 국가가 모두 규칙적으로 군사 위협과 군사력을 사용하며, 군사적 관점에서 외교정책을 형성하는 양국 사이의 관계"로 정의한다. 또한 숙적의 관계에서 화해를 감정적, 인지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국가 차원의 긴장을 완화하고, 외교협상으로 현안에 대한 타결에 접근하며, 비정치 분야에서도 교류협력을 진전시키는 과정으로 설명함으로써 실제 데탕트 시기에 진행된 남북화해의 흐름을 이에 대입하고 있다. 또한 화해의 담론으로 인식과 전략의 이중 구조라 말하는 대목은 데탕트 시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남북화해의 현실을 보여준다. 환경과 행위자의 변화가 인식가 전략의 변화를 가져오며, 인식과 전략의 변화 없이 지속과 안정을 기반으로 하는 숙적관계는 변화하지 않는다. - p. 40 ~ 41 中에서 -
앞서 언급한 것처럼 데탕트 시기의 남북화해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외인론이 그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당시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 상황에서 중국과의 화해를 시도함으로써 전세계에 충격을 안겨준다. 특히 지정학적으로 미국, 중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한반도에서는 그러한 상황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었으며, 동시에 남북화해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된다. 아시아 차원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화해가 발생하자,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은 강대국 정치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조바심하게 된다. 강대국끼리의 흥정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한 남과 북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다는 차원에서 모험 반, 호기심 반으로 남북대화의 문을 열었다. - p. 71 中에서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미국의 저의를 파악하기에 전력을 다하였다. 당시 베트남이 공산화되면서 박정희 정권은 불안감에 휩싸였으며 닉슨과 카터는 주한 미군의 감축 내지는 철수를 주장하는 상황이어서 그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미국에 매달리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도 박정희는 이후락을 통하여 북한과 '화해의 기초'를 닦는 것이 미국의 이해에 반하는 것이 아닌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미국은 남북이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고 힘주어 답한다. 사실 미국은 중국과의 화해를 위한 협상에서 중국으로부터 끊임없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받았으며, 나중에는 북한의 김일성이 한국을 건너뛰고 북미 양자회담 및 주한미군 철수를 요청하였으나 미국이 모두 한국과의 관계를 의식하여 거부한 상황이었기에 미국은 한국 스스로가 북한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할 입장은 아니었다.
하비브 대사는 국무부에 전문을 보내 국제환경의 변화와 북한과 경쟁을 구실로 삼아 박정희 정부가 권위주의를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박 정권이 오랜 준비 끝에 유신을 단행했으며, 최소 12년 간 박정희가 정권을 유지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진단했다. - p. 105 中에서 - 당시 주한 미국대사인 하비브의 이러한 분석은 그 시기의 남북화해가 이전에 정의한 화해의 담론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신체계와 유일체제가 완성되는 시점에 남북이 대화에 나선 것도 이례적이다. 정권의 교체 없이 대결에서 대화로 옮아갔다는 점이 데탕트 시기 남북화해의 한 특징이다. (중략) 기존 지도부가 필요에 의해 과거 정책을 버리고 새로운 정책을 채택했다. - p. 170 中에서 -
이러한 점들을 보면 데탕트 시기의 남북화해의 목표가 대화를 통해서 신뢰를 형성하고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편의주의에 있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으며 이는 이 시기의 남북화해의 특징이자 한계였다. 냉전의 와중에 데탕트의 시동을 먼저 건 것은 강대국들이었으며 강대국들 사이의 화해 무드로 한반도의 두 숙적도 새로운 외교노선을 강구한 결과가 바로 데탕트 시기의 남북화해였다. 정리해보면 이 시기의 남북화해의 발생은 외부적인 요소의 충격으로 인하여 발생하였으며 그러한 것에 대한 위험요소 인식에 따른 변화와 전략계산의 변화에 의하여 진행되었지만, 화해의 담론을 외면한 한계로 인하여 화해는 빠르게 소멸된다. 이로 인하여 남북 간 상호위협은 상존하게 되고, 북한은 미국과 직접 접촉으로 목표를 전환하는 변화를 가져왔으며 남한은 외견상 대화를 지속적으로 희망하는 전략을 유지하게 된다.
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1972년 10월 17일 유신이 발표된다. 이러한 한국의 흐름만 보더라도 과연 이 시기의 남북화해가 진정 숙적간의 화해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는지 의심스럽다. 1970년대는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기에 바빴고, 명분과 실리의 주도권 다툼을 벌이면서도 체제 위협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하지 않았던 시기였음을 감안한다면 개인적으로 이 시기의 남북화해는 일종의 정치적인 쇼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남북화해의 물꼬 역할을 하면서 오늘날까지 그 흐름을 이어오고 있으니 이러한 부분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화해론』은 데탕트 시기의 국제 정세와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의 관계의 역사를 짚어봄으로써 오늘날의 남북화해의 기원과 그 의미를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하여 남북화해가 단순히 남과 북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충격 발생, 정치연합의 동학, 위협인식의 변화, 전략적 계산의 변화라는 남북화해의 네 가지 변수는 데탕트 시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정권에서의 남북화해에도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데탕트 시기의 남북화해를 다루고 있지만, 이후의 남북화해를 분석함에 있어서 그 기준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남북화해에 어려움을 겪오 있는 상황에서 충분히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
![]() 한반도 정세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지난 보수정권인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악화된 남북관계가 2017년까지는 북한이 거의 한달 걸러 미사일 실험, 핵실험으로 추정되는 무기 실험 등을 하면서 험악해졌다. 북은 연일 남측과 미국을 비방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관계가 급변했다. 물론 막후에서 북한을 설득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려고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기관에서 많이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2018년 남북 단일팀으로 북한 선수단이 대표팀에 참여했고, 4월 5월, 9월 세 차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사이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백두산을 함께 오르고, 냉면을 먹고 판문점에서 북과 남을 오갔다. 트럼프와 김정은도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북미정상회담을 가졌고,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함께 회동하는 장면도 연출되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의 막후를 공개한 볼턴 보좌관에 의해서 상황이 또 역전되었다) 2018년, 2019년 한반도는 숨가쁘게 달리더니 2020년 들어서 갑자기 냉랭해졌고, 심지어 몇 주전에는 개성공단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해버리는 사상 초유의 일도 발생했다. 우리는 혈세를 쏟아부은 건물이 무너져 내렸으나, 깊은 유감을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의 북한의 행동은 최소한의 예의나 상식도 없는 행위이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폭염은 오고 또 수그러진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을 지나 가을, 겨울이 온다. 한반도에 긴장과 대결의 국면이 가고 평화와 협력의 시대가 슬그머니 찾아왔는가 싶더니 이내 겨울보다 더 차갑고 냉담해졌다. 과거 한반도의 긴장과 대화의 반복된 역사를 기억하는 자는 묻는다. 우리는 전혀 새로운 남북관계의 출발선에 서 있는가? 아니면 반목과 대화의 반복의 굴레에 아직 포로가 되어 있는가?
남북 사이 대화와 협력 분위기의 고조가 2018년이 처음은 아니다. 우리의 역사는 데탕트 시기, 탈냉전시기, 2000년대 초반 등 여러 번의 남북 긴장완화를 경험했다. 이 책은 그 여러 화해의 시도 중 가장 첫번째인 데탕트 시기 남북대화의 전개과정을 고찰하고 있다. 한반도의 현대사는 분단사다. 분단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대결, 반목으로 점철될 수 밖에 없다.
한국은 일제의 36년간의 핍박과 수탈의 역사 후에 잠시 무정부 상태의 미군정, 소련군정이 실시되었고, 이후 남북 따로 정부가 세워진다. 그 뒤 6.25 한국전쟁을 치렀다. 한국전쟁은 애초 내란으로 시작되었으나, 각기 남과 북을 지원하는 외부세력의 참전으로 국제전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리전 같은 성격을 갖게 됐다. 휴전 이후 남한은 미국과 동맹을 맺어 안보를 담보한 후 수출지향 경제성장 정책으로 세계 10대 무역국으로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이 바로 박정희다. 박정희는 군부독재를 바탕으로 빠른 정책 추진과 인권, 민주주의는 뒤로 한 채 권위주의적 성격을 강화해서 70년대 초반 유신체제까지 만들었다. 휴전 이후 부간 역시 대중동원에 의존해서 빠르게 전후 재건을 이루는 한편 그에 못지 않은 속도로 빨치산 이외 정치 세력을 차례차례 무대에서 제거하였고, 대외적으로 소련, 중국과 방위조약을 체결하여 안보불안 문제를 해소하려고 시도했다. 개인숭배, 공산독재, 빨치산의 독주는 외부와 고립이라는 토양 위에서 주체사상, 유일체제로 토착화하였다. 스탈린 체제를 넘어서는 전체주의 성향 체제가 북한에 등장하여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을 거치며 일개 가문에 의한 왕정과 유사한 체제까지 되었다.
남북한 국력은 1970년대 처음으로 역전하여 80,90년대를 거치면서 남한은 무섭게 치고 나갔고, 북한은 고난의 시기에 빠져 결국 지금은 따라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바로 이 시기 1970년대 남북한의 경제가 역전되면서 데탕트 시기의 화해, 탈냉전 공간에서의 화해, 햇볕 대 선군시기의, 화해를 통해 남북화해의 기원, 전개, 쇠퇴의 과정을 추적하면서 어떤 조건에서 숙적 사이 화해가 되었는지, 왜 어떤 화해는 실패로 돌아가고, 성공적인 화해는 또 무엇이 다른지를 알아보고 있다.
표는 데탕트 시기의 남북화해 개요다. 이 책은 이 단계에서 상황별로 자세히 알아보고 있다.
남과 북은 1970년 여름 박정희 대통령의 제안으로 1971년 봄 북한 허담 외상의 제안과 동년 여름 김일성 수상의 제안으로 화해의 가능성을 타진했고, 1971년 여름 양측 적십자사 간 구체적인 대화 제의를 교환하면서 대화의 막을 올렸다. 양 당국자들은 적십자회담, 남북조절위원회 회의의 형식으로 판문점, 서울, 평양을 오가며 대화를 나눴다. 남과 북의 실력자들이 비밀리에 서울과 평양을 방문, 상대 지도자와 회합을 갖기도 하였다. 남과 북이 다른 의제는 정체, 경제, 안보, 통일, 인도주의 등 다양했다.
학자들은 1970년대 남북화해의 원인을 크게 외인론과 내인론으로 구분한다. 외인론은 남북대화의 기원을 환경의 변화로 설명한다. 약소국 환경이 미중화해, 중일수교, 미소 데탕트 등 4대 강대국 공존 체제가 마련되는 가운데 일련의 지역질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남북대화를 시작했다고 본다. 즉, 강대국들의 대(大) 데탕트에 편승한 소(小) 뎉ㅇ트의 추구였다는 것이다. 내인론은 국내 정치 또는 내부 경제의 압력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나도 잘아는 울산 출신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통일의 기반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유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기 때문에 독재 권력 강화를 위해서 이 카드를 활용했다는 주장이다. 외인론과 내인론을 절충하여 구조와 단위에 모두 관심을 기울이는 시각도 존재한다. "세계적 데탕트의 흐름에 우리 나름대로 능동적으로 대처한 정책"이었다면서 환경과 주제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또한 외인론, 내인론을 벗어나서 구체적 사안과 동기에 초점을 맞추는 일련의 연구들도 있다. 예를 들면 윤미량은 북한이 남북대화를 시작한 요인으로 미군철수 촉진, 남조선 혁명 가능성, 경제적 압박의 해소를 들고, 남북대화 중단 요인으로 주한미군 철수 지연, 북미대화로의 방향 전환, 6.23선언, 유신체제의 공고화 등을 들고 있다. 다양한 원인과 영향, 그 후 전개까지 이 책은 샇펴 보고 있다.
이 책은 1장은 이 책의 서론으로 이 책의 주제와 문제의식을 소개하고 있고, 2장은 숙적화해의 출몰을 설명해 줄 이론들을 정립하려는 노력이다. 3장에서는 남북화해 출현에 많은 영향을 준 대외 사건인 미중화해를 추적하고 있다. 4장과, 5장에서는 남북화해의 외연인 한미관계와 북중관계를 살피고 있다.
1970년대 초반 주한미군 감축안은 닉슨 대통령의 괌 독트린 취지의 연장선에 있었다. 미국은 주한민국대사를 통해서 71년 중반까지 1사단 또는 2,000여 명의 주한미군을 감축하겠다는 복안을 알렸다. ---p.85
이 시기 남한 정권은 미군의 철수 또는 감축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만났고, 그에 따른 대북정책과 안보정책의 변화가 필요했다.
미국은 한반도 평화가 동아시아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에서 남북대화를 지지했다. 한국이 주도하고, 미국이 뒤에서 응원하는 그림을 원했다. 박정희 정권은 북한과 힘의 우위에서 대화하기 위해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며, 대북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되면 한국의 대북 협상력이 저해할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미국은 한반도 긴장완화가 미국 의회의 대한 원조 삭감의 빌미를 주고, 주한미군 철수 논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박 정권이 지나친 관계개선을 바라지 않는다고 보았다. ---p.104
60년대, 70년대 기간 중 남과 북의 주요 동맹국이었던 미국과 중국이 어떻게 한반도의 파트너와 상대했는지 관찰하고 있다. 닉슨, 저우언라이, 김종필, 이후락, 알렉세이 코시킨 등 미,중,한,러시아, 북한 등 수많은 역사적 유명인물이 등장하는 것이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이다. 한국 현대사의 또다른 명 장면이라 할 수 있다.
6장에서는 대화 기간 중 완성된 남한의 유신체제와 북한의 유일체제 성립과정을 다룬루고 있다.
7~9장에서는 남북대화의 기승전결을 추적해 본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 같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논문적 성격을 띠고 있고 특히 이 부분을 읽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적용해 볼 또 교착상태에 빠져든 남북한 관계의 국면전환을 위해 읽어볼만 하다.
10장에서는 2장에서 제시된 이론 변수를 중심으로 남북화해의 출현과 쇠퇴를 설명하고 있다. 남북화해의 발생과 쇠퇴 원인을 정리한 것이다.
화해 발생과 소멸시 남북 어디에도 지배연합의 변화는 없었다. 화해를 추동할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정권의 부재는 남북화해의 성격을 규정하였고, 화해의 동력이 상실되었을 때 이를 다시 점화시킬 동력의 결핍을 셜명해 준다.
2020년 남북화해의 동력을 다시 잃었다. 남북관계는 2018년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욱 안 좋아졌고 어두워졌다. 대외적인 상황에서도 일본은 남북의 화해를 원하지 않고, 중국, 미국, 러시아 각국마다 내부 사정과 정권 교체기라 더욱 데탕트시기보다 어려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현 정권의 슬기로운 대처가 어느 시점보다 필요하다. 이 책이 그런 고민의 첫 출발점이자 타산지석이 될 것 같다.
#남북화해론 #박정희와 김일성 #우승지 #인간사랑 #남북관계
* 인간사랑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성실히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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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화해론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준비 과정속에 지구촌의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특수성과 선진강국들의 이데올로기속 첨예한 이해 관계에따라 흔들리는 정책기조처럼 특수한 국가상황적 연관 단어인 데탕트적 화해라는 원칙론적 관심으로부터 시작된 남북 화해론, 부주제인 박정희와 길일성은 일종의 선택받은 자로서의 급부요 독자나 이해당사국들은 반대급부로 이해하면 될듯 싶지 않을까 싶군요. 이는 학위 주제로는 체택하진 않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늘 가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숙적관계의 긴장과 갈등의 사상적 구조성, 냉전시대의 마지막 유물처럼 복선적 이중삼중 얽혀있는 한반도의 본질적 문제들을 국내 상황을 물론 유학중의 경험들까지 저자만의 시선으로 정리 출간된 책이군요. 덧붙여 오랜기간 개인적 준비자료와 외교부의 외교사료관, 미국 국립문자 보관소의 자료(P, 19)들을 바탕으로 데탕트적 바램을 가지고 역사적 이해와 이론적 분석(P, 14)으로 남한과 북한(이하 남북)만의 시각에 국한되지않은 1960~70년과 80년대 이르러까지 국내외 주요 정치현안과 남북한관련 유엔부터 미국, 중국, 러시아(구 소련), 베트남, 프랑스, 라오스, 알제리, 쿠바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국제적 시각과 역학관계들까지 다각적으로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제목인 남북 화해론이란 문자만 놓고보면 개인적으로는, 흔하고 뻔한 남자들만의 식상소스꺼리지만 색다른 경험으로 청춘 한시절을 꽉 체웠던 군시절, DMZ 수색매복과 GP군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이야 DMZ 둘레길도 있지만 과거엔 그야말로 소수의 군병력만 들어갈 수 있었던... 추억속 학창시절 교과서 사진으로나 봤을법한 붉게 녹슨 3.8선 철조망과 빛바렌 녹슨 페인트가 군대군대 이해 당사국 만틈이나 상처화된 삼각 분단선 표식을 군화로 툭툭 건들며 인간 000, 이곳에 왔다가노라란 의미로 녹판위에 이름을 쓰며 "임마! 너 때문에 이 고생이라"는 오랜 추억이 오버렙되면서 내용과 겹쳐 복선으로 그 시절의 모든것들이 본문적 기대감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함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쩌렁쩌렁 대북대남 방송이 계속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를 돌아보니 남과 북 성우들의 가슴을 후비는 감성적 목소리가 먹먹하게 퍼질 관망대에서의 은하수 가득한 늦은밤, 구름 한 점없이 투명한 밤하늘에 어디서 발하는지 모를 별빛만이 가득할때면 어김없이 휫~잇 휘~잇 애절한 휫바람 새소리에 부모님생각, 고향생각에 꺼굴로 세워놔도 국방부시계는 돌아간다지만 까마득한 군생활까지 투박하게 울려퍼지는 적막함은 새벽녘 냉공기를타고 등골과 귓가를 맴돌던 선명함이 오래전이지만 지금도 오롯합니다. 사람마음이 다 같은지라 2인1조였던 신입은 가늘지만 긴 호홉소리를 소리죽여 숨기며 금세 숙연해지지만..., 거기까지..., 군인의 기본 자세에있어 추호의 흔들림은 없다입니다. 특별히 저자가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 본 숙적관계의 긴장과 화해의 detente적 변주의 이해 당사국인 대한민국과 북한, 그리고 미중소와 유엔 역학관계적 이데올로기의 그늘아래 허덕이고있는 지구촌의 사회주의 사상적 단면들을 한반도를 ㅂㅔ이스로 넓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의 노고가 컸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화해의 시작은 저자가 표1-1 데탕트 시기 남북화해 개요(P, 15)에서 언급했듯이 오랜시간 들인 정성과는 달리 1970년의 결실은 결과가 크지않은 이벤트성의 한 점으로 멈춰있고 21세기를 관통하면서 세기적 이목을 집중시켰던 판문점의 역사적인 만남은 표면적으로는 엄청난 결과들을 남북한 당사국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예고했지만 잠정화된 기대감 수준에 정지해있는 분단현실 상황에서 저자의 다각적인 시각은 의미있는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숙적이란 이해를 저자도 언급했다시피 자원, 영토를 둘러싸고 경쟁하거나 정치적 영향력 행사, 종교적 지배를 목표로 하기도 한다(P, 24)라고 보는것이 일반적이지만 한번도의 특수성은 여기에 국한되지않고 한가지를 더하고싶은 개인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바로 한반도를 둘러싼 선진국들의 예상과 기대가 숨겨진 해당행위인 현재와 미래가 담보된 정치적 탐욕이라는 힘없고 작은 한국적 생각을 해봅니다. 이를 바탕으로 데탕트 시기, 남북 화해의 시작과 종료에관한 변수적 인과관계들을 들여다보며 그 충격, 연합, 위협, 전력적 계산 등(P, 285) 여러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후 남북 화해를 넘어서는 미중화해를 도출하고 데탕트와 독트린으로 우리가 원하는 선언으로 이여진다면 더할나위가 없을듯 하지만 동북아 변두리 모퉁의 한반도적 현실은 6.25 전후, 선진국 수장들의 모임으로 갈라졌지만 그 이후, 변한것은 없는, 예나 지금이나 약소국의 서글픔은 요원하기만 하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책에서 본문을 저술하게된 의도를 지금까지의 데탕트적 화해의 긴 여정을 정리하고 재점검할 필요성의 중요함을 재차 말하고 있습니다. 이승만과 문제인까지, 그리고 김일정과 김정은에 이르러 이를 바탕으로 격변하는 국제정세를 바탕으로 선진강대국들의 더욱 노골화된 사익추구들을 동력으로 진정한 국익을 위한 길을 찾아 새로운 전략목표 수립과 변화를 에너지로 지혜롭게 나아가는 더 큰 여정이 우리앞에 기다리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더불어 특별히 개인적으로 알고있는 중요한 의도로 언급한 레짐 교체와같은 정치적 충격을 말하는 Regime Change(P, 36) 등이 아마도 그런 저자의 의도와같이 새로운 출발, 새로운 정략적 모색을 의미하기도 하는것임을 국회의원에 당선된 태영호 의원도 정확하게 풀어주고 있습니다. 아다시피 레짐이란 불어로 체제, 정권을 뜻하는 것으로 본 의미는 "Regime Change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으로 정권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며 반대인 Regime Collapse도 무너진단 의미는 같지만 역학관계는 다른의미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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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적의 드라마가 포연된 암투와 얼룩지는 일이 다반사지만 삭막한 숙적사이에도 때로 화해와 용서의 막이 오르기도 한다. 갈등 속 화해의 실험은 때로 성공하여 숙적의 종료로 이어지기도 한고, 종종 실패하여 두 숙적은 다시 갈등의 역사를 반복하기도 한다.
데탕트 시기 남북화해의 기원, 전개, 쇠퇴의 과정을 추적하고 어떤 조건에서 숙적 사이 화해가 발생하는지,,, 어떤 화해는 실패로 돌아가는지,, 성공적인 화해는 또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한다.
추천합니다.
※ 이 리뷰는 도서출판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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